수몰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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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몸이 얕게 흔들리는 감각과 함께 불현듯 꺼져있던 정신이 맞붙습니다. 아무래도 버스 안에서 깜빡 잠들어버렸던 모양이에요.
눈을 뜨면 들어오는 풍경은 익숙하고도 평범한 버스의 내부입니다. 흔들리는 손잡이,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차창 너머의 풍경, 조금 낡은 감이 있는 앞 좌석의 시트….
익숙한 것투성이인 차체의 내부에서 익숙하지 않은 점이라고는 버스가 텅 비어있다는 점뿐입니다. 당신 외의 탑승객은 존재하지 않네요.
문득 좌석의 맞은편을 바라보면, 정면에는 버스 번호 라벨이 붙어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사람이 없네... (좌우를 둘러보다 버스 번호 라벨을 살펴봅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 |
| 판정결과: | 대성공 |
▶:[0831]번. 이 버스는 아무래도 종점까지 우회해서 가는 번호의 버스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탑승객이 없을 법도 하지요.
그래서, 어디쯤 왔지? 그 전에 목적지가 어디였더라….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다 보면, 문득 기대고 있던 차창 너머로 시선이 돌아갑니다.
흔들리는 창문 너머로 어느새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꼭, 세상을 수몰시킬 것처럼. 이 비는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걸까요?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제법 맑았던 것 같은데….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정말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맑았던가요? 당신은 부자연스러운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잠들기 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 이 버스에 올라탔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습니다. 머릿속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뿌옇고 흐릿한 기억만이 잔존합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73 |
| 판정결과: | 실패 |
덜컹.
▶:방지 턱 탓인지 버스가 또 한 번 크게 흔들립니다.
그 불친절한 진동과 함께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이안 브란트:(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이 버스에 오르게 되었는지 생각이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우선 허리를 굽혀서는 제 품에서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확인해 본다.)
▶:이안은 버스 바닥을 나뒹굴던 국화꽃다발을 주워 듭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꽃다발을 주워들던 그 순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짤막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치 틴벨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꽃다발은 바닥에 떨어졌던 탓인지, 꽃잎 몇 송이가 바닥에 흐드러졌네요.
그제야 흐릿한 의식 너머로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지, 오늘은 첸 티엔의 첫 번째 기일이었죠. 그러니 당신은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이윽고 버스는 인적 드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탑승구가 열리고, 올라타는 승객의 모습에 당신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야 버스 위에 올라탄 사람은, 1년 전 죽었던 첸 티엔이었으니까요.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4/32/12 |
| 굴림: | 53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티엔… 씨? (…역시 꿈인가, 흐트러진 국화 꽃다발을 손에 쥔 채 눈을 깜박거리기만 했다.)
첸 티엔:지금…. `이거, 꿈인가?` 라고 생각하셨죠? (당신의 생각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옅은 미소를 걸친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안녕~ 오랜만이에요.
이안 브란트:(제 곁에 앉는 것을 멍하니 보고만 있는다. 그렇게 새카만 눈을 한 번, 두 번 깜빡이면) 꿈이네…. (엉겁결에 속마음을 내뱉고, 지독하기 짝이 없는 꿈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면서도, 원하는 바,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힘껏 쥐어봐)
첸 티엔:꿈이길 바라요? (빗물이 떨어지며 툭, 투둑. 소리를 낸다. 차창 너머의 하늘은 흐렸다. 그와 대조되게도 푸르기만 한 두 눈은 오롯이 당신을.) 그런데, 어떡하지…. 이거, 꿈은 아니거든요. (순순히 손을 내어주었다가도, 금세 거둔다. 이윽고 팔을 뻗어 당신의 앞머리를 슬그머니 넘겨 본다. 고작 1년, 그 사이 흉이 더 늘지는 않았는지.)
어딜 가시는 중이었나요?
이안 브란트:(마주하는 두 눈은, 지난 일 년 꿈에 그리기만 한 푸른빛. 그 선명한 청색을 마주하면 지금 상황이 단순한 꿈은 아니라고 직감한다.) … 꿈이 아니면? (단 한 번 꿈에도 나타나주지 않았으면서. 그리 중얼거렸다. 제 머리카락을 넘기는 그 손길이 아프도록 다정해, 눈을 내리감고.) 저는…, 당신을 만나러 가고 있었어요. (제 무릎에 놓인 국화 꽃다발을 꾸욱 쥐었을 뿐.)
첸 티엔:(용케 그 중얼거림을 듣는다. 감긴 눈을 가만 바라보다, 느릿하게 대꾸한다. 내뱉는 숨은 한숨과도 닮아 있었다.) 기다릴까 봐 그랬죠. 이미 기약 없는 2년을 기다려 주셨는데, 그 위로 더 많은 세월을 얹고 싶진 않았어요.
(그 정도면 됐잖아요. 덧붙인다. 자신을 만나러 오는 중이었다는 말, 그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흐리게 웃을 뿐이다.)
덜컹.
▶:다시 한 번 방지턱을 밟고 지나간 버스가 얕게 흔들립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2 |
| 판정결과: | 실패 |
▶:진동 탓에 시야가 흔들립니다. 문득 운전선 쪽으로 시선이 가닿으면, …이상합니다.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할 버스 기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버스는 운전사도 없이 홀로 비가 내리는 도로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3/31/12 |
| 굴림: | 99 |
| 판정결과: | 실패 |
기다리지 않아요.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어쩌면 처음에는 당신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허나 깨달음은 불시에 찾아왔다. 당신을 잃고, 한동안 일에만 열중했었다. 당신이 없는 우리의 집은 너무나도 크고 조용해서… 그 뚜렷한 공백을 도저히 견뎌낼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어느 날 촬영 중 작은 부상을 입었는데, 한참 전에 기입해둔 비상연락망엔 여전히 당신의 번호가 적혀있어서. 나는, 그곳으로 전화하지 말란 말도 못하고, 그 잔인한 통화연결음을 하염없이 듣고 있으면……. 그제야 내심 제 돌아오지도 않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깨닫고야 말아.)
너무해요. 이제 좀 추스리니까, 이렇게 나타나서. (애꿎은 원망을 뱉어낸다. 눈을 뜨면, 눈물 어린 시선으로 당신을 재차 바라본다.) 그런데, 그래도…, 저는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모든 것을 깨닫더라도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이 있다.)
첸 티엔:(첸 티엔에게서 유난한 것이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눈치라. 눈물과 함께 흘러나온 감정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보고 싶었다고, 요. (원망 어린 시선을 그대로 받아 낸다. 다만, 허여멀건 낯 위로 떠오른 것은 일말의 희소다. 어딜 보나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나, 숨길 생각은 않는다.) 음~ 이런 말을 하면 당신이 화낼 것 같긴 한데요. 그래도…, 듣기 좋네요, 그거. (기어이 내뱉는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눈가를 훔쳐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먼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 손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점. 첸 티엔은 언젠가부터 반지를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이안 브란트:당연하잖아요. (짧은 투정 끝에 가볍게 눈가를 문질렀고) 이렇게 웃는 것도 보고 싶었고, 그냥… 다 보고 싶었어요. 아주 많이,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당신의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 본다. 꿈에 그리던 얼굴을, 다시금 잊지 않도록.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는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죠. 이젠 많은 게 바뀌었지만…. (덧붙인 음성에는 쓸쓸함이 담겨 있다.) 그래도, 다시 손 잡아줄래요? (한 손을 내밀어)
첸 티엔:손을 내미는 건 제 역할이었잖아요. 이렇게 뺏어가시면 곤란해요. (부러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내민 손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겨우 맞잡는다.) 정말 많은 게 바뀌었네요.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서 있잖아요. 일어나 걸으시란 독촉 없이도 잘 지내고 계신 것 같고. …그래서 좋아요. 덕분에 마음이 좀 놓이네…….
(쥔 손에 힘을 푼다. 연결된 손이 끊어질 듯 멀어졌다. 답지 않은 행동이다.) …내 방은 잘 정리했어요? 세 번째 서랍장에 간식을 가득 채워뒀었는데~ 혹시, 방치한 건 아니죠?!
이안 브란트:그게 다 티엔 씨 덕분이었는걸요. 그래요, 손 내밀어주신 덕분에…. 그래도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조-금 다쳐서요. 휴식기. 그만두지 않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부상은 핑계일 뿐이다. 그저, 재차 일으켜 줄 사람도 없이 다시 넘어지는 게 두려워서. 혼자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아주 잠시만 쉬기로 했다.) 그나저나… 자꾸, 놓지 말아요. (손을 잡으려다 말곤 조심스레 소매 끝을 붙잡아) 더 욕심 안 부릴 테니까, 지금은 잡고 있으면 안돼요?
어, …대충은 치웠습니다. (아직 중요한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굳이 이런 것까지 말할 필욘 없겠지.) 간식? 아. 어느 칸인지 알겠다. 담배도 한 갑 있던 그 칸 말하는 거죠. (가벼운 농.) 담배 피는 거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본인 거 맞아요?
첸 티엔:다쳤어요? 어디…, 다리는 아니죠?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들으면, 놓았던 손을 고쳐 쥐고 끌어당긴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시퍼런 시선이 당신을 낱낱이 훑어 낸다. 그리고는 알아채고야 만다.) …잡고 있을게요. 지금은요. 그러니까, 이 손 놓더라도 다시 일어나셔야 해요.
(빈손으로 목덜미를 주무른다. 우리는 한 계절에 만나, 여덟 계절을 건너뛰고, 겨우 네 계절을 함께 했다. 시선을 섞은 시간보다, 눈길 하나 닿지 못했던 기간이 더욱 길다. 그 사실이 못내 서글펐다. 앞으로 세 계절, 그리하여 2년. 당신의 기다림만큼은 보답하고 싶었으나….)
……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목 끝까지 차오른 감정을 욱여 담는다. 속 편한 체를 하는 것이, 오늘만큼은 힘이 들었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요…. 집 안에선 한 번도 피운 적 없어요! ……진짜로요!
이안 브란트:알았어요, 알아요. 그러니까 제가 몰랐던 거겠죠. (웃음과 함께 얕은 숨을 들이키고,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순간이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시간으로 돌아온 것만 같아 기뻤다.)
크게 다친 건 아니라, 어디랄 것도 없어요. 시간으로 해결될 문제니까. (당신이 붙잡아 준 그 손을 다잡는다. 당신의 손은 언제나 차서, 제 온기를 모두 전해줄 수 있을까 싶어서. 꿰뚫는 시선을 마주하다 이내 엷게 웃는 낯으로) 반드시 털고 일어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저는… 괜찮으니까. (동시에, 괜찮지 않은 것은 당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미래를 그릴 수조차 없다는 게 얼마나 가혹한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간단히 주제를 틀어버린다.) 지금… 이 버스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창문에 부딪히는 물방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본다.)
첸 티엔:그건 걱정 마세요. (줄곧 바깥을 살피다, 이윽고 벨을 누른다.)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당신이 가야 할 목적지까지 제가 바래다 드릴 테니까요.
▶:그 말을 끝으로 버스는 곧 첫 번째 정류장에 정차합니다.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려 협소한 간이정류장 지붕 아래로 들어섭니다. 빗줄기는 여전히 이 세상을 침수시킬 것만 같이 맹렬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처리된 정류장 지붕 아래, 양옆으로 담장 형식의 벽면이 기둥처럼 세워져 있고 그 중앙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나무 벤치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버스 그림이 새겨진 표지판 또한 눈에 띄네요.
이안 브란트:운전자도 없는 것 같던데, 버스가 용케 정차하네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정류장을 살피다 표지판을 읽어봅니다.)
▶:간략한 버스 그림이 새겨진 정류장 표지판입니다. 표지판 아래에 버스의 노선도가 붙어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여기 노선도도 있어요. (말하고는 노선도를 살펴봅니다!)
▶:노선도를 확인하면, 평범한 노선도가 아니네요. 아니, 이를 노선도라고 칭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버스 노선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노선도 대신 색상에 따른 국화꽃의 꽃말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75 |
| 판정결과: | 실패 |
(침침...)
▶:맨 아래 적혀있는 국화꽃의 색상과 의미는 칠이 벗겨져 있어 읽을 수 없네요.
이안 브란트:(담장 형식의 벽면에 특별한 것이 있는지 봅니다.)
▶:마치 담장을 연상시키는 정류장의 벽면에는 흰색 장미 무더기가 덩굴을 내리고 자리합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덩굴 아래에 꽃이 피어나 있네요. 흰색의 국화입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꽃이에요. 흙 속에 뿌리를 내린 채 한들한들 흔들리는 국화꽃은 물기를 머금은 탓에 아주 생생합니다.
첸 티엔:국화꽃의 꽃말을 아시나요?
이안 브란트:방금 저어-기. (안내판을 가리키며) 적혀있던 걸요. 색 별로 다르던데, 음, 하나는 제대로 못 봤지만….
첸 티엔:어떤 거요? (총총…. 안내판을 확인한다.) 음~ 붉은색! 인 것 같은데요. 의미는 못 읽겠어요. (그리 말하며 벤치로 돌아와 앉는다.)
이안 브란트:(나무 벤치에 함께 툭 앉으며) 붉은색이라. … 전혀 모르겠어요. 아무튼. 우리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첸 티엔:(머무적댄다. 명백히 답하길 꺼리는 눈치였다.) 그으렇긴 한데요…. (슬그머니 당신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낸다. 품어 온 애정을 드러내는 것치고는 비애가 어려 있다.)
이안 브란트:왜 그래요? (영문 모를 반응에 고개를 기울인다. 손을 천천히 감싸 쥐다가) 그냥-…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요? (이 비에 잠길 때까지, 함께 있을까, 꼭 그런 말을.)
첸 티엔:(입술을 달싹인다. 망설임의 끝에는 웃음만이 남아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요~! 하지만 안 돼요. 아직 갈 길이 멀거든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미소를 띠고, 고갯짓한다. 바라보는 곳에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이 있다.) 같이 보러 갈까요?
이안 브란트:그럼…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겠네요. (잔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시선을 따라 일어서서는 전광판을 확인한다.)
▶:여느 버스 정류장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전광판입니다. 전광판에는 글자가 흐르고 있지만, 약한 노이즈가 끼어있는 탓에 글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네요.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1 |
| 판정결과: | 실패 |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0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막연히 떠오릅니다. 티엔의 이름을 불러야 다음 버스가 도착하는 게 아닐까?
이안 브란트:이름? (당신을 흘금 바라보다가) 음, 첸 티엔 씨. (풀네임으로 부르는 건 조금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첸 티엔:(기나긴 침묵 끝에 답한다.) 네, …이안 브란트 씨.
▶:나지막이 당신의 이름을 마주 부르는 목소리는 어딘가 한구석이 차게 식은 빗물에 젖어 번지는 것만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물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아요.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80 |
| 판정결과: | 실패 |
▶:그와 만난 이후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버스에서 조우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죠.
먼 곳에서부터 라이트가 번쩍입니다. 불빛은 장대비의 포화를 가르고, 곧 버스 한 대가 정류장 앞에 정차합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0214]라는 숫자가 적혀 있네요. 버스에 오를까요?
이안 브란트:(아까부터 번호가 익숙하네... 함께 버스에 탑승합니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27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삐───.
아까 전 들었던,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이안 브란트:… 으. (잠시 인상을 찌푸리곤 귀를 문지르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이번 버스에도 운전사는 없을지 궁금해 하며 탑승...)
▶:두 사람이 올라타는 것과 동시에 버스는 천천히 빗길 속을 뚫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버스는 첫 번째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오로지 당신과 첸 티엔, 두 사람뿐입니다. 버스는 운전기사 없이 홀로 굴러갈 뿐입니다.
첸 티엔:어디에 앉을까요? (다 비어있긴 하지만.)
이안 브란트:(뒷자리로 쫑쫑... 대충 2인석 아무데나 앉아요)
첸 티엔:(기웃….) 옆에 앉아도 되나요?
이안 브란트:당연하죠, 따로… 앉을 생각이었나요? (충격!)
첸 티엔:당연한… 거였나요?! (충격!) 하긴, 아까도 같이 앉긴 했죠. (적당히 타협하며 옆자리에 앉는다. 문득 시선이 닿는 곳은 당신이 든 국화꽃다발이다.)
이안 브란트:저희… 버스 옆자리에도 못 앉을 사이였나요? (두웅…) 이거… 티엔 씨에게 줘야 할 텐데. 별로 주고 싶지 않네요. (눈썹을 축 늘어뜨리곤 꽃을 내려다 봐)
첸 티엔:뭐어…. 그래도 조수석엔 많이 태워드렸던 것 같은데,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덩달아 꽃을 내려다본다.) 좀 시들었네요…. (나지막한 읊조림.) 그럼, 계속 갖고 계셔 주세요.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이안 브란트:그건 또 그렇다만. 이번만 그냥 넘어가 드릴게요. (선심쓰듯…) 아주 시들기 전엔 드려야겠죠. (흰 국화를 품에 바싹 안아 그 향을 맡는다. 착잡한 눈빛으로) 꽃은 정말… 금방 시드네요.
… 흠. (짧은 헛기침.) 뜬금 없지만요…, 티엔 씨는 제 생각 좀 하셨어요? (쭈볏거리더니 농담스레 질문을 던진다.)
첸 티엔:음~ 글쎄요. 어떨 것 같은데요?
이안 브란트:… 제가 물었는데. (끙) 잘은 몰라도 걱정은 많---이 하셨을 거 같은데. 맞나요?
첸 티엔:많~이는 안 했어요. 당신이라면 어떻게든 잘 헤쳐 나갈 것 같았거든요.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당신 곁에 있어 줄 사람은 널렸잖아요. (히죽!) 왜요, 많~이 걱정해주길 바라셨나요?
이안 브란트:절 너무 믿으셨네. 널리기야 했을까 봐요. (스으윽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며) 걱정 정도는 쉽게 해줄 수도 있으니까 그렇죠. 아무튼…, 흠. 크흠. (괜히 헛기침 더 하고) 조금은 생각 해주셨단 얘기네요. 그 정도면 충분히 기뻐요.
첸 티엔:이상하다…. 널렸을 텐데요. (날이 갈수록 시답잖은 핑계를 대며 전화를 걸었었다. 당신은 촬영 현장에서도 전화를 받아 주었고, 그때마다 스피커 너머로 온갖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나. 질투와도 같은 꼴에 헛웃음만 삼켜 낸다.) 생각은 많이 했어요. 걱정은 적당히 했고요.
이안 브란트:글쎄요. 제 눈에는…, (어느 분 말곤 보이지가 않아서 모르겠던데요. 뒷말을 삼키고 가만 웃기만 한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애인이냐 묻는 통에 손사래 치기 바빴었는데. 그때마다 헛된 맘을 들킨 사람 마냥 귀를 붉히고, 내심 질문에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단 건… 당신은 영영 모를 사실이리라.) … 많이? 그럼 저도 많-이 기쁘고요. 저는 한동안 티엔 씨만 생각했거든요. 오늘부터 몇 날 며칠을 다시 누구 생각만 하게 생겼는데, 상대도 제 생각 좀 해줘야 덜 억울하잖아요. (농.)
첸 티엔:한동안 제 생각만 하셨다는 분이라기엔 여전히 `티엔 씨` 라고 부르시지만요. 존칭은 떼고 티엔, 이라고 불러 주세요. 네? 언제까지 거리를 두실 셈인가요~? 저 서운해요.
이안 브란트:거리 두는 건 아니었지만. 서운해? …티엔.
…. (잠잠! 일단 반말은 죽어도 못 하겠다 싶은 기분!) 아직 입에 안 붙는데. 일단은 노력해 볼게요, 일단은요…….
첸 티엔:…안 되겠다. 그냥 티엔 씨라고 부르세요. 말도 놓지 마시고요.
이안 브란트:(충격!) 그렇게 별로예요?
첸 티엔:그 반대예요.
이안 브란트:그렇구나아, 티엔 씨는 친근감 있게 불러주는 걸 좋아한다…. 기억해둘게요.
첸 티엔:저기요~?! 제 말은 안 들리시나요~? (옆구리 쿡.) 그러다 당신의 전 동거인으로부터 뜬금없는 고백을 들으실지도 몰라요. 조심하세요~? (농을 가장한 진심이었다.)
이안 브란트:(무력하게 옆구리 꾹 당하며…) 티엔이야말로 조심하세요, 그러다 제가 냉큼 받아버리면 어쩌려고? (짐짓 심각한 체 표정을 짓다,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낸다.) 그나저나 전 동거인이라니까 조금 슬프잖아요. 말이라도 현 동거인으로 해줘요. 당신 자리는 늘 비어있으니까. 혼자 지내려니까 그 집이 너무 조용하고 커다래서 아주 이사라도 갈까 싶었는데, 당신의 흔적을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그냥 살고 있어요. (희미하게 웃으며 한 손을 겹쳐쥐었다.) 이걸 어떡하면 좋지 싶어.
첸 티엔:걱정 마세요. 고백 같은 건 안 해요. (그러나 단언한다. 손이 닿아오면, 붙잡는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 이후, 어떤 답도 이어지지 않았다.)
▶:문득, 이안은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립니다. 날짜를 특정할 수 없는 그 언젠가의 평범하고 행복했던 기억.
당신의 옆에는 첸 티엔이 자리하고, 두 사람은 한적한 버스에 앉아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습니다.
상기해낸 평화로움도 잠시, 당신은 갑작스러운 서늘함을 느끼게 됩니다. 글쎄, 서늘함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모든 불안정한 감정이 한 데 뭉쳐 숨통을 억세게 짓누르던 그때.
빗길에 미끄러진 버스가 요동치듯 크게 흔들립니다. 무언가에 머리를 강하게 맞는 충격과 함께 일순 몸이 앞으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고꾸라지는 몸을 지탱하듯 누군가가 당신을 강한 힘으로 끌어안습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 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야 지금 당신의 곁에 존재하는 사람은 첸 티엔뿐인걸요. 그가 억센 힘으로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어째서? 그런 의문을 던지기도 전,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생생한 통증. 품에 안고 있던 국화꽃다발이 바닥을 나뒹굴고, 눈송이 같은 국화 꽃잎은 시야를 긋고 흐드러집니다.
당신을 꽉 끌어안은 그의 체온은 어쩐지 전혀 따뜻하지 않네요. 야속하게도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야가 수몰되고 맙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눈앞에 왈칵 쏟아집니다. 왜인지 생경하지 않은 순간입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79 |
| 판정결과: | 실패 |
▶:삐──. 의식과 함께 낙하하는 머릿속에 이명이 들려옵니다.
어지러운 의식을 잠재우듯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섞여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깜빡.
▶:당신은 눈을 뜹니다.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무겁게 낙수하는 물방울 소리. 그리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품 안에 안겨있는 백색의 국화꽃다발입니다. 꽃다발은 아까 전 보았을 때보다 조금 더 시들어있습니다.
첸 티엔:깼어요?
▶:무거운 정신을 흔드는 것은 잔잔하고도 담담한 그의 목소리입니다. 이곳은 버스 정류장인 것 같습니다. 꼭 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만 같이, 끊임없이 펼쳐진 도로 한가운데 마련된 간이 정류장입니다. 어느 틈에 하차한 걸까요?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이안 브란트: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데. (기분 나쁜 울렁임을 겨우 참아내며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짚었고.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도 잠시, 티엔의 낯빛을 확인한다.) 괜찮아요? 분명…….
첸 티엔:(무릎을 짚은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낸다. 괜찮아요? 그리 묻는 것마냥.) …악몽이라도 꾼 거예요?
이안 브란트:티엔이야말로…. (당신을 바라보면 순간 머릿속으로 지독한 장면들이 그려진다. 차 사고에, 당신을 눈 앞에서 잃는 상황,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이다. 곧 고개를 숙인 채, 턱 끝까지 들이차는 숨을 겨우 고른다. 그럼에도 제 손 위로 닿는 손길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양 손으로 당신의 손을 부여잡고는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 그런가 봐요. 티엔, 잠시만 안아줄래요?
첸 티엔:(감히 당신의 심정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니 그저 대답 없이 당신을 끌어안을 뿐이다. 느릿한 손길로 등을 도닥인다. 호흡을 맞춰나갈 수 있게끔, 그렇게.)
이안 브란트:(당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그렇게 머문다. 가느란 떨림이 멎을 즈음에야 힘주어 당신을 한 번 껴안았고, 조심스레 몸을 떼어냈다.) 이제 괜찮아요. 고마워요. (조금 전보다 더 힘을 잃은 꽃다발을 쥔 채) …언제 내린 건지 기억이 안 나네요. 다음 정류장인 거죠?
첸 티엔:네…, 이젠 다음 버스를 탈 차례고요. (떨림이 멎었다 한들 염려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닌지라, 미련스럽게도 당신의 손을 찾아 쥐곤 놓지 않았다.) …저기 전광판이 있어요. 이번에도 같이 가 볼까요?
이안 브란트:(가쁜 마음보다, 당신을 놓고 싶지 않단 이유로 손가락을 엮어 단단히 깍지 껴 잡았다. 당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해 전광판에 적힌 것을 읽어본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 |
| 판정결과: | 대성공 |
▶:인도자… …의 이름을 호명할 때, 다음 버스가 도착합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75 |
| 판정결과: | 실패 |
▶:버스 사고의 충격 탓이었을까요? 어쩐지 께름칙한 기분이 듭니다.
이안 브란트:(이번에도 이름을 불러야 오는 건가. 다만 기분 나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잠시 애꿎은 바닥을 노려보다가 곧 그의 이름을 부른다.) 첸 티엔. … 이번에는 씨 안 붙였어요. (슬쩍….)
첸 티엔:하하, 그래요. 이안 브란트 씨.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 힘없이 웃었다.)
▶:무겁게 허공을 가르는 목소리는, 어째서 이만큼이나 빗물에 수몰될 듯 참담히 젖어있는지. 이름을 호명하고 얼마 있지 않아 세 번째 버스가 저 멀리서 빗속을 헤치고 다가와 정차합니다.
버스는 지금까지 승차했던 버스와 달리 커다란 2층 버스입니다. 두 사람 앞에 멈춰선 버스의 탑승구가 입을 벌립니다.
타고 싶지 않아요. 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다는 근원 모를 충동이 듭니다.
첸 티엔:(입구에 발을 걸친 채로 손을 이끈다.) 괜찮아요, 내가 같이 있잖아요.
이안 브란트:…티엔이야말로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그건 그렇지만, (거북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를 짐작해보자면 조금 전의 버스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지, 혹은 이럴 때만 빌어먹게 잘 들어맞는 나쁜 직감 때문일지….) 그러면 손, 놓지 말아줘요. (힘주어 다잡은 손, 당신을 따라 버스에 올라 탄다.)
▶:두 사람은 세 번째 버스에 올라탑니다.
버스의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1219]라는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우연일까요? 산장에서 현실로 돌아왔던 날짜와 동일한 숫자네요.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삐───. 아까 전 들었던, 이제는 익숙해진 단말마와 같은 이명이 귓가를 울리고 사라집니다.
▶:두 사람이 버스에 올라타면, 동시에 버스는 움직입니다. 차창 바깥으로 온통 습기뿐인 세계가 스쳐 지나갑니다. 버스는 지금까지의 버스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으며, 기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 존재하는 탑승객은 그저 당신과 첸 티엔, 두 사람뿐입니다.
버스 내부에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이지만,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닫혀있는 입구의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의 품에 있는 국화는, 일전보다 훨씬 더 생기를 잃었습니다. 이제 그저 계절을 잃은 이름 모를 들꽃처럼 보여요. 단지 몇 송이의 국화만이 처량히 바래진 꽃잎의 색을 발할 뿐입니다.
첸 티엔은 말없이 걸음을 옮겨 2인용 좌석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지친 낯으로 창밖을 바라보네요.
이안 브란트:괜찮아요? 조금 지친 것 같은데. (시선을 당신에게 고정한 채) 잠깐 눈이라도 붙일래요?
첸 티엔:(당신의 부름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수 초가 지난 뒤에야 퍼뜩 시선을 돌리면,) ……아,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나요?
이안 브란트:티엔. (흐트러진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주며) 피곤하신 것 같아서요.
첸 티엔:…그런가요? (입꼬리를 끌어올렸으나, 호선을 그리지 않는다. 어색하고도 뻣뻣한 미소는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 조금만 쉴까….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35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두 사람이 앉은 좌석 바닥에 책 한 권이 떨어져있네요.
이안 브란트:(떨어진 책을 주워보곤 표지부터 속지까지를 대충 넘겨봅니다.)
▶:푸른색 표지에는 아기자기한 회전목마 그림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화려하고도 쓸쓸한 푸른 대낮의 회전목마네요.
책자의 내용을 살핀 직후, 이안은 강한 현기증을 느낍니다. 시야가 까맣게 물들어요.
...
...
빛도 한줄기 들지 않는 맨 밑바닥의 어둠 속에서, 당신은 환각을 마주합니다.
환각 속에 삶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가장 슬펐던 순간이, 죽어서도 잊지 못하리라 여겼던 반짝이던 삶의 조각이, 어느 순간 그 삶에 뿌리를 내리고 침범한 첸 티엔과의 첫 만남이.
▶:단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는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한동안 빠른 속도로 영상이 스쳐 지나가고 잠시간 필름이 뚝 끊기며 말간 어둠이 지속됩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득, 다시금 빛처럼 터져 나오는 영상이 하나.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첸 티엔과 당신.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함께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차창 바깥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네요. 두 사람은 행복해 보입니다. 고즈넉한 빗소리의 향연마저 서로 간의 이야기를 삼켜내지 못해요.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쾅!
▶:반대편 차선을 지나치던 트럭과 버스가 갑작스레 충돌합니다. 직후 들려오는 것은 커다란 굉음. 쇠가 굽어들고 절단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금속음. 무언가 터지는 소리. 날아가는 소리. 어딘가에 들이박는 듯한 충격. 생생한 통증.
쉼 없이 흔들리고 요동치는 어두운 화면 사이로 그런 당신을 한 점 망설임 없이 끌어안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강한 힘으로 끌어안깁니다.
아니, 누군가라고 특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의 곁에 있던 사람은 첸 티엔이었으니까요. 첸 티엔이 억센 힘으로 이안 브란트를, 당신을 끌어안았습니다.
암전하는 버스의 내부를 어둡게 띄우며 필름이 또 한 차례 뚝 끊겨나갑니다.
떠오르는 영상의 날짜는… 1년 전의 오늘입니다.
▶:아, 그제야 지금까지 서리가 내린 듯 희뿌옇기만 하던 기억 하나가 마치 퍼즐 조각처럼 달라붙습니다.
1년 전의 사고가 떠오릅니다.
1년 전,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현장에 존재하던 것은 티엔만이 아니었습니다. 티엔과 당신,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당신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던 그 참담한 사고의 현장에서, 첸 티엔은 이안 브란트를 끌어안고 죽었습니다.
이건… 주마등인가요?
그래요. 이건 주마등입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2/31/12 |
| 굴림: | 5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1
▶:일순 강한 충격과 함께 주마등이 돌아가던 공간이 부서져 내립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81 |
| 판정결과: | 실패 |
▶:삐─────. 무너져 내리는 공간 속에서, 조금은 길게 이어지는 기계음을 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꼭 말단부위부터 심장까지 강한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는 것만 같은 감각. 이윽고 모든 것이 바닥까지 묵직하게 가라앉고 맙니다. 끊임없이 퍼붓는 빗소리에 한데 뒤엉켜있던 환각들 또한 함께 수몰됩니다.
귀를 먹먹히 침수시키는 낙수음. 당신은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은 채 눈을 떠올립니다.
고개를 돌리면, 티엔은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곤히 잠들어있습니다.
덜컹.
▶:버스가 방지 턱을 밟고 흔들립니다.
그에 맞춰, 짤그랑.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미약한 금속음이 들려옵니다.
이안 브란트:(금속음이 들린 곳을 살피고는 무언가를 주워봅니다.)
▶:이안은 회전목마 고리가 달린 작은 열쇠를 주워 듭니다.
이안 브란트:(그러고 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자물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슬쩍 일어나서 자물쇠에 열쇠가 맞게 들어가는지 확인해 봅니다.)
▶:달칵. 금속이 맞물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풀립니다.
2층으로 올라갈까요?
이안 브란트:(2층으로 올라갑니다.)
▶:버스의 2층으로 들어서면, 그 장소는 이상하게도 단출한 방과 같은 형식을 하고 있습니다.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차창에서 물기를 머금은 탁한 빛이 터져 나와 내부를 은은히 비추고 있네요.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침대 하나가 놓여있습니다.
이안 브란트:(버스라기엔 이상하네…. 내부로 걸어들어가 책상 위를 살펴봅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있는 책상 위에는 그 흔한 필기도구도, 책도, 사용감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말끔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는 책상 한가운데 반으로 접혀 있는 쪽지만이 놓여있을 뿐입니다.
이안 브란트:(쪽지를 펼쳐 읽어봅니다.)
(괜히 차오르는 생각들에 미간을 짚고 서있기만 하고. 이어 책장을 살펴봅니다.)
▶:책장에는 책이 한가득 꽂혀있습니다. 검은색의 책등만이 마치 밤하늘처럼 빼곡히 즐비합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100 |
| 판정결과: | 대실패 |
▶:이름을 호명한 것은 당신뿐이었던가요? …이외의 것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이름을 부른 건…. 복잡한 사고를 멈추고 침대에 털썩 앉는다.)
▶:꼭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병실용 침대입니다. 그 옆으로는 커튼으로 반쯤 가려진 공간이 보이네요. 커튼 위로는 핀이 꽂힌 명찰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익숙해서 마음에 안 든다. 명찰을 살펴봅니다.)
▶:[이안 브란트 님]
이안 브란트:(물밀듯 밀려오는 갖은 정보들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게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커튼을 걷어 가려진 공간을 살핀다. 아마 기대하는 것은 뻔한 광경이다.)
▶:커튼을 걷으면, 순식간에 공간이 뒤바뀝니다. 드러나는 것은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병실의 매트리스 침대와, 그 주변으로 즐비한 온갖 의료 장치들…
그 사이에 푸른색 담요를 덮고 누워있는 사람은 입가에 산소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제야 당신은 기시감의 정체와 마주합니다.
이안 브란트, 당신이잖아요.
병상에 누워 갖가지 의료 기계들의 틈 사이에서, 산소호흡기를 뒤집어쓴 채 실낱같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사람은… 이안 브란트, 당신입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3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삐──. 문득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터져 나옵니다.
이안 브란트:(가까이의,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길을 돌린다.)
▶:소리의 근원은 병상 옆의 심전도 기록 장치입니다. 기록 장치의 모니터 위로 마치 미약한 파도 같은 심전도 곡선이 출력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연약하고도 미약한 곡선입니다.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67 |
| 판정결과: | 실패 |
▶:지금까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던 수많은 이명은 무엇인가요?
당신을 감싸 안고 죽어버린 첸 티엔과는 별개로, 당신 또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버스는 무엇인가요. 정말 당신이 알고 있는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이 맞나요?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1/30/12 |
| 굴림: | 3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1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연속입니다.
아니, 이제 이건 현실이 아니겠지요.
이 버스는, 스스로가 수몰되어가는 버스.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있는 것은 바로 이안 브란트, 당신입니다.
...
...
▶:어쩐지 몸이 강하게 흔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눈을 감았다 떠올리면, 흐릿하고 침침한 시야 너머로 희기만 한 천장이 들어옵니다.
삐. 삐. 삐. 벨이 터지는 소리. 장치에서 갈라져 나오는 다급한 기계음 소리. 위급한 환자의 위치를 알리는 병원의 방송 소리.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뭉개지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리고 당신은, 다시 눈을 감습니다.
▶:쏴아아. 고요하고 적막하게 수몰하는 세상을 울리는 빗소리. 낙수하는 빗물은 봄의 끝물에 삶을 모두 피워내고 낙화하는 벚꽃을 닮았습니다.
부드럽게 이마의 흉을 문지르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정류장입니다.
품에 안고 있는 국화꽃은 이제 생기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시들어 있습니다.
첸 티엔:일어났어요?
이안 브란트:티엔…. (느리게 뜬 눈으로 국화꽃과, 당신을 번갈아 바라본다.)
▶:아주 자연스럽게도, 티엔의 뒤에 자리하고 있는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전광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의 노이즈도 끼어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온전히 모든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
인도자가 인도를 받을 자의 이름을 호명할 때, 마지막 버스가 도착합니다.
그래요, 이름을 불러야 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첸 티엔이었습니다. 당신은 문득 떠올립니다. 그가 각 정류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던 일을요. 그러고 보면, 꼭 첸 티엔이 당신의 이름을 부른 뒤에야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던가요.
당연합니다. 저 메시지에 따르면, 인도자는 첸 티엔. 인도를 받을 자는, 망자의 길에 들어선 자. 죽음의 여로에서 가장 먼저 버스에 올라타 있던 자. 바로 이안 브란트, 당신입니다.
▶:그렇지만, 왜일까요?
한참이 흘러도 첸 티엔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이걸로 마지막일 텐데요.
첸 티엔:(홀가분한 낯이다. 더없이 기뻐 보이기도, 슬퍼 보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산을 펼치고, 당신에게로 기울인다.) 좋은 밤이에요, 전 동거인 씨.
목적지가 바뀌었어요. 제가 했던 말, 기억해요? 도중에 길을 잃지 않도록…. 당신이 가야 할 목적지까지 바래다드리겠다고 했잖아요.
(손을 내민다.) 건너편 정류장으로 넘어갈까요. 겸사겸사 전할 말도 있고요.
이안 브란트:티엔, 나는……. (할 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섣불리 나오지가 않았다. 숨이 턱 막힌 듯한 느낌에 겨우 손을 붙잡아 당신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전부였다.)
첸 티엔:(안색을 살피더니,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보아하니 다 떠올리신 것 같네요. 우선…, 괜찮아요? 죄송해요, 이왕 감쌀 거였다면 제대로 했어야 하는 건데. (부러 짓궂은 체를 하고.)
이안 브란트:그런 말 하지도 마요. (눈물을 참고, 괜히 당신을 흘겨본다.) 마음대로 그렇게 하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럼, 전 뭐가 돼요. (사랑하는 사람이 고작 날 위해……. 그것보다 괴로운 일이 더 있을까. 가뜩 울적한 표정으로) 티엔이라고 안 부를래요. 첸 씨라고 불러야겠어.
첸 티엔:첸 씨!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좋겠네요. (그저 웃어넘긴다. 손을 이끌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시다시피… 1년 전 오늘, 사고가 있었어요. 당신은 곧장 병원에 옮겨졌지만 1년째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이고요. 그간의 기억들은 당신이 만들어 낸 상황일 거예요. 꿈속에서도 내 생각을 해 줬다니 좀 기쁘긴 한데.
아무튼…. 당신은 죽어가고 있어요. 그건 명백한 사실이죠. 삶의 경계를 벗어나 죽음으로 향하는, 당신의 영혼을 노리는 존재가 있더라고요. 그 뒤는 진부한 이야기예요. 첸 티엔이 당신을 안전한 안식으로 이끌기 위해 신적인 존재와 계약했다, 뭐 그런. …믿기 어렵죠? 사실 나도 그래요.
이안 브란트:나쁘지 않기는요. 그래…, 저는 항상 첸 티엔이라는 작자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라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만. (곤란하네, 정말로. 짧은 중얼거림. 허나 이런 상황에서 제 마음쯤 들킨 게 중요할까.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움직이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 대체 뭘 한 거예요?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건데요? 건너편 정류장은 뭐가 다르길래 그래요.
첸 티엔:그것참 우연이네요. 나도 그래요. 난…, 내가 그렇게 질투가 많은 사람인 줄은 몰랐다니까요. (태연히도 받아친다.) 계약을 했다고 말씀드렸죠? 그걸 통해 당신의 영혼을 안전한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을 얻게 되었어요. 그 공간이 지금까지 거쳐 왔던 버스들이고요. 제가 당신의 이름을 불렀던 건, 당신을 죽음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이름을 부를 필요가 없어졌어. 중간에 우릴 도와준 신이 있거든요. (경쾌한 발걸음. 우리는 한 계절에 만나, 여덟 계절을 건너뛰고, 겨우 네 계절을 함께 했다. 시선을 섞은 시간보다, 눈길 하나 닿지 못했던 기간이 더욱 길다. 그 사실이 못내 서글펐으나, 앞으로 세 계절, 그리하여 2년. 그리고 그 이후까지.)
내 사랑, 당신에게 삶을 돌려줄게요. 그러니 꽃다발을 들고 버스에 오르세요. (당신이 살아 숨 쉴 수 있다면, 시선 하나 섞지 못하는 것이 대수인가.)
이안 브란트:잠깐, (속절없이 따라 걷던 걸음을 멈춘다. 이내, 꽉 잡았던 손을 놓아버린다. 당신이 뒤를 돌아보았다면, 마주하는 것은 아마 보다 차분한 눈빛.)
나는, …… 싫어요. 멋대로 보내지 말아요.
첸 티엔:(뒤를 돌아보지 않을 리 없다. 그야, 당신이 먼저 제 손을 놓아버린 건….)
……어째서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목도하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되돌아간다고 한들 당신에게 해가 가진 않을 거예요. 물론…. (슬그머니 눈치를 본다.) …다시 재활을 하셔야 하긴 하겠지만.
이안 브란트:어째서긴요. 지금 재활이고 뭐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얕은 숨을 내쉬고, 온전히 당신의 눈을 바라본다.) 눈치도 빠른 분이 왜 이해를 못하실까.
▶:문득, 첸 티엔의 어깨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는 전광판이 보입니다.
전광판의 메시지는 우리가 원래 앉아있던 반대편 정류장의 메시지와는 그 내용이 상이합니다.
삶으로의 귀환. 삶으로 인도받을 자가 인도자의 이름을 부르면, 삶으로 향하는 생환 버스가 도착합니다.
첸 티엔:(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첸 티엔에게 인연이란 끝이 존재하는 시간일 뿐이었고, 사랑 또한 그러했다. 감정은 영원하지 않으니 이 장마 또한 언젠가는,) 왜…….
(끝이 나리라고. 모순으로 점철된 생각을 했다. 쉬이 꺼트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면 그토록 당신을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고, 한 줌의 목소리조차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것이며, 당신과 함께할 미래를 그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마지막 순간 당신을 감싸지도 않았겠지.)
…그러지 마세요. (첸 티엔은 끝내 이 감정을 외면하지 못했다. 하여, 애원한다.)
이안 브란트:(거세게 내리는 비에 눈 앞이 흐리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채 알기도 전에, 행여 제 앞의 사람이 사라지기라도 할까 시선을 떼지 못한다.) 당신이 없는 삶은 2년이면 충분하거든요. 그러니까,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 제 행동이 당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라 힐난해도 상관 없어요. (애초에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거니와. 지금에 있어 내 당신을 직접 놓아버리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테니까. 당신이 없는 계절은 필요하지 않아.)
저도, 이제 기약 없는 기다림 같은 건 그만둘 때도 되었잖아요?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까 저를 곁에 붙잡아 두세요. (이것이, 이안 브란트가 당신에게 내보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이기. 차라리 마지막을 함께 하게 해달라 비는 것, 이 여름의 장마에 함께 잠겨 죽겠다고 말하는 것.)
첸 티엔:당신이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강요할 수 있겠어요. 볼품없이 고개를 떨어트린다. 손에 쥔 우산조차 놓아버리면, 두 인물의 인영은 장대비에 수몰되어…….)
하지만…. 정말 괜찮겠어요? 저 너머에는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고작 나 한 사람이…,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제 소리를 가다듬지 못하고, 호흡을 단정케 하지 못하는 연유는 무엇인가.) 당신을 붙잡아도 될까요?
이안 브란트:(바닥에 나뒹구는 우산을 허리 숙여 집었고, 다시금 고쳐 잡는다. 가뜩 비에 젖은 당신 쪽으로 우산을 기울인 이는 간만에 밝게 웃었다. 궂은 비에도 열없이 당신만을 바라본다. 흔들리지 않는 시선은 꼭 그렇게 전하고 싶었다. 당신이 없으면 모두 소용없다고.)
부디 붙잡아 주세요.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요. (두 사람은 함빡 젖은 지 오래였다. 장마 같은 죽음에, 그리고…, 는개 같은 사랑에. 그저 서로 옷을 적신 줄도 모르고 지냈을 뿐이었다.)
첸 티엔:…그때 당신을 기다리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반지 같은 걸 줘서는 안 됐다고요.
하지만, (틈 없이 당신을 끌어안는다. 두 사람 사이, 더는 흘러내리는 것이 없다. 눈물도, 회한도, 사랑도, 빗방울도, 모두 그 자리에 멈춘 것마냥….) 이제 와 돌려받고 싶진 않아….
……사랑해, 이안. …다시 마지막 버스를 타러 갈까요, 이번에는 같이요.
이안 브란트:지금도 모두 돌려줄 수 있는 걸요. 반지든, 2년의 시간이든, 전부 없던 일로 칠 수 있는데. 그런데 내 마음만큼은, 당신이 내게 준 게 아니라, 내가 멋대로 가져버린 것 뿐이라. 돌려줄 수가 없어요.
당신이 무얼 주었든, 주지 않았든… 나는 반드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거야.
(다시금 한 손을 내밀며 웃었다.) 이번에도 손 잡아주실 거죠?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첸 티엔:(붙잡는다. 그리고 파안했다.) 당신이 놓지 않는 이상, 영원히요.
삶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당신에게 필요 없습니다.
그게 이안, 당신이 내린 결론이며 판단입니다.
삶으로 돌아갈 생환 버스의 라이트가 켜지는 일은 없습니다. 버스가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나는 일도 없어요.
당신은 버스가 필요 없고,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니까요.
앞으로 영원히 이 수몰되는 세계에 갇혀 영생을 걷게 될지라도 상관없을 겁니다. 이제는 서로가 함께할 테니까요.
사랑해, 이안.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세 번째로 당신의 이름을 호명한 인도자가 웃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반대편 정류장으로 되돌아갑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에 올라탑니다.
툭, 품에서 떨어진 국화꽃다발이 빗물 속을 나뒹굽니다.
아니, 이제 더는 국화꽃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요.
삐─────.
그와 동시에 이젠 익숙해진 기계음이 귀를 울립니다.
[END 2. 이곳은 우리의 사랑이 수몰할 세상.]
▶:KPC 로스트, 탐사자 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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