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언에 이르는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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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풍요로운 안식에 젖어있습니다.
세상은 파블의 국민들에게 상냥하며, 마치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다정합니다.
먹을 것은 풍족하고, 입을 옷은 다양합니다.
수도의 어느 곳을 걸어도 꽃이 만발한 사랑스러운 계절입니다.
아침의 영광이 일년 내내 스미는 도시입니다.
여러 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번영이 약속된 땅, 파블.
▶:이 나라의 유일한 오점이자 흠이라면, 수도에 자리한 새하얀 백색 성의 주인일 것입니다. 주변 국가에도 소문이 파다한, 모르는 이가 없는 최악의 폭군. 첸 티엔입니다.
하루에도 수십에 달하는 가신들의 목을 베고 새로 임명하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왕입니다. 그 시선이 어찌나 냉혹한지, 이 사랑스러운 나라에서 유일하게 겨울이 잠들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러한 폭정의 시대도 곧 종말을 맞을 것입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벌써 그러한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 이안 브란트 덕분에요.
악랄한 왕을 참수하고 진정한 평화의 시대로 그들을 이끌어갈 고명한 기사. 그것이 이 나라에서 당신이 가진 역할입니다. 당신이 원하였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요.
이안 브란트:(낮은 신분에서 시작하여 한 나라를 이끄는 자의 호위기사로 임명 받았다. 이안 브란트가 혁명군의 수장이 된 사유 또한 단순하기 짝이 없다. 혁명이란 본디 그런 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에. 이안 브란트의 곁으로 혁명에 불을 지피는 이들이 모여든 것뿐, 이안 브란트에게 제 주군의 뜻을 거스를 용기 같은 것은 없었다. 애초에 그의 곁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저를 중심으로 혁명이 불 지펴지기 시작한 이유도… 어쩌면 그가 내린 신임 덕이 아닌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정녕 해야만 하는 일인가?)
(그럼에도 당신의 뒤가 아닌, 앞에 선 이유가 있다면…. 타인의 손에 당신의 목숨을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이번만큼은, 차라리…….)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나 티엔을 알현하러 가는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허리춤에 찬 검의 무게가 선연합니다.
오늘은 그 곁에 서서 또 몇 명의 목을 베어야할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소란스러운 상인들로 가득한 길가를 가로질러, 당신은 미친 왕을 위해 걷습니다.
찬란한 영광과 무궁한 번영 있으라... 어린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골목을 굽이 돌아 울려 퍼집니다.
찬란한 영광과 무궁한 번영, 해가 지지 않는 태양의 나라.
아름다운 당신의 기사도가 깃든, 파블입니다.
▶:왕성 안으로 들어서면 그 길목부터 싸늘한 냉기가 감돕니다.
성 안의 하인들은 그 목이 달아날까 두려워 목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태양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곳만 겨울이 선연합니다.
그건 너무나도 이상한 일입니다. 이 나라는 365일 중 360일이 봄과 여름인, 태양의 나라인걸요.
성 안으로 들어와 내밀한 곳까지 이어지는 길목을 걷다보면 그것이 전부 거짓말인 것처럼 기온이 내려가고 입김이 나옵니다.
가신들은 대다수 미친 왕의 광기 때문이라며 혀를 내두릅니다. 창틀 사이로 조각난 햇살이 미미하게 스미는 듯하다가, 다시 구름에 가려 사라집니다.
▶:길을 걷다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립니다.
이안 브란트:
듣기
60 30 12
성공
37
▶:접시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찢어지는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성 안에서 일하는 하녀의 음성이 분명합니다. 소리의 근원지는... 티엔의 집무실이군요.
뒤이어 노기에 찬 티엔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겨울의 나라예요. 겨울의 나라! 언제부터 파블이, 이 나라가 여름이었다고 차가운 차를 내오시는 거죠?
이안,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서둘러 집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급한 마음에 들어가겠다는 말조차 생략하였으나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허리 숙였다. 숨을 가다듬고는 고개를 들었다.) 폐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 (내부 둘러보며 말끝을 흐린다.)
▶:집무실의 문을 열면, 바닥에 떨어진 찻잔과 그 곁에 목이 베여 절명한 하인이 보입니다. 옆에는 하녀 한명이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떨고 있습니다.
하녀: (어째서인지 당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안도한 눈치다. 살았다.) 브, 브란트 님….
(To GM):
광기결정
설명홀수 = 광기
짝수 = 제정신
광기4
이안 브란트:(하녀의 앞으로 성큼 걸어가 당신에게 고개 숙인다. 당신에게 예를 표하는 듯 행동하였으나, 외려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아 하녀를 보호하기 위함이 틀림없었다. 당신이라면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물러나라 명하겠습니다.
첸 티엔:(고개 비스듬히 기울인다.) 이안, 네가, 왜… 거기에 서 있지?
이안 브란트:폐하께서 번거로이 손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명하는 바 애써 모르는 척, 시선 아래로 향할 뿐이다. 바닥에 낭자한 혈흔이 보이더라도 손을 말아쥐기만 한다. 정황쯤은 뻔히 눈에 보이나 감히 여쭙는다.) 저 자 페하께 어찌 행동하였길래 목숨이 달아났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첸 티엔:(파블의 왕이 광증을 앓는다지. 송장 치우지 않는 날이 드물 정도라며. 미친 것이 분명해. 첸 티엔은 세간에 떠도는 악명답게 하루가 멀다 하고 노성을 터트렸으나, 기이하게도 당신의 앞에서만큼은 유순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보라, 지금도….)
저자가…. 차가운 차를 내어왔어요. (속삭이듯 읊조린다. 그래 봤자 정신 나간 말과 행동을 내비치는 것임은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위태롭게 쥔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챙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핏자국이 이리저리 튄다. 흰 얼굴이며 손, 옷, 어느 한 곳 물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면…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피곤해. 저 하녀는 이만 내보내요.
이안 브란트:(주군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 또한 죄이리라. 무의식 중 그리 생각함에도 당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유, 이안 브란트는 스스로를 그나마, 그런대로 주군께서 마음에 들어하는 것 중 하나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정도 결례는 용서하리라 믿었으며, 일은 그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대꾸 없이 명을 따른다. 하녀를 물러가게 하는 동시에 하인의 시신을 처치하게끔 한다. 집무실의 바닥이 본래의 색을 되찾았을 즈음 시선을 들었다. 온통 붉은 색이다.) 환복하시겠습니까?
첸 티엔:어차피 더럽혀질 텐데도요.
이안 브란트:(짧은 침묵.) 그렇다면 몇 번이든 명하시면 됩니다.
첸 티엔:(먼 옛날의 그였다면 그럼, 당신이 내 환복을 도와야겠어요. 라며 웃음기 어린 답을 건네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무감한 낯으로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기만 한다. 방자한 태도로 다리를 꼰다.) 아니…. 됐어요. 당신에겐 다른 명을 내릴 거니까.
이안, 브란트…. (몇 초간의 공백.) 기사 서임 때 했던 맹세를 기억하나요?
이안 브란트:(잔 끄덕임. 이어 수월히 읊는다.) 신 이안 브란트는, 아침의 영광을 등에 진 태양의 기사로서 주군의 신념을 위한 검이 될 것이며…. 그 명예를 드높일 창이 될 것입니다. (자세 바로세운 뒤 눈을 깜박인다. 맥락 없는 질문의 의도가 궁금하였던 까닭이다.)
첸 티엔:(희미한 미소가 스쳤던가. 알 수 없다.) 그래요, 그럼… 나의 신념이자 명예여. 수도 근처를 돌며 프로디티오네 백작에 대한 소문을 찾아오세요.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오시고요. 그렇지 않으면, 친히 당신의 목을 벨 테니까…. 이마저도 당신에겐 영광이겠지만요.
이안 브란트:모든 것은 주군의 뜻대로. (낮은 속삭임. 중얼거리듯 답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첸 티엔:뭐 해요? 서 있지만 말고 나가요.
이안 브란트:(허리 숙여 인사한 뒤 집무실을 떠난다. 문 여닫는 손길마저 조심스럽다.)
이안 브란트:
듣기
60 30 12
성공
39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른 시종을 부른 모양일까요. 무척이나 순진한 목소리입니다. 다정하게, 속삭이듯 명합니다.
첸 티엔:가서, 차가운 차를 내어오세요.
▶:성 밖성 안중 한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어디로 향하나요?
이안 브란트:(성 밖으로 향한다. 성 내부의 소란을 듣고 있으면 제 마음만 혼란해질 것이 분명했으니.)
▶:성의 바깥으로 나오면, 기온은 다시 천천히 오르는가 싶더니 완연한 봄의 세계가 됩니다.
총 네 곳의 장소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언제 서늘하였냐는 양 봄이 핀 주변을 살피며 걷다 보니 북문에 도착한다. 북문에서부터 강가를 따라 걷기로 하였다.)
▶:북문으로 향하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할 경비병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어려운 성공
30
▶:대신, 북문의 입구로 마차 여러 대가 일렬로 들어오는 것이 보입니다.
마차를 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복면을 써 얼굴을 가리고 있으며, 그 앞에는 빨리 움직이라며 다급하게 그들을 재촉하는 남성이 보입니다.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이건 또 무슨 소란이람. 미미하게 인상 찌푸린 채 남성의 곁으로 다가간다. )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경비병은 어디에 가고요?
???: 아니, 대장군님 아니십니까?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로 직접 행차를….
이안 브란트:(빤히 봄…. 누구더라.)
이안 브란트:
지능
50 25 10
실패
80
(진짜 누구더라.)
▶:누구더라? 복면을 뒤집어쓴 탓인지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습니다.
???: 경비병과는 이미 말을 맞춰놓았습죠. 그, 이것들 말인데…. (짐마차를 흘긋 눈짓한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뭣하지만, 왕께서 직접 성 안으로 들이라 명한 물건들입니다. 장군님, 너무 그렇게 매섭게 보지 마십시오. 제가 밀수로 밥 빌어먹고 사는 놈인 것은 맞지만….
어쩌겠습니까? 들이지 않는다면 다음에 날아가는 것은 가신의 목이 아니라 제 것이 될 텐데요. 저도 미친 왕은 무섭습니다.
이안 브란트:대장군…. (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나? 다시 열심히 생각해봤다. 복면을 뚫어져라 보면 뭐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빤히 바라보다가 눈썹만 누그러뜨린다.) 들이기 전 마차 안을 살피어도 되겠습니까? (질문은 구색일 뿐, 대답 떨어지기 전 행동이 앞장선다. 그런다 한들 제게 뭐라고 하지는 못하리라. 짐마차를 불쑥 열어 내부를 살폈다.)
▶:복면 쓴 자는 순순히 짐을 보여줍니다. 마차의 안에는 화약과 기름, 착화제, 각종 귀금속과 얇은 옷감 등이 실려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흠?) 모두 폐하께서 명한 것이 맞습니까? (갸우뚱.)
???: 이것과 이것까지가 폐하께서 명한 것…. 헙. (화약과 기름, 착화제를 가리키다… 입을 다물고 눈을 데록데록 굴린다. 그렇다. 이외의 것은 밀수품인 듯하다.)
이안 브란트:(응? 반대가 아니라?) 이런 것은 어째서…?
???: 저어, 이번 한 번만 못 본 척 넘어가주실 수는 없겠습니까요?
이안 브란트:(의아한 표정이 가시고, 금세 평온을 찾았다. 나라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야….) 예, 대신 폐하께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랬다가는 저도 도움 드리기 어렵습니다…. (잠잠.)
???: 아이고, 감사합니다. 참말로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다가도, 동전 하나를 내민다.) 답례라기엔 뭣하지만, 받아 두십시오. 저희 상단 문장이 찍힌 동전입니다! 이걸 경비병들에게 보여주면 무난히 길을 터줄 것입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기사님께서 몰래 성 밖으로 처리하셔야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다면, 제가 이 밀수 루트를 통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안 브란트:(동전을 받아들어 이리저리 살핀 뒤 제복 안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무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이 자의 말대로, 차후 필요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그럼…. (인사말을 내놓으려던 참에 문득 질문한다.) 혹, 프로디티오네 백작에 대한 소문을 알고 계신가요? 그에 대하여 알아보라는 명이 떨어져서요.
???: 백작님이요? 어휴, 저 같은 상인이 그런 높으신 분에 대해 아는 게 있겠습니까.
이안 브란트:사람 일 돌아가는 것에 능하신 듯하여 여쭈어 봤습니다. 모른다니 어쩔 수 없지만. (으쓱.) 그러고보니 폐하께서는 별 말씀 없으셨나요? 저런 물건들을 들여오는 덴 쓰임이 분명 있을 터인데….
???: 그것이…. (영 머뭇거리는 기색이다.)
이안 브란트:
위협
60 30 12
실패
82
(흠. 헛기침.)
위협
60 30 12
실패
64
(좀 더 위엄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뒷짐 진 손으로 볼만 긁적였다. 마음을 바꿔 먹고 말로 해결해보도록 하자.)
설득
50 25 10
실패
73
???: (흘금흘금 눈치보기만…)
이안 브란트:(시무룩.)
설득
50 25 10
실패
77
???: 어휴, 이런 걸 말씀해드려도 될는지….
이안 브란트:(혼자 뚝닥거리는 모습 가만 지켜보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폐하께 여쭙는다면 말씀해주실 텐데. (사실 아닐 것이다.) 미리 언질하는 것쯤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 그…. 흠. (미친 왕이 광증을 앓으면서도 제 호위만큼은 곁에 둔다더라. 암암리에 도는 말이 있던 덕인지, 당신의 말에 껌뻑 속아 넘어간 눈치다.)
그게…. 장군님, 혹시 수도 안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이안 브란트:네? (응?)
(…) (표정을 가다듬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난생 처음 들어요.) 조금 더 들어두는 것도 괜찮겠지요. (다 듣고 싶은데,) 아는 것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처음부터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 빈민촌에서 얼어 죽기 싫어서…. …얼레. 방금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하여튼요. 그 통로는 빈민촌 사람들이 만든 것인데, 이게 북문에서부터 강바닥 아래로 쭉 이어집니다요. 빈민촌을 가로질러서 아카데미의 지하, 그리고 시계탑까지요.
이 물건들은 그 비밀 통로 쪽으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저기 돌담 보이시지요? 저쪽에 지하로 통하는 길이 뚫려있습니다. 이걸 왜 그쪽으로 보내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안 브란트:방금 얼어죽기 싫어서… 라고 하셨는데. (굳이 다시 짚어준다. 의아하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어느 누가 이 봄과 여름의 날씨에 얼어죽는다는 말인가? 태양이 진다면 또 모를까.) 물건을 그리 보내는 이유는 모르시는 거군요. (그 이유를 찾아내야만 하는 거겠군.) 아무쪼록 감사합니다.
???: 넵? (의문만이 가득한 눈치다. 본인이 무슨 말을 뱉었는지 자각조차 없는 듯했다.) 네, 네. 모쪼록 그 혁명을 꼭 좀 성공시켜주십시오. 저희 상인들을 포함해서 국민들 전부 대장군님만 믿고 있습니다요.
이안 브란트:(부, 부담스러워어…. 표정 가다듬는 것은 원체 어려워하였으니 떨떠름한 낯을 숨기지 못했다. 곧 검지를 제 입술 위로 세워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만. 걸음을 옮겨 기사단 건물로 향하였다.)
▶:새로운 기사들을 교육하고 기사 서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과거에는 성의 알현실에서 직접 서임을 했었으나 요즈음에는 기사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 이곳에서 서임을 하는 편입니다.
당신이 이곳에 방문하면, 단원 중 몇몇이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걸어옵니다.
단원: 이게 누구야, 우리 이안 브란트 경 아닌가?
이안 브란트:(사회생활을 할 힘은 벌써 소진되었는데도요.) 안녕하십니까. (고개 가볍게 숙여 인사한다.)
단원: 아이고, 경! 이러지 말게. 우리 사이에 예의는 무슨. 모두가 자네를 응원하고 있다네. 자네야말로 미친 왕의 목을 벨 인물이지 않은가?
(목소리를 낮추어 소근거린다.) 그런데, 경. 다음 왕으로 윈 경을 세우는 것에 이견은 없는가?
이안 브란트:(윈 경? 그 분은 또 누구신지…. 당장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
이안 브란트:
지능
50 25 10
실패
57
▶:한 번 더?
이안 브란트:(눈 감고 머리만 이리저리 갸우뚱…. 진짜 누구지. 나 이렇게 사람을 기억 못 했나?)
지능
50 25 10
성공
33
(쪼금 생각났을지두.)
▶:그러고 보니, 당신의 주군에게는 여동생이 있었죠. 이름이 분명 첸 윈이었던가요.
이안 브란트:아…. (순간 너무 친근하게 말하길래 못 알아챘다……. 폐하의 육친을 그리 부르는 것은 조금 곤란한데. 속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그쪽이라면 주군께서도….) 괜찮겠지요. (아, 무심코 생각과 동시에 내뱉는다. 그런데…. 다음 왕을 세울 즈음이라면 당신의 의견을 들을 수도 없을 텐데, 어찌 그런 것부터 신경 쓰고 있는가? 속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아 뒷짐을 지고 손을 몇 번 쥐었다 편다.) 다만, 그분께서도 괜찮아하실지…….
단원: 그분이 아니라면, 이 파블에 왕의 뒤를 이을 자가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속없이 웃기만 한다.) 자네는 우리 모두의 믿음을 현실로 만들어주기만 하면 돼. 힘내게.
▶:단원은 당신의 등을 툭툭 쳐주더니, 이윽고 제 갈 길을 찾아갑니다.
이안 브란트:(힘이 안 나요. 눅눅.)
▶:기사단 건물은 한창 훈련이 진행 중인 것인지 삭막합니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인기척을 죽여야 할 것 같네요.
이안 브란트:(발소리를 죽여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안 브란트:
은밀행동
60 30 12
성공
56
▶:조심스럽게 건물로 진입합니다. 크게 보이는 것은 운동장과, 기사단의 표지판과, 건물의 입구와, 건물의 내벽 정도입니다.
이안 브란트:(멀찍이 서서 운동장을 구경합니다. 이렇게 생각이 많을 때는 한 다섯 바퀴 뛰면 괜찮아지는데. 지금은 안 되겠죠 아무래도. 아무래도요.)
▶:견습 기사들이 훈련중인 운동장입니다. 들고 있는 검은 모두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저마다 허리춤에 하나씩 차고 다니는 것이 보이네요. 운동장 한켠에 목검이 널려있는 나무판이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이럴 때가 있었지, 간단한 회상에 잠기었다가도 나무판 가까이로 갑니다 터벅터벅….)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성공
33
▶:어라? 이 나무판….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종류인 것 같습니다.
이안 브란트:(다른 지방에서 가져온 것인가? …굳이 이런 나무판을 만드는데? 표지판의 방향으로 가 그 위에 적힌 것을 찬찬히 읽는다.)
▶:기사단의 연혁이 간단하게 적혀있는 곳입니다. 아래쪽에는 패인 자국이 선명합니다.
이안 브란트:(왜 이런 흠집이? 살펴봅니다…. 빤히.)
▶:[파블 최후의 왕, 첸 티엔.]
이토록 번영하는 태양의 나라에 최후의 왕이라뇨. 아무리 그가 폭군으로 악명 높다지만 이런 문장을 공개적인 장소에 적다니… 역적으로 몰릴 것이 당연하건만, 이상한 일입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입니다.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미친 왕이 각별하게 아끼는 호위기사임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당신이 혁명군의 수장임을 왕에게 숨기지도 않습니다. 왜? 당신은 왜 이런 사실을 여태 깨닫지 못했던 걸까요?
이안 브란트:
이성
65 32 13
성공
39
(쓸데없이 말이 많은 것―이리 생각하지만 시비의 의미는 아닌―을 신기하게 여기기는 했다. 내가 무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있는가? 패인 자국을 손 끝으로 훑다가 건물의 내벽으로 눈을 돌렸다.)
▶:벽을 손으로 더듬어보면 온수를 통해 난방을 하는지 미미한 열기가 느껴집니다. 난방기능 보다는 냉방기능을 넣어 짓는 편이 현명했을 텐데요. 물끄러미 올려다보면, 높은 첨탑이 눈에 띕니다. 그 끝에 구름이 살짝 스치고 가는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름의 향연입니다. 파블의 국민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기에, 이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요.
이안 브란트:(그럼에도, 이안 브란트만은 여름의 푸른 하늘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무엇도 당연히 여길 리 없었다. 벽을 짚은 채 한참 위를 올려다본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겠지만, 걸음은 조금 빨라지기도 했다. 건물 입구로 향했다.)
▶:계단이 높은 건물입니다. 비를 흘리기 위한 배수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눈이 쌓이는 것을 대비하는 듯한 건축 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입구 역시 단단한 나무 목재로 짜여진 장식물들이 보입니다. 전부 추운 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들입니다. 목재를 이용한 건축 양식이 이렇게나 발전했던가? 기이한 이질감이 듭니다.
이안 브란트:(눈이 오던가, 혹은 추위가 있었던가? 이 나라에 어울릴 법한 날씨는 아닐 터인데. 그대로 건물의 바깥으로 나가 의료원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바깥으로 걸음을 돌린 순간,
이안 브란트:
듣기
60 30 12
실패
86
(응?...)
(...다시 쫑긋.)
듣기
60 30 12
어려운 성공
25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어느 편에 붙을지 정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개국공신 쪽에 붙는 게 현명하겠지.
왕을 바꾸는 일이 그렇게 쉽게 되겠냐.
이건 혁명이야!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우리에게는 브란트 경이 계시잖아.
나는 그 남작을 따르고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게, 그 사람이 언제부터 남작이었더라?
그런게 뭐가 중요해? 돈만 많이 받으면 됐지.
▶:이상하잖아. 왕이 직접 친왕파 사람들을 죽이지 못해서 혈안이라는 게….
미친 왕이 괜히 미친 왕이겠어?
이윽고 말소리가 멎어듭니다. 의료원으로 이동할까요?
이안 브란트:(잠시나마 느려졌던 걸음이 제 속도를 되찾는다. 한창 말이 나올 만도 하지…. 의료원으로 향합니다.)
▶:의료원에 도달하면, 들것에 실려 들어오는 환자들을 여럿 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환자들의 상태를 살핀다. 다친 것일까?)
▶:환자들은 하나같이 더운 숨을 헐떡이며 열이 올라 피부 색이 붉습니다. 그런데도 털옷이나 솜옷을 입고 있으며, 그 위에 외투를 걸치거나 망토를 두른 사람도 여럿 보입니다.
의사들은 그런 환자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다가도 달려가서 옷을 벗기고, 찬물로 그들의 열을 식힙니다. 정신없는 풍경이 휘몰아칩니다.
의사: 브란트 경 아니십니까. 귀관께서 의료원까지 직접 방문하시다니…. 오늘은 미친 왕의 폭정이 좀 덜한가 봅니다. 늘 그래야 할 텐데….
이안 브란트:(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기만 했다. 화제 돌리기라도 하듯 질문한다.) 저 환자들은 어쩐 일로 의료원에 실려온 것입니까? 더위라도 먹은 양. 옷도 전혀 날과 어울리지 않고….
의사: 아, 저 환자들 말이지요. 저희도 희안한 노릇입니다. 왜 하나같이 털옷을 입고 망토를 두르고…. 훈련중인 기사인가 싶었더니 그것도 아니지 뭡니까. 그냥 평범한 시민들이에요. 자신들이 열사병을 앓고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너무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이 더운 여름의 나라에, 저런 털옷들을 걸쳐입고….
뭐, 그래도 파블이 원래 그런 나라이니….
이안 브란트:평범한 시민이라고요. (환자들의 옷차림을 눈으로 훑어본다. 특이한 점은 없을까? 공통점이라거나…. 단순한 열사병이라 한다면 다행이기는 하나, 이래서야 온 나라가 갑자기 뒤집혔다고 말하여도 이상한 게 없다.) 원래 그런 나라라니….
의사: (이전, 밀수꾼이 보여주었던 반응과 똑같은 낌새를 보인다. 자신이 무엇을 말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모양새.) 예? 제가 무어라 말했습니까?
이안 브란트:아…. 아닙니다. (고개 가로젓는다. 여기서 더 캐물어봤자 알아낼 만한 것도 없을 듯하고. 다시금 화제를 돌린다.) 아, 혹시 프로디티오네 백작에 대해 아시는 바 있으신지요. 알아볼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의사: (고개를 젓는다.) 죄송합니다. 이 늙은이는 정계와는 거리가 멀기에…. 참, 이만 연구를 마저 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서고에 어째서 동상에 대한 책들만 이렇게 많은지…. 우스운게, 저는 단 한번도 북쪽의 추운 나라로는 유학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동상에 대해 치료하라고 한다면, 이 대륙에서 저보다 잘 아는 의사는 없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기이한 일이지 않습니까? 동상 환자라곤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나라인데…. 늙어서 그런가봅니다. (허허 웃으며 자리를 떴다.)
이안 브란트:(입 꾹 다물고 끄덕이기만 했다. 늙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선생님 세상이 말세라 그런 건 아닐까요?…… 의료원 바깥으로 나선다.)
(어디를 가야 하나. 이래서는 곧 폐하께서 나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시험하게 되겠군…. 백작에 대해 알 만한 자라면 역시…. 의료원 건너의 아카데미 건물을 눈에 담다가도 고개 내려 흐르는 을 바라본다. 그쪽도 나쁘진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사랑스러운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목입니다. 강물은 투명하게 맑아 물고기를 맨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돌다리 근처에는 소일거리 삼아 물고기에게 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서 있으며,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몇몇 보입니다. 모두 털옷을 입고 있군요. 날이 더운 탓에 옷을 반쯤 벗고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
듣기
60 30 12
실패
80
(우와 물고기다….)
주민1: 대체 옷을 입었는데 왜 더운지 모르겠어. 원래 이렇게 ……. 이 옷 말이야, 세네벌은 껴 입는 옷인데. 그랬다간 쪄죽을 것 같아서 하나만 걸쳐입었어.
주민2: 그러게나 말야. 원래 우리나라가 이렇게 더웠나?
주민1: 무슨 정신 빠진 소리야? 원래 이렇게 덥지! 파블은 여름의 나라잖아.
주민2: 어휴, 그렇지. 그런데 대체 …… 하나도 없으니. 작년에 어떻게 살았더라?
주민1: 작년까지 갈 것도 없이, 당장 일주일 전에도 …… 모르겠어. 안에 솜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넣어서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강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합니다. 저마다 웅성거리느라 여념이 없네요.
이안 브란트:(웅성거리는 사람들 주변으로 걸음을 옮겼다. 터벅터벅….)
(이 날씨라는 것이 이상해지기는 한 모양이다. 그런데 도저히 기억나는 것은 없고, 파블이 겨울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자는 모두가 미쳤다고 하는 이뿐이니. 이상해진 자는 누구란 말인가? 한숨 푹 쉬며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주민1: 그 백작나리 이야기 들었나? 프리디티오네 백작말일세.
이안 브란트:(주군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군….)
주민1: 밤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아카데미 근처의 여관에서 일하는 에이미 알지? 밤에 음식을 날라달라는 의뢰를 받고 갔다가, 지금 3일 내내 방에만 처박혀 있다는군.
주민2: 알다마다. 그집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뭐라더라, 노란… 뭐?
주민1: 그게 말이야, 그 백작이 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고름덩어리라고 그러더구만.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린지. 헛걸 봐도 단단히 본 게야.
주민2: 귀족놈들 더러운 취미 가진 게 하루 이틀 일인가? 에이미도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거겠지.
주민1: 그런가? 그런데, 내가 꺼림칙한 건…. 그 백작 나으리 성이 있는 곳이, 원래 저수지가 있지 않았었나? 거기서 애들 썰매 끌어줬던 것 같은데…. 왜, 보면 둔덕도 그대로고.
주민2: 썰매? 자네 무슨 소리야?
주민1: 엥? 방금 내가 뭐라고 했나?
아무튼. 그것만이 아니야. 원래 왕성 근처에… 귀족 나으리들 성이 그렇게 많았나? 안 그래도 좁은 동네인데 요즘은 더 좁아진 것 같은 게…
▶:인파가 몰려든 탓일까요. 소란이 커져 더는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인파 사이에서 빠져나온 뒤, 생각을 정리하려 강가를 조금 걷는다. 아름다움을 눈에 담을 만한 여력이 없으니 주변 광경은 보는 둥 마는 둥, 제게 말 걸 사람이 없을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뿐이었다. 곧 사박거리는 잔디가 밟혀 바닥을 내려다보면, 만개한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잔디밭에 한쪽 무릎을 꿇고 쪼그려 앉았다. 옷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대로 푸른 잔디 사이에서 들꽃 몇 송이를 꺾어 줄기를 엮는다. 분명 이런 색이 어울렸던 것 같은데, 노란 꽃이 유독 두드러진다. 왕성은 기이하게도 겨울의 날씨 같다. 추위를 많이 타셨던 것 같은데. 어쩌면 한 사람만이 믿는 그 겨울이란 것이 제 주군을 괴롭게 만드는 것은 아닐가? 봄과 여름을 가장 닮은 것들을 보여드리면 조금은 마음이 풀리지 않으실까, 기운이 나진 않으시려나….)
(제 눈에 가장 고운 꽃으로 엮었으나 당신 마음에 들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별것도 아닌 바깥 것을 가져와 싫어하실지도…. 그래도, 집무실 구석의 꽃병에라도 꽂아두면…. 안 되나? 모르겠군. 아주 왕의 집무실을 제멋대로 여기는 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털었다. 늦진 않았으려나,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본 후 왕성으로 돌아갑니다!)
▶:왕성으로 돌아옵니다. 보고를 위해서는 알현실을 방문해야겠죠.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그 잠깐 걸어오는 길에 꽃다발… 이라고 칭하기에도 뭣한 것이 조금 흐트러진 것 같기도 하고. 꽃을 툭툭 정리해 품에 집어넣었다. 알현실로 향합니다. 별일 없나….)
▶:겨울의 얼룩이 남은 복도를 가로질러 알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신들의 시선이 당신을 향해 쏟아집니다. 아, 이제 살았구나. 그런 시선입니다. 그들은 늘 당신을 이런 눈으로 보아왔습니다. 첸 티엔이 결코 당신만은 죽이지 않으리라 맹신하는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그러한 믿음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습니다. 마치 당연한 일을 접하는 것처럼,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To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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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브란트:(부담스러워…. 눈치 살핀 뒤 알현실 내부로 들어간다.) 명 받았던 것을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첸 티엔:(당신이 알현실로 들어서자, 씨근대는 숨을 갈무리한다. 이어 가신들을 모두 물린다. 두 사람만이 남은 알현실. 꽃다발에는 시선조차 두지 않는다.) 그래요, 이안 브란트 경. 그 백작에 대한 것은 알아 왔나요?
이안 브란트:(그도 눈치라는 것이 있으니 어련히 눈치 살피며 꽃은 당신에게 보이지 않게끔 쥐었을 것이다. 감히 괜찮느냐는 말을 먼저 여쭙지는 않는다.) 예, 사람들은 그를 사람이 아닌 고름덩어리라고 칭하였습니다. 단어 그대로의 진실인지, 단순한 비유인지는 알아내지 못하였지만…. 또한 지금은 3일 내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다만…. (순탄히 말을 이어가던 방금과 달리, 잠시 주저한다.) 폐하께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첸 티엔:(핏기 없는 낯으로 당신을 내려다본다. 이어질 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마냥 손에 턱을 괴기만 했다.)
이안 브란트:(이어지는 목소리에 떨림이 있다.) 파블은…. 겨울의 나라입니까? (감히 시선을 마주했다. 언뜻 절실한 표정.)
첸 티엔:(딱딱히 굳은 얼굴. 언제부터인지, 첸 티엔은 웃음이 줄어들었다.) 경마저 나를 농락하려 드는 건가요?
이안 브란트:그런 것이 아닙니다…. (눈썹 끝이 아래로 기운다. 그러나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이 나라의 모든 자가 파블을 봄과 여름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첸 티엔:본디 그런 나라이기 때문이죠. 햇살이 들고, 배곯거나 얼어 죽는 이들이 없는…. (중얼인다. 이어지는 말은 이지 없는 자의 노랫소리에 가까웠다.) 백작이 저택에 있다고 했나요? 그럼…. 내일은 그놈을 죽여야겠네요. 그렇죠.
이안 브란트:(그렇다면 당신은 어찌하여 홀로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인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숨결처럼 내뱉는 말들.) 백작은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첸 티엔:내 심기를 어지럽혔어요.
이안 브란트:(울적.) 조금 더 자세하게 일러 주신다면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첸 티엔:왜?
너도 내가 미덥지 못하니?
너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이안 브란트:……. (주군의 앞에서 표정을 구길 수 없으니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그러나 얼굴의 핏기가 가시는 것만큼은 당신 앞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어 기어이 고개를 떨군다.) …그럴 리 없지 않습니까. 송구스럽게도, 신이 아둔하여 폐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
첸 티엔:(오랜 침묵이 알현실 내부를 감돌았다.) 이만, 돌아가 줘….
이안 브란트:부디, 편히 쉬십시오. (고개조차 들지 못하였으니 손 내밀어 품에 든 것을 전할 리 만무하다. 겨우 꽃잎 하나가 붉은 카펫 위로 떨어져 제 나가는 길목에 밟혔을까. 문득 입 안에 혈향이 돌아 제 입술을 매만졌다. 아, 바보 같네…. 알현실 바깥으로 나간다.)
(To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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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말은 없습니다.
알현실 바깥으로 나오면,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시종: 브란트 님, 윈 님께서 종교 구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안 브란트:아…. 감사합니다. (뺨을 쓸어내린 뒤 겨우 표정을 갈무리했다. 복도를 조금 걸어 서고 한 구석, 눈에 띄지 않을 곳에 구겨진 꽃다발을 대충 두고 간다. 서고는 가장 건조한 공간이지 않나. 이대로 말려서, 눈에 띄지 않게 버리는 편이 좋겠지. 곧장 종교 구역으로 향한다.)
▶:어느새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달빛이 조각나 번져듭니다. 은밀하게 모여든 사람들이 둥근 테이블에 저마다 베일을 쓰고 앉아 그 아래로 시선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종교 구역으로 들어서면, 그제서야 그들은 오셨습니까, 브란트 공. 같은 인사를 건네며 베일을 걷습니다.
이곳에 모인 귀족들은 본래부터 파블의 귀족이었던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자리에 앉고 나면, 뒤이어 윈이 들어옵니다.
첸 윈:갑작스러운 부름이었을 텐데, 초대에 응해주어 고마워요.
이안 브란트:아, 아닙니다. 이리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쭈볏댄다.) 혹 어떤 일로…?
첸 윈:경이 폐하의 명을 수행했다고 들었어요. 폐하께서 무엇을 명하셨나요?
이안 브란트:프로디티오네 백작에 대하여 알아보라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알려주지 않으셨구요. 내일은 그를 죽이겠다고도…….
귀족: (당신의 말 가만 듣더니,) 폐하의 폭정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는 거사를 준비해야지 않겠습니까?
귀족2: 맞습니다. 날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브란트 경께서 그의 목을 베어주시지요. 그만으로도 큰 상징이 될 것입니다.
이안 브란트:모두가 원한다면, 그리 해야겠지요…. (느릿느릿 답한다.) 생각한 날이라도 있으신지요.
귀족2: 그것은 지금부터 의논해보면 되겠습니다.
▶:대화의 물꼬라도 트인 듯 모두가 앞다투어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간간이 나흘 뒤, 라는 말이 들려오기도 하네요. 분위기가 과열될 무렵, 첸 윈이 나서서 그들을 중재합니다.
첸 윈:그만, 그만. 큰일은 적기를 기다려야 해요. 다들 서두르진 않는 것이 좋겠네요. 오늘은 이쯤 파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아, 브란트 경께서는 잠시만 남아주셔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이안 브란트:(이야기가 흘러가는 내내 말 한 마디 얹지 않았다. 다른 곳에 정신이라도 팔린 양, 풀내음이 밴 손끝을 매만지기만 했다.) 아, 네에. (제게 떨어지는 말에만 겨우 대답한다. 다른 이들을 대충 배웅한 뒤 자리에 앉는다.)
첸 윈:(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자리를 뜬 뒤에야 입을 연다.) 브란트 경. 경은 아주 오래 전에 지나가버린 영광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안 브란트:글쎄요, (찬찬히 말문을 열었다.)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하겠지요. 과거에 매여 있다면 필히 나아가지 못할 테니…. (뜸.) 빤히 알고 있으면서 그 영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부질없는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뺨에 닿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빙글 꼬았다.) 경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첸 윈:저는 차마 놓을 수가 없더군요. 죄송해요. 이상한 소릴 했나요? 하지만, 그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요즈음에는 통 견딜 수가 없어 말이죠. 혁명이니 뭐니, 거창히 늘어놓는다지만…. 결국은 제 혈육을 참하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것 아닌가요. (짙은 한숨을 내쉰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달갑지 않아요.
경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 오빠에 관해서요.
이안 브란트:(당신의 얼굴 위로 시선을 둔다. 공감을 표하듯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충분히 이해하는걸요. 저 또한, 경과 다를 바 없이…. (말 끝맺지 못하고 따라 기다란 숨만 내쉴 뿐이다.)
(질문에는 짧은 고민이 이어진다. 그냥, 저는…. 내뱉는 말은 엉뚱하기 그지없다.) 그분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짓는 것 같기도 하고, 울음을 참는 것 같기도 한 표정. 무의식 중 중얼대는 나약한 진심. 검은 눈 내리뜨다 말고 당신을 바라본다. 아, 짧은 탄성. 본인이 말해놓고 놀란 기색이 다분하다.) 우, 웃기는 말이죠. 오늘만 해도 목을 베어달란 말에 응하였으면서. (마른 세수.) 죄송합니다. 지금 가장 괴로운 것은 경이실 텐데….
첸 윈:아녜요.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타고나길 눈치가 빨랐다. 이런 점만큼은 제 남매를 꼭 빼닮곤 했다. 그와 비슷한 푸른 눈이 당신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보다는 옅으나, 그보다는 힘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당신의 하늘은 아닐 것이다.) 목을 베어야만 한다면, 베는 자는 경이어야만 하거든요. 그게 옳아요. 오빠도 그걸 바랄 테니까.
있잖아요. 지금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을 알아요. 하지만 기억해주시겠어요? 기사로서 말이에요. 오빠에게 서임 받았던 그날, 당신이 했던 맹세처럼…. (짧은 침묵이 흐른다. 말을 고른 뒤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한동안 폐하께서 경에게 계속 도성 안을 살피라 명하실 거예요. 모든 장소를 빠짐없이 조사해주세요. 가능한 한 상세하게, 기사로서,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해주실 수 있나요?
이안 브란트:그래야만 하겠죠.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누가 지운지도 모를 임무를 재차 되새긴다. 한 사람 분의 시선이 닿으니 속절없이 마주한다. 다시, 속절없이 떠올린다. 푸른 눈을 제대로 마주한 것이 언제던가, 당신이 웃어주었던 것은 언제던가? 당신이 행복해지면 그땐 내게 웃어줄지도 몰라. 아니, 내게 웃어주는 것이 아니라도 괜찮으니까…. 날은 봄이고 여름인데 눈가가 지독하게 시리다.)
(말 고른 것이 무색하게, 모든 말에 순순히 끄덕일 뿐이다.) 그리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찾아내야만 하는 답을… 알게 되겠지요.
첸 윈:(고개를 끄덕인다.) 특별히 전해드려야 할 말이 생긴다면, 오늘처럼 시종을 통해 연락을 드리도록 할게요. 시간이 늦었으니 저희도 이만 돌아가볼까요.
이안 브란트:네, 말씀 감사했습니다. (손 꼼지락댄다.) 도움이 되었어요, 생각 정리든 뭐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별과 달이 길을 비추는 밤입니다.
이대로 일과를 마무리할 수도 있고, 밤시간을 이용해 자유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안 브란트:(심란한 마음에 이 달밤에 강가를 따라 만 보 정도 왔다갔다 걸었을 것이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꽃이며 나무에 시선이 닿았을 테고, 당신에게 전하지 못한 꽃이 마음에 걸렸을 게 뻔하다. 또! 잔디밭에 쪼그려 앉았다. 낮전처럼 꽃다발을 엮어다 주는 것은 외람되니 겨우 토끼풀 꽃을 동그랗게 엮었다.)
(흠.)
손놀림
10 5 2
실패
63
(안 되네.)
(대충 반지? 비슷한? 모양으로 엮었지만? 그냥 동그랗기만 하다? 이런 것은 못 드리겠군…. 시종에게 부탁하여 말린 캐모마일 잎도 주섬주섬 챙겼다. 기어이 주군의 방 문을 두드린다.)
(To 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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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 티엔:들어와요.
이안 브란트:예, 들어가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간다. 눈치 살피듯 눈을 도륵 굴리기만 했다.) 안부차 잠시 들릅니다. 평안한 밤이실지요….
첸 티엔:(상체만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몸 비스듬히 기댄다. 얇은 내의에, 헝클어진 머리.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당신에겐 익히 보여 왔던 모습일 것이다. 타인에겐 드러내지 않는 치부, 유약한 면모들. 유독 당신에게만은. 푸른 시선이 당신의 손끝으로 가닿는다.) 으응. 손에 든 건 뭐예요?
이안 브란트:(낮 시간보다 가라앉은 듯한 모습에 내심 안도하였다. 하나 무심결에 이어진 생각에는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 본 적 없더라면, 모든 게 조금은 쉬웠을지도 모른다…. 침대 가까이 다가가 협탁 위에 찻잎을 내려놓았다. 토끼풀 꽃도 당신 몰래 옆에 슬그머니 놓는다.) 캐모마일 꽃잎으로 차를 우리면….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서요. (힐긋.) 따듯한 물을 내어올까요?
첸 티엔:그런 건 시종을 시키면 될 텐데…. (이어지는 말은 사뭇 장난스럽다.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당신이 우려주시려고요?
이안 브란트:제가 우려드리는 편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 (기묘한 확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자리를 비운 뒤 조그만 트레이에 더운 물이 든 찻주전자와 잔을 받쳐왔다. 당신이 내부를 볼 수 있게, 투명한 유리 재질의 티팟으로 가져왔을 테다. 말린 꽃잎을 털어넣으면 금세 노랑으로 물이 든다. 잔을 반쯤 채워 당신 쪽으로 밀어주었다.)
첸 티엔:(당신이 트레이를 들고 들어올 무렵이면, 협탁 위에 놓인 토끼풀꽃을 발견했을 터다. 동그랗게 말린 것. 반지를 닮은 것을 손바닥 위에 놓은 채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잔이 밀어질 적에도 시선 떨어지지 않는다.) 이건 뭐예요? 반지인가?
이안 브란트:바깥에…… 꽃이 피었길래. (눈동자가 분주하게 굴러간다.) 치울까요?
첸 티엔:(답은 내어놓지 않고 질문만을 던졌다.) 당신이 만든 거예요?
이안 브란트:(눈썹 조금 기울었다.) 예…, 맞습니다. (슬그머니 뒷짐을 지고 허리를 바로세웠다.)
첸 티엔:왜?
이안 브란트:바깥에 꽃이 만개하여…. 꽃을 보면… 폐하의 기분이, 조금 풀리실까 싶어서….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고개를 떨구니 침구 위에 올려둔 당신의 희고 기다린 손 위로 시선이 닿는다. 그래, 굳이 꽃 줄기를 둥글게 엮어온 이유는 단순하다. 시선을 반쯤 떨굴 때면 주제넘게 당신의 손을 쳐다보는 일이 잦았으니까. 그럴 때마다 당신의 손가락에는 늘 반짝이는 것이 들어차 있었으니까. 그는 언제나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낼 뿐이다. 자각 하나 없이.)
첸 티엔:(숙인 고개 위로 다정한 목소리가 내리 앉았을 것이다.) 그럼, 이안…. 당신이 끼워 줄래요? 여기에. (내민 것은 왼손, 비어있는 곳은 약지 하나. 부러 그 손을 내민 것인지, 단순히 미쳐버린 탓에 그 의미조차 망각한 것인지는 이곳의 누구도 알 수 없을 터다.)
이안 브란트:(꽃반지를 집어들었으나 망설이듯 반지의 끄트머리를 손톱 끝으로 꾹꾹 눌렀다. 어찌, 감히….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애써 삼켰다. 혼란의 와중에도 이안 브란트가 첸 티엔의 청을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지. 짧은 주저 뒤, 당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앉는다. 기사 서임식 때와 같은 자세. 그러나 손에 들린 것만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가늘게 떨리는 손이 당신의 왼손을 받치더니, 약지 위로 반지를 끼운다. 반짝이는 것 사이 들꽃은 유달리 초라하다. 재차 명이 떨어질 때까지 자세를 세우지 않고 당신을 올려다 보기만 하였다. 조금은 울고 싶어졌을까….)
(To GM):
이성판정(1=성공, 0=실패)
판정판정 실패시 악몽+다음날 오전까지 광기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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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 티엔:(약지에 끼워진 것을 조심스레 매만진다. 귀한 것에 흠집이라도 날까 주춤거리는 손길은 애정과도 닮아 있다. 표정 또한 다름이 없다. 눈썹이 아래로 처지며, 날카롭던 눈매마저 둥글게 휘고, 이를 내보이며 웃음을 흘리고….) 지금, 무척 기분이 좋네…. 오늘은 악몽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요.
이안 브란트:(아, 숨을 참는다. 그 웃음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멍하니 올려다보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다. 분에 넘치는 애정을 받을 때면, 나는 꼭 잘못된 자리에 서있는 것만 같았다. 눈가가 시큰거렸다. 한껏 숙여진 고개, 떨리는 목소리만이 이어진다.) 주군께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부디 평온한 밤 되시길.
첸 티엔:(답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답하지 못했다. 이안 브란트가 고개를 숙였으니, 지금 이 순간 첸 티엔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대로 몸을 돌려 눕는다. 등을 보인 채 대꾸했다.) 이만 가봐도 좋아요.
이안 브란트: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뒤에는 뒤돌지 않는다.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의 걸음이 성급하며, 문을 닫히는 소리마저 조심스럽지 못하다. 두 사람 사이를 두꺼운 벽이 가로막고 나면 미끄러지듯 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침대맡에서 문 밖까지 그 사이 거리가 넓었으니 숨이 차는 것이다. 왕성의 냉기는 지독하게 시리니 어깨가 떨리는 것이며, 하루종일 바깥을 걸어다녔으니 당장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그 뿐이다. 다른 이유 같은 것은 없다. 그래야만 한다….)
(젖은 뺨은 닦아낸 뒤 처소로 돌아간다. 남은 밤 동안 잠을 청합니다.)
▶:오늘도 역시나 아침이 시작됩니다. 궁은 이상하리만치 평화롭네요. 오늘은 그의 폭정이 이어지지 않기라도 한 걸까요. 궁 밖으로는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어울려 살아가는 소리와, 어우러진 여름의 활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궁 밖궁 안중 한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간만에 궁이 평화로우니 을 둘러보기로 결심하였다. 티엔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집무실과 알현실이 조용한 것을 보면 적어도 두 장소에 방문해있지는 않은 것 같네요.
집무실서고지하실화원복도알현실왕의 침실중 네 곳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이거 다 가도 되는 거 맞을까? 나는 모르겠다 안 들키면 될 것 같기는 하지만. 들키면 책임은 나의 목숨으로……. 잡생각을 멈추고 알현실로 향합니다. 저벅저벅….)
▶:알현실의 분위기 역시 복도의 어두운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화려한 샹들리에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새카만 촛대들이 창틀마다 위치하고 있습니다.
(To GM):
광기결정
설명홀수 = 광기
짝수 = 제정신
광기8
귀족: 브란트 경 아니십니까. 폐하를 뵈러 오신 건지요?
이안 브란트:아, 아뇨…. 그냥…. (뜸.) 폐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귀족: 글쎄요, 오늘은 아침에도 보이지 않으셔서 말입니다.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는다.) 오전 알현마저 파투가 났습니다. 죽어나가는 사람이 없으니 다행이라 말해야 할는지….
이안 브란트:혹 외출을 하셨습니까? 백작을 만나러 간다거나, 하는 말씀 없으셨고요? (덤덤하게 오늘 그 백작이라는 자가 죽는 날인가… 생각하는 중. 덤덤해지고 싶진 않지만….)
귀족: 출타하시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그랬다면 브란트 경을 불러들이셨을 테니까요. 알현실 외의 장소는 들러보셨는지요?
이안 브란트:(고개를 잘게 흔들었다.) 예,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어디 계시는 거지? 피곤하신가. 알현실을 둘러보다 말고, 비밀스런 이야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죽인다.) 그나저나…. 프로디티오네 백작에 대하여 들은 것 있으신가요? 모두 그를 고름덩어리라고 부르던걸요. 예전에는 그의 성 근처에 썰매를 끄는 둔덕이 있기도 하였지 않던가요. 그것은 기억하시는지요? (떠보듯 묻는다.)
귀족: 아, 맞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그곳에서 아이들을 놀아주곤 했었죠. 썰매 타는 것을 어찌나 좋아하던지….
…으음? 제가 무어라 말했습니까? 백작에 관한 것은 아는 바가 없군요.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안 브란트:(하, 헛웃음이 터진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입매 매만진다.) 말씀 감사합니다. (인사 뒤 복도로 걸어나갔다.)
▶:알현실과 화원을 가로질러 티엔의 집무실까지 이어지는 긴 복도입니다. 햇볕이 잘 들지않아 늘 어둡고, 그 탓에 항상 초를 켜 불을 밝혀둡니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어려운 성공
28
▶:성 안의 구조는 대체로 창문이 작고 단열 효과가 뛰어난 나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파블은 여름의 나라인지라 강수량이 많으니, 이런 목재 건축물은 썩어서 무너지기 쉬울 텐데요.
이안 브란트:(창틀을 살피더니, 창문을 벌컥 열어본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어려운 성공
28
▶:창틀을 살피면, 창틀을 타고 물을 받는 라인이 있었던 흔적이 보입니다. 꼭 쌓인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을 운반했던 것처럼요.
창문을 벌컥 열어보면, 시가지로 이어지는 큰 길목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행복한 얼굴로 웃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파블은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
듣기
60 30 12
실패
64
(다들 즐거우신가요 행복하신가요…. 그래, 그럼 됐지……. 정신 바짝 차리고 재차 귀를 기울이니 무언가 들리는 것 같기두. 행운 4 깎습니다.)
▶:파삭. 창틀에서부터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응? 얼음이요?
이안 브란트:(응? 얼음이 어디에? 손을 뻗어 창틀을 더듬는다.)
▶:다시 살펴보면, 아무것도 없는 그냥 창문입니다. 분명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에요.
이안 브란트:
이성
65 32 13
실패
81
(마른 손끝을 내려다보다가) 잠을 잘 못 잤나. (관자놀이 꾹꾹…. 집무실로 이동한다.)
▶:티엔이 가장 자주 머무르는 곳이나, 역시나 안은 비어있습니다. 궁이 평화로운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에요.
책상서랍벽면편지함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신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중얼중얼거리며 냅다 서랍부터 열었다.)
▶:자물쇠로 잠겨있군요.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열쇠가 있을까? 책상 위를 살펴봅니다….)
▶:열쇠는 없으나, 메모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안 브란트:(메모를 읽어봅니다. 티엔의 글씨체일까?)
▶:미친 사람이 휘갈겨 적은 것처럼 필체가 엉망진창입니다. 이 성에 미친 사람이라곤 그 한 명 뿐이니, 티엔의 글씨체가 맞겠지요. 무언가에 쫓기듯이 초조하게 갈겨 쓴 것 같습니다. 워낙 악필이라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몇 개의 문장 정도는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왕이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지만,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곳은 파블. 영원한 봄과 초목이 우거지는 여름의 나라입니다.
농업이 번성하여 배곯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먹거리라면 발에 채이도록 많고, 하물며 빈민촌에도 옷이 없어 거적을 기워 입는 사람은 있어도 굶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안 브란트:
이성
64 32 12
어려운 성공
29
(파블은 겨울의 나라. 그래, 당신에게만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시선을 들어 벽면을 훑는다.)
▶:벽면을 살펴보면, 겨울 늑대의 두상이 박제되어 걸려있습니다. 최근 최북단에 위치한 약소국에서 파블에 진상한 물건입니다.
티엔이 그 국가의 왕을 비웃으며 크게 조롱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그 바로 아래에 자리한 벽난로의 위에는 쇠사슬로 칭칭 묶인  한권이 놓여있습니다. 책을 못으로 박아둔 것에서 광기가 느껴집니다.
이안 브란트:(책을… 펼쳐볼 수 있을까? 표지라도 살펴봅니다.)
▶:표지는 별다른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다 할 제목이 없다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한 점이겠네요. 책을 펼쳐보려면 벽에서 떼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안 브란트:(그렇게 하면 폐하께 들키지 않을까? 하지만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벽에서 뜯어내봅니다….)
이안 브란트:
근력
70 35 14
실패
89
(나약해졌네 나.)
(다시 한 번… 꼬옥 잡아당겨봐도 될까요?)
▶:당신이 원한다면요!
이안 브란트:
근력
70 35 14
실패
87
(왜애?)
(ㅠ_ㅠ??)
나 기사단인데. 나 호위기사인데. (우우. 우우웃. 일단 편지함부터 보기로 합니다. 체력 보충이 필요해.)
▶:편지함을 보려고 몸을 돌린 순간….
두동강 난 책이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이안은 책을 찢었습니다.
이안 브란트:(사색이 되어 책 앞에 무릎 꿇고 앉는다….)
▶:책장이 펼쳐져있네요. 두동강났지만 내용을 알아보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읽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울고 싶어…. 지금 제일 울고 싶어. 손 달달달 떨면서 책을 펼쳐 읽어본다….)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빼곡하게 적혀있는 문장은 단 한가지입니다. 기이한 집착마저 느껴집니다.
이안 브란트:
이성
64 32 12
실패
72
(훌쩍거리며 책을 열심히 이어붙입니다…. 좀 티 안 나게 붙였을까?)
이안 브란트:
행운
36 18 7
성공
21
(좀 괜찮은가? 갸우뚱.)
▶:겉보기에는? 멀쩡해진 것 같습니다. 미친 왕에게 들킬 걱정은 없겠어요.
이안 브란트:(훌적대며 책을 제자리에 두었다. 어깨 움츠리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책에서 멀찍이 떨어진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나저나…. 피로 겨울을 녹게 한다는 말이란? 이런 것을 여쭈어 보았다가는 목이 날아가려나. 편지함을 제대로 뒤진다.)
▶:편지함은 다른 나라의 사신들이 보내온 문서나, 타국의 왕이 적은 친서 등 중요한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타다 만 편지도 한 장 보이네요.
이안 브란트:(편지를 한 장씩 훑어내리다가, 타다 만 편지를 펼쳐 읽는다.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보낸 사람은 누구지?)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실패
94
(눈 비비적.)
관찰력
60 30 12
성공
40
▶:편지를 툭, 털어내니 그나마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이 드러납니다.
이안 브란트:(손도 대지 않은 체를 하려 하였으니 본디 편지를 확인하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해당 편지를 읽고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편지의 끄트머리가 구겨진다. 그 길이란 대체 무어길래? 당신의 피로 겨울을 녹였다는 의미가 이것인가? 당신은 어째서 죽음의 길을 걸으며,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란……. 편지를 갈무리하는 손이 떨린다. 윈 경에게 여쭈어 보아야겠어…. 편지함을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다시 서랍을 확인한다. 자물쇠…. 뜯어내도 되나?)
이안 브란트:
근력
70 35 14
성공
52
(잡아당겼다.)
▶:손쉽게 자물쇠를 풀어냅니다. 서랍을 열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어떻게 갖다붙일지가 더 걱정이다! 서랍을 열어봅니다.)
▶:서랍 안에는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종이뭉치가 놓여있습니다. 읽어볼까요?
이안 브란트:(마음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읽어봅니다.)
▶:익숙한 필체입니다. 그가 광증을 앓기 전의 글씨로군요. 이 종이뭉치는 티엔의 수기인가 봅니다.
겨울의 나라, 파블. 이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눈이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눈 나리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채워주는 것만 같다. 몸이 떨려 재채기라도 할 적이면 이안이 걱정스레 다가와 주니, 단지 그 점이 좋아 겨울을 사랑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장을 넘겨볼까요?
이안 브란트:(그때도 파블은 겨울의 나라였나 보다. 당신이 틀렸을 리 없다. 페이지를 넘기기 전, 애정을 눈에 담는다. 다음 장을 넘깁니다.)
▶:볕이 들지 않으니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눈이 쌓여 땅이 얼어붙으니 파종 자체가 불가능하다. 도성에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배곯는 아이들이 제 부모에게 울며 매달리다가도 나를 보면 의연한 체를 한다.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괴롭다.
다음 장을 넘겨볼까요?
이안 브란트:(한숨을 삼킨다. 종이를 넘깁니다.)
▶:며칠을 잠자리에 들질 못했다. 내색지 않으려 했으나 티가 났나 보다. 이안이 차를 우려주었다. 캐모마일의 꽃잎을 따다 말렸다고 했던가. 이 겨울에 귀한 것을 구했다면 팔아 제 몫을 챙기기나 할 것이지. 그마저도 제게 내어주는 것이 기쁘면서도 미안하기만 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찻잔에는 노란빛 물이 잘랑인다. 잔을 비워내기가 아쉽다. 이리 와 함께 나누어 마시자며 말이라도 건네볼 걸 그랬나.
이안 브란트:(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런 일이 정녕 있었던가? 어제가 아니고도?)
이안 브란트:
정신력
65 32 13
성공
57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한기가 어깨를 감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안 브란트:(그런데 왜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지? 핏기 가신 낯을 쓸어올린다. …다음 장이 있나?)
▶:읽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읽어봅니다.)
▶:식량을 대가로 타국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이마를 찧은 탓에 상처가 나기라도 했나 보다. 이안이 울음 참아내는 것이 보였다. 괜찮다 일렀으나 표정 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 이마에도 네 것과 똑 닮은 흉이 생기겠구나, 말했더니 그제야 타박을 건넨다. 즐거운 일이다.
뒤로도 수기는 이어집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나라는 멸망으로 치닫고, 그는 스스로를 혐오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장을 읽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종이가 순서에 맞지 않게 바닥에 흐트려졌음에도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마지막 장을 읽어봅니다.)
▶:누구도 나를 구원하지 않아도 돼.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내가 이 나라의 구원이자, 나 스스로의 구원이 되어야지. 너만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야지.
이안 브란트:(종이가 구겨지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대강 종이뭉치를 한 데 모으기만 했다. 미련한 사람. 한 나라의 군주가 홀로 가라앉는데, 근심 없이 행복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바보 같아, 정말…. 종이뭉치를 다시 서랍 안에 집어넣는다. 서랍 앞에 한참 웅크려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당신의 손 없이도 저 혼자 걸음을 뗄 수 있게 된 것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리라. 나라를 위해, 당신을 위해….)
(집무실에서 나가기 전 들른 흔적을 지워본다. 정확히 말하면 엉망으로 헤집어 놓은 흔적을 지운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흠.)
은밀행동
60 30 12
어려운 성공
23
(적어도 내 눈에는 말끔해 보인다. OK. 폐하의 눈에 마음에 안 들면 그때는 그냥 목숨으로… 더보기. 그대로 서고로 향합니다.)
▶:오래된 타국의 서적들부터 파블의 역대 왕들에 대한 기록물들이 보관된 장소입니다. 왕의 기록물은 왕이라도 볼 수 없기 때문에, 서고 자체도 엄중한 감시 하에 놓여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고의 입구에는 경비병이 서 있네요.
이안 브란트:(웃. 경비병에게 말을 걸어요.) 이안 브란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경비병: (각 잡힌 경례.) 브란트 경. 무슨 용무이십니까?
이안 브란트:(흠.) 국격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폐하의 명을 받았습니다만. (그런 적 없다.)
설득
50 25 10
극단적 성공
4
경비병: 폐하의 명이시라면. (의심이라곤 한톨도 찾아볼 수 없다.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다.)
이안 브란트:(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쉰 뒤 서고 안으로 들어간다.)
▶:서고 안은 빛이 완전히 차단된 어두운 암실입니다. 옆의 촛불을 하나 가지고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가장자리의 책장중앙의 책장뒷편의 책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촛불 하나를 왼손에 들었다. 가장자리의 책장부터 차례로 살펴봅니다.)
▶:이상하리만치 눈에 들어오는 이 한 권 보입니다. 읽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책을 빼내어 읽어봅니다.)
▶:파블에서 멀리 떨어진, 최북단에 위치했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발행된 고서적입니다. 이 나라는 해가 잘 드는 남부의 나라이며, 농업이 번성하여 식량이 넘쳐 흘렀다고 합니다.
[어째서 우리 나라는, 농업과 무역에 대한 기록물들이 많은 것인가?]
[우리는 예정된 죽음으로 간다.]
이안 브란트:(이해되지 않는 듯 책을 몇 번이나 뒤적거렸다…. 예정된 죽음? 다른 내용이 더 있을까요?)
▶:별다른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직전 읽었던 페이지가 마지막 페이지네요.
이안 브란트:(책을 덮어 원래 자리에 꽂는다. 중앙의 책장을 뒤진다.)
▶:역시나 눈에 들어오는 이 있습니다. 읽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읽어봅니다. 이번에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당.)
▶:파블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도시에서 건너온 책입니다. 겨울의 나라, 파블에 대하여.
파블! 가난하고 볼품없는 눈의 나라다. 그곳엔 위엄도 없이 주변국에 무릎을 꿇어대는 왕이 있다. 가만히 놔두어도 얼어 죽을 불쌍한 것들.
...
...
파블에서 늑대를 박제한 장식품을 진상해왔다. 이런 사치품을 만들 시간에 배곯는 국민을 돌보는 것이 좋겠다며 크게 조롱하였더니, 파블의 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파블에 매기는 세율을 폭발적으로 올렸더니, 왕이 친서를 보내왔다. 성의를 갸륵히 여기어 친히 자비를 베풀기로 하였다. 첸 티엔, 까마귀들의 위대한 왕이여! 부디, 가능한 한 그대의 나라가 오래토록 평안하기를.
이안 브란트:(집무실에서 보았던 늑대의 박제품을 떠올린다. 오히려 제 기억 속에서 그것을 비웃었던 것은 제 주군이 아니었던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걸음을 옮겨 뒷편의 책장을 뒤진다.)
▶:파블의 역사서가 보입니다. 읽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읽어봅니다.)
▶:추위에서 살아남는 법.
눈보라가 치고 겨울이 360일간 반복되더라도 이 나라의 아침은 찬란할 것이며, 영광이 지지 않으리.
현재의 파블과는 모순된 내용이 아닌가요? 기이한 일입니다.
이안 브란트:
이성
63 31 12
실패
69
(책을 몇 번이나 훑어도 지금의 파블과는 거리가 멀다. 아주 반대되는 나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지러워…. 책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 좀 더 똑똑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럼 일을 조금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당신에게 좀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당신 혼자 짐을 떠맡을 필요 없었을지도….)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책장에 머리 꿍. 한 다음 책을 적당한 자리에 꽂아넣었다. 서고 바깥으로 나간다. 티엔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서고에서 나오면, 시종 하나가 급히 당신을 찾아옵니다.
이안 브란트:(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이런 일이라면 당신과 관련된 일 말고는 없을 테니까.) 무슨 일입니까?
시종: 폐하께서, 브란트 님을 알현실로 모셔오라 명하셨습니다.
이안 브란트:예…. 곧장 가지요. (알현실로 걸음을 옮긴다.)
▶:알현실의 문이 열리면, 가장 상석에는 티엔이 표정을 굳힌 채 검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 앞에는 가신으로 보이는 이가 포박된 채 무릎을 꿇고 앉아있네요.
이안 브란트:무슨 일이십니까? (당신의 앞에 정렬한다.)
첸 티엔:(나긋나긋한 목소리.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프로디티오네 백작을 잡아 왔어요. 그러니까…. (쥐고 있던 검을 당신에게 내민다.) 죽여요. 당신 손으로.
이안 브란트:(당신이 내민 검을 받아든다. 퍽 익숙하게도. 그대로 뒤를 돌아 백작의 차림새를 눈으로 훑는다. 유일하게 당신이 제 뒷모습을 보는 순간일까?) 죄명은…. 무엇입니까?
첸 티엔:도성에 괴이한 소문을 퍼트렸잖아요.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이안 브란트:(무슨 소문? 들은 적 있을까? 열심히 기억을 되살려 봅니다….)
▶:에이미가 백작저에 방문했다가 3일째 방에서 나오지 않았대.
백작이 고름덩어리가 되었다지?
첸 티엔:이안. 어서.
이안 브란트:(검의 끝으로 바닥을 툭툭, 친 뒤에야 검을 바로쥐었다. 주군께서 지시한 대로 목을 몇 차례나 베어낸 장본인임이 틀림없으나, 몇 번을 반복하든 속이 뒤틀렸다. 다만 당장의 한심한 제 낯짝을 당신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길 뿐. 백작의 앞으로 향하는 걸음이 무겁다. 가라앉은 목소리.) 프로디티오네 백작.
백작: 브, 브란트 경…. 살려주십시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습니다. 폐하, 제게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이안 브란트:(제 간청이 쓸모없음은 백작 또한 알고 있을 테다. 아무리 나라의 군주가 아끼는 자라고 한들, 그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울 만큼, 죽음 앞에서는 간절해지는 것이겠지. 조용히 묻는다.) 무슨 일을 행하였습니까?
백작: 아무것도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건 모함일 뿐입니다. 경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차마 뒷말은 내뱉지 못한 모양.) 살려주십시오. 경, 저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안 브란트:(폐하께서…. 뒷말이야 뻔하다. 그 말을 내뱉은 이상 아무리 결백한 자라도 이곳에서 살아 돌아가기는 어려울 테지. 답이 없는 질문을 더 이어봤자 그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꼴이 될 것이다. 차라리 빠르게 끝내는 게 낫다. 한숨 내쉬더니 백작에게만 들릴 정도로 읊조린다.) 용서하지 마십시오. (이안 브란트를. 그리고 나의 미련한 주군만은 끝내 용서하시길. 칼을 날카롭게 들어올리고, 그대로 백작의 목을 단번에 베었다.)
첸 티엔:(기어이 피를 본 뒤에야 만족스러운 낯이 된다. 턱에 손을 괴고, 의자 위로 깊숙이 몸을 묻는다.) 이안, 일이 끝났다면 나를 봐야죠. 이리로 와요.
이안 브란트:(제 손으로 벌인 일들을 외면한 채 뒤돌았다. 숨을 가다듬은 뒤 당신의 앞으로 걸어간다. 피에 젖은 칼을 쥔 손은 그대로 뒷짐을 졌으며, 미끄러지지 않게 강하게 움켜쥐기만 한다. 모든 것은 주군의 뜻대로…. 흔들리는 시선이 당신에게 닿았다가, 아래로 떨어진다.)
첸 티엔:힘들어요? 이런 명은 따르고 싶지 않나요?
이안 브란트:(겨우 입을 열어 대꾸했다.) 힘들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폐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첸 티엔:그렇다면…. 사람의 목을 베는 연습을, 더 해두는 게 좋겠어요. (가볍게도 중얼거린다. 흥얼거림에 가까운 투였다.) 깔끔하게 죽이면 안 된단 말이에요. 봐요, 저 백작도…. 고통 없이 죽여버렸잖아요.
이안 브란트:(이번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정확하게는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첸 티엔:(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 미친 자의 말은 끝없이 이어지기만 한다.) 수십, 수백 번을 찔러서 확실히 죽여야지…. 그래야 나를 위협하는 반역자들을 실수 없이 죽일 수 있을 거 아녜요.
(마냥 즐겁기만 했던 어조가 찬찬히 침잠한다. 말이 느려지고, 띄엄띄엄 멈추어 낸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는데.
나는…. 나를, 폭군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내가, 하고자 했던 건…. (이윽고 잦아든다. 짧은 침묵. 의자에서 일어나 당신을 지나친다. 그대로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이안 브란트:(당신을 따라나갈 수 없으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다. 당신이 하고자 했던 건…. 나라의 구원인가? 몇 장의 종이 속에서 읽었던 단어들을 되짚는다.)
(폐하. 겨울이 지난 뒤, 구원 받은 나라에서…. 그대는 어떻게 살고 싶었습니까? 그런 것을 고려해 본 적 있나요? 겨우 상상이라도 해 본 적 있습니까?)
(티엔. 제가 꿈꾸는 당신의 행복 말고요, 당신이 꿈꾼 당신의 행복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바닥 위로 피로 물든 칼이 떨어진다. 챙강, 날 부딪히는 소리가 알현실을 울린다. 날붙이의 소리도, 손을 적신 피도, 사람을 베는 감각도…. 모두 지나치게 생생하다. 이런 꼴로 당신을 쫓아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 처소로 돌아간다.)
(몸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금 바깥으로 나왔다. 제법 멀끔한 낯을 유지한다. 본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털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은 점차 짧아진다.)
시종: 브란트 님, 실례합니다. 윈 님께서 종교구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안 브란트: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곧장 종교구역으로 향하였다.)
▶:종교구역으로 들어서면, 윈이 천천히 걸어나와 당신을 맞이합니다. 이번에는 다른 귀족들은 보이지 않네요. 당신과 그, 둘 뿐입니다.
첸 윈:브란트 경, 소식은 들었습니다. 프로디티오네 백작의 목을 베셨다지요.
이안 브란트:일이 그리 되었습니다. (구태여 당신의 명을 탓하고 싶진 않았다. 뒷짐 진 손만 만지작댄다.) 그 백작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으신지요? 기이한 소문이 돌던데….
첸 윈:(고개를 끄덕인다. 착잡한 낯이다.) 친왕파 귀족중에서도 세력이 컸던 인물입니다. 폐하에게는 더없는 우군이셨을 텐데, 구태여 혁명군이 아닌 친왕파 귀족을 참하셨다는 것이 의아하기는 하네요.
사람이, 정말…. 너무 많이 죽어나가고 있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요. 아니,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죠. 폐하만이 아시는 이유가요. 하지만, 폐하께서 걷는 길이 이제는 너무 어두워져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어요.
브란트 경은 혁명군의 이전에 폐하의 검이시잖아요. 가족보다도 가까이에서 폐하를 모시는 분이시고요.
경은 오빠를 이해할 수 있나요?
이안 브란트:경의 말씀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말씀하지 않으시니 알아낼 방도가 없는 것이겠지요…. (짧은 간극이 있다. 대답하기에 앞서 물음을 건네었다.) 외람되오나 먼저 하나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폐하의 집무실에서 경이 작성하였던 편지를 읽었습니다. 폐하께서 선택한 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뜸.) 기억하십니까?
첸 윈:경, 제게 그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가요? (장난스러운 투.) 오빠의 집무실을 뒤져보았노라 밝히고 계시는데요.
이안 브란트:(눈 동그랗게 뜬다.) 안…. 안 될까요? (아무래도 안 되겠지.)
첸 윈:특별히 못 본 척 넘어가 드릴게요. 우리 오빠라면 분명 이렇게 답했을 테죠. 그러니 트집 잡지 않을게요. 편하게 말씀해보시겠어요?
이안 브란트:(우웃.) 사실집무실에있는책도두동강냈어요. (숨도 안 쉬고 말했다.)
… 어딘가 고해하고 싶었어요. 죄, 죄송합니다.
(양뺨이 불그스레 물들었다. 짧은 헛기침.) …모든 자료가 파블은 겨울의 나라였다고 가리키고 있어요. 그럼에도 저를 포함한… 이 나라의 모두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고요. 경은 어떻습니까?
첸 윈:(하하 웃는다. 자신의 혈육이 어째서 당신을 귀애하는지 알 것 같았다.) 답하기 전에 하나만 묻고 싶군요. 경은 그 자료들을 믿나요?
이안 브란트:(눈을 느리게 깜박인다.) 믿어요. 폐하께서 온통 제 얘기를 써 두셨는걸요…. (퍽 터무니없는 이유다.)
첸 윈:우리 오빠는 광증을 앓고 있어요. 도성 내에 파블의 왕은 미쳤다는 소문이 파다하죠. 그게 전부 오빠의 망상이라면요?
이안 브란트:(얼굴 위로 쓴웃음이 걸리고, 나직이 중얼거린다.)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감내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잖아. 차라리 그 편이 나아. 텅 빈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하나 감성은 잠시 미뤄두고 진실 여부 판별 가능한 정보를 나열한다.) 오늘 서고에 들렀습니다. 파블은 애초부터 겨울의 나라였다는 글들이 가득하던걸요.
첸 윈:(고개를 끄덕인다.) 경의 추측이 맞아요. 파블은 본디 겨울의 나라였어요. 온 곳이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이는 소국이었죠.
다만, 어째서인지…. 이곳은 여름의 나라가 되어있더군요. 내가 그 사실을 깨달을 무렵부터 오빠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폭력과 살인을 일삼기 시작하고….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경께서…. 조금만 더, 오빠의 곁을 지켜주시지 않겠어요? 부탁드려요.
이안 브란트:그때부터 다른 이들은 모두 파블을 애초부터 봄과 여름의 나라였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요…. (발끝을 툭, 구른다.) 부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분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제가 원래 해야 하는 일이지 않던가요.
그래서, 앞선 질문에 대답 드리자면,
…이해할 수 있어요. 누군가의 막연한 행복을 위해서, 사람이란 가끔 무모한 짓을 하게 되는 법이지 않습니까. 무얼 바쳐서라도. (턱을 괴고 웃더니, 시선을 돌려 조금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 하늘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켜보겠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본인을 잃는 모습을,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호흡.) 그 방종을 끝낼 방법을, 찾아야겠죠….
첸 윈:그리 말해주어 고마워요.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네요. 내 쪽에서도 방도를 찾아볼게요. (바깥 풍경 흘긋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너무 오랜 시간 경을 붙잡아둘 수는 없겠죠. 이만 돌아갈까요.
이안 브란트:(고개 끄덕인 뒤 따라 일어났다.) 오늘도 말씀 감사했습니다.
(목적 없이 걷다 보니 습관적으로 왕성으로 돌아왔다. 적막한 성의 내부를 점검이라도 하듯 주욱 돌아본 뒤 돌아가려는 걸음. 문득 당신의 방 앞을 지나칠 때는 잠시 멈추어 선다.) 부디 평온한 밤 되시길. (문을 사이에 두고 속삭인 뒤 집으로 돌아간다.)
(To GM):
이성판정(1=성공, 0=실패)
판정판정 실패시 악몽+다음날 오전까지 광기상태
1
▶:오늘 아침도 왕성 내부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흔치 않은 평화가 이어지네요. 오전 동안 성 안성 밖중 한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오늘도 성 에 머무르기로 했다. 티엔은 어디에 있을까?)
▶:고성이 오가지 않는 것을 보면 집무실과 알현실에 위치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즉 침실에 있기라도 한 걸까요?
이안 브란트:(갸우뚱…. 침실의 문을 두어 번 두드린다.)
(To GM):
광기결정
설명홀수 = 광기
짝수 = 제정신
광기1
▶:안에서 미미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지만요. 어떻게 할까요?
이안 브란트:(안 계시는 걸까? 벌컥.) 들어가겠습니다.
첸 티엔:들어오라고 한 적 없어요.
이안 브란트:(문 쾅 닫고 그대로 나갔다.)
▶:쾅. 정적이 찾아옵니다.
이안 브란트:죄, 죄, 죄송합니다…. (울고 싶다. 보일 리도 없는데 문 앞에 대고 90도로 인사했다.)
▶:여전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나요?
이안 브란트:(시종이 방이라도 치우는 줄 알았다…. 원래 폐하께서 그래도 대답은 잘 해주셨던 것 같은데. 아닌가. 아닐지도 모르지…. 계단을 부지런히 걸어 지하실로 이동합니다.)
▶:지하실로 이동하면, 길목에서 시녀장이 말을 걸어옵니다.
시녀장: 어머나, 안녕하세요? 브란트 님. 간만에 뵙는 것 같네요. 그간 무탈하게 지내셨나요?
이안 브란트:(평범하게 말 거셨을 뿐인데 혼자 놀라서 어깨 움찔.) 아, 오랜만입니다. 저야 뭐…. 잘 지내셨는지요?
시녀장: 백작저에서 성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걸요. 아직은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답니다.
이안 브란트:(어, 어느 백작….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하나밖에 없긴 한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있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립니다….)
시녀장: 프로디티오네 백작님이요. 근래에 저택으로 돌아오지 않으셨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안 브란트:(하………….)
그분이라면…. (이런 게 가장 힘들다…. 죄 지은 사람처럼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화 주제를 돌렸다.) 백작께서는 어떤 분이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시녀장: (주저하는 기색을 보인다.) 어디까지 말씀드려도 될는지….
이안 브란트:어디까지든요.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갈 일은 없을 겁니다.
시녀장: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인다.) 브란트 님이시니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작님께서는… 비밀이 많은 분이셨어요. 누구도 들이시지 않는 공간이 많으시고, 사용인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시는 경우도 드물었지요.
그 넓은 저택 안을 돌아다니는 사용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어요. 그들이 사람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또…. (주변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춘다.) 백작님께서, 가끔… 다른 분들과 밤에 비밀스레 모이시는 것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어요. 꼭 종교 의식처럼 보였는데, 무척 불경하게만 느껴져서….
아무튼, 주제 넘은 소리이지만… 가능한 한 백작님과는 친분을 쌓지 않으셨으면 해요. 영 불길하거든요.
이안 브란트:(하….) 감사합니다. 차후 더 조사해 보는 것이 좋겠네요. 큰일이 생기더라도 사용인 중 누구도 거론되는 일은 없을 터이니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친분 쌓는 방법도 없다! 당연하다 어제 처리했다. 손만 쥐락펴락, 하다가 가벼운 인사를 한 뒤 지하실로 마저 내려간다.)
▶:성의 지하실입니다. 성 안에서 죽어나간 하인들과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가신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뒤엉켜 썩어들어가는 중입니다.
이안 브란트:
이성
62 31 12
성공
45
(영 속이 쓰리다. 마른 세수를 몇 번 한 뒤 시신 중 눈에 띄는 것은 없을지 살펴본다….)
▶:시체를 살펴보면, 친왕파였던 가신들과 혁명군에 속해있던 가신들이 섞여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안 브란트:
지능
50 25 10
성공
35
▶:낯익은 얼굴들이 보입니다. 유독 첸 티엔의 곁에서 그의 행동을 옹호하며 간신배처럼 굴었던 이들이 많이 죽어있군요. 아무리 미쳤다고는 하나, 듣기 좋은 말만 속살거리는 이들의 목까지 베어버리다니요.
시체 사이로는 바닥 한 곳이 움푹 파여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이유가… 있겠지. 실로 그의 행동을 가장 옹호하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우습지도 않지. 움푹 파인 바닥 부분을 손으로 훑는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실패
67
(침침.)
▶:어라? 이 부분…. 힘주어 밀면 밀릴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응? 그럼 힘줘서 밀어본다. 생각 없이 힘쓰기…. 이거 전공이다.)
이안 브란트:
근력
70 35 14
성공
61
(꾸우욱.)
▶:바닥을 힘주어 밀면, 타일 하나가 밀려나며 숨겨진 이 드러납니다.
이안 브란트:(응? 타일을 밀어 드러난  안 쪽을 본다. 특별히 보이는 것이 있을까?)
▶:뻥 뚫려있네요. 비밀 통로인 듯싶습니다. 들어가볼까요?
이안 브란트:(지하실의 문을 한 번 보았다가도, 통로 안으로 들어간다.)
▶:통로로 들어가면,
바깥으로는 북문이 보입니다. 이곳과 연결된 비밀 통로인가 보네요.
이안 브란트:(이런 통로는 대체 언제부터 쓰이고 있었는지. 벽을 짚으며 통로를 따라 걸어봅니다.)
▶:통로로 들어서면, 강가에서 흘러들어온 물로 바닥이 축축합니다. 벽에는 밀랍이 발려있어 습기가 덜하지만, 저 앞은 진흙으로 가득해 금세 밑창이 더러워질 것만 같네요.
통로 깊숙이 들어가면, 화약과 기름, 나무, 방수포 위에 올려진 궤짝이 보입니다. 궤짝은 통로의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여있네요.
이안 브란트:(당신께서 준비하라 일러두었던 것들. 다시 왕성으로 돌아가야 하니 바닥을 잘 살피며 걸었다. 방수포를 확인한다.)
▶:질 좋은 방수포입니다. 당신이 얼핏 보기에도 값어치가 꽤 되는 종류로, 일반 상인이나 서민들은 구하기 어려운 물건처럼 보입니다.
이 정도로 튼튼한 방수포를 만드는 기술은 강수량이 아주 높거나, 일 년 내내 눈이 오는 나라가 가질 법합니다.
이안 브란트:지금의 파블은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데…. (궤짝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궤짝들은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 둔 것 같습니다. 꺼내기 어려운 구조로 쌓아둔 것을 보아하니 물건을 자주 옮겨야 하는 상인들의 짓은 아닌 것 같네요. 첫 번째 궤짝두 번째 궤짝세 번째 궤짝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그렇다면 누가? 첫 번째 궤짝부터 차례대로 살펴본다.)
▶:기름통이 들어있는 궤짝입니다. 당신도 쉽게 들고 이동할 수 있을 만한 크기네요. 그리 무겁지는 않아 보여요. 하지만, 다 합쳐보면 기름의 양이 상당히 많습니다. 수도 하나 정도는 너끈히 태우고도 남을 듯하네요.
이안 브란트:(두 번째 궤짝을 확인합니다….)
▶:화약과 착화제가 들어있는 궤짝입니다. 안에는 갯수를 세 둔 것인지 숫자가 반듯한 필체로 적혀있습니다.
이안 브란트:(누구의 필체인가? 확인합니다…. 아니 별로 확인하기 싫어…. 그래도 확인합니다….)
이안 브란트:
지능
50 25 10
어려운 성공
15
▶:낯설지 않은 필체입니다.
타다 만 편지에 쓰여 있던 필체와 똑같네요.
이안 브란트:(그래, 그 거사라는 것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세 번째 궤짝까지 확인한다.)
▶:습기가 들어갈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지 이 궤짝에만 뚜껑에 못질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응? 뜯어낸다.)
이안 브란트:
근력
70 35 14
어려운 성공
16
▶:너무나도 손쉽게 뚜껑을 들어냅니다.
안에는 바싹 마른 나무 기둥들이 들어있습니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들이며, 말리는데 공을 들였는지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불을 붙이면 착화제 없이도 금방 활활 타오를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뚜껑 다시 살포시 닫아요. 손으로 못질 꿍.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시 반듯한 상자가 되었습니다.
이안 브란트:(반듯한 상자는 잘 놓아두고 지하실로 돌아갔다.)
(타일 다시 밀어서 문도 닫아놓는다….)
▶:완전범죄를 저지릅니다.
이안 브란트:(손까지 탁탁 털었다. 지하실에서 올라와 화원으로 향하였다.)
▶:당신이 기억하기로 이 화원은, 티엔이 변덕을 부려 겨울에만 자라는 식물들을 심었던 장소입니다.
화원에 심어진 나무들은 모두 이 나라에 실존하지도 않는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에만 자라는 식물들입니다. 토양을 아예 갈아엎고 겨울 나무들을 옮겨 심었던 탓에 금액이 많이 들어갔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이 화원을 만들 때 반대하던 가신들이 목이 베였었지요. 말 그대로 미친 왕이 사랑해 마지않는 화원입니다.
이안 브란트:(당신이 가지고 싶으면 뭐, 가져야지….)
관찰력
60 30 12
성공
46
▶:나뭇가지들이 모두 앙상하게 메말라 있습니다. 아무리 성 안의 기온이 낮다고 해도 겨울 나무들이 여름이 번성하는 나라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나무들은 여전히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자신들만의 계절을 이어갑니다. 나무가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것을 보면 뿌리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네요.
이안 브란트:(마른 나뭇가지를 손으로 가볍게 훑는다. 당신은 어느 계절에 머물러 있나요? 나는 그대에게 도화가 피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 같이 겨울을 지샜다면 언젠간 봄을 맞으러 가야 하잖아. 겨울 나무에 기대어 앉아 농땡이를 조금 부렸다.)
(다시 터벅터벅 걸음을 움직인다…. 티엔의 침실 앞에 우뚝.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다시 벌컥….)
▶:다행스럽게도? 내부는 비어있습니다. 살펴볼 만한 것은 협탁 위와 서랍 정도겠네요.
이안 브란트:(다행?인가? 서랍을 뒤지려면 다행이긴 하겠군. 오늘도 어김없이 서랍부터 열었다.)
▶:잠가두지 않은 것인지, 서랍은 손쉽게 열립니다. 안에는 벨벳으로 싸인 작은 상자와 일기장이 보입니다.
이안 브란트:(들키면 목숨으로 더보기. 작은 상자를 뽈깍. 열었다.)
▶:안에는 토끼풀 반지가 놓여 있습니다. 조금은 시들었네요.
이안 브란트:다시 만들어 드려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꽃다발은 어떻게 됐더라. 대충 던져 두었으니 누가 버렸을지도 모르겠군…. 일기장을 읽어봅니다.)
▶:휘갈긴 글씨체가 보입니다.
왕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사람을 너무도 많이 죽였는데, 아직도 죽여야 할 사람이 많이 남았다.
손을 더럽힌다면 내 손을 더럽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안을 다그치게 된다. 그에게 피를 묻히게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몸과 생각이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만 같다. 나는 정말 미쳐버린 걸까.
사랑스러운 파블. 봄과 여름의 나라, 배곯는 이는 한 명도 없는 축복받은 땅…. 최근 북쪽 땅의 나라에서 친서가 날아왔다. 그들은 식량을 부탁했다. 그곳의 국민들이 파블로 이주할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파블의 왕으로서 미개한 자들 을짓밟 을의무가있으니…. 갈수록 글씨가 흐트러집니다. 문장이 맺어지지 않은 채 끝이 납니다.
이안 브란트:(보면 안 될 것이라도 본 양 서둘러 일기장을 덮었다. 서랍 안을 제대로 정리해 닫은 뒤 협탁 위를 살핀다.)
▶:반쯤 남은 찻잔이 올려져 있네요.
이안 브란트:(찻잔을 확인했다. 무슨 차?)
▶:수색이 노랗습니다. 당신이 우려 준 차인 듯하네요.
이안 브란트:(찻잔을 툭툭 두드린다. 입맛에 안 맞으셨나. 분명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결론은 나지 않은 채 침실 바깥으로 나갔다.)
▶:알현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알현실로 걸음을 옮깁니다.)
(To GM):
광기결정
설명홀수 = 광기
짝수 = 제정신
광기10
▶:바닥에는 가신 한 명이 쓰러져 있습니다. 목을 베여 절명한 것 같네요.
첸 티엔:(검을 쥔 채 손을 턴다. 당연하게도,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안 브란트:(소란 앞으로 다가간다. 당황한 낯빛을 겨우 숨기고, 검을 제게 달라는 듯 양손을 내밀었다.)
첸 티엔:(아주 당연하게도 당신의 손 위로 검을 올려놓는다. 시체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수도를 둘러보러 나가야겠어요.
이안 브란트:(시신을 살핀다. 아는 얼굴일까? 그렇지 않다면 눈동자 위로 드리웠던 핏빛은 금세 가셨을 것이다. 당신에게는 그 어떠한 물음도 없다.) 나갈 채비를 하겠습니다.
▶:낯선 얼굴이네요. 티엔은 그대로 당신을 지나쳐 알현실을 나갑니다. 다만, 문을 앞에 두고는 걸음을 멈추어 냅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으나 의도는 명백합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아요.
이안 브란트:(시신을 수습하라 이른 뒤 검에 묻어난 핏기를 닦았다. 당신의 손 또한 피에 젖었을 것이 분명하니, 하인에게 말하여 보드라운 손수건 하나를 받았다. 당신의 기다림에 응하듯 그 뒤로 걷는다.) 손에… 혈흔이 남지 않으셨습니까.
첸 티엔:(자리에 멈추어 선다. 몸을 살짝 틀어 당신을 바라보고, 대꾸 대신 손을 내민다.)
이안 브란트:(내밀 손을 고분고분 붙들고, 손에 묻은 핏기를 꼼꼼하게 닦는다.) 답답하시지요, 왕성 안에만 있는 것은….
첸 티엔:(얌전히 그 손길을 받아들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친 왕이 아닌, 첸 티엔의 시선으로 당신을 바라보았을 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아시잖아요. 그런데도 내가 답답해 보이나요?
이안 브란트:(말끔해진 뒤에야 손을 떼어낸다. 눈썹이 아래로 기울었던가, 그러면서도 고개를 느직이 끄덕였다.) 그래서…. 답답하시리라 유추했는데. 죄송합니다. (눈치 살피듯 굴리는 눈동자. 습관처럼 붙은 사과. 흰 천은 제 제복 안 주머니에 대강 집어넣었다.) 가시겠습니까?
첸 티엔:(무어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가도 이내 입을 꾹 다문다. 고개만을 끄덕이고, 굼뜬 발걸음을 옮겨 낸다.)
▶:성 밖으로 나서면, 당신이 혼자 돌아다닐 때와는 같은 장소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합니다.
사람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합니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실패
89
(티엔 뒷모습만 열심히 보는 중….)
▶:거리는 텅 비었으나,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마을 사람들은 그저 몸을 숨겼을 뿐인 것 같습니다. 구석진 곳에 숨어 파블의 미친 왕을 흘긋흘긋 바라보기만 하고 있겠죠.
티엔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겨내기만 합니다. 주변을 살피기는 하는 것인지 내딛는 걸음에 멈추어 섬이라곤 존재하지 않습니다.
풍경은 여전히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꽃잎이 하나 둘 흩어진 길을 느리게 걷다 보면, 가히 신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푸르게 잎이 돋아난 나무들 아래를 걷다 보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며 잔잔하게 스며듭니다. 감히 잘라낼 수도, 잊을 수도, 도망을 칠 수도 없을 정도로 짙은 평화만이 이곳에 자리합니다.
이안 브란트:저.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이건…. 주변의 기척을 살피며 걷는다.) 저어, (뒤에서 쫑쫑 따라걷는다. 보폭이 좁은 편도 아니건만 당신과 걸을 때면 종종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 날이 좋지요. (스몰토크 시도….)
첸 티엔:당신이 이런 날을 좋아했던가요? (그저 의문이었으나, 이 상황에 처한 당신에게는 힐난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싶다.)
이안 브란트:(주눅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첸 티엔:왜 사과를 하죠?
이안 브란트:아, 아니. 아닙니다. (뻘뻘대느라 걸음이 느려진다.) 이런 날도 좋아해요. 맑은 날에는 하늘이 잘 보이니…. (힐끗.) 폐하께서는… 어떤 날씨가 좋으신지요? (애써 꿋꿋하게 말 이어보기로 했다.)
첸 티엔:눈이, 내리는 날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분명 그때도 이렇게 다리를 거닐었던 것 같다. 당신과 나란히 서서, 흔들리는 검보라빛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어쩌면 눈이 아니라 새하얀 풍경 속에 놓인 당신을 사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삼켜내었으니 말로써 튀어나오는 일도 없다.)
▶:인적 드문 다리를 걷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안 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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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성공
25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서부터 단도가 날아오는 것이 보입니다. 단도의 날은 티엔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이럴 때면 위험하다고 먼저 외치는 것이 좋다고 하던가, 처음 호위 일을 배울 때부터 들었던 것 같은데. 영 그것만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가장 먼저 몸이 움직인다. 당신을 껴안듯 감싸며 날이 향하는 방향에서 벗어난다.)
▶:날아드는 단도를 피하면, 자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티엔은 그저 무료한 낯으로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떠한 명령도 내리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희게 질린 얼굴. 당신의 어깨를 붙들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서둘러 몸 이곳저곳을 살핀다.) 어디 다치신 곳은…. (당신이 다치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에야 손을 놓고 자객의 방향을 제대로 살폈다. 이래서는 괜찮은 호위이기는 하였으나 충실한 무사라고 보기엔 어렵겠지. 짧은 망설임 뒤에야 입을 열었다.) 잡아들이겠습니다.
첸 티엔:(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이진 않을 건가요?
이안 브란트:폐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첸 티엔:당신의 선택을 물은 건데요.
이안 브란트:(입에 발린 말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챘다. 그러나,) …주군의 뜻이 곧 신의 뜻입니다. (제 선택이란 단순명료했다.)
첸 티엔:내가 무얼 바라는지는… 알고 있잖아요.
이안 브란트:…. (얕은 호흡.) 말씀해 주시겠어요? 무얼 바라는지.
첸 티엔:죽여요. 내가 내린 그 검으로….
이안 브란트:폐하께 위해가 된다면 응당 처리하는 것이 옳습니다. 폐하를 위협하는 반역자라면…. (칼을 빼 드는 순간 문득 어제의 말까지 떠올린다. 고통 없이 죽이는 것은 곤란하다 하였던가?)
▶:이안, 자객을 죽이나요?
이안 브란트:(칼 끝으로 제 눈 앞의 자객을 겨누었고, 그대로 베었다. 하나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망설임은 칼 끝을 무디게 하였으니 자객의 목을 베더라도 여전히 가는 숨이 붙어 있었다. 그가 기침하니 선명하게 붉은 피가 옷 위로 튄다. 떨리는 손, 가슴 위로 칼 끝을 찔러넣고야 움직임이 멎는다. 고투 끝에 이리저리 튄 핏자국을 내려다 보는 사이 이안 브란트 또한 숨을 멈추었다.)
첸 티엔:(그 모든 모습을 눈에 담는다. 끝에 이르러서야 나직이 중얼인다.) 다음에는, 실수하지 마세요.
이안 브란트:(이래서야 내놓는 음성이 변변찮을 것 뻔하니 겨우 끄덕이기만 했다. 제게 튄 핏자국은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불안이 침잠하고야 목소리를 낸다.)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첸 티엔:(이전이었다면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아주었을 텐데. 아니, 이전이었다면 당신에게 이런 명을 내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이제 와 과거를 반추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기에 대꾸하지 않는다. 그대로 당신을 지나쳐 성으로 돌아갔다.)
이안 브란트:(당신이 성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지, 뒷모습을 묵묵히 살핀 뒤에야 허리를 굽혀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숨이 막혔다. 이전의 당신이 보고 싶었다. 발목 부근에 튄 핏자국은 저를 집어삼킬 것만 같으니 막연한 두려움이 올라온다. 하나 제 손으로 저지른 일에 눈물 흘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와 위선은 그만두는 편이 좋으니까.)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는 시신을 치운다. 반역자의 예우를 살피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이따위 것을 지나가는 거리에 걸어두었다가는 당신의 그 폭군이라는 꼬리표만 짙어질 것이 뻔하지 않나. 핏자국마저 정리한 뒤 성으로 돌아갔다.)
시종: 브란트 님, 윈 님께서 이 쪽지를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이안 브란트:네, 네에. 감사합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쪽지를 확인한다.)
이틀 뒤 정오…. (쪽지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다른 곳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였다.)
▶:오늘 아침도 성은 고요합니다. 아무래도 미친 왕이 자신의 침실에 처박혔다나 봐요.
성 밖을 마저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성 바깥으로 향한다. 오늘은 거리가 조금 더 붐비려나? 주변을 전체적으로 둘러본다.)
▶:거리는 여전히 활기로 가득합니다.
이안 브란트:(어제의 일은 마치 없었던 것만 같다. 시장 상가로 들어갔다.)
▶:상인들이 모여 시장 거리를 형성한 곳입니다. 번영이 시작되는 장소로, 가장 먼저 아침이 시작되고 가장 늦게 밤이 끝나는 장소입니다.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소리와 호객 행위를 하는 소란스러운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의 건축 양식도 성과 비슷합니다. 하나같이 지붕이 뾰족합니다. 아래로 온천수가 흐르는지 걷다 보면 더운 느낌도 납니다. 사람들의 복장 역시 솜이 들어있는 털옷이 대다수이며, 그들도 더위를 타는지 옷을 반쯤은 헐벗고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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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성공
17
상인1: 기름과 착화제다! 근데, 매번 뭘 이렇게 많이 산담? 난방이 필요한 나라도 아니면서. 어디 불이라도 지르나?
상인2: 그러게 말일세. 왜 이렇게 많이 주문했지? 이 나라는 몇 번을 와도 이상해. 아무리 자주 와도 말이 귀에 익지를 않으니…
상인3: 자, 자. 불평 그만하고! 값만 제대로 치뤄주면 우리야 무슨 상관인가? 돈만 벌면 됐지!
상인1: 그래도 말이야. 온 나라 사람들이 파블에서 모이는데… 화폐 개혁을 한번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지폐 단위도 이상하고, 굶어 죽는 사람도 없으면서 음식들 꼴 하고는. 죄다 끓여먹고 불려먹고….
그리고, 겨울 옷감은 왜 이리 많이 팔아달라고 하는지. 여름의 나라면서 말이야.
▶:상인들은 다시금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안 브란트:(느릿느릿 걸음을 옮긴다. 어제는 평소보다 일찍 누웠으면서, 행동이 굼뜨다. 시장을 돌아보며 주로 의상을 판매하는 가게에 시선을 두었다. 겨울 옷감부터 악세사리 류를 눈에 담는다. 마땅히 눈에 띄는 게 있으려나.)
▶:의류들은 하나같이 겨울에 입을 법한 두꺼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군요. 이외에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시장에서 벗어나려던 찰나 은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한참 그 앞을 서성였으나 미감이라고는 없는 기사가 타인의 손가락 굵기를 제대로 알 리가 없지. 거기서 딱 한 걸음 내딛으니 푸른색 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당신이 선물해 준 붉은 끈을 머리에 자주 매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 해지는 바람에 ―정말 그런 이유던가?― 한 구석에 모셔 놓고만 있었다. 얇은 끈 하나를 집어들어 값을 치렀다.)
(당신의 선물은 다음에 다시 와서 고르는 것이 좋겠지. 당신이 무엇을 마음에 들어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으니까. 하루 뒤의 일은 염두에도 없는 양, 무의식 중 그리 생각하고 만다. 느린 손길로 제 머리칼을 다시 묶는다. 시계탑으로 걸어간다. 머리를 장식한 푸른색의 끈이 걸음마다 바람결에 날리었다. )
▶:시계탑 앞에 도착하면, 뾰족한 형태로 높게 솟은 첨탑과 거대한 종, 시계가 보입니다. 고풍스러운 형태로 지어진 첨탑의 높이가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가파른 계단은 그동안 수많은 파블의 국민들이 이곳을 방문했음을 알려줍니다. 난간을 거슬러 오르는 푸른 초목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늘입니다. 담쟁이 넝쿨이 휘감아 오른 첨탑의 과, 햇살이 부서지는 지붕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안 브란트:(가파른 계단을 쳐다본다. 올라가야겠지?…)
▶:미끄러지지 않게끔 난간이 설치된 계단입니다. 계단간의 높이가 꽤 높네요. 그러나, 여름의 나라답지 않게 비를 흘려보내기 위한 배수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실패
87
(눈 부비적. 안 보인다.)
▶:부비적. 특별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안 브란트:(모른 채로 살아도 괜찮겠지? 시선은 초목을 따라 올라가더니, 난간을 살핀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난간입니다. 난간을 따라 물이 흐를 수 있는 라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배수 역할이라기 보다는, 꼭 녹은 물을 이동시키는 용도로 건축된 것만 같습니다.
이안 브란트:(날카롭게 솟은 첨탑, 이어 그 을 바라본다.)
▶:돌로 쌓아 만든 벽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수구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난방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지, 미미한 열기가 느껴집니다.
이안 브란트:온통 겨울인데. 왜 몰랐을까? (중얼거리며 지붕을 살펴본다.)
▶:고딕 양식의 높게 솟은 첨탑이 눈에 띕니다. 종교구역이 아니니 굳이 하늘에 가깝게 디자인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시계탑을 지은 장인이 누구였더라?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누구더라…. 열심히 머리를 굴리지만 떠오를 리가 없다. 아카데미 건물로 이동했다. 어제 받았던 쪽지를 주머니 속에서 매만지며.)
▶:공부를 위해 몰려든 학생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한창 수업을 진행중인 것인지 내부는 고요하네요. 복도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서가가 보입니다.
이안 브란트:(발소리 없이 걷는다. 서가 안으로 들어간다. 누가 있을까?)
이안 브란트:
은밀행동
60 30 12
극단적 성공
10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네요. 서가에는 붉은 책녹색 책파란 책표지 없는 책비교적 깔끔하게 보이는 서적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오늘은 사회생활을 할 힘이 나지 않으니 누굴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서가를 주욱 훑어본다.) 알록달록…. (붉은 책부터 펼쳐보았다.)
▶:추운 지방의 건축 양식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지붕의 경사를 높게 짓는 이유가 기술되어 있군요. 이러한 형태의 건축 양식은 눈이 쌓여 지붕이 무너지는 것을 대비한다.
이안 브란트:(녹색 책을 팔랑팔랑.)
▶:추운 지방의 난방 양식에 대한 서적입니다. 이러한 난방 방식은 특히 최북단의 파블에서 발명되었다.
최북단의 나라, 파블이라뇨? 파블은 365일 중 360일이 화창한, 여름이 만연한 나라가 아니던가요.
이안 브란트:
이성
61 30 12
극단적 성공
5
(익숙하군. 쿨하게 넘겼다. 파란 책까지 펼쳐보았다.)
▶:심하게 훼손된 책입니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60 30 12
성공
51
(빤히.)
▶:각 국가별 농산물 생산량에 대해 다룬 책입니다. 파블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군요.
겨울의 나라. 까마귀들의 무덤. 자체적인 식량 조달 불가능.
이안 브란트:(추위는 곧 척박함을 상징한다. 그런데도 당신은 눈이 내리는 날이 좋다고 했다……. 표지 없는 책을 들여다본다.)
▶:표지가 없고, 잉크가 심하게 번져 있는 종이뭉치를 엮은 책입니다. 따뜻한 지방의 생활 양식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얇은 옷감을 짓는 방법이 나와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파블은 이렇게나 더운 나라인데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거의 털이나 짐승의 모피로 지은 옷입니다. 이 서적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다면 지금처럼 열사병 환자가 늘어나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안 브란트:(그런데 어째서 이 책만은 표지도 없고, 잉크도 번져 있는 것인지…. 필요없었던 책이기에 그랬던 것일까? 깔끔하게 보이는 서적을 확인했다.)
▶:비교적 멀쩡한 상태의 책입니다. 파블의 귀족들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시조가 누구이고, 파블의 개국공신들은 누구인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네요.
…어라? 그런데, 프로디티오네 백작의 가문만큼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는 친왕파 귀족들 중에서도 세력이 큰 사람이었는데 말이에요.
이안 브란트:(풍문을 떠올린다. 왕성 근처에 귀족의 성이 그렇게 많았나? 그런 물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더라지. 그럼, 그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주변을 살피며 빈민촌으로 걸어갔다. 이곳 사람들도 두꺼운 옷을 입고 있을까?)
▶:빈민촌 거리를 걸으면, 평소와 특별히 다를 것 없는 풍경들이 쭉 보입니다. 이곳 사람들도 털옷을 반쯤 헐벗은 상태로 걸쳐입고 있네요.
넓은 공터에 모여 스튜를 끓여 먹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면 태양이 만발한 시각이건만, 시원한 것을 먹었으면 먹었지 왜 스튜를 먹고 있는지… 덥지 않은 걸까요?
시민: 이보시오, 이렇게 더운데 왜 스튜를 끓이는 거요?
요리사: 아! 차가운 요리 만드는 법을 알아야 뭘 만들든 말든 할 거 아뇨! 아는 사람 있소? 주는대로 드시오!
이안 브란트:(하기사, 내내 겨울이었다면 찬 음식을 일부러 만들어 먹을 일은 없었겠지. 아쉽게도 이쪽도 알려줄 만한 정보는 없으니 슬쩍 지나쳐가기만. 사람들의 상태는 괜찮은가? 주욱 둘러봤다.)
▶:조금 더워하는 것 빼고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당신의 앞으로 아이들이 줄지어 달려나가며 노래를 부르네요.
이안 브란트:(노래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이안 브란트:
듣기
60 30 12
성공
56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뭉쳐야 살아남을 수 있다네, 겨울이 온다.
물을 끓여 벽에 흘리면 오늘 밤은 따뜻해.
산으로 눈을 가지러 가자, 눈을 녹여 따뜻한 물을 만들자.
왕이여, 영원토록 은혜로우소서.
위대하고 다정한, 까마귀들의 왕.
▶:겨울의 주인.
이안 브란트:(지나가는 아이 하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이다.) 저어, 이런 노래는 도대체 누가 알려주었니?
아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애들이 부르길래 따라부른 거예요.
이안 브란트:(같이 갸우뚱….) 언제부터 부르기 시작하였는지는 기억나고?
아이: (도리도리.)
이안 브란트:그렇구나아. (잠잠.) 말해주어 고맙구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뒤 빈민촌을 벗어난다. 그대로 종교구역으로.)
▶:무결점의 공간처럼 보이는 새하얀 첨탑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고요한 분위기네요.
서기관: 헉. 브, 브란트 님이신가요?
이안 브란트:(왜, 왜 놀라시는 것 같지? 이쪽도 덩달아 놀란다.) 그, 그렇습니다만….?
서기관: (평범하게 유명인을 만나 놀라고 기뻐한 것 같다.) 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악수를 좀….
이안 브란트:(그? 렇구나?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서기관: (계탔다.) 저는 성의 서기관입니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종교구역에 머물고 있지만요…. 어쩐 일로 종교구역까지 찾아오셨나요? 윈 님과 일이라도 있으셨는지….
이안 브란트:사정? (여전히 멋쩍은 표정. 고개를 살 내젓는다.) 아닙니다, 단순히 동향을 살피러 온 것이온데…. 윈 경께서 현재 종교구역에 계십니까?
서기관: 예, 근래에는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다. 미친 왕에게 트집 잡힐 일을 줄이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이안 브란트:흠…. (금세 미묘해진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여전히 껄끄럽다. 표정 관리를 하기도 어렵고.) 그렇군요. 이곳에 별다른 소란은 없는 것이겠지요?
서기관: 네, 네. 이곳만큼은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윈 님의 덕택이지요. 윈 님께서는 분명 성군이 되실 겁니다.
이안 브란트:(가볍게 끄덕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 편이 좋겠지요, 모두에게. (턱을 찬찬히 매만지다가 의미심장한 투로 묻는다.) 혹 윈 경께서 남기신 말씀은 따로 없었나요? (그냥 진짜 없는지 궁금해서 묻는 거다.)
서기관: 아! 그러고 보니…. 브란트 님께서 오늘 방문하실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둘러보신 뒤에는 북문으로 와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도 하셨고요.
이안 브란트:(그러고보니 모든 곳은 둘러보았지….)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북문으로 향하여도 괜찮을까? 왕성이 소란스럽지는 않은지 왕성 방향을 힐끔.)
▶:다행스럽게도 비명과 같은 소란은 벌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화롭기만 하네요.
이안 브란트:(종종걸음으로 북문 방향으로 향하였다.)
▶:세상이 뒤집히기까지 남은 시일이라봐야 고작 하루입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존의 소리들 속에는 어떤 긴장감도, 위기감도 없습니다.
당신은 북문으로 향합니다. 그늘가에 몸을 기대어 서 있던 윈이 당신을 발견하고는 다가옵니다.
첸 윈:브란트 경. 쪽지는 받아보셨나요?
이안 브란트:(위기감이 없는 것은 이안 브란트도 매한가지였다. 기이할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윈의 방향으로 잰걸음을 옮겼고, 곧장 목소리를 낮추어 대꾸한다.) 예, 받았습니다. 내일 정오라고 하셨지요.
첸 윈:네. 내일 정오, 태양이 시계탑을 가로지르는 순간…. 폭군의 목을 베어 이 번영한 나라에 영원한 안녕을 되찾아오게 되겠죠.
하지만, 브란트 경…. 나는 도무지 이걸 두고볼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이, 폐하를 구해줄 수는 없겠나요?
이안 브란트:(그는 고운 모래가 가라앉은 길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겨우 강에 비치는 하늘만 보아도 당신을 떠올리는데, 당신을 꼭 닮은 육친을 쳐다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말을 이어붙일 때마다 상상 속의 바닥은 피로 젖어들어간다. 마침내 붉은 빛이 제 신발마저 적실 즈음,)
제가…, 어떻게? (고개를 들었다.)
첸 윈:폐하의 명으로 가장해 화약과 기름을 모아뒀어요. 이것만 있다면 처형 직전에 이목을 끄는 것쯤은 할 수 있을 테죠.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약간의 화재를 일으킬 거예요. 그 틈을 타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이안 브란트:(아, 뒤늦게 끄덕였다. 눈으로 보았던 것들이 얼추 짜맞추어 들어간다.) 그런 거였군요. 어째서 상인들이 폐하께서 화약이나 기름을 준비하라 하였다고 말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경께서 그리 해 주시기만 한다면 저는….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킬 것입니다. (낯 위로 결연한 빛이 스치다 사라진다. 공백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디, 제게 맡겨 주시겠어요?
첸 윈:…감히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될까요? (뜸 들인 뒤 묻는다.) 이렇게 흔쾌히 승낙하셔도 되는 건가요? 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경은 역적이 되는 거예요. 폭군에게 홀린 기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텐데도요.
이안 브란트:폭군에게 홀린 기사라. 하지만, 윈 경. 사람들도…. (강 너머 멀리의 건물들을 바라본다.) 진실을 알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마주하는 눈이 휜다. 과히 칭송 받았다면 그 반대마저 감내할 줄 알아야지.)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퍽 농담스러운 어조였다.) 파블의 군주가 되실 분께서 청하시는 일을, 제가 어찌 거역하겠나요?
첸 윈:경은, 정말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시선. 뒷말은 이어지지 않는다.) 좋아요. 그럼 내일 정오에 시계탑에서 뵙죠. 곧창 처형이 진행될 테니 그때가 되어 인사나 의견을 나눌 시간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혹시나 결심이 돌아선다면, 검을 차는 방향으로 내게 표현해주시겠어요? 오빠와 함께 파블을 빠져나가겠다면 검을 오른쪽에 차 주세요. 그러기 어렵다면, 오빠의 목을 베어야겠다면…. 검을 왼쪽에 차고 오시는 것으로요.
이안 브란트:(외려 감사를 전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나? 그저 찬찬히 읊조린다.) 내일 정오, 시계탑, 검은…. 오른쪽으로. (결심이 돌아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아, 이것이 마지막 대화라면….)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당신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한다.) 그대의 나라에…. 찬란한 영광과 무궁한 번영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잠시나마 올려다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이안 브란트가 파블의 새 군주에게 충성을 바쳤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이 인사가 마지막 고별의 의미라는 사실은 오래도록 두 사람만의 비밀로 남을 테다.)
▶:고별을 마친 뒤 궁으로 돌아가면, 멀리서부터 고함이 들려옵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소리를 지르고, 웃음을 터트렸다가도 힐난을 내뱉는 목소리입니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하늘입니다.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소리가 나는 방향은 어디지?)
▶:알현실이네요.
이안 브란트:(급히 알현실로 향한다.)
▶:햇살이 스미지 않는 겨울이 내린 복도를 가로지릅니다. 알현실의 문을 밀어 열면 일렬로 늘어선 가신들과, 가운데 칼을 맞아 죽은 가신 한 명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견고하게까지 느껴지는 정적을 가르고 들어선 기사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날카롭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을 발견한 미친 왕의 입매가 묘하게 뒤틀립니다.
비웃음이 분명한 것을 머금은 그는 당신을 향해 턱짓하더니, 천천히 바닥부터 훑어 올라 우두커니 서 있는 가신들을 바라봅니다.
앉아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걸음걸이는 지나칠 정도로 가벼워 보입니다. 혹은, 그렇게 보이고 싶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친 사람을 흉내내는 걸음걸이가 있다면, 아마 지금의 그이지 않을까요.
첸 티엔:당신들이 헐뜯던 자가 직접 행차했는데, 왜 갑자기들 말이 없어지셨나요?
▶:바닥을 융단 대신 붉게 물들이는 핏자국이 선연합니다.
가신: …폐하, 브란트 경께서 수도에 떠도는 반역의 무리들을 통솔하는 자임은 분명합니다. 당장 저잣거리에만 나가보셔도 들으실 수 있는 것을 어찌 모른체 하십니까?
첸 티엔:내가 직접 서임을 내린 나의 기사가, 내 목을 칠 자객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가신: 폐하. 물론 브란트 경께서 폐하의 호위임은 자명하나, 그만큼 폐하의 안위를 위협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첸 티엔:(헛웃음을 터트린다.) 그럼, 나더러 이안을 죽여 성 문에 걸어두라는 소리인가요?
가신: 폐하…!
첸 티엔:됐어요. 이안, 당신이 대답해 봐요. 거짓 없이 답해야 할 거예요.
날 죽일 생각인가요?
▶:가신들의 시선이 모두 당신에게 쏟아집니다. 세상이 아낌없이 당신의 위로 쏟아지는 듯하더니, 이윽고 왕의 웃음소리에 흩어져 사라집니다.
첸 티엔:아니, 답하지 마세요. 피곤하네. 다들 물러가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젓습니다. 가신들은 하나 둘 눈치를 보며 자리를 뜨네요.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이안 브란트:(다른 이들이 모두 자리를 뜨고 단 두 사람이 남을 때까지 기다렸다. 무엄하게도 군주의 명을 어기고 당신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폐하.
첸 티엔:(왕좌에 앉은 채 느릿느릿 눈을 뜬다.)
이안 브란트:(당신의 물음에 답하기라도 할 양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내뱉는 것은 맥락 없는 문장.) 저는 폐하의 기사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걷는 길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수 있습니다. (눈을 깜박였다.)
첸 티엔:어디든?
이안 브란트:(그저 끄덕일 뿐이다.)
첸 티엔:(한참을 당신을 바라보는 듯싶다가도, 이윽고 시선을 돌려 낸다. 이윽고 허공을 가르는 음성이 하나. 이 또한 맥락 없는 말이다.) …화원에 가고 싶어요. 따라와 줄 수 있나요?
이안 브란트:(다시 끄덕임. 당신의 걸음이 이어지면, 그 뒤를 따랐을 것이다. 내놓을 말을 한참이나 고르고 고르니 다만 현재는 정적이다.)
▶:화원에 도착하면, 희미한 초승달이 빛의 전부입니다. 풀벌레 소리 위로 허리춤에 찬 검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섞여들어갑니다.
첸 티엔:(긴 정적 끝에 내뱉는 것은, 언젠가 건네었던 물음과 꼭 닮아 있다.) 있잖아요…. 이안. 당신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요?
이안 브란트:제게 폐하는 그저 폐하일 뿐입니다. (당신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말고는, 홀로 화원에 왔을 때처럼 마른 나뭇가지를 매만진다. 당신과 단둘이 남을 때면 필요 이상으로 긴장을 푸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들어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눈치 보기는 했지만.) 신경 쓰이십니까? 다른 이들의 말이.
첸 티엔:아뇨, 다른 사람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모두 자신이 저지른 일 아닌가? 수도 없이 사람을 끌어내고, 목을 베고….) 난, 단지…. 당신이. (나를 미워할까 봐. 뒷말은 이어내지 못한다. 실컷 당신을 괴롭게 한 주제에 애정을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이안 브란트:그런 것이라면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폭군으로 낙인찍힌 자의 곁에 남아있는 이유를, 당신은 모르지 않을 텐데. 그리 분명한 이유가 없을 텐데. 당신은 무얼 신경쓰는 걸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혹 제가 신경쓰인다면….
(당신을 바라보며, 겨우 골라낸 말들을 잇는다.) 내일 하루는 저를 따라와 주실 수 있나요?
첸 티엔:(창백한 낯 위로 온기가 감돈다. 온화한 표정 띠고 내뱉는 말이라곤,) 당신이 내 목을 베나요?
이안 브란트:(당신이 제 소문에 대하여 모를 리 없다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꾸짖고 벌한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다. 들었던 말 그대로, 당신이 목을 베어준다면 그 또한 영광이었을 것이다. 이런 표정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낯빛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 당신을 마주한다.) …그랬으면 좋겠나요?
첸 티엔: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당신의 뺨을 감싸 쥐려 했다. 그러나 제 손가락에는 흠집 난 반지가 가득 들어차 있었으며, 행여나 그것이 당신의 흉이 되기라도 할까 행동 멈추어내고 만다. 들어 올린 손이 어정쩡히 허공을 배회하다, 결국은 손등으로만 당신의 볼을 쓸어볼 뿐이다.) 나,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이 혁명군이라는 사실도, 내일 정오에 내가 처형된다는 사실도.
이안 브란트:다 알고 계셨으면서……. 왜? (이제 와 이유는 부질없는 것이겠지. 시선을 떨구다가도 곧 모든 것을 부정하듯 고개 내젓는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려오지만 어투만은 단호하다.) 아니…, 기쁘지 않으실 거예요. 따라 죽으려고 했으니까. 조금 전에 제가, 어디든 따라간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뺨을 당신의 손등 위로 기댄다. 흠은 날 대로 났으며, 모든 것을 잃은 자 죽음이 두려울 리 없다.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힐 즈음 입술을 달싹인다. 당신에게만 들릴 속삭임. 그러니 내일만은,) 저를 위해서 죽지 말아 주세요….
첸 티엔:…왜 그런 소릴 해요? (표정이 무너진다. 다행인 것은, 우는 법을 잊었으니 눈물 흐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 어정쩡한 낯으로 되묻는다.)
나를, 원망하진 않나요? (힘없이 손 떨구어 낸다. 시선마저 아래로 떨어졌으니 시야를 채우는 것은 당신의 손이다. 자신과는 달리 장신구 하나 착용하지 않은 손. 못난 왕을 위해 검을 휘두르느라 굳은살만이 가득 자리한 손. 제 명 어길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인지 수도 없이 피가 튀었던 손. 한때는 저 손에 반지를 끼워주겠노라 다짐하기도 했었는데.)
이안 브란트:…. (손등으로 눈가를 거세게 문질렀다.) 원망합니다. 제게 아무것도 말씀 주시지 않으시며, 홀로 모든 것을 떠안은 채 멀어지셨지 않던가요. (주군에게 내놓아서는 안 되는 말을 쉽게도 내뱉는다. 겨우 미움이라 이름 붙인 걱정은 또한 애정이리라. 한없는 진심. 이안 브란트는 첸 티엔을 원망한다. 겨우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럼에도 저는 당신의 곁에 있고 싶어요….)
첸 티엔:그런데도 내 곁에 있고 싶다고요. (나직이 되뇐다. 첸 티엔은 제정신을 되찾는 날이면 이안 브란트를 떠올리곤 했다. 상상 속의 당신은 어떤 때는 눈썹을 늘어트렸고, 어떤 때는 애써 표정을 감추었으며, 어떤 때는 눈물을 보이거나 원망을 터트리기도 하였는데, 현실의 이안 브란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애정의 부재일 터였다.)
…어째서요? (그렇기에 묻는다. 현실의 당신은, 어째서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냐고. 두 사람 중 누구 하나 그 마음을 입에 담은 적 없다곤 하나,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어란 말인가? 한없이 겨울을 그리게 되는 것. 그 겨울 속에서 손 맞잡길 기도하는 것.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이안 브란트:(아주 오래 전부터 당신의 꿈을 꾸곤 했다. 당신의 꿈을 꿀 적이면 저는 꼭 당신의 뒤에 서 있었다. 꿈에 자주 나오지도 않으면서! 그대 참 가혹하기도 하지. 몽중의 주군은 저를 기다려주는 법이 없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만은 현실과 다를 게 없으나, 웃음 한 점 보이지도 않았으니 뒤늦게 꿈임을 깨닫곤 했었더라지. 그러니 이안 브란트는 지난 얼마간 광증 하에 무표정한 주군을 보며, 단지 자신이 꿈을 헤매는 중이길, 애닳게 바라곤 했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내놓을 답은 단순하다.)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맹목적으로 한 사람의 행복을 빈다. 동시에, 당신의 행복을 위한다면 그 곁을 지켜야 함을 안다. 속으로 삼키는 문장 하나. 저를 사랑하시잖아요….)
첸 티엔:(그대로 고개를 젖힌다. 하늘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마냥 시선 위로 고정한 채 눈을 깜박거린다. 그렇게 수 분이 흘렀을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 찌르르 우는 소리만이 그 공백을 채웠다. 한참이 지나 고개를 바로 세웠을 무렵엔, 미미하게 휘어 있는 눈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껏 처진 눈썹과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 무언가를 삼켜내는 듯한 표정이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요.
이안, 나는…. 점점 미쳐갈 거예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래도…. (한 차례 손 쥐었다 펴더니, 양손 가득 채운 반지 중 한 개를 빼낸다. 가장 오래된 것. 늘 지녔던 탓에 볼품없는 정도로 흠집만이 가득한 것. 그것을 쥔 채 당신의 왼손을 잡아 왔으니, 그 의도만큼은 명백하다.) 곁에 있어 줄 수 있나요?
이안 브란트:(겨우라니, 이안 브란트에게 그것보다 중한 것은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제 주군이 저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는데. 그리 생각하였으니 끄덕이지도 않았다. 오늘따라 당신의 말을 부인하는 일이 잦다. 쥐었던 주먹을 펴며, 손가락을 뻗었다. 그저 가까운 미래를 속삭인다.) 모레는…. 더 아름다운 꽃을 꺾어다 드릴게요. (당신이 망각을 슬퍼하지 않게, 모두 기억할 수 있을 만큼만 연장해 나가자. 우리, 아주 조금씩만 이어 붙이자. 생이든 사랑이든…….)
첸 티엔:(약지 위로 반지를 끼워 낸다. 아, 참으로 과분한 사랑이었다. 제 몸 젖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다, 흠뻑 적신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 종내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 그럼…. 그때까지만 살아볼게요. 당신에게 꽃 받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눈을 감을게요….
이안 브란트:(먼저 손 잡을 생각은 여직 하지 못하였으니 당신의 손 위에 제 손을 얹기만 한다.) 그거면 됐어요. 충분해요.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가장 화려한 꽃을 꺾어다 줄 수 있을 테니까.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리.)
첸 티엔:(그대로 그 손을 부여잡는다. 모든 걸 잃고 잊더라도 이 온기만은 기억할 테니.)
▶:하나의 세상을 끝내는 날, 여름의 나라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음울한 먹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왕의 집무실이 보입니다. 티엔은 그곳에 있겠죠.
이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안 브란트:비가 오네…. (……이런 날까지 아무 생각 없다면? 당신과 약조한 것이 있으니 달리 두려울 것이 없어 가능한 일이겠지만.)
▶:성 밖으로 나서면 정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기사들과 가신들이 쭉 늘어서 있습니다.
평소에도 몇 번씩 거닐었던 빛이 들지 않는 복도를 가로질러 집무실의 문을 열면, 그곳에는 티엔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만은 다정할 시선이 와닿습니다.
누군가 당신의 등 뒤에서, 티엔의 이름을 크게 외치고 죄인이라 비난합니다. 삽시간에 번진 불씨는 전염병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파먹습니다.
그를 포박하고 성 밖으로 빠져나오면, 국민들과 기사, 아카데미의 학생들까지 모두 몰려와 미친 왕을 비난합니다. 살인자! 가증스러운 폭군!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입니다.
이 모든 것의 종말이 기껍다는 얼굴로 다정스레 웃으며, 그들 모두의 얼굴을 돌아봅니다. 하나하나 눈동자 안에 새겨두려는 것처럼 진득하게 바라보고, 거만하게 걸어갑니다.
아, 왕입니다. 오래도록 빈곤하고 치열했던 파블의 삶을 이토록 번영하고 풍요롭게 만든 미친 자들의 왕! 불과 몇시간 전, 당신에게 유약한 모습을 내비쳤던 인간 첸 티엔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저 이대로 걷다가, 원래 없던 것처럼 사라질 최후의 왕. 이 다시 없을 폭군의 장례행렬은 길게 이어져 시계탑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진행됩니다.
시계탑에 도착하면, 어느새 정오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찬란한 태양도 먹구름 사이로 고개를 감춘 오늘, 당신은 그를 끌고 처형대에 오릅니다.
당신의 검은 어디에 매여있나요?
그대의 신념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이안 브란트:(나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그려두었던 모습이니 침착스런 낯을 유지한다. 언질 두었던 대로 검은 오른쪽으로. 어제자 머리칼을 묶던 푸른색 끈은 검의 손잡이에 엮어두었다.)
▶:어느새 다가운 윈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첸 윈:최대한 처형대로 이목을 집중시켜주세요. 곧 화약을 터트릴 거예요. 그때가 되면, 처형대 아래에서 견습 기사들이 발판을 부숴 경과 오빠를 빼돌릴 거예요. 뒷일은…. 경의 몫이고요. 부디….
이안 브란트:(대답 없이 미소 지을 뿐이다. 걱정시키지 않는 편이 좋겠지.)
▶:한 차례 빗방울이 쏟아지면, 온 나라의 국민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터집니다. 죽음 위에서 피어날, 새로운 나라에 대한 열망입니다. 죽어나간 수십명의 목숨을 거름삼아 피어난 혁명의 불길입니다. 모든 번영을 시작한 동시에 광기에 물든 이. 모두가 미친 왕의 죽음에 아낌없는 축복을 던집니다.
그러나, 티엔이 당신을 바라보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면…. 다음 순간 시계탑 아래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굉음이 터집니다.
광장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그 누구도 처형대 위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처형대의 발판이 무너지고, 두 사람은 아래로 떨어집니다.
견습기사들이 두 사람을 잡아줍니다. 그들은 첸 티엔을 혐오할지언정 이안 브란트의 신념만큼은 맹목적으로 믿고 있으니까요. 티엔의 구속을 풀어주고 길을 열어줍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그들에게 짧은 목례로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제 덕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차기 군주께서 닦을 길을 믿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와중 오직 첸 티엔의 호위, 혁명군의 수장이었던 자, 폭군을 좇은 기사, 이안 브란트만이 유일무이하게 첸 티엔을 경애하리라. 오늘은 선뜻 당신의 손을 붙잡았다. 마음이 급하였던 탓일까? 혹은 어제의 당신이 제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일까.)
발 밑, 조심하세요. (조용히 속삭인 뒤 시계탑 아래의 통로로 잰걸음을 옮겼다. 단 두 사람이 태양의 나라, 파블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움직이는 순간. 지하 통로를 이용하여 북문으로 향한다.)
이안 브란트:
민첩성
70 35 14
어려운 성공
17
▶:두 사람은 추격대를 따돌립니다.
왕이 저쪽으로 도망갔다!
가신이 왕을 빼돌렸다!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흩어집니다.
북문에 도달하면, 언젠가 당신이 마주쳤던 밀수업자가 마차 위에 앉아있습니다. 곁에는 말 두 마리가 준비되어 있네요.
???: 대장군님! 윈 님께 말씀은 전해들었습니다. 제가 드린 동전은 아직 가지고 계시지요?
이안 브란트:(이번에도 가볍게 눈인사를. 분명히 여기 뒀었지…. 제복 안 주머니를 뒤적여 동전을 꺼내었다.) 예, 가지고 있습니다.
???: 성문에 경비병들이 있을 테지만, 그 동전을 보여준다면 신분을 확인하지 않고 내보내 줄 겁니다. 겨울을 찾아 떠나신다지요? 여기, 말과 로브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가시는 길이 평안하시길 빕니다.
이안 브란트:겨울을…. (옅은 웃음을 짓는다.) 예, 그런 셈이 되겠군요. (제복 겉옷을 당신에게 입혔다. 평소 같으면 손을 덜덜 떨며 옷을 어깨에 걸쳐주기만 했을 텐데, 오늘은 어린 아이 챙기듯 직접 팔을 꿰어주고 꼼꼼하게 매무새를 정리했다. 이어 로브까지 챙겨들어 곧장 티엔에게 씌운다. 포옥.) 감사합니다. 이곳에 영원한 번영이 있길. (재차 인사한 뒤 당신과 함께 말에 올라탄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멀리로 도망칩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로부터, 자신이 외면한 혁명으로부터, 태양을 지나쳐 그늘의 아래로,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곳으로.
이곳에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홀로 끌어안고 지옥에 거꾸로 떨어져 망가진 왕과, 그를 위해 검을 고쳐 쥔 신념의 기사입니다.
어딘가에 정착하여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위하며 살아갑시다. 매일같이 꽃을 주고 받으며 애정을 속삭입시다. 당신이 바랐던 것처럼, 아주 조금씩만 이어 붙이는 거예요. 생도 사랑도요.
내일도 이 여름의 나라에는 찬란한 태양이 뜰 것입니다. 새로운 왕의 즉위를 축하하며 더욱 부강한 나라가 될 테죠.
두 사람은 그곳에 서 있지 않겠지만요.
겨울의 종언에 이르는, 진실된 맹세를 하러 떠납시다.
▶:증인은 서로면 충분할 테니까요.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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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홀수 = 광기+신하처형
짝수 = 제정신+사교도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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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자신이 죽인 죄 없는 신하를 다시 부관참시하라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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