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함께 도망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함께 인간성을 버리기로 합니다.
인륜을 저버린 자, 광장에 매달아 분시해 마땅할, 당장 파문당해 고해성사조차 허락되지 않을, 악마에게 홀린, 삿되고 추한, 사람도 아닌…….
그러나 막 황궁으로 들어오던 무렵의 그에 대해서 떠올려 봅니다. 너무나도 일찍 개화한 봄이라 세상이 그를 질투했었던 걸까요?
황후를 처음 보았던 날의 기억을 당신은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일종의 세계였고, 지나치게 거대한 존재였고, 수십억 년이 지나도 연소를 멈추지 않고 번쩍일 태양이었습니다.
어쨌든 당신이 지금 손을 잡고 달리고 있는 이는 이제 수많은 목숨을 앗고 자신마저 바치려 했던 마녀입니다. 그 마녀를 도망시키고 있는 자신은 뭘까요?
:우리가, 이렇게나 자유로운 기분으로 달려가도 좋은 걸까요?
숨가쁘게 달려, 시녀장이 대기시킨 검은 마차를 타고 황궁을 빠져나갑니다.
도망치는 건 좋아요. 하지만 대체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요?
이안 브란트:켈타콤으로 가자꾸나. (켈타콤, 교황청이 있는 도시 국가.) 거기라면 당분간 신변을 의탁할 수 있을 거야.
:그는 제게 은혜를 입은 적 있는 사제가 살고 있다 덧붙입니다. 게다가 켈타콤으로는 다른 나라의 군대가 들어올 수 없죠. 정치, 사상범들 중 인도적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은 주로 이곳에 망명하곤 합니다.
이안 또한 그와 비슷한 절차를 밟으려는 생각인가 봅니다.
첸 티엔:(하나뿐이던 손수건은 당신에게 주었으며, 제 몫의 손수건은 아직 준비하지 못했으니 남은 것이라곤 옷자락이 전부였다. 입고 있던 앞치마의 끝자락을 조심스레 들어 당신의 뺨을 톡톡 닦아낸다. 당신에게 묻어있는 피를 제 쪽으로 죄 가져올 심산이었다.
어쩌면 당신의 죄마저도!) 죄, 죄송해요. 소, 손수건을 준비하지 못해서…. 어디, 다, 다치신 곳은, 없으신 거죠?
이안 브란트:(제 품에 있을 손수건을 떠올려낸다. 그러나 꺼내지 않는 이유는,
소중한 물건에 지저분한 것이 묻어서야……. 그러나 당신의 옷자락을 빌리는 덴 별 이의가 없는 모양이니 참 아이러니하지.) 다친 데 없어, 그냥…. 춥네. (마주 앉았던 자리를 옮겼다. 당신의 옆에 앉아 머리를 기댄다.)
첸 티엔:(안도하는 낯 되었다가도 금세 울상이 된다. 피 묻은 앞치마를 주섬주섬 벗어 옆자리에 내려두고는 자세를 단정한다.) 무, 무릎을… 내어드려도, 될까요? 그럼, 조, 조금 더 편하게 기대실 수 있을 테고….
이안 브란트:(순식간에 검은 망토를 벗어젖혔다. 춥다는 말과는 상반된 행동이었으나, 피로 치덕거리는 옷을 걸치고 당신의 무릎에 마냥 앉고 싶진 않았다. 후드의 안에 입은 것은 익숙한 나이트가운이다. 그러니까, 그가
죽을 때 입었던 것과 같은. 손에 묻은 피를 후드에 닦아냈으나 말라붙은 핏자국은 여전하다. 익숙하게 당신의 무릎을 빌려 앉았다. 손 가지런히 무릎에 모은 채 고개만 기댄다.) 무거우면 말해. 마차가 오래 달려야 할 테니까….
첸 티엔:(낯익은 옷이다. 원체 감정 숨길 줄 몰랐으니 눈동자 사정없이 떨리는 것 또한 고스란히 드러났을 터다. 불안 감추지 못한 채 당신을 끌어안는다. 둘러 안은 팔에 힘을 준다. 불경한 태도였다.) 괘, 괜찮아요. 오히려…. 이렇게, 있고 싶어요. (
그런 모습은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적어도 제 품에 있을 적의 당신은 편안해 보였으니….) …무, 서워요. 제가, 폐하를 모시지 못할 때…. 그,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까 봐요.
이안 브란트:(당신의 동요를 쉬이 읽어낸다. 아무리 인형이라고 한들 피를 쏟으며 죽는 모습을 당신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
그 날의 목욕시중은 들지 않게 하였다. 시신을 보는 것쯤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미쳐버려 살인과 죽음마저 결심한 이에게 상식이 통할 리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언질이라도 줄 것을 그랬나. 뒤늦게 일말의 후회를 떠올리기도 하였으나 최측근인 당신이 깊이 슬퍼하지 않는다면 오해―이를 테면 당신이 황후를 살해했다는 의심―를 살 것이 뻔하였으니, 아마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리라. 느직이 손을 올려 당신을 토닥인다.) 그러엄…, 계속 이러고 있자. 나도 똑같거든. (두려워한다. 당신이 떠날 것을. 이어 낮게 속삭였다.)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네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면….
첸 티엔:(그제야 떨림이 멎어 든다. 그야, 첸 티엔이 이안 브란트를 떠날 리 없으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혹, 시라도…. 떠, 떠나고 싶으시다면. 저를, 데, 데려가 주세요…. (삶이 당신에게 버겁고 가혹하여 살아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라도 안정을 취하고 싶어진다면, 그 길에서라도 감히 함께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저는, 폐하의…. 조, 종이잖아요. 스틱스강을 건널 때도, 폐, 폐하의 옷단을 들어드려야 하는걸요.
이안 브란트:내가 없더라도 너는 잘 살아야지, 왜 그런 말을 해. (타박하는 투는 아니다. 그래도 곤란한 부탁인 것은 틀림없었다. 고르지 않은 숨을 들쭉날쭉 내쉬다가 끝내 한숨쉬었다.) 내가 오래 행복하게 살라고 명령하면? 그렇게 살 거야? (이는 단순한 의문이었다.)
첸 티엔:제, 행복은…. 폐하이고, (당신을 그러안은 손을 잠시 거둔다. 품을 뒤적여 받았던 머리 장식을 꺼내더니,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손길로 당신의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그 위로 장신구를 고정한다.) 저는, 폐, 폐하의 곁에 있어서야 비로소…. 사, 살아있음을 느껴요.
그 명령, 속에는…. 폐, 하가 계신가요? 그, 그렇지 않다면…. 저는 부, 불행할 거예요.
이안 브란트:네게 하사한 것인데 왜 돌려주니. (입술 삐죽거렸다. 빼내지는 않았다. 당신이 불행을 입에 올릴 즈음에는 자꾸만 삐죽거리던 입술도 가만 냅두었다.) 그냥 해 본 말이야. 바보.
그렇지, 너는 내 것이니까…. 어디든 데리고 다녀야지. 주인된 도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어. (당신의 목을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첸 티엔:(당신에겐 어여쁜 것이 어울리니까. 수줍음 탓에 대답 건네지 못한 채 배시시 웃기만 한다. 당신이 편히 기댈 수 있게끔 다시 한번 자세를 정돈하고,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게끔 허리를 그러안는다.) 주, 주무실 건가요? 그럼, 자, 자장가를….
이안 브란트:(작게 도리질했다.) 안 자. 눈만 잠깐 감고 있을 거니까……. 이따가 불러 줘. 그리고 오늘 같이 자.
첸 티엔:앗, 네, 네에. (눈 동그랗게 뜬다. 그는 대체로 당신의 말을 잘못 이해했을 때 이런 표정을 짓곤 했다.) 자, 잠드실 때까지, 겨, 곁을 지켜드릴게요.
이안 브란트:몰라, 약속했어. (뭘? 냅다 불공정 계약.)
첸 티엔:어, 어엇. (
그는 대체로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이런 표정을….) 네, 네에.
:마차는 계속해서 달립니다. 갑작스럽게 도망친 길이므로 두 사람의 수중에는 지금 아무런 여행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시녀장이 두 사람을 도피시키며 약간의 귀금속과 식량 등을 챙겨주었지만, 그래도 보급이 필요할 거예요.
그러나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이안 때문에 검은 마차는 한참을 더 달렸습니다. 그런 후에야 숨죽여 수도를 멀리 벗어난 곳의 작은 마을로 들어섭니다.
시간은 이제 사위가 칠흑같이 어두워진 한밤, 어쩌면 오늘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눈 앞에는 여관 하나가 있습니다.
첸 티엔:마, 마차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들, 어가서… 바, 방을 잡아 올게요.
이안 브란트:왜 두고 가? 같이 가. (덜컥 손을 붙잡았다.)
첸 티엔:하, 하지만…. (어쩔 줄 몰라 하며 당신의 손을 맞잡는다.) 가, 가운만 입고 계신걸요. 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 보게 할 수는. (얼핏 체면치레를 논하는 말로 들릴 법도 하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를 짚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이런 모습은…. 타인이 보아서는 안 되지 않나?
첸 티엔이면 몰라도.)
이안 브란트:그런 게 뭐가 문제라고……. (당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는지 흥, 하며 손톱을 세워 손등 꾸우욱 눌렀다가 뗀다. 당신의 손등 위에 초승달 모양으로 손톱 자국이 남았을 것이다.) 빨리 다녀와. 그거 없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해.
첸 티엔:(볼 발그레 붉힌다. 고작 손톱자국 하나도 당신이 새겨 주는 것이라면 그 의미가 남달랐다. 상기된 기색 숨기지 않고 고개 끄덕이더니, 이윽고
여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끼익, 소리와 함께 여관의 문이 열립니다. 왼편의 공간은 여관주인이 앉아 있으며, 안쪽으로는 테이블이 놓여 있는 걸 보아, 낮에는 식당으로 쓰는 공간인 듯합니다.
여관주인: (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당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방은 하나밖에 안 남았소.
첸 티엔:(바닥에서 자야겠군.) 그, 그럼…. 하나라도.
여관주인: 따라 오시오. (시큰둥한 얼굴. 열쇠를 챙겨들고 위층 객실로 안내한다.)
:기름칠 되지 않은 문짝이나 퉁명스러운 여관 주인을 보고 방의 상태를 걱정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다행히 관리를 잘 해두었는지 침구도 깨끗하고, 방도 그런대로 넓네요. 안내를 해 준 뒤 여관 주인은 다시 1층으로 돌아갑니다.
첸 티엔:(이안을 데리러 나가기 전 주인을 보며 묻는다.) 호, 혹시… 근방에, 오, 옷을 파는 가게가 있나요?
여관주인: 옷 가게야, 사람 사는 마을이니 없을 리가. 허나 지금 시각이라면 모두 닫았지 않겠소?
첸 티엔:(끄응.) 여, 역시 그렇겠죠. 감, 사합니다.
(조르르… 마차로 달려가 문에 노크를 한다.) 폐, 폐하…. 바, 방을 잡았어요.
이안 브란트:(문을 벌컥 연 뒤 손부터 내밀었다. 손톱 자국 확인하려는 듯….)
이안 브란트:늦었잖아. (손톱으로 콕콕콕콕 손등 누르기나….)
첸 티엔:죄, 죄, 죄송해요…. (그리 말하는 것치고는 귓가가 붉다…. 당신을 부축하기 전 짐을 뒤적여 새 로브를 꺼내더니, 그대로 당신의 어깨 위로 둘러주었다.) 어, 업어드릴까요?
이안 브란트:죄송한 얼굴 아닌데도. (꼭 태클을 걸었다! 이어 고개 끄덕거리며 냉큼 대꾸했다.) 업힐래.
첸 티엔:(속내를 들킨 것만 같다. 얼굴은 더욱 붉어져만 갔다…. 대답 대신 몸을 돌려 당신의 앞에 등을 내보인다.)
이안 브란트:(등 뒤에 업혀 당신의 귓바퀴를 자꾸만 더듬었다. 아마 객실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그랬을 거다.)
첸 티엔:(객실에 도착한 뒤에도 붉어진 얼굴이 하얗게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바, 바, 방이, 하, 하나만 나, 남아있다고 해서…. 저, 저는 바닥에서 잘게요.
이안 브란트:왜? (멀뚱.) 같이 자자고 했잖아. 약속했잖아.
첸 티엔:(갸우뚱.) 가, 같이 자는 것…, 아닌가요? 가, 같은 방에서, 잠, 드는 거잖아요.
이안 브란트:같은 방에서 자는 게 어떻게 같이 자는 거야? (발을 꿍 굴렸다.) 하여튼 네가 좋다고 했고(?) 난 안 무를 거야. (막무가내!)
첸 티엔:(기어이 눈이 핑핑 돌기 시작했다.) 그, 그럼…. 의, 의자를 끌어올까요? 자, 잠드실 때까지, 옆에 앉아서…. 그, 정도면, 같이 자는 게 되지 않, 나요?
이안 브란트:더한 거 시키기 전에 그냥 그러자고 하지 그래….
이안 브란트:오늘 끝장을 보자 이거지? (아닐 것이다.) 나 씻을래. 같이 씻어.
첸 티엔:하, 하, 하지만, 저는, 사, 사용인이고, 폐하는, 폐, 폐하이신데, 어떻게, 그런…. (중얼중얼중얼. 끊임없이 웅얼거리다가도 퍼뜩 고개를 든다.) 앗…. 따, 따뜻한 물을 받아올게요. 조,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이안 브란트:이제 폐하도 아니잖아. 뭐 그런 걸 따져. (흥.) 또 그러자고 했다. (자꾸 뭘?) 앉아 있을게.
첸 티엔:앗…. 그, 그렇네요. 폐, 폐하라고, 부르면…. 의,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까. (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주인님? 도련님? 여전히 중얼거리며 목욕 준비를 한다. 마침 비싼 방이 남아있었던 것인지, 방에 딸린 욕실에는 자그마한 욕조가 달려 있었다. 욕조 가득 더운물을 채운 뒤에야 당신에게로 돌아간다.) 폐하…. 시, 시중을 들어 드릴게요.
이안 브란트:(소파 구석에서 웅크려 졸다가 파뜩 고개를 든다. 동시에 옆자리를 더듬는 모습 또한 보였다. 꽤나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의 손목을 붙잡는다.) 어디 갔다 왔어? (영문 모를 말 내뱉은 뒤 제 이마를 짚었다. 금세 잠잠해졌다.) 아니, 아니야…. 그랬지. 목욕. (당신의 팔목을 붙들고 일어났다. 탈의 또한 당신에게 맡기는 것인지 얌전히 양팔을 벌리기만 했다.)
첸 티엔:(붉은 눈이 분주히 깜박인다. 당신의 이상을 눈치챈 탓이다.
다음부터는 항상 손톱자국을 새겨달라 말씀을 드려야겠다. 그렇다면 조금은 안심하실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당신에게 둘러진 로브의 매듭을 푼다. 목욕 시중은 익숙한 일이었으니 그 손놀림에 주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윽고 묵직한 천이 투욱,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이트가운은 재질이 부드럽고 얇아 몸 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옷이었으니, 행여나 당신의 살갗에 제 손 닿기라도 할까 신중을 기울여 옷감만을 집어낸다. 그리고는 팔을 따라 벗겨내었다.) 추, 우실 텐데…. 어, 어서 들어가요. 폐, 하께서 조, 좋아하시는 온도로 맞추어 두었어요.
이안 브란트:(쓸데없이 눈치가 빠르고, 조심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으나 가끔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당신의 손을 붙잡고 욕실 안으로 들어간다. 욕조에 몸을 담그기 전 머리장식은 다시 떼어 당신에게 쥐여주었다.) 내일도 직접 채워 줘.
(욕조에 들어가 온몸이 따끈해질 무렵 멀뚱멀뚱 당신을 쳐다본다.) 너는? 안 들어와?
첸 티엔:(머리 장식 꼬옥 쥔 채 덩달아 멀뚱멀뚱 시선을 마주한다.) 네? 제, 제가요? 왜…요? (이런 질문이나.)
이안 브란트:넌 안 씻어? 그래야 같이 자지. (전부 다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
첸 티엔:앗. 폐, 폐하께서 다 씻으시면…. 느, 늦지 않게 씻고 들어갈게요. (헤헤.)
이안 브란트:같이 씻자고오. (손 쥐고 흔들흔들.)
첸 티엔:(같이? 씻는다는 게? 뭘까? 정말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다. 누군가를 섬기기만 해온 이는 도무지 주인과 함께 몸을 담근다는 가정을 떠올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안 브란트:너…. 짜증나아아. (당신의 방향으로 물을 한 번 튀긴다.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영 짜증을 부리는 듯하다.)
첸 티엔:허, 허억. (순식간에 울상이 된다.) 제, 제가, 뭘…. 자, 잘못했나요? (우우.) 아, 알려만 주신다면…. 고, 칠게요. 미,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이안 브란트:됐어, 같이 목욕도 안 해주고, 같이 자 주지도 않겠다는 이와는 얘기도 안 할 거란다……. (단단히 삐친 모양. 그래도 당신의 표정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좀 풀리기는 하는 모양이다. 조그맣게 덧붙인다.) 안고 자기로 약속하면 풀어줄 수도 있고….
첸 티엔:(우웃. 귀가 있었다면 분명 브이 자 모양으로 뾰족 섰을 것이 분명하다. 이어지는 말을 듣는다면 아래로 추욱 처질 것이 분명하고. 티 나게 화색 띠었다가도 슬그머니 눈치를 본다.) 하, 지만…. 저, 저는…. 차, 가운데다…, 따, 딱딱해서. 아, 안고 자기엔 적, 합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괘, 괜찮으신가요?
이안 브란트:상관없어.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욕조에 얼굴을 반쯤 담갔다가 들었다. 젖은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너도…, 나랑 자기 싫은 건 아니잖아. 그렇지?
첸 티엔:(음험한 마음 들킨 이마냥 어깨를 파들 떨었다. 감히 섬기는 이를 마음에 품었으니 그 죄질이 퍽 무겁다. 제 마음 숨길 생각도 않았으니 더욱 그렇다. 얼굴 새빨갛게 물들인 채 묻는다.) 저는…. 폐, 폐하의, 시녀인데. 그래도…, 거, 거두어 주시는 거예요? (이전에 물은 것과는 다른 의미의
거둠일 것이다. 노골적으로 표하자면, 마음뿐 아니라 육체 또한 가져줄 수 있느냐 묻는 것.)
이안 브란트:이제
폐하가 아니라고 말했잖아? 너 또한 황후의 시녀가 아닌 거고. 그렇다면 너는 이제…. 나의 반려로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안 될 게 어디 있을까. (죄질을 따질 이유가 없다. 소리 없이 웃었다.) 진작 내게 입도 맞추었던 애가 말이 많구나….
첸 티엔:(흐읍, 숨 들이켠다.) 바, 반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리기도 했다. 시허옇던 인물은 더는 붉지 않은 곳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발갛게 물들었다. 기실 첸 티엔은
사랑을 논했으나 그 사랑은 자신만의 것이라 여겨 왔다.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곤 감히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제 주인은 그저 자신의 종을 어여삐 여기어 거두어준 것이지, 결단코 이
사랑이 이루어질 것이라곤….)
저, 저를…. 사, 랑하세요? (기어이 묻는다. 묘한 열기를 띤 질문. 거대한 설렘이 어린 말.)
이안 브란트:내가 그 말 안 해 주었던가…. (당신의 애정을 듣기에 급급하였으니 반대로 애정을 말해 주었던가, 하는 것은 기억에도 없다.) 이리 와 봐. (태연하게도 제게 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첸 티엔:(순순히 다가선다. 그런 것치고는 공손히 모은 손을 쉼 없이 꼼지락대고 있었지만.)
이안 브란트:(당신의 양 뺨을 붙잡는다. 목욕물에 담근 손은 새발갛게 물든 뺨과 얼추 비슷한 온도. 쉼없이 눈을 마주하였으니 하얀 눈동자에는 붉은색이 짙게 비친다.) 사랑해, 그러니까, 나랑 평생 같이 있어…. (나긋나긋 속삭인 뒤 입술을 겹쳤다.)
첸 티엔:(곧잘 맞추었던 시선마저 쉬이 맞추지 못하고 눈을 굴렸을 것이다. 기어이 입술이 맞닿고, 흰 눈에 비친 붉음을 바라볼 적이면 숨마저 멈추어 낸다. 눈 감는 법조차 잊어버린 채 그저 당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저, 로도…. 괘, 괜찮으신가요?
이안 브란트:(되려 묻는다.) 나로도 괜찮니?
첸 티엔:제, 게는…. 과, 과분한 분이세요. 하지만, (속삭인다.) 감히…. 욕, 심을 내도, 괘, 괜찮을까요?
이안 브란트:과분하다는 말이 과분한걸, 이제는…. (그리 말하나 오히려 후련한 낯이었다. 목을 감싸 안는다.) 더 욕심 내도 돼. 이왕이면 다 가져가 주는 편이 좋겠네. 나는 이미 너를 가졌잖아….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
첸 티엔:여, 영원히…. 불공평, 했으면 좋겠어요. (드물게도 당신과는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관계의 무게는 오로지 제게 치우쳤으면 했다. 당신은 마음 편히 저울 위에 앉아 발을 달랑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으면 했다. 사랑에서 비롯된 모든 힘듦은 자신이 가져갈 테니, 당신은 그저 행복만을 취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첸 티엔 또한 행복해질 테니까.) 그런, 건…. 벼, 별로인가요?
이안 브란트:(희미하게 웃었다. 결국 당신의 뜻에 긍정한다.) 아냐, 좋네. (아무래도 제 반려는 받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모양인가 보다. 그렇다면, 천천히 알려주면 되는 노릇이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품에 안겨주다 보면, 영원의 끝에 도달할 즈음 저울의 눈높이도 얼추 비슷해지지 않겠는가. 그거면 될 것 같다.)
나아, 목욕 그만 하고 나가서 쉴래. (그런 의미에서 함께 목욕하는 것도 좀 더 미루기로 했다. 지금 함께 목욕했다간 제 머리 말려준다고 당신의 몸은 제대로 닦지도 않을 모습이 눈에 선했으니까. 그러니 오늘의 조르기는 당신의 목욕 후에 이어갈 예정이다.)
첸 티엔:(배시시 웃는다. 아무래도 당신의 계획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 듯하다. 서둘러 보드라운 천을 챙겨 와 당신의 몸에 맺힌 물기를 훔쳐내었다.) 저어, 그, 그러면…. 아, 앞으로는, 폐, 하를…. 어,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
폐하라는 호칭은 아무래도 타인의 시선을 사기 쉽지 않나. 그리고,
반려를 폐하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안 브란트:응? 이안이라고 불러. (멀뚱….)
첸 티엔:헉. 제, 제, 제, 제, 제, 제가, 어, 어, 어떻게, 그, 그런?
이안 브란트:(멀뚱멀뚱. 수건 뺏들어 몸에 둘렀다.) 왜 안 되는데?
첸 티엔:(그렇게 물으니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다. 결국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하, 지만….
(고개 푹 숙인다. 귀 끝이 시뻘겋다.) 이, 이, 이름은, 부, 부끄러운걸요…….
이안 브란트:(고개만 갸우뚱.)
티엔이라고 불리는 건?
첸 티엔:(고개 살짝 들어 올린다.) 그, 그건…. 괜, 찮아요. 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불러주셨으니까….
이안 브란트:(머리카락에서 물기 뚝뚝 떨어지는 채로 침대에 걸터앉는다.) 나는 아무도 안 불러 주니까 네가 이름 불러 줘. 안 돼?
첸 티엔:(눈 휘둥그레 뜬다. 황급히 새 수건을 가져와 당신의 머리카락을 닦기 시작했다.) 저, 저, 적응할, 시, 간을, 주시면…….
이안 브란트:얼마나? (기한부터 묻는 것을 보아 오래는 못 기다린다는 의미….)
이안 브란트:응? 짧네…. (대체 얼마를 상상한 걸까?) 그래, 그럼. 그 전에는 뭐라고 부를 거야?
첸 티엔:음. (한참을 우물거렸다. 무얼 생각한 것인지 목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하더니,) 부, 부인…?
이안 브란트:부인? (이번에는 이쪽이 눈 휘둥그레 떴다….)
첸 티엔:바, 반려라고, 해, 주셨으니까…. (뒤늦게 눈치를 본다.) 안, 되나요?
이안 브란트:아, 아니. 안 되는 게 아니고, 새, 생각 못했던 거라. (입꼬리 올라가는 거 참지 못하고 손등으로 입매 가렸다.) 좋은 것 같네, 응, 좋아…….
(입꼬리 올라가는 것 겨우 표정 가다듬고 당신의 뺨에 입 맞춘다.) 씻고 와. 물 새로 받아서. 나 혼자 머리 말릴 수 있을걸? 아마.
첸 티엔:앗…. (붉어진 열 식힐 새도 없이 퍼뜩 고개 든다.) 마, 말려드리고 씻을게요.
이안 브란트:음. 그럼 그렇게 해 줘…. (거절하지 않았다…. 작은 화장대 앞으로 총총 걸어가 의자에 앉는다.)
첸 티엔:(헤헤… 웃으며 당신의 뒤에 자리를 잡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건을 들어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다.) 머, 먼저 주무시고 계세요. 금방, 씻고 돌아올게요.
이안 브란트:으응. (토끼의 손을 타 뽀송뽀송해졌다.) 천천히 씻고 나와. 그런데 너무 늦으면 안 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까다롭다.)
첸 티엔:네, 네에. 저 그런 거 잘해요. (당신을 침대에 눕혀주고 이불까지 꼭꼭 덮어준 뒤에야 욕실로 들어갔다. 최대한 빠르게 씻고 머릴 말린 뒤에 당신의 곁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니 매트리스가 기울었다.)
이안 브란트:일찍 씻었네. (매트리스 기울자마자 눈을 번쩍 뜨는 것을 보아 잠들지 않았던 듯하다. 냉큼 팔부터 벌린다.)
첸 티엔:앗…. 주, 주무시지 않고요. (팔 벌린 것을 보고서는 잠시 주저한다. 그러나 이윽고 조심조심 그러안았다. 자신을
반려라 지칭해주셨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안 브란트:(조금만 더 주저했더라면 힘으로 당겨버렸을지도 모른다. 짧은 주저 끝에 품을 내어주었으니 헤헤 웃으며 안아버렸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자는 건 또 오랜만이네. (잠시 눈을 깜박댄다.) 내 말은…. 더 일찍 이렇게 못 해서 아쉽다고.
첸 티엔:(타인을 안아본 적 없었으니 그 품은 조금은 뻣뻣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차갑지는 않았을 터인데, 까닭은 단순하다. 고작 포옹 하나만으로 세상의 모든 부끄러움을 다 짊어진 낯을 하고 있었으니.) 저, 저도, 요…. (그리고는 문득 묻는다.) 지, 금은…. 해, 행복하신 거죠?
이안 브란트:씻고 나와서 그런가? 좀 따뜻하…. (품에서 고개 떼어내는 순간 새빨개진 얼굴 보였으니 입을 슬쩍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잠들기 전까지 놓지 않을 작정인지, 당신의 말이 끊길 때마다 연신 입을 맞추었다.) 그으럼. 정말
부부 같잖아. (시선을 맞춘다.) 행복해?
첸 티엔:(
푸시식… 소리가 난 것 같기도 하다.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나 시선만은 똑바로 마주했는데, 역시나 붉었다. 꼭
사랑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이안 브란트:터졌다…. (터진 토마토 꾹꾹 눌러본다. 토마토 누르면 아파요.) 내가 그렇게 좋아서 어떡해?
첸 티엔:좋, 아서…. 해, 행복해요. (배시시 웃는다.) 가, 감사해요, 이렇게…, 행, 복하게, 해주셔서.
이안 브란트:더 행복하게 해 주고 싶네… ……. (분명히 음험한 욕구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건….) 나도 좋아. 지금 가장 행복한데, 앞으로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첸 티엔:(고개 갸우뚱 기울이기만 한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손쉽게 수긍하고는 당신을 조금 더 꼬옥 끌어안아 본다.) 노, 력할게요. 앞으로 더…. 해, 행복해지실 수 있게요. 무엇이든…. 해, 해드릴 수 있어요.
이안 브란트:너 이해 못 했지…. (슬금 웃으며 품에 얼굴을 묻었다.) 3개월 뒤 이안이라고 불러주는 것만 생각해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열심히 해 봐.
첸 티엔:(또다시 갸우뚱. 당신이 웃어주니 좋다고 또 헤헤 웃기나 한다.) 헉, 네, 네에. 저어…. 노력할게요. (느릿느릿 등을 도닥인다.) 피, 로하실 텐데…. 어서 주무세요.
이안 브란트:나아, 자장가. (잊지 않았다는 듯 냉큼 요구했다.)
첸 티엔:앗…. (흠, 흠. 목을 가다듬는 것도 잠시 느릿느릿 음을 흥얼대기 시작했다. 당신만을 위한 자장가를 한참이나 불렀을 것이다.)
이안 브란트:나도, 나중에 노력해 볼게. 그, 자장가 같은 거 말야. (목을 가다듬는 동안 슬그머니 말했다. 당신이 저보다 일찍 잠들 일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번쯤은 불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는다.)
첸 티엔:괘, 괜찮은데. 저는…. 부, 부인….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아직은 수줍은지 히히 웃기도 했다.) 께서, 잠에 드시는 걸 보는 게 즈, 즐거워요. 좋, 은 꿈을 꾸실 수 있도록…. 지켜드리는 것만 같잖아요.
이안 브란트:내 낭군께서는 이렇게 부끄럼이 많으셔서, 원. (놀리듯 말했다. 변명하자면 귀여워서 그랬다!) 그거 알아? 네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준 날이면 매번 좋은 꿈을 꿨다는 거….
그런데 이제는… 나 잠들고 나면 너도 바로 자야 해, 알았지? 붙어 자니까 꿈에서 만나기도 쉬울 거 아냐.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으며 눈을 슬그머니 떠 쳐다본다.)
첸 티엔:(볼이 타들어 갈 듯 붉어졌다…. 오로지
사랑뿐인 표정으로 당신을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네, 네에…. 그럼, 꾸, 꿈속에서도, 지켜드릴 수 있게 되겠네요. 기, 기뻐요….
이안 브란트:(터지는 거 아냐? 생각하며 속절없이 웃고 만다.) 꿈속에선 좀 쉬어도 되지 않나 싶지만…. 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그러엄, 여보. 안녕히 주무세요.
첸 티엔:(분명 터졌다. 터졌을 것이다. 살짝 죽?어버린 상태로 겨우겨우 답한다.) 부, 부인, 도요….
이안 브란트:(분명 뭔가? 터진? 것 같은데. 으응, 대충 대꾸만 하고 모른 척해줬다. 며칠간 수많은 일이 있지 않았나. 당신에게도, 내게도. 결국 당신에게서 평온을 되찾은 이는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창문 밖으로 은빛 나뭇잎이 나부끼는 새벽에, 당신은 문득 기묘한 소리를 듣고 눈을 뜨게 됩니다.
분명히 곁에서 잠들었던 이안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방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네요. 이 시간에 대체 어딜 간 걸까요?
첸 티엔:부, 인…? (급히 몸 일으킨다. 열린 방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볼 수 있나요?)
:다른 방들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길은 아래층으로만 이어져 있으니 당신은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다행스럽게도 멀리 간 건 아닌가 봐요.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이안이 보입니다.
여관 1층, 낮에는 식당으로 사용하는 공간. 홀로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첸 티엔:(거칠어진 숨 고를 새도 없이 당신에게 달려갔다.) 저, 저도…. 깨, 워주시지 그러셨어요. 가, 같이 나오면 조, 좋았을 텐데.
이안 브란트:(인기척을 못 알아채는 편이 아닐 텐데, 당신의 인기척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멍하니 앞을 쳐다보다가 당신의 말소리를 듣고야 느릿느릿 고개를 돌린다. 낯 위로 떠오르는 것은 혼란보다 공허.) 어디 갔었어? (자리를 비운 것은 틀림없이 본인임에도 오히려 당신에게 묻는다.)
첸 티엔:(눈썹 늘어트린다. 목욕물을 준비한 뒤 돌아왔을 적에도 이런 반응을 보여주셨었지. 당신 곁에 무릎 꿇어앉은 채 허리를 세운다. 딱 알맞게 당신을 올려다볼 수 있는 높이. 그대로 당신의 무릎 위에 제 손을 올려둔다. 손등을 위로 한 채였다.) 죄, 송해요…. 소, 손톱자국을 남겨달라고, 부,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잠자리를, 주, 준비하느라… 말, 씀드리지 못했어요. 지, 지금이라도, 남겨 주시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텅 빈 얼굴로 당신을 내려다봤다. 당신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채, 마른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세기로 강하게 붙들었다. 중얼대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너만 있으면 된다고.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듯, 제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았다. 당신의 손이 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것도 잠시, 곧 손의 힘이 스르르 풀리고….)
(미간 찌푸리며 눈을 감는다. 초점을 잡으려는 듯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렸으나 여전히 흐린 눈빛이다.) 방금…, 뭐라고 했어?
첸 티엔:읏…. (미약하게 신음을 흘린다. 고통 탓에 저절로 인상 찡그리기는 하였으나, 당신과 시선 마주칠 적이면 의식적으로 표정 풀어내려 노력했으니 결국은 순한 낯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손아귀 힘 빠질수록 더욱 그랬다. 당신이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괜찮았다. 그만큼 자신이 상황을 살피면 될 일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괜찮았다. 그만큼 자신이 더 기억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당신이 불안해하거나 자책하는 것만은 괜찮을 수가 없다. 그것들은 자신이 가져갈 수 없는 감정이지 않나. 그렇기에 아무 일도 아닌 양 웃는다. 딱 평소만큼만 수줍어했다. 눈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었으니 미소는 가장이 아니며 그저 진심이 된다.) 부, 인과…. 가, 같이… 있고 싶다고 했어요.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이안 브란트:으응, 같이 있어…. (마주하는 당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니 그 또한 순한 낯을 짓는다. 언제 인상 찡그렸냐는 듯 유순하게 내려간 눈매를 자꾸만 손등으로 비비며, 다른 손으로는 무릎 위에 올라온 당신의 손을 약하게 쥐었다.)
(이어 옷을 걷어 무릎 부근의 얕은 생채기를 보여준다. 당신을 깨운 소리 아마 그가 어딘가 부딪히며 난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나, 이거 봐…. 못 걷겠어. 업어줘. (습관처럼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보아 다리는 멀쩡하기만 한데, 평소보다 어리광이 심하다.)
첸 티엔:(손 마주 잡아 준다면 바보 같이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눈꼬리는 금세 처지고 만다. 얕은 생채기 하나만으로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고개 숙여 생채기 위로 입을 맞추고, 기꺼이 몸을 돌려 등을 내보인다.) 다, 다음엔…. 일, 어나실 때, 저도 깨워 주세요. 부, 부인께서, 다치는 모습…. 보, 고 싶지 않은걸요. 스, 슬퍼요.
이안 브란트:(당신에게 익숙하게 업혀 온기를 느낀다.) 응. 그런데, 나는 그냥, 방이 너무 어두워서…. (정리되지 않은 단어를 횡설수설 나열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객실에 다시 도착하면 당신을 꼭 껴안고서 웅얼거린다.) 날이 밝으면 다시 움직여야겠어….
첸 티엔:마, 많이 어두웠죠. 다, 음엔…. 드, 등불을 준비해 둘게요. (헤헤… 웃으며 대꾸한다. 당신을 침대 위로 내려주고는,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당신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몸을 뉜다.) 해, 가 뜨기 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어요. 그러니까…. 더, 주, 주무세요.
:응, 그는 짧은 대답 뒤 금세 잠이 듭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표정을 하고서요. 혼란스러운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습니다. 당신은 잠들 수 있었던가요? 여하간 두 사람은 다시 도망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첸 티엔:(해가 뜰 때까지 밤을 지새운다. 마주 본 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남몰래 손등으로 뺨 쓸어보기까지 하였으니 첸 티엔에게 있어 이 새벽녘은 그리 힘든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행복했겠지.)
(동이 트면 느지막이 당신을 불러 본다.) 부, 부인…. 이제, 이, 일어나셔야 해요.
이안 브란트:(고개를 틀어 창 바깥을 살핀다.) 아직 어두운데…. (투정하듯 중얼댔으나 당신의 말이니만큼 몸을 일으켰다. 당신을 한 번 안았다가 놓아주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옷을 하나둘 거리낌없이 벗어 바닥에 떨구었다. 제 무릎의 생채기를 본 뒤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옷 시중을 들기 위하여 시녀장이 챙겨 준 짐을 열어 보면, 이안이 평소 입던 옷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각각 녹색과 붉은색입니다. 이안에게 보여주면 그는 어딘가 의아한 표정을 짓습니다.
첸 티엔:(익숙하게도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개어 챙긴 뒤 외출복을 들어 보여주었을 것이다. 의아한 낯 마주하면 덩달아 의문을 표한다.) 펴, 평소에 입으시던 의복이에요. 마,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
이안 브란트:(한참 당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혼란스럽던 기색은 금방 가시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신의 왼손에 들린 옷을 가리켰으니 녹색 옷을 골랐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었다.)
첸 티엔:심리학| 기준치: | 60/30/12 |
| 굴림: | 75 |
| 판정결과: | 실패 |
(눈 부빗. 첸 티엔이 이안 브란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다!)
심리학| 기준치: | 60/30/12 |
| 굴림: | 1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숨기는 듯한 모습입니다. 옷을 고를 때도,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적당히 아무 옷이나 가리킨 듯하다는 기분이 들고요. 상태가 좋지 않기라도 한 걸까요?
첸 티엔:(슬그머니 당신의 눈치를 보며 묻는다.) 저어…, 다, 다른 옷을 준비할까요?
이안 브란트:응?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다가 급히 고개를 든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시선 맞추지 않는다. 드물게 주춤거렸다.) 티엔, 네 눈 말야….
첸 티엔:(눈 깜박거린다.
왜… 봐주시지 않는 거지? 자신도 모르게 시무룩한 티 냈을 것이다.) 누, 눈이요?
이안 브란트:(입술 달싹이다 결국 꾹 다물었다.) 별 일 아냐. 그냥, 부었나 싶어서. (당신의 눈두덩이 위로 가볍게 손등을 가져다 댔다 뗀다. 다른 물음 던질 시간도 없이 그는 등을 돌려 짐을 챙기기만 했다.) 어서 나가자.
첸 티엔:(혼란스러운 낯이 된다. 제 눈가를 더듬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저…. 제가, 아, 알면 안 되는 사실인가요?
이안 브란트:아, 아니. (놀란 듯 어깨가 작게 들썩였다.) 그런 게 아니고, 그게…. 별 일 아니라서. 금방… 괜찮아질 거 같아서 그래. (나갈 채비를 끝낸 뒤에야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첸 티엔:(눈썹 늘어트렸으나 더 묻지 않는다. 당신이 숨기고 싶어 한다면 기꺼이 속아야겠지.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은 다시 마차에 오릅니다. 이안은 당신의 손을 붙잡은 채 아무 말도 없이 몸을 기대기만 합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요? 잠시 후 바깥에서 마부가 고함 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안은 다급하게 창문을 엽니다. 마부가 전하는 요지는
누군가 쫓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안 브란트:(창 밖을 살피더니 창백하게 질려 당신의 손을 찾아쥔다. 안정을 찾으려는 손길이었다.)
황궁의 표식이 있어. 나를 찾아온 건가 봐. (떨리는 손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매만진다.) 조금 더 서두르는 게 좋았을걸.
첸 티엔:(양손으로 당신의 손 하나를 감싸 쥔다.) 괘, 괜찮을 거예요. 충, 분히 따돌릴 수 있을 거고요. (이어 목소리를 높인다.) 조, 금 더…. 빠, 빨리 마차를 몰아주세요. 따, 돌려야 해요.
이안 브란트:(시야가 아득해져 결국 당신을 껴안기만 한다. 몸을 빈틈없이 밀착하였으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쉬는 것이 당신에게까지 느껴진다.)
:창 바깥을 살피면, 말 두 필이 마차를 뒤따라오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거리나 속도를 보아하니 이대로 따라잡힐 일은 없을 듯합니다.
다만 뒤따르는 자들이 마차에 무언가 던진 것인지, 둔탁한 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마차가 크게 덜컹입니다.
첸 티엔:민첩|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마차가 크게 덜컹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안고 있는 이안 또한 다치지 않은 듯합니다.
마차는 계속하여 달립니다. 몇 번이나 불안하게 휘청이길 반복한 끝에, 간신히 마을로 진입합니다. 교황청 바로 근처의 마을입니다.
그들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듯하니, 접전 끝에 간신히 추격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립니다.
:우선 쉴 곳을 찾아 걸음을 옮기는 것도 잠시,
그런데 이안이 이상합니다. 걸음걸이가 자꾸 비틀거리고, 무언가에 지속적으로 부딪힙니다. 당황스러워하며 멈춰서기도 합니다.
첸 티엔:(덩달아 당황스러워한다. 몸이 안 좋으신 걸까? 어쩔 줄 몰라 하며 당신의 곁을 배회하더니,) 저어, 어, 업어 드릴까요?
이안 브란트:그, 냥… 부축만 해 주면 돼. (당황한 기색 숨기며 손을 뻗는다. 그러나 당신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헛손질 했으니 금방 초조함이 드러났다.)
마부: 어딘가 편찮으신 듯한데, 그렇다면 마을 의원에게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필요하시다면 의원에게 두 분을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이 마을 출신이거든요.
첸 티엔:(성큼 팔을 뻗어 당신의 손을 붙들어 쥔다. 놓치지 않게끔 깍지 껴 쥐고는 당신의 안색을 살폈다.) 그, 그러는 게 좋겠어요. 부인, 조, 금만 견뎌주세요. 금방….
이안 브란트:(당신의 손길에도 파뜩 놀란 눈치였다. 몸 잘게 떨더니 느릿하게 당신의 방향으로 중심을 기울였다.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지 말라고.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금방 꺼진다.)
:이 마을 출신이라는 마부가 앞장서서 마을 의원에게 두 사람을 데려갑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이안을 앉혀놓고, 한참이나 그의 눈을 살폈습니다. 이어 질문합니다.
이안 브란트:(더듬더듬 대답했다. 불안한 듯 고개를 숙이고 발을 툭툭 찬다.) 조금 전 잠시 앞이 아찔하더니, 그 이후부터.
이안 브란트:주변이 어두워 보인다거나, 색이, 잘…. (자꾸만 말 끝을 흐린다.)
의사: 그렇다면…. 최근, 사특한 의식이나 강령하는 자리에 있었던 적은?
:이안은 마지막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잔뼈가 굵은 노인은 진찰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을 눈치챈 모양인지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도 그럴 게, 누가 봐도 지금 이안은 상태가 불안정한걸요. 마른 장작 같은 몸에, 시야가 흐려진 눈만이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 상세를 더 살피고 이것저것 메모를 적던 노인 의원은, 조심스럽게 아무래도 이 문제는 자신의 영역이 아닌 것 같다는 소견을 밝힙니다.
그는 은연중 창밖을 봅니다. 창밖에는 멀리 켈타콤 시국의 가장 큰 성당 첨탑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첸 티엔:(반사적으로 당신의 손을 꾸욱 쥔다.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대고, 반대편 손으로는 당신의 손등을 감싼다. 충격적인 말 들었던 탓에 얼굴은 핏기가 가셔 새하얗게 질리고, 목소리는 덜덜 떨려왔으나 결단코 울지는 않는다. 저마저 약한 모습을 보였다간 당신이 더욱 불안해할 것만 같았다. 그러니 목을 가다듬는다.) 저, 곳에 가면…. 제, 부, 부인의 눈을, 고칠, 수 있을까요?
노인: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엔…. (확답할 수 없다는 듯 모호하게 대답하였다.) 보아하니 마차가 꽤 망가진 듯하던데, 말을 빌려드릴 터이니 타고 가십시오. 부디 신의 축복이 있기를. (짧은 기도를 올린다.)
첸 티엔:그, 그렇군요…. 감, 사합니다. (막연한 희망이라 슬퍼하는 것 대신, 막연한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는 쪽을 택했다. 당신은 햇볕 들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피어난 꽃이었으며 이제야 동트는 곳으로 달려 나왔으니 남은 일은 포근한 바람을 맞으며 햇볕을 쬐는 것밖엔 없을 것이다. 진정 신이 있다면 그리되어야만 했다. 설령 당신이 사특한 의식과 연루되었단 사실만으로 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면, 자신의 면죄부로 당신의 죄를 사 오면 될 일이니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이어 노인에게 양해를 구해 붕대를 빌리더니, 당신의 오른손과 제 왼손 손목을 느슨히 매듭지어 묶는다. 손목 아래로 늘어진 리본이 손등을 간질였다.) 부인, 자, 잠시간은 이렇게…. 팔을, 무, 묶어 두는 걸로 해요. 그럼, 제가 어디에도 가지 않고 다, 당신 곁에 있다는 게 느껴지실 테니까요.
이안 브란트:(이안 브란트는 오늘 아침의 일을 회고한다.
티엔, 네 눈 말야, 원래 그런 색이었던가…. 그에게 후회란 것은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으나 오늘 아침 태양보다 빛나야 했을 붉은 눈이 바래져 보일 때 그는 처음으로 지난 일들을 후회했다. 바라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당신의 손을 잡고서 바닷가를 거닐며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싶었다. 소금기 도는 바람을 맞으며 저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바라던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손 맞잡는 대신 손 끝으로 툭툭, 건드리기만 했다. 심성이 뒤틀렸으니 애정보다 의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짐스럽지 않니? 내가….
첸 티엔:(예상지도 못 한 질문 들은 이마냥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전혀요. (아주 당연하게도 부정의 말이 이어진다. 다만 짚어야 할 점이 있다면, 이 모든 말은 당신을 달래기 위함이 아니다. 포장된 말이 아닌 날것의 진심. 다듬어지지 않은 서툰 마음이었다.)
가, 감히….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다고, 새, 생각했어요. 저는, 부, 부인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으니까…. (당신의 최측근을 자처한 것치고는 해 온 것이 몇 없었다. 식사 시중은 물론이며 옷시중, 목욕 시중까지 전부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이 더욱 완벽하게 해내었을 것이다. 자신은 틈만 나면 찻주전자를 엎었고, 리본 하나 예쁘게 묶지 못하였으며, 당신의 살갗에 상처라도 낼까 두려워 거품 문질러주는 것마저 쉬이 해내지 못하였지 않나. 그래, 자신은 정말 덜 떨어진 시녀였다.) 바, 받은 것들을…. 전부, 도, 돌려드리려면, 평생을 바쳐도, 모, 자랄 테지만. 그래도…. 가, 같이 있고 싶어요. 허락만, 해, 주신다면요….
이안 브란트:매번 도움이 되었단다. (당신이 찻주전자를 엎고 울상으로 저를 올려다 볼 때면 꺄르르 웃어 넘어갔으며, 리본을 묶는답시고 오래도록 끙끙대며 제게 매달려 있는 것을 좋아했다. 유난히 조심스러운 손길에서 지대한 애정을 느꼈다. 의중을 모를 사람들 속 유일하게 터놓고 믿을 수 있었던 사랑이었다. 첸 티엔이
황후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을지라도, 그럼에도, 적어도 이안 브란트는 첸 티엔을 가장 아낄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을 하나 엮었다. 소지였으니 이것은 무언의 약속이었다.) 평생이면 모자라지 않아…. (모자라지 않아, 과분하지. 어쩌면 당장 신의 시험이 주어진 까닭 또한, 하잘것없는 이의 목숨을 앗아간 연유 아니라 제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축이 망가진 삶과 교환하기엔 당신의 영원이 찬란했으니까. 그러나 포기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희미하게 웃으며 당신의 품에 기댄다.) 손이 이래서는 업히지도 못하겠네. 안아줄래?
첸 티엔:(역시 자신은 당신의 웃는 모습을 사랑했다. 기실 어떤 표정을 짓더라도 설렐 테지만, 제게 미소 지어줄 적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으니 당신의 행복을 일 순위로 여기게 되었음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타인의 행복에서 사랑을 느꼈고, 그 사랑으로 다시금 행복을 가졌다. 이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기엔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가볍다.)
네, 네에…. 이, 이렇게…. 안아드려도 될까요? (급히 접촉했다간 당신이 놀랄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느릿느릿 움직인다. 지금부터 닿겠다는 것마냥 당신의 손등 위로 제 손등을 문지르고, 손가락으로 팔을 감싼 옷감 위를 스쳤으며, 그대로 어깨를 감싸 안는다.)
이안 브란트:으응, 그렇게. (한결 편안한 얼굴이다. 눈을 감았으니 희뿌연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아직 보고 싶은 게 많거든…. (무엇보다 당신을 보고 싶다. 해처럼 붉은 눈을 보지 못하여 후회하였으나, 그것을 다시 보고자 하는 일념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목적지를 지정합니다. 자신이 예전에 은혜를 입힌 사제가 머무르는 성당이라고요. 두 사람은 마침내 성당으로 향합니다.
당신의 품에 안긴 이는 차갑고 연약한 숨을 쉽니다. 분명 광증 같은 자유로움을 거쳐 빠져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금세 가뭄처럼 마른 얼굴빛과 혼탁한 눈을 하고 있습니다.
전부 괜찮을 것 같았는데, 달려 나간 길 끝에 희망이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어째서 세상은 이리도 가혹한 면모를 지니는 것일까요?
그래도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도망치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두 사람이 함께 성당으로 향하면, 미리 연락을 받아 기다리고 있던 사제가 나와 두 사람을 맞이합니다.
사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이쪽으로 와 진찰을 받으시고, (당신을 바라본다.) 잠시 바깥에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첸 티엔:앗…. (티 나게 주저했다. 결국은 되묻는다. 여전히 당신을 끌어안은 채였다.) 가, 같이, 있어 드리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같이 있어도 돼. (멋대로 정해버리는 듯 보이기도 하였으나 이안 브란트도 나름대로 누울 자리 봐 가며 발 뻗는 사람이었으니……. 사제 또한 거역하지 않았을 테다.)
:사제는 두 사람을 작은 방에 데리고 들어갑니다.
긴장된 걸음으로 들어갑니다. 좁은 방, 단촐한 침대와 작은 창문, 의자 하나만이 놓인 수도사들의 방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두 사람을 묶은 끈을 풀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안의 표정이 불안해 보이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분명 당신이 곁에 있음을 알고 있으니.
십 분 정도 흘렀을까요? 수억 년 같은 시간이기도 했고,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방 안에는 오직 이안과 사제의 대화소리, 다시 기도를 올리는 소리만이 울렸습니다.
대화의 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의식을 치르려다 중도에 그만둔 것, 그동안 삿된 것들을 너무 많이 접했기에 정신적으로 몹시 쇠약해진 것.
광기는 발작처럼 터지는 것이라 평소에는 정상적으로 행동하다가도 언제 괴로운 상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 질병에는 특별한 치료법도 약재도 없다는 것….
:그저 오래 심신을 안정 시키고 지속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까지. 시력은 서서히 돌아올 수도 있고, 중단된 의식에 대한 불완전한 대가로 아예 빼앗길 수도 있다고요.
그러니 당신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입니다. 광증에 빠진 이를 사랑으로 돌본다고 하여 과연 나아지기는 할까요? 그러는 동안 집착에 미쳐서 당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제는 은연중 티엔에게 떠나길 종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말은 어떤 걱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만큼 이안 또한 말을 얹지 않았고요.
깜빡거리는 촛불처럼 지금의 이안은 비교적 이성이 온전한 상태고, 당신을 놓아줄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라고 판단하였겠지요. 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듯 방향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이미 답을 아는 채로.
첸 티엔:(당신을
떠난다는 가정조차 하지 못한 이는 논제에서 벗어난 질문이나 던지고 마는 것이다.) 저어, 제, 하, 한쪽 눈을…. 그러니까, 한쪽 시력을. 너, 넘겨드릴 수는, 없는 걸까요? 아, 앞이 안 보이는 동안, 너, 넘어지시기라도 할까 봐….
이안 브란트:(결국 흐드러지게 웃는다.) 두 눈이 성해도 몇 번이나 넘어졌으면서, 반쪽짜리 눈으로 나를 어떻게 모시겠다는 거야…. (손짓하여 사제를 물렸으니 작은 방에는 단 두 사람만이 남는다.) 이리 와. (곁을 더듬더듬 짚어 붕대를 찾았다. 당신에게 건네며 조용히 내뱉는다.) 나는 이거면 충분해.
첸 티엔:(상황에 맞지 않게 볼을 붉히고 만다. 당신의 미소를 마주할 적이면 항상 이래 왔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붕대를 건네받고, 숨죽여 마주 웃는다. 다시금 떨어지지 않게끔 매듭을 지었다. 붕대도, 서로의 인연도, 사랑도 전부.) 더…. 피, 필요한 건 없으시고요?
이안 브란트:(흐린 눈을 껌벅댄다.) 나아, 듣고 싶은 건 있는데.
이안 브란트:이름. 삼 개월 못 기다리겠어. (답싹 손을 붙잡았다.)
첸 티엔:허, 허억. (그대로 얼어붙는다. 귀 끝까지 붉게 물들인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맞잡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 그, 그건, 아직, 마, 음의, 주, 준비가….
이안 브란트:다른 것까지 마음의 준비 시키기 전에 빨리…. (뭘?)
첸 티엔:(우우.) 기, 기다려주신다고, 하, 하셨으면서어….
이안 브란트:일이 이렇게 될지는 몰랐으니까 그렇지. (손을 끌어다 손등 위로 입술을 묻었다. 이 세워 약하게 자국을 냈다.) 나아, 이름 불러주면….
다 나을 것 같은데. (어렴풋이 눈을 마주한다. 샐쭉 웃는다.)
첸 티엔:(몸 움칠 떤다. 울상 지은 채 당신을 마주 보며 입술을 열었다 떼길 반복한다. 하여간 자신은 당신을 거부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 이안……님.
이안 브란트:떨지 마, 내가 너 잡아먹는 거 아니잖아. (보통 파렴치한 일을 할 때 하는 대사를 쳤다. 꼭 이런 타이밍에! 웃음기 여전한 낯. 칭찬하듯 얼굴 위로 짧게 입술을 맞추었다.) 성당이라 참는 거야….
나아아. 필요한 거 또 있어. (자꾸만 요구가 는다.) 다 나으면 안아 주기로 약속해애. 응?
첸 티엔:그, 렇긴 하지만…. (결국은 눈마저 질끈 감아버렸다. 과하게 열 몰린 상태였으니, 얼굴 위로 입 맞추었다면 입술로도 그 열기가 전해졌을 게 뻔하다….) 아, 아, 안아 드리는 건, 지, 금도 해드릴 수, 있, 는걸요.
이안 브란트:벌써 빨개졌구나. (얼굴을 더듬어 본다. 보이지 않아도 당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직설적으로 말했다간 제가 아닌 당신을 여기 뉘여야 할 듯하니 적당히 돌려 대꾸했다.) 아니이, 그거 말고. 같이 자는 거….
첸 티엔:(살그머니 손바닥 위로 뺨 기대어 본다. 아무래도 어디까지 붉어질 수 있는지 실험을 해봐도 될 성싶다.) 그, 것도…. 지, 금도 해드릴 수 있어요. 어, 어제도, 가, 같이 잤는걸요. (성에 무지한 이는 아니었으나 이토록 눈치 없이 대꾸하는 연유는 오직 하나뿐이다. 당신의 육체를 탐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리라.)
이안 브란트:따듯해. (헤헤 웃기만 한다. 당신에겐 조금 이른 이야기인가? 아니, 이 정도 되면 정말 모르는 걸 수도 있겠다 싶어져서….) 괜찮아,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줄 테니까. 아이는 못 만들어도 기분 좋게 해 줄 수는 있거든…. (중얼거리며 뺨을 붙든 채 정확히 입술끼리 겹쳤다.) 내가 빨리 나아야겠네, 그치?
첸 티엔:(
아이? 기분 좋게? 갑작스레 튄─튀지 않았다. 단순히 본인의 깨달음이 느렸을 뿐이다─ 화제에 정신 못 차리는 것도 잠시, 말랑한 입술이 닿아오면 마침내 완벽하게 숨을 멈추고 만다. 그렇다. 앉은 채로 죽어버린 것이다.)
이안 브란트:깨달았니? 그래도 숨 쉬어야지. (이를 빌미 삼아 냉큼 숨을 겹쳤다. 신성한 장소에서 저지르기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겠지만.) 다시 불러줘, 이름.
첸 티엔:(용케 답한다. 정신은 이미 혼미해져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이안, 님…….
이안 브란트:착하구나. (당신이 정신없는 틈을 타 이름을 몇 번이나 더 불러 달라고 요구했을 테다. 발칙한 말을 내뱉어 두고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웃는다.)
:미쳐 버린 황후도, 가장 아름다운 자도 아닌 그저 당신의 이름. 숨이 막히도록 차오르는 이름을 불러달라 속삭입니다. 그래야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먼지보다 가볍게 웃었습니다. 아직도 앞은 흐려요. 시야가 온통 부옇게 번져 흩날리는 것은 낙진처럼 쏟아지는 별빛 때문에 더 그랬을 겁니다.
우리는 규칙 없는 삶을 누비게 되리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생애에서 한 가지 확정된 질서는,
서로의 연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틀림없이, 더욱 행복해질 것이란 겁니다.
그리하여 도망친 두 사람은 오래도록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라는 두 자 하에, 사랑 이상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삶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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