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몽애진

 

이미지
이미지
그림
이미지
이미지
▶:387년 XX월 XX일 진시.
모든 게 안정적인 이 나라를 두고 사람들은 흔히 태평성대라고 일컫습니다.
최근 큰 경사라 할 만한 일은 단연 태자의 혼례일 겁니다. 당신은 태자와 원치 않은 혼인을 올리게 된 사람입니다.
정인과 혼인하여 이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그는 불의의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거든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한 나라의 황제가 될 사람이 당신에게 혼례를 청했고, 그걸 본 아버지는 이리 말씀하셨죠.
대감: 태자가 너를 빈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한다. 반대파이긴 하나 가문의 명예이니 처신을 잘할 거라 믿으마.
▶:가까이 마음을 둘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유일하게 당신을 제대로 마주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대하는 사람이라고는 태자뿐입니다. 그는 당신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습니다. 사정을 아니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도 말해주었고요.
련, 당신은 티엔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위 련:(원체 성정이 모난 사람이다. 배려를 받을 때마저 기분이 상하기만 했다. 당신이 무얼 안다고? 정리되지 않는다면, 그때도 기다릴 텐가? 태자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오히려 좋은 축에 속하지. 그러나 그는 저와 정반대에 위치하는 사람처럼 보였으며 ―같은 점이라고는 불쌍한 처치라는 것뿐― 도무지 잘 맞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와 대면할 때면 속에 무언가 얹힌 기분이 든다. 아, 참…. 미련하기도 해라.)
(고작 제가 한 나라의 황제가 될 그릇을 가여워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으나, 위 련은 첸 티엔을 솔찬히 불쌍하게 여겼다. 기껏 생긴 짝이…. 정인을 잃은 이라니. 마음이 먼 데 가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도 사실 여간 일은 아니지 않나. 남이야 어찌 보든, 위 련은 어째 저와 당신 모두가 기구한 운명을 지닌 자 같았다.)
나인: 일어나셨습니까?
▶:나인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면, 화려한 천장이 보입니다. 탁자붙박이장창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위 련:그래…. (이토록 화려한 것에도 벌써 적응이 되었다. 대충 대답을 한 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다.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열면, 후끈거리는 바람이 훅 들어옵니다. 열이 오른 공기네요. 벌써 여름이 왔나 봅니다. 시릴 줄만 알았던 계절은 흐르고 흘렀습니다. 궁 안에는 꽃이 잔뜩 피었을 테지요.
위 련:벌써 덥구나. (바깥에 나가려면 이제 부채질이라도 시켜야겠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위 련은 아랫사람에게 대접 받는 삶을 끝내주게 즐기고 있을 것이다….― 벌써 혼인을 한 지도 한 계절이 넘게 흘렀다. 아직도 부부 같지는 않으니 우스운 일이다. 탁자 위를 힐긋 쳐다본다.)
▶:탁자 위에는 꽃병이 놓여 있습니다.
위 련:(꽃병에는 무슨 꽃이 있지?)
위 련: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75
판정결과:실패
(갸웃? 뚫어져라 쳐다본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싱싱하다는 건 알 수 있었습니다.
위 련:흠. (가까이에 나인이 있을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처소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겠으나, 그들은 언제나 문 앞에 시립하고 있을 것입니다.
위 련:여봐라, (고민하지 않고 대뜸 불러들였다! 사람 부리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었으니 까딱 턱짓을 했다.) 여기 이건 무슨 꽃이지?
나인: (부름 떨어지자마자 처소 안으로 들어선다. 공손 이상의 태도로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궁내의 모든 나인은 과할 정도로 당신을 우러르곤 했다. 티엔의 입김이 닿은 것일까? 이래서야 하늘이 누구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모란이옵니다, 마마. 혹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요.
위 련:(받듦을 끝내주게 즐기고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턱턱 요구하다가도, 금세 생각을 바꿔먹고 필요치 않다고 하는 일이 잦았으니 과연 왕이라면 폭군이 될 자질이었다…. 치마폭에 싸여 자란 귀하신 집안 자제라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성정이 그러했다.) 으응…. (그렇구낭.) 누가 꽂아두었는지 궁금해서. 혹 알고 있는가?
나인: 소인이 꽂아두었습니다. 새벽녘에 나가 가장 싱그러운 꽃을 꺾어 온 것이온데, (점점 숙여지는 허리.) 그것이 마마의 심기를 어지럽혔다면…. 곧장 치우겠습니다.
위 련:으으응, 아니. 맘에 들어. 칭찬하고 싶어서 물어봤단다. (숙여지는 자세에 시선을 두지 않고 휙 돌렸다. 붙박이장이 시선에 닿았다.)
나인: (재차 고개를 조아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황송하옵니다. 그럼…. 기침하셨으니 식사를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이윽고 나인이 처소를 빠져나갑니다.
붙박이장은 원목으로 짜여진 장입니다. 안을 열어볼까요?
위 련:(뽈깍 열어봅니다.)
▶:뽈깍. 안에는 과, 척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조그마한 과, 보자기로 감싸진 물건이 보입니다.
위 련:(의 표지를 살핀 뒤 안을 파라락 펼쳐봤다.)
▶:고리타분한 교양서적이 아닌 흥미 본위의 소설이네요. 궁 안에서는 지루할 일이 많을 것이라며 티엔이 챙겨준 것이었죠.
위 련:우웅. (나는 책을 읽어봤을까? 1 대부분 2 쪼끔은 3 안읽음 2 )
(심심할 때마다 펼쳐보곤 했지. 재미있었다 1 없었다 2 2 )
(근데 재미없었어. 그래서 쪼끔만 읽었다.)
(책을 구석에 박아 두고 귀해 보이는 을 열었다.)
▶:금붙이며 장신구들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알은 크지만, 미적으로는 뒤처지는 장신구도 보이고요. 이 또한 전부 티엔이 챙겨준 것입니다.
위 련:(여기 넣어뒀군. 티엔이 직접 골라준 장신구를 잘그락거린다. 나중에 일이 생기면 이것만 훔쳐?가도? 큰 돈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도 머리 장신구 하나를 꺼내놓고 함을 닫는다. 보자기를 펼쳐 안에 든 물건을 확인한다.)
▶:보자기를 풀어 살펴보면, 원목 그릇이 보입니다. 그릇 안에는 각설탕과 소분 되어 종이로 포장된 가루약이 들어있습니다. 이 가루약은 독입니다. 바로 즉사할 정도의 독은 아니지만, 5회 이상 섭취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되는 약재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옆에 있는 각설탕은… 해독제라고 했었죠?
이윽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인이 식사를 내왔다며 허락을 구하고 있네요. 들어오라고 할까요?
위 련:(참 골치 아픈 일을 시킨단 말이지…. 보자기를 다시 접어 정리하고, 붙박이장을 완전히 닫은 뒤 나인에게 들어오라 일렀다.)
▶:나인은 들어오자마자 탁자 위로 식사를 차려둡니다. 혼자 다 먹기에도 벅찬 진수성찬이 한가득 차려지네요. 방 안에만 있기엔 날씨가 좋으니 식사를 한 뒤에는 산책이나 나가볼까요.
위 련:음. (아침부터 헤비하군…. 아차, 이 단어는 쓰면 안 되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음식을 뜨고는 금방 상을 물린다. 처음 입궐했을 때에는 여러 연유로 살이 쭉쭉 빠지기만 했는데, 늘상 이리 진수성찬을 차려 주니 살이 다시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산책을 나가기 전 궁녀에게 치장을 부탁했다. 적당히 입혀다오…. 옷을 고르는 것조차 그들에게 미루고, 미리 꺼내놓은 머리 장신구만을 건네주었다.)
▶:궁녀는 능숙하게 옷시중을 듭니다. 당신이 고른 머리 장신구까지 곱게 달아준 뒤에야 처소의 문을 열어주네요.
밖으로 나가면,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아닌데도 덥습니다. 이리 더우면 이번 해는 얼마나 더 더울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자 나인은 일산을 당신의 머리 위로 올려 햇볕을 가립니다.
운향전화어당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위 련:올해는 무척 덥겠구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니…. 끝내주는군. 머리 위에서 달랑거리는 장신구를 가만 매만지더니 운향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니 낡은 종이 냄새가 훅 끼칩니다. 책들이 잔뜩 꽂힌 걸 보아하니 여긴 서재인 모양입니다. 잘 안 쓰는 책들만 모아놨는지, 책들 사이로 먼지가 가득 쌓여있네요.
문득 당신의 발 앞으로  한 권이 떨어집니다.
위 련:(잠깐! 나인들도 함께 들어왔나?)
▶:당신이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면 운향전 앞을 지키고 있을 것이며, 그들의 시중을 원했다면 뒤따르고 있을 겁니다!
위 련:(문을 열어달라 시켰을 테니 높은 확률로 곁에 있을 것이다…. 발치의 책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워주겠니? (눈만 깜박깜박깜박.)
▶:나인이 책을 주워 공손히 내밉니다.
위 련:으응. (인사 한 점 없이 책을 받아 펼쳤다. 표지부터 내용을 찬찬히 읽는다.)
▶:[大尹花地道]라고 적힌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의 지도인 것 같아요. 펼쳐보면 운향전, 화어당, 희서정 외에도 여러 공간이 보입니다. 처음 입궁한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어려울 테니 아무래도 지도를 그려둔 것 같습니다. 다른 페이지를 살펴보려는 찰나, 뭔가 작게 표시가 되어있네요.
위 련: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84
판정결과:실패
(눈을 비비적. 오늘따라 이상하네~)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2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희서정이라고 표시된 부분에 작게 동그라미 표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게 무슨 표시죠?
책장 사이로 튀어나온 서적 하나가 보이네요.
위 련:(뭐람. 눈을 가늘게 뜨고 표시를 확인하다 말고, 망설임 없이 책을 품에 챙겨 넣었다. 책장으로 다가가 튀어나온 서적을 꺼낸다.)
위 련:
자료조사
기준치:50/25/10
굴림:98
판정결과:실패
뭐가 보이니? (침침한 눈으로 서적 훑는다….)
▶:이상한 생물들이 그려진 서적입니다만….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눈이 침침하고 기분이 좀 불쾌하기만 합니다.
위 련:(냅다 나인에게도 보여줌.) 이게 뭐 같니?
나인: (곤란한 낯으로 고개를 젓기만.)
위 련:우웅.
(다시 한 번 봐도 될까?)
▶:자료조사 판정?
위 련:
자료조사
기준치:50/25/10
굴림:32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상한 생물들이 그려진 서적입니다. 이게 뭐죠? 먹으로 그려진 삽화 사이로 아예 처음 보는 생물이 보입니다. 생물인가요? 아뇨, 이건…. 생각하던 도중 뭔가 눈알이 움직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맞나요? 착각한 거 아닌가요?
위 련:
SAN Roll
기준치:65/32/13
굴림:100
판정결과:대실패
(으앗.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책을 놓친다. 바닥으로 떨어진 책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졌으나, 주울 생각을 않는다. 심장이 빠르게 뛰어 책장을 짚고 잠시 숨을 고른다. 나는 진짜 그냥 이대로 스르륵 쓰러지고 싶구나…….)
나인: 마마? 괜찮으십니까? 어의를 부를까요?
위 련:(당장 그러라 말하고 싶다만 그랬다가는 뒤집어질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조금 피로하구나…. 바람을 좀 쐬어야겠다. (그대로 바깥으로 나간다. 더운 바람을 쐬고 나니 진정이 되는 듯싶어 화어당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나라의 정무를 보는 곳입니다. 요새 황제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곧 즉위를 할 태자의 업무량이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죠. 이곳에선 태자가 황제 대신 정무를 보고 있을 겁니다. 회의가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신들이 화어당에서 나오는 걸 보면 정무 회의가 다 끝난 모양이네요.
위 련: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11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대신1: 이게 말이 됩니까? 지금 이 나라의 지대한 공을 세우는 것은 좌인이 아니라 우리 우인이라는 사실을 누가 모릅니까!
대신2: 말 삼가게. 태자께서도 다 뜻이 있으시겠지.
대신1: 뜻을 펼치다가 저희가 다 죽을 판입니다.
▶:둘은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오다 당신을 발견하더니 고개를 숙인 채 사라집니다. 태평성대라는 것이 백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이지, 궁궐 안에서도 해당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기 앞서가는 대신들을 보니 회의가 좋은 분위기로 끝난 건 아닌 듯합니다.
요즘 들어 우인과 좌인의 관계가 계속해서 나빠지니 아버지가 당신에게 그런 부탁을 한 거겠죠.
하여간 사정이 이러하니 화어당 안을 둘러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희서정으로 가볼까요?
위 련:(정치판이 다 그런 것이지…. 위 련 또한 정치판에 끼인 하나의 장기말 아니겠나. 누군가의 소유물이고, 어느 정도 이용 가치가 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희서정으로 향했다.)
▶:궁궐 안 연못가에 있는 정자입니다.
아직 시들지 않은 봄꽃이 피어낭 ㅣㅆ는 것이 보입니다. 이름도 모르는 들꽃들은 화사하기 그지없고 물 비린내와 함께 꽃향기가 훅 풍겨옵니다.
주변을 살펴보던 그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신하들을 대동한 채 걸어오는 태자입니다.
회의가 끝난 직후인지 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걷던 그는, 당신을 발견하더니 이내 활짝 웃습니다.
첸 티엔:(곧장 볼이며 귓가를 발그레 물들였을 터다.) 여, 여기서 뵙게 될 줄은…. 사, 산책을 나오셨나요?
위 련:전하. (또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군. 당신과 대비되게도, 눈이 마주친 순간마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가까이서 대면한 뒤에야 여유로운 미소를 낯 위로 걸친다.) 예, 날이 좋길래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일이 바쁘신가 봅니다. (뒤편의 신하를 힐긋 쳐다본다.)
▶:신하들을 보았다면, 관찰 판정?
위 련: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18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뒤에 있는 신하들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하죠. 당신은 좌인에 속하는 인물이잖아요. 태자비가 되었다고 한들 저자들은 당신과는 전부 반대 파벌의 사람들입니다. 티엔은 반대를 무릅쓰고 당신을 비로 맞이했습니다.
위 련:(헤엥. 아주 대놓고 노려보라지 그래. 그래봤자 뭘 할 수 있겠어…. 보란 듯이 웃으며 그들에게서 시선을 떨어트리고 태자와 눈을 마주한다.)
첸 티엔:그, 그렇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사람 대하는 것이 서툴지언정 눈치만은 빠른 이였다. 당신의 표정 읽어내지 못할 리 없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마냥 굴었다. 옅은 미소 본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볼을 붉힌다.) 이, 이리 만날 줄 알았다면…. 지, 난 번에 구해 둔 장신구를 드, 들고 왔을 텐데요.
위 련:(진짜 괜찮은 거 맞을까? 지금 당신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구요.) 업무를 모두 끝마치신 뒤 천천히 보여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쩐지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첸 티엔:(순식간에 시무룩한 낯이 된다. 귀가 있었다면 분명 세모꼴로 벌어졌을 것이다….) 도, 돌아가셔야 하나요? 조금만, 가, 같이 걸으면….
위 련:(봐, 이리 사소한 일로도 감정 변화를 한눈에 보이게끔 드러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을 황제의 자리에 앉혀놓을 수가 있는가. 속으로 혀를 찼다. 아니꼬운 기분이라기보다는…. 물가에 어린 아이를 내놓은 심정에 가까웠다.) 저야 전하 덕에 늘 한가롭게 지내오나…. 예신들이 전하를 기다리고 계시는 듯한데요. (또 힐끔.)
첸 티엔:(덩달아 고개를 돌려 뒤에 선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첸 티엔이 울상 지은 채─적어도 당신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뒤를 돌자, 어째서인지 신하들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내젓는다. 어떤 낯을 마주하였을지는 그들만이 알 터다.)
신하1: 마마, 소신들은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신하2: 맞습니다. 소신들은 괜찮습니다.
첸 티엔:(다시금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본다. 무해하게 뜨인 눈이 깜박, 깜박. 어떻게 할까요? 꼭 그리 묻는 듯했다.)
위 련:(무슨 일이 있었나요? 갸우뚱? 위치가 좋긴 하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대꾸했다.) 그러엄…. 조금 걸읍시다.
첸 티엔:(금세 화색이 된다. 뒤를 따라오던 신하들마저 떨어트려 놓고선 당신의 곁으로 다가선다. 조심스레 내민 손이 잘게 떨렸다.)
위 련:(거리낌 없이 떨리는 손 위에 제 손을 얹는다. 마주 잡았다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느린 걸음을 옮기며 말을 꺼낸다.) 이곳이 희서정이지요?
첸 티엔:(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주 소중한 것을 쥐기라도 하는 것마냥 당신의 손을 감싸 쥔 뒤 느릿느릿 걸음 옮겼다.) 네, 네. 이전에…. 와 본 적이 어, 없으신가요? 제가 직접…. 구, 궁을 안내해드렸어야 하는 건데.
위 련:아닙니다, 워낙 바쁘시니 어쩔 수 없지요. 전하께서는 나라를 위해 애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마 와 본 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르는 척 말문을 열었던 건….)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운향전엘 다녀왔는데, 지도를 보니 희서정에 누가 동그라미 표시를 해 두었더군요. 혹 이곳에 특별한 게 있는가요?
첸 티엔:아…. (다시금 볼이 붉어진다. 이전보다 조금 더 빨갛다. 수줍어하는 것은 아닌 듯하고, 치부를 들켜 부끄러워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 시, 실은…. 이곳의 벼, 벽에는 개구멍이 있거든요. 제, 제가 발견해서 표시를 해두긴 했지만, 그, 거길 통해 궁 밖을 나간 적은 어, 없습니다. 정, 말로요.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거짓말인 듯하다.)
위 련:(떨고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럴 때면 별 수 없이 웃어버리곤 했다.) 거짓말. (닿아 있는 당신의 손바닥 위에, 손 끝으로 가위표를 그린다.) 바깥에 나가서는 무얼 보셨습니까?
첸 티엔:(머리끝까지 붉어져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웃음 하나에 놓치지 않으려 시선을 고정시킨다. 당신이 진정으로 웃음 지어줄 적마다 심장이 눈치 없이 뛰었으니 여러모로 곤란한 일이다. 겨우 쥐꼬리만 한 목소릴 냈다.) 좌, 좌판을… 둘러보았습니다. 비께서는, 거, 거리의 음식을, 드셔본 적 이, 있나요?
위 련:(황태자 첸 티엔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첸 티엔의 모습을 볼 때면 련은 꼭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거창한 신분이 아까울 정도로 순하고 어리숙한 사람. 그러니 가끔은 쓸데없는 가정을 하고 말았다. 당신이 태자가 아니었더라면, 나와 당신이 이런 방식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우리는 더 괜찮은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시선이 마주쳤다.)
있다마다요, 종종 몰래 집안에서 빠져 나와 장거리를 둘러보고는 했었는데…. (옛 기억을 반추하노라면 꼭 정혼자의 기억이 뒤따라온다. 사랑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그를 퍽 우애롭게 여긴 것만은 틀림없다. 결혼을 한다면 그이와 하게 될 것이고, 거리를 거닌다면 그이의 손을 잡을 것이고…. 유년기의 투사와 현실 사이 큰 괴리가 있다. 시선 마주했던 것이 무색하게 눈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걸음과 함께 화제를 돌린다.) 이제는 그곳으론 나가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네요. 홀로 나가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첸 티엔:(첸 티엔은 위 련에 관한 사실이라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당신의 시선이 이렇게 바닥을 향할 때는 그 정혼자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이나, 당신이 그를 꽤 돈독히 여겼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정인─한낱 배우자일 뿐이더라도─은 첸 티엔이며 이 사실만큼은 영원불멸하리라. 그렇기에 모른 척 손아귀에 힘을 준다. 제 손에 얹어진 손등 위를 손가락으로 덮어내었다.) 하, 하지만… 거리의, 으,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습니까. 다, 단 것이 많으니까요. 저는, 비께… 그, 그런 것들도 선물해드리고 싶은걸요. 궁 안의, 것들만으로는… 마, 만족하실 수 없을 테니까요.
위 련:(황태자의 앞에서 비가 과거의 연을 생각하는 꼴이다. 엄하게 나무라도 모자란 태를 당신은 모른 척 덮어주기만 하니, 감정 추스리는 일 또한 늦추어지기만 한다. 닿아오는 체온이 차니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눈을 느리게 꿈벅인다.) 거리의 음식이 입맛에 좀 맞으셨나 봅니다?
저는 이미 내사하신 것들로도 차고 넘칩니다. 그래도 나가고 싶으시다면…. 다음에는 같이 나가요. 그정돈 괜찮지요? (괜찮을 리 없는 말을 태평하게도 했다.)
첸 티엔:나, 나가고 싶으신가요?
위 련:조금은요.
첸 티엔:(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신하들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상체를 숙여 당신의 귓가에 속삭인다. 하얀 머리카락이 당신의 옷 위로 늘어졌을 터다.) 제, 제가…. 한번, 기, 기회를 마련해 볼게요. (그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비께서, 그, 그러고 싶으시다면요.
위 련:(상체 숙이는 순간 당신의 어깨 위에 살며시 팔을 얹었다. 재질이 좋은 천의 감촉이 제 손목 위로 닿았다. 타인의 눈에는 명명백백히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모양새로 보였을 것이다. 아이 같은 모습에 웃음을 감출 수 없다. 가까운 거리에서 따라 미소 짓는다.) 네에, 같이 나가는 거예요.
▶:티엔이 무어라 답하려는 순간 뒤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신하: 저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속히 화어당으로 가시지요.
첸 티엔:(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당신과 신하를 힐끔힐끔 번갈아 바라보더니, 미련 어린 듯 손을 꼭 쥐기만 한다.)
위 련:산책 즐거웠답니다. (미미한 웃음을 띤 채 손을 살그머니 빼낸다.) 일을 모두 마친 뒤에 또 찾아오셔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첸 티엔:네……. (늘어지는 목소리. 하여간 당신의 말만큼은 곧잘 들었다.)
위 련:(남들 보이지 않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주기까지 했다.)
▶:티엔이 짧은 인사와 함께 사라지면, 희서정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그 사람은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웃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애초에 좌인 수장의 자식을 태자비로 책봉한 것부터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보통은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는 가문의 자제를 맞이하지 않던가요.
의도치는 않았으나 꽤 오래 걷게 되었습니다. 슬슬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까요?
위 련:(정치적 화합을 원하시는 거겠지…. 별 생각 없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갑니다.)
▶:침전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그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위 련: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1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벽 너머로 누군가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할까?
위 련:(벽 가까이 가 들어봅니다. 무슨 얘기 중이신고.)
나인1: 누군가가 저하를 암살하려고 한다더라.
나인2: 너 미쳤어? 궁에서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는 거 몰라?
나인1: 너만 모를걸? 다 아는 사실이잖아.
나인2: 근데 누가?
나인1: 딱 봐도 감 잡히지 않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군요. 가만 듣고 있을 건가요?
련, 어떻게 할까?
위 련:(벌써 이런 이야기가 도나? 태자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들으라는 듯 벽을 툭툭 소리나게 두드린 뒤 그들에게 다가갔다. 팔짱을 낀 채 내려다본다.) 방금 했던 이야길 내 앞에서 다시 해 보게.
나인: 헉, 마마…! (사색이 되어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 그런 게 아니옵고,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위 련:(퉁명스러운 얼굴. 평소의 표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 화가 나지는 않은 듯했다. 죄를 지은 이가 보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네들의 말이 태자 전하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는 게 나일지, 혹은 자네들일지…. 둘 중 어느 쪽일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말조심하게나. (말 속에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다. 진실이 어떻든 황태자는 위 련을 의심하거나 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인: (온몸 벌벌 떨어대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누구에게도 입 벙긋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위 련:(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알면 됐어. 할 일들 마저 해. (곧장 몸을 돌려 침실로 돌아간다.)
▶:침실로 돌아갑니다.
나인들의 말도 틀린 것은 없습니다. 우인, 좌인 사이의 분위기는 날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요.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태자를 암살하려는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위 련, 당신이잖아요.
당신이 태자를 죽여야만 하잖아요.
조금 있으면 회의가 끝날 시간이네요. 그의 성정이라면 분명 말했던 장신구를 들고 당신을 찾아올 테지요. 그가 찾아오기 전에 먼저 들어가서 독을 타는 게 좋겠습니다.
▶ XX월 XX일 해시.
▶:모든 일정이 끝났습니다. 당신은 침소로 돌아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요? 탁자 위에는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습니다.
위 련:(꼭 그를 죽여야 하나? 확신이 서지 않으니 굼뜨게 움직인다. 가엾은 사람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을 고스란히 제가 만들고 있지 않나. 그러나 위 련에게 아비의 말은 꽤 절대적인 편이었다. 뭇 높은 귀족 자제의 집안이 그러하듯 집안의 명을 거스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오늘치의 독을 탄다고 하더라도 곧장 죽지는 않으리라 합리화를 하고 나니….)
(찻주전자에 약재를 탄다. 몸이 좀 아프면 내일은 좀 쉬시려나. 우스운 생각과 함께.)
▶:그가 도착하기 전에 몰래 약을 타는 것에 성공합니다. 당신에겐 각설탕이 있으니 차에 넣고 같이 마시면 되겠네요. 그에게는 차를 내어주고, 당신은 차를 마시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겠고요.
나인: 마마, 태자 저하께서 오셨나이다.
위 련:(마지막으로 몸 단장을 하고 직접 문 앞까지 마중을 나간다.)
첸 티엔:(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모습에 조금은 당황한 눈치다. 크게 뜨인 눈이 깜박거리며 당신을 담는다.) 괘, 괜찮은데. 앉아계시지….
위 련:(말갛게 웃기만 했다.) 일은 모두 끝내셨어요? 내내 바쁘신 것 같던데.
첸 티엔:(휘는 눈꼬리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헤헤 웃었다.) 저, 전부 처리하고 왔어요. 비께서는… 조, 조금이라도 쉬셨나요?
위 련:그럼요, 쉬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신의 소매 끝자락을 붙들어 방의 안쪽으로 잡아당겼다.)
첸 티엔:다, 다행이에요. (이끄는 대로 끌려갔을 것.) 참…. 이것을. (소매 춤에서 꺼낸 것은 붉은 꽃송이가 옹기종기 모인 형상의 머리 장식이었다. 꽃송이는 붉은 옥으로 조각되었고, 꽃술은 금을 녹여 만들었으며, 그 아래 달린 장식마저도 진귀한 것 없지 않았으니 이 장식 하나만으로도 수도에 기와를 올릴 수 있을 터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역시나 과했다. 너무나도!)
위 련:(받아 들지 않고, 당신의 손 위에 놓인 것을 가만 쳐다보기만 했다. 당신과 머리 장식을 번갈아 보았다. 고급지고, 화려하고…. 과하군.) 직접 고르신 거예요?
첸 티엔:(볼 발그레 물들인 채 고개를 끄덕인다.) 가, 가장 귀해 보이는 것을 골랐어요.
위 련:이런 게 취향이신가요? (냅다….)
첸 티엔:(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엇, 그, 그으…. 벼, 별로인가요?
위 련:아니이…. (별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고도 아니지. 장식이 과하면 얼굴이 가려지잖아…. 말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부스스 웃기만 한다.) 이리 귀한 것을 어디서 구하셨나 싶어서요. 마음에 들어요. 직접 해주시겠어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첸 티엔:(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더라면 분명 딸꾹질을 시작했을 것이다. 겨우 안정을 되찾고 당신의 머리에 장식을 꽂아주었다. 그런 것치고는 손이 덜덜 떨리긴 하였지만 말이다.) 비, 비께서는…. 제게 가장, 귀, 귀한 분이시니까요. 그러니…. 가장, 가, 값진 것들만 드리고 싶었어요. 앞, 으로도 계속, 가, 가져올게요.
위 련:(장신구가 머리 위에 제대로 얹어진 것이 느껴지면, 그대로 떨리는 당신의 손을 쥔다. 여전히 손이 차네. 잡은 손을 아래로 당겨 내린다. 당신의 말은 들은 둥 마는 둥 하더니,) 잘 어울리나요? (그대로 당신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가만히 올려다보며 시선을 마주한다.)
첸 티엔:(허리에 손 닿자마자 뻣뻣이 굳어버린다. 몇 번이고 밤을 보낸─정말 말 그대로 보내기만 했을 뿐이지만─ 부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줍음을 타는 모양새였다.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입술을 뻐끔거리기만 하였으나, 질문에 대한 답은 그의 표정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위 련:(이건 답을 듣지 않아도 되겠군. 이후 얼굴을 들이밀기도 했다. 숨결이 섞일 거리까지. 하얀 눈동자 위에 붉은색이 비친다.) 제가 왜 좋으세요? 왜… 제가 전하께 귀한 사람인가요?
첸 티엔:(흡, 숨을 들이 삼켰다. 혹여나 당신에게 제 숨결 닿기라도 할까 내쉬는 호흡마저 조심스럽다.) 계속, 우, 웃어주셨으면 해서요. 저는, 과, 광대가 아닌데도…. 누군가를 우, 웃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렇다는 건…. 그 사람이, 제게는…. 마, 많이 소중하단 뜻이잖아요. 귀히 여기고 싶어요….
위 련:(더듬더듬 애정을 내뱉는 당신의 입술에 눈을 둔다. 비단 말의 내용에 초점을 둔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입을 맞추었다가는 당신이 기절할까? 그런 생각 하의 시선이었다.) 그럼…. 제가 소중하면. 저도 안아 주세요. 네? (기어이 뻣뻣하게 굳어 있는 당신의 팔을 제 허리에 감아냈다.)
첸 티엔:하, 하, 하, 하지만…. (한참을 말을 더듬었다. 당신의 손길을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어정쩡하게나마 허리에 팔을 감긴 하였으나, 결코 쥐지 않는다.) 부,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이런, 것….
위 련:(뜸.) 왜요? 부부인데…. (모르는 척 묻는다.)
첸 티엔:(바들바들바들. 눈이 빙글빙글 돌다 못해 정신 혼미해진 게 뻔히 보였을 것이다.) 시, 싫어하실, 수도, 이, 있으니까…? 부, 부부의 정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아, 아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 남편의 도리니까요.
위 련:(이 사람 곧 쓰러지는 거 아냐? 사실 독? 같은 건 필요 없지 않을까?)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되레 더욱 안겨들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주실 작정인가요?
첸 티엔:(겨우 손을 들어 당신의 어깨를 짚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밀어낸다. 힘이라곤 실리지 않은 듯한 손길이었다. 그럼에도 밀어내겠다는 의지만은 확고히 보였을 행동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어질 말을 증명하는 꼴이다.) 평생… 이요. (흰 곳 찾아볼 수 없는 피부, 달뜬 목소리, 사랑에 빠진 눈…. 어느 한 부분 애정을 논하지 않는 곳 없음에도 그리 말했다.)
호, 혹여 후계를 논하며 비를 괴롭게 하는 자가 있다면, 제, 제가, 해, 결할 것이고…. 그마저도 어렵게 된다면, 처, 첩을 들일게요. 그 아이는, 비, 비의 아이가 될 거예요. 첩은, 첩지조차 바, 받지 못할 것이며…. (사랑을 닮은 눈이 기묘하게도 반짝인다.) 비께서는, 불변할 권력을 누리게 될 겁니다. 여, 영원히요.
위 련:(힘주어 안겨들었던 것과 상반되게 쉽사리 밀려났다. 그렇게 떨어져 멍하니 당신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다. 당신이 밀어낸다는 선택지는 예상에 없었으며, 애정 어린 얼굴은 감히 모른 체 할 수가 없어서…. 평생, 영원, 그 따위 단어를 입 안에서 곱씹는다. 웃기지도 않아, 정말, 웃기지도 않지…. 당신의 숨을 앗아가려는 사람이 눈 앞에 있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영원불변을, 사랑을 입에 올린다. 아니,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는 게 맞기는 한가? 숨이 턱 막힌다. 입술 달싹이더니 무엄을 지껄였다.) 당신이 죽어버리면요?
첸 티엔:음…. 거, 거기까진, 새, 생각을 안 해봤는데…. (무엄한 말조차도 위 련이 뱉은 이상 더는 불경하지 않다. 첸 티엔의 암묵적인 허용 앞에 위 련이 행하지 못할 것은 없다. 그 누구도 당신을 탓할 수 없으리라.) 제가 죽어버린다면, 피, 필히 좌인들이 득세할 것이며…. 위 대감께서는 좌인이시니, 비를, 보, 보살펴 주시지 않을까요? (사후를 논함에도 배시시 웃기만 한다. 어느 쪽이든 당신은 권세를 누릴 테니 마냥 기뻤던 탓이다.)
위 련:아, 정말…. (틀어막힌 숨이 헛웃음과 함께 터져나왔다. 바보 같아. 짧은 읊조림이 이어졌다. 언제 멀어졌냐는 듯 한 팔로는 당신을 감싸안고, 다른 팔은 뻗어 검지로 당신의 뺨을 꾸욱 누른다.) 왜 웃으시나요? 제가 지금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첸 티엔:(몸이 맞닿자마자 허리를 빳빳이 세운다. 다시금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굴리기 시작했다. 당신을 밀어내지도, 끌어안지도 못한 손이 허공을 배회했다.) 비, 께서는…. 계속, 귀, 귀히 모셔질 테니까요. 그것이 좋아서…. (짧은 간극.) 우, 웃지 말까요?
위 련:아니이…. (숨소리 잠시 잦아든다.) 웃어 주세요, 계속. (안은 그대로 슬며시 힘을 주어 당신을 침상 위로 넘어뜨렸다. 얼결에 눕혀진 당신의 위로 제 몸을 기대어 아주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길 반복했다. 아주 평화로웠다. 잠시나마 잃은 제 사람도, 집안의 명도 모두 잊고….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는 시간은.)
첸 티엔:(눈 깜빡하니 금침 위로 몸을 뉜 꼴이 되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따끈해진 상태로 숨을 죽인다. 그럼에도 제멋대로 뛰는 심장만큼은 손 쓸 수 없었을 테니 마구잡이로 뛰는 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졌을 터다. 한참을 머뭇대다 겨우 손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는 당신의 등을 툭, 툭 쓸어내린다. 정인을 품기보다는 아이를 보듬는 손길에 가까웠다. 사랑이건, 이런 접촉이건, 모두 당신이 처음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위 련:(어깨 부근에 얹혔던 고개를 조금 내려 가슴께에 가져다 댄다.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이 생생히 들린다. 숨기지 못하는 사랑을 모조리 확인 받는다. 당신과는 반대로, 그의 박동은 안정을 되찾아가듯 점차 느려졌다. 등을 쓰는 손길은 분명 차가울 것이 분명한데, 그런데도 아주 따스하게 느껴졌다.) 가슴이 엄청…. 빠르게 뛰시네요.
첸 티엔:헉, 머, 머, 멈출까요? (뭘? 아무튼 이런 말을 뱉는 것을 보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위 련:뭐, 뭐를요?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다.)
첸 티엔:으, 응? (빙그르르 돌아가는 눈.)
위 련:응?
첸 티엔:뭐, 뭐든… 요.
위 련:죽어달라고 하면…. 죽어주시게요?
첸 티엔:바, 바라신다면….
위 련:하하…. (웃기만 했다.)
첸 티엔:(조심스레 당신의 뺨을 쓸어 본다.) 음…. 어, 억지로, 웃어주지 않으셔도 돼요.
위 련:진짜 바라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말조심하세요…. (협박?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얌전히 손길을 받는다.) 이대로 자도 되나요?
첸 티엔:(그마저도 바들바들 떨렸을 테지.) 부, 불편하진 않으시겠어요?
위 련:안 불편한데…. (그대로 눈을 감았다가 정확히 10초 후에 떴다.) 무겁나요?
첸 티엔:저, 전혀요.
위 련:그럼 이대로 잘래요. (대답 끝나기도 전 곧장 눈을 감았다.)
(얌전히 눈을 감고 있으나 잠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별안간 몸을 일으키… 는 대신 옆으로 스르륵 굴러 내려갔다.)
첸 티엔:엇…. (당황하며 몸을 일으킨다. 부축을 할 것마냥 손을 내밀기도 했다. 멀뚱멀뚱.)
위 련:바란다면 뭐든 들어주신다고 하셨죠. (손만 답싹 잡는다.)
첸 티엔:그, 그, 그렇죠.
위 련:엄한 짓을 해도 귀히 여겨주실 거고요?
첸 티엔:무, 물론이에요. (고개 끄덕끄덕끄덕.)
위 련:(손가락을 느리게 얽는다. 찬찬히 떨어트린다.) 이대로 누워 계세요.
첸 티엔:(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연모하는 이의 접촉은 한 사내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저 꼭두각시처럼 네, 네. 긍정의 말을 내뱉는 것이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다.)
위 련:(몸을 완전히 일으켜 탁자 가까이로 다가갔다. 식은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을 반쯤 채운다. 찻잔을 기울이면 딱 한 모금은 제가 마셨다. 한 모금쯤은 괜찮잖아, 운명을 나누는 것도…. 남은 것은 머금은 채 그대로 당신에게 입을 맞춘다. 턱을 쥐어 벌려냈으니 겹친 입술을 따라 찻물이 당신에게로 넘겨진다. 역시 확인이 필요해. 내가 원한다면 당신은 정말 죽어줄 수 있는지. 이 의심까지 받아마실 수 있는지.)
첸 티엔:(기묘할 정도로 대척이 없다. 순순히 입을 벌려 액체를 모두 받아마신다. 제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심장은 유별나게도 뛰어 댔다. 느릿느릿 몸을 물린다. 눈가가 뜨거운 걸 보면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겠거니 싶다. 그리고는,) 저어, 차, 가…. 조금, 쓰, 쓴 것 같지 않나요?
위 련:(입술을 떨어뜨리는 것이 늦다.) 쓴 건 잘 못 마시나요?
첸 티엔:저는, 쓴 것을 좋아하지만…. (붉은 눈이 당신을 똑바로 직시한다. 여전히 애정만이 아롱거릴 뿐인 눈. 이어지는 음성에는 기묘한 확신이 어려 있다.) 비, 께서는…. 다, 단 것을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죠?
위 련:(눈이 가늘어진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첸 티엔:(그저 웃는다. 변함없이 볼은 붉었으며, 당신을 대하는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단순히 시선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장, 거리의, 음식은…. 대개 달지 않습니까. 조, 종종 둘러보셨다기에.
(그리고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금방이라도 처소를 나설 것처럼 문에 손 올린 채 말 이었다.) 그, 그러고 보니…. 다 읽지 못한 상소가 생각나서요. 이만 가 봐야 하,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대로 고개만을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비께서는, 꼬, 꼭. 단 것으로 입을 헤, 헹구셔요. 비가 드시기엔, 너, 너무 쓴 차였으니까요.
위 련:거짓말…. (당신이 일은 전부 처리하고 왔다고 말하였다. 당신은 저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 알고 있다. 위 련은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멍하니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성큼성큼 걸어 당신에게 다가갔다. 기어이 멱을 쥐어 돌려 세운다. 당신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지?)
첸 티엔:(눈을 크게 뜬 채 당신을 보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놀라 동그랗게 뜨인 눈, 멱을 잡혔다는 사실에 당황한 것 외의 감정이라곤 보이지 않는 낯.) 저, 저어…. 제가, 비의 시, 심기를 어지럽힐 말이라도…?
위 련:(옷깃을 한 번 거세게 움켜쥐었다 놓는다.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주무시고 가세요.
첸 티엔:(답하지 않고 우물거린다. 답지 않게 거부의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위 련:그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일 뿐이다. 침상으로 돌아가 몸을 뉘이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당신의 말이라고는 단 하나 듣지 않았다.)
첸 티엔:(당혹 숨기지 못한다. 서둘러 침상으로 다가가 이불의 끝자락을 쥐었다 놓길 반복했다.) 아, 안 돼요. 그대로, 주무시면….
위 련:왜 안 되는데요…. (이불 안에서 웅얼거리는 답변이 새어나왔다.)
첸 티엔:아, 아침까지, 쓴맛이 남, 을 테니까요. (침상의 가장자리에 걸터앉는다.) 제가, 어, 어떻게 해야…. 제 말을, 드, 들어주실 건가요?
위 련:(울적한 목소리….) 다 얘기해 주시면요. 언제부터 아셨어요?
첸 티엔:(덩달아 울상지었다. 당신이 슬퍼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이불 위로 팔을 뻗어 도닥이기 시작했다.) 마, 많은 걸…. 알 수 있는, 자리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모, 모른 체 할 수도 있는 자리고요. 저는, 이 일을…. 끄, 끝까지 모르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위 련:(그래, 나인들이 알 정도인데 당신이 모를 리가 있나. 안일한 건 저였다. 당신이 허락을 바랄 만한 일도 아니다. 이불을 직접 걷어내니 눈매가 기운 얼굴을 보인다. 시선 마주하지도 않고 중얼거린다.) 우스웠겠네요, 내가….
첸 티엔:(손끝 하나 대는 것조차 저어하던 이가 당신의 비애에는 생각을 거치지도 않고 손을 뻗는다. 부드러운 눈가를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저, 전혀요. 말, 했잖아요. 비께서, 바라신다면…. 뭐든, 해드릴 수 이, 있다고요. 그러니까…. 제 부탁도, 드, 들어주세요. 네?
위 련:(눈 느리게 껌벅거린다. 말 또한 마찬가지로 늘어진다.) 붙박이장 안에 보자기가 하나 있을 건데…. 그 안에 각설탕처럼 생긴 게 들어 있거든요. 직접 먹여 주세요.
첸 티엔:(그제야 눈매를 순하게 늘어트린다. 당신이 알려준 대로 붙박이장을 여니 보자기에 싸인 그릇이 보인다. 각설탕을 하나 꺼내 들고 와 당신의 입가에 대어주었다.)
위 련:먹여주는 법 모르세요? 조금 전에 알려드렸잖아요.
첸 티엔:허, 헉. 그으, 렇지만, 그, 음, 저, 저와, 닿는 것, 시, 싫어하시는 게, 아, 니었나요?
위 련:쓰읍.
첸 티엔:(바들바들바들…. 얼굴 시뻘겋게 물들인 채 각설탕의 끄트머리를 문다. 그리고는 상체를 숙여 고개를 가까이했으니, 각설탕 또한 당신의 입술 위로 들이밀어졌을 터다.)
위 련:(끝내 당신이 내민 것을 받아 물었다. 입 안에 밀어 넣은 것을 혀로 녹이다 말고 문득 당신의 목에 팔을 두른다. 그대로 고개를 틀어 입술을 겹치고, 혀를 비집어 얽었다. 그렇게 아주 순식간에 입을 맞추었다 떨어졌다.)
첸 티엔:(얼굴 홧홧 물들인 채 입가를 가려낸다. 손마저 붉었다. 아무래도 오늘 잠들기는 글렀다 싶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킨다.) 그, 러엄…. 주, 주무세요.
위 련:(또 옷깃을 쥐었다.) 같이 안 주무시나요?
첸 티엔:(숫제 울상을 지었다.) 더, 바, 바라게 될, 것 같아서요…. 노,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위 련:(오히려 단단히 쥔다.) 뭘 더 바라실 것 같은데요?
첸 티엔:(진동하기 시작했다.) 흑, 으, 그, 그게….
위 련:그게?
첸 티엔:(기어이 눈가마저 붉혔다….)
위 련:저 혼자 자면 악몽을 꿀 것 같아요…. (노선을 틀었다.)
첸 티엔:그, 런 거라면…. (그러나 주춤거린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모양이다.)
위 련:오늘이 아니라면 내일? (슬그머니 쥔 손을 놓는다….)
첸 티엔:(후다닥 몸을 물린다. 어느새 처소의 문을 등지고 서 있다.)
위 련:인사는?
첸 티엔:히익. (파드득 몸이 튄다. 죄지은 사람마냥 그랬다.) 그, 음, 저, 꾸, 꿈 없는 밤, 되세요…?
위 련:으응…. 주무세요. (부끄럼이 많으시군…. 당신의 속도 모르고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상체를 일으켜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다가 뒤늦게 몸을 뉘였다.)
▶:당신은 뒤늦게 잠자리에 듭니다.
...
...
눈을 떠보니 익숙한 집터와 함께 끌어 안겨지는 위 련이 보입니다.
네? 당신이 보인다고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
▶:아무래도 이건 죽은 옛 정혼자의 시선인 것 같아요.
그가 속삭이는 이름의 주체는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야속할 정도로 꿈에 한번 나타나지 않던 사람이 오늘은 무슨 일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등장할 줄은 몰랐죠.
그와의 마지막 만남은 어땠나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죠?
위 련:(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위 련은 제 생활이 영영 지속될 줄로만 알았으니 특별한 애정 표현을 건네지도 않았다. 왜 또 안고 그래, 남사스럽게? 멀리 가는 것도 아니면서. 평소처럼 무뚝뚝한 어조. 그러나, 다정하게 제 정혼자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등을 감싸 안는 모습에서 틀림없는 애정이 엿보였다. 잘 다녀와. 내 선물 사 오고오. 그런 마지막이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습니다.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죠. 왜 그리도 허무하게 간 건가요.
정혼자는 당신과 짧은 인사를 하고는 말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합니다.
그날 무슨 약조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빠르게 말에 올라타 이동하는 모습은 점점 산길로 들어섭니다.
얼마나 올랐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을이 사라지고 빽빽한 숲으로 가득한 길옆으로 낭떠러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나무 사이로 화살 꽂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화살에 놀란 말은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합니다. 그 움직임에 쥐고 있던 고삐를 놓치자 비탈길로 떨어집니다.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시선 사이로 말은 진정하지 못한 채 움직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바닥으로 떨어지자 몸을 움직이지 못함과 동시에 아픔이 밀려옵니다. 입 밖으로 말도 나오지 않아요. 이 주변에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보이는 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당신을 바라보며 도움을 주지 않는 게, 마치 당신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군요.
이렇게 죽었나요?
이리 허무하게 갈 줄 알았다면 가지 말라고 붙잡아 보기라도 할 걸…. 말은 당신을 버리고 저 멀리 뛰어가기에 바쁩니다.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눈이 감겨와요.
그 와중에 보이는 건 나무에 박힌 화살입니다.
붉은 끈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바라보다 이내 눈을 감습니다.
▶:눈을 떠보면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화려하다 못해 이곳이 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무늬들은 모든 것이 꿈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위 련:
SAN Roll
기준치:62/31/12
굴림:44
판정결과:보통 성공
(불에 덴 듯 파뜩 눈을 떴다. 아, 꿈이구나…. 심장이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현실의 감각을 돌려놓으려는 듯 손가락을 굽혔다 펴며 이불을 쥐었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앞으로 제가 쥐게 될 것은 참 화려하고 보드랍기만 하다. 꿈과는 정반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지경이지. 그 괴리를 몸소 느끼면 새삼스레 그이와의 끝이 머릿속에 재차 펼쳐졌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후회만 남은 마지막. 이불을 머리 위까지 올려버렸다. 일어나기 싫어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면, 바깥에서부터 나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인: 마마, 태자 저하께서 방문하셨나이다.
위 련:으으응…. (앓듯 대꾸하더니 비몽사몽 몸을 일으킨다. 어젠 도망치듯 나가놓고 아침부터 왜 오셨을까나….)
첸 티엔:(기실 당신의 허락 구하지 않고 문을 열어젖혀도 될 터다. 한 나라의 태자란 그런 위치이지 않나. 그러나 얌전히 문이 열리길 기다리기만 했다. 양손을 조신하게 모은 채로, 아주 공손하게 말이다!) 저어, 드, 들어가도 될까요…?
위 련:(그냥 들어와도 된다니까 매번.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킨다.) 들어오시지요….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부시시한 모습 그대로 당신을 맞이한다. 참 예라고는 갖출 줄을 모른다.)
첸 티엔:앗…. (직전 망설이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인지. 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콩 닫아버린다. 당신의 이런 모습은 자신에게만 허락된 것이지 않나. 나인이라 한들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음, 저어…. 가, 간밤엔 잘 쉬셨나요?
위 련: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당신의 말에 답도 않고 먼저 묻기나 한다….)
첸 티엔:그, 그게…. (양손을 모아 꼼질거리기 시작한다. 흘끔흘끔 눈치를 보기도 했다.) 오, 오늘은…. 비와 하, 함께 있고 싶어서요. 장, 거리를 구경하러 가지 아, 않으시겠어요?
위 련:(침상에 걸터앉는다. 상전이 따로 없다.) 허락은 받으셨어요?
첸 티엔:(우물쭈물. 쉬이 답하지 않는데다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독단적인 결정인 듯싶다….)
위 련:들키면 어쩌시려구? 뭐, 태자를 혼낼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만…. (문득 눈이 가늘어진다. 그러더니 뒤늦게 당신의 문안에 답하는 것이다.) 혼자 잤더니 악몽을 꿨어요.
첸 티엔:(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 걸음 다가가 당신의 안색을 살핀다.) 아, 악몽이요…? 어, 떤…?
위 련:그건…. (짧은 공백. 기억 안 나요, 그렇게 대답을 얼버무렸다.) 오늘도 혼자 자야 하나요?
첸 티엔:(간극 속 망설임을 읽는다. 그러나 캐묻지 않는다. 당신이 숨겨내길 원한다면 기꺼이 속아줄 것이다.) 으, 으음. 괜, 찮으시겠어요? 정말…. (당신은 나를 원하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눈치를 보았다.)
위 련:(그렇게 걱정할 게 있나? 눈치 보는 당신과 반대로 시큰둥한 얼굴이다.) 왜 그리 염려하십니까? 홀로 밤을 지새기 두려워 낭군과 같이 잠들고자 하는 것뿐인데…. (아, 모르는 척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짓궂게 구는 것이다.) 오늘밤, 뒤늦은 초야라도 치르실 작정입니까?
첸 티엔:허, 허억. (이후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선 채로 죽은 것 같다.)
위 련: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군요. (죽?은 당신을 뒤로 한 채 옷가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갈 채비를 해야지.)
첸 티엔:(이마까지 시뻘게진 채 뒤를 돌았다.) 화, 환복하실 때까진 이렇게, 이, 있을 테니…. 처, 천천히 하세요.
위 련:편히 계세요. (당신의 존재 신경쓰지 않고 ―제 직접 보라고 애걸복걸해도 당신은 못 볼 사람인 것 같으니― 툭툭 옷을 벗어내린다. 장거리에 나간다 하였으니 제 옷가지 중 그나마 무늬가 화려하지 않은 백색의 옷 한 벌을 골라 착용한다. 이어 밤 사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장신구가 든 함을 열었다. 어젯밤 받은 것을 곧장 착용하는 게 도리인가 싶으나, 오늘의 복장과는 썩 어울리지 않을 듯하니 당신이 선물해준 것 중 비교적 수수한 비녀를 골랐다. 머리를 위로 올려 묶어 장신구로 고정시키고는, 다 되었다는 듯 뒤돌아 선 당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첸 티엔:(주춤주춤 뒤를 돈다. 이어질 반응은 뻔했다. 넋 놓은 이마냥 당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볼을 발그레 물들인 채 한 사람만을 훑어내는 시선은 첫사랑에 허우적대는 서생과 다를 바가 없다.) 자, 잘 어울려요…. 전부. (겨우 말을 맺고는 손을 내민다. 희멀건 손이 허공에서 잘게 떨렸다.)
위 련:(분칠 가뿐히 생략하였음에도 곱게 봐주기만 하니, 뭇 아낙들이라면 수줍어하든, 혹은 기뻐하든 둘 중 하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기라도 한 마냥 아무렇지 않게 손을 겹쳤다.) 모두 전하께서 마련해주신 것이니까요.
이리 같이 나갈 수 있다니…. (느리게 걸음을 떼며 농을 던진다.) 어젯밤 급히 돌아가 상소를 마저 읽은 보람이 있으시겠어요?
첸 티엔:(시린 손 위로 미지근한 온기를 붙들어두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뻤으니 웃음은 절로 새어 나오기만 했다. 정말, 이래서야 바보 같다는 말에 부정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다만 이어지는 말 듣자마자 낯 위로 그려낸 미소가 사라졌는데, 이유는 별것 없다. 지난날 밤 급히 제 처소로 돌아가 한 짓이라고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진다. 꼭 파렴치한 상상을 한 사람처럼 말이다! 애써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런 것치고는 잔뜩 당황한 목소리가 이리저리 튀어댔다.) 그으, 저, 음. 네, 네에. 여, 열심히 읽어서…. 시, 시간이 났어요.
위 련:얼굴이 엄청나게 붉어지셨는데. (당신의 붉어진 피부에 시선을 고정하더니, 꼭! 콕 짚어 말했다.) 다른 일이라도 하셨나요?
첸 티엔:(파들짝!) 아, 아, 아, 아, 아, 아니요.
위 련:진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첸 티엔:(어디선가 펑! 터지는 소리가 났다. 기어이 두 눈에 눈물을 아롱아롱 매달고 만다….) 윽, 그, 그게….
위 련:그게? (오늘따라 집요하다. 원래 같았으면 눈물 보일 즈음 모른 체를 하곤 했을 것이다. 어젯밤 제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일을 맘에 담아두고 있었던 사람 같기도 하고….)
첸 티엔:(맞잡은 손마저 따끈해졌을 것이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릴 냈다.) 그, 그게…. 죄, 죄송해요. 그, 러려던, 건, 아, 아니었는데….
위 련:(따끈해졌네…. 겹쳤던 손을 조물거렸다.) 그러려던 건 아닌데, 제게 사과해야 할 일이 있었나요?
첸 티엔:(울먹거렸다. 그러는 중에도 손을 떼어낼 생각은 않았으니, 애정의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비, 를…. 떠, 떠올리면서. (꽤 긴 시간 공백이 흘렀다.) 밤을, 다, 달랬으니…. (빈손을 들어 제 얼굴을 반쯤 가려낸다.) 무어라, 사죄, 를, 드려야 할지….
위 련:떠올리면서? (꼭 이렇게 말꼬리를 따라했다. 흐응, 이제야 알았다는 듯 낮게 비음 흘리기도 했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도망치듯 가셨구나. 아주 건강하네. 태자가 병환으로 세상을 뜰 일은 없을 것 같지…. 게다가 나를 좋아하고. 낯을 가린 손 그 손등 위로 입을 맞추었다 떨어진다.) 숨김없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옅게 웃으며 발을 뗀다. 어서 가요, 사과 들을 생각 없다는 듯 재촉하기만 했다.)
첸 티엔:(사소한 접촉에도 티 나게 몸 움칠 떨어댄다. 싸늘한 눈초리 받을 것까지 상상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입맞춤이니…. 예상치 못했다는 듯 눈 동그랗게 뜨고 껌뻑거리기도 했다. 뒤늦게 당신의 걸음에 발을 맞춘다.) 음. 저어…. 불, 쾌하진, 아, 않으신가요…?
위 련:불쾌할 것이 있나요? 부부 사이인데. (두 사람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여지껏 몸을 겹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사이 아닌가. 당신이 동의 없이 저를 취하더라도, 남들은 그 관계에 강제성이라는 단어를 어디에도 갖다붙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과분할 정도로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무랄 리가 없다.)
첸 티엔:(배시시 웃는다. 당신의 답이 썩 마음에 들었던 탓이다. 부부 사이.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그, 래도…. 아,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게끔, 잘 처신할게요. (살그머니 맞잡은 손을 이끈다. 향하는 곳은 희서정이다.)
위 련:(처신할 것이 있나? 나 모르게 하면 되지. ―뭘?―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을 하며 당신과 보폭을 맞추어 걸었다. 희서정을 둘러본다. 이리 말끔한 데 개구멍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주위를 살펴봐도 잘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꼭꼭 숨긴 모양입니다. 하긴,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는 공간인 만큼 찾기도 어렵겠죠.
위 련: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74
판정결과:실패
아무것도 안 보여요.
첸 티엔:앗…. 이, 이쪽이에요.
위 련:우웅.
▶:그가 이끄는 대로 나무들 사이로 가까이 다가가니, 작게 동그라미 표시가 그려진 벽이 보입니다. 이곳이 개구멍인가 봐요.
첸 티엔:(빈손으로 벽을 밀자, 성인 한 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 보인다. 잠시 손을 놓고 고개를 숙여 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위 련:(호오, 익숙해보이네…. 몸을 숙여 당신을 따라 나갔다.)
▶:궁궐 밖은 시장통과 연결되어 있어서인지 상인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태평성대라고 하더니 그 말도 틀린 게 아닌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잔뜩 피어 있네요. 궁 안과는 다르게 시끌벅적합니다.
궁에서 태자와 태자비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면 발칵 뒤집힐 게 뻔하니, 아무래도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무르지는 않는 게 좋겠네요.
떡집비단 가게약재방꽃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위 련:어디 갈까요? (라고 말하며 곧장 떡집을 기웃거렸다…. 식사를 하지 않고 움직이는 건 오랜만인지라.)
▶:한창 새로운 떡이 만들어지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가판대 앞에는 찹쌀떡, 꿀떡, 절편, 오메기떡, 인절미 등등 여러 떡이 보이네요.
위 련:(돈 같은 걸 들고 나왔을 리 없다.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첸 티엔:저어…. (잠시 머뭇거린다. 아무래도 비, 라는 호칭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부, 부인…. (겨우 이런 호칭 하나 입에 담는 걸로도 얼굴을 잔뜩 붉혔다.) 손을, 주, 주실 수 있으실까요?
위 련:부인? (당신이 읊은 단어를 고대로 따라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라 금세 고개를 끄덕였지만.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첸 티엔:(당신의 손 위로 고운 비단 주머니를 올려주었다. 꽤 묵직하다.)
위 련:뭐예요? (눈만 동글동글.)
첸 티엔:여, 엽전을 조금 담아 보았습니다. 장거리를, 두, 둘러보는 데에 필요할 것, 같아서요.
위 련:우와아.
그렇지만 당신이 계산해 주시면 안 되나요? 무거운데. (이런 말이나….)
첸 티엔:앗…. (냉큼 가져간다.) 워,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 골, 라주세요.
위 련:(금방 빈손이 된다! 그대로 당신의 손을 답싹 쥐었고, 다른 손으로는 하얀 찹쌀떡을 콕 가리킨다.) 닮았어요. (그러더니 당신을 쳐다보았다….)
첸 티엔:(?////? 표정이 된다. 사고 싶으시단 뜻인가? 가장 둥그런 하얀 찹쌀떡을 하나 골라 값을 치른 뒤 건네주었다.) 시, 시장하실 텐데…. 우선 드시지요.
위 련:그냥 닮았다고 한 건데에.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었다. 떡을 한 입 베어 물고 남은 것은 당신의 입에 쏙 물려주었다…. 이어 감상을 바라는 눈빛.)
첸 티엔:(우물우물우물. 볼록 튀어나온 뺨이 열심히도 움직인다. 급히 음식물을 삼켜 넘긴 뒤에도 제 입가를 가리며 답했다.) 마, 맛있어요. 부인께서는…. 이, 입맛에 맞으셨나요?
위 련:얹히겠다. 천천히 잡수세요. (오물거리는 볼을 눌렀다가는 분명 체할 테니 애써 참았다…. 맛있었어요, 짤막하게 대꾸하며 비단 가게로 걸어갔다.)
▶:고급 비단을 파는 가게입니다. 옆 나라에서 인기 있는 수입품도 판매 중이라며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네요. 각국의 사신들도 들러서 비단을 사 간다고 하는 게 사실인지 곱디고운 비단들이 가득합니다.
이 비단들로 옷을 지어도 맵시가 꽤 나겠습니다. 옆 가판대에는 가락지, 팔찌, 귀걸이, 노리개 등등 수수하거나 화려한 장신구들도 올려져 있네요.
위 련:(원한다면 이보다 더한 것이라도 언제든 가질 수 있는 위치이니 크게 탐내는 것은 없다. 가판대를 보다 말고 당신을 힐끔.) 가지고 싶은 것 있으신지요?
첸 티엔:(연보랏빛 비단에 시선을 빼앗긴 채였다. 뒤늦게 고개를 파뜩 든다.) 네, 네? 그으, 무, 무어라 말씀하셨나요?
위 련:저거?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당신이 눈여겨 보던 것을 가리켰다.)
첸 티엔:앗…. 보, 보셨나요? (수줍은 양 고개를 끄덕인다.) 부, 부인의 머리색과 똑 닮았기에…. 그만, 시선을 빼, 빼앗기고 말았어요. 저 비단으로 옷을 지어도, 자, 잘 어울리시겠죠, 분명.
위 련:(보라고 아주 티를 내는 것 같았는데…. 속으로만 생각했다. 두 사람이 조금만 더 편한 사이였다면 입밖으로 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권위로움을 상징하듯 붉은색의 옷감은 장롱마다 들어차 있었으나, 연보라색은 그 속에서 쉬이 찾기 어렵긴 했다.) 제 옷을 지어 주시려고요?
첸 티엔:그, 그럼요. 최근엔, 자, 장신구 외의 것을…. 드리지 못하기도 했고. 저, 절기가 바뀌었으니…. 새 옷을 지어드려야죠. 앗, 무, 물론…. 이보다는, 더 귀한 비단을 고, 공수해서요.
위 련:저 정도의 비단으로도 충분한걸요. (여름에 비하여 차가운 손을 작게 흔들었다.) 매번 저만 받는 것 같은데, 이번엔 제가 선물해드리고 싶어요. 안 될까요? (물론 당신의 돈을 쓰게 될 테니 제대로 따지자면 위 련은 물건을 고르고 생색을 내는 일만 하게 될 것이다! 눈에 걸리던 가락지를 하나 가리켰다. 조그만 연보라색 보석이 박혀 있을 뿐, 아주 수수한 태였으니 과연 온갖 화려한 물건을 눈에 담아본 태자의 성에 찰까 싶지만….) 어떠세요?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떤 염려도 없이 묻는다. 당신이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듯!)
첸 티엔:(과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만족이 낯 위로 가감 없이 드러난다. 붉어진 귀 끝만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제게 가락지의 값어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중앙에 박힌 보석이 당신을 연상시킨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절로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기쁨 이상의 감정, 황홀경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고작 가락지가 무어라고.) 조, 좋아요…. (냉큼 값을 치르고 가락지를 가져와 제 손에 끼워 낸다.) 펴, 평생 빼지 않을게요. 부인이, 서, 선물해주신 거니까…. (그리고는 곁눈질로 가판대를 훑는다. 화려한 장신구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낌새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저것들은 곧 티엔의 소매 춤 속으로 들어갈 것 같지. 모두 당신 것이 될 것이다.)
위 련:(고작 가락지가 무어라고 그런 표정을 짓고 또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일까?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나 그 순도 높은 애정이 싫지 않다. 끔찍한 악몽을 잊을 수 있고, 위중한 사명을 내려놓을 수 있다. 황홀에 겨운 목소리를 귀에 담으며 생각하고 만다. 아, 그저 사랑받는 누군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다음에는 더 좋은 것을 선물해드릴게요. (제가 고른 반지는 당신의 소지에 꼭 들어맞았을 것이다. 하얗고 길쭉한 손가락 위에 자리 잡은 가락지가 무척이나 잘 어울려 뿌듯한 심정이 들기까지 했다. 가판대를 훑고 있음을 눈치챈다면 슬그머니 당신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단 하날 선물하고 더 많은 걸 받게 된다면 체면상 곤란하다!) 다른 데도 둘러봐요, 저희. 같은 데 오래 있으면 누군가 알아볼 수도 있잖아요. (소근거리더니 냉큼 팔짱을 꼈다. 다음 걸음이 닿은 곳은 약재방이다.)
▶:약재방으로 가니 따뜻함과 포근한 느낌이 동시에 듭니다. 묵직한 공기 사이에서 보이는 것들은 약재입니다. 안을 가득 채운 뜸 냄새를 맡으니 잠이 오는 것 같기도 해요. 약재를 매달아 놓은 공간들을 보면, 방 안에 숨겨둔 약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네요.
첸 티엔:어, 어렸을 땐…. 은수저가 그렇게, 시, 싫었어요.
위 련:(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으니 당신에게 착 붙은 채….) 왜요?
첸 티엔:(쪼끔 따끈해졌다.) 으, 은수저의 색이 변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여러, 사람들이 주, 죽어 나갔으니까요. 그, 그런 건 역시…. 다, 달갑지 않아요.
위 련:하긴. (따끈하군. 태연하게 당신의 팔뚝을 꾹꾹 누른다. 말랑할까?)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생략된 말이란 아마, ‘모르는 척하는 거요.’)
첸 티엔:(의외로? 탄탄하다. 어릴 적부터 궁도를 익혔으니 말이다! 다만 당신이 누르는 횟수만큼 얼굴이 붉어졌을 것이다….) 아, 아니요…. 달, 갑지 않은 것과, 버, 법도를 바로 잡는 것은, 다른걸요. 반기를 들었다면, 처형당하는 것이…. 다, 당연하죠. (다른 이의 죽음을 논하는 것치고는 말간 낯이다. 가책 하나 느껴지지 않는, 단순히 수줍음 뿐인 얼굴.) 무, 물론, 부인은, 예외예요….
위 련:(생각보다? 탄탄하군. 바깥이 아니었더라면 팔락이는 옷자락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맨살을 더듬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장거리라 참 다행인 일이다, 지금은 계속해서 팔을 신기하다는 듯 꾹꾹 누르기만 했으니까…. 당신 또한 냉혹한 구석이 있긴 하구나, 그저 마음 여리기만 할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단호한 면이 있으시네요. (의외라는 듯 당신을 가만 쳐다보다가도 금세 시선을 거두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하는 사고일 테니 큰 위화감이 들지는 않았다.) 저는 왜 예외고요?
첸 티엔:(상당히 많이 따끈해졌다. 어쩌면 머리 위로 김이 솟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러고 싶어서요…. 부, 불변할 권력을, 누리게 해드리겠다고…. 약, 조했으니까요. 아, 안 되나요?
위 련:(고작 팔 만진 것 가지고! 어리숙하기도 하지. 꾹꾹 눌러대는 건 관두었다.) 안 될 것 없지요. 기뻐서 여쭈어 봤습니다.
첸 티엔:(헤헤….) 부인께서 기쁘시다면, 저, 저도…. 기뻐요. (약재에서 시선을 돌려 바깥을 바라본다.) 꼬, 꽃을 조금 사서 돌아갈까요?
위 련:꽃이라면 궁 안에도 충분한 것 같지만…. 그러지요, 뭐. (꽃집으로 총총.)
▶:색색의 꽃들이 가득한 가게입니다. 희서정에서도 보지 못했던 많은 꽃이 보입니다.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싱싱한 것 같습니다.
첸 티엔:워, 원하시는 꽃이 있나요?
위 련:음……. (없는 것 같다.) 제가 있는데 꽃이 왜 필요하죠? 돌아갑시다. (급기야.)
첸 티엔:(수긍했다.) 앗…. 그, 그럴까요?
위 련:네에. (돌아가는 길 뭐가 아쉬운지 자꾸 두리번거리다가…. 설탕 입힌 과일을 발견했다. 하나를 당신의 손에 들려준다. 계산은 당신의 옷을 뒤져 제가 했다.)
첸 티엔:(멀뚱멀뚱멀뚱.) 그으, 부, 부인께서는…?
위 련:달아서 안 먹어요. (멀뚱멀뚱. 당신이 다 먹으면 돌아가겠다는 듯 빤히 쳐다만 보고 있다.)
첸 티엔:시, 신경 써주어서 고마워요. (또다시 볼을 붉혔다…. 이쯤 되면 발갛지 않을 때를 찾는 게 빠를 듯하다. 본디 단 것을 좋아했으므로 막대에 꽂힌 과일 쏙쏙 빼먹는 데에 거침이 없다. 볼을 열심히도 실룩대며 과일을 먹어 치웠다. 입가며 손이 찐득해졌으니 어서 돌아가 씻어야겠다 싶다.) 소, 손은…. 못, 잡고 가겠네요.
위 련:(잘 먹는군…. 재촉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하도 빠안히 쳐다보고 있었으니 남들의 눈엔 꼭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당신의 입가에 묻은 것을 엄지로 문질러 닦아 주었다. 그대로 당이 묻은 엄지를 입에 물었으니 금방 단맛이 퍼진다. 이렇게 단 걸 어째 먹었나 싶다. 개의치 않고 끈적이는 손을 쥔다.) 안 될 게 있나요, 돌아가서 씻어내면 되는걸.
첸 티엔:(손을 조금 바르작대다가도, 이윽고 미약하게나마 힘주어 겹쳐 쥔다.) 네…. 고, 고마워요. 이것도. (그리고는 바보 같이 웃었다.)
▶:슬슬 해가 지려고 하는지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입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간 건지 모르겠네요. 주위를 살펴보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거 없이 모두 행복한 표정입니다. 이게 바로 현 왕가가 이뤄낸 태평성대라는 것이겠지요.
궁으로 돌아갈까요?
위 련:(다들 찾겠군…. 당신을 찾는다고 궁이 뒤집어진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으니 발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설탕물에 적신 손을 붙잡고 있으니 꼭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는 기분이다. 나들이는 아주 즐거웠다! 근래 들어 가장 만족스러운 하루로 꼽아도 될 것 같다. 궁으로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다시 개구멍을 이용해 궁 안으로 돌아갑니다. 다행히도? 두 명의 일탈이 가시화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나인의 눈초리가 조금 따갑기는 하였으나, 뭐 어쩌겠어요.
첸 티엔:미, 밀린 업무를 해결하고, 해시쯤 찾아뵐게요. 오늘은…. 아, 악몽을 꾸지 않으시게끔, 곁에 있겠습니다.
위 련:(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다. 눈치라는 것은 보지 않는다….) 예, 나라를 위해 또 힘쓰셔야 하니…. (웃음기 섞인 말. 손을 놓고 가볍게 흔들어 준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티엔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자리를 뜹니다. 침전으로 돌아갈까요?
위 련:(돌아갑니다.)
▶:여름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아직 일교차가 큰 편이라 그런지 방안은 싸하기만 합니다. 나인을 통해 불을 지펴 열기를 넣는 게 좋겠어요.
위 련:(끈적이는 손을 젖은 천으로 닦아내고는 곧장 환복하여 이불 안으로 스르륵 들어갔다…. 춥당. 꽂았던 비녀를 내려 머리카락을 풀었다. 바깥에 서 있을 나인에게 이른다.) 방 안에 불을 지펴다오.
▶:예, 마마. 대답과 함께 머지않아 방안이 온기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리고,
나인: 마마, 서신이 도착했사옵니다. 어찌할까요?
위 련:(일어나기 귀찮군…. 가만 누운 채 대꾸했다.) 문 앞에 놓아두거라.
나인: 대감께서 꼭 직접 전해드리라 하셨나이다.
위 련:(우우. 꾸물거리며 일어나더니 곧장 문을 열어젖혔다.) 이리 다오.
▶:나인이 공손한 태도로 서신을 내려놓고 돌아갑니다. 무슨 서신이죠? 곱게 말려져 있는 서찰입니다. 끈을 풀어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위 련:(문을 꿍 닫고 들어간다. 끈을 풀어 내용을 확인합니다.)
▶:이런 서신을 보내다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 좌인이 침투한 궁궐 안에서는 가능하다 그건가요?
곧 티엔이 올 시간입니다. 서신을 숨기나요?
위 련:황당하네. (황당하네. 서신을 대충 장 안에 숨겼다. 꾸깃꾸깃.)
▶:탁자 위에는 나인이 준비해 둔 주전자가 보입니다. 오늘도 할 일을 해야겠죠.
위 련:(이미 다 들켰다는 걸 바깥에선 모르는 모양이지. 굳이 독을 타야 하나? 한숨만 푹푹 내쉰다. 왕위 교체가 진정 가능한 일일지도 의심스럽다. 당신이 정말 죽기라도 하면 의심 받을 사람이 누구일지는 불보듯 뻔한데, 과연 우인들은 나를 죽이지 않고 배길지…. 오늘치의 약을 보란 듯이 찻주전자 옆에 꺼내둔 채 기다린다.)
나인: 마마, 태자 저하께서 방문하셨나이다.
위 련:들어오십시오. (탁상 앞에 앉아 당신을 맞는다.)
첸 티엔:(허락 떨어진 뒤에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밀린 일을 급하게 처리하고 와서인지, 어제보다는 좀 더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마저도 당신을 보자마자 웃음 지었기에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기, 기다려 주었나요? 저를….
위 련:(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약효가 도는 모양인가?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어서 앉으시지요.
첸 티엔:(순순히 자리에 앉는다. 주전자 옆의 약을 보고서도 아무런 말 꺼내지 않았다.)
위 련:(약을 싼 종이의 끝을 톡톡 두드린다.) 왜 아무 말도 안 하십니까?
첸 티엔:(그저 당신 몫의 잔에 각설탕이 채워져 있는지, 그것만을 확인할 뿐이다.) 마, 말하길 바라시나요?
위 련:(각설탕도 약재의 옆에 고스란히 내어두었을 것이다. 이리 대담하게 구는 것은 모두 당신의 덕이다.) 그걸 바란다기보다는…. 말하는 게 옳지 않나요? 언제까지나 예외를 둘 수는 없지 않나요. 언제 죽을 줄 아시고….
첸 티엔:글, 쎄요…. (각설탕을 하나 집어 당신의 잔에 넣는다. 찻물 채워지지 않은 잔과 각진 것이 댕그랑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럼, 주, 죽기 전에, 제 소원이라도…. 들, 어주시겠어요?
위 련:(당신의 손짓을 모두 눈에 담을 뿐이다. 턱을 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뭔데요? 소원이.
첸 티엔:(볼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사랑이었다.) 여, 연모한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빈, 말이라도 조, 좋으니까요.
위 련:고작?
첸 티엔:(눈썹을 늘어트린다.) 고, 고작이 아닙니다. 제게는….
위 련:하…. (맥아리 없는 웃음을 흘린다. 조소에 가까웠다. 누구에 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고작이 아니라고? 연모한다는 빈말을 듣겠다고 사활을 거는 것이, 어떻게 고작이 아니란 말인가? 당신의 마음은 아마 한 평생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 감정에 의지하고 싶어진 제 자신이 무엇보다 우스웠다.) 명일이 좋겠군요…. (사랑인지 무언지를 확인하는 날은. 찻주전자에 약을 흘려 넣는다.) 오직 나만이 예외인가요? 제가 아끼는 사람에게도 그 예외라는 게 통합니까?
첸 티엔:(주전자를 가져와 제 잔만을 채워 낸다. 그리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이어 남은 찻주전자를 들고 창가로 다가서더니, 내용물을 전부 후원에 쏟아버린다. 혹여나 당신이 어제처럼 독을 삼킬까 저어한 탓이다. 마지막 한 방울마저 탈탈 털어낸 뒤에야 탁상으로 돌아와 앉는다.) 무엇을…. 어, 어디까지. 바라시나요? 마, 말씀해보세요.
위 련:겁도 없으시지. (어제 직접 장을 열어 보았으니 알 수 있을 텐데. 당신에게 남은 날이 이제 단 이틀에서 하루로 줄어들었다고…. 탁상을 밀더니 몸을 일으켜 당신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대로 당신을 내려다보며 턱을 가볍게 쥔다.) 잘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혼자 남는 건 무서워요.
첸 티엔:(반사적으로 제 입을 틀어막는다. 파렴치한 상상이라 손가락질받을 만하나, 작일 접문했던 것이 계속 떠올랐으니 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제가, 겨, 곁에 있어 드릴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요. 저는, 보, 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어, 언제나 비의 편임은 변함이 없을 테니….
위 련:어제는… 별로셨나 봐요? 가려버릴 줄은 몰랐는데. (얼굴을 숙였으니 두 사람의 사이가 빠르게 좁아들었다.) 곁에 있어 주시면 되지요.
첸 티엔:(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차, 찻물을 삼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독이, 나, 남아있을 거예요…. (거리가 좁아 들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척 보기에도 경직된 자세였으나 결코 당신을 밀어내는 법이 없다.) 제, 주, 죽음을…. 바라시는 게, 아니었나요?
위 련:(손등 위로 쪽 소리나게 입을 맞추고는,) 오늘은 한다는 말 안 했는데. (미련 없이 떨어졌다!) 명확하게 따지자면 제가 바라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고.
첸 티엔:(결국 푸시식 소리가 났다.) 그럼…. 비께서, 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의무나, 사명이 아닌…. 비의 바람이, 드, 듣고 싶어요.
위 련:변함 없는 나의 편을 갖는 것이요. 나보다 먼저 떠나지 않을…. (당신의 붉은 눈을 가만 들여다 본다.) 아, 그 사람이 제게 부와 명예까지 쥐여주면 더욱 기쁘겠네요. 들어주실 수 있나요?
첸 티엔:그건…. (바스스 웃는다. 눈을 접어 웃었으니 새하얀 호수에 비친 붉음도 곡을 이루었을 터다. 몸이 흔들림에 따라 둥그런 곡선 또한 뒤섞이며 꼬인다. 꼭 월하노인의 붉은 실처럼, 그렇게.) 어,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더, 어려운 것을 바라셔도, 되, 될 텐데요….
위 련:(그 어떤 부정도 찾을 수 없는 붉음이나, 순한 호선을 그리는 날카로운 눈매도. 오로지 한 사람에게 허용된 것 같다. 하잘것없는 물웅덩이에 하늘이 비칠 때만 그게 꼭 호수 같았다. 백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이마 위로 입술을 스친다. 첸 티엔의 애정이 위 련을 특별하게 만드는 만큼, 위 련은 첸 티엔의 애정이 특별해졌다.) 그렇다면 죽지 마세요. 나를 위해서. (당신의 잔에 독을 탄 장본인이, 한 치 죄책감도 없이 그리 속삭였다. 저를 위해서라면 운명마저 바꾸어 놓으라는 듯이.)
첸 티엔:비께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 할까요. (기꺼이 살아가겠노라 답한다. 자신의 생사여탈마저 위 련에게 쥐여준 셈이다. 진정 사랑이거나, 제대로 미치지 않고서야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아, 또 한 가지의 선택지가 있긴 했지만. 사랑이거나, 미쳤거나, 혹은 둘 다거나.)
하나…. 위, 대감께서는…. 제,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까. (둥그렇게 뜨인 눈이 이채를 띤다. 위 련을 떠올리지 않는 첸 티엔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고운 미성이 느릿느릿 이어진다.) 본디, 바, 반역은 참형으로 다스립니다. 일가를 며, 멸하지요. 그러니 비에게, 무, 묻겠습니다. 제가…. 어디까지, 누, 눈을 감으면 되겠습니까? (모든 것은 당신이 바라는 대로 될 것. 그저 그뿐이다.)
위 련:(우응, 고민에 잠겨 침음을 흘렸다. 당신의 위에 앉은 채 다리를 통통 흔들어대기도 했으니 진중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의 명운을 좌우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마냥 굴었다.) 내 가문 사람들은 모두 관계 없는 셈을 쳤으면 하는데, 그랬다가는 위 가에서 태자비를 등에 업고 좌인을 배반한 것처럼 보이겠죠? 그럼 아버지도 가만 있진 않을 테니 내가 곤란해지는데. 어쩌면 좋을까아. (눈만 깜빡깜빡.)
첸 티엔:(다리를 동동거릴 때마다 제 몸이 흔들거렸으니 행여나 당신이 떨어지기라도 할까 허리를 둘러 안는다. 그러는 중에도 제 손바닥을 당신에게 닿지 않게끔 허공에 띄웠으니 부부라기에는 참으로 어색한 접촉이었다.) 좌인이, 바, 반역을 꾀할 수 있었던 건…. 교연군 덕분이에요. 교, 연군을 처리한다면…. 화, 황실의 적통은 저만이 남는 것이니, 좌인도 쉬, 쉽게 움직이진 못할 겁니다. 그, 렇게…. 하, 할까요? (타인의 생을 빼앗는다는 말을 잘도 입에 올렸다. 그런 것치고는 여전히 말간 낯이다.)
위 련:잘 아시네요. (아주 꿰고 있구만 그래…. 당신의 손을 제 허리에 꼬옥 둘러주었다. 당신의 손바닥이 제 옷감을 마구 흩트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럼 그렇게 해요. (당신의 목에 팔을 둘러 안는다.) 오늘밤은 곁에 있겠다 하셨지요?
첸 티엔:(겨우 옷감이 닿았을 뿐인데도 손을 벌벌 떨기 시작하였으니, 당신의 뜻대로 옷자락이 마구 구겨졌을 터다. 등 빳빳이 세운 채 호흡마저 당신에게 닿지 않도록 옅게 내쉬었다.) 그으, 네, 네. 괘, 괜찮으시다면….
위 련:이대로 안아들 수 있겠나요?
첸 티엔:어, 어어…. (지근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질 못하고 있다.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직전 겨우 당신의 말을 이해하고서는 자세를 바꾼다. 한 손은 당신의 등허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은 다리 아래로 밀어 넣어 무릎을 받쳤다. 물론, 여전히 손바닥은 허공에 띄운 채로 말이다! 하여간 그대로 몸을 일으킨다. 힘들이는 기색은 전혀 없다.) 이, 렇게요?
위 련:(우와아. 짧은 탄성을 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로 들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라는 뜻이 담겨 있는 탄성이다.) 으응, 저희 이제 누워요.
첸 티엔:(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한 편으론 으쓱하기도 했을 터다. 당장 내일부터 활을 쥐는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배우자의 칭찬은 토끼도 춤추게 한다. 그러안은 몸이 흔들리지 않게끔 조심조심 걸어 당신을 침상에 뉘어 준다. 그리고는 조금의 거리를 둔 채 자신 또한 몸을 뉘었다. 나란히 누운 것치고는 거리감이 있다.) 음, 조금, 기, 긴장되네요…. (이런 발언이나.)
위 련:(천장을 보게끔 누웠다가 고개만 휙 돌려 당신을 바라본다.) 왜 떨어지세요? 긴장은 또 왜 하시구요. (물음 내놓더니 결국 몸까지 모로 뉘였다. 당신의 옷자락 사이로 손을 밀어넣어 맨 팔뚝을 꾹꾹 만지기 시작했다. 오전 장거리에서 하지 못했?던? 행동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무얼 감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꾸 조물거린다.) 체력 단련도 부지런히 하시는가 보네요?
첸 티엔:가, 같이 잠드는 일은, 며, 몇 번, 없, 었으니까…. (손길 닿을 때마다 티 나게 몸을 움츠렸다. 기어이 땅울림이라도 난 것마냥 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더니, 눈마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당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정신이? 없는 모양.) 아, 음, 그으, 가, 감사합니다?
위 련:감?사할? 것?까지야? (이쪽도 적잖이 당황했다. 같이 잠든 적 흔치는 않았다만, 그래도 이 정도로 탈이 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체력 단련을 위해 무얼 하시느냐 물어보려던 맘은 접어두고 손을 쏙 빼냈다. 그러더니….)
에잇. (당신의 몸통을 꼭 껴안았다. 팔까지 함께 품에 안아버렸으니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첸 티엔:허억. (단말마 이후 반응이 없다. 아무래도 누운 채로 죽은 듯하다.)
위 련:드디어 암살했나…. (아니다.)
첸 티엔:(바들바들바들바들….) 이, 이, 이렇게까지, 부, 붙어서…. 자야, 하, 할까요?
위 련:안 되나요?
첸 티엔:그, 런 건? 아, 아니지만? 그, 음. (슬그머니 몸을 튼다. 하체가 맞붙지 않게끔…….)
위 련:제가 또 눈치가 없었나요?
첸 티엔:무, 무슨, 눈치요…?
위 련:(당신의 아래를 티나게 힐끔거렸다….)
첸 티엔:(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미, 미, 미안합니다…. 그게, 그, 제, 마음대로…. 되, 되질 않아요.
위 련:제가 가라앉게 도와드릴까요? (멀뚱.)
첸 티엔:아, 아, 아, 아뇨? (목소리가 튄다. 제대로 당황한 모양이다.) 그, 그런, 걸, 부탁할 수는….
위 련:무얼 상상하셨나요? 주의를 다른 곳으로 옮겨 드리겠다는 말이었는데. (쪼끔 떨어졌다.)
첸 티엔:(기어이 눈물방울을 퐁퐁 떨구고 마는데….) 윽, 죄, 죄송…. (훌쩍이며 슬그머니 몸을 띄웠다. 두 사람 간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다….)
위 련:너무 멀리 가지는 마시구요. (적당히 팔에 찰닥? 달라붙은 모양이 되었다.)
첸 티엔:(눈을 질끈 감았다.) 네, 네. 어서 주무세요….
위 련:웅. (당신의 팔 위로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한참이나 말이 없었으니 잠이 들었나 싶다가도….) 그런데요. (불쑥 말을 꺼냈다.)
첸 티엔:네, 네. (냉큼 답한다. 잠들지 못한 모양.)
위 련:안 주무시네요.
첸 티엔:노, 노력하는 중이에요.
위 련:네에, 네. (어련히 그러시겠군…. 따위 생각을. 당신이 아직 잠들지 않은 듯하니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겠다는 발언에 충실하고자….) 전하께서는 저승사자가 있다고 믿으세요?
첸 티엔:저, 승사자요? 음…. 서, 성불하지 못한 망령이, 나타난다는 상소는…. 며, 몇 읽은 적이 있어요. (꽤 흥미롭게 읽었었지…. 그런 생각이나.) 그런데, 그, 그건 갑자기 왜…?
위 련:그런 상소가 있군요…. (신기하네. 잠들기 위하여 눈을 감으니 어젯밤의 기묘한 꿈이 떠오른 탓에 꺼낸 주제였다.) 실은 어제 꿈에서…. 음. 죽었는데. (말을 얼버무리며 주어는 쏙 빼놓았다. 본인이 죽은 건 아니지만 하여간 그렇게 말했다. 죽은 옛 정혼자가 꿈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어찌 지아비의 앞에서 할 수 있겠는가?)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나왔거든요. 그래서…. 저는 혼 따윌 믿지 않는데, 전하께서는 믿으시는가 궁금해서요.
첸 티엔:(줄곧 내외하기만 하더니, 당신이 악몽을 언급하자마자 곧장 몸을 돌려 뉜다. 얼굴을 마주한 채 팔을 어정쩡히 들어 올렸다가도 조심스레 당신을 끌어안는다.) 하, 하필, 그런 꿈을…. 부, 불길하잖아요. (시무룩한 목소리.) 전, 호, 혼을 믿거든요. 음. 그러니까…. 비의 꿈, 제게…. 팔, 지 않으시겠어요?
위 련:(어색하게 끌어안는 손길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당신의 품에 파고들었다. 꼭 마주 안은 자세가 되었다. 당신의 깊은 속뜻을 이해했음에도 그는 그저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람의 마지막을 조금 더 간직하고 싶었다. 동시에, 흉몽을 샀다가 당신 또한 사고로 잃어버리게 될까 겁이 나기도 했다.)
이젠 불행한 일이 생기더라도 모두 해결해주실 거잖아요? 그리고…. 이러고 있으니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빈말은 아니었다. 심장박동도 숨소리도 아주 고른 편이었다.)
첸 티엔:그, 럼요. (무어든 해결해줄 수 있다. 오만한 확신이었으나, 어쩌겠는가? 사실인걸. 한 나라의 태자란 그런 위치였다. 끌어안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고, 서로의 박동을 나누었다.) 여, 염려 말고 주무세요. 계속…. 이러고, 이, 있을 테니까요.
위 련:전하께서도 주무실 거죠? 노력만 하는 게 아니고? (품에 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첸 티엔:…노, 노력할게요. (이런 말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위 련:(이대론 못 주무시겠군. 하얀 볼을 쿡 눌렀다.) 꿈에서 만나게 어서 주무세요. (다시 당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저보다 조금 빠른 심장 박동을 감각한다. 최근 이토록 평온한 기분이 든 적 있었나? 모든 게 잘 풀릴 것만 같아. 긴장 없는 이는 금방 고른 숨을 내쉰다.)
첸 티엔:네, 네. 오늘은, 조, 좋은 꿈을 꾸세요. (속삭인다. 아마 자신은 잠들지 못할 성싶으나…. 노력이라도 해 봐야겠지.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
...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눈을 떠보니 티엔이 보여요. 아직 정무를 나가지 않은 걸 보면 아침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에요. 잠을 자긴 잔 걸까요?
첸 티엔:아, 아직 해가 뜨지 않았어요. 조금 더 주무세요.
위 련:좀 주무셨어요? (덜 깬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당신의 옷붙이를 손에 쥐었다.)
첸 티엔:(손을 들어 당신의 눈을 감겨주더니, 손등으로 뺨을 쓸어내린다. 본디 체온이 낮은 편이라고는 하나 이전보다 확연히 차가워졌을 터다.) 조, 금은요. (헤헤 웃었다.) 저, 정무를 보러 가기 전까지는…. 곁에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 조금 더 주무세요.
위 련:몸이 안 좋으신가요? 손이 찬데. (독의 영향일까? 하기사 치사량의 독을 절반 넘게 마셨는데 여지껏 효과가 돌지 않는 일은 있기 어렵겠지. 눈 감은 채 당신을 당겨 안았다. 그저 온기를 나눌 뿐이다.) 돌아가기 전 탁자에 있는 설탕이라도 조금 드셔 보세요, 효가 조금은 떨어질 수도 있겠죠….
첸 티엔:네, 그, 그럴게요. (빳빳이 굳는 것도 잠시, 이전보다는 자연스럽게 당신을 마주 안는다. 제 옷자락을 펼쳐 당신을 온전히 품에 가두었다.) 비께서…. 주, 죽지 말라 하셨으니, 저는 살아갈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위 련:(체온이 높은 이는 따로 있는데, 정작 온기를 나누어 주는 건 당신이다. 걱정 않겠다 대꾸한 뒤 잠시의 공백.) 꿈에 제가 나왔나요?
첸 티엔:비, 께서는요? 좋은 꿈, 을…. 꾸셨나요?
위 련:아뇨,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어요. 내 생각엔 꿈에서 뵙기로 한 어느 누구께서 제대로 잠들지 않아 그런 것 같은데…. (힐금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첸 티엔:(움찔.)
위 련:(허리를 쿡쿡 찌른다.) 노력 부족….
첸 티엔:(우웃.) 하, 하지만…. 여, 연모하는 이와의, 동침입니다. 그, 그것도, 이렇게…. 아, 안는 건 처음이고요. 어떻게, 지, 진정하고 잘 수 있는지….
위 련:흐음.
새벽 내내 세우고 계셨던 건 아니지요? (이런 말이나….)
첸 티엔:(스르륵…. 떨어졌다.) 저, 정무를 보러 가야겠어요….
위 련:농입니다, 농. (찰닥 붙었다.)
첸 티엔:(웃….) 너, 너무하세요….
위 련:(헤헤 웃기만 했다.) 익숙해질 때까지 매일 같이 동침하기로 하죠.
첸 티엔:(익숙해질 날이 오기는 할까? 잠시 허공을 봤다.)
위 련:지금 무슨 생각하시나요?
첸 티엔:노,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위 련:으응, 많이 노력하셔야겠어요. (뜸.) 저도 노력할게요.
첸 티엔:비, 께서는 어떤 노력을, 하, 하시려고요?
위 련:부부가 되기 위한?
첸 티엔:음. 지, 지금도 부부…. 이지 아, 않나요?
위 련:그런 것 말고, 진실된 부부 말예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첸 티엔:(잠시 입술을 달싹이다가도 당신을 꼬옥 끌어안는다.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겠으나 귀 끝이 붉다.) 저, 저는…. 이미, 비를 사, 사모하고 있는걸요. 언제까지고, 여기에 이, 있을 테니…. 비께서는, 처, 천천히 돌아오세요.
위 련:(느리게 끄덕인다.) 노력할 테니 오래 기다려 주셔야 해요. (연모한다는 말을 언젠가는 빈말 아닌 진심으로 속삭일 수 있게. 아, 정혼자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가… 이리 행복해도 되는 걸까? 심지어 그제의 꿈에서 그를 만나놓고? 문득 치고 들어오는 감정의 결은 자괴감에 가까웠다. 당신을 오롯이 애정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그럼에도 당신을 꼭 끌어안았다.)
첸 티엔:펴, 평생도, 기다릴 수 있어요. (당신의 등을 도닥이기 시작했다. 부드러이 쓸어내리기도 했다. 정무를 조금 미루더라도 해가 뜰 때까진 이리 있어야겠다 싶다.) 이번에는…. 꾸, 꿈에서 만나요.
위 련:(출처 모를 죄악감은 당신의 손길에 쉽사리 쓸려나간다. 눈을 감으며 조용히 속삭인다.) 응, 꿈에서 만나….
▶:당신은 다시 잠에 빠져듭니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등을 도닥이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요.
...
...
눈을 떠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정무를 보러 나간 모양이에요. 텅 빈 방 안이 오늘따라 싸하네요. 침대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위 련:(이불을 주섬주섬 끌어올리다 말고 침대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웠다. 뭐람.)
▶:손수건입니다. 미약하게 갈색으로 굳은 자국이 보이네요. 티엔의 것인 걸까요?
위 련:(핏자국인가? ……. 손수건을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손수건을 품에 넣습니다.
오늘은 또 어디를 돌아다니죠? 방에 온종일 있기에는 답답할 테니, 어디로든 밖으로 나가보는 게 좋겠어요.
어제 사건으로 인해 나인들은 당신을 계속 주시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몰래 그렇게 도망쳤는걸요. 상궁들에게 크게 혼났을 게 눈에 선합니다.
나인들을 데리고 갈 만한 곳은 희서정 뿐인 것 같네요.
위 련:(나인들을 불러 몸단장을 한다. 오늘은 제 의상을 손수 골랐다. 붉은 비단에 은빛 실로 꽃이 수놓아진 옷에, 그제 받은 당신에게 받은 장신구를 꺼내 두었으니 얼핏 보아도 참 화려하였다. 분칠을 하고 머리를 올리는 동안에는 나인들에게 몸을 맡기고 꾸벅꾸벅 졸기나 했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밤사이의 안정감이 몸에 남아 있던 탓 유독 졸려한 것이나 다른 이들은 사정을 오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뒤늦게 몸을 일으켜 희서정으로 향한다.)
▶:희서정으로 이동하자 보이는 연못은 오늘도 고요합니다. 물의 일렁거림조차 보이지 않네요. 어제보다 좀 더 꽃들이 피어난 걸 보면 이제 완전히 여름이 찾아온 모양입니다.
그때, 저 멀리서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첸 티엔:비…? (의아한 음성 뒤에는 으레 그렇듯 미소가 따라왔다.) 또, 여기에서 마, 만났네요.
위 련:(귀에 익은 목소리에 금방 졸음이 가신다. 당신의 방향으로 종종걸음 했다.) 산보를 나왔습니다. 전하께서는요?
첸 티엔:다, 달맞이꽃이 피었다기에…. (수줍은 양 볼을 붉히며 당신을 마주한다. 내뱉은 말이 그저 핑계는 아닌 모양인지, 손 아래로는 소담히 꺾인 들꽃이 들려 있다.) 오, 늘은…. 그, 자, 장신구를 골라 주셨네요. 기, 뻐요.
위 련:어울리나요? 전하께 잘 보이고 싶어 꾸몄습니다. (불쑥 얼굴을 들이밀거나 안아버리는 일은 진작 했었으니 그 대신 시선을 낮추어 당신의 손에 들린 꽃을 쳐다보았다.) 달맞이꽃을 좋아하시나요?
첸 티엔:괴, 굉장히요…. (얼굴 잔뜩 물들인 채 말을 뱉는다. 이럴 때면 말주변이 없는 것이 서글펐다. 제 마음은 고작 저 정도가 아닌데. 저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항아가 내려온다 한들 당신에게서 시선 떼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조, 좋아하긴 하지만. 저를 위해 꺾은 것은 아니고…. (곱게 꺾어낸 꽃을 당신에게 내밀었다.) 비께, 드, 리고 싶었어요. 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거든요.
위 련:(구태여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옅은 미소, 농 섞인 말을 곁들이며 당신이 내민 꽃을 받아 들었다.) 보다 수수한 것을 좋아하시는가 싶었는데, 깊은 속뜻이 있으셨군요. (싱싱한 이파리를 툭, 손끝으로 건드린다.) 기다려 주시겠단 의미입니까?
첸 티엔:(대답 대신 말갛게 웃기만 한다. 이가 보일 정도로 환한 웃음이었다.) 가, 간직해 주시겠어요? 그, 꽃도….
위 련:(손에 들린 것을 내려다본다.) 시들어버리면 어쩌지요?
첸 티엔:꼬, 꽃이 시든다 한들 제 마음은 변치 않을 테니…. 괜찮습니다.
위 련:요한다면 다시 꺾어다 주실 건가요?
첸 티엔:비께서, 워, 원하신다면요. (순식간에 심각한 낯이 되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혼잣말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그, 그러려면…. 계절이 다, 다른 국가에 사신을 보내둬야겠네…. 사, 시사철 꽃을 바, 받아올 수 있도록.
위 련:? 그럴 필요는 없고요. (단호하게 사절했다! 꽃을 쥐지 않은 손으로 당신의 손끝을 붙들었다.) 이듬해부터는… 각 계절마다 궁에서 피는 꽃을 하나씩 꺾어다 주세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들어주실 건가요?
첸 티엔:(우웃. 표정을 짓다가도 이어지는 말에 금세 표정을 펴낸다.) 어,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헤헤.) 그럼, 비께서는…. 늘, 처, 처소의 화병을 비워둬 주실 수 있나요? 제, 제가 채울 테니까요.
위 련:나인들에게도 화병을 비워 두라 이르겠습니다. (승낙과 함께 빙그레 웃었다. 한 걸음 더 다가간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첸 티엔:음. 조,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이 정도는, 괜, 찮습니다. 오, 오늘까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위 련:음. (당신의 뺨이며 이마를 짚어본다. 차가울까?)
첸 티엔:(발그레 달아오른 것치고는 열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쉬는 숨만 아니었더라면 시체라 일러도 될 정도의 온도일 것.)
위 련:날이 이리 따스한데. (이마부터 뺨을 훑은 손은 목덜미를 더듬고 난 뒤에야 떨어졌다.) 오늘은 무리하지 마세요.
첸 티엔:그, 그럼요. 오늘도…. 저, 정무를 해결한 뒤 찾아뵙겠습니다. 괜, 찮겠지요?
위 련:(끄덕인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윽고 티엔이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나인: 마마, 대감께서 마마를 뵙고자 하십니다.
위 련:대감께서? (흠. 아주 마지막까지 감시를 하시는구만. 시킨 일이라면 꼬박꼬박 해냈으니 켕길 것도 없지. 물론 태자에게 음모를 모두 들켰다는 것은 영영 비밀일 테다.) 어디에 계시는가? 금방 가겠다 하여라.
나인: 처소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위 련:(처소로 돌아간다. 걸음이 빠르지 않다.)
▶:처소로 돌아가면, 당신의 아버지가 보입니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신 건지 모르겠네요.
대감: 마마,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여기서 할 말은 아닌 듯하오니, 침전으로 감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위 련:(침전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나인들을 모두 물렸으니 이 공간에는 단 둘만이 남았다.) 예의 차리실 것 없습니다. 그보다 무슨 일입니까?
대감: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의자에 앉은 채 탁상 위로 붉은 끈을 내려두었다.)
위 련:뭡니까? (붉은 끈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대감: 그 아이가 죽은 곳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화살에 묶인 채 나무에 박혀 있었지요.
위 련:(단연 꿈을 떠올린다. 떨림을 가다듬고 붉은 끈을 집어들었다.)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건지….
대감: 그 아이의 죽음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여 계속 조사를 해오고 있었지요. 끈에 새겨진 문양이 보이십니까? 황실의 것입니다. 마마, 태자가 그 아이를 죽였습니다.
위 련:(넋을 놓고 문양을 쳐다보았다. 앞이 아득해져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떴다.) 황실의 것이라고 한들…. 어찌 태자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럴 만한 이유도 없지 않던가요?
대감: 마마입니다. 마마께오서 그 이유가 되신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마마를 태자비로 삼겠노라 밝힌 건 태자입니다. 처음부터 이상했지요. 황실이 좌인의 사람을 요직에 앉힐 리 없는데 말입니다.
위 련:(이틀 전 보았던 것은 그저 꿈이 아니란 말인가? 곧게 세웠던 허리가 숙여진다. 떨어진 시야에 담긴 탁상마저 황실의 문양을 지니고 있다. 끈에 새겨진 것과 다를 바 없는! 아, 저와 마주할 때면 더없이 순수하던 눈을 떠올린다. 틀림없는 사랑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부정의 말을 중얼거릴 뿐이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손에 들린 천이 사정 없이 구겨지더니, 퍼뜩 고개를 들었다. 허옇게 질린 낯, 불안하게 휘청이는 팔로 탁상을 짚어 몸을 일으킨다. 탁자 위에 놓인 물건이 떨어지며 소란스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대로는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다.)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
대감: 마마, 진정하십시오. 태자에게 묻는다 한들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죽은 그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러니 마마께선 마음을 독하게 드셔야 합니다.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갑자기 교연군이 체포되어 하옥되었다고 하더군요. 우리의 계획이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니, 확실하게 처리하셔야 합니다. 오늘 밤, 태자에게 마지막 독을 먹이십시오. 그 아이의 복수를 하셔야지요.
위 련:(일그러진 낯, 결국 주저앉아 탁상에 고개를 박았다. 고이 단장했던 머리가 금세 흐트러졌다. 참지 못한 눈물이 방울져 툭툭 떨어졌다. 그래서는 안 되잖아, 나때문에 그 애가 죽은 것이라면…. 훌쩍이는 숨. 복수? 우습지도 않다. 볼품없이 떨리는 음성이 중얼거렸다. 그런다고, 죽은 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대감: …거짓 증거들은 이미 만들어 두었습니다. 마마께오선 그저 독을 타시기만 하면 됩니다. 태자가 죽는 것을 확인한 뒤엔 도망치지 마시고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십시오. 우인 측으로 모든 걸 뒤집어씌울 것입니다.
그리고, 혹여나…. (품에서 단도를 꺼내 탁상 위에 내려두었다.) 독으로 처치하지 못한다면, 이걸 사용해서라도 죽이셔야 합니다. 다만, 이리 처리한다면 궁에서 도망치시는 게 좋겠지요. 궁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친 다음 몸을 숨기고 계십시오. 안이 잠잠해지면 다시 모셔오겠나이다.
위 련:(지금 상태에서 어떤 음성도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느릿느릿 고개를 들면 그 낯짝은 과연 사람의 꼴이 아니다. 그저 탁상에 올려진 단도를 집어 들어 제 품에 넣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말을 끊어먹다시피 답했다.) 나가 보십시오….
대감: …좋은 소식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대감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침전을 떠납니다. 방 안에는 당신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대감이 한 말이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설마요. 그럴 리가. 그가 정혼자를 해친 사람이라뇨. 그러면서 당신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그런 얼굴을 한 채 당신을 바라보았다는 건가요?
위 련:
SAN Roll
기준치:62/31/12
굴림:36
판정결과:보통 성공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탁상에 이마를 찧은 채, 미친 사람처럼 끊임없이 부정의 말을 내뱉었다. 진실을 미루어 두고 겨우 최선을 가정한다. 당신이 꾸민 일이 아닐 것이다. 저 또한 좌인이 만들어낸 거짓 증거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동시에 의심하게 된다. 제 가장 중요한 것을 앗아가놓고 그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없지. 그래, 당신이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방의 온도가 더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모든 것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모든 게 태자의 손에서 놀아난 것만 같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습니다.
탁자에 올려진 붉은 천은 꿈속에서 봤던 것과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건 다 꿈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정혼자는 당신에게 이런 걸 알려주고 싶어 했던 걸까요?
꿈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누군가에게 죽었는지 알려주려고 그렇게까지….
어때요, 련. 이래도 혼을 믿지 않나요? 꿈이 현실인 것 같고 현실이 꿈인 것 같은 기묘함은 온몸을 감싸다 못해 소름을 돋게 만듭니다.
조금 있으면 태자가 올 시간이에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주전자는 아직도 김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위 련:(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기만 했다. 아, 옛 정인이여. 내 그대마저 잊어버리고 다른 이를 마음에 품을까 그대의 죽음을 다시 보게 만들었나? 아니, 혼이 있다면, 나를 사랑한 그대라면…. 그대는 내 평생 그 사실을 모르게 도왔을 테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검은 옷의 차사 또한 평범한 사람이었을까? 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숨죽여 웃었다.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 무엇도 하지 않은 시간이 흘러간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옵니다. 아니나 다를까,
첸 티엔:저, 접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위 련:들어 오십시오. (잔뜩 갈라진 목소리. 고개 들지 않는다.)
첸 티엔:(평소와는 다른 음성에 고개를 기울였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당신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는다.) 무, 무슨 일이라도…. 있, 었나요? 모, 목소리가 안 좋으셔서.
위 련:(느지막이 얼굴을 들었다. 닦아내지 않은 눈물자욱이 남았다. 대꾸하는 대신 물었다.) 당신의 것인가요? (구겨진 천을 내밀어 보여준다.)
첸 티엔:(삽시간에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다만, 제 흔적을 목도하였기에 놀란 것은 아니다. 단순히 당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당혹스러워했다. 당신이 우는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당신의 옆으로 다가간다. 소맷자락을 끌어와 눈물을 훔치려 들기도 했다.) 제, 것이 맞습니다. 우, 울지 마세요.
위 련:(옷자락이 닿자마자, 정확하게는 당신이 시인하자마자 그 손을 탁, 소리나게 쳐내며 대차게 몸을 물렸다. 마주하는 눈동자에는 물기와 함께 적대감이 섞여 들었다. 당신 앞에서 이다지 거부감을 보인 것은 처음일 것이다. 부연 없이 질문이 튀어나왔다.) 당신이 죽였나요?
첸 티엔:(사랑에게 거부당한 것치고는 담담한 낯이다. 꼭 이렇게 될 것을 예견한 사람마냥….)
…누, 누굴 말인가요? (기묘할 정도로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발뺌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늠하는 것에 가까웠다. 한 나라의 태자가 고작 한 사람만을 죽였을 리 없지 않은가?)
위 련:(옛 정혼자의 이름자를 입에 올린다. 당신의 입술이 다시 열릴 때까지 노려보는 눈빛은 간절하기까지 했다. 차라리 이 모든 게 제 착각이길 바라는.)
첸 티엔:(답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하기만 했다. 그러나 늘어진 눈썹이나, 힘 있는 눈동자, 부정하지 않고 마주해오는 눈까지…. 모든 것이 긍정으로 읽힐 터다.)
위 련:하, 하하…. (터져나온 냉소는 곧 눈물 방울이 되었다. 눈물을 흘린다는 자각도 없이, 주체하지 못한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새어 나왔다. 벙어리마냥 아, 아아…. 함의조차 없는 멍청한 음성을 흘릴 뿐이다. 아연한 낯을 손바닥으로 가릴 생각조차 못하였다.)
(그저 사랑 받는 누군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자는, 이 얼마나 한심한가? 그 사랑이 기어코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간 줄도 모르고.)
왜? 왜…. (갈라진 목소리가 꾸역꾸역 물음을 내뱉었다. 왜 그를 죽이셨어요? 차마 납득할 수가 없다. 삶이 이토록 허망할 수도 없었다. 나는…. 제 짝을 죽인 자에게 사랑 받길 바란 건가?)
첸 티엔:(놀라울 정도로 말간 낯이다. 목소리 또한 고저가 없다.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읊조렸다.) 그, 사람이…. 비의, 저, 정혼자였으니까요. 그가 있다면, 다, 당신을…. 태자비로 책봉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는 소매 춤을 뒤적거린다. 아, 아무래도 손수건은 어딘가에 떨어트렸나 보지. 사라진 것에 신경 두지 않고 소맷자락을 끌어내린다. 다시금 당신의 눈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위 련:(덜덜 떨며 당신을 밀쳐낸다. 경악에 차 뒷걸음질치기까지 했으니 등이 벽에 닿았다.) 고작….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앨 죽였다고요? (차라리 다른 이유가 있길 바랐다. 실은 그 자가 반역을 꾀하여 어쩔 수 없이 명하였다고, 말씀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며 무릎이라도 꿇는다면 기꺼이 당신의 말을 믿으려 마음 먹었다. 그리 마음 먹은 이유란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고,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나는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태연자약한 당신을 마주하니 모든 것이 무너졌다.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목숨을 입에 담아봤자 들어먹을 것 같지 않았다. 참담함이 북받쳤다.) 나, 나는 어떡하고요? 당신 때문에…. (나는 당신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매달고 살아야 해, 죽어서도 그 애를 만날 면목이 없어. 숨 할딱이며 흐느껴 울었다.) 차라리, 평생 모르게 하시지 그랬어요. 그렇게 하실 수 있잖아요….
첸 티엔:(밀려나는 것은 슬프지 않다. 다만 당신이 끊임없이 눈물 쏟아내는 모습을 보자니 못내 서글퍼져서, 종내에는 자신마저 눈물을 매달고 만다. 염치도 모르고 고인 액체가 그렁거렸다.) 하지만, 비께서…. 지, 진실을 원하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찌 숨, 길 수 있겠나요?
(지금의 당신은 자신을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당신의 손을 그리는 것 대신 탁상으로 다가가 찻주전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어 붙박이장에서 제 몫의 독약까지 꺼내어 주전자 옆에 두고는 그 앞에 앉는다.) 모,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제가, 감히…. 비와 하, 함께 영원하길 바랐기에….
위 련:(아, 그렇지. 위 련은 숨김없는 사람이 좋다고 했었던가? 하나 이런 것이 진실일 줄 알았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는 게 나았을 거다.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당신의 동작을 쏘아보던 이는 하, 다시금 냉소를 지었다.) 죽어버리겠다고요. 일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당신만…. (도망치겠다고. 탁상 가까이로 성큼 다가갔다. 그는 울컥 치밀어오른 부아를 견디지 못하고 탁상 위의 물건들을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찻주전자며 잔이 사방으로 깨어졌다. 여직 김이 오르는 더운 물이 제 팔에 쏟아졌음에도, 고통을 감각하지 못하는 이마냥 그저 당신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죽지 마세요. 내가 말했잖아요.
첸 티엔:비……! (눈을 크게 뜬다. 동공도 확장되었을 게 뻔하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앉았던 의자마저 뒤로 팽개쳐지며 커다란 소음을 낸다. 신 아래 사기 조각이 밟히는 것조차 신경 쓰지 않고 당신을 제 품 안에 가둔다. 힘주어 허리를 감쌌으니 쉬이 밀쳐내진 못할 터다.) 주, 죽지 않겠습니다. 전부, 비, 께서 워, 원하시는 대로 할 테니…! (다급한 음성에 물기가 어린다. 찻물에 데인 팔을 조심스레 붙잡고 젖은 옷감을 들치어 냈다.) 태, 태의를 부를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위 련:(인상 일그린 채 가슴팍을 밀었으나 탈진할 지경으로 울어대었으니 손아귀에 힘이 들어갈 리 없다. 당신의 품에 안겨 고개를 푹 숙였다.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태자가 머금을 찻물이 뜨거워 봤자 얼마나 뜨겁겠나, 젖은 살갗은 조금 붉어졌을 뿐이다. 사랑하는 이의 증오 어린 눈빛이나 원망 섞인 비난을 모조리 받아 놓고도 저를 걱정하는 꼴이라니. 당신의 마음은 아마 한 평생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무엇도 알지 못하는 자 모진 말을 읊기만 했다.) 제가 죽어도요.
제가 죽더라도 당신은 살아가세요. 최대한 오래, 고통스럽게. (어느덧 시선을 마주한다. 들어주실 거죠? 이것도. 적막한 눈동자는 그리 말하는 듯했다.)
첸 티엔:아, 안 돼요. (무언가를 직감하기라도 한 것일까? 안 그래도 핏기 없던 피부가 더욱 시허얘졌다.) 안 됩니다. 비, 그것, 만은…. (기어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놓칠세라 당신을 붙든 손에 힘을 준다.) 그, 그자는 잊고…. 저를, 사, 사랑해주실 순 없나요? 저는….
위 련:(희게 질린 뺨을 찬찬히 쓸었다. 낮보다 더 차가워진 것 같아. 모든 것이 평온하던 전야가 벌써 꿈처럼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마 처음일까? 나와 당신이 이런 방식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전하를 연모하옵니다. (입술 달싹인 뒤 말갛게 웃었다. 빈말인지 진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신의 목에 팔을 둘러 껴안는다.) 어서 약조해 주세요.
첸 티엔:(틈 없이 껴안았다. 당신의 어깨 위로 고개를 묻었으니 옷자락은 금세 축축해졌겠지. 더듬더듬 답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위 련:(어제의 당신이 하였듯,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불안한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니 아주 느리게 어깨를 떼어놓는다. 퍽 멀끔한 낯이다.) 이제, 태의를 불러오시지요.
첸 티엔:(당신과는 대조되게도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애써 미소를 띤다. 눈물이 호선을 그린 입술을 갈랐다. 비참한 말로였다.) 비를, 기, 깊이…. 연모했습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방을 나선다. 내보인 등은 이전보다 굽었으며 초라했을 것이다. 침전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상념에 잠겨 들게 된다. 당신에게 거짓을 고했더라면? 제가 한 짓이 아니었다며 무릎을 꿇었더라면? 아니, 그때 그 정혼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첸 티엔은 당신을 괴롭게 한 것을 후회할지언정 그 정혼자의 목숨을 앗아간 일은 후회하지 않았으니까.)
위 련:(우는 뒷모습에 가벼이 손을 흔들어 준 것은, 아마 당신은 영영 모르는 일. 그리하여 홀로 남은 방이다. 당신의 손수건 위에 달맞이꽃을 고이 올려 놓았다. 이듬해 당신이 꺾어주는 꽃은 무슨 색일까? 제게 가져다 준 장신구처럼 당신의 눈에 가장 화려한 꽃을 가지고 올까, 혹은 오늘처럼 소박한 꽃을 꺾어다 고백을 할까. 마지막을 결심한 순간엔 그런 것이 궁금해졌다. 어떤 꽃을 받든 위 련은 말간 웃음을 지었을 테고, 온 아침을 화병에 물을 주는 일로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모두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는 게 비통할 따름이다.)
(품에 챙겼던 단도를 꺼내들었다. 하나 날카로운 서슬보다 덜컥 겁이 나는 것이 있었다. 내가 죽으면 당신은 나를 얼마나 오래 기억할까. 혹 잊어버리진 않을까. 아, 드디어 위 련도 그 사랑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한 것 같다. 감히,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실로 선택의 연유가 복수심만은 아니다. 그는 비겁하게 도망치는 것이다. 노력만으로는 영영 돌려줄 수 없을 것만 같은 당신의 애정으로부터, 당신을 마음에 담아버린 제 죄악감으로부터. 곧 핏방울이 바닥에 번져들었으니 그는 오랜 잠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먼 꿈에서 다시 만나….)
▶:먼 꿈에서 다시 만나. 고통은 짧았으나 여행길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기나긴 잠을 향해 바지런히 걸음 옮겼으나 그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네요.
당신은 혼을 믿지 않으니 위 련의 사후 첸 티엔의 행보도 알 수 없겠죠.
다만 확실한 것은 그는 당신의 바람대로 살아갔을 거란 겁니다. 죽지 못해 살아갔겠으나, 어찌 되었든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 것 아니겠어요. 당신이 말한 대로, 최대한 오래, 고통스럽게요.
새로운 비를 들일 리 없으니 후사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황실의 후손을 걱정한 대신들에 의해 첸 티엔은 폐위되고, 황실 안에선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정치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요.
영영 태평성대를 이룰 것만 같았던 나라는 그렇게 기울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첸 티엔과 위 련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겠네요.
그림
그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심장이 얼어붙은 용 이야기

러브호텔 609호

609번지 칵테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