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먼 왕국에 심장이 얼어붙은 용이 살았습니다.
용은 전지전능한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천사의 날개처럼 부드러운 깃털 침구에도,
짝을 잃고 우는 나이팅게일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왕국은 천 년 간 평안했으나, 용이 마음을 잃어버린 이후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갈수록 강해지는 날카로운 바람에 숲과 샘은 식어가고,
추위를 타고 찾아오는 죽음이 사람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왕은 대신들에게 물었습니다. "용의 겨울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자
부유한 공작이 말했습니다. "용에게 더 많은
재물을 바쳐야 합니다."
연이어
유명한 신관이 말했습니다. "용에게 더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어서
똑똑한 학자가 말했습니다. "용에게 더 높은
지식을 깨쳐야 합니다."
하지만 용은 많은 재물도, 깊은 믿음도, 높은 지식도 내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왕자님에게 무슨 희생을 치뤄서라도 왕국을 구해내기를 명했습니다.
▶:저녁이 찾아옵니다. 체리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놓인 회의실에 앉습니다.
맞은 편 테이블, 상석에는 왕이 앉아 있으며 테이블 위에는 보고서가 놓여 있습니다.
빈 의자가 세 개 있네요. 곧 대신들을 만나기로 한 시간입니다.
체리 애쉬:(두리번거리다가.. 보고서를 읽어보아요)
용은 원래 신성하고, 예언과 마법을 쓰며 천 년 간 왕국을 도와왔지만, 심장이 얼어붙은 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앓고만 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 찾아온 겨울은 성 바깥에 있는 겨울 민족인 아만인을 불러왔고, 덩달아 작물의 소출도 떨어져 백성들은 근 몇십년 간 힘든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 불안한 시대를 겨울이라 명명하고 대비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네요.
왕:네게 이런 일을 시키게 되어 미안하구나. 내일이면
탑에 가게 되겠지. 그 전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 물어도 좋다.
체리 애쉬:아녜요, 궁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 가는 거죠. 믿고 맡겨주셨다고 생각하면 기뻐요. 무엇보다, 형님도 폐하도 무척 바쁘시단걸 이 곳 누가 모르겠어요. 음… (모두 읽어낸 보고서를 놓지 못하고 만지작거리다가도 곧 내려놓는다.) 용께선 심장이 얼어붙어도 죽지 않는가 봐요.
왕:완전히 얼어붙지 않아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무언가 해답을 내려 주신다면 좋으련만. 입을 꾹 닫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구나.
아무것도 아닌 자의 말을 따라 너를 탑으로 보내긴 하겠다만, 이제는 그의 말조차도 의심이 가니, 원.
체리 애쉬:이야기를 하지 못하시는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지요, 심장이 얼어붙으면… 입도 얼어붙고 만다던가…~? (멀뚱..)
아무것도 아닌 자요?
왕:그래, 네게 알려줄 때도 되었지. 아무것도 아닌 자란 왕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조력자를 말한다. 왕과 용을 비롯한 최고 대신들만 아는 기밀 사항이지. 단,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진 못해. 우리에게 이득을 가져다준다 한들 그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그를 맹신하진 말거라.
체리 애쉬:그래도 멋진분들 같은 걸요, 이름을 내걸지 않고 쭉 왕가를 위해 힘 써주고 계신 거 잖아요. 다음엔 저도 함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들도
탑에 대하여 알고 있겠죠?
왕:(고개를 끄덕인다.) 탑은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으니.
용이 거처하는 장소인 만큼 모두가 그곳을 주시하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용만이
겨울에 대한 단서를 쥐고 있을 테지. 네게 건 기대가 크다. 부디 용의 심장을 녹여 겨울을 끝내다오.
체리 애쉬:그럼요! 이왕이면 몇 만 년은 못 얼도록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런데…
용께선 어떤 분 인가요? 아,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요. 몇 번이고 도서관을 오갔지만 책 속엔 그의 능력만이 쓰여있지, 다른 부분은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폐하께선 직접 만나 뵌 적이 있으신가요?
왕:물론. 용은 건국 때부터 왕국을 돕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는 모든 위험을 곧바로 말해주지는 않아.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만 왕국에 알리고 있지.
시간은 원인과 결과가 아주 복잡하여 자칫하면 미래에 닥칠 나쁜 일을 막으려다 다른 액운이 닥칠 수도 있다던가. 그렇지만, 겨울에 의해 왕국이 절멸할 위기이지 않나. 그런데도 십수 년 째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고 있어. 어쩌면 용은 왕국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체리 애쉬:(입술을 찡긋거리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슬프겠어요. 하지만 오해가 있었거나, 저희가 용을 해치는 일을 했다면 반드시 사과드려야만 해요. 그렇게 해서 봄을 돌려 받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이 추운 겨울을 견뎌내기에 왕국의 아이들은 너무 어리고… 또 여리니까요. (이내 끄덕이다 보고서 위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아만인들은 누구인가요? 죄송해요, 열심히 찾았는데. 도통 아는 게 없네요.
왕:많은 정보가 극비에 다루어지고 있으니 모르는 것이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염려치 말라. 지금도 아주 잘 해내고 있으니.
야만인이란 왕국 주변에 원시적인 부족 형태로 흩어져 사는 이들을 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예전부터 우리 왕국을 공격해 왔으나, 겨울이 되고부터는 그 빈도가 부쩍 늘었지. 이 또한 고질적인 문제겠구나.
체리 애쉬:감사해요. 역시 식량과 날씨 뿐이 문제가 아니었군요. 외지인까지 왕국에 들어서고 있을 줄이야…
겨울이라는 게 찾아 온 건 이번이 처음인가요?
왕:선대부터 기온이 떨어질 기미가 있었지만, 이런 추위가 닥친 건 이례적이다.
겨울을 겨울로써 받아들이고 맞선 지는 29년째지. 이 겨울이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우리 왕국은 절멸하게 될 터….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회의실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왕:대신들이 도착한 모양이구나. 그들의 이야기를 잘 새겨 듣거라.
▶:세 명의 사람이 줄지어 들어옵니다. 왕과 함께 나라의 극비 사항을 모두 알고 있는 대신들이 차례대로 원탁에 앉습니다.
공작이 자리에 앉으며 말을 합니다.
공작:영원을 사는 이에게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왕자님께서 용의 환심을 얻으시길 바란답니다.
신관:바뀌지 않는 믿음으로 선을 추구하는 것만이 용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왕자님께서는 용의 신뢰를 얻어 주십시오.
학자:어쩌면 저희는 용의 말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을 뿐, 그를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보! 정보야말로 곧 길을 열어줄 열쇠가 아니겠습니까. 용에 대해 아는 것이 이 상황을 타파할 방도임이 틀림없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용의 정보를 얻어 와주십시오!
왕:우리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그의 힘을 빌리는 대신 국가를 유지해 그를 지키고 있으며, 이 계약을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왕자여, 너는 내일부터 탑으로 향해 용의 힘을 얻어오거라.
▶:넷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정적이 찾아옵니다. 왕은 넷을 대표해 다시금 말을 잇습니다.
왕:이 자들은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들이며, 이전에 용을 만나본 적이 있다. 우리의 경험을 참고로 삼으면 네가 용을 만났을 때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할 수 있을 테지.
선례를 통해 용과 가까이 할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하고, 내일 아침부터 용에 탑에 다녀온 뒤 본 것을 토대로 여러 곳을 찾아가 해답을 찾길 바란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밤이 깊어졌다며 시종이 문을 두드립니다.
▶:회의가 마무리되고, 체리는 거처 중인 별궁에 도착합니다. 어느덧 시간은 밤이 되었습니다.
캐노피가 달린 커다란 침대 반대 편에는 부드러운 커튼이 덮인 창이 있습니다. 창문이 열려 있는지 커튼이 펄럭이네요. 벽난로와 가까운 곳에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커튼을 젖혀보면, 저 멀리 있는 용의 탑을 볼 수 있습니다. 정원의 관목들은 전부 추운 날씨를 견디는 종류로 대체되어 푸른색과 검정색, 갈색만이 일렁입니다.
선대 때부터 이 시대를 겨울이라 부르기로 결정했다는 걸 배운 기억이 나네요.
▶:벽난로에 가까이 가니,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던 듯 부지깽이가 벽난로 안에 놓여 있습니다. 그 외에도 난로 안에서
금속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이네요.
어떻게 할까?
▶:불길 때문에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달아오른
금속을 꺼내보면, 이것이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법한 원형의 금속 세공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핏 회중시계와 비슷해 보이지만, 바늘과 시계판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있고, 빈 구석 한 군데엔 꽃 모양 금속이 꽃혀 있네요.
체리 애쉬:펜던트같이 생기기도 했는데…. (열어 볼 수 없으려나.. 꼼지락거려봐요)
▶:이 식물은 주변에서 본 적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네요.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체리 애쉬:(짐에 챙겨두고..
소파와 테이블을 볼게요)
▶:벽난로의 열기가 가까이 닿는 편안한 자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 밤부터는 이곳에서 대신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었죠.
▶:성공. 테이블 아래에서 불에 타다 만
종이조각을 발견합니다.
▶:봄은 죽은 나무도 움 틔우는 생명의 계절 이라는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없어요. 애초에
봄이나 계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체리 애쉬:(......챙길게요!!
침대를 살핍니다.)
▶:하인들의 손길이 닿은 푹신한 침대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하인들이 일찍 자지 않으면 성 바깥에 사는 야만인들이 찾아와 잡아갈 거라며 겁을 주곤 했죠. 그들은 큰 덩치에 거대한 팔을 가지고 안전하지 않은 곳으로 빠져나온 아이들을 해친다고도 했습니다.
어느덧 새벽이 찾아옵니다. 이대로 잠에 든다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겠네요.
체리 애쉬:늦잠 자면 안되니까…. (침상에 기어올라가요.. 잠을 청합니다~!)
▶:똑, 똑. 이른 아침,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오늘 아침엔 용의 탑에 방문하기로 했었죠. 별궁 앞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용의 탑은 왕성 제일 안 쪽에 있는 외진 곳입니다. 탑은 빽빽한 가시나무로 조성된 숲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으며, 숲 전체는 두껍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숲 길로 들어가는 유일한 열쇠는 왕만이 가지고 있고요.
숲 길 입구에서 사병 몇몇과 함께 체리를 기다리던 왕은, 체리에게 찻잔과 티포트 및 간단한 먹을거리와 생필품을 들려주며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왕:용의 몸이 좋지 않으니 오후 쯤에는 돌아와 쉬게 해 주어라. 그리고 용이 너를 현혹하려들 수 있으니, 절대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체리 애쉬:네, 그럴게요. (입꼬리 올려 미소지었다.) 용께선 저희를 수호해주시는 분이 아니던가요?
전부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니….
왕: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지. 언제나 의심의 끈을 놓지 말도록 하라.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체리 혼자 뿐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나요?
체리 애쉬: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문 너머로 들어섭니다.)
▶:체리가 문 너머로 들어서면, 왕은 문을 잠그며 경비병 한 명을 문 앞에 세웁니다. 탑에서 나올 적에는 경비를 통해 자신을 부르라는 말도 함께 전하면서요.
체리는 숲 길로 들어섭니다.
좁고 험하고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가시나무 오솔길을 걷다 보면, 거의 하늘에 닿을 듯한 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창은 탑의 맨 꼭대기에 있어 마치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체리 애쉬:(가시 나무를 조심해서..
탑 으로 향할게요)
▶:마른 가시나무 덩굴 사이에 탑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탑 안을 살펴보면 나선 계단이 끝없이 위로 이어진 것을 볼 수 있으며, 문틀 위에는 풍파에 닳아 희미해진
문장이 음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선 계단을 올라갈까요?
▶:계단을 올라가면, 꼭대기에는 작은 나무 문이 있습니다. 문은 가끔 덜컹, 덜컹 작게 흔들리고 있네요.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앗… 창문이 열려있어서 얼어붙은 걸지도. (들어갈 수 있..나?)
체리 애쉬:(네!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가 살펴요) 실례합니다~ 궁에서 왔는데요~
원형의 방 구석에는 큰 벽난로와 침대가 놓여 있고, 중심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잡다한 물건이 가득합니다. 닫혀 있는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지만,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책이 사람 키만한 높이로 쌓여 있어 방 안은 마치 미로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책 무더기 사이에 걸터 앉아있는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칩니다.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와, 안녕하세요! (천연덕스레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용을 찾아 뵈러 왔는데, 함께 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여기엔 책이 정말 많네요, 저희 도서관처럼요! 이 곳에 대하여 잘 아시나요? 저는 난생처음 와봐요.
라 콕스:(어정쩡한 낯빛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본다. 멋쩍은 양 늘어진 책을 정돈하는 시늉을 하더니, 이어 미지근한 웃음을 걸친다.) 나보다 더 이곳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없을 거야. 기다리고 있었어, 체리. (넌지시 맞은편 책 무더기를 가리키며 자리에 앉길 권했다.)
체리 애쉬:어? 저를 아세요? (슬금슬금 들어와 앉아요)
물론, 너는 날 처음 보는 게 맞아.
다시 소개할까. 탑 꼭대기에서 세상을 읽는 게 용의 직책이라지만, 나는 라야. 체리, 겨울에 대해 물으러 왔지?
체리 애쉬:(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기울였다가 천천히 위 아래로 끄덕인다.) 맞아요, 다들 힘들다며 겨울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고 있거든요. … …아!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용이신거죠?
라 콕스:(답하지 않고 입을 다문다. 다른 것을 바라는 것처럼 당신을 보았다. 무던한 눈이다.)
체리 애쉬:음~ 아닌가요? (시선을 물끄러미 마주하였다가 제 볼을 가볍게 긁었다.) 큰일났다… 사실 이런 건 재능이 없거든요. 워낙에 눈치가 없다는 말도 듣고 사는지라, 용께서 보시면 분명 화가 나시겠죠? …미안해요, 섣불리 이야기 한 건 비밀로 해주세요.
라 콕스:(짧게 웃었다.) 체리, 나는
라야. 용은 단순히 직책일 뿐이니까….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 없어. (왕에게 다른 말을 할 생각도 없고. 덧붙이며 옷깃을 여몄다.)
듣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도 좋아. 겨울에 관한 것은 답해줄 수 없겠지만. 그것만큼은 나로서는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체리 애쉬:응, 그럼요. 우리도 모든 이야기를 말로 하지는 않는걸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아, 그러고보니 문이 덜컹이던 걸 봤는데. 창문이 열려있진 않던가요? 추울 것 같아서 닫아주러 들어온건데.
라 콕스:글쎄, 한번 살펴보는 건 어때. (순순히 길을 터 준다.)
▶:창문 너머로 별궁과, 광장에 있는 커다란 두 동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왕궁의 전경 너머에 있는 금지된 숲도 흐릿하게 보이네요.
분명히 문이 전부 닫혀있는데도 방 안은 어디선가 겨울이 직격으로 부딪히는 듯한 냉기가 느껴집니다.
체리 애쉬:이 곳은 다른 곳 보다 유독 춥네요, 창문도 모두 닫혀있는데…. (
벽난로를 살펴요) 라는 이 곳에 혼자 사나요?
▶:벽난로 위엔 검고 흰 재로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체리 애쉬:그럼… (조심조심 책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비켜 돌아갔다.)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요?
라 콕스:언제나 하고 있지.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체리 애쉬:왜요? (네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저는 라와 친구가 되고 싶어요.
라 콕스:왜? (되묻는다.) 너는 나를 처음 봤을 텐데. (다만 어투는 무척이나 다감했다.)
왕이 무어라 언질을 주진 않았고? 이를테면 나를 계속 의심하라든지…. 그런 것들.
체리 애쉬:처음 보았다고 해서 친해지지 못 할 이유는 없죠! 아, 이런… 폐하 얘기를 하니까 양심이 조금 아픈데…. 그래도 난 라가 마음에 들어요, 라는 어떤가요?
라 콕스: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노크 없이 문을 연 순간 너를 쫓아냈을 거야. (농...)
…저 괜찮죠…?
그러엄, 내가 우리가 친해질 수 있게 노력할게요. 아침이 끝나기 전에, 서로가 좋아하는 걸 이야기 하는 건 어때요?
라 콕스:좋아하는 것? (문득 말을 멈춘다. 짤막한 정적.) ……
바깥에 나가고 싶어.
체리 애쉬:음~ 바깥을 좋아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지금은 겨울인걸요. 이 곳보다 훨씬 추워요.
라 콕스:그래도…. 이곳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어. 네가 날 내보내 주면 좋겠는데.
체리 애쉬:(끄덕임!) 노력할게요. 그래도 그 차림으로 내보낼 순 없어요. 한동안 벽난로도 쓰지 않았던 것 같고… 조금 더 후에요. (네 손등을 손끝으로 건드렸다가,)
바깥에 나가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난 너무 추워서, 이젠 탑을 나가 왕궁으로 돌아가기가 겁이 나는데.
라 콕스:(온기가 닿은 곳을 물끄러미 본다.) 왕국을 돌아보고 싶어. 내가 지켜 온 곳이잖아.
…지난밤에, 금속 공예품을 발견했지? 그건 네 개의 조각을 다 모아야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야. 그중 한 조각이 내게 있지. 네가 내 부탁을 들어 준다면, 답례로 그걸 줄게.
체리 애쉬:여태 보지 못했군요. (슬 미소지었다.) 하긴, 나도 왕궁에만 갇혀 공부만 하게 되는 건 싫어하거든요. 이부분은 닮았네요, 우리. 사실 공예품도, 조각도… 잘 모르겠지만. 라와 친해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요. (그리곤 금새 눈썹을 양 옆으로 늘어뜨리곤 바로 선다.) 당장 내보내주지 못하는 걸 용서해요, 이 곳으로 오는 열쇠가 폐하께 있거든요….
라 콕스:(가닿은 온기가 멀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허공을 움켜쥐려다가, 거둔다.) 넌……. 참 정이 많아. (웅크려 앉은 채 두 손을 모았다. 시일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럼, 내일은 어때. 오는 길에 열쇠를 받아오면 될 거야.
체리 애쉬:나 정도면 평범하죠~ 폐하께서도 라가 얼른 낫기를 바라고 있어요. 음, 그런데… 그것 말고도 필요한 건 없어요? 맛있는 게 먹고 싶다던가, 귀여운 인형이 가지고 싶다던가… …없다면 내 마음대로 가져오지 않을까 싶지만.
라 콕스:(…인형?)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걸. …굳이 골라보자면, 추위를 덜 수 있을 만한 걸 부탁하고 싶네.
체리 애쉬:음, 음… (벽난로를 힐끔였다가..) 나만 믿어요! 장작을 안 판다면 직접 패서라도 가져올테니까~! 그럼, 내일 볼까요? (슬그머니 올라가는 손!)
라 콕스:(물끄러미….) 그래, 내일. 무리하지는 말고. (들어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 나가면 돼. 덧붙이며 문을 가리킨다.)
체리 애쉬:걱정해주는 거예요? 이래봬도 왕자인걸요. 많이 힘들진 않을 거예요, 아마도! (가리켜진 문으로 나서기 전 들었던 손을 흔들었던가,) 그리고, 아직 아침이지만 미리 인사할게요. 잘 자요~
▶:닫힌 문 사이로 대답이 들려왔던가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습니다. 탑을 나가, 들어왔던 길을 따라 나오면,
열쇠를 든 신하와 마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엇, 그거. (후다닥 따라 내려와 열쇠 든 신하에게 관심을 보였다.) 여기 열쇠 맞죠?
신하: 네, 폐하께서 맡기신 물건입니다. (그리고는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왕자님을 모신 뒤에는 폐하를 알현해 열쇠를 돌려드려야 하겠지만요.
체리 애쉬:그럼 제가 돌아가는 길에 전해드릴게요, 마침 폐하와 상의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손 삐죽 내밈!) 열쇠 건은 내가 잘 말해둘테니까 너무 걱정은 말구요. 네?
(아차~~~)
(쉽지않네..)
신하: (난처한 듯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왕자님. 이 일은 제 소관이 아니군요. 오늘
밤이나, 내일 탑으로 출발하기 전 폐하를 알현하시게 된다면 직접 말씀드려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체리 애쉬:음. 어쩔 수 없죠, 내가 곤란하게 했네요.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오늘 밤에나 말씀드려봐야겠어요. (훌쩍 마차에 올라타 손짓했다.) 가요!
마부: 왕자님, 대신들을 뵈려면 저녁까지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마을을 둘러보시고 입궁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광장,
상점가,
주택가,
호숫가 중 한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체리 애쉬:(고개를 끄덕인다.) 응, 마침 사갈 것도 있구요.
상점가에서 오일라이터랑, 장작도 팔겠죠? 마차에 다 실을 수 있을까?
▶:귀족들이 후원하는 여러 길드들의 본거지로 이루어진 거리입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이곳에서 구매하는 것도 괜찮겠죠.
상점가 안쪽에는 공방들이 있고, 바깥쪽에는 상점들이 즐비합니다. 상점가의 중앙에는 길드의 대표들끼리 회의를 하는 회의실도 마련되어 있어요.
▶:각종 세공품이나 철물, 가죽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상하네요. 어떤 가게든 전부 무기나 갑옷 같은
군납품을 만들고 있으며,
장인들이 당신을 경계하는 게 보여요.
체리 애쉬:(
장인들 과 시선이 마주치고, 옆의 신하에게 소곤..) 왜 나를… 저렇게 볼까?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시선을 피해버립니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걸까요?
신하: …외람되지만, 요즘 민가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있긴 합니다. 그 때문에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신하: 요 근래에 바깥으로 나간 시민이나 군인들이 숨지는 일이 많고, 신전에도 부상자가 가득한 데다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더니)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어림없는 소리니 염려는 마십시오.
체리 애쉬:음, 그래도 사람이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니까요. (차창에 기대어 턱을 괴곤,
군납품을 살펴요) 다음에 한 번 신전에 들러봐야겠네. 같이 가 줄거죠?
(침침..)
나 안경도 맞출까봐요.
▶:군납품을 살피면, 왕가의 문양이 아닌
귀족들의 개인 문양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이상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체리 애쉬:(내가 알고있는
귀족집안의 문양인가..?)
▶:거리가 먼 탓인지 정확한 문양을 식별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체리 애쉬:여기선 장작을 구할 수 없을 것 같네. 우리,
바깥쪽으로 가봐요.
상점가의 바깥에는 베이커리나, 양장점 같이 호객 행위가 중요한 가게들이 모여 있습니다. 안쪽과는 달리 경직된 분위기가 덜하네요. 잡담소리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체리 애쉬:여기서 장작이랑 라이터를 구하고 들어가요. (
잡담소리를 들어요)
???: 점점 농산물이 귀해져서 큰일이야. 매년 소출 양이 주는데 대부분 군대로 가버리니, 우리가 먹을 건 어디있담?
다행히 공작님께서 남는 생산품을 우리 길드 쪽으로 돌려주셨기에 망정이지.
??: 요즘 같은 시대에 굶지 않으려면 군인이 되어야 해.
???: 하지만, 군인이 되면 밤마다 들리는 괴성에 시달린다잖아. 우리 아랫집에도 배를 곯다 군대로 들어간 청년이 있는데, 밤마다 경비를 서면서 이상한 소리를 듣다 미쳐버렸대.
밥 주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여러 탄식이 겹치더니, 이윽고 말소리가 멎어듭니다.
체리 애쉬:공작님? 누굴 말하는 거야? (자연스럽게 또 옆의 신하를 쳐다바요)
신하: 공작님이라면, 폐하의 친척 되시는 분입니다. 나라의 상업을 좌지우지하는 분이시기도 하죠. 최근에
살롱을 여셨다는 소문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체리 애쉬:그렇구나, 내가 뵌 적이 있을까? …있겠죠? 친척 중에 이렇게 멋진 분이 계신 줄은 몰랐는데, 감사한 일이네요. (여전히 창 밖을 힐끔이다,) 구할 건 전부 구한 것 같으니, 이제 갈까요. 중간에
회의실에 들릴 수 있던가?
상점가의 회의실은 총 2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층에서는 술이나 음료, 따뜻한 음식을 팔고 있고 2층은 개인적인 용도로 모임을 가질 수 있게끔 방을 대여해주는 듯하네요.
종업원이 자리에서 일행을 맞이합니다.
종업원: 어서오세요, 손님. 지금
2층은 대실된 상태로, 예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금일 예약하신 분들의 일행이신가요?
체리 애쉬:아뇨~ 그냥 좀 둘러보려고요.
2층에선 다들 뭘 하고 있죠?
종업원: 아마
회의나
토론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런 용도로 방을 빌리시거든요.
체리 애쉬:어떤 사람들이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겠죠? (구경하고 싶어짐.. 하지만 꾹 참아요) 아, 그리고 우유 세 잔만… 따뜻하게 데워서요.
종업원: 죄송합니다, 손님들의 신변은 밝힐 수 없어서요. 주문하신 우유는 곧 내어드리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신하와 마부에게 한 잔씩 전해주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참관이라도 하고싶어요.
신하: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니 참관은 어렵겠지요. 다만, 대부분의 회의는
길드의 주최로 이루어지니 길드의 일원인 척 대화에 끼어들 수는 있겠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몰래 엿듣는 것밖에는 수가 없겠군요.
체리 애쉬:거짓말 하는 건 싫은데~… 미안해요, 기껏 물어봐놓고. (쓰게 웃었다.) 오늘 이렇게 나와보니 일국의 왕자가 아는 게 별로 없다 싶어서. 회의가 끝나면 내려올 때 까지 기다려보고, 대표를 찾아 물어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신하: 물론, 대화로 해결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저녁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기다려보도록 할까요?
2층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립니다. 여러 명의 인원이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게 보이네요.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가장 마지막에 내려오는 사람을 노릴?게요)
▶:일행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을 노립?니다. 말을 거나요?
체리 애쉬:(말을 겁니다!) 실례합니다, 왕궁에서 왔습니다. 이번 회의의 주최를 맡으셨을까요?
???: (
왕궁이라는 말에 경계어린 표정이 됩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체리 애쉬:음, (난생 처음 받아보는 눈빛에 눈을 크게 떴다가,) 큰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작은 목소리로,) 왕궁에서 왔다는 건 명분이고… 사람대 사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해서. 그러니 시간을 조금 빌려주시겠습니까?
???: 사람 대 사람이라니…. (못마땅한 투이나 당신을 향해 몸을 돌렸다. 대화를 끊어내진 않을 모양새.) 이후에 일정이 있어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겠습니다. 용무를 말씀해 주십시오.
체리 애쉬:(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로,) 제가 바쁘신 분을 붙잡았네요. 이번 회의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일부 듣고싶습니다. 절대 비밀로 붙일테니 안심하세요.
???: 큰일 날 소리를! 왕궁에서 나오셨다 말씀하셨잖습니까? 만약 우리가 왕궁을 탓하기라도 했다면 어쩌시려고 이러십니까.
체리 애쉬:뭘요? 그럼 고쳐야죠!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곤 주위를 살핀다.) 나라를 탓하게 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요. 그리고 제가 국정에 무지한 점도 그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겠죠, 그러니 도와달라는 거예요.
???: (떨떠름한 표정.) ……약속하신 겁니다. (슬쩍 목소리를 낮춘다.)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 길드는 세력가들의 후원을 받아 여러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생존이 어려워지는데도 불구하고 왕가는 용을 감싸고 들 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이래서는 국가가 민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뜻밖에 더 되겠습니까. 우리도 살아야지요. 이 겨울을 막아야 합니다. 어쩌면 용을 죽여서라도 이 겨울을 막아 줄 사람을 찾아야 하겠죠. …치기어린 반발심이 아닙니다. 절박한 상황이니 극단적인 방법 밖엔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고요.
체리 애쉬:(죽인다는 말에 한층 어두운 낯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해요, 아니… 정확히 이해했다는 말은 기만이 되겠죠. 하지만 용을 죽여서도 이 추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방도를 잃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길드에선 나라를 향해 더욱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단합하여 서로를 도와주세요. 그리하면 왕궁에선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오겠습니다. (응어리가 풀린 듯 한 표정, 고개를 끄덕이며 작고도 강단있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내가 약속할게요. 이야기 고마워요.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신하가 다가와 귀띔합니다.
체리 애쉬:좋아, 돌아가요. (
회의실을 떠납니다!)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지면, 일행은 다시금 마차에 오릅니다.
마부: 왕자님, 저녁에는 대신들께서 지내시는 처소의 문이 열립니다. 그쪽도 한번 방문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궁,
살롱,
신전,
도서관중 한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체리 애쉬:그렇게 할까요, 우선
신전으로 가요.
▶:주택가 중심에 위치한 고상한 옛 건물입니다. 육중한 대리석 기둥들이 여러 개 서 있고,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양의 징표가 여기저기에도 보입니다.
신전에 가득한 환자들을 지나야 소박한 신관의 방이 나옵니다. 신관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나와 일행을 맞이합니다.
신하: 왕자님, 여기서부터는 혼자 이동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신관의 방에는 두루마리로 된 오래된 필사본으로 가득한 격자 모양의
선반과, 종교적 상징을 나타내는
조형물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작은
제단 옆에는 화로와 단촐한 나무의자들이 놓여 있네요.
신관:왕자님, 보잘것 없는 방이나 편히 둘러보고 계십시오. 저는 잠시 환자들을 살피고 돌아오겠습니다.
체리 애쉬:(고개를 저었다.) 신경쓰지 마세요, 위급한 건 내가 아니잖아요. 나는 혼자서도 괜찮으니 볼 일을 보세요, 다른 신관분들께도 전해주시고요.
▶:신관은 고개를 조아리고는 자리를 비웁니다.
▶:몇백 년은 되었을 법한 두루마기들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천과 매듭으로 조심스럽게 싸여 있네요.
▶:칸칸이 쌓인 두루마기 중에서
라그나로크라는 제목이 달린 경전을 발견합니다.
▶:이외에 특별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신전 여기저기에 장식된 조각이나 그림들이 신관의 방에도 놓여 있습니다. 자신의 꼬리를 물어 원을 그린 용의 모양을 본떠 만든 조형물입니다.
낯익습니다. 용의 탑에서 보았던 그림과 같은 모양이네요.
체리 애쉬:(요즘 유행인가... 멀뚱히 바라보다
제단을 확인해요)
▶:제단 위에는 작은 향로가 놓여있고, 무릎을 꿇는 곳에는 무릎을 받치는 작은 나무 판자가 있을 뿐입니다.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판자는 사람이 무릎을 꿇은 모양으로 닳아 있습니다.
방을 둘러보고 있으면, 노크 소리와 함께 신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신관:(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온다. 제단 근처에 서 있는 모습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제단을 보고 계셨군요. 환자분들께서도
기도를 놓지 못하고 계십니다. 기도를 드리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뒤로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를 떠올려 보면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네요.
체리 애쉬:…
기로를 한 뒤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기도..!!)
신관:신전에는 환자분들이 많이 모이십니다. 몸을 다쳐 불구가 된 분들은 차라리 덜한 편이지만, 마음이 다쳐 미쳐버린 분들은 바깥에 있다는 신을 굉장히 두려워하시죠. 그 신을 믿는 야만인들이 안으로 들어올 것을 우려하시기도 하고요. 그럴 일은 없다며 말씀을 드려도 불안해하시니, 저희로서는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문득 선반으로 시선을 돌린다.) 왕자님께서는 라그나로크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체리 애쉬:마음도 외상처럼 치료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예요. (힘든시기로구나, 마음에 와닿아 일순 슬픈 기색이 스친다.) 라그나로크라, 종말같은 걸 뜻하는 말이죠?
신관:네, 선대의 신관들의 입에서 구전되는 세계의 종말을 뜻하기도 하고요.
저는… 그 종말의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지요. 죽음 또한 저희가 받아들여야 할 순리니까요.
이런 순환을 이해하려면 신을 믿는 수밖에요.
체리 애쉬: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언젠가 종말도 찾아오는 것이겠지만… 아직 아쉬운 걸 보면 저는 아직 수양이 부족한가봐요. 그러니 앞으로 조금만 더 봐달라고 기도할래요, 적어도 겨울이 물러나는 걸 보는 날까지만요.
신이라는 건 우리들이 모시는 분을 말하는 거죠? 좀 더 이야기 해주시겠어요?
신관: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조형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건 우리가 믿는 신의 힘을 나타내는 조형이기도 합니다.
용에게 끝과 시작은 구별할 수 없는 것이며, 그에게 시간적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저희는 용의 원 안에서 시간적 순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으므로, 신관들 사이에서는 신이 자신의 꼬리를 놓으면 우리의 세계는 멸망한다는 해석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체리 애쉬:(유행이 아니었구나! 머슥..해졌다) 그런 의미가 있는 그림인 줄은 몰랐어요 (마냥 귀엽다고만..) 하지만 용은 신이 아닐텐데, 어떻게 그런 해석을 할 수 있는지는 조금 신기하네요. 나라의 처음과 끝을 그와 함께하였기 때문일까요?
신관:(고개를 끄덕였다.) 건국 무렵부터 나라의 대소사를 용과 함께 해 왔으니, 그 끝도 분명 그와 관련이 있겠다는 추측일 뿐입니다. 다만, 실제로
용의 심장이 얼어붙은 뒤부터 왕성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으므로 그리 허무맹랑한 짐작은 아닐 것입니다.
체리 애쉬:응, 하나의 존재가 크고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일 것 같아요. … …어, 반역처럼 들리려나?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사람에게도 쉴 날이 필요하듯이 용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해서요. 역사에 따르면 용은 수어 년 동안 쉬지 않고 나라를 위해 힘을 써 왔다는 거 잖아요? 그러니까, 겨울이 끝나갈 때 까지만이라도… 함께해주고 싶다고 할까. (정돈되지 않은 말들이 뒤죽박죽 섞여 튀어나온다. 난감한 손이 제 옆머리를 꼬아댔고,) …아무튼요! 용에겐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신관:왕자님께서 용의 친우가 되어 그에게 믿음을 깨우쳐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성과가 되겠지요. 그리하여, 부디 이 겨울을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는 기도하듯 짧게 묵례했다.)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체리 애쉬:아, 갈게요. (가볍게 목례하곤 쪼르르 따라가요)
▶:밤이 찾아옵니다. 마차는 그대로 왕성으로 향합니다. 체리는 긴 하루를 끝내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옵니다.
시종: 왕자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분께 연락을 드릴까요?
▶:왕,
공작,
신관,
학자중 한 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체리 애쉬:폐하께요, 제가 금밤 찾아 뵙겠다고 전해주세요.
시종: 네, 채비를 마치시는 대로 알현실로 모시겠습니다.
체리 애쉬:고마워요~ (후다닥.. 정돈해요) 오늘도 분명 바쁘시겠죠?
시종: 폐하께서는 늘 다망하시지요. (공손히 문을 열고, 길을 안내했다.)
▶:알현실 안으로 들어서면, 초췌한 모습의 왕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길을 안내한 시종이 테이블 위에 오래 된 듯한
자료를 내려놓고 자리를 뜹니다. 왕은 엿듣는 이는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말문을 여네요.
왕:그래, 아침부터 바빴겠지. 무엇이 궁금한가?
체리 애쉬:아바마마 만큼은 아니죠. …음, 다름이 아니라. 용과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고 싶어서요. 공식적이지 않아도 돼요.
왕:용과 함께? 그를 탑 밖으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 최근 용을 향한 원성이 드높아졌단 걸 너 또한 알고 있지 않느냐. 괜히 위험을 늘릴 필요는 없지.
체리 애쉬:몰래도 안 될까요? 용에겐 휴식이 필요해요, 당장에 용의 탑도 그와 오랜 시간 함께 한 탓인지 한기가 서려 바깥보다도 춥고요.
그를 계속 탑에만 가두어두면 꽁꽁 얼어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용이… 자신의 평생을 거쳐 지켜온 나라를 보고싶다고 했는 걸요.
왕:……흠. (이어지는 정적.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말을 잇는다.) 용의 얼굴을 아는 이는 몇 되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 들켜서는 안 될 것이다. 두꺼운 로브를 준비하라. 너와 용의 외출이 어디에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그를 탑으로 데리고 오거라.
체리 애쉬:(그제서야 활짝 미소짓는다.) 꼭 그렇게 할게요! 그도 기뻐할 거예요. 아차, 그리고 그
자료는…. (힐끔였다)
왕:아무것도 아닌 자의 선택은 천 년간 왕가를 위하지 않은 적도, 틀린 적도 없었다. 그는 왕국의 문제를 곧바로 해결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왕국을 위한 일을 해 왔지. 그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을 위해 널 선택한 것이 아니겠느냐.
체리 애쉬:(끄덕인다.) 사실, 이런 일은 형님께서 더 잘 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시다시피, 저야 사람과 잘 어울릴 뿐이지 머리가 비상한 건 아니잖아요. (작게 웃는 소리.)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자가 콕 집어 저를 불렀다는 건, 분명 제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최선을 다할게요.
제가 폐하의 바쁜 시간을 빼앗았네요,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돌아가볼게요. 평안한 밤 되세요. 아침이 다시 봬어요.
▶:어느덧 아침이 찾아옵니다. 거처 앞에는 마차가 당도해있네요. 용의 탑으로 가는 길은, 어쩐지 어제보다는 날씨가 조금 더 부드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용의 심장이 얼어붙은 이후로 이 겨울이 찾아왔다고 했었죠. 오늘은 용이 기운이 나기라도 한 걸까요?
숲길의 입구에 도달하면, 왕이 경비와 함께 체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
열쇠를 건네주며 말한다.) 너를 믿고 내어주는 것이다. 지난밤에도 말했듯,
저녁이 되기 전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체리 애쉬:물론이죠! 앗… …내일도 용과 함께 나가고 싶다고 하면 혼내실 건가요…?(귀에 소근소근..)
체리 애쉬:…. (헤헤, 하는 웃음 소리) 다녀오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열쇠를 들고 탑으로 향하면, 나선계단을 채 오르기도 전에 용이 문을 열고 내다봅니다.
라 콕스:(슬쩍…. 기대 어린 눈으로 체리를 봐요)
…장작이랑 라이터를 사와서, 탑에, 같이 가져다 두려고. 했는데. (뻣뻣한 바디랭귀지..)
오늘은 안 아파요?
라 콕스:다행히도 오늘은 컨디션이 좋네. (뻣뻣한 바디랭귀지를 끝까지 구경하더니…) …열쇠는?
체리 애쉬:쨘, (열쇠를 짤랑이며 네 앞에 보여주었다.) 받아왔죠. 다행이다! 그럼 같이 나갈 수 있겠네요~ 응, 저녁까지라고 했지만!
라 콕스:그 정도면 충분해. (미미한 미소를 띤다.) 네게 마을을 안내받고 싶은데…. 괜찮을까?
▶:광장,
상점가,
주택가,
호숫가중 한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체리 애쉬:물론이죠! 자, 추우니까 이것 잘 두르고요. (네게 두꺼운 겨울용 로브를 꽁꽁 둘러주곤 후드도 단단히 씌웠다.)
주택가는 어때요? 사람들이 살기도 하고, 지금은 다들 상점가나 광장에 나갔을테니까… 만에 하나 들킬 일도 적을 것 같은데.
라 콕스:(순순히 후드를 눌러 쓴다.) 어디든 괜찮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고.
체리 애쉬:(마가 손을 꼭 잡고
주택가로 갑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입니다. 신전의 주변부터 광장 근처까지 많은 가구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신전 앞에 있는 공터가 주된 모임의 장소입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한켠에는 설치된
천막으로 향하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골목골목을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라 콕스:(맞잡은 손에 시선을 둔다. 차가울 텐데. 괜한 염려를 하면서도 놓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저 붙잡고 있었다.)
체리 애쉬:아침부터 다들 바쁘네요~ 겨울이 와도 아이들은 기운이 넘치구요! (네 안색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라는 바깥에 대하여 이야기 들은 게 있어요? 로망 같은 거라던가… 기대하고 있었던 건 없구요?
막상 나와보니 생각보다 별로네… 싶은 건 아니죠?!
라 콕스:(창백하다. 다만 그 표정 위로 일말의 온정을 드리운 덕에 그리 티가 나지는 않았다.) 한 때는 탑 바깥에서 생활했었어. 덕분에 배우게 된
관행도 여럿 있고. 그게 건재하는지, 그 무렵 마주쳤던 국민의 후손은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지. (주욱 주변을 훑는다.) 겨울이 이들을 괴롭게 했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조금은 힘드네.
체리 애쉬:(슬프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어색하게 올라 온 손 끝이 네 머리를 향했다. 저 자신이 받고 살아왔던 것 처럼 천천히 쓰담는다.) 뭘요! 라는 아프잖아요,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괜찮을 거예요, 천천히 나아질테니까. 그렇다면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네요, 다들 겨울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그 때 라가 들은
관행이 날씨가 바뀌고도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어떤 것들이요?
라 콕스:(멋쩍은 양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도 손길을 내치지 않는 걸 보면,) 예를 들면….
광장은 늘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했어. 낯익은 이와 낯선 이가 뒤섞여서…. (오롯한 호의가 당신을 향하고 있음을. 괜스레 맞잡은 손을 고쳐 쥔다.) 손을 잡고 원을 그리는 걸 구경했던 기억이 나. (과거를 더듬듯 시선을 허공으로 띄워 낸다.) 춤을 춘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면 소지품을 건네는 게 관행이었지. 그게 곧 인연으로 이어지던걸.
체리 애쉬:그런 재미있는 문화도 있었던가요?! (몰랐다는 듯 화들짝!) 지금은 추우니까, 광장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없다면… 우리끼리라도 해 봐요. 사람 없는 광장에서 춤을 추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걸요~
라 콕스:우리끼리? (살짝 고민함….) …내가 네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체리 애쉬:어어? 당연하죠!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친구하자고 안 해요~ …음, 라는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라 콕스:(옅게 웃는다.) 괜찮겠어? 마음에 든 상대에게는
선물을 줘야 해. 그것도 네가 지닌 소지품을 말이야. 난…, 네게 줄 만한 게 있긴 한데. 너는?
체리 애쉬:소지품이라, (왕궁의 물건이라고 둘둘 싸매여져 온 것 중에 자신의 것이라고 칭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느슨히 묶인 네 머리칼을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있어요. 딱~ 하나? 아주 소중한 건 아니지만, 애정은 듬뿍 담긴 물건으로.
라 콕스:애정을…. 그렇게, 막…. 아무에게나 줘도 되는 건가? (보수적인 발언 해버리며….)
체리 애쉬:에이, 라가 왜 아무나예요? 애초에 그런 물건이 아니면 소지품을 주는 의미가 없죠~ (어깨동무~) 춥진 않아요? 난 조금 추운데, 저기
천막도 궁금하구요. 사람들이 마구 줄을 서 있잖아요.
라 콕스:(고개를 살살 저었다….) 한번 가 볼까.
▶:줄이 길게 늘어선 천막은 급식소인 듯합니다. 날이 추워지고 나서부터 거리의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전에서 이런 급식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듯하네요.
줄의 끝에는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는 사제들과 신관이 있습니다.
▶:낯설지는 않습니다. 오며가며 마주친 적이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흠, 백성들의 먹거리를 왕가가 빼앗아 먹을 수는 없죠. (근처에 앉거나 쉴 자리는 없을까?)
▶:천막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벤치가 놓여있습니다. 이 부근에서라면 천막에서부터 들려오는
말소리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체리 애쉬:(마가 자리를 톡톡 털어주곤 앉혀주어요
말소리도 들어볼게요!)
???: 요즘, 추위가 심해진 것 같지 않아요?
??: 아무래도 착각이 아닌 것 같아요. 왜, 호숫가 근처에서 농사를 짓던 이웃들이 전부 울상을 하더라고요.
???: 저런…. 남 일이 아니군요. 성도 바깥으로 나가 먹을 것을 구해올 수는 없을까요. 뇌물을 준비하면 경비병이 문을 열어준다는 소문이 있던걸요.
??: 큰일 날 소리를!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성도 바깥에서 다쳐 돌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셨잖아요? 그마저도 돌아오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실종된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분명 야만인들에게 잡혀간 거겠죠. 무서운 세상이에요, 정말.
체리 애쉬:그래도 오늘은 좀 따뜻한데. (쭝얼.)
체리 애쉬:응? (따라서 고개 기울였다가 또 슬쩍 손 가져가요) 라는 손이 잘 안 녹네요, 근처에 난로 같은 걸 피울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라 콕스:난로를 피워도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순순히 내어준다.) 시리진 않고? 괜히 네 온기를 뺏는 것 같아서 미안한걸.
체리 애쉬:어? 정말요? 왜요~? (손 만질만질.. 호오) 뭘요. 겨울이 오기 전엔 말예요, 내가 달라붙으면 덥다고 다들 피해 다니기 바빴던 거 알아요? 형도 평소엔 날 무척 아끼는데, 너무 오래 붙어있으면 덥다고 책을 읽으며 놀라고 떼어 놨어요.
라 콕스:(답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물음을 건넸다.) 그래서…. 책을 읽긴 했고?
체리 애쉬:헤헤, 다른 얘기 할까요? (슬며시..
아이들을 구경했다)
▶:삼삼오오 모여 어떤 놀이를 하는 듯합니다. 술래잡기와 비슷한 놀이지만, 반대로 아이들 모두가 술래를 쫓아다니며 잡으려 들고 있네요.
술래를 잡은 뒤에는 금을 그은 곳에 가두어,
이단을 벌하라!
라고 외친 뒤 다른 아이들 중에서 다시 이단을 정해 잡기를 반복합니다.
체리 애쉬:(이단? 또 갸웃.. 했다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도 훔쳐바요)
▶:손에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원형의 상징물을 들고 있는 인물입니다. 곁에 있는 신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네요.
???: 그거 들으셨어요? 경비병과 청탁한 뒤 성 밖으로 나가 크게 다쳐 돌아온 남자가 있다고 하던데요.
??: 물론 들었죠. 아무래도 도서관에 있는 학생들이 연구를 위한답시고 사람들을 매수하고 있나 봐요.
샘플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연구의 성과도 불분명하다면서요? 그런 연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하나요? 하물며 괴물의 공격이 더 심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에요.
??: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어쩌면 추위가 찾아오는 게 그 연구 때문일지도 모르죠. 역시 믿을 곳은 신밖에 없어요. 우리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말고 두터운 신앙을 유지해보자고요.
체리 애쉬:(모르는 얘기들... 버릇처럼 다시 마가 손에 입김을 불었다가,) 다음은
광장으로 갈까요? 그
관례가 아직 남아있을지도 궁금하잖아요. 사실~ 내가요. 그새 사라졌다면 우리가 다시 찾아봐요! 둘이서!
▶:왕궁 앞, 두개의
조각상이 있는 넓은 광장입니다. 작은
연극 같은 것을 공연하는 예술가들 덕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적이고 있습니다. 광장 여기저기에는 작은 난로 같은 것이 있고, 그 주변에 경비병이나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네요.
라 콕스:(주변을 둘러보더니, 익숙한 길을 걷는 것마냥 걸음을 옮긴다. 광장 북쪽에 있는 용의 형상을 띤 동상을 보다 고개를 돌리고, 남쪽에 있는
후드를 쓴 동상앞에 선다.)
체리 애쉬:(쪼르르 따라가요) 아는
동상이에요?
라 콕스:아무것도 아닌 자를 본떠 만든 동상이야. 이건 변하지 않았구나.
체리 애쉬:(고개를 끄덕인다.) 그림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아무것도 아닌 자와 알고 지내요?
체리 애쉬:음~ (제 턱을 손 끝으로 두드렸다가,) 친하지 않을까? 둘 다 신비주의고!
라 콕스:신비주의? (그랬던가?) 아무것도 아닌 자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야. 우리와는 달리 시간을 넘나들 수 있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언제나 쪽지나 목소리, 선물로 뜻을 전달하곤 해.
체리 애쉬: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봐요. 늘 우리 왕국을 위해 힘써주는 비밀스러운 자라고만. 그래서 둘은 닮았다고도 생각했거든요~ 응, 신비주의. 라도 비밀이 많죠?
라 콕스:말할 수 있는 것들을 숨기려 들진 않는걸. (적어도 네게는. 말을 맺으면,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광경이 보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슬그머니 손을 내민다.) 아무래도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야. 그렇지?
체리 애쉬:어? 그래요? 우리가 친구라서? (샐쭉 웃었다. 이윽고
음악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내민 손을 잡는다.) 다행이다, 즐거운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 편이 좋죠. 라는 가장 처음에 누구와 춤을 췄어요?
라 콕스:그래, 친구라서. (맞잡은 손을 부드러이 이끈다. 금세 사람들 틈으로 섞여 든다.) 먼 옛날에…. 너와 함께 췄지. 물론, 믿는 건 네 자유지만.
체리 애쉬:…어! 정말요! 믿어요! 신기하긴 하지만! (이끌리는대로 따르다가도 무언가를 고민하는 양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옛날의 내가… …뭘 선물로 줬는지도 기억해요?
라 콕스:…대답, 안 해도 돼? (같은 선물이라도 다시 한번 받고 싶었다. 혹여나 당신이 건네주길 저어할까 봐 고집스레 입을 다문다.)
체리 애쉬:(삐죽..) 그치만, 똑같은 걸 또 받으면 싫지 않아요?
라 콕스:같기에 좋은 건데. (삐죽이는 걸 보며 숨죽여 웃는다.) 뭘 준비했길래 그래?
체리 애쉬:으으음, 안돼요! 혹시 모르니까 말 안 할래. 대신, 안 뺏을테니까 선물을 받으면 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이야기 해줘요, 응?
라 콕스:음…. (얼버무렸다. 부러 맞잡은 손을 세지 않게 잡아당긴다. 사람들의 틈에서, 음악에 맞추어 몸을 돌리는 행동이 퍽 자연스럽다. 걸음을 내디딜 적마다 짙푸른 로브 자락이 둥글게 퍼졌다.) 내 선물은 뭐일 것 같니. 한번 짐작해 봐.
체리 애쉬:책이려나, 아니면 펜던트? (고개를 기울여가며 살피는 것은 네 표정이었다. 크지 않는 신장차에도 부러 행동하는 이유는 네 즐거움을 이끌어내기 위한 그의 버릇들이었다. 의도야 나쁘지 않으니 좋은 버릇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춤을 추는 중에도 그만두지 않으니 장난으로도 보일 수 있었으리라.) 안경은 라의 눈이니까, 빼앗고 싶지 않은걸요.
라 콕스:네가 원한다면 얼마든 내어줄 수 있어. 대신 네가 내 눈이 되어줘야겠지만. (……시력은 불변했다. 당장 안경을 벗는다면 눈앞의 얼굴마저 분간해낼 수 없을 게 뻔하지만, 손을 붙잡고 있으니 당신을 놓칠 리는 없겠다 싶다.) 따로 받고 싶은 게 있다면 그걸 줄 수도 있고.
체리 애쉬:어렵지는 않지만~ 같은 걸 쓰고 싶은 거라서요. 요즘은 그런 게 유행이거든요! 좋아하는 사람과 똑같은 장신구를 맞추는 거. (목소리를 길게 늘여 부정했다.) 라가 생각한게 좋아요. 무엇보다, 뭘 받아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아요?
라 콕스:(가느스름한 눈으로 당신을 본다. 미묘한 어투가 흘러나온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답하는 거야?
체리 애쉬:(웃는 낯...) 무슨 의미인데요?
라 콕스:그래, 잘 생각해 봐. (그저 웃어넘겼다. 음악이 마무리될 무렵, 손을 놓칠 듯 말 듯 한 거리에 서서 눈인사를 건넨다. 아쉬운 양 뭉그적대는 손을 겨우 떼어내고, 품에서 장식 하나를 꺼내 든다.) 자, 이건 내가 주는 선물. (
태양 모양의 금속조각을 내민다.)
체리 애쉬:(받아든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와, 하는 감탄사는 잊지 않고.) 예쁘다. 뭐예요?
라 콕스:여름의 조각. (문득 말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고, 소맷자락을 끌어 올려 입을 막는다. 잔기침이 튀어나온다.) …계절의, 시계에.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는,) …끼워 넣으면 돼. 그 세공품은 네 개의 조각을 모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거든. (주변을 훑는다. 앉을 만한 곳을 찾은 뒤 이야기를 잇는다.) 난…. 잠시 쉬어야겠어. 둘러볼 곳이 있다면 보고 와도 돼.
체리 애쉬:여름? (기침하는 네 낯에 놀란 그는 너를 급히 부축하려 들었다. 흐트러진 로브를 재차 반듯하게 씌워준다.) 괜찮아요? 많이 추워서 그런가봐요. 내가 춤을 추자고 해서 무리한 건 아니구요? (네 등을 천천히 쓰담었다가
마차에 담요가 있었는지, 몸을 데울 물건이 있는지 떠올린다. 이어 머리의 검은 리본을 풀어내어 네 손에 쥐여주었다.) 이건 내 선물. 금방 돌아올게요, 라 없이 무슨 구경을 하겠어요?
체리 애쉬:(마가 담요 둘둘 둘러줘요 따뜻한 차도 구해다 줘요 마지막으로 꼬옥 안아줄게요~ 그리고 두개의
조각상을 살핍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오래 된 동상입니다. 광장
북쪽에 있는 것은 다리가 없는 거대한 용처럼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습니다. 광장
남쪽에 있는 것은 후드를 쓰고 있는 사람의 동상입니다. 특이하게도 남쪽에 있는 조각상의 얼굴은 비어있네요.
체리 애쉬:(
북쪽에 있는 것을 자세히 살필 수 있을까요?)
▶:동상의 시선이 가닿는 곳에는 책 조각이 있습니다.
신들조차 삶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파괴로 향하고 있으나, 파괴는 끝이 아닌 하나의 재생일 것이라는 제목이 새겨져 있네요.
체리 애쉬:(내친 김에
남쪽에 있는 조각상도 자세히 볼게요!)
▶:후드를 쓴 사람의 동상에는
흐름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문장이 새겨져있고, 발치에는 부서진 조각품이 있습니다. 시계의 잔해를 표현한 것 같네요.
체리 애쉬:(조각품 만지작 만지작..)(
마을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나 옆에 슬쩍 끼어서 들으러 갈게요~!)
▶:시민들과 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치적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 최근에 귀족들이
살롱으로 모이고 있다면서요?
??: 아, 맞아요. 들어본 적 있네요. 하나같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을 불리느라 여념이 없다면서요?
???: 폐하와 왕성의 군대가
금지된 숲에서
야만인을 막느라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탄 거겠죠. 이건 배반이 아닌가요? 폐하께선 공작의 목을 쳐서 반역의 불씨를 없애야 해요.
??: 쉿, 너무 과격한 발언 아닌가요? 목소리를 낮추는 게 좋겠어요.
▶:옆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 바깥에 있는 야만인들 때문에 살기가 힘듭니다. 갈수록 공격이 점점 심해져서 군대를 늘리고 있다지만, 그마저도 역부족인 것 같더군요.
??: 바깥으로 나갔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배에 무언가 들이받은 것처럼 구멍이 뚫려서 돌아왔다지 않습니까?
야만인은 크기가 매우 크고 손속이 잔인한 게 틀림 없습니다.
???: 정말 큰일이네요. 그런 적에게서 우리를 지키려니 왕궁도 걱정이 많겠습니다. 그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진작 침략당했겠죠….
체리 애쉬:(마가 데리러 갈게요~! 기다리는 동안의 마가는.. 지금 멀하고 잇을까요)
▶:따뜻한 차가 담긴 잔을 손난로 삼아 추위를 달래고 있네요. 용에게 돌아가나요?
체리 애쉬:(후다다 돌아갑니다~) 라,
연극엔 관심 없어요?
라 콕스:연극? (문득 인파가 몰린 곳에 시선을 둔다.) 네가 간다면 따라갈 수 있어.
체리 애쉬:같이 보고싶어서요~ 나도 바깥에서 하는 연극은 처음이거든요! (담요도 로브도 다시 꽁꽁 싸매주며..) 힘들면 그냥 돌아가도 좋고, 어때요?
라 콕스:(꽁꽁 싸매짐….) 거절할 것 같아?
체리 애쉬:(빙긋 웃었다) 그럼… 무리하지 않기예요?
▶:작은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입니다. 지금은
신들의 운명과 황혼이라는 극이 상영되고 있네요. 관람하나요?
체리 애쉬:(마가 손 꼭 잡고 관람하러가요~)
체리 애쉬:처음 보는 내용이네… 라는 이 극, 본 적 있어요?
라 콕스:먼 옛날에. 그때와 별로 달라진 건 없구나. 일어선 배우가 비유하는 건 아주 거대한 무언가야. 시간도 공간도 꿈처럼 여기는 존재지. 이건
위험을 암시하는 극이기도 해. 사람들이 거대한 것에 호기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그것이 이질적인 존재라는 걸 알게끔.
체리 애쉬:심오하네요, 잘 모르겠어요. 다시 말해서,
겨울과 비슷한 거겠죠? 옛날부터 이런 상황을 암시하고 있었던 걸까…. (옆머리를 만질거린다.) 음, 그야 나는 사람이 아닌 존재라곤 동물들과 라 뿐이 모르니까.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재밌었어요, 그렇죠?
라 콕스:즐거웠어. 네 덕분이지.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걸 보더니,) ……새로 묶어줄까? 이대로 헤어지기 전에, 애정의 표시로.
체리 애쉬:…~내일도 이렇게 놀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때까지 기침은 나아오기로 하구요! 응? 나야 좋지만 다시 만났을 때까지 풀기 싫어질지도… …농담! 묶어줘요.
라 콕스:노력은 해볼게. 돌아서 볼래? (그리 말하며 제 머리를 풀었다. 장식 없는 기다란 끈이었으나 리본을 받은 값은 되겠다 싶어서.)
체리 애쉬:(네게 등을 보이고 선다.) 라가 얼른 나았으면 좋겠어요. 원래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게 내 일이라곤 하지만… 꼭 그런 의미만 있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가 아픈 건 싫거든요. 몸도 마음도요. 아, 그럼 라는… 몸이 아픈걸까요 마음이 아픈걸까요? (이윽고 말이 없어진 것을 보아 생각하는 양 싶었다.)
라 콕스:(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처럼 입을 다문다. 붉은 머리를 손으로 빗어 내리더니, 느슨하게 내려 묶는다. 자신이 늘 고수하던 방식이었다.) 결론이 어떻게 났을지 궁금해지는걸. 네 생각은 어떤데?
체리 애쉬:둘 다…?! 어떡하지, 그러면 안되는데! 그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그리고 너무 너무 너무… …너무해요! 정답이 뭐예요? 내가 생각한 건 아니죠?
라 콕스:(반복되는 말을 가만 듣더니 웃어버린다.) 너무해? 어째서? 난 괜찮은걸. (썩 익숙한 손놀림으로 리본까지 묶어 낸다. 다 되었다는 듯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답은…… 비밀이야.
체리 애쉬:…그래서 나도 지금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농담조로 이야기하던 그는 돌아서서 제 머리를 확인했다. 이어 작게 묶인 리본을 바라보곤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리본이네! 신경 써준 거예요?
라 콕스:특별히 신경을 좀 써 봤지. 그러니까, 볼 때마다 나를 떠올려 줘. (덩달아 농을 던진다.) 이제, 돌아갈까?
체리 애쉬:그렇게 말하다니… 내일 다시 탑에 도착할 때까지 못 풀겠는데요. (응, 소릴 내며 당차게 대답하곤 뻔뻔하게 손을 내민다.) 돌아가요! 겨울엔 하늘이 금방 어두워지는 것 같아요. 하루가 짧아진 느낌.
라 콕스:다시 묶어줄게. 언제든. (내민 손을 붙잡는 데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남은 일정도 몸 조심히 마무리하고.
아, 참…. 내일 밤, 커튼 뒤를 조심해.
체리 애쉬:라도요, 내일은 좀 더 건강한 몸으로 만나요! …~커튼 뒤? (고개를 기울이다가도 끄덕이며 순응했다. 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로 향합니다!)
▶:두 인물은 함께 마차에 올라탑니다. 용이 탑으로 돌아가고, 숲길의 문을 잠글 무렵이면, 노을이 지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집니다.
▶:왕궁,
살롱,
신전,
도서관중 한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체리 애쉬:아,
살롱에 들러볼까 하고요! 요즘 인기도 많은 것 같고. 괜찮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몰라요~
공작님이 누군지도 궁금하지 않아요?
신하: 이 시각이라면 공작님을 만나 뵐 수도 있겠네요. 곧장 방향을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살롱은 부유한 세력가들의 저택 중 가장 큰 건물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작이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유명인사들이 모이는 바람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네요. 공작의
개인실은 살롱의 2층에 있습니다.
체리 애쉬:생각보다… 엄청 크네요?? (조금 삑사리가 났다. 신하 돌아봄..) 보통 이 정도가 당연한가요?
신하: 드문 편이기는 합니다. 세력이 집중된 곳이니 더욱 겉보기를 신경 쓴 걸 테지요.
체리 애쉬:그렇죠? 음… 일부러 수수하게 입고 왔는데,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공작의
개인실로 슬며시 올라가봐요..)
▶:살롱의 규모와는 반대되게도
개인실의 입구는 차분하고 검소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실례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요!)
방은 어디에 앉던 간에 촛불이 교묘히 얼굴만을 비추도록 배치되어있습니다. 안에는 커다란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수많은 선물이 쌓인 침대가 있습니다. 침대 옆에는 작은 협탁이 있네요.
공작:어머, 왕자님이셨군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찾아뵈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가 벗이 되길 바라고 있었답니다. 편하게 둘러보시고,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체리 애쉬:(개인실에 들어서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가, 저를 알아보는 목소리에 놀란 얼굴을 했다.) 저를 본 적 있으세요?
공작:얼굴을 마주 뵙는 건 처음이랍니다. 하지만 대신 된 도리로서 왕가의 일원은 잊지 않게끔 노력해왔지요.
체리 애쉬:그렇구나… …아! 실례했어요. 제2 왕자, 체리 애쉬예요. 반가워요. 이미 알고 계시 다곤 해도, 인사 정돈해야 할 것 같아서…. 요즘 시민들 사이에서 공작님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야말로 꼭 뵙고 싶었어요! 벗이 되고 싶으셨다는 말은 조금 부끄럽네요, 저를 기다리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공작:그럼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진 몰라도, 저는 왕자님께 많은 기대를 걸고 있으니까요. 이곳에 모여드는 이들 중 왕자님을 지지하는 것으로는 저를 따라올 자들이 없을 거예요.
체리 애쉬:아직 지지를 받을 정도로 해낸 것도 없는걸요. (그리 말하는 얼굴은 '기쁘다'는 감정을 영락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생산품을 돌려 서민을 돕고 계시다고요, 크게 감사하고 있어요. 그런 건 나라에서도 섣불리 하지 못하거든요…. 왕궁엔 들러주시지 않나요?
공작:아무것도 아닌 자의 부름을 받으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아주 큰 일을 해내신 거예요. (입을 가리고 웃는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저라고 다를까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랍니다. 공사다망한 탓에 왕성보다는 이곳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 폐하의 명이 있을 때는 종종 입궁하고 있지요. 아쉽게도 왕자님과는 시간이 엇갈린 모양이에요.
체리 애쉬:그런가요? 사실 저는 아는 게 많이 없어요. 아무것도 아닌 자에 대해서라거나, 겨울이나 여름도요… 야만인에 대한 것도, 문제도. 최근까지 모르고 있었죠. 하지만 공작님께서는 나라를 위해 힘써 주시며, 또 그들의 지지를 받고 계신 분이시잖아요. 그러니 그 지혜를 빌려,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는 법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요. 그가 제게 부탁한 것은 무엇일까요?
공작:얼어붙은 심장을 녹이는 법에 대한 추측은 분분하죠. 대신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고요. 저는 용에게 더 많은
재물을 바쳐 그의
환심을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왕자님, 용을 직접 만나보셨죠? 그가 재물을 원하는 것 같던가요?
체리 애쉬:(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책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던걸요. 그렇다고 무척 갈구하는 듯이 보이지도 않았고.
필요한 것을 물었을 땐 몸을 데울 물건을 이야기 했으니까요. 딱히 바라는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공작:정확히 보셨어요. 바라는 것이 없어 보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방향의 추측을 해 보기로 했답니다. 며칠 전, 그와 관련된
보고를 받았고요.
침대 위에 그 밀서를 올려두었지요.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공작:지금의 용은 능력을 다 한 것이겠죠. 그 말은 즉 용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단 소리일 테고, 그가 바라는 것 하나 없이 구는 점을 보아서는…. 본인의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게 아니겠어요?
체리 애쉬:그럴까요… (밀서를 만지작거리다가도 고이 정돈해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이 말을 모두 믿기엔
아무것도 아닌 자가 한 말이 걸려요. 늘 나라를 위해 바른 길만을 제안해주었던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의 심장을 녹여달라는 말을 할까요?
불확실한 것을 확신하여 이야기 할 자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이미 그들의 실적으로 증명해냈잖아요. 물론 용은 전지전능하다던가, 신과 같은 존재는 아닐 지 모른다지만 굳이 바라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해서 죽음을 체념하고있다 할 수 있을지는….
(어색한 낯. 제 옆머리를 검지에 꼬아 맨다.) ~…죄송해요. 듣기에, 조금 슬퍼서.
공작:어째서 사과하시나요? (입가를 가리고 웃는다.) 단순히 견해의 차이인 것을요.
저나, 살롱의 귀족들은 용에게는 죽음 밖에 길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다른 분들께서는 또 다른 해석을 가지고 계시겠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추측이 전부니까요. 왕자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듣고, 직접 판단하시면 되는 거예요.
체리 애쉬:어~…. 그게, 누군가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거든요. 왕궁에서는 가장 막둥이다 보니 다들 좋은 이야기만 해주셨고, 무언가를 부정할 새 없이 좋게 좋게만 자라서… 아! 혹시 저, 재수 없었나요? (그리곤 금세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 낯은 가면을 갈아 끼우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듯이 짧은 시간 내 무수히도 변해서, 보라. 지금은 능청스레 화색 한 얼굴이다.)
하지만 공작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의 편이 아니신가요?
공작:그의 말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하나, 온전히 그의 편을 들기에는 저 또한 짊어진 것이 많군요. 요즈음 민심이 흉흉하다는 건 왕자님께서도 알고 계시지요? 그들이 용의 죽음을 바란다면, 어떤 선택을 내리실 건가요?
체리 애쉬:그건 지금의 제게 아주 질문이 될 것 같아요… 나는 그다지 똑똑하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거든요. 감정에 휘둘려서 무엇이라도 하나 구할 수 있을 때 고민하다가 두 개 모두 잃어버리곤 하죠. 만약 그것이 너무 큰 것이라,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온다 해도… 또 같은 고민을 해요. 책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을 보통 미련하다고 표현했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 힘을 써 온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을 거예요.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요! 그러니 나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예요, 넘어져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이전에 잃은 것들의 의미는 모조리 지워지고 말 테니까.
공작:미련하지 않아요. 왕자님의 고뇌는 곧 하나의 길이 될 테죠. 그렇기에
아무것도 아닌 자가 왕자님을 선택한 것 아니겠어요? 부디 많은 것을 보시고, 후회 없는 결정을 하시기를.
저는 이만 아래로 내려가 다른 분들을 맞이해야겠어요. 선약이 있거든요. 배웅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이네요. 이곳에서 살필 것이 남았다면 편히 둘러보셔도 상관없답니다. 왕자님의 방이라 생각하시고 부담 없이 머물다 가셔요.
체리 애쉬:(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지 마세요. 바쁘신 와중에 연락 하나 없이 찾아왔는 걸요! 조금 머물다 돌아갈게요.
▶:공작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를 떠납니다.
▶:테이블에는 여러가지 편지들이 가득합니다. 굳이 내용을 열어보지 않아도 은밀한 청탁, 남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소문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일부러 앞 면을 펼친 채 티 접시 위에 놓아둔
편지도 보이네요.
체리 애쉬:(헉... ....읽으라고 주신 걸지도.)(슬쩍 바요)
▶:권력을 얻는 것은 쉽습니다. 하나 유지하는 것은 힘과 인망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왕은 균형에 실패했습니다. 그 아래에 다른 필체로 메모가 적혀 있습니다.
왕자님을 믿어보죠. 그마저 실패한다면, 그저 왕국이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보아요.
체리 애쉬:(머슥...............열심히 해야지! 따위의 생각을 한다.)(다른 것은 없을까요?)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협탁 위에는 조그만
액자가 뒤집어진 채 놓여 있습니다.
▶:당신의 초상화입니다. 초상화의 가장자리에는,
추위가 찾아온 것도 용이 아프기 시작한 것도 왕자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어쩌면 왕자님께서는 겨우내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씨앗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메모가 휘갈겨져 있습니다.
체리 애쉬:(머슥... 부끄... 이제 정돈해두고 돌아가기로 해요)
▶:어느새 사위가 어둑해집니다. 처소로 돌아갈까요?
시종: 왕자님, 오늘은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시겠습니까?
▶:왕,
공작,
신관,
학자 중 한 명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체리 애쉬:신관님이 좋겠어요! 시간이 나실까요?
시종: 물론이지요. 말씀을 전해드리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조금 뒤, 신관이 방 안으로 들어와 가볍게 고개를 숙입니다. 신관의 손에는
양피지 뭉치가 들려 있네요.
신관:방문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어려운 점이 있으신지요.
체리 애쉬:음… 이번 일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요! 말고도 신관님께선 딸기맛 사탕이랑, 사과맛 사탕 중 하나의 사탕만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건지도요~?
신관: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답해드리지요.
(이어지는 질문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저라면 사과 맛 사탕을 구할 것 같군요. 두 번째에 있는 것은 언제나 순환의 토대가 되는 법이니까요.
체리 애쉬:앗… …이렇게 심오한 답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심각하게 고민하는 얼굴… 겸사겸사 주머니에 사탕은 없는가 은근슬쩍 뒤적인다) 순환의 토대라, 예를 들어서요?
신관:(가지고 온
양피지를 내민다.) 이것은 신관들에게 구전으로 내려오는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윤회에 대해 다루고 있지요. 한번 읽어보시겠습니까?
체리 애쉬:(
양피지를 받아들곤 주머니 속 사탕을 넘겨주어요~! 읽어볼게요)
체리 애쉬:순환…? (작게 읊조리는 소리였다.) 저희는 용의 비호를 받고 있잖아요, 두명의 인간은 누구인가요?
신관:용과
아무것도 아닌 자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라…. 확실치는 않습니다.
체리 애쉬:(또 심각한 얼굴로 끄덕임...) 앗, 이건 이상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용과
아무것도 아닌 자는 친할까요?
신관:아무것도 아닌 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분의 얼굴을 뵌 적이 없고,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지요. 그가 용에게도 존재를 숨기는지에 관해서는 추측만 해볼 수 있겠습니다만…. 용께서는 별말씀이 없으셨나요?
체리 애쉬:해주었지만… 분명해주었지만… (끙) 그게 답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에서 비롯된 건 아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물 흐르듯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되어서요. 일면식은 있어 보이는 것 같긴 한데. … 역시 안 친하려나…?
신관:다시 한번 여쭈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자께서 왕자님을 지목했으니, 분명 그 이유가 있겠지요. 어쩌면 용께서도 다른 이들보다는 왕자님께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실지도요.
체리 애쉬:응, 그랬으면 좋겠어요. (남은 사탕을 찾는 손... 또 뒤적인다...) 그럼 마지막 질문! 사탕을 구하던 사람이, 하나만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과맛 사탕만 구하고 간다면… 그… …딸기맛 사탕은 많이 슬프겠죠?
신관:딸기 맛 사탕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왕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사탕이 슬퍼할 것 같습니까?
체리 애쉬:으음~~…. 모르겠어요. 만약 안다고 해도 대답하게 되면, 신관님을 다그치는 모습이 될지도 몰라요. 그건 싫은걸요. 그래서요? 신관님이 상상하시기에 어떤데요?
신관:흠……. 순응하지 않겠습니까? 그 사탕도 순환의 일부니까요.
체리 애쉬:흠……… (느릿하게 늘어난 입꼬리가 부드러이 호선을 그린다.) …감사해요! 우선은, 좀 더 많은 의견을 듣고싶어요.
신관:물론이지요. 모쪼록 많은 것을 보고 들으시길 바랍니다. (문득 소지품을 뒤적이더니,
부채꼴 모양의 조각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려둔다.) 아무것도 아닌 자께서 제 방에 두고 가신 물건입니다. 믿을 만한 이에게 이 조각을 전하라는 쪽지를 받았지요. 요즈음
신전을 자주 찾아주셨더군요. 신뢰의 표시로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곧 왕성이 닫힐 시간이니,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왕자님의 앞길에 평안이 가득하기를.
체리 애쉬:(조각을 받아들곤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온전히 기쁜 낯. 강하게 답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다음에도 갈게요! 잊지 않아요. 부디 조심히 돌아가세요.
▶:머지 않아 신관이 자리를 뜹니다. 창을 두드리는 바람이 점점 매서워지네요.
하루를 마무리할까요?
▶:똑, 똑. 문을 두드리는 것과 흡사한 소리에 눈을 뜹니다. 소리는 문이 아니라
창문에서 들려오고 있네요.
▶:창 밖에는 먹구름이 펼쳐져 있습니다. 하늘은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어둡고, 하늘에서는 하얗고 반짝이는 결정이 떨어집니다. 얼음결정은 창 틀에 닿는 순간 급속히 녹아 물이 됩니다. 한 눈에 봐도 추워진 날씨는 실내인데도 몸이 떨려올 정도입니다.
창 너머로는 용의 탑 또한 보입니다. 탑의 근처에는 군인들이 몰려있고,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보이네요.
머지 않아 시종이 도착합니다.
시종: 왕자님!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용께서 크게 아파 오늘은 방문을 거절한다 전하라 하셨습니다. 대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때문에 백성이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
오전과
오후에 마을을 둘러보라 명하셨습니다.
체리 애쉬:네? 마, 많이 아프대요? 혹시 어제 무리를 해서… …병문안도 거절하던가요?
시종: 송구하지만,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소인은 그저 폐하의 명을 전달해 드린 것뿐이라서요.
체리 애쉬:그럼 제가 직접 여쭤볼게요! (결의라도 다진 듯 고개를 끄덕인 그는 급히 옷을 껴입곤 제 방에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감사해요, 같은 이야기를 했던가.)
체리 애쉬:(폐하가.. 어디에계시지?? 머리를 굴려바요)
▶:집무실에 도착하면, 왕은 책상에 앉은 채 체리를 바라봅니다.
왕:음? 시종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지 못한 게냐?
체리 애쉬:(흐트러진 숨을 고르던 그는 고개를 조아리며 예의를 표했다.) …2왕자, 체리 애쉬.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왕자가 아침만이라도 탑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세요!
왕:(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방문을 불허한 것은 용이니라. 내가 이 자리에서 허가를 내어준다 한들 그가 너를 반길지는 모르겠구나.
체리 애쉬:하지만… 폐하께선 이야기 정돈 전해주실 수 있으시지요? 탑 앞에 군인들이 무수히 몰려있던걸요! 제가 탑으로 들여보내 달라 청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저를 돌려보낼 거예요. 폐하의 말씀이 절실해요. 저희는… 친구인걸요. 아픈 손을 한 번이라도 쥐어주지 못하는 건 너무 가혹해요.
제가 지금 무얼 해야 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제가 열병에 걸려 앓아누웠던 날 폐하께서, 그리고 형님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함께해주셨죠. 아픈 날, 그것이 제 힘이었어요…. 애정의 온기요.
왕:만류할 수도 없게끔 말하는구나. (한숨을 내쉰다. 그 뒤로는 미미한 웃음이 감춰져 있다.) 군인들에게는 말을 전해 두마. 하나, 출입을 허락하는 건 용에게 달려 있으니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 혹여나 그의 허락을 받게 되더라도,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는 탑을 나와
마을을 둘러보도록 하라.
체리 애쉬:(여유가 부족한 얼굴에 밝은 기색이 퍼진다. 그는 웃는 얼굴을 채 다 보이기 무섭게 다시금 고개를 조아리며 예의를 차렸다. 안도어린 목소리가 이어진다.) 꼭 그리하겠습니다! 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인사를 마친 그는 몇 걸음 물러나더니
밖으로 나섰다. 닫힌 문 새로는 빠르게 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탑을 지키고 선 군인들은 체리와 마주할 때마다 경례를 하며 길을 비켜섭니다. 가시나무로 조성된 숲길을 지나, 탑 안의 나선계단을 오르면,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라! 들려요? 들어가도 돼요?! (쩌렁쩌렁~!!!)
라 콕스:……체리? (놀란 기색이다. 주저하기라도 하는지 잠시간 침묵이 흐른다.) …미안해. 오늘은 그냥 돌아가 줘. (이어지는 기침 소리.)
체리 애쉬:들리는구나, 다행이다. (무심코 쥐었던 문고리에 힘을 풀었다.) 왜요? 많이 아파서요?
라 콕스:아냐, 그런 거. (성급히 부정한다.)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지….
(화제를 돌린다.) 그런데, 웬일이야? 마을로 나가보지 않고.
체리 애쉬:웬일이긴, 아프다는 말에 놀라서 뛰어왔죠. 라는 처음 만났을 때도 아프기야 했다지만… 그것 때문에 탑에 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잖아요. (손이 심심한 듯 만질 거리다,) 걱정했어요. 만나줄 때보다도 더.
라 콕스:……그럼, 들어올래? 잠시 쉬었다 가. (이러면 네 걱정이 조금은 덜어질까. 느지막이 허락을 뱉는다.)
체리 애쉬:응, 지금 갈게요! (네 허락이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당겨 탑 안으로 들어섰다. …어찌나 급한지,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뛰어 올라갔으나, 마침 매서웠던 바람에 떠밀려 쿵, 소릴 내며 닫힌다.) …왜 이렇게 오랜만인 것 같죠?
▶:원형의 방구석에는 큰 벽난로와 침대가 놓여 있고, 중심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습니다. 벽난로는 장작으로 가득 들어차 불길을 피워내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방 안에는 온기가 돌지 않습니다. 용은
침대 위에 기대듯 앉아 당신을 바라보고 있네요.
라 콕스:어제도 만나지 않았던가? 내가 네 머리도 묶어 줬었잖아. 잊은 건 아니지? (장난스러운 어조. 멀쩡한 척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으나, 병색만큼은 완연하다. 담요를 끌어와 여미면서도 수차례 기침한다. 천천히 숨을 고른 뒤에야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벽난로 근처에서 쉬다 가. 거긴 그나마 따뜻할 테니까.
체리 애쉬:어떻게 잊어요! 아마, 내가 라를 엄청 보고 싶어 해서 그런가 봐요. 탑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길던지~ 오늘 도착할 수는 있을까 걱정이었거든. 이거 봐요, 오늘은 라와 똑같이 묶고 왔어요. 어때요? 나한테도 어울려요? (능청 떨다가도 침상 옆으로 다가가 네 손을 잡아 온다.) 난로가 도움이 안 됐나 봐, 손이 차요.
라 콕스:(내쳐야 해. 그리 생각하면서도 뿌리치지 못한 연유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래. (전부 애정 탓이다. 소중한 것을 쥐듯이 손을 맞잡았다가, 금세 힘을 뺀다. 당신의 머리를 정리해주는 체하며 손을 거둔다.) 이왕이면 내가 묶어주고 싶었는데. 네 손재주가 좋다는 게 조금은 아쉬워, 이러면 리본이 흐트러졌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잖아.
체리 애쉬:(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네 손에 입김을 불어가며 애쓰다가도, 고개를 기웃거리다 머리를 풀어 네 손 위에 올려두었다.) 지금은요?
라 콕스:(나직이 웃는다.) 네가 사랑받으며 자란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럼…, 잠시만. (애써 추위로 굳어버린 손을 움직인다. 이전처럼 머리를 빗고, 한데 모아 리본을 묶는다. 다만, 리본은 흐트러져 있다.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이었다.) 잘 안 되네…. 손이 굳어서 그런가 봐. (괜한 핑계를 대며 매듭을 풀어낸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함께 있고 싶었다.)
체리 애쉬:응? 그럼 라도 날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장난스레) 낮이 되기 전까지는 쭉~ 같이 있을테니까,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힘들면 그만둬도 좋구요. 오늘은 추우니까. 라도 손이 다 안 녹았죠?
라 콕스:난 늘 너를 사랑했어. (진위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음성이었다. 다시 엮어낸 매듭은 비뚠 곳 하나 없이 완벽했고.) 그렇긴 한데…, 그 정도로 오래 머물 생각이었어? (조금은 당혹스러운 듯, 서둘러 주변을 둘러본다. 내어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두르고 있던 담요를 거두고, 접어 내민다.) 계속 곁에 있을 생각이라면, 이거라도 덮고 있어.
체리 애쉬:정말요? 나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발음이 뭉그러진다. 입꼬리가 머무적거렸다.) …어, 어어! 그러지 마요, 난 괜찮아요! 따뜻하게 입고 왔는걸요. (만류하던 손길은 네게서
담요를 받아들더니 그를 어깨에 둘러주었다.) 내가 그렇게 걱정되면, 같이 난로 앞으로 갈래요?
라 콕스:지금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손을 드는 것조차 피로했으니 그저 이곳에 가만히 누워 있다, 죽은 듯이 잠들 셈이었다.) …아냐, 네 말대로 할까. (그러나 몸을 일으킨다. 지난날에 비해 한참 느려진 걸음걸이로 당신을 이끈다.) 오랜만에 네 얘길 듣고 싶어. 크게 아팠던 적은 없는지, 모처럼 행복했던 적은 있는지… 뭐, 그런 것들 말이야.
체리 애쉬:음, 침대를 난로 근처에 두어야겠어요! 멀어서 추운 걸지도 몰라. (네가 일어나고부터 쭉 안절부절못하던 그가 안아올린 것은 당신의 몸이었다.) …그. 역시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답지 않게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곤, 네가 답하기 전에 급히 걸음을 옮겨 난로 앞에 앉혀주었다.) 물론이죠, 전부 이야기해 줄게요.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도! 궁금한 건요~?
라 콕스:(어느새 난로 앞에 옮겨져 버렸으며….)
겨울이 밉지는 않았어? 그리고…. (한참을 머뭇대더니,) 대책을 내놓지 않는
용을 원망한 적은 없었어? (보랏빛 눈이 오롯이 당신을 담아낸다.)
체리 애쉬: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곁에 앉아 손을 꼼질인다.) …물론
겨울은 무섭지만요, 꼭 싫지만은 않아요. 영영 겨울이 오지 않았으면 코끝 이에는 추위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꽃송이도 평생 몰랐겠죠. 가장 아쉬울 뻔 했던 건, 따스한 햇살에 취해 라 같은 좋은 친구도 못 만나고 눈을 감을 수도 있었다는 거.
아마… 그런 식으로 나도 모르는 새에 지나가는 좋은 기회들이 무수히 많았겠죠. 당장 지금도요, 원래라면 마을에 들렸어야 했잖아요? (네 머리를 단정해 주다 팔을 뻗어 슬며시 안아온다. 천천히 팔을 쓰담는 행동은 체온을 나누어 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는 아마 꼭 그뿐이 아니더라도….) 전혀 원망스럽지 않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라 콕스:그거면 됐어. (눈을 접어 웃는다. 여전히 안색은 창백하지만, 한결 편안한 표정을 자아낸다. 시름을 덜어낸 덕이다.) 하지만, 네가 이 시간에 여길 들렀으니…. 그만큼 오후엔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거야. 피곤한 일들이 겹쳐올 테지. 견뎌낼 수 있겠어? 나중에 날 원망하면 안 돼. (달래줄 수 없을 거니까. 덧붙인다.)
체리 애쉬:…! (무언가 깨달은 듯 턱이 벌어진다.) …… …… ……밤을 새서라도!
라 콕스:(당신의 이마에 제 이마를 콩, 부딪힌다.) 밤은 새지 말고.
체리 애쉬:(헤헤, 실없는 웃음 소릴 흘리곤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농담이죠! 사실, 나는 밤새워 본 적이 없거든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라 콕스:궁금해하지 마. 잠은 꼬박꼬박 자 두는 게 맞아. (습관처럼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벽난로 속 타오르는 장작더미를 가만 바라보더니,) 곧 해가 높이 뜨겠어. (중얼거린다. 다시금 당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체리, 슬슬 일어나야 해.
체리 애쉬:(잔소리에 아랫입이 느리게 튀어나온다.) 그래도 궁금한데… 열 한시면 잠이 쏟아지고, 아무리 버텨도 열 두시엔 잠들고 말아요. 나를 담당하는 꿈나라 요정은 밤 잠이 많은걸지도~? (그리곤 말 없이 껴안았다가, 한참 뒤에서야 놓아주었다.) 아쉽다. 오늘따라 시간이 너무 빨라요.
라 콕스:(그저 웃으며 당신의 등을 도닥였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진다는 건 좋은 징조야. 체리, 이것 하나만 명심해 둬. 우린 언제가 되든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
체리 애쉬:그런가요? …~하지만 느리다고 나쁜 것도 아니죠? 당연하죠, 나는 라를 또 보고 싶어 할 거예요! 다시 만나러 올 거예요, 늦지 않게. (출구로 향하는 걸음에 장난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러니까, 라야 말로 나를 너무 기다리지는 마요~?
라 콕스:어려운 부탁을 하네…. (스치듯 뱉는다.) 조심해서 가. 오늘, 와 줘서 고마웠어.
체리 애쉬:(즐겁게 웃는 소리,) 뭘요! 이제 정말 가볼게요. (탑을 나서서
마을로 향합니다.)
▶:탑을 나서면, 군인들이 길을 안내합니다. 숲길의 입구에는 마차가 도착해있네요.
광장, 상점가, 주택가, 호숫가중 두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호수 주변, 게이트 근방에 있는 호숫가입니다. 이곳은 대부분이 호숫물을 끌어와 밭이나 낙농을 하는 경작지입니다. 게이트의 앞에는 군인들이 경비를 서는 초소가 있네요.
초소의 앞에는 어째서인지 소란이 일고 있습니다. 호숫가를 건너 도서관으로 가는 다리 쪽에서는 한
학생이 제자리에 멈춰 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네요.
체리 애쉬:(
학생에게 다가갑니다.) 무슨 일 있어요?
학생: 아! 별거 아닙니다. 최신 연구 샘플을 학자님께 전달하려던 중이었거든요. 새삼 감격스러워서 그만…. 이건 분명 위대한 발견이 될 거예요. (그리 말하며 재차 손에 쥔
유리병을 살폈다.)
체리 애쉬:열심히네요!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일에 진척이 있으면 즐겁지 않나요? 학자님이라~? 존경하는 분이에요? 무슨 내용인데요? 나도 듣고싶어요! 그
유리병에 뭔가 들어있는 거예요?
학생: 즐겁다마다요! 이럴 때만큼은 잠도 못 자고 연구에 몰두한 게 참 뿌듯해진다니까요. 한번 보시겠어요? 깨지지 않게만 조심해주세요. (
유리병을 건넨다.)
체리 애쉬:(
유리병이 깨지지 않게 조심해서 받아들어 내용을 확인합니다!)
▶:유리병을 살피면, 새로 싹트는 씨앗과 잎사귀가 있는 지층 아래에 지금처럼 눈이 쌓이고 얼어붙은 지층이 담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 이건 그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에서 얻어낸 귀중한 결과로, 사람들을 바깥으로 보낸 성과이기도 하죠! 이 샘플은 국가가 건국되었을 때쯤의 지층인데, 용은 천 년이나 살았다고 하니 분명 이 일의 진상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왜 입을 다물고 있는 걸까요?
체리 애쉬:대단해요! 신기해요! 하지만… 바깥으로요?!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해서까지 구해 온다는 말인가요? 다친 사람은 없고요? (유리병을 학생에게 돌려준 그는 생각하는 양 긴 비음을 내며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인다. 그리곤 제 턱을 손으로 쓰담아가며 이야기했다.) 글쎄요~ 용은 그냥 용일뿐이니까요. 그래도. 으음, 아마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죠? 이야기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걸지도….
학생: 물론 바깥으로 나가는 건 저희가 아니지만요. (으쓱… 하며 유리병을 받아들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용은 우리의 생각보다는 전지전능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앗차, 벌써 시간이…. 죄송합니다, 갈 길이 바빠서요.
▶:학생은 잰걸음으로 다리를 건너 도서관으로 향하네요.
체리 애쉬:어엇, 잘가요. (뒷머리를 긁다가…
초소의 앞으로 향해 상황을 살핍니다)
▶:바깥에 나갈 작정으로 보이는 농부 여럿이 기절한 사제 한명을 끌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체리 애쉬:(놀란 기색을 가라앉히고 근처의 누군가를 붙잡아 묻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 식량을 찾아 바깥으로 나갈 생각인가 봐요. 어째서 사제님과 동행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체리 애쉬:그런… 아무도 말리지 않나요? 위험할텐데요!
???: 빈번히 일어나는 일인걸요. 저렇게라도 식량을 구해오지 않는다면, 당장 우리가 굶어 죽고 말 텐데요. 보세요, 경비병들도 제 일을 하지 않고 있잖아요? 저 사람들도 우리가 절박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체리 애쉬:(이런 일이 몇 번이고 더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들 지금 저들을 말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당장 자신에게 그들을 위해 마련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이라도 있는가? 쓰러진 사제의 얼굴을 마주 했을 때, 체리는 이미 그들 사이로 뛰쳐들어갔다. 임시방편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사람을 잃는 것은 더 슬픈 일이기 때문에.) 잠시만요, 잠시만! 어디에 가는 거예요?
농부: 예? 갑자기 무슨…. (떨떠름한 낯으로 대꾸한다.) 보면 알잖습니까?
바깥으로 갑니다.
괜한 걱정은 마십쇼. 우리는 여러 차례 바깥으로 나갔고, 번번이 살아 돌아왔으니까.
체리 애쉬:그
우리에 사제님도 있는 것 맞지요? 지금 쓰러져있는걸요! 물론 바깥으로부터 여럿 살아 돌아온 건 무척 대단하고 멋진 일이에요, 하지만 그게 위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위험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걱정하는 게 어떻게 괜한 일이 되나요!
농부: 눈치도 빠르시군. 그
우리에 이 사제님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숲속에 있는 야만인이나 거대한 것을 피하려면 사람을 한 명 두고 나머지 사람들이 도망치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도련님. 이 사제가 그저 피해자로만 보이십니까? 이 사제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선동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을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저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던 것뿐이었는데도요! 우리는 이런 식으로나마 이웃의 복수를 해야만 합니다. 말리지 말아주십쇼. 길을 비켜주세요. 부탁합니다.
체리 애쉬:이해해요, 내 이웃과 가족이 하루아침에 타인의 손에 죽었다면 분명 슬프겠죠. 그러니 타인을 증오하는 마음은 분명 잘못된 일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그 감정이 결국은 누군가를 해치는 길로 이끌게 된다면요? 아무리 잘못이 적은 사람도, 무수한 죄를 저지른 사람도 모두 같은 인간이고. 불길에서 죽어가던 피해자도, 저도, 당신도. 모두 인간이에요. 그리고 이들은 전부
우리의 이웃이자 같은 숨을 나누는 존재죠.
죄에 분노하는 당신이라면 분명 알 거예요, 타인을 해치는 건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걸! 잘못이 있으면 사죄하고 고쳐나가면 되잖아요, 그냥 죽임을 당해서는 속죄할 수 있는 기회도, 죄책감을 가질 시간도 주어지지 못해요. 이래서는 죄 하나를 쌓아 사람 한 명을 또 줄일 뿐인데… 그런 건, (말을 끝마치지 못하곤 앙다문다. 굳은 의지만이 농부를 마주할 뿐이었다.)
농부: ……사죄하지 않는다면? 이 자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는 보장이라도 있습니까? 국가는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놈의 겨울 탓에요! 용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려주지 않으니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정 우리가 그들의 보호를 기대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체리 애쉬:물론이요! 종교인을 자처한다는 건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저는 누군가가 슬프거나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게 우리를 더 좋은 길로 나아가게 한다면 걸어갈 거예요.
…사람에게 죄책감을 심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저기, 얼어버린 호숫가에 작은 송곳을 찔러 넣으면 처음은 아무렇지 않은 듯싶다가도 멀리 균열이 퍼져나가잖아요. 자신의 죄와 멀어지도록 두지만 않으면 되어요. (모은 손을 꼼질였다. 주저하는 듯, 시선은 바닥을 방황했다가.) 참 안타깝죠, 이 때문에 평생 미쳐버리는 사람도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몇 번이고요. 희망을 져버리지 말아요! 반드시 겨울은 지나갈 거예요! 따스한 햇살이 내려오고, 위험에 몸을 던지지 않아도 되었던 그날들을 반드시 돌려드릴게요. 당신이 오늘, 사제님을 져버리지 않는다면요. 비겁한 말이지만, 이렇게라도 약속한다면 어떤가요?
농부: (가만히 당신의 말을 곱씹는다. 몇 번이고 그 약속을 되뇌더니,) …좋습니다. 딱 한 번만 더 믿어보도록 하죠. 이번만입니다. 다음은 없어요. 우리가 굶어 죽기 전에 이 겨울이 끝나야 할 테니까요. (기절한 사제를 부축하여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넘겨 준다.) 사제는 여기에 남겨두고 가겠습니다. 그럼…. (고개를 까닥이고, 허탈한 걸음걸이로 자리를 뜬다.)
체리 애쉬:(이래저래 이야기한 것치곤 썩 시원치 못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다, 결국은 몸을 돌려 사제를 부축하며 도우러 갔다.) 이런 일이 시작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 글쎄요, 자세한 건 알지 못하지만…. 그리 오래 되진 않았을 거예요.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체리 애쉬:(마부에게 사제를 넘기곤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아, 이 분은 제가
신전에 잘 모셔다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저… 그, 겨울도요…? (슬금슬금 마차에 올랐다.)
▶:광장,
상점가,
주택가중 한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갈까?
▶:평범한 사람들이 지내는 주택가입니다. 신전의 주변부터 광장 근처까지 많은 가구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신전 앞의 공터엔 언제나 자선과 참회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만, 지금은
천막이 전부 신전 앞으로 이동해 있고 한쪽에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모닥불을 만들어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이단의 최후이다! 저 자는 일찍 죽은 것뿐이다!
라며 들뜬 채로 떠들고 있네요.
▶:무언가 탄 흔적만이 남아 있습니다. 생명의 징후는 보이지 않습니다.
체리 애쉬:(뭐가 탄거지?!!
천막쪽으로 갈게요!)
▶:천막 아래에 놓인 것은 무수한 시체의 행렬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팔다리를 잃거나, 커다란 손에 짓눌린 듯한 상처가 있거나, 심한 광증을 앓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들을 치료하느라 신전은 포화 상태입니다.
체리 애쉬:(뛰어다니는 사제 한 명을 붙잡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죠?
사제: 바깥에서 다쳐오신 분들입니다. 아무래도 야만인들의 습격을 받은 거겠죠. 하나같이 상처가 심각해요. 이를 대체 어쩌면 좋을지….
체리 애쉬:도대체 바깥에서 뭘 구했길래 이렇게까지…. …의사들은 모두 이곳에 있나요?
사제: 식량을 구하러 나가신 거겠죠. 이렇게 살아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침울한 투.) 많은 분이 이곳에서 도움을 주시고는 계시지만, 역시 버겁네요. 모쪼록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체리 애쉬:(같이 침울해짐..) 네, 그래도 살아계신 게 정말 다행이에요…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사람을 보낼게요! 아, 그리고 혹시… 저쪽에서 모닥불을 피우곤 무언갈 태우고 있던데, 뭔가 아시는 것 있으신가요?
사제: 모닥불이요? 죄송합니다. 손이 바빠 이곳의 상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진 않아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체리 애쉬:음. 사실 잘은 모르겠어요, 그저 여럿이서 모여 커다란 모닥불을 태우고 있다는 것 밖엔… 이단의 최후라는 말을 하던걸요. 신전의 상황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가요?
사제: 글쎄요, 최근
용을 광신하는 무리들이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이 이상은 잘 모르겠네요.
체리 애쉬:(그런 것도 있나요? 라는 눈이지만 굳이 말로 묻지는 않았다.) …그렇구나! 감사해요! 으으음, 우선 돌아가볼게요. 잡아서 죄송했어요, 조금만 더 부탁드려요.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릴 무렵이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얼음 결정이 바닥에 쌓여 하나의 층을 이룹니다.
왕궁, 도서관중 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체리 애쉬:(
도서관 앞 눈을 슥슥 모아서 하트모양으로 만들어놓고.. 안으로 들어가요)
▶:호수 가운데의 작은 섬에 지어진 도서관입니다. 내부에선 늘 학생들이 사다리에 매달려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학자의 방은 도서관의 꼭대기 층에 있습니다.
체리 애쉬:(
학자의 방으로... 올라갈?! 게요)
▶:빙글빙글 이어지는 나선계단을 한참 올라가면, 커다란
다락방이 나옵니다. 노크를 해볼까요?
학자:응?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들어오십시오!
▶:학자의 방 안에 들어서면, 바닥엔 복잡하게 생긴
뼈나 오래된 나뭇등걸 같은 것들이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중앙에 있는
책상에는 계산식이 휘갈겨진 서류들이 어지럽게 쌓여있고,
벽의 한쪽 면 전체에는 무언가를 한참 연구한 흔적이 가득합니다.
학자:마음껏 둘러보시고, 마음껏 물어주십시오.
체리 애쉬:와~ 안녕하세요! (이리저리 돌아댕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낮에 어떤 학생분과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천 년 전에도
겨울이 존재했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학자:아, 유리병에 담긴 샘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확실히 흥미로운 가설이었지요. 하지만, 제대로 된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다면 주장은 전부 가설이 될 뿐입니다. 그 자료를 내세우기 위해서라면 좀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할 테고요. 그때까지는 이렇다 할 답을 들려드리기는 어렵겠군요.
체리 애쉬:어어? 정말요? 엄청 기대했는데. 으으음, 하나의 샘플로 수만가지의 답을 댈 수는 없는 걸까요? (
벽면에 손이 닿는다) 여기엔 뭔가 엄청 많이 적혀있네요! 이건 뭐예요?
▶:벽에 있는 것은 흘려쓴 듯 보이는 글자들입니다. 대부분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이것이 용을 연구한 자료라는 것만큼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학자:그만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단언할 수가 없군요.
(벽을 훑고,) 이건 근 천 년간 얻은 자료로 도출한 용의 가설입니다. 세간에 용을 숭배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죠. 왕자님께서는 용을 어떤 존재로 여기십니까? 왕성의 수호신? 그도 아니라면 왕가의 힘?
체리 애쉬:네? …그. (눈을 번잡하게 굴렸다. 탑에서 보았던 얼굴을 떠올리는 양 싶었다. 미소지으며 인사해오던 얼굴이 무어라 이야기 하던가, 저가 알고 있는 용은 분명…) 그는 그다…라고 생각해요! 아하하! 뭔가 조~금 심오해졌네요! 하지만 별 뜻은 없어요. 용은 사실 그 어떤 위대한 존재를 상징하지도… 벌벌 떨며 경배해야 할 만큼 두려운 존재를 상징하지도 않는다는 걸요~ (뺨을 긁적이다, 거의 들리지 않을 크기의 목소리로 뒷 말을 흐렸다.) …라고, 생각해주길 바라는걸지도 모르겠어요…~? ….
학자:잘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거창하게 용이니, 수호신이니 말을 하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그는 신이라기엔 너무 인간적입니다. (비밀 이야기를 하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춘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에 당도한 인간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만요.
체리 애쉬:헉…(놀란 듯 입을 틀어막곤 함께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럴지도요! 확실히… 수상할 정도로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으니까요…. 이럴 땐, 뭐라더라… …흐음, 흥미로운 가설! 그렇죠?
학자:바로 그겁니다! 증명해야 할 명제가 있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자, 자. 다른 것도 둘러보시고, 왕자님의 견해를 들려주십시오.
체리 애쉬:(라가 좋아하겠다! 정도의 생각을 하곤
책상을 살핀다) 여기도 엄청 많네요! 혹시 제가 한창 바쁠 시기에 들렀나요?
▶:책상 위에는 수많은 자료들이 놓여있습니다.
겨울에 관련된 데이터들을 정리해놓은 자료입니다.
학자:이 정도의 시간은 내어드릴 수 있으니 걱정일랑 마십시오.
체리 애쉬:으으으음… …그러니까 이게… …. 겨울이 아니더라도 다른… …계절들이 있다는 말인거죠?! 우리가 누려왔던 계절은 봄이고요?
학자:(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분명 여러 계절을 누려왔습니다. 계절은 마땅히 순환되어야 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겨울이 모든 것을 뒤덮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용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는 대답을 피하고 있지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이 순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또한 추측에 불과합니다마는.
체리 애쉬: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그전까지는 겨울이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요? 지금의 우리는 딱히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 봄 또는 여름, 가을뿐 겪지 못했고… 하물며 저도 세상이 이렇게나 추운 날들로만 이루어질 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걸요.
학자:그런 갈래의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겠군요! 제가 말씀드린 것이나, 왕자님께서 말씀해주신 것 모두 진위를 파헤칠 수 없는 가설이라는 점이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건국 이전의 사료는 남아있는 것이 없거든요.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역시 용의 증언뿐이겠지요. 하나 제게는 답을 들려주지 않더군요. 왕자님께서는 무언가 들은 것이 있으십니까?
체리 애쉬:아~…! 그거요…! (줄창 놀기만 하던 날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놀고 놀고 또 놀고… …하물며 오늘까지두 놀고만 왔다…) 그러게요?! 용은 워낙 비밀이 많아서요~?!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학자:그렇긴 하죠! (빠른 납득!) 모쪼록 잘 달래서…. 뭐라도 뜯어내 주십시오. 그리고 새로이 알아낸 것이 있다면 제게도 부디 꼭! 말씀해주시고요.
체리 애쉬:아하하~!! 물론이죠!!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필사적으루 웃으면서
뼈와 오래된 나뭇등걸을 가리킨다!!) 와! 이건 뭔가요~?!!
▶:바닥에 있는 뼈는 인간의 팔과 비슷해보이지만, 사람보다는 훨씬 큰 모양입니다. 나뭇등걸에는 딱 그 손이 긁었을 법한 손톱자국이 나 있네요.
학자:(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쉿! 하는 시늉을 하며)
야만인의 뼈입니다. 금지된 숲에서 구해왔지요. 숲 가장자리까지 날려온 것을 어렵게 구한 것이니 절대! 상해서는 안 되고요. 얼핏 동물의 뼈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뼈와 구조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개나 늑대보다 유전적으로 가까운 것일지도요.
체리 애쉬:(…) …이쯤되면 저만 바깥을 너무 무서워 하나 싶기도 해요…. (학생분들이나, 학자님들이나 왜 이렇게 용감한지… 작게 덧붙이곤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저희와 닮아있다면,
야만인이라고 부르기보단, 음~
거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요?
학자:무섭기는 매한가지지요. 다만 언제까지고 성벽 안에서 안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날이 갈수록 백성들이 힘들어하니,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위험을 감수해가며 방법을 연구하는 것뿐입니다. (이어지는 말에는 짧게 긍정한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거인이라 불릴 법한 크기이기도 하니까요. 좀 더 많은 샘플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흠!)
체리 애쉬:대화할 수는 없을까요? 그들에게도 언어가 있을지도 몰라요! 아하하~ 아직 만난 적은 없지만요! 공생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없을까요? (옆머리를 넘겼다가,) 학자님은 그들에 대해 무언가, 더 알고 계신 건 없으신가요? 도서관에 있는 책은 정보가 한정적이니까. 논문이라던가… 연구 내용 같은 건 없어서요~?
학자:그럴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군요! 하지만, 대화가 통하는 상대는 아닐 겁니다. 그들은 잔혹한 성미를 지녔거든요. 이것 또한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재단일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렇습니다.
신전에는 가 보셨겠지요? 대다수의 환자가 야만인에게 살해당하고, 또 중상을 입어가며 겨우 왕성 안으로 대피해오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는 우호적인 관계는 될 수 없을 겁니다. 아마 이 겨울이 끝날 때까지는요. 이외의 내용은 저로서도 알 방도가 없군요. 살아 돌아온 이들이 많지 않으니 데이터가 쌓이질 않습니다.
체리 애쉬:(신전의 이야기가 나오자 엄숙히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하지만요, 겨울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왕국 근처에 나타난 적은 없었잖아요. 그렇게 커다랗고 강한 존재들이 어째서 겨울에서야 성 주변에 나타나게 된 걸까요?…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라 하기엔 그들의 존재 하나하나가 왕국의 몇 명을 합친 것 보다 강한걸요. 그 증거로, 여럿이 함께 나가도 살아돌아온 사람이 몇 없었잖아요.
…. 그래서 말인데, 사실 그들도 식량이 부족한 건 아닐까요? 산짐승들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겨울이라는 건 왕국에만 닥친 게 아니니까요. 잔혹한 성미를 가졌다는 건, 한계까지 몰린 굶주림 때문일지도 몰라요. (쓰러진 사제를 인질로 사용하려던 자들을 떠올렸다. 이내 끙, 앓는 소리.) 어떡한다아….
학자:…만약 왕자님의 추측이 옳다면, 어떻게 해서든 이 겨울을 끝내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겠군요. 어깨가 무거우시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왕자님의 성과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체리 애쉬:그럼요! 뭐, 추측일 뿐이라지만. 헤헤, 나는 꼭 해내려고 해요. 믿어주는 사람이, 음. 하나… 둘… 셋… 넷… 제가 아는 사람만 해도… …이나 되는걸요! (기억나지 않는지 몇인지는 얼버무렸다.) 학자님이 보셨을 땐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가요?
학자:해내셔야만 합니다. 물론, 왕자님께서 실패하신다고 한들 왕자님을 탓할 이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다만 다른 방법을 찾게 되겠지요. 그 방법은 얼마든지 과격해질 수 있을 테고요. 그런 건 바라지 않으시지요?
체리 애쉬:그럼요! 이왕이면 다들 건강하게… 일상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음~ 솔직히, 제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시죠? 굳이 돌려말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여긴 저희뿐이 없고요. 배려해주셨네요. (헤실거리는 낯이었다.)
학자:배려라니요! 가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린다. 명백한 외면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곧 왕성의 문이 닫힐 겁니다.
체리 애쉬:아, 벌써요? 아직 할 얘기가 많은데! 으으음~ 더 늦어지면 안되고… 또 올게요. 말만 번지르르한 왕자님이 아니란 걸 보여줄테니까요~! 다음에 봬요!
▶:별이 떠오르면, 체리는 왕성으로 돌아옵니다. 방 안은 이상하게도 한기가 드네요.
창문이 열려있기 때문일까요? 창으로 들어온 눈이 창문 앞에 쌓여 있습니다.
체리 애쉬:우왓, 안 닫고 나갔던가? 앗, 차 차 차. 차가워. (아무도 몰랐나봐, 중얼거리며 혼잣말하다 눈을 쓸어 급히
창문 밖으로 버렸다. 순식간에 온기 잃은 손을 불어가며 녹여댔다.)
▶:창문 밖으로 눈을 치워내고 있으면,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시종: 왕자님, 오늘 날씨로 인해 대신들께서 입궁이 어려우시다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전하다, 문득 고개를 든다. 눈을 크게 뜨더니 곧바로 새된 비명을 질렀다.)
피하세요! ▶:시종은 외침과 함께 당신을 힘껏 밀칩니다. 그탓에 밀려난 당신은, 눈앞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고개를 들면 복면을 쓴 괴한이 있고, 피를 흘리는 시종이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괴한의 뒤로는 커튼이 바람을 따라 펄럭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무슨, 왜….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놀라 방황하던 눈이 시종을 따라 굳었다가, 급히 제 품에 끌어와 물러났다. 목청껏 타인을 부른다.) 거기, 누구 없어요!
▶:때마침 거처 주변을 순찰하던 병사가 있던 모양인지, 발소리가 하나, 둘 겹쳐지기 시작합니다. 인기척과 함께 방문이 벌컥 열리면, 괴한은 주춤하는 듯하다가도 이윽고 열린 창문을 통해 도주합니다. 예정에 없는 도망 탓인지는 몰라도 창문 아래에
무언가를 떨구면서까지요.
체리 애쉬: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도와줄게요. (빠르게 뛰어대는 심장을 억누르며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시종에게
응급처치를 사용해도 될...까요??)
체리 애쉬:(한번 더..............!!!)
▶:성공. 시종의 상처를 지혈합니다. 출혈이 멎을 무렵, 방 안에 모여든 병사들이 시종을 부축합니다.
신하: 다행히도 급소는 비껴간 것 같습니다. 출혈이 멎었으니 고비는 넘겼다고 봐도 되겠지요. 저희가 이 자를 의원에게 데려가겠습니다.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만한 상처이니 왕자님께서는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체리 애쉬:(끄덕인다) 감사해요, 잘 부탁드릴게요! (신하들이 방을 떠나면... 창문을 닫고 떨어진
무언가를 살필게요)
▶:여러 차례 접혀 구겨진
편지가 놓여있습니다. 봉투의 뒷면에는
직인이 찍혀 있네요.
▶:도서관의 형상을 띤 직인이 찍혀 있습니다.
▶:[체리 애쉬를 눈에 띄지 않게 죽이고 사고로 위장할 것을 명한다.] 2
(도서관에서 수상했던 점은 없었는지 떠올려볼게요!)
(..........................오늘은지지해주는사람수도생각안낫으니깐)
▶:도서관의 학생들은 당신에게 어떠한 호의도, 적의도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느라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학자는 어떻던가요? 은근하게도 탐탁잖은 태도를 드러내곤 했습니다. 그와 연관이 있는 걸까요?
체리 애쉬:…함부로 의심하는 건 좋지 않지! (눈 딱 감고 편지를 주머니에 꽁꽁 숨겨요)
▶:편지를 갈무리할 무렵이면,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직전 시종을 부축하며 방을 나섰던 신하입니다.
신하: 왕자님, 의원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다행히도 목숨에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늦은 밤에 찾아뵙는 것이 실례임은 알지만, 왕자님이라면 분명 우려하실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뵙게 된 점 사죄드립니다.
또, 괴한의 침입이 있었으니 오늘은 밤새 별궁의 근처를 순찰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왕자님께서는 마음 쓰지 마시고 주무시어 심신을 추슬러 주십시오. 내일 아침엔 다시 용을 만나 뵈러 가셔야 하니까요.
체리 애쉬:(화색했다) 다행이다! 아뇨, 별 말씀을! 안그래도 내일 들러야할지 고민했거든요. 마음이 훨씬 놓이네요, 감사해요. (뒷머리를 긁적인다.) 신경쓰이게 해드렸네요.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어서…. 응, 부탁드릴게요. 무리하진 마시구요! 기사단에도 몸 조심하시라고 안부 전해주세요.
▶:이윽고 신하는 물러갑니다. 하루를 마무리할까요?
체리 애쉬:(정돈하고... 슥슥삭삭 잠을 청해요)
▶:이른 아침,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군인들입니다.
신하: 왕자님, 지난 밤 자객에 관해서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무어라 할 말도 없이 저희의 실책입니다. 거처의 경비를 더욱 강화하였으니 이전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고개를 깊게 숙인다.) 그리고, 용의 탑에 방문하시란 폐하의 명을 전달드립니다. 날씨가 험해지고 눈이 계속 내리고 있으니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용에게서 해답을 들어오시란 명입니다. …곧장 출발하시겠습니까?
체리 애쉬:응, 지금 갈게요! 준비 끝났어요~! (기다렸다는 듯 신하를 가로질러 나섰다)
▶:마차에 올라타고, 눈발이 흩날리는 차창을 보다보면 금방 용의 탑에 도착합니다. 올라갈까요?
체리 애쉬:라! 있어요? 몸은 괜찮아요?! (이젠 계단을 뛰어올라가며 말을 건다...)
▶:문은 닫혀있으나, 잠겨있지는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갈까요?
체리 애쉬:괜찮아요! 어렸을 때 많이 넘어져서~ 이제 안 넘어지는 방법을 터득했거든요! 하하! 농담! …혼내지 마요!
라 콕스:그래, 혼은 안 낼게. 대신 걱정을 하겠지. 이래도 괜찮다고 할 건가? (시무룩한 투.)
체리 애쉬:앗. …(조심조심 손 뻗어서 볼 만질만질...) …보고싶어서 그랬죠! …미안, 다음엔 안 그럴게요. 응~?
라 콕스:(지친 기색이 완연하나, 당신의 손이 닿아 오면 주저 없이 눈가를 휜다.) 그렇게 말한다면, 무언들 못 들어주겠어. (시린 손을 뻗어 당신의 어깨를 부여잡는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것마냥 훑어내렸다.) 다친 곳은…, 없어 보이네. 다행이야. 죽은 이는 없다지만, 그래도 많이 놀랐겠지. 괜찮아?
체리 애쉬:(네가 눈가 휠 때 마다 행복한 기색이 완연했다.) 그럼요! … …엇! 벌써 다 들었어요? 빠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벌써 다 알고 있으려나?
라 콕스:글쎄? 이왕이면 네게 직접 듣고 싶은걸.
체리 애쉬:오늘은 쭉 붙어있고 싶다는 말! …피곤해보여서. 괜찮아요?
라 콕스:유난히 춥기는 하네. 겨울이 거세어진 탓인지, 용의 소임이 끝나가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저하다가,) 네가 날 안아준다면 좀 나아질 것도 같은데. ……안 돼?
체리 애쉬:안 될 것 뭐 있겠어요~ (마주 안아들자 인간의 것이라기엔 시린 체온이 옮겨왔다.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고 이리저리 고개를 비비적 거리다,) 용도 직업처럼 그만둘 수 있으면 좋았겠죠? 누군가 홀로 애쓰고 있다는 걸 알면 다들 한 번쯤은 돌이켜 생각해줄테니까요. 내가 별종일까? 하지만, 용이라는 거창한 이름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아무도 모를 걸요, 라가 이렇게 자그마한 몸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라 콕스:(기꺼이 당신이란 존재를 곁에 들인다. 그리고 희소했다. 이토록 겨울이 범람한 왕성에, 체리 애쉬라는 인간에게만큼은 봄이 찾아온 듯싶었다.) 그래, 정말 아무도 모를 거야. 날 조그맣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체리, 네 말대로 나는 아주 작아서…. 더는 이 겨울을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아. 모든 걸 내려놓을 때가 된 걸까?
체리 애쉬:(코 흥얼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품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그가 네 얼굴을 마주한다.) 몸집의 이야기죠! 신화 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용의 외관보다야, 평범한 인간을 더 닮아있으니까.
(지친 낯, 이따금 털어내던 상심. 어울리지 않게 부리던 어리광들까지. 모두 스치고 나서야, 엷게 웃어 보였다. 강요할 수야 없지, 너는 이미 쇠약했으니까. 무리하게 두겠다 생각한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니 네가 짊어지었던 짐은 저가 받아 갈 때라 생각한다. 날 때부터 쥐고 살아왔던 善, 그 탓이었다.) 내가 할 수는 없을까요?
라 콕스:(웃고 있는 이와는 대조되게도 입가를 굳혀 낸다. 갈피 잃은 시선이 허공을 맴돌다,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반가운 말이었다. 더없이 기뻐해야 함이 옳으나 웃고 싶지 않다. 결국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꼴사나운 낯이 되고야 만다. 체리, 그거 아니? 네 선은 나를 언제나 나약하게 만들어.) …네게 이어줄 수 있다면? 받아 갈 건가?
체리 애쉬:내게 주겠다면요. (네가 떨군 고개 따라 머리를 옮기었다. 저가 받아 가겠단 말에도 기쁜 낯이 아닌 이유는, 그만큼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겠지. 용이라는 직책을 향한 애정, 또는 수어년간 손수 가꾸어 낸 나라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미련들과. 백성, 인간들. 하지만 이들 때문이 아니라면, 너는. 설마…) 싫어요?
라 콕스:용은 탑 안에서 세상을 읽어내는 직책이라고들 하지. (허울 좋은 말이다. 실상은 탑 안에 갇혀 겨울을 맞이하는 위치일 뿐 아닌가. 라 콕스는 살아 숨 쉬는 동안 단 한 번도 용 노릇을 기꺼워한 적이 없었다.)
왕성에 닥칠 위험을 예견하고, 그들을 굽어살피기도 하면서…. (외로운 곳에서 수도를 내려다본들 무엇을 알 수 있겠나. 이 또한 같다. 라 콕스는 나라와 백성을 그리워할지언정 사랑한 적이 없었다.)
……천 년의 세월을 거쳐 단 한 사람을 기다려야 하지. (그렇다면 그가, 천 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낸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당신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이제는 장작을 지펴도 온기가 돌지 않아. 불 속에 손을 집어넣는다 한들 내 손이 따뜻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체리, 나는 두려워. 네게 이 모든 것을 넘겨주고 나면…….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네가 날 원망하면 어쩌지?
체리 애쉬:(걱정스런 낯이 확신으로 굳어간다. 굳이 놀란 낯을 띄지는 않았다. 해사한 미소. 그는 오히려 웃음지었다.) 내가 언제라도 라를 미워한 적 있었나요? 혹시라도 과거에 만난 내가, 라에게 모질게 굴었다거나… 미운 말을 했다던지.
(재차 품에 끌어와 이마를 맞추었다. 다정 어린 목소리, 작게 재잘거리 듯 언제나와 같은 일상처럼 속삭였다.) 다시 만나요, 나는 분명 기다리겠죠. 천 년을 세지 않더라도, 추운 겨울이 돌아오면. 또 그 끝에 만나게 될 것이 결국 라라면, 무척 기쁠 거예요.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네요. (은회색 눈동자가 일제히 자색 시선을 받아들인다.) 그래도 겁이 난다면, 이 순간을 여기에 두고 갈게요. 언제라도 두려움 떨칠 수 있게, 모자람 없이 추억하도록.
라 콕스:(그 품 안에서 고개를 저어 낸다. 늘 그랬다. 자신은 나약한 말을 쏟아내고, 당신은 그 위로 다정을 덧그리고….) …두고 가 줘. 그리고,
(시선이 얽히면, 두 눈 피하지 않고 당신의 왼손을 잡아끈다. 이어 고개를 숙인다. 반지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생각을 하며 비어 있는 약지 위로 입술을 내리누르면, 케케묵은 갈망이 흘러내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대로 빈 손가락을 깨물어 자국을 낸다. 오랜 세월 감추어 둔 연정은 그저 눅눅하기만 했다.) 내 천 년도 가져가 줘.
체리 애쉬:(약지가 깨물리면 몸 움찔인다. 천년지약의 대용인가 싶어, 가만 들여다 보다가도 조그마하게 웃음 터트리는 것이다. 그 어떤 반지를 준비하더라도 이보다 완벽한 물건을 선물받지는 못할테니까. 모든 것을 이해 한 뒤, 짧게 입 맞추곤 떨어졌다.) 천 년, 소중히 할게요. 또 다시 우울해하진 말구요.
라 콕스:울적한 적이 없었다… 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 우울이 싫지는 않았어. (네게 도달하는 과정이 싫을 리가.) 그래도,
다음에는 좀 더 많이 웃어 볼게. 이 정도면 괜찮지?
라 콕스:그래,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민다.) 나도 내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 너는 네 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게 좋겠어.
(잠시간의 간극.) 오늘이 가기 전에 널 죽이려던 자를 만나러 가 봐. …네게 주는 마지막 예언이야.
체리 애쉬:마지막이라도 종일 붙어있지는 못하는 거네요~ 아쉽다. (내민 손 붙잡고 일어나 장난치듯 좌우로 흔들었다.) 계단 아래까지만, 마중나와주면 안돼요? ~헤헤,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손 놓아주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점점 물러난다.) 그럼, 진짜 다녀올게요. 예언 고마워요!
라 콕스:(당신이 멀어진 만큼 한 걸음 내디딘다. 그리고, 또다시 한 걸음. 거리를 좁혀 손을 뻗는다.) 같이 내려갈까.
체리 애쉬:…아! (급히 시선 피했다가,) 정말요? 그냥 해 본 말이었는데, 고마워요! (고개 돌려 계단 밑으로 향했다.) 정말 괜찮은 것 맞죠? 여태 내려 온 적 없었잖아요.
라 콕스:마지막이니까.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다만, 이별을 입에 담는 건 역시 서글펐다. 천 년이란 세월이 전제된 재회가 멀고도 멀게 느껴져서, 문득 죽고 싶지 않단 생각을 해버리게 된다.) …그러니까, 괜찮아. (기나긴 계단을 지나 탑의 입구에 다다르면, 그 심정을 감추고자 당신의 등을 툭. 떠민다. 어서 가보란 듯이.)
체리 애쉬:(마지막. 그 말 끝에 슬픔이 번져든다. 우리 정말 끝이에요? 죽지 마요, 죽는단 말 말아요. 연약한 물음들. 가슴 내로 삼켜내려 입 달싹였고, 고개 흔들었다.) 역시 마지막이란 말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행복해질 방법을 찾을게요! 내가 가장 잘 하는 거 거든요! (비애에 젖은 몸뚱이 일으켜 힘차게 손 흔들어 작별했다. 잘가, 말고.) 또 봐! 다시 만나요!
▶:탑에서 나와 마차에 올라타면, 창을 통해 내다본 거리는 회색빛깔입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와 눈발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활하기 위해 땔감을 구하고, 밥을 구걸하고, 신에게 기도하여 가족과 친구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광장, 상점가, 주택가, 호숫가중 한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귀족들이 후원하는 여러 길드의 본거지로 이루어진 거리입니다. 예전의 이곳은 상공업의 중심지였습니다만, 지금은 가게들도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상점가 입구에는 커다란 벽보가 붙어 있습니다.
▶:상점가 근처에서 종말을 소리높여 외치는 낯선 사람이 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그 사람을 구경하거나, 피해다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구경하는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끼어서 들어볼게요)
(아앗..아 ..아이)
▶:저 사람, … 숲에 다녀온 뒤로 미쳐버렸다네. 실종된 사람이 제대로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 …이 저렇게 되어버렸으니.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드문드문 들려옵니다.
체리 애쉬:저어… 혹시 무슨 얘긴가요? (슬쩍.)
???: 저 사람, 금지된 숲에 다녀왔다는 모양이에요. 거기서 무슨…,
신을 보았다는걸요. 아무래도 해괴망측한 이야기라 다들 피하고만 있죠.
체리 애쉬:(눈만 깜빡였다)
신이요? 용이 아니고요?
???: 네. 왕도 바깥의 숲에 신이 산다나 봐요. 그들은
팔이 여섯개 달린 야만인들을 거느린다고도 말하던걸요. 허무맹랑한 소리 아닌가요? 금지된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죽거나, 미쳐 돌아오거나 둘 중 하나라더니. 쯧….
체리 애쉬:그들이라면 신이 여럿이라는 이야기겠네요. (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꿈이 아닐지두… 곰곰히 생각하다 바지를 털고 바로 섰다.) 그래도, 음! 무사히 돌아왔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 이야기 감사해요~ (사람좋게 웃는다.) (
살롱에 갈... 수 잇을까요?)
▶:마차로 돌아갈까요? 살롱에 도착할 무렵이면 해가 질 것 같네요.
체리 애쉬:(고민고민 하다가...
왕궁으로 갈게요!)
▶: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습니다.
왕궁은 굉장히 낡았지만, 그만큼 웅장합니다. 예전에는 귀족들이 왕궁 내에 살았다고 하지만, 이제는 직계 왕가와 대신들만 출입합니다. 당신이 기거하는 궁과 용의 탑 역시 이 왕궁 안에 있습니다. 왕의 집무실은 왕성의 중심부에 위치하고요.
체리 애쉬:폐하께선 집무실에 계실까요? (두리번..)
신하: 네, 지금쯤이면 집무를 보고 계실 시간입니다.
체리 애쉬:고마워요, 저 혼자 가볼게요. (로브 벗어 눈 탈탈 털곤
집무실로 향해요)
▶:신하는 공손히 고개를 숙입니다. 집무실에 도달하면, 문은 굳게 닫혀 있어요.
어떻게 할까?
▶:문 안쪽으로부터
들어오라.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갈까요?
체리 애쉬:(휴, 안도하곤 문 열어 들어선다.) 2왕자 체리 애쉬입니다. (또 두리번...) 집무는 좀 어떠세요?
▶:둥근 원형의 방에 도착하면, 전면 창을 등지고 책상에 앉은 왕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책상 위는
서류로 어지럽혀져 있네요. 책상 앞으로는 커다란 소파와 작은 탁자가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탁자의 위에는
보고서가 잔뜩 놓여 있어요. 벽면에는 왕국의
지도가 붙어 있네요.
체리 애쉬:네, 저야 늘 그랬죠! 그럴 때 마다 아바마마께선 책을 좀 더 읽으라 하셨었지만~… 그으, 어젯 밤 소동이 있기도 했구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
서류를 향해 눈짓했다.)
▶:[………가 2왕자님을 후계자로 정하길 원한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왕자님께서 용의 심장을 녹이고 이 겨울을 끝낼 사람으로 지목되신 후 깨달았습니다. 왕자님은 이때를 위해 후계자로 지목되신 게 아닐는지요?] 왕: 이미 많은 것을 도와주고 있지 않느냐. 이 겨울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인 것을.
간밤의 이야기는 신하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다지. 배후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바가 있느냐?
체리 애쉬:뭘요. (부끄런 듯 고개를 숙였다가, 양 옆으로 젓는다.) 아직요, 그 때 붙잡고 물어봤어야 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하지만 단독으로 저질렀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 뜻을 함께하는 이가 있었기에 왕궁까지 들어올 수 있겠죠. (아직은 의심할 수 없었다. 그는 저와 친구가 되고싶다 이야기해주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아니라면, 오늘이 가기 전에 만날 수는 있는 걸까?)
(책상 위를 유랑하던 시선이 서류를 지나 쌓인 보고서에 닿는다.) 문서가 엄청 많네요, 제대로 쉬고 계시죠? 제가 차를 내어올게요! 홍차를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그… 그… 이름은 제대로 기억이 안 나지만….
▶:탁자 위에는 최근 내역으로 보이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최근 이어진 날씨로 인해 왕가를 신뢰하는 이가 적어지고, 부를 소유한 세력가들이 공작을 필두로 반발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 아래로는 왕의 필체가 이어집니다.
[힘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은 힘들지만 꼭 해야하는 일이다. 나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만 집중하느라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군.]
왕: 네가 바란다면 군인들을 붙여 주마. 배후를 찾는 데에는 힘을 보태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너를 지켜줄 수는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말에는 고개를 젓는다. 입가에는 푸근한 미소가 걸쳐져 있다.) 아들이 내오는 차를 대접받는 건 기쁜 일이나, 지금은 도무지 쉴 수가 없구나. 왕자의 마음만 받겠다.
체리 애쉬:괜찮아요! 제 몸 하나쯤이야 저 혼자서는 거뜬한걸요. 이젠 저 때문에 또 누군가가 다치는 건 못 보겠어요. (시선을 거두곤 그를 따라 해사하게 미소지었다.) 제가 어서 겨울을 끝내지 않으면 아바마마께서는 차도 못 드시겠네요. 그럼, 잠시 둘러보아도 될까요? 저기, 지도가 보고싶어서!
▶:벽면에 붙은 지도는 낡고 오래되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볼까요?
왕: 그 지도는 왕국 건립 시, 바깥 세상에 있는 외적들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작성한 지도이다. 대대로 왕가는 바깥 세상에 있는 야만인…. 괴물들에게서 왕국을 지키기 위한 수호자였지. 수호자는 용과 왕국을 지키고, 용은 예언과 마법으로 이를 보조한다. 그것이 왕가의 힘이자, 용과의 계약이지. 용의 심장을 녹이는 건 어찌보면 계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구나.
체리 애쉬:(그렇게 한다면 심장을 녹인다기 보단 열심히 깨고 있는 것 같은데… 용의 심장을 곡괭이로 깨는 아바마마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아! 그러고보니, 누군가가 숲에는 신이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다니는 걸 봤어요. 아바마마께선 알고 계신가요?
왕: 신이 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 사실, 금지된 숲에 관한 정보는 나로서도 아는 바가 없다. 그곳을 잘 아는 이가 있다면
신관과
용 정도인데, 적어도 신관에게는 숲에 사는 신에 관한 보고를 들은 적이 없구나.
체리 애쉬:(곰곰…) 용은 오래 살아서 그렇다 쳐도, 신관들은 그 곳에 대하여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요? 지… 금 가기엔 늦었을텐데. (번뜩 고개 들었다가 금새 늘어뜨린다.) 팔이 여섯 개 달린 야만인을 다룬다고 들었어요.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몰라요! 이 사람이요. (그리곤 손 끝을 북쪽으로 옮겨 제단 위에 둔다. 이어 하단의 글씨를 보곤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더니.)
라그나로크….
왕: 라그나로크, 하필이면 제단에 명명된 이름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 허나…. 안타깝게도 왕궁에는 그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진위를 가려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금지된 숲으로 사람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체리 애쉬:네, 제단보다는…좀 더… 신전 이름같은 느낌이네요!
금지 된 숲에 대한 정보는 전부 용이 물려준 건가요?
왕: 아니, 아니다. 선조들의 기록과,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룩한 것이지. 이상하게도
용은 금지된 숲의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더구나. 체리 애쉬:(그의 성정을 떠올린다. 보통 묻는다 하면 대답해 주었는데, 이것도 아직 때가 아닌 걸까? 지도로부터 시선을 돌리자 곤란한 듯 웃음 짓곤 일순 어깨를 으쓱인다.) 하긴… 용이 답해주지 않는다면 직접 나가고 말겠다는 분들이 많으시죠. 학자분들의 탐구욕은 저도 못 따라가겠던걸요!
왕: 그렇다고는 하나, 그 때문에 부상자가 늘어가는 추세이니 마냥 반길 수만은 없구나. 다음에 그들을 만나게 되거든 네가 잘 일러두거라. 적어도 제 안위는 생각해가며 연구하라, 고 말이다.
체리 애쉬:물론이죠! 위험할 땐 도망치라고 이미 말을… …엇? 안 했나? (눈 깜빡이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바쁘신데 갑자기 찾아 봬어 죄송해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이마에 입 맞추었다 떨어진다.) 헤헤, 좋은 밤 키스. 부디 몸 조심하세요, 아바마마.
▶:집무실을 나와 문을 닫으면, 저만치 달이 떠올라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용이
오늘이 가기 전에 배후를 만나러 가라고 말했었지요.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어디로 가야 하죠... 라... 이런 왕자는 처음인가요...)(잠간고민타임)
(도서관에 가야하나?....)
체리 애쉬:(....................역시도서관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면, 학구열 높은 이들이 모이는 장소인 만큼 건물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습니다.
학자의 방은 도서관 꼭대기 층에 있었죠.
어떻게 할까?
▶:학자의 방으로 향하면, 아니나 다를까 학자는 깨어있는 채 당신을 맞이합니다.
학자:(간밤의 사건을 아는 것마냥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을 맞이한다.) 설마하니 여기를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체리 애쉬:아, (머리를 긁적였다.) 누군가의 조언이 있어서. 나도 직접 봬어야겠다 생각한 것도 있구요. …안될까요?
학자:안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도서관은 배우고자 하는 이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째서 왕자님께서 노여워하지 않으시는지, 그것만큼은 먼저 여쭙고 싶군요.
체리 애쉬:전혀요, 화났는걸요. 그렇지 않았다면 찾아오지 않았을 거예요. (짧게 숨 몰아쉬곤,)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한 다정은 왕성의 몫이겠죠. 생명을 힘으로 해하려 들면 안 되니까. 물론 겨울이라던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겨우 살인뿐이었나요?
학자:예, 제가 생각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위기의 국면에 후계자는 지식인의 말을 듣지 않지요. 이는 필시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소를 희생해 계몽을 이뤄낼 수만 있다면, 저는 몇 번이고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겁니다.
체리 애쉬:오만이 아닐까요? 학자는 미지를 탐구하고 세계의 의문을 해석해 내는 직업일진대, 현실이 자신의 해석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훼손하려 들다니요. 그것도 살아있는 존재를! …결국 부정하지는 않으시네요, 조금이라도 죄의식을 가지시길 바랐는데. (쓸쓸한 웃음기마저 거두어지고 나면, 한 밤 초승달을 닮은 눈동자만이 그를 응시한다.)
바로 전 날까지만 해도 즐겁게 이야기 한 상대가 죽어버렸을 때의 기분을 아시나요? 죽는다는 말이에요, 사람이… 그렇게 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해요. 이 슬픔은 가혹하게도 죽은 이가 가져가지 않고, 주변 남은 이들에게 평생 가는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기억되는 거예요. 그다지 좋은 추억이 아닐 텐데도 닮은 풍경, 닮은 날씨만 마주했다 하면 그가 죽은 날을 되새김질해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몇 달, 몇 년이 지나더라도!
…하다못해 작은 짐승들마저 제 동족의 죽음에 슬퍼하는데. 다음에도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하시나요? 아시는 것이 그렇게도 많으시면서 어떻게 생명의 소중함에는 이렇게도 무지하시냐구요.
학자:이 국면에 우리가 모두 살아남을 수는 없습니다. 왕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왕성은 얼어붙고 있고, 백성들은 더는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 겨울을 끝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왕자님의 성정을 아주 잘 알지요. 저뿐만 아니라 이 왕국의 모두가 왕자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척이나 따스한 사람이니 누군가를 해치려 들진 않겠지요. 오히려 저지하려 들 겁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루빨리 용의 목을 거두어 그 자리를 세습시켜야 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다 한들 제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부디 굶주린 백성들을 저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체리 애쉬:저버리지 않아요, 제 욕심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에게 실망할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살인을 택하게 되는 일 또한! 그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끝내지 않을 테고, 하지 않아도 될 일, 남들이 해낼 수 없을 거라 내두르는 일 모두 이루어 내어 반드시 이 겨울을 끝내고 말 테니까.
'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라는 마음만은 갸륵하나, 방법이 잘못되었어요. 반성하지 못한다면, 내게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이윽고 찾아온 봄엔, 당신을 반드시 심판하겠어요. 당신은 상처 입힌 이가 용서할 때까지 진심을 담은 사과를 계속해야 할 것이고, 그 무게를 똑똑히 견뎌내야 할 겁니다. 잊지 말아요, 절대로. 당신은 잊어서는 안돼요. (차가운 말들과는 달리, 다정히 포개어 오는 손이 당신을 입구로 끌었다.) 같이 가요. 폭우처럼 쏟아지는 찬란한 봄을, 당신께서 왕성에서 맞이할 수 있도록.
학자:(반역을 저질렀으니 이 자리에서 참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봄이라니! 생명이 박동하는 계절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학자로서는 그저 수긍하는 것밖에 방도가 없다. 체리 애쉬가 내건 심판을 목도한다면, 눈이 녹은 땅 위로 새싹이 움트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릎을 꿇고 읍소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왕자님. (학자는 이윽고 목이 졸린 듯한 소리를 내며 당신을 호명했다. 붙들린 손을 조심스레 떼어 내고 책상에 달린 서랍을 연다. 그 안에서 꺼낸 것은
눈꽃 모양 조각이다. 조각이 녹을세라 손수건으로 곱게 싸 내어 집어 들고는, 체리 애쉬에게 건넨다.) 이것을 가져가십시오.
체리 애쉬:(조각 건네어 받은 그는 한 차례 쓰게 웃는다. 그토록 겨울을 싫어하는 이가 가진 것이 하필이면 눈꽃 모양 조각이었다니. 현실을 증오하더라도, 추위가 마음을 꺾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고마워요, 겨울조각이네요! 아마, 제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자신의 것에 챙겨놓곤 학자와 함께 방을 나섰다.)
학자:왕자님, 지금부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겨울을 끝낼 방도는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신가요.
체리 애쉬:음, 하나정도는요. 하지만 정말 최후의 수단이거든요. (당신은 그뿐으로도 족하다 느낄지 모르겠다. 사람을 죽이는 계절은 하루빨리 끝내야 맞지 않겠느냐고. 물론 자신 또한 사람 한 명이 더 죽기 전엔 끝내고 싶다 생각하지만… 가능하다면, 사람 뿐이 아닌 모두가 최대한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위해서.)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해서.
학자:해낼 수 없는 일을 이루려 드시는 거군요. (탄식했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한다.)
금지된 숲... 그곳의 이야기는 들어 보셨습니까? 폐하의 집무실에는 왕국의 지도가 걸려 있습니다. 그 지도에 표기된, 숲의 북쪽에는 제단 같은 것이 새겨져 있고요. 단순하고 충동적인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의미 없는 지표는 아닐 겁니다.
체리 애쉬:그럴리가요, 아직 아무도 해내지 못했을 뿐인걸요. 기대해주시겠어요? 앞으로의 힘이 될 것 같은데. (금지된 숲이라… 금지되었는데 출입해도 되는 걸까? 놀란 눈을 뜨다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다가, 고민하는 듯 손 끝으로 입가를 건드린 그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제단이 있다는 것은 알아요. 학자님은 알고계신가요?
학자:아니요, 하지만…. 그에 관한 지식을 갖춘 인물은 알고 있지요. 왕자님,
용을 만나러 가십시오. 그리고 부디 이 겨울을 끝맺어 주십시오. 신은 이곳에서 죗값을 치를 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체리 애쉬:같이 가지 않나요? (고개를 기울이지만 순순히 놓아주었다.
용, 창백한 안색에 한줄기 다정 어려있던 이를 떠올린다. 당신도 이 길을 따랐을까?) 그럼, 봄날에 다시 만나요.
어떻게 할까?
▶:눈을 뜨면, 아침이 찾아옵니다. 문 밖은 바람 소리 말고는 들리지 않지만, 창 밖으로는 새하얘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눈보라가 왕도를 다 덮을 듯 몰려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백지로 만들어버릴 듯한 설원 위에서 인간은 보잘것없는 생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당신은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
▶:당신은 끊이지 않을 겨울의 끝을 보기 위해, 다시금 용의 탑으로 향합니다.
마차에서 내리면, 숲길을 지키고 선 군인들은 순순히 문 앞을 비켜섭니다. 문을 지나 탑으로 올라가나요?
체리 애쉬:(탑으로 올라갑니다~ 뛰지 말랬으니까… 조심조심…)
▶:탑으로 올라갈수록 냉기가 온 몸을 감싸옵니다. 두터운 털 옷도 죽음의 한기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서면, 담요를 두른 채 책을 하나씩 분류하고 있는 용을 볼 수 있습니다. 엉망진창으로 쌓여있던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차례차례 탑의 벽면을 따라 꽂혀있습니다. 밤새도록 책 정리를 한 것일까요?
테이블 위로는 집필이 완료된 책이 놓여있고, 용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당신을 바라봅니다.
체리 애쉬:와아, (주변을 둘러보다 네게 천천히 시선 돌리곤 다가간다.) 전부 정리한 거예요? 엄청 많았었는데, 힘들었겠다. (고개를 끄덕이고,) 응, 그리고… 해보고 싶은 것도 생겼어. (웃음지어서는.) 이것도 알아요? 도서관의 그를 지목해줬던 것 처럼.
라 콕스:글쎄, 네 질문에는 뭐든 모른다, 고 대답하고 싶어져. (말끝마다 웃음이 스민다.) 왜일 것 같아?
체리 애쉬:(놀리는 말에 황당한 듯 쭈뼛거리다,) …왜?! 나 그렇게 재미없는 질문해요? (잡아달라는 듯 손 내밀어보인다.) 궁금해요, 알려줘.
라 콕스:그런 거 아니야. 그냥…. (기어이 희소를 터트린다. 내민 손을 단단히 붙들고, 깍지를 껴 낸다.) 그러면 네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들을 수 있게 되니까.
그래서, 해보고 싶단 게 뭘까. 뭐든 들어줄 수 있어.
체리 애쉬:그런 거예요? (그제서야 따라 웃었다.) 금지된 숲, 제단이 있는 곳… 그가 말하길, 라는 알고 있을 거라고 했어요.
라 콕스: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인걸.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방향이라면 가늠할 수 있어. 왜, 그곳으로 향할 생각이니?
체리 애쉬:네에, 위험할까요? 그래도, 이번엔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언가 해낼 것만 같아. (당신은 겨울을 닮았으니, 하얗게 눈발이 날릴 때면 언제든 자신과 함께해주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러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네가 추위를 앓는 탓일까. 아니라면 꽃무더기 속 차게 언 손끝이 욱신거려서, 그래서. 체온을 돌려받은 네가 자신을 안아주게 되는 날은, 이런 온기가 들어차게 되는 것일까 감히 상상하였기 때문에?) 도와줄래요?
라 콕스:위험할 거야. 그 끝이 괜찮을지, 아닐지도 확신할 수 없어. 어쩌면 해낼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원해?
체리 애쉬:(작게 웃는소리) 노력을 무산시키진 않을거예요. 몸을 함부로 하는 것도 아니구요. 행복을 위한 일보전진! 믿어줘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라 콕스:물론, 믿어.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애초에 라 콕스에게 거절이란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네가 그리는 행복에는 내가 살아 있나 보네. 그렇지?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라 콕스는 감히 희념하고야 만다. 이 추위가 모두 가신 뒤에 자신의 온기를 네게 나누어 주고 싶다고.)
어디든 안내할게. 네 바람을 이루고 싶다면…. 체리 애쉬, 내 이름을 불러.
체리 애쉬:(눈가가 누그러진다.) 어떻게 전부 다 알 수가 있지~? 그야, 내 행복에는 모두가 있으니까요. 왕국 사람들도, 바깥의 거인들도… 겨울 속 용도 모두, 나는 잃지 않아요. (여전히 얽혀있는 손을 끌어와 제 뺨에 문질렀다.) …라 콕스. 겨울을 끝낸 뒤에도 우리 모두 살아있다면, 나와 함께해 줄래요? 너무 먼 겨울이 찾아오더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네 가지의 시간을 넘어서.
라 콕스:(짤막이 웃었다. 그리고, 당신의 뺨 위로 가볍게 입 맞춘다.) 기꺼이.
탑에서, 금지된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알아. 따라올 수 있겠어?
체리 애쉬:응. (고개 끄덕이곤 호흡을 가다듬는다.) 놓치지 않을게요, 준비 됐어요.
▶:숲 바깥으로 나오면, 사방에 있는 자작나무와 전나무, 그리고 나무들에 달린 고드름이 보입니다.
세상은 희거나 검고, 그런 흑백의 얼룩으로 가득한 지평선 저 너머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깊은 숲 너머에서는 연신 어떤 소리가 들려오고, 발치에는 나무 뿌리가 엉켜 있습니다. 어쩐지 왕도와 멀어질수록 점점 더 추워집니다.
체리 애쉬:(무슨
소리지? 집중해서 들어볼게요)
▶:바람 소리와 출처 모를 소음이 뒤엉킨 숲입니다. 숲 속은 원시에 가까운 자연림으로, 모든 나무가 수천년간 생장했을 법합니다. 눈밭 여기저기에는 늑대나 작은 동물로 추정되는 짐승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체리 애쉬:라, 나무가 엄청 높아요~!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 보는 것 같아! (기둥의 눈발을 털었다가, 근처에 찍혀있는
발자국을 살펴요) 강아지일까?
▶:당신은 수많은 발자국 중에서 사람의 손바닥 모양과 비슷한 자국을 목격합니다. 다만, 그것은 크기가 매우 커 하나하나가 사람의 상체만합니다. 이 발자국은 두 발, 혹은 네발, 혹은 여섯 개의 다리로 움직인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체리 애쉬:(신난 발걸음!) 다들 이야기하던 거인들일까요? 신기해, 왕궁에서는 본 적 없는 풍경이야. 여기저기 빠짐 없이 전부! 이렇게 들떠도 되는 걸까? 라는 와 본 적 있어요?
라 콕스:아니, 여기까지 나와 본 건 처음이야. 지난 생에도, 이번에도.
체리 애쉬:처음. (하늘에 흩날리기 시작한 하얀 먼지들을 기억한다. 피부에 닿아올 때마다 제 온기를 앗아가던 존재들을. 아니, 그는 당연하게도 차게 언 비와 같은 것이었지만… 이곳에 나와 맞이한 첫눈은 그때를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특별했다. 막힘없이 질주하는 바람과, 무한히 장성하는 생명들. 자유의 땅을 밟고 서서. 심장은, 새삼스럽게도 빠르게 고동친다.) 처음으로, 우리의 삶을 되찾으러 가요. (정신없이 주위를 훑어내던 시선이 마침내 지평선 너머를 헤엄치는
무언가를 향했다.)
▶:지평선은 나뭇가지로 여러 군데가 가려져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갈까요?
라 콕스:(끄덕인다.)
북쪽으로. 계속 나아가야 해.
체리 애쉬:(마가 손 꼭 잡고... 나아갑니다!)
▶:앞으로, 앞으로 걷다 보면,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것이 사실은 바람에 흔들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확히는 사람의 옷가지만으로, 사람의 몸은 이미 꽁꽁 얼어 붙은 채 눈 밭에 반쯤 박혀 있습니다. 마치 죽음 그 순간에 얼어버린 듯한 사람이 광활한 설원 위에 수십, 수백명이 묻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아가나요?
하얀 안개가 눈앞을 뒤덮어,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윤곽이 흐릿해 보이지 않고 바람이 강해 걷기가 힘듭니다. 눈은 아주 두껍게 쌓여 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눈보라 너머에서 무언가가 세상을 저주하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그 목소리는 하늘 위에서 들려와 마치 천둥 같은 자연 재해처럼 들리고, 영혼을 긁어내는 듯한 악의와 괴로움이 섞여 있습니다.
강력한 추위가 분노처럼 몰아쳐옵니다.
또다시 나아갈까요?
앞으로, 더 멀리, 북쪽으로.
어느덧 눈보라가 잠잠해집니다.
눈앞에 녹색과 푸른색의 커튼처럼 일렁이는 빛이 보입니다. 별들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맑은 하늘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고 생물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북쪽 숲의 중앙에는 거대한 둔덕이 보입니다. 눈으로 쌓아 올린 듯한 이것은 크기가 매우 거대해 마치 작은 언덕이나 동산처럼 느껴집니다.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
체리 애쉬:(눈을 살살 털었다가, 발을 콩콩 딛어봐요.) 올라갈 수 있겠죠?
라 콕스:(그저 손을 이끌었다.) 네가 바란다면, 무엇이든.
체리 애쉬:(자신있게 미소짓곤 단번에 올랐다.) 바라요!
▶:둔덕 위로 올라가면, 중앙에는 둥그런 모양의
홈이 있는 거대한 바위가 있으며, 홈 주변에는 생전 본 적 없지만 읽을 수 있는
글씨들이 얼음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연, 이라고 적혀있네요~! … …응?
체리 애쉬:(잡은 손 마주보았다가,) …아뇨! 아무것도. (중앙의
홈을 들여다봅니다!)
▶:무언가를 끼워넣을 수 있게끔 마련된 자리인 것 같습니다.
▶:달칵. 시계를 끼워 넣자, 원래부터 그것을 위해 마련된 자리인 것처럼 틈 없이 맞추어집니다.
체리 애쉬:딱 맞아. (네 손을 꾹 잡아쥔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죠?
라 콕스:(내치지 않고 맞잡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래, 그런 것 같네. 그럼…, 다시 물을게. (이어지는 말에는 옅은 장난기가 어려 있다.) 체리. 겨울을 끝낼 준비는 된 거야?
체리 애쉬:… (웃음기 어린 입가를 달싹였다. 당신과 더 많은 계절을 함께하기 위한 준비는 마쳤으나, 모든 겨울을 내칠 생각은 없다고. 1년 뒤엔 다시 한번 이 눈을 맞아 같은 계절 아래 추억하기를 원하기에, 겨울이 오더라도 사람이 죽지 않는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이토록 궂은 날씨를 내치고 말겠다는 결단을 쉬이 내리 못하는 까닭은 당연하게도, 새하얀 눈 밭 위 어두운 점을 그려내던 너 때문에. 하지만 오늘은, 오늘만큼은 더 욕심내서는 안되니까.) 끝내요, 미래를 위해서.
체리 애쉬:(시선을 마주한다.) 같이 외어줄래요?
라 콕스:(라 콕스는 언제나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체리 애쉬의 눈길이 닿는 순간 시선이 얽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네. 네가 바란다면, 무엇이든.
체리 애쉬:이번에도, 바라요. (긴장으로부터 피어난 새하얀 입김이 바람에 무참히 흐트러지면, 거센 눈발이 그칠 때 까지 두 목소리를 겹쳐내고자 한다.)
눈과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라 콕스:(호흡이 맞춰지면, 함께 읊조린다.)
눈과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당신은 용과 손을 잡은 채,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선언을 합니다.
맹렬한 추위 속에서 잡은 손만이 내가 살아있고,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합니다.
이야기를 맺는 첫 선언을 하자, 뼛속까지 얼어붙는 추위가 둘을 뒤덮습니다.
두 번째로 외치자, 저 하늘 위에서 구름 사이로 두 개의 커다란 별이 나타납니다. 파랗게, 하얗게 불타오르는 그것은 마치 얼음이 불타는 듯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부르자, 저 하늘 위에 있던 두 개의 별이 우리의 앞으로 떨어집니다.
아니, 자세히 보면 그것은 별이 아니라 거대한 인간의 눈 한 쌍입니다. 구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서 있는 것으로 해를 덮을 만큼 거대한 인간의 몸뚱어리입니다.
▶:서리거인의 숨결에서는 가장 추악한 질투같은 냉기가 흘러나오고, 그 질투는 명확히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서리거인이 몸을 굽혀 발 아래 있는 작고 미미한 생명체들을 바라봅니다. 그의 푸르고 거대한 눈동자에서 나오는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습니다. 냉정한 시선이 둘을 향해 조리개를 잡듯 초점을 맞추고선, 이내 다시 그 얼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듯 분노 가득한 함성을 지릅니다.
둘은 이것이 겨울의 근원, 들려오던 괴성의 근원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을 외우나요?
체리 애쉬:(자신들을 향한 분노는 무엇때문에? 우리가 들어줄 수는 없는가? 당신의 노여움은 어째서 이렇게도 시린지. 이 붉은 머리의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라면 쉬이 감정을 베풀어서, 죽일 듯 냉기를 뿜어내는 이에게도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이유모를 악의, 그가 자신들에게 행하여지는 사정을 조금도 알지 못해서. 신체를 얼어붙이는 공포에 몸을 흠칫 떨다가도 제 곁을 버티어주는 자를 위해 한 차례 용기내어 외친다.)
눈과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눈과 바람의 이야기를 끝내고,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열 때가 되었다!
▶:쏟아지는 눈보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길고 지루한 겨울의 장은 끝날 때가 되었습니다.
눈과 바람, 불타는 얼음이 녹을 때가 온 것입니다.
서리거인은 분노에 차 거대한 손을 우리에게 뻗습니다. 하지만 그 손톱 끝이 우리에게 닿기 전, 서리거인의 발 아래에 세찬 물보라가 입니다.
녹은 얼음은 더 이상 거인의 무게를 견딜 수 없습니다.
거인은 이럴 수 없다는 듯 발버둥을 치지만, 그 괴로운 함성도 곧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 버립니다.
다시 누군가 거인을 불러내기 전까지는 저 차가운 바다 아래, 빙하의 가장 깊은 곳에 갇혀 후일을 기대할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가 서 있던 둔덕 위로 빛의 장막이 일렁입니다.
아, 어느새 눈보라는 그치고, 저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부드럽고 따뜻한 비가 내려 왕국을 녹입니다.
멀리서부터 퍼지는 연둣빛의 일렁임. 겨우내 잠자던 새싹이 일제히 움을 터, 둘의 주변까지 밀려듭니다.
하늘에는 별이,
땅에서는 꽃이,
라 콕스:(그저 말없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네가 이뤄낸 것들이야. 퍽 다감한 시선은 꼭 그리 말하는 듯했다.)
체리 애쉬:(마침내 찾아온 봄, 육지 내로 밀려온 파도가 저 있을 곳으로 돌아가듯이, 떨어져 나간 풍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채로운 온기를 되찾아 코 끝을 간질여온다. 언 눈길은 따스한 바람에 녹아 흐르는 물가가 되어 힘차게 내리오는 지상의 눈물이 될 것이고, 그리하면 다시금 세상은.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거친 여행길에 흐트러진 붉은 실오라기가 한차례 좌우로 흩날린다.) …우리. (단호한 목소리가 작게 떨리었지만, 이는 제 의사가 아니라는 듯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조차 세계의 온기에 녹기라도 했단 말인가.) 내가 바란다면, 그렇죠?
라 콕스:맞아, 네가 바란다면. (성에는 녹아 사라진 지 오래였으므로, 체온을 돌려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 온기를 당신에게 나누어 주었을까. 이 또한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일 터다.)
이야기가 끝났다면, 주연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오래 전 했던 약속이 당신을 파고듭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우리는 마법사였습니다. 우리는 곧 다가올 신들의 전쟁, 라그나로크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 동안 신적인 존재에게서 살아남으려 했으나, 둘은 늦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였습니다. 고로 두 사람은 영혼을 묶는 계약을 했습니다. 수십번의 죽음과 생을 반복하며, 인류를 지키기 위해 떨어질 수 없는 저주를 받기를.
처음이자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집니다.
▶:계약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면, 기억나지 않는, 혹은 아직 겪지 않은 감정이 소용돌이칩니다.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 포기하려 했던 순간들, 그럼에도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 했던 시간들. 그 속에는 분명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어느덧 둘은 깊은 후드를 눌러쓴 채, 이야기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인공은 완결이 난 순간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됩니다.
이야기를 마친 그들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체리 애쉬는 막 태어난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선, 왕에게 자신을 후계자로 정하기를 청하고, 용의 가까이로 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자신의 방에 시계를 던져 넣고, 사람들에게 조각을 가져다 줍니다.
어떤 때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었고, 어떤 때는 따뜻한 불길이 되어 스스로를 돕습니다.
그래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왕국을 줄곧 돕고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과거의 자신이 끔찍한 일을 겪더라도, 좌절하거나 무력감에 휩싸여 있더라도 그것은 쓸모없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이 순간을 위해….
어느 먼 왕국에 심장이 얼어붙은 용이 살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천사의 날개처럼 부드러운 깃털 침구에도
짝을 잃고 우는 나이팅게일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추위를 타고 찾아오는 죽음이 사람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하지만 용은 많은 재물도, 깊은 믿음도, 높은 지식도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왕자님에게 무슨 희생을 치러서라도 왕국을 구해내기를 명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은 어느 희생도 치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소망은 곧 얼어붙은 겨울을 녹여 내는 빗물이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왕자님은 무사히 용의 심장을 녹여내어 봄을 되찾았습니다.
'심장이 얼어붙은 용 이야기'라는 동화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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