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림
▶:똑, 똑. 액체가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소리, 시큰한 소독약 냄새와 미적지근한 공기. 욱신거리는 팔뚝과 자꾸만 명멸하며 빛무리 지는 시야.
눈을 뜬 당신의 시야를 채운 것은 낯설고 흰 천장입니다. 허리 아래가 편안하고 또 푹신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아 침대 위인 것 같은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안개 낀 것마냥 부옇고 흐리멍텅한 기억이 뇌리를 지배합니다. 여긴, 병원인가요?
몸은 아프지 않습니다. 링거 꽂힌 팔을 제외하곤 어디 한 군데 불편한 곳도 없고,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컨디션이 좋습니다. 옆에 그 흔한 환자감시장치 하나 없는 것을 보면 신체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는 것도 아닐 테고요.
하지만 정신은 별로 멀쩡하지 않은 것 같군요. 어째서 당신이 병원에 있는 건지 언제부터 병원에 있었는지 따위의 사소한 것들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개입하여 왜곡시킨 양 띄엄띄엄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마저 불분명합니다.
▶:그런 기억 속에서 헤매던 사이, 굳게 닫힌 문의 바깥에서 노크 소리와 전자음이 몇 번 들려옵니다.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도 인사치레에 더 가까웠는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네요.
첸 티엔:이안~ 일어나셨어요?
이안 브란트:… 티엔? (물살처럼 밀려드는 혼란도 잠시, 그는 눈을 뜨자마자 당신의 안부를 가장 먼저 생각하였으며 무얼 판단할 새도 없이 당신을 마주하였으니 걱정은 잠시 미루어두기로 한다. 잠긴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첸 티엔:네에, 저예요. (머리맡에 걸터앉은 채 손을 뻗는다. 시린 손가락은 익숙하게도 당신의 이마를 훑었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넘겨주고, 드러난 흉을 매만지고….) 듣기로는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하던데… 몸 상태는 조금 어떠세요?
이안 브란트:(애정 어린 손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몸은 괜찮아요, 그런데… (잠시 뜸을 들였다.) 기억이 잘 안 나서요. 저 왜 입원했었죠?
첸 티엔:기억 안 나세요? (단번에 걱정스러운 낯이 된다. 손길은 이마를 타고 내려가 뺨에 다다른다. 볼을 콕콕 찌르며 말 잇는다.) 촬영 중에 사고가 났잖아요. 기자재가 무너졌는데…. (이후로는 구태여 부연하지 않고 얼버무린다.)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죠. 하필 제가 곁에 없을 때 그런 일이 벌어져서….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이안 브란트:간지러워요…. (바스스 웃던 이의 미간이 가늘게 찌푸려진다. 기억을 더듬으려는 의도였다. 내가 그랬던가? 몸이 아프지 않음은 알지만 습관처럼 제 다리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당신 생각해서라도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첸 티엔:(다리를 살피는 것을 보고 무슨 표정을 지었던가? 알 수 없다.) 당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하지…. (그렇기에 부러 웃는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볼을 살짝 잡아당긴 뒤에야 손을 거둔다.) 며칠 뒤면 크리스마스잖아요. 우리, 같이 나가요. 이런 날은 병실이 아니라 바깥에서 즐겨야죠.
이안 브란트:제 잘못이 아니더라도요, 당신이 얼마나 신경 썼을지 아니까요…. (멋쩍은 듯 다른 행동 취하지 않고 눈만 깜빡거렸다. 대답하기에 앞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저, 병원에 얼마나 있었나요?
첸 티엔:일주일쯤 됐어요. (팔 꾹꾹 주물러 준다.) 답답하진 않아요?
이안 브란트: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네요. (괜찮으니 손 잡아달라는 듯, 손바닥을 내밀었다.) 으응, 별로 답답하진 않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당신이랑 밖에서 보내고 싶으니까, (그런 것 좋아하시잖아요, 하며 덧붙이기도 했다.) 네에, 나가요.
첸 티엔:(헤헤 웃으며 냉큼 손 찾아 쥔다. 다만, 손가락과 손가락을 얽는 듯하다가도 금세 놓아버린다.) 그러엄, 오늘 자정에 데리러 올게요. 퇴원 수속도 밟고, 놀러 갈 준비까지 생각한다면~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겠네요.
(볼 콕 찌른다.) 그때까지 깨어 계셔야 해요~?!
이안 브란트:(아쉬운 듯 빈 손을 내려다 보지만 금세 마주 웃었다. 저를 위해 바삐 움직일 연인에게 괜한 어리광 부릴 필요 없을 테니까. 늦은 시간 움직이는 것에 조금 의문이 들기는 하였으나… 굳이 질문하지도 않았다.) 알겠어요. 꼭 깨어있을 테니까 얼른 오셔야 해요.
첸 티엔:그럼요. 최대한 빨리 와 볼게요. (작게 미소 짓는다. 잰 몸짓으로 일어나 병실 바깥으로 나섰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54
판정결과:보통 성공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마냥 행동이 서툴고 서두르는 태가 납니다.
이윽고 문이 닫히면, 타인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외부와 단절되는 소리가 당신만 남은 흰 방에 공허하게 울립니다.
정갈하고 또 건조한 1인용 병실에 사람의 흔적이라곤 당신의 것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드나들기는 하는 걸까요? 아니면 옆에 다른 병실이 있기는 한 걸까요. 약간의 소음도 없는 방 안은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울릴 정도로 고요합니다.
협탁창문테이블미닫이문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가장 먼저 창문 그리고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시간을 얼추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창틀에 작은 다육식물이 하나 올려진 창문입니다. 유리는 별로 깨끗하지 않고 창틀에는 먼지가 쌓였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것 같지는 않네요.
창 너머를 바라보면, 삭막한 겨울 풍경이 보입니다.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도저히 크리스마스 사흘 전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건조하고 황량합니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무들이 어쩐지 불길하게만 느껴지네요.
이안 브란트: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84
판정결과:실패
▶:바깥에 사람이 몇 있기는 한데, 다들 검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겨울 옷은 검정이 기본이라곤 하지만…. 흠. 협탁 위와 아래를 살핀다.)
▶:한 칸짜리 작은 서랍이 딸린 나무 재질의 협탁입니다. 위에는 작은 가습기가 규칙적이고 조용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래에는 별다른 것이 없네요.
이안 브란트:(서랍을 당겨 열어봅니다.)
▶:부드러이 열리는 서랍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텅 비어있네요.
이안 브란트: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30
판정결과:보통 성공
▶:보통 병실의 서랍에는 간단한 응급처치용 도구들이라도 넣어두지 않나요? 텅 비어 있다니 별일이네요.
이안 브란트:(가습기도 살펴봅니다. 특별한 점이 있나요? 물은 잘 채워놨는지….)
▶:작고 가벼운 가습기에서 기화된 액체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건조하고 크고 황량한 이 병실에 가습기는 하나뿐이군요. 보고 있자니 나른해집니다.
이안 브란트:(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졸린가 보다…. 다시 잠들면 안 되니 조금 걸어가 테이블 위를 봅니다.)
▶:이상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입니다. 정돈되었다기보단, 아무것도 올려두지 않았다는 게 정확하겠지만요.
이안 브란트:삭막하네…. (테이블 아래에 떨어진 것은 없나요?)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네요.
이안 브란트:(미닫이문을 살펴봅니다. 한 번 열어보기도 하고… 닫아보기도 하고…….)
▶:미는 방식으로 여닫을 수 있는 회색 문입니다. 분명 당시녿 이 문을 통해 들어왔었을 텐데 기억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다만,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무언가에 막혀버린 것처럼 덜컥, 덜컥, 하는 소리만 몇 번씩 낼 뿐입니다. 바깥에서 자물쇠 따위로 잠근 것 같아요.
하지만 보통 환자가 있는 병실의 문을 안에서 잠그면 잠갔지 바깥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로 만들던가요? 이건 마치, 병실보다도 누군가를 가두고 격리하는 꼴에 더 가깝습니다.
이안 브란트: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59
판정결과:실패
▶:이 문을 마지막으로 여닫고 나간 사람은…….
이안 브란트:(문이 열리지 않자 혼란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있긴 한 것인지, 애초에 병원이 맞긴 한 건지…. 다만 티엔이 제게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구태여 잠긴 문을 뜯… 열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다만,) 저기, 아무도 없나요? (혹 바깥에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려 목소리를 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고요. 적막만이 이어집니다.
이안 브란트:(침대에 걸터앉아 본인이 입은 옷을 살피었고 이어 몸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가 확인하였다. 별다른 것을 찾지 못한다면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기만 할 것이고.)
▶:환자복을 입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노라면, 금세 해가 떨어집니다. 겨울이라 낮이 짧은 탓인지 몇 번 눈 깜빡였을 뿐인데 순식간에 저녁이 왔습니다.
새삼스레 배가 고픈 걸 보면 몸 상태가 나쁘지만은 않은 모양이에요.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하얗고 쓸쓸한 병실에는 핸드폰은커녕 평범한 벽시계도 하나 없어서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번에도 전자음이 이어집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문이 열리고,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가 깨어 있는 당신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안 브란트:
심리학
기준치:10/5/2
굴림:76
판정결과:실패
▶:이해할 수 없는 얼굴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네요. 머리가 아픕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상스러운 낯을 한 간호사가 몇 번씩이나 말을 고르다 입을 엽니다.
간호사: 이안 씨, 깨어나셨군요. 곧 저녁 식사를 준비해드릴게요.
▶:간호사는 그리 말하며 방을 나섭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이 테이블에 식사가 차려지네요. 그마저도 포장된 빵과 샐러드 따위가 전부이긴 하지만요. 일을 마친 간호사가 잰걸음으로 병실을 나섭니다.
드르륵, 하고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말도 더 듣지 않겠다는 듯 간호사는 조금 세게 문을 닫습니다.
탁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87
판정결과:실패
▶:병원 밥 치고는 나름대로 맛있어 보이네요. 식사를 할까요?
이안 브란트:(허기가 진 것은 사실이나… 식사는 조금 미루어두기로 한다. 마주하였던 간호사의 미묘한 낯이나 태도가 잊히지 않는 탓일 것이다.)
이안 브란트: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1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그러고 보니, 이 병실에는 환자감시장치는커녕 너스콜 버튼마저도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침대도 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침대가 아니에요. 보호자용 간이 침대도 하나 붙어 있지 않은…… 여기, 애초에 병원이 맞긴 한 건가요?
이안 브란트:(나는 왜 격리 당하고 있는가… 생각하면서 병실 빙글빙글 돌아요. 그러다가 문득 포크로 샐러드를 뒤적거리면서 이상한 게 들어있진 않은지 확인해 봅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샐러드인 것 같네요.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한 입 먹어요. 냠.)
(맛도 평범한가요?)
▶:평범합니다. 드레싱을 뿌리지 않아 밍밍하단 점만 빼면요.
이안 브란트:(쪼끔 더 먹고 포크 내려 놓습니다. 문은 다시 잠겨 있는지 덜컹덜컹… 해봐요.)
▶:여전히 문은 잠겨있습니다. 이대로 티엔을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네요.
이안 브란트:(다시 할 일 없이 병실 빙글빙글… 돌다가 포장된 빵도 뜯어서 쪼끔 쭈워먹어요. 그러다가 병실 침대에 앉아서 티엔을 기다립니다.)
▶:미닫이문은 여전히 잠겨 있습니다. 시계가 없는 것 역시 여전한지라 시간을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하늘은 계속 어두워지는군요.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는지조차 가물가물할 무렵에,
똑똑.
노크 소리와 무언가를 누르는 전자음이 들려옵니다. 오늘 오전과 다른 점이라면 미닫이문이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열렸다는 점일까요.
문이 완전히 열리면, 한 손에 코트를 든 티엔이 보입니다. 다른 손 검지를 제 입가에 가져다 대어 조용히 하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군요.
첸 티엔:(급히 벽을 더듬어 병실의 불을 끈다.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른 의사나 환자들이 깨면 안 되니까… 큰 소리 내지 않게 조심하세요. 자, 여기 코트 걸치시고요.
이안 브란트:(옷을 받아들기 전 짧게나마 당신을 꼭 안았다가 놓는다. 드러나는 감정은 안도에 가까웠다. 별다른 물음 없이 코트를 받아들었고, 걸치기 전 문득 코트의 색을 확인해 본다. 검은색인가?)
▶:검은색 코트입니다. 낯익은 것을 보아 티엔의 옷인 것 같네요.
첸 티엔:(한 차례 당신을 꼭 안아준 뒤 손을 잡고 이끌었다.)
▶:당신은 티엔의 손에 이끌려 기묘한 병실을 나섭니다. 절대로 당신을 내보낼 것 같지 않던 미닫이문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열리고, 곧 정갈히 닫힙니다.
내디딘 복도는 적막하고 또 고요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불이 하나도 켜지지 않아서 굉장히 어두워요. 바깥에서 보니 병실의 미닫이문에 달린 잠금장치가 보이는군요.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여닫는 방식이었나 봐요.
첸 티엔:저쪽에 계단이 있어요. 갈까요?
이안 브란트:(복도와 미닫이문을 살펴보더니) 으응, 그래요.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시간은 충분할 테니까. 순순히 당신의 손을 붙잡고 따른다. 걸어가며 다른 병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한다.)
▶:어두운 탓에 복도 너머의 공간까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네요.
이안 브란트: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1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당신의 병실 앞, 무언가 담긴 카트가 보입니다. 주사기와 주사바늘, 펜토바르비탈이라는 라벨이 붙은 투명한 병… 여러 약품 따위의 실루엣으로 보입니다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티엔이 당신을 끌고 계단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4층이었나 봅니다. 한 층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안 브란트:
건강
기준치:70/35/14
굴림:89
판정결과:실패
▶:다리가 후들거리네요. 티엔이 당신의 팔을 붙들어옵니다.
이안, hp-1.
이안 브란트:(티엔의 손을 꼭 붙잡는다. 아래층도 불이 꺼져 있나요?)
▶:아래층도 컴컴하니 어둡기만 하네요.
그대로 한 층 더 내려갑니다.
이안 브란트:
민첩
기준치:70/35/14
굴림:50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윽고 2층에 다다릅니다. 마지막 층계를 내려갑니다.
이안 브란트:
건강
기준치:70/35/14
굴림:1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두 사람은 계단을 통해 1층에 도달해, 병원의 유리문 바깥으로 나섭니다. 겨울의 새벽, 새파란 공기가 당신을 감싸안습니다.
유리창을 통하지 않고 맨눈으로 본 세계는 병원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그다지 황폐하거나 스산해 보이지 않습니다.
첸 티엔:이쪽에 차를 대 뒀어요. 많이 춥죠? 얼른 집에 가요. (손수 조수석의 문을 열어 준다. 어서 타란 듯 눈짓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안 브란트:춥긴 한데 생각보다…. (평범한 모습이네. 잘못 본 건가? 주변을 살피다 말곤 눈가를 꾹꾹 눌렀다. 어쩐지 서두르는 것만 같은 당신의 모습에 얌전히 조수석에 타기만 했다.)
▶:이윽고 차가 부드럽게 나아갑니다. 덜컹거리는 규칙적인 진동. 오로지 둘만 태운 차량이 새벽의 도로를 나아갑니다. 따뜻한 온기 탓인지 급작스러운 피곤이 몰려드네요.
당신은 그대로 잠에 빠집니다.
▶:누군가 당신의 귀에 대고 속살댑니다.
가엾은 이안, 고작 첸 티엔 따위와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몽중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네겐 돌아갈 곳이 있어. 그건 그의 옆이 아니지. 그가 언제까지 네 곁에서 네 편을 들어줄 것 같아? 그가 무슨 목적으로 당신을 데리고 나왔을까? 설마 정말 고작 크리스마스 파티 때문일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당신을 충동질합니다. 그러니 눈을 뜨라고. 더 먼 곳을 보라고. 더 높고 위대한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므로 고작 그 따위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장 그의 목을 조르라고. 맨발로 바깥을 활보하라고. 크게 웃고 크게 울고 온갖 신성모독적인 저주를 소리 내 외치며, 광인처럼 번들대는 눈동자로 세상을 마주하라고.
이안 브란트:
SAN Roll
기준치:65/32/13
굴림:53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8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이 목소리, 익숙합니다. 낮고 긁는 듯한 목소리. 고막을 거치지 않고 뇌에 직접 말하는 듯한 그런…
하지만 당신의 지인들 중에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있던가요?
이안 브란트:
SAN Roll
기준치:64/32/12
굴림:70
판정결과:실패
▶:목소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댑니다. 거슬려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의식이 멀어지지만 잠드는 것과 같은 포근함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정신이 암흑에 잡아먹힙니다.
▶:희끄무레한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포근한 이불과 베개에 부드럽게 감싸인 상태로 당신은 눈을 뜹니다.
야심한 새벽에 귀가한 탓인지 기상 시간이 늦습니다. 침대 근처에는 내던져진 겉옷이 보이고,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세 시 이십일 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옆에는 아직 잠들어 있는 티엔이 보입니다. 아무 걱정 없는 말간 얼굴. 숨소리가 고릅니다. 건강한 사람의 것. 아주 혹독하고 시린 겨울 속에 던져 놓아도 오래오래 홀로 살아갈 것만 같은….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81
판정결과:실패
▶:문득, 그의 목을 조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낍니다.
이안, 어떻게 행동하나요?
이안 브란트:(꿈에서 들었던 기이한 목소리가 신경을 긁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이해할 수 없는 사고에 놀라서는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엉거주춤 몸을 뒤로 물렸다. 침대 프레임이 끼익, 밀리는 소리마저 비명처럼 느껴진다.)
첸 티엔:(무의식중에 옆자리를 더듬는다.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느릿느릿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눈을 뜬 그는 한참이나 멍하니 당신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맹목과 집착마저 느껴지는 시선이 기묘하고, 어딘가 불쾌합니다.
문득 어제 새벽 들렸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그가 언제까지 네 옆에서 네 편을 들어줄 것 같냐고. 그가 무슨 목적으로 너를 데리고 나온 것 같냐고. 그가 정말 크리스마스 파티 따위 때문에 너를 데리고 나왔겠느냐고. 출처 모를 감정입니다. 당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아요.
첸 티엔:(하품….) 이안, 일어나셨어요~?
이안 브란트:… 아, 네. (생각에 잠긴 듯 반응이 늦다. 이어 느릿느릿 말한다.) 저어, 티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첸 티엔:(의아한 양 고개를 기울인다. 상체를 일으키며 답했다.) 네에, 말씀하세요.
이안 브란트:제가 있던 곳 말이에요, 정말 병원인가요?
첸 티엔:병원…… 이죠? 왜 그런 걸 물으시나요~?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당신에게 한 걸음 다가선다. 그리고는 끌어안기라도 할 것처럼 양팔을 벌렸다.) 왜 그렇게 멀찍이 서 계시고요. 안아주시지도 않고~.
이안 브란트:(그는 고분고분히 당신의 품에 안겼다. 적어도 그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당신에게 기댄 채 조심히 말을 잇는다.) 그게요, 병원치고 이상한 점이 많았잖아요. 문을 잠가 놓는다거나, 병실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게 없다거나…. 또… 간호사 분께서 오셨었는데, 놀란 듯한 반응이었거든요. 병실에 환자가 있다고 해서 간호사가 놀라진 않잖아요.
첸 티엔:(그대로 끌어안는다. 달래기라도 하듯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귀를 기울였다. 이어지는 것은 썩 격한 반응이다.) ……듣고 보니 영 불친절한데요~?! 제가 항의할까요? 지금이라도 당장 전화를…….
이안 브란트:(조그맣게 소리내어 웃는다.) 그런 의미 아니란 거 잘 아시면서…. (하지만 당신이 말하지 않을 셈이라면 굳이 캐묻지도 않을 것이다. 손 뻗어 당신을 껴안곤 퍽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좀 더 꼭- 안아주세요. 어제 오래 기다렸으니까….
첸 티엔:이아안, 오늘따라 어리광이 느셨는걸요. (기꺼운 투다. 당신을 안은 손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준다. 연인의 어깨 위로 몇 차례나 뺨을 비빈 뒤에야 만족했단 듯 온기를 놓았다.) 배고프진 않고요? 샌드위치 사 둔 게 남아 있을 건데…. 데워서 접시에 옮기기만 하면 되니까, 당신은 조금 더 쉬다 나오세요.
이안 브란트:제, 제가 해도 되는데. (어쩐지 걱정된다.)
첸 티엔:……전자레인지 쓸 거거든요. 너무 걱정하시는 거 아녜요? (부루퉁.)
이안 브란트:하지만요……. (…) 이, 일단 알겠어요. (일단이라고 했다.) 조금 쉬고 있을게요. 필요하면 부르세요.
첸 티엔:역시 절 믿지 않으시는 거죠…….
이안 브란트:사랑해요…….
첸 티엔:됐어요……. (스르륵 나섰다.)
이안 브란트:(사랑 거부 당했다…. 근데 그럴 만도.) 조심하세요. (나가는 뒷모습에다가 또.)
▶:흥.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힙니다.
식사가 준비될 동안 당신이 있는 침실거실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안 브란트:(쭉쭉 기지개 한 번 켜고는 침실을 둘러보았다.)
▶:무채색의 깔끔한 침구가 올려진 푹신한 침대, 한쪽 벽면에는 전신거울과 옷장이 놓여져 있고, 반대쪽에는 책상과 서랍이 놓여 있으며, 바닥에는 어젯밤 벗어던진 코트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바닥에서 코트를 집어들어 곱게 옷걸이에 걸어둔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있진 않은지 확인까지!)
▶:주머니에는 종이쪽지가 들어있네요.
이안 브란트:(쪽지를 펼쳐본다.)
▶:쪽지의 안에는 네 자리 숫자가 휘갈겨 적혀 있습니다. 이게 무슨 숫자죠? 생일도, 어떤 날짜도 아닌 것 같은데.
이안 브란트: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49
판정결과:보통 성공
▶:생각해보니, 티엔과 간호사가 당신의 병실 미닫이문을 열 때 딱 네 번의 전자음이 들렸던가요?
이안 브란트:(비밀번호인 듯하니 혹시 몰라 챙겨둔다. 이어 전신거울을 들여다 본다. 나는… 멀쩡한가?)
▶:벽면에 선 전신거울에 당신의 몸이 비칩니다.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자기 자신이란 으레 그렇듯 꽤 낯설군요. 당신의 몸인데도 어쩐지 당신의 것 같지 않고, 약간은 이질적입니다.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16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거울 속의 당신은 빤히 당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울 속의 당신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1
판정결과:대성공
(말끔한 눈...)
▶:어쩐지 당신의 모습이 조금 초췌하고 지친 것처럼 보입니다. 병원에서 일주일이나 지냈으니 당연한 걸까요? ...하지만 단순히 지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요. 그보다는 조금 더 오래 앓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안 브란트:(아무리 생각해도 일주일은 아닌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기억은 없다. 옷장을 열어 안에 든 것들을 확인한다.)
▶:옷장 안에는 겨울용 외투와 스웨터, 니트 따위가 들었습니다. 당신의 옷과 티엔의 옷이 뒤섞인 채 정리되어 있네요. 함께 한 지 오래 되었으니 당연한 일일 겁니다.
이안 브란트:(굳이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반대쪽 벽면으로 걸어가 책상 위를 눈으로 훑는다.)
▶:생활감이 느껴지는 책상 위에는 몇권의 악보집과, 차마 숨기지 못한 담뱃갑 따위가 올려져 있습니다. 구석에는 포스트잇 뭉치도 보이네요.
이안 브란트:(악보집을 손 끝으로 만지작대다가 구석의 포스트잇 뭉치를 펼쳐 읽는다.)
(옷은 물론이고 체향마저 뒤섞일 정도로 함께 살았으니, 이 중 몇은 이미 함께 해보았을 테고, 아직 하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영원을 약속한 사이이지 않나, 그 약속은 변치 않을 것이고 여기에 적힌 모든 것을 이루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일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니, 함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그는 익숙한 글씨체로 쓰인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읽었다. 모두 외우려는 것처럼, 기이할 만치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잊지 않으려는 것처럼.)
(내려놓고 서랍을 열어보았다.)
▶:책상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서랍입니다. 세 칸으로 이루어져 있네요. 열어볼까요?
이안 브란트:(셋 다 열어봅니다 가장 위의 칸부터!)
▶:여러 종류의 필기구와 함께 손바닥 크기의 수첩이 들어있네요. 숨기기라도 한 것마냥 필기구의 아래에 깔려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마음대로 보면 싫어하실 텐데…. (열어본다.)
▶:[맛있는 샌드위치 만드는 법.]
짧은 레시피 몇 개가 휘갈긴 글씨체로 적혀 있네요.
이안 브란트:귀엽다 oO(귀엽다.)
(두 번째 칸도 열어볼 수 있나요? 냅다 덜컹.)
▶:각양각색의 유리병과 보관 용기들. 안에는 한 입 크기의 군것질 거리가 가득 담겨 있네요.
이안 브란트:(흠. 귀엽군. 마지막 칸도 열어봅니다.)
▶:작은 노트 한 권 외에는 텅 비었습니다. 노트의 두께를 보아하니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스크랩해두는 노트인 것 같네요.
이안 브란트:(노트를 펼쳐 봅니다.)
▶:[화제의 씬 스틸러! 이안 브란트, 그는 누구인가?]
페이지를 넘겨볼까요?
이안 브란트:(넘겨봅니다....)
▶:당신이 출연한 작품이나, 인터뷰 기사 등이 스크랩되어 있습니다. 다만, 몇 장이고 페이지를 넘기니 흰 백지만이 이어지네요.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갑작스럽게 지구 멸망에 관련된 내용이 나옵니다. 대충 요약하자면 어느 우주적 존재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현재 전 세계의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이 협동해서 이를 막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정도겠네요.
그다지 영양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신문에 이런 저급 찌라시를 싣다니 정말 어지간히 실을 내용도 없었던 모양이죠.
그는 왜 이런 저질 신문을 스크랩해둔 걸까요? 그것도 당신과 관련된 기삿거리들을 모아 둔 노트에 말이에요.
이안 브란트:(이런 걸 모아 두시는구나…. 제 얼굴을 마주하면 민망해하다가도, 기저에 깔린 애정 탓에 사랑에 잠긴 어린 소년처럼 웃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사뭇 심각한 얼굴을 지었으며, 노트를 덮어 제자리에 넣어두었다.)
(느린 발걸음으로 거실에 들어섰다.)
▶:한껏 그의 취향대로 꾸며진 넓은 거실입니다. 트리소파TV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트리를 살펴본다. 크리스마스 느낌 나네…. 티엔 혼자 꾸민 걸까?)
▶:러그 위에 올려진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직 하나도 꾸며지지 않았습니다. 트리의 아래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장식용 전구와 볼, 리본, 레터링 아크릴, 솔방울 등의 장식이 어지럽게 놓여 있네요.
이안 브란트:(그러고 보니 버킷리스트에 있었지…. 이따 같이 하면 좋겠당. 소파 위를 봅니다.)
▶:사귀기 전에도 종종 소파에 앉아 밤새도록 영화를 보곤 했었죠. 서늘한 새벽 공기를 대비해 언제든 뒤집어쓸 수 있게끔 보드라운 담요를 구석에 접어 올려두었네요. 그 위로는 리모컨이 놓여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TV로 시선을 돌린다. 켜져 있는가?)
▶:먼지가 쌓여 있습니다. 켜 볼까요?
이안 브란트:(리모컨으로 켜 봅니다.)
▶:영화 채널이 송출됩니다. 지금은 러브 액츄얼리가 상영되고 있군요.
더 나쁜 일들을 생각했어.
사랑보다 더 큰 고통이 대체 어디에 있는데요?
……그래, 네 말이 맞구나.
이안 브란트: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72
판정결과:실패
▶:영화는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고통이지. 큰 고통이야.
거실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주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첸 티엔:이아안……. (어쩐지 울상이다.)
이안 브란트:응? 무슨 문제 있어요? (주방으로 걸어갑니다.)
첸 티엔:(조?금? 탄? 샌?드위치? 가 담긴 접시를 스으윽 밀어 준다.)
이안 브란트: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다.)
첸 티엔:쿠킹호일을……. 같이 넣으면……. 안 되나요? (생활력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는 질문.)
이안 브란트:불… 안 났죠? (황급히 전자레인지를 살폈다.)
▶:조금 까맣고 조금 연기가 납니다만 괜찮습니다.
이안 브란트:(안 괜찮은 것 같은데요)
첸 티엔:(ㅠ ㅅ ㅠ)
이안 브란트:자, 자, 잘했어요 소화기 안 꺼낸 게 어디예요 그래도 다음부턴 제가 할게요.
(샌?드위치? 먹어봅니다.)
▶:조?금? 탄? 맛이 납니다.
이안 브란트:사랑은 쓴 맛이 나는구나. (중얼댔다.)
(그래도 다 먹어요 사랑이니깐.)
첸 티엔:(잉. 상태로 보고 있어요) 맛… 이상하지 않아요?
이안 브란트:맛있어요. (아마도.) 당신은 뭐 좀 먹었어요?
첸 티엔:네에, 안 데운 거로 대충 때웠어요. (어쩌다 보니 이쪽이 더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셈.)
이안 브란트:다음 식사부턴 제가 해드릴게요. (머리 슥슥 쓰다듬었다.)
첸 티엔:(지은? 죄가? 있으니? 삐치지 않고 얌전….)
다 드셨으면 밖으로 나가볼까요? 산책이라도 같이 해요.
이안 브란트:네에, 따뜻하게 입고 나가요. (끄덕!)
▶:겨울 공기가 선선한 오후입니다. 해가 벌써 반쯤 떨어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느껴져요. 온 거리가 성탄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꾸며져 있습니다. 상록수를 감싼 색색의 전구들과 금빛으로 빛나는 건물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무들도 붉은 볼 장식과 금빛 전구를 매달고 빛납니다. 가히 찬란합니다.
옷 가게선물 가게디저트 가게DVD 가게서점액세서리 가게 중 세 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옷 가게 -> DVD 가게 -> 디저트 가게 순으로 가요!)
▶:옷 가게로 향합니다.
맑은 도어벨 소리가 울립니다. 따뜻한 가게 내부의 공기가 꽁꽁 언 귀를 녹이네요. 분홍색과 흰색을 메인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가게의 중앙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귀엽고 괴상한 어글리 스웨터들이 잔뜩 걸려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버킷리스트에… 어글리스웨터… 있었던 것 같은데. 스웨터 봄. 티엔 봄.)
첸 티엔:(아니나 다를까 신이 나 있다. 걸려 있던 옷 중 하나를 꺼내어 당신에게 대어보기도 한다.) 이안 브란트 씨, 정~말 잘 어울리시는데요.
이안 브란트:당신도 입어야 하는 거 아시죠. (헤헤 실없이 웃었다.)
첸 티엔:저요? (눈 깜빡. 모르는 척.)
이안 브란트:티엔은 생각보다 귀여운 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귀여운 디자인 하나 꺼내서 손에 쥐어준다. 그대로 거울 앞까지 척척 밀어주기. 한 번 대어보라는 듯 눈 반짝이며 보고 있기!)
첸 티엔:(직전과 달리 상대적으로 시큰둥… 한 표정이 된다. 그런 것치고는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옷을 대어 보았지만.) 전~ 이런 것보다는 셔츠가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이안 브란트:(시큰둥…해졌어. 그래도 말 들어주니 또 헤헤 웃으며) 입어주시면 안 돼요? 당신은 뭐든 잘 어울려요. (당연함 ㅇㅇ ㅇㅇㅇㅇ도 어울림…….)
첸 티엔:(헤헤 웃는 얼굴 가만 바라보더니, 이윽고 시선을 돌려 가게를 둘러본다. 계산대를 확인한 뒤에야 당신의 옆구리를 콕 찌르며 옷걸이 채 옷을 돌려주었다.) 오늘은 안 되겠는데요~? 다음에 사서 입어 줄게요.
이안 브란트:왜요오. (의아한 눈으로 따라 가게를 훑어보았다. 특별한 점이 있을까? 옷을 제자리에 걸어놓고는 당신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약속했어요? 다음엔 입어주신다고….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특별한 점을 찾아낸다면, 역시 크리스마스 대비를 하느라 인파가 끝도없이 밀려든다는 점일까요? 가게 내부는 손님으로 꽉 차있네요. 손을 놓치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첸 티엔:(머리 도닥여준다.) 무언들 못 입어주겠어요. 당신이 바란다는데요.
...다른 곳도 둘러볼까요?
이안 브란트:하긴 크리스마스 즈음엔 사람이 많죠…. (당신이 별 말 하지 않아도 얌전히 수긍. 손 잡고 DVD 가게로 향한다.)
▶:넷플릭스와 왓챠 따위의 구독 서비스가 비디오 시장을 말살시킨 것이 벌써 오래 전입니다만, 여전히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있기 마련입니다.
이안 브란트:
기준치:40/20/8
굴림:20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세렌디피티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시네마 천국…… 매 크리스마스마다 유구하게 사랑받아온 명작 영화들이 보입니다.
첸 티엔:우와~ 이안, 이것 좀 봐요. (듣도 보도 못한 B급 영화 DVD 번쩍 들어 보여줌… 이런 건 어디서 찾아낸 걸까?)
이안 브란트:우와~…. 진짜 난생 처음 들어봤어요. (우와.) 그거 보고 싶어요?
첸 티엔:네에? 설마요. (척, 척. 몇 개를 더 꺼낸다.) 이것들 다 보고 싶어요.
이안 브란트:크리스마스 동안 밖에서 놀고 싶다고 하셨으면서, 실은 집에만 있을 생각이신 거죠. (옆구리 쿡… 찔렀다.)
첸 티엔:네에. 당신이랑 같이 그렇고 그런 영화나 볼 예정이에요. (아니다.)
이안 브란트:무, 무슨 소리예요. (그렇고 그런 영화… 를 들고 왔나? 슬쩍 봅니다…)
▶:다?행스럽게도 공포 영화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제가 생각한 그렇고 그런 것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첸 티엔:이아안, 뭘 상상하신 거예요? 음흉해요.
이안 브란트:(흥.) 공포영화 볼 거라면 손만 잡고 볼게요….
첸 티엔:어라~…. 정말로 그렇고 그런 영화를 찾아온다면요~? 그때는 뭘 해주시려고요?
이안 브란트:……. 저, 저 마음의 준비는 계속 되어 있어요, (뭐가)
첸 티엔:……네에? (예상치도 못한 답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뜬다. 이윽고 미묘하게 붉어지는 귓가.) 왜, 왜요? (이런 질문이나…)
이안 브란트:네? 그, 그야…. (연인이니까요?!)
… 아니에요……. (뺨 붉어진 채 티엔이 든 DVD 가져다가 슥슥 카운터로….)
▶:점원이 당신을 맞이하네요. 계산을 하고 DVD를 챙겨나갈까요?
이안 브란트:(계산. 흠. 나는 돈이 있는가?)
이안 브란트:티에엔.
첸 티엔:네에.
이안 브란트:저 지갑 없는데요오.
첸 티엔:(조금은 당황한 낯. 당신과 계산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도, DVD를 달라는 듯 두 손을 내민다.) 제가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안 브란트:아니, 오, 오늘 안 들고 왔다구.
오늘만요. (변명하지만 DVD는 건네준다….)
첸 티엔:평생 안 들고 다니셔도 되는데도요~. (척척척 계산한 뒤 가게를 나선다.)
이안 브란트:그런 것 같긴 하네요. (옆에서 손 잡고 디저트 가게로 향한다.)
▶:원목 재질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디저트 가게입니다. 향긋한 버터 냄새가 코끝을 맴돌고 분위기 있는 클래식 음악이 편안하게 귀에 스며듭니다. 가게 내부는 사람으로 꽉 차 있고, 바깥으로도 줄이 늘어져 있어 무언가를 사기는 어려워 보이네요.
이안 브란트:사람이 많네요…. (아쉬운 표정.) 디저트 먹야 하는데.
첸 티엔:드실 생각은 없으시고요?
이안 브란트:늦은 점심 식사가 충분히 맛있었거든요.
첸 티엔:(얌전히 입 다문다.)
▶:그 순간, 발에 신문이 채이네요.
이안 브란트:아쉽지만 다음에 사람 없는 날 오는 걸로…. (말하다 말고 신문을 주워 들었다. 읽어봅니다.)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39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 도주, ……보 바람…… 멸망, 정말 현실이 될 것인가……
어쩐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네요. 대신 왼쪽 구석에 적힌 기사만은 잘 보입니다.
기상청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릴 확률이 80% 이상이라는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과연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을까요?
이안 브란트:(눈을 몇 번 비비더니 신문을 티엔에게 넘겨주었다.)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오면 좋겠네요.
첸 티엔:(신문을 주욱 훑더니, 대충 주변의 쓰레기통에 툭 던져 놓는다.) 눈이 올 확률이 80%나 된다니까, 펑펑 내릴 거예요.
▶:바깥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던가요? 하늘 끝자락에 걸렸던 해는 뚝 떨어졌고, 고요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얼굴에 휘감기는 차가운 공기와 눈앞의 거리는 청결합니다. 건물과 나무에 걸린 전구들이 반짝 빛나서 해가 걸려 있던 때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보입니다.
집으로 향하던 길, 둘은 거대한 트리가 세워진 광장을 지나칩니다. 큰 성당의 앞 광장에 세워진 트리가 찬란한 광채를 뿜으며 여러 연인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첸 티엔:이아안, 저게 이 근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리래요.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자정에 저 트리 앞에서 입맞추는 연인들은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힐금
이안 브란트:하자구요? (부러 묻는다.)
첸 티엔:안 돼요?
이안 브란트:아뇨, 돼요. 좋아요. (입술이 보기 좋게 호선을 그린다. 놓치지 않게 손 꼭 쥔 채 트리 앞으로 걸어갔다.)
▶:트리 앞으로 걸어가면, 번쩍거리는 오너먼트들이 유독 눈에 들어오네요.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100
판정결과:대실패
▶:……어쩐지 시선이 트리에서, 정확히는 트리의 꼭대기에 달린 유리 재질의 별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 음성이 마치 어린 아이가 부르는 것마냥 맑고 또한 성가대가 부르는 것마냥 지고하여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새벽, 머릿속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당신에게 다시금 속살거립니다.
그분께 가야 해. 그분을 모셔야 해. 모든 것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가장 추악하고 가장 외설적이고 가장 불합리하고 가장 사특하며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지고하신 존재─
이안 브란트: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2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아자토스께! 무언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삿되고 불길하고 역겹고 듣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단어를 당신은 들어버리고야 맙니다.
이안 브란트:
SAN Roll
기준치:63/31/12
굴림:53
판정결과:보통 성공
rolling 1d2
(
2
)
=
2
▶:문득, 옷자락을 옭아매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첸 티엔이, 절박하고 또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당신에게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첸 티엔:이안, 제발요……. 무시하지 말고요. 트리 밑에서 입 맞추잔 말, 이제는 안 할 테니까…. 우리 그냥 가요, 네?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말아요. 제발.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요? 고작 말 몇 마디 무시당한 것 가지고.
이안 브란트: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어요? (말과 달리 별달리 미안한 기색은 아니다. 얼핏 제 사고가 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당장은 그것이 썩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아…,) 그런데… 방금  소리 들었어요? (당신이 무어라 말하였는지는 신경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답 기다리지 않고 물음을 던진 것만 보아도 그렇다.)
첸 티엔:(고개를 숙인다. 힘없이 떨구어진 고개가 당신의 어깨에 툭, 기대어졌을 것이다.) ……돌아가요, 네? (어쩌면 고개 숙인 등이 잘게 떨렸을 것이고.)
이안 브란트:어쩔 수 없죠……. (그는 느리게 눈을 깜박대기만 했다. )
▶:그가 당신의 손을 잡아옵니다. 힘없는 손길로 그렇게, 다시금 당신을 이끌어요.
걸음을 재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합니다.
첸 티엔:(현관문을 단단히 잠그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트리는 내일 꾸미고, 오늘 밤에는 같이 영화나 볼까요? (그리 말하며 흘긋, 당신의 안색을 살핀다.)
이안 브란트:으응, 그럴까요.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식사도 제대로 하고, 트리도 꾸미기로 해요. (그는 다시금 커다란 트리 위의 별을 떠올렸다. 애써 지워내려 들었으나 그 목소리란 것은 기이하게도 한 사람을 잠식하듯…. 겨우 몇 번의 숨을 골라내고 당신을 끌어안았다. 죄송해요…, 겨우 읊조리며.)
첸 티엔:(아, 당신이다. 뒤늦은 안심이 몸을 이완시킨다. 그대로 당신의 품에 머리를 기댄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소리가 들린다고 했던가.) 사과하지 마세요. 당신 잘못 아니니까. (짧은 침묵.) 또…, 내일은 간만에 당신을 위해 활을 들어 볼 테니까요. ……들어주실 거죠? 제 연주. (그런 소리보다는, 제 것을 더…) 좋아하시잖아요.
이안 브란트:으응, 좋아해요. 당신도, 당신의 연주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거예요. (당신의 옷에 얼굴을 묻었고, 자연스레 뭉개진 음성이 이어졌다. 바깥의 찬 기운이 머무른 옷깃의 감촉이 제 뺨에 닿자 머릿속이 조금은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한참 뒤에 고개를 들었다.)
저… 언제부터 이랬어요? 일주일 전은 아닌 것 같아서. (뭉뚱그려 물었지만 당신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질문일 것.)
첸 티엔:(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한참을 주저하다, 짤막한 답만을 내어놓았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답지 않게 어색히 시선을 피해 낸다.) 우리, 영화 봐요. 소파에서… 네?
이안 브란트:(당신이 시선을 멀리 두는 순간 제 눈썹이 아래로 기울었다. 그러나 당신에게 대답을 독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대로 기억하는 것 하나 없는 이보단, 모든 걸 곁에서 보고 기억하는 이가 더 괴롭지 않은가? 굼뜬 걸음으로 소파에 가 앉았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켜면, 영화 채널에서는 마침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상영되고 있네요. 티엔은 머그컵에 우유를 담아 옵니다. 따뜻한 것을 담으면 색이 변하는 머그컵인지, 컵의 표면에 그려진 작은 하트들이 하얗게 빛납니다.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15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순간 머그컵에 그려진 모양들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던 것 같은데... 착각이겠죠. 하트 모양들이 저렇게 귀엽게 반짝이고 있는데요.
첸 티엔:(당신의 옆에 바짝 붙어 앉는다.)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뭘 할까요?
이안 브란트:전자레인지 멀쩡하던가요? (농담할 여유가 생긴 양 행동한다. 아니, 농담 맞나? ……. )
내년 할 거 많은걸요. 어글리 스웨터도 입고, 케이크도 먹고, 또… 그 트리 아래서 입 맞추는 것도요. (오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읊었다.)
첸 티엔:(입술 비죽.) …트리 아래에서 입 맞추는 건 싫어요. 그건 빼고 해요.
이안 브란트:왜, 왜 싫어요…. (추욱.) 오늘은 제가 죄송해요.
첸 티엔:(허둥지둥.) 그런 거 아녜요. 당신 잘못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제가 겨우 그런 일로 당신을 탓할 리 없다는 것도 아시면서.
이안 브란트:그건 알지마안…. (끙.) 뭐라고 하셨는지 전혀 기억 안 나서요…. 제가 뭐 실수한 게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첸 티엔:실수야 하셨죠.
이안 브란트:(쪼끔 주눅 들었다.) 어떤 거요? 고쳐볼게요…. (가능한가? 생각해보고 더 주눅 들었다…….)
첸 티엔:(부러 거짓을 고한다.)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차였어요.
이안 브란트:제가 당신을 찰 리 없단 거 아시면서. (슬쩍 빈 손을 잡았다.) 저 티엔 없으면 못 살아요.
첸 티엔:(맞잡지 않았다.) 그럼, 지금 당장 프러포즈해 주세요.
이안 브란트:(토끼 눈을 하고 바라본다.) 프, 프로포즈는 조금 더 무드 있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안 한다는 말은 안 했다.)
첸 티엔:지금이 아니면 안 받아 줄 거예요.
이안 브란트:(잠시 울상이 된다. 너무해요…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을 잔뜩 보내다가도….)
(짧은 간극 뒤 조금은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과 영원을 함께하고 싶어요…. 나랑, 결혼해 줄래요? (당장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듬지 않은 날 것의 진심 뿐이다.)
첸 티엔:(그제야 손을 맞잡는다. 손가락을 얽고, 어깨를 바투 붙여 오며,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얼굴로….) 기꺼이요.
내년 이맘때쯤에는, 트리 아래에서 입 맞추는 것 대신에…. 버진 로드 위에서 입 맞출까요?
이안 브란트:그럴까요. (해사한 낯, 시선에 한참이나 당신만을 담더니 입가에 짧게 입 맞추었다가 뗀다.) 사랑해요.
첸 티엔:(나직이 웃었다.) 저도요.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문득 바닥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당신의 어깨에 툭 하는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티엔이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손가락에 간신히 걸려 있던 머그컵이 떨어져 바닥을 구릅니다. 그리고, 그를 확인하고 나자...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전혀 유쾌하지 않은 방향으로요.
자정을 갓 넘긴 시간.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다음 영화 사이까지 잠깐의 광고가 송출될 무렵. 미온이 느껴지는 머그컵과 색색이는 숨소리, 휘영청 뜬 달빛과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성당의 대형 트리. 어깨에 얹힌 타인의 온기까지 혐오스러울 점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데도, 왜, 첸 티엔의 숨소리가 이다지도 거슬리는 걸까요?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72
판정결과:실패
▶:하지만 고르게 들썩이는 가슴팍이, 끊어질 듯 가느다란 호흡이, 색색 잘도 내고 있는 숨소리가 너무나도 거슬리지 않나요? 역겹지 않나요? 당장에라도 끊어버리고 싶어지지 않나요?
이안, 어떻게 행동하나요?
이안 브란트:(그는 무표정하게 잠든 이를 내려다 보았다. 목을 쥐어 틀 것처럼 손을 가까이 하다가도, 이안 브란트는 거친 손길로 티엔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요, 빨리. (전혀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전혀 권유라고 보이지 않는, 일종의 강제였다.) 방에, 들어가세요.
(아, 이대로라면 당신을 목을 쥐고 숨을 틀어막을 것이 분명하다. 당신이라면 쉬이 밀어내지도 못할 것이 뻔하고, 그랬다간……. 상상만으로도 구역감이 치밀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의 어떤 목소리는 내심 일이 그렇게 흘러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 … 어느 것이 진심이지? 일순 혼란스러워진다.)
첸 티엔:(퍼뜩 눈을 뜬다. 혼란스러운 낯. 졸음을 떨쳐내지 못한 채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켰다.) 이안…,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이안 브란트:(어깨를 밀어내듯 놓았다.) 빨리, 좀…, 가 주세요. (신경질적인 동시에 애원으로 들리기도 하였다.)
첸 티엔:(두어 차례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를 직감하기라도 한 것인지, 이윽고 시선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단절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문득 티엔이 들어간 방 안에서 웅얼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안 브란트:
듣기
기준치:60/30/12
굴림:82
판정결과:실패
▶:죄송합니다, 죄송……. …했어요. 하지만…… 너무, …당신들도…….
잠꼬대라도 하는 걸까요?
이안 브란트:(혹 별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당장 그에게 가장 해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안 브란트는 소파에 누워 담요를 머리 끝까지 덮어썼다. 목소리는 귀를 막아도 들려왔다. 원인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겨우 잠에 들었다.)
▶:당신은 꿈을 꿉니다.
당신은 종말의 한가운데에 서서 바닥을 향해 낙하하는 철골들과 꺼지는 땅과 무너지는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인간의 비명이 온 사방을 울리고, 도망치는 짐승의 다리가 깨진 바위의 파편에 베여 무너집니다.
죽고 쪼개진 나무들이 곳곳의 길을 막고, 마주하는 것조차 모독적인 여러 이계의 생물들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끔찍한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둥, 둥, 하고 울리는 지옥의 북소리와 모독적이고 기형적인 피리 소리의 한가운데,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서 당신은 마주합니다.
▶:형태조차도 불분명한 최후의 황폐함, 모든 멸망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중심에서 부글대며 존재할 가장 태고의 혼돈.
모든 모독적인 것들의 어머니이지 아버지, 태초의 근원점.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이안 브란트:
SAN Roll
기준치:61/30/12
굴림:79
판정결과:실패
rolling 1d3
(
3
)
=
3
▶:……당신은 눈을 뜹니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아침입니다. 희미한 미온의 햇빛이 넓은 창을 통해 들어와 거실을 비춥니다. 적당히 선선하고 차가운 공기, 포근한 담요.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꼽으라면 손에 꼽힐 법한 장면이네요.
주방에서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티엔이 먼저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주방으로 가 볼까요?
이안 브란트:(미적미적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합니다.)
▶:식탁에는 제법 볼품없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아침이 차려져 있고, 주방의 창을 통해서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옵니다.
라디오를 통해 뉴스가 흘러나오네요.
……는 여전히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밝혀져, 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 및 제보가 필요하오니…….
그러나 이어지는 뉴스는 듣지 못했습니다. 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티엔이 라디오를 꺼버렸으니까요.
문득 그의 손에 들린 식칼이 눈에 들어옵니다. 빵을 자르다 왔나 봐요. 그의 손에 들린 칼은 작지만 날이 잘 갈려 있어 번뜩입니다.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57
판정결과:보통 성공
▶:왜 이러는 거죠? 기분이 나쁩니다.
이안 브란트:
SAN Roll
기준치:58/29/11
굴림:47
판정결과:보통 성공
칼… 조심하세요.
첸 티엔:응? 아…. 그럴게요. (물잔을 당신 앞으로 밀어주었다.) 푹 주무셨고요?
이안 브란트:네, 당신은요? (어깨에 대충 두르고 있던 담요를 개며 말하였다.)
첸 티엔:그럭저럭이요. 당신이 곁에 없으니까 좀 춥더라고요~. (구태여 왜 그랬느냐는 질문 따위를 던지지는 않았다. 그저 이후를, 미래를 바라보듯이 이야기를 꺼낸다.) 오늘도 같이 산책할까요?
이안 브란트:그래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아침은 제가 차려드릴 생각이었는데…. 네, 그렇게 해요. (뜸.) 그나저나, 누가 실종되었나요? (뉴스에 대해 묻는다.)
첸 티엔:글쎄요? 집중하느라 못 들었어요. 뉴스에 신경을 기울였다면…. 잘리는 건 빵이 아니라 제 손이 되었을지도요…….
이안 브란트:그, 그런 농담하지 마세요. oO(진짜같으니까.)
첸 티엔:농담인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칼 압수해야겠어….
첸 티엔:(히죽….)
▶:조촐한 식사를 마친 뒤 뒷정리까지 끝낼 무렵이면, 오전이 지나갑니다.
첸 티엔:저 먼저 씻고 나올게요~? 당신도 나갈 준비 하고 계세요.
이안 브란트:네에, 천천히 씻고 나오세요.
▶:이윽고 욕실 문이 쿵, 닫힙니다.
이안 브란트:
정신
기준치:65/32/13
굴림:34
판정결과:보통 성공
▶:첸 티엔이 근처에서 사라지고 나니 더더욱 확실해집니다.
이 모든 일이 어쩐지 꿈처럼 몽롱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기억은 아예 날아가 있었죠,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도려낸 것처럼요.
사실은 티엔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지냈던 게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다가도, 그게 진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당신이 꾸었던 꿈 따위에 불과했는지조차 제대로 분간이 되지를 않습니다.
기실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실 첸 티엔과 보내는 성탄절 따위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기다리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전율과 환희, 파쇄와 퇴락, 이 세계를 집어삼킬 최초이자 최후의 혼돈!
……그가 욕실에서 나옵니다. 머리에 수건을 얹고 탈탈 털며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네요.
▶:그의 부재에서 기인한 모든 생각들이 깨끗이 지워집니다.
어서 씻고 외출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요.
▶:크리스마스 이브의 공기는 어제의 것과는 또 다릅니다. 약간 톡 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의 공기보다 더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오후 두 시도 채 되지 않아 그런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거리는 조금 빛이 바래고 지쳐 보입니다. 분명 모든 것이 어제와 같은데도, 형형색색의 전구에 불이 들어와 있고 각종 장식들도 찬란한 태양빛을 반사하고 있는데도 밤에 본 것과 차원이 달라요.
그럼에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모두가 환영해 마지않는 주 예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선물 가게서점액세서리 가게를 둘러볼 수 있겠네요.
이안 브란트:(서점 -> 액세서리 가게 -> 선물 가게 순으로 향합니다.)
▶:큰 건물의 지하 1층에 위치한 서점입니다. 공기는 따뜻하고 서점 특유의 책 냄새가 나서 기분이 좋아지네요.
이안 브란트:따뜻하네요. (서점 내부를 둘러본다.)
▶:서가가 여럿 놓여 있습니다. 특별한 점은 없네요. 사고 싶은 책이 있다면 한 권쯤 집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요.
이안 브란트:(최신의 신문을 확인하고 싶은데…. 없을까요? 휙휙 둘러보는 중.)
이안 브란트:
기준치:40/20/8
굴림:82
판정결과:실패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네요.
이안 브란트:(아쉽당.) 티엔, 특별히 살 책이라도 있어요?
첸 티엔:아~뇨. (옆에 찰닥 붙어 있다.) 전 책보다는 당신이랑 얘기하는 게 더 재밌어서요. 책장 넘길 시간 내는 것도 아까워요~.
이안 브란트:저도 찾는 게 안 보여서. (흠. 무드없이 말함.) 다른 곳으로 갈까요? (액세서리 가게로 저벅저벅….)
▶:고급스러운 흰색으로 꾸며진 액세서리 가게입니다. 은은한 조명이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들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납니다.
첸 티엔:우리도 결혼 반지를 맞춰야 할 텐데. 그쵸~?
이안 브란트:(이건 티엔 전공이니까 졸졸 따라다니는 중….) 네에, 당신이 좋아하니까 커플링 따로 결혼 반지 따로 하면 좋죠…?
첸 티엔:당신은 별로예요?
이안 브란트:저도 좋아요.
그렇지만 디자인 같은 거, 잘 모르니까… 티엔이 좋아하는 대로 하면 좋겠다 싶어서? (갸우뚱.) 같이 봐도 좋지만.
첸 티엔:(그 모습을 보며 숨죽여 웃는다.) 우리 둘 다 일할 때는 손을 쓰니, 화려한 디자인은 피해야 할 테고…. (진열대 한구석을 콕 가리킨다. 단출하기 그지없는 링. 얇은데다 보석조차 박혀 있지 않다.) 저런 건 어때요? 결혼반지 치곤 너무 밋밋하려나~?
이안 브란트:단순한 것도 좋아요. 어느 분한테 처음 받았던 반지랑 비슷한 것 같아서. (작게 웃음 지으며 손 잡아왔다.) 사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첸 티엔: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그거.
이안 브란트:으응, 가지고 있죠? 꺼내어 본 지 오래된 것 같기는 하네요. (애초에 지금은 시간 감각이 없고….)
첸 티엔:잃어버린 거 아녜요~?
이안 브란트:저 소중한 거 잃어버리는 사람 아니에요~.
첸 티엔:(기분 좋은지 헤헤 웃었다.) 소중한 것들, 앞으로도 잔뜩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다른 곳도 둘러보러 갈까요?
이안 브란트:저도요. 여긴 다음에 또 와요. (가볍게 끄덕이고는 선물 가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뒤늦게 당신을 쫓아나옵니다. 선물 가게에는 발랄한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내부에는 문구류를 비롯한 잡화가 잔뜩 준비되어 있네요.
첸 티엔:뭐 사시려고요?
이안 브란트:집에 겨우살이 장식이 있던가요? (갸우뚱….)
첸 티엔:(설마하니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당신이 읽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 곰곰 생각하다 답한다.) 아뇨, 사두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건 왜요?
이안 브란트:크리스마스나 새해에 겨우살이 장식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이요. (배시시 웃는다.)
첸 티엔:왜요, 입 맞춰주시려고요~?
이안 브란트:지금도 할 수 있는데. (한 걸음 좁혔다.)
첸 티엔:정말요~? (피하지 않는다. 히죽 웃는 꼴을 보아하니 당신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하다.)
이안 브란트:(주변을 힐긋, 보더니 사람이 없으면 입술을 잠시 겹쳤다가 뗀다.) 아, 저기 있다. 사고 올게요. (총총 사라진다….)
첸 티엔:(우뚝…… 서 있는 이의 귓가가 붉다.)
이안 브란트:(곱게 포장된 것을 들고 돌아왔다.) 갈까요?
첸 티엔:……이안 브란트 씨, 음흉해요.
이안 브란트:왜, 왜, 왜요?! (당황했다.)
첸 티엔:밖에서 이러실 줄은 몰랐네요~?
이안 브란트:… 싫으셨어요? (뒤늦게 뺨이 발갛게 물든다.)
첸 티엔:아~뇨. (히히 웃으며 뺨에 입 맞추고 떨어졌다.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이안 브란트:(우.) 같이 가요. (얼른 곁에 붙어 걷는다.)
▶:과연, 날이 어두워지고 나니 아름답던 거리가 되살아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걸맞는 생명력이 거리를 찬란하게 비춥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던 길, 문득 전례 없는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이 느낌을 잘 압니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걸 잊어버린 사람이 으레 겪곤 하는 그런 감정.
그러고 보니, 티엔이 작성해뒀던 버킷리스트에 무슨 내용이 있었죠?
이안 브란트:
지능
기준치:50/25/10
굴림:47
판정결과:보통 성공
▶:어글리 스웨터 입히기, 완수. 구움과자 먹으러 가기, 줄이 길어 먹진 못했지만 완수.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 집에 가서 하면 되겠죠. 소파에 기대 앉아 영화 보기, 완수. 머핀 굽기, 밤새워 놀기. 이건 예전에 해 봤던 일이잖아요. 완수. 겨우살이 아래에서 입맞추기, 이건 하면 되고. 자정에 집 앞 광장에 나가기, 이것도 하면 되고.
분명히…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기가 적혀 있지 않던가요?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의 성정대로라면 레스토랑을 예약하지 않았을 리 없어요.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지지난 크리스마스에도 그랬으니까요.
귀갓길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있습니다. 고가의 파인 다이닝은 물론이고 패스트푸드 전문점과 제과점까지. 통상적인 저녁 시간을 약간 빗겨나갔으니 자리도 충분히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어느 곳에도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레스토랑에 가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금세 생각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요?
……마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젯밤 지나쳤던 트리의 근처를 걷는 두 사람의 시야 사이로 누군가 밟힙니다.
▶:이 추운 겨울에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비척대며 성당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이 보입니다. 중년의 여자는 몇날 며칠을 제대로 잠들지 못한 것처럼 안색이 퀭하고 입술이 버석거립니다.
첸 티엔:(당신의 팔을 잡아당긴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눈길 주지 말고, 조용히 지나가요….
이안 브란트:(상황을 파악하진 못했으나 시키는 대로 따른다. 당신 곁에서 조금도 멀어지지 않고,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때문에 숨소리까지 줄여서 걸음을 옮기는 중.)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끔 숨죽였던 덕분일까요? 두 사람은 무사히 여자를 지나쳐 집으로 돌아옵니다.
▶:둘은 문을 열고 다시금 둘만의 안온한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아뇨, 전혀 안온하지 않군요. 난방을 꺼놓고 나갔었던가요. 집안을 감도는 공기가 으슬으슬 차갑습니다.
불이 다 꺼진 집안, 여전히 아무런 장식도 없이 초라하게 서 있는 트리. 멈춘 크리스마스 캐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빛바랜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그가 급히 온 집안의 불을 켜고 캐럴을 틉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쉽사리 고조되지 않네요.
게다가 어떻게든 이 냉기를 수습하려 드는 그의 모습이 답답하고 짜증스럽게 보이기만 합니다.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창밖에 다시금 흑색이 내려앉았습니다.
첸 티엔:(조심스레 당신의 손을 찾아 쥔다.) 곧 크리스마스잖아요. 이안, 우리… 밖에 나갈까요?
▶:지금은 밤 열한 시 하고도 삼십 분.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나기까지,
그리고 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삼십 분이 남았습니다.
이안 브란트:그럴까요…. (어둑한 창밖을 바라보다 말곤 당신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그런데 이번 해엔 레스토랑, 별로 안 가고 싶었어요? 평소랑 루틴이 다른 것 같아서.
원래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가물가물하는 건가, 내가…. 중얼거리기도 했다.)
첸 티엔:좋아하는 거 맞아요. (단호한 긍정. 이어 멋쩍은 양 웃는다.) 이번 해에는 예약에 실패했거든요…. 내년엔 성공해 볼게요.
이안 브란트:그런 거라면… 다음엔 저도 알아볼게요. (다시 나갈 채비를 하다가,) 그, 성당에서 나오던 사람은… 모르는 사람인 거죠? (갑자기 생각난 듯 묻는다.)
첸 티엔:으응…. (미적지근한 대답. 시선을 내리 깐다.)
이안 브란트:(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 나갈까요?
첸 티엔:(고개를 끄덕였다.)
▶:밤입니다.
광장까지 딱 이십 분이 걸렸고, 크리스마스까지 딱 십 분이 남았습니다.
도달한 광장의 트리는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길을 가던 연인들마저 멈춰서서 하염없이 트리를 쳐다보며 소원을 빌 정도로, 당장에라도 썰매를 탄 산타가 지나치는 모습이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하지만 티엔, 당신의 옆에 서서 당신의 손을 꽉 잡은 티엔은 트리 아닌 당신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첸 티엔:있잖아요…. 실은, 이거. (문득 주머니에서 작은 벨벳 상자를 꺼낸다. 그대로 당신에게 내밀었다.)
이안 브란트:(다소 놀란 눈치로 상자를 받아들었다.) …열어봐도 돼요?
첸 티엔:그럼요.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이안 브란트:(조심스레 벨벳 상자를 열어보았다.)
첸 티엔:(상자 안에는 단출한 반지 한 쌍이 끼워져 있다. 액세서리 점을 둘러 보았을 때 집어냈던 것. 당신의 시야에 반지가 들어 찰 무렵이면, 수줍게 웃었을 터다.)
이안 브란트:티엔, (반짝이는 금속의 색이 눈에 담기면 금방 고개를 들었다.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불빛 아래 이안 브란트의 눈에 가장 반짝이는 것은, 눈 앞의 푸른색임이 틀림없었다.) 조금 늦는다 싶더니, 이것 때문이었어요? (감동 받은 양 마주 웃었다.) 당신 덕분에 매 크리스마스가 행복한 것 같아요….
첸 티엔:나도 그래요. 당신이 있어서……. (잠시 말 맺더니, 재촉한다.) 어서 껴 보세요. 네?
이안 브란트:당신이 직접 끼워주면 안 될까요? (어리광을 부렸다.)
첸 티엔:(받아주지 않을 리가.) 그러엄, 왼손을 내밀어 주시겠어요~?
이안 브란트:(밝게 웃으며 왼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언제나…….
▶:티엔은 조심스레 당신의 손을 붙잡고, 반지를 빼내어….
……그러던 순간,
당신과 티엔의 뒷덜미를 누군가 잡아챕니다.
헬멧 아래로 보이는 머리카락은 부스러질 것처럼 밝고 또 실낱처럼 얇습니다. 하얗고 깨끗한 낯에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은 볼, 말갛기만 한 얼굴. 스무 살은 됐을까요. 앳된 얼굴의 경찰 한 명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당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이안 브란트:
SAN Roll
기준치:58/29/11
굴림:65
판정결과:실패
rolling 1d2
(
1
)
=
1
▶:목소리가 심하게 떨립니다. 산 사람에게 총을 겨눠보는 건 처음인 걸까요? 몇 번씩이나 진동하는 총구를 바로잡은 채 경찰이 말합니다.
경찰: 첸 티엔, 이안 브란트. 당신들을,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이 세계의 멸망을 꾀한 죄로 체포합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이안 브란트:
SAN Roll
기준치:57/28/11
굴림:72
판정결과:실패
▶:경찰은 당신에게 무어라 말할 틈조차 주지 않고 새된 목소리로 소리칩니다.
경찰: 본래 체포하여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맞으나, 현재 성탄절이 5분도 채 남지 않았으므로 세계의 안녕을 위하여 이안 브란트, 당신을 즉결처분하겠습니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총구가 올곧게 당신의 머리를 향하고,
…그러나 울린 것은 발포음 아닌 미끄러진 권총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입니다. 눈앞의 경찰이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바닥에 코를 박고 쓰러집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기묘할 정도로 표정이 없는, 피 묻은 과도를 든 티엔이 있습니다.
그는 한참 말이 없습니다. 끼워 주려던 반지는 바닥에 떨어져 어디론가 나뒹군 것인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요.
온 세상보다도 단 한 명의 인간을 더 소중히 여긴 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습니다.
첸 티엔:이안, 죄송해요…….
이안 브란트:(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당황한 눈빛이 티엔에게 닿는다. 무엇보다 걱정이기도 했다.)
저는, 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티엔, 이게 무슨 일이에요?
첸 티엔:(피 묻은 손을 내려다보다,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외계의 신이란 것에…. 세 명의 인간이 잠식당했거든요.
그들이 크리스마스에 무언가를 소환해서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했대요. 과학자들이, 저명한 신화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았으니 거짓말은 아니겠죠.
그래서 전 세계에서 셋을 잡아낸 후 죽이려 했고, 아마 둘은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당신이 죽는 걸, 어떻게 두고만 봐?
(호흡이 가빠 온다. 쥔 것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챙그랑, 소리가 울린다.) 당신이 희생하는 게 싫어…. 그럴 바에는 그냥, 다, 멸망해버렸으면 좋겠어요. 왜, 당신이….
이안 브란트:(서둘러 피에 젖은 당신의 손을 감싸쥐었다.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붙잡은 손이 불필요하게 떨린다. 퍼즐이 짜맞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티엔…, 저,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첸 티엔:(온기가 맞닿으면,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고른다.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렸을 무렵이면,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표정을 그려 냈을 터다. 모든 것을 마무리한 이의 얼굴. 모든 것을 놓아버린….) …당신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에요. 내가…. 당신이 없는 세계를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이안 브란트:그, 렇다고 당신 손 더럽힐 필요 없잖아요. 또…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런 상황에서도,) 칼 그렇게 쥐면 안 돼요, 손 다쳐요……. (죽음인지 멸망인지 하는 거창한 것 앞에서, 이안 브란트는, 고작 그런 것이 걱정되었다.)
(죽음의 두려움보다 앞서는 것은 무엇인가? 몸에 밴 걱정, 고질병이나 다름 없는 사랑……. 퍽 우스운 꼴이었음에도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눈 앞이 흐려지고 굵은 눈물방울이 툭,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무얼 하는 것 말고요….
첸 티엔:(하늘 아래 눈이 흩날린다. 힘없이 내리는 그것은 꼭 빗물과 다름이 없다. 그랬기에, 첸 티엔은 다시 한번 는개 같은 사랑에 젖어….) 죽,지 말아요……. 응? 제발. 어,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까. 우리 그냥, 같이….
이안 브란트:(유난히 차가운 손을, 놓지 않으려 하였음에도 피와 떨림에 미끄러져 몇 번이나 힘주어 움켜쥐어야 했다. 다시 마주잡기 위해 한참이 걸렸던 손, 또, 매일 잡고 있던 손인데도, 놓치는 것은 이렇게나 간단하여서….)
(이안 브란트의 세계는 어느 순간부터 철저히 첸 티엔의 행복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말이란, 어쩌면 당신의 목숨보다도 그 행복이란 것에 치중하여서, 당신의 죽음마저 기꺼이 고려하는 것. 그는 한참 말이 없다가,)
당신 원하는 대로 할게요. 그러니까 우리…,
같이 끝을 기다릴까요. (종내 당신의 손을 놓고, 어느 때처럼, 혹은 여느 때처럼… 당신을 빈틈 없이 끌어안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바람이 차갑습니다.
이질감의 정체가 밝혀지고 한 세계가 무너진 이후에도, 이 모든 절망과 멸망의 앞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잘만 갑니다.
이윽고는 콧잔등에 희고 찬 것이 내려앉고,
눈이 내립니다.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이 박힌 맑은 하늘에서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나기까지 고작 오 분을 남기고, 턱에 고여 몇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처럼 눈송이가 뚝뚝 떨어집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광장 앞 성당에서 성탄절을 알리는 노래가 오르간 반주에 맞춰 울려 퍼집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지금은 고요하고도 또 거룩한 크리스마스 전야.
단 한 명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당신의 죽음을 간절히 바랍니다.
이안, 어떻게 할까?
이안 브란트:(이안 브란트는 그의 연인과 함께 사람들의 기대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나의 무덤 정도는 내가 선택할 수도 있으니까. 당신도 그것을 원할 테고. 그리고 그 자리는 아마, 바로 당신의 곁이리라.)
첸 티엔:(그 품에, 무덤에…. 몸을 기댄 채 속삭인다.) 있잖아요…. 실은, 당신을 데리고 온 첫날에 혼자 이것저것 써 본 게 있었거든요.
이안 브란트:어떤 걸요? (눈이 차근히 내려앉는 머리 위로 뺨을 부볐다.)
첸 티엔:버킷리스트…. 결국 다 못 했네.
그래도 마지막 건 어떻게든 이뤘어요. 그거면 된 것 같아.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주 예수 나신 밤
  그의 얼굴 광채가
  세상 빛이 되었네
  구주 나셨도다
  구주 나셨도다
▶:당신은 도망을 결심합니다.
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크리스마스 트리, 화려하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한 광채를 뿜는 크리스마스에서 도망칩니다. 당도한 죽음에서, 수십억 쌍의 시선에서, 기대에서 도망칩니다.
멀리, 아주 멀리, 어쩌면 주파수가 닿지 않는 곳까지, 아무것도 당신을 해할 수 없는 곳으로.
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했을 무렵, 급작스레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눈앞이 명멸하고 머리가 달군 쇠꼬챙이로 쑤시는 것처럼 아픕니다. 당신은 이 감각을 아주 잘 압니다.
당신의 정신이 어떤 존재에게 잡아먹히고 있습니다.
▶:정신이, 마음이, 몸이 삼켜지고 있습니다. 매일 밤 꾸었던 불쾌한 꿈이 당신을 집어삼킵니다.
그런 살 저미는 고통 사이에서 입이 움직입니다.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웁니다. 전신에서 무력감과 탈력감이 느껴지고,
둥, 둥, 하고 울리는 지옥의 북소리와 모독적이고 기형적인 피리 소리의 한가운데,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서 당신은 마주합니다.
형태조차도 불분명한 최후의 황폐함, 모든 멸망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중심에서 부글대며 존재할 가장 태고의 혼돈. 모든 모독적인 것들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태초의 근원점.
꿈속의 광경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종말의 한가운데에 서서 바닥을 향해 낙하하는 철골들과 꺼지는 땅과 무너지는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고 있습니다.
▶: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 정도일까요.
날카로운 인간의 비명이 온 사방을 울리고, 도망치는 짐승의 다리가 깨진 바위의 파편에 베여 무너집니다. 죽고 쪼개진 나무들이 곳곳의 길을 막고 마주하는 것조차 모독적인 여러 이계의 생물들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끔찍한 소리를 냅니다.
뎅, 뎅. 성당에서 자정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주 예수 나신 밤을 기리는 종소리가 열두 번 울리고,
근사한 성탄절이 도래합니다.
이안 브란트:티엔, 메리 크리스마스. (세상의 끝에서 이안 브란트는 분명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뺨을 적신 것은 하늘의 눈과 비, 제 눈물, 다시 하늘의 애정. 호수에는 하늘이 비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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