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파인더 마그네타

img
img
img
 :한 시간여행자가 이름 없는 호수의 옥빛 카약 위에 서 있었습니다.
호수 정도씩이나 되는 지형에 명칭이 붙지 않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그 호수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사람 걸음으로 옮겨갈 수 있는 근방 어디에도 그러한 규모의 물이 없었으므로 모두들 그저 ‘호수’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지칭하게 된 까닭입니다.
사실 지도책에 표기된 지명이야 있었으나, 이곳에서 살고 죽으며 외부로는 건너가지 않은 지가 오래인 노인들에게는 별달리 중요한 무게를 갖지 못했습니다. 노인들이 관심 두지 않으니 어린아이들 역시 그 큰물이 대관절 무엇인지, 어떤 발음과 혀놀림으로 그것을 가리켜야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죠. 어떤 녀석들은 그런 일을 몹시도 시시하다고도 여겼을 겁니다.
그의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그 일이 시시하다거나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그저 어찌 되든 관계없는 영역에 있었기에 이 호수에 얽힌 전설이라든가 이름의 유래 따위를 전부 잊어버린 채였습니다. 그는 외지인이었으므로 도리어 마을 안 사람들보다도 이곳에 대해 아는 게 많았지만, 그것을 활용할 의지는 없었죠.
그러니까,
당신은 이 공간을 알고 있습니다. 머나먼 기억 저편에서 떠올린 장소였습니다. 습윤한 기운을 머금은 나뭇잎이 은빛으로 흔들리고, 낮은 산자락에 감싸인 물결이 무심히 흘렀습니다. 여러 계절을 동시에 품은 듯한 호수가 고고한 요새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1425년 가을, 83번째 삶, 헤아리지 못할 세월을 살며 오직 한 번 다른 선택을 했던 날들. 여행자가 그의 연인을 찾지 않았던 유일한 시간대의 이야기입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당신은 요람처럼 흔들리는 배 위입니다. 이건… 꿈일까요? 꿈이라기엔 너무 감각이 생생하고, 현실이라기엔 이안과 손을 잡고 차원을 넘어 길 끝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뚜렷합니다.
어째서? 왜 도착지가 이곳일까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어렴풋한 기억 속에 물결처럼 남아 있는 경관만이 보입니다.
카약은 이윽고 의도적으로 명사를 빼앗겨 버린 호수 물가에 닿았습니다.
시간여행자의 눈앞이 가려진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습니다. 이미 어둑어둑한 한밤중이었으므로 당신은 구식 램프 하나에 시야를 맡긴 차였습니다. 그저 촛불이 꺼져 버렸는가 생각하기에는 달이 너무 밝았습니다.
그리고 눈가를 가린 단단하고 거센 손이 두 개 있었습니다. 오랜 기억이 불러일으킨 두려움과 환희가 배양 시킨 절망이 일시에 전부 가려집니다.
 :당신은 보이지 않는 힘에 끌어당겨져 배에서 내립니다. 신발 아래로 몽돌자갈이 밟힙니다. 그때 시야가 차단되었을 때와 똑같이 갑작스럽게 손이 거두어졌습니다.
144번의 삶을 거치면서 이안의 생김새가 2052년의 그와 흡사하게 생겼거나, 이름이 같았던 적, 또는 어떤 특징이 쭉 같았던 적은 여러 번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윤회까지야 어떤 만듦새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그에 한해 당신은 운명의 고리라든지 영혼에 새겨진 사람의 본질에 대해 어느 정도 믿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첸 티엔은 딱 이 회차만의 이안 브란트만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옷을 입은 이안이 당신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익숙한 얼굴입니다. 이건 우연일까요?
이안이 말을 겁니다.
이안 브란트:혼자 뭘 보고 있었던 거예요? 티엔.
 :당신이 알던 논리가 부서집니다. 세상이 설득력을 잃습니다.
 :이안의 손에 이끌려 배에서 내린 당신은 그를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어리둥절한 것도 당연하겠네요.
첸 티엔:이안……? 그러니까…. (묘한 이질감. 손을 붙잡은 채 연신 뒤를 돌아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안 브란트:뭐가요? (뒤돌아본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했었잖아요, 호수 앞에서.
첸 티엔:오늘요? …호수 앞에서? (혼란스러운 낯이 된다.)
이안 브란트:기억 안 나요? 오늘 함께 시가지로 나가기로 약속했잖아요. 그 전에 당신 집에 먼저 들르기로 했었고. (멈추어 서서는 당신의 양 뺨을 붙잡은 채 휙휙 얼굴을 돌려본다.) 어디 아픈 거 아니죠?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첸 티엔:아니, 그럴 리가…. (말끝을 흐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렵의 나는….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당신의 손길에서 벗어나고는, 정확히 한 발자국 거리를 벌린다.) 시가지에 가기로 했다고요. (짧은 숨을 내쉰다. 일종의 확인.) 수평선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이안 브란트:네, 일주일 전에… 약속했잖아요? (수평선?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낯,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첸 티엔:(곧장 뒤를 돈다. 원래 있던 곳으로, 처음 정신을 차렸던 호수로….) 이안, 당신, 어디 있어요?
이안 브란트:저 여기 있잖아요. (팔을 붙잡아 돌려 세운다. 눈썹이 비스듬히 내려간다.) 저 뭐 잘못했어요?
첸 티엔:(입을 벙긋거리기만 했다. 이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두어 번 눈을 깜박인다. 당신과 시선을 맞추게 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뇨, 그런 거 아녜요. 당신은 언제나…. (채 말을 잇지 못한다.) 여기의 우리는 어떤 관계였나요? 그러니까…. 그냥, 당신이 바라본 우리가 어떤지 듣고 싶어서요.
이안 브란트:왜 또 그런 걸 물으실까. (의아한 듯 묻다가도 금세 말을 이어간다.) 우리… 정도면 친한 사이 아닌가요? 만난 지도 벌써 2년은 된 것 같고…. 왜애, 만난 첫 날부터 저 집에서 재워주셨잖아요. 같이 자는 사이면, 친하지 않나? (가벼운 농을 던졌고, 이어 손을 내밀었다. 바라는 바 명확하다.)
첸 티엔:그냥 친한 사이요?
이안 브란트:(느리게 깜박거리는 눈.) 왜애, 오늘도 좋아한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첸 티엔:사귀는 사이예요?
이안 브란트:그건 아니고. (빈 손을 보여준다.)
첸 티엔:그런데 손은 왜 잡자고 하신담. (허탈한 웃음. 바라는 바 눈치채지 못할 리 없으나, 붙잡지 않는다.)
이안 브란트:(눈치 살피더니 조그맣게 웅얼댄다.) 원래는 잡아주시잖아요. 다리 다 나았다고 이젠 안 잡아주시는 거예요? (휙 돌아서는 앞서 걷기 시작한다.)
 :영문 모를 대화를 이어 나가다 보면, 희미한 기억이 파도처럼 머리를 두드립니다. 지금 걷는 이 길 역시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 해에, 당신이 머무르던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당신는 이 오두막을 알고 있습니다. 호수로부터 발원한 작은 시내, 물길에 가로놓인 흰 몽돌다리를 지나 자작나무 숲가에 덩그러니 고인 집. 종아리의 절반까지도 오지 않는 자갈담은 정확한 원을 그리며 오두막을 감싸고 있습니다.
지금은 얼굴도 흐릿하지만, 이안을 만나지 않았던 몇십 년간 그런대로 친분을 유지하던 양봉꾼 노인이 물려 주고 간 공간이었습니다. 수백 년 전의 기억이 물살을 가르듯 오래 잠수했던 해역에서 부유해 헤엄치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그가 없는 시간을 살며 치열한 외로움과 싸우곤 했습니다.
이 사유지를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가로지른 이안은 심지어 문 여는 방법까지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멋대로 낡은 문고리를 돌려 민 그는 마치 제 집이라도 된다는 듯이 앞서 들어갑니다.
어처구니없이, 혹은 당황스럽게 그를 따라 들어가면 묵은 향수 같은 날들이 범람합니다. 작은 침대책상거친 옷 몇 벌아귀가 맞지 않는 책장. 모두 자신의 손때가 묻은 것들입니다.
어느 순간부턴가 흘러가 사라지고 말 소지품들에 그다지 연을 두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니고 있었던 건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군데군데 자신이 모르는 물건들이 있네요. 한 구석에 차곡히 정리된 옷이나 이불 말이에요.
첸 티엔:(첫날부터 집을 허락했다고 하였으니, 아마 저 옷이나 이불은 제 몫이 아닐 터다. 기실 어느 쪽이든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겠지만. 기나긴 외로움에 미쳐 꿈이라도 꾸는 걸까? 당신과 재회해, 영원을 약속했던 일은 전부 허상이었던 걸까? 상실감이 온몸을 덮친다. 다리에 힘이 풀리려는 것을 애써 지탱하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이거…. 당신 옷이죠?
 :한 사람이 누워 잘 수 있을 만한 좁은 침대입니다. 침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네에, 갖다놔도 된다고 하셨으니까. (조그맣게 대꾸한다.)
첸 티엔:그래요, 안 될 건 없지…. (짤막이 대꾸하며 거친 옷 몇 벌에 시선을 둔다.)
 :검박하고 거친 무명옷들입니다. 이런 걸 입고 살았던가요? 별 건 없어 보입니다.
첸 티엔:(이런 걸 입고 지냈던가? 긴 세월을 보내왔다 한들 첸 티엔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모든 것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이어 책상을 본다.)
 :어지럽게 널린 양피지와 잉크병입니다. 얼기설기 실제본한 노트 한 권이 보입니다
첸 티엔:(몸을 일으켜 노트를 펼쳐 본다.)
 :이건… 자신이 쓰던 것이네요.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어렴풋이 일기장이나 메모장처럼 썼다는 기억이 납니다. 삶의 목적이었던 이안마저 만나러 가지 않자 도저히 할 게 없어 적곤 했었죠. 시간의 굴레 속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썼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것조차 무용 한 듯해 내버려 두었던 것 같습니다. 예상대로 대단한 내용은 없네요.
첸 티엔:(아무래도 이곳은 자신이 아는 그 과거가 맞는 듯한데,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우리 말이에요, 어쩌다 만나게 됐었죠?
이안 브란트:제가 이 오두막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가 만났잖아요. 그때는 다리 다친 거 보고는 엄청 걱정하시고, 집에도 데려와 주셨으면서……. (삐죽거렸다.)
오늘은 질문이 많으시네. (벽에 비뚜름하게 기대어 바닥만 보고 있다가, 곧 시선을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저 미워요?
첸 티엔:(혼란스러운 중에도 그 시선을 피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하늘이 호수를 피할 수 있을 리가.) …당신을 미워했다면, 집으로 들이지도 않았겠죠.
(짧은 간극. 되묻는다.) 당신이야말로, 제가 질문하는 건 싫으세요?
이안 브란트:(그 흠 오늘은 여기 내 마음대로 들어온 것 같긴 한데. 속으로 생각했다.)
싫은 게 아니고…… 평소랑 다른 것 같아서 적응이 안 되네. 원래는 제가 질문하면 당신이 헤에 어떨 것 같은데요? 하는 편이잖아요.
첸 티엔:그런 감탄사를 덧붙이지는 않았을 텐데요……? (빠른 정정!) 죽을 때가 됐나 보죠. 원래 사람은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고들 하잖아요. (농.) 다리는 다 나았다고 했죠?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이안 브란트:뭐, 그런 느낌이라는 거지. (으쓱!) 아직 죽을 때가 되신 것 같진 않으니 그런 말 마세요.
그냥, 좀 넘어졌었죠. 살짝 발 헛디딘 정도. (산에서 헛디뎠다는 것만 빼면 별 거 아니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첸 티엔:당신이 발을 헛디디는 일도 있네요? 운동신경이 좋으시니까, 그럴 일은 없을 줄 알았어요. (더군다나 산에서 말예요. 덧붙이며 책장에 시선을 둔다.)
이안 브란트:뭐어,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유독 부자연스러운 책 한 권이 눈에 띕니다. 그러니까… 대단히 현대적─21세기 기준에서─ 기술로 인쇄 된 역사서입니다. 가지런하게 배열된 활자, 이 시대라면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종이, 제본 방식까지. 코팅 된 표지마저 너무나 미래의 것이네요. 제목은 이렇습니다.
<식민지부터 공작까지, ○○ 중세사>. 가운데 페이지가 유독 벌어져 있네요.
첸 티엔:(펼쳐볼 수 있을까?)
 :핸드아웃, <식민지부터 공작령까지, ○○ 중세사>이 공개됩니다.
생각에 잠깁니다. 이 시기에 그런 전란이 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어디까지나 당신과는 별반 관련 없는 역사입니다. 사실 어떤 거대한 혼란이라 해서 당신의 긴 세월에 영향을 주겠어요? 멍한 기분만이 머릿속을 부유합니다.
이안 브란트:이젠 좀 나갈 기분이 들어요? (묻는다.)
첸 티엔: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고요.
이안 브란트:네에, 말씀하세요.
첸 티엔:지구에서 보는 하늘은 어땠나요? (답을 바라고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확인, 당신이 자신이 아는 이안 브란트가 맞는지….)
이안 브란트:(그는 물색 눈동자를 마주한다. 언뜻 웃는 것도 같았다.) 언제나…… 당신 눈을 닮았지. (뒤로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고, 문을 열었다.) 가요.
첸 티엔:(별다른 말 없이 뒤따랐다.)
 :이 외진 오두막부터 지역의 중심가 라나 드 샤펠 을 모두 아우르는 중심 거리, '스테낙'까지 가려면 꽤 먼 길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라면 어쩔 수 없이 걸어야겠죠.
낮은 산등성이 너머로 무심하게 울렁이는 바다가 보입니다. 해변이 오후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
습니다. 누군가 이암을 반으로 잘라버린 듯이 희게 빛나는 절벽, 이때에는 아직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아 고르지 못한 길을 따라 걷습니다.
오래 걷다 보면 서서히 인가가 한두 채 쌓이다 이윽고 양쪽으로 거리를 만듭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구시가지의 정취입니다.
앞으로 생길 일들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다른 점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갑작스럽게 차출된 세금으로 불만들이 많을 것입니다. 뒤쪽에선 알음알음 반란 준비가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십여 년 만에 큰맘 먹고 벌인 축제를 무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중심가로 향하는 복잡한 골목 중 여기 2번가는 특히 떠들썩한 분위기입니다. 당신이 이곳까지 나온 것은 이전 경험을 더하더라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때의 당신은 많이 지쳐 있었으니까요.
 :다양한 상인들이 노점을 벌리고 있습니다. 구운 사과, 꿀에 절인 배, 끈으로 묶어 구운 햄, 거대한 돼지 뒷다리살, 케이크처럼 커다란 치즈와 버터 덩어리, 질긴 빵, 훈제 오리, 소금을 발라 찐 꿩고기와 파절임…….
이안 브란트:배 안 고파요? (우뚝! 서서 돌아보았다.)
첸 티엔:응? 딱히…. 입맛이 없어서요. (그 많은 시간선 중에서도 당신 앞에서 이런 말을 뱉는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나와보는 건 또 처음이네요. 당신은 익숙한가 봐요?
이안 브란트:입맛이… 없어? (하루 중 가장 충격!!!) 지,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얼른 손을 당신의 이마 위에 얹어본다.) 열은 안 나는데…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하니까 좀 더 둘러봐요. 그리고 저희 여기 종종 왔었는데요?
 :상점가를 걷다 보면 당신은 이 거리 상인 다수가 이안과 어느 정도 우호적인, 최소한 안면을 튼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가게 앞에 멈추어 서자 상인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상인A: 한동안 뜸하더니 오랜만에 왔네. 편히 구경하다가 가.
이안 브란트:(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티엔을 돌아본다.) 과일이라도 먹을래요? 단 거 좋아하잖아요. 뭐라도 먹어야지… 쓰러질라……. (또 연약한 취급.)
첸 티엔:지금은 아무것도 먹기 싫어요. (스스로에게도 낯선 발언을 뱉고….) 여길 종종 왔었다고요?
이안 브란트:아……. 요즘 헛것을 많이 듣네. (묵묵하게 구운 사과 하나를 집어들며… 상인A를 바라본다.) 왜애, 저희 자주 오지 않았어요?
상인A: 그랬나? 이안 너는 기억나는데 옆 사람은…….
이안 브란트:(값을 지불하며 말을 잇는다.) 처음에 둘이 왔을 때 티엔 보고 제 애인이냐고 하셔서 티엔이 맞다고, 서비스 주시냐고 물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상인A: 얘기 들으니까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
이안 브란트:(봐요. 같은 눈으로 티엔 보고 있기!)
첸 티엔:그럴 리가 없는데. 뭐…, 아무튼. 당신은 뭐라고 대답했는데요?
이안 브란트:아직은 친구라고 했는데요. (먹을 것 손에 쥐어준다.)
첸 티엔:아직은? (멀뚱히 쥐고만 있는다.)
이안 브란트:아직은. (강조했다.)
첸 티엔:언젠간 사귀어주실 것처럼 말씀하셨네요? (쥐고 있던 걸 당신에게 넘겨주었다.)
이안 브란트:싫어요?
첸 티엔:잘 모르겠어요.
이안 브란트:됐으니 한 입이라도 드세요. (다시 돌려주고는 먼저 걸어간다.)
 :이안은 이곳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보자마자 인사를 하는 상인, 서비스 상품을 끼워 주는 상인, 농담을 주고받는 주민 등…….
주민들이 당신에 대해 물으면 그는 아주 구체적인 일화까지 제시합니다. 처음엔 초면인 것처럼 굴던 주민들도 이안의 설명을 들으면 별 반론도 없이 그런가? 하고 설득되는 것 같습니다.
첸 티엔:
지능
기준치:65/32/13
굴림:59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건 마치…… 그간 자신이 이안의 곁에 갑자기 나타나야만 했을 때 발휘했던 현실 조작 능력과 비슷한 느낌이 아닌가요?
그러고 보면 다양한 가게를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일부러 들렀다는 느낌도 들고요. 마치 일부러 주민들에게 당신을 소개하려는 것처럼요. 이안은 무슨 생각인 걸까요?
 :조금 더 걷다 보면 이제 번화가 중심 광장입니다. 작은 지방 영지라 분수대나 종탑의 인형 극장 같은 것까지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나름대로 활기차 보이네요. 그러고 보면 실제로 이 시대를 살아갔던 몇백 년 전에는 이곳까지 와볼 일이 있었던가요? 잘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주변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특별할 것은 없는 광경입니다. 처녀들은 춤을 추고, 고즈넉한 가을 노을이 지붕 위로 접어듭니다. 기대서 낮잠이라도 자면 딱 좋을 만큼 평화롭네요. 멀리서 음유시인의 현 선율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진짜 이 시기에도 가 있었다면 이런 날들이었을까요? 이즈음을 돌이켜 보면 떠오르는 것은 온통 어둡고 기괴한 밤뿐입니다. 역사가 될 법한 사건들은 전부 남의 것이었고, 자신은 시간의 격류에 휩쓸리지 않는 것에만 급급했었죠.
첸 티엔:(진짜 이 시기에도 그가 있었다면…. 상념에 빠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첸 티엔은 문득 외로움을 느꼈다. 손이 빈 탓이다.) 있잖아요…. 오늘 말인데, 자고 갈래요?
이안 브란트: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요. 당신이 거부하지만 않으면. (덧붙였다.)
첸 티엔:자주 이랬나 봐요?
이안 브란트:혼자선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으니까…….
 :문득, 그는 하던 말을 멈춥니다.
이안은 등을 곧게 세워 앉은 채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광장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서점 한복판에서 다가올 현재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순간의 자신처럼요.
어쩌면 그는,
그날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쾅!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소음이 들렸습니다. 멀리서 달리던 마차 바퀴가 엇나가 몸체가 크게 튀었습니다. 놀란 나머지 제멋대로 달리는 말들이 매듭에서 풀려나고, 제어를 잃은 마차가 언덕길 아래로 미친 듯이 굴러오기 시작합니다.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진로에서 달아납니다.
그러나 그때 어떤 소녀만이 너무 놀란 나머지 길 한복판에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이안 브란트:(다급하게 당신을 붙잡아 일으켰고,) 구해야 해요. (떨리는 손은 당신을 떠밀었다.)
첸 티엔:(기시감에 휩싸인다. 당신의 행동이 꼭 언젠가의 자신과 닮은 것만 같아서. 그렇기에 부연을 요구하지 않았다. 떠미는 대로 밀려나 소녀에게로 달음박질한다.)
 :서둘러 소녀를 붙들어 자리를 피하면,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길 저편까지 굴러가 짚더미에 처박힌 마차가 반파되어 부서집니다.
넋을 놓고 떠는 아이는 언뜻 보기에도 평범한 행인들처럼 검소한 옷차림은 아닙니다. 은사를 수놓은 블리오와 정교한 허리장식. 멀리서 우르르 기사들이 몰려오고, 이안은 슬쩍 당신의 등을 밀어 이목이 쏠리도록 앞으로 보냅니다.
그러나 소녀가 무어라고 입을 떼려 할 때,
당신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검은 연기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성판정 (2/1D2)
첸 티엔:
SAN Roll
기준치:75/37/15
굴림:5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티엔은 단번에 몸을 관통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암운처럼 깃드는 그늘,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그러나 왜일까요?
그들은 연기 같은 형상을 넘어서는 어떤 모양으로는 현현되지 않은 채, 그저 스무 발짝쯤 먼 거리에서 공중을 맴돌고만 있을 뿐입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당장 피하는 것이 좋을까요?
첸 티엔:(손을 뻗어 당신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이안 브란트:(영문을 모른 채 당신을 바라보기만.) 다치진 않았죠?
첸 티엔:저거…, 보여요?
이안 브란트:(당신만을 바라보던 시야 안에 검은 연기가 닿으면 겨우 끄덕인다.) 자리를 피할까요.
첸 티엔:(속삭인다.) ……입 맞춰 줄래요? 지금 당장.
이안 브란트:(망설이는가 싶다가도, 정해진 수순을 밟듯 당신에게 입을 맞추었다. 고작 당신의 손끝을 붙든 채였다.)
 :두 사람이 호흡을 나누면 연기 같은 형상마저 점차 흐려집니다.
첸 티엔:(어정쩡히 늘어트렸던 손이 머무적대더니, 이윽고 닿아오는 온기를 부여잡는다.) 저희…. 나눌 얘기가 많아 보이네요. 그렇죠?
이안 브란트:… 잘 모르겠는데요. (슬그머니 손을 빼내었다.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첸 티엔:아까는 잡아달라셨으면서.
이안 브란트:누가 안 잡아주시던데….
첸 티엔:삐쳤어요?
이안 브란트:슬펐다면?
첸 티엔:왜요?
이안 브란트:글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건 역시 싫은가 봐.
첸 티엔:그럼… 왜 놓으셨어요? (다시금 손을 뻗는다.)
이안 브란트:얘기할 건 많지 않거든요. (농에 가까운 어조. 이번에는 손을 맞잡았다.)
첸 티엔:하고 싶은 말은요? …그건 많을 것 같은데.
이안 브란트:보고 싶었다고 말해둘까.
첸 티엔:(대답 없이 손을 붙잡았다. 울 듯 웃은 것 같기도 했다.)
 :두 사람은 오두막으로 돌아옵니다. 이안이 잠시 옷가지를 정리하는 사이, 티엔은 책장의 얇은 동화책을 발견합니다.
첸 티엔:(동화책을 꺼내 본다.)
 :핸드아웃 <동화>가 공개됩니다.
이안 브란트:뭘 읽고 있어요? (뒤에서 다가오더니 어깨에 고개를 얹었다.)
첸 티엔:응? 아…. 동화책이요. 이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네요. (표지를 보여주었다.) 당신은 읽어본 적 있나요?
이안 브란트:아, 그거. 당신 집에 먼저 왔을 때 읽어뒀죠. (느른히 웃었다.)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내용에 대해….
첸 티엔:노인의 삶 말예요. 정말 그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을까요? 요정은 그렇게 여기진 못했을걸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요.
이안 브란트:으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누군가 한 사람을 기억해 준다면, 그는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고… 어쩌면 평생 함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침대에 걸터앉는다.) 일찍 잘까요? 피곤하잖아요.
첸 티엔:평생……. 맞아요. (그렇기에 자신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고, 당신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동화책을 책장에 꽂아두고는, 자신도 침대에 걸터앉는다) 그런데~ 우리, 한 침대에서 자나요?
이안 브란트:아……. 바닥에서 잘까요?
첸 티엔:전에는 어떻게 하셨는데요?
이안 브란트:당신 없이 쓸쓸하게 잠들었어요.
첸 티엔:그러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이안 브란트:(침대에 털썩 눕는다.) 아마 당신이랑 같은 생각…….
첸 티엔:잘 모르겠는데요. 정확히 어떤 생각이요~?
이안 브란트:봐아, 원래 당신은 다른 질문보단 그래서 정확하게는? 어떨 것 같아요? 이런 걸 묻는 타입이라니까…….
왜 다 알면서 묻지? 오기 전에도 말했잖아요.
첸 티엔:당신도 아시잖아요. 확인하고 싶어서 이런다는 거.
이안 브란트: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내가 당신을 많이 사랑하나 봐, 라고…….
한 번 더 여쭤보시면 바닥에서 재울게요. (침대 옆을 툭툭 두드렸다.)
첸 티엔:제 집인데도요?
이안 브란트:(벌떡 일어났다.) 저 바닥에서 잘 자요.
첸 티엔:(그 모습을 가만 바라보더니, 한 차례 웃는다. 꼭 언젠가 당신이 보여준 웃음처럼.) 당신이 나를 보고 싶어 한 만큼, 나도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10초의 간극.)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혼자 재울 거예요? 이제 그만 올라와요.
이안 브란트:당신의 사랑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래도 들으니까 좋네…. 그래서 자꾸 묻고, 내 입으로 말하게 하는 거구나. 저 배움이 빠른 사람이니까 조심하세요. (뭘?……. 좁은 침대, 당신 방향으로 돌아누우며) 안고 자도 돼요? (저 얌전히 자요. 덧붙였다.)
첸 티엔:(답하지 않고 끌어안는다. 그 행위가 썩 익숙해 보였다.) 이런 건 아직 못 배웠나 보네요.
이안 브란트:(입술을 꾹 다문 채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귓가에 금세 열이 오른다.) 당신에게 이런 습관 들여놓은 게 나라는 건 알지만, 이거 좀, 조금…, (뜸. 말을 잇지 않는다.) 잘 자요…….
 :우여곡절 끝에 잠든 티엔은 불쾌한 꿈을 꿉니다.
내내 사냥개들의 연기에 쫓기는 내용이었습니다. 애초에 꿈속에서 꿈을 꿀 수 있긴 한 걸까요? 역시 갑작스레 과거로 돌아와 버린 이 순간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것일까요?
추적을 피해 다시 달리기를 반복합니다. 저 비극의 보고는 끊이지 않고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릴 것만 같습니다. 긴 삶을 살며 이젠 비정상적이리만치 두려운 것이 없는 이마저도 저들에게는 공포를 느낍니다. 등줄기가 차갑게 녹고 발목이 저려올 때쯤에,
 :…눈을 뜨니 늦은 오후 햇살이 밝게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이안 브란트:(뺨을 쓸던 손을 떨어뜨리곤 걱정스런 낯으로 안색을 살핀다.) 괜찮아요? 밤 내내 상태가 안 좋길래…….
첸 티엔:(눈을 뜨면, 급하게 숨을 내쉰다. 참아두었던 두려움을 터트리는 꼴이다. 바로 곁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호흡을 고른다.) …으응, 괜찮아요. (한 차례 당신을 끌어안는다.) 이러고만 있으면 뭐든 다 괜찮아질 것 같거든요.
이안 브란트:(팔을 뻗어 당신을 그러안고, 느리게 토닥였다. 손끝에 걸리는 검은 머리칼을 부드러이 빗어주기도 했다.) 다 괜찮아질 거예요. (나지막한 속삭임. 호흡이 안정될 즈음에야 몸을 떨어뜨려 당신을 침대에 다시 누인다.)
…… 그러기 위해선 오늘도 조-금 바쁘긴 하겠지만. 아침 준비하는 동안 더 쉬고 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샐쭉 웃는다.) 오늘의 계획은 호수 피크닉이거든요.
첸 티엔:처음 듣는 계획인데요. (얌전히 누운 채 대꾸했다.) 물론, 당신이랑 함께하는 거라면 뭐든 좋지만요. (금세 진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첸 티엔은 언제나 단 한 사람만 필요로 했으니. 더는 외롭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실없는 말을 뱉을 수 있다.) 도와드리지 않아도 되나요~? 언제든 불러주셔도 되는데.
이안 브란트:당연하죠, 말한 적 없으니까. (쓸데없이 당당하다.) 내일까지 바쁠 것 같으니 지금은 쉬시고… 아 도움 당연히 필요 없죠. 누워 있으세요. (단호하게 말한 사람치고 볼에 꾹 도장 찍듯 입술을 누르고 갔다.)
 :이안은 아침을 준비해 주겠다며 티엔을 잠시 혼자 두고 오두막 밖으로 나갑니다. 멍한 기분이 당신을 스칩니다. 부유하는 먼지 사이로 환해진 오두막을 둘러보아도 어제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잠깐, 정말 없을까요?
어제 잠시 훑어보다 도로 두었던 현대식 역사서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첸 티엔:(입을 비죽 내밀었다. 내 요리가 뭐 어때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역사서를 주워 본다.)
 :핸드아웃, <식민지부터 공작령까지, ○○ 중세사>가 갱신됩니다.
……이 부분이 이런 내용이었던가요?
첸 티엔:(역사서를 덮고, 오두막 밖을 살핀다. 이안은 어디에 있지?)
 :이안이 바깥에서 당신을 부릅니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 산책을 가자며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어제처럼 사람 많은 곳으로 향하는 대신 호수 주변을 산책할 요량인 모양입니다. 피크닉 바구니까지 들고 천천히 호수를 따라 걷습니다.
 :호수를 따라 반 바퀴쯤 걷다 보면 낡은 탑과 억새밭이 보입니다. 대단한 의미는 없고, 예전에는 망루 대용으로 쓰던 것이지만 요즘에는 동네 어린아이들이 몰려와 괜히 들쑤셔 보거나 연인끼리 밀회하는 장소로나 쓰입니다.
수상하거나 위험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지금이 밤이라면 드넓은 하늘과 조용히 속삭이는 숲, 쌀알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탁 트인 시야를 누비고 있을 거예요. 최고층은 지붕이 반쯤 부서져 위를 올려다보기에 딱 적절합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도 운치 있습니다.
문득 옛 추억을 떠올립니다. 티엔은 이전에도 가끔 이곳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산책하다 들렀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시선에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첸 티엔:예전에도 여길 자주 왔었어요. 그때는 당신이 내 곁에 없었지만요.
이안 브란트:그땐 무얼 하러 왔어요? 그때도 산책?
첸 티엔: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너~무 외로워져서, 내일을 맞이하기가 무서워질 지경이 되면 이곳에 오르곤 했어요. 별로 가득 찬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나마 위안이 됐거든요.
이안 브란트:그때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손을 내민다.) 이곳의 밤하늘이 아름답기는 하더라고요.
첸 티엔:이제라도 만났으니 됐어요.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는데…. (붙잡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럴 리는 없겠죠? 아쉬워라.
이안 브란트:어어, 할 거 많대도.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조~금 곤란하거든요. (손끝으로 손등을 간질이더니) 더 많은 걸 보러 가요, 같이.
첸 티엔:…그럴 수 있을까요? (자신 없는 투. 괜히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이안 브란트:그렇게 만들면 되죠, 이번에도.
첸 티엔:(그제야 파안했다.) 그러엄, 이번에도 반지를 끼워 주실래요?
이안 브란트:아직은 이르지만~… 그렇게 하겠죠? 당신이 원하는 무어든 해줄 수 있어요.
첸 티엔:항상 이르다고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 씨, 저보다도 더~ 보수적이시네요.
이안 브란트:오늘 진도 끝까지 뺄게요. (아닙니다.)
첸 티엔:무드도 없으시고. (과장된 한숨.) 아~ 안 되겠다. 역시 결혼은 분위기 잘 잡는 사람이랑 해야겠어요.
이안 브란트:침대 위에선 분위기 잘 잡을 수도 있죠…….
첸 티엔:경험도 없으시면서…. (이렇게 말하지만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안 브란트:허… 헛참. (삐죽!) 당신은 어떤데요…….
첸 티엔:당신보다는 잘하지 않을까요? (뭘,,,)
이안 브란트:뭘? …… 그래요 오늘 당신 말이 맞는지 아닌지 끝장을 보자고. (안 봅니다.)
첸 티엔:반지는 이르다면서, 이런 건 안 빼시네요? 이안 브란트 씨이, 음흉해요.
이안 브란트:반지 같은 건, 상황이 더 확실해지면 그때 드리고 싶단 말이에요. 그리고 청혼 같은 건 분위기 있는 곳에서 해야… (이런 데선 분위기 챙긴다.) 몰라요 됐다 제 말 안 믿으실 거죠…….
첸 티엔:삐쳤어요?
이안 브란트:이번에는 맞아요.
첸 티엔:(맞잡은 손을 놓더니, 곧장 당신의 목을 감싸 안고 입을 맞춘다. 숨을 겹치고, 한 차례 떨어져 이마를 맞댄다. 여전히 숨결이 닿는 거리.) 지금도요?
이안 브란트:….
…….
아뇨 다 풀렸어요. (너무 물러지는 것 같아 큰일인데, 당신 얼굴이나 행동을 보고 있자니 난 평생 무르게 살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네….)
저 이런 데 약한 거 아시고 그러는 거죠…….
첸 티엔:아~뇨. 그냥 표현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만큼요. (말을 끝맺자마자 당신의 입가에 가벼이 입 맞추더니, 그제야 만족한 듯 떨어진다.) 오늘 아침 메뉴는 뭐예요~?
이안 브란트:(얼굴 붉게 물들인 채 잔뜩 얼어붙었다가 고개를 휙 든다.) 어젠 아무것도 안 먹겠다는 식으로 구시더니… 오늘은 입맛이 좀 생겼어요?
첸 티엔:네에. 아무래도 당신 덕분인 것 같아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당신이 보이니까 불안하지가 않네. 정말 결혼해야겠어요, 우리.
이안 브란트:결혼하면 매일 아침 안아주고 식사도 차려줄 수 있어요. (헤실 웃었다.) 하여튼 오늘 아침 메뉴는 샌드위치고요. 오늘 목표는 데이트 겸, 저-기 탑을 살펴보는 것.
뭐부터 할까요? 역시 식사?
첸 티엔:으음. 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잖아요. 급한 일인가요?
이안 브란트:(곰곰) 중요한 일은 맞는데 급한 일은 아니에요.
첸 티엔:그럼 식사부터 할래요. 딱딱하게 굳은 샌드위치는 취향이 아니라서요~.
이안 브란트:(호숫가의 탁 트인 공간에 자리를 펴고 앉는다. 피크닉 바구니에서 샌드위치를 내어 건네주며 문득 내뱉는 말.) 맞다. 저 어제 설레서 못 잤어요. (농….)
첸 티엔:응? (샌드위치를 받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정말! 이해하지 못한 모양새.) 설렐… 만한 일이 있었나요?
이안 브란트:(흠.) 이런 데선 섬세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좀 기대고 있겠단 말이었어요. (어깨에 기댄다.)
첸 티엔:당신이 너~무 부끄럼을 많이 타는 건 아니고요? (고분고분 어깨를 내어주었다.) 아~ 하긴. 사귀지도 않는 사이치고는 그렇고 그런 일을 많이 하긴 했죠.
이안 브란트:아직 안 사귀는 건 맞지……. 그리고 그렇고 그런 일이라는 말도 이상하네요. (딴지 걸면서 작게 하품.)
첸 티엔:할 말 못 할 말 다 한 것 같은데. 그냥 사귈까요? (제게 기댄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피곤하면 한숨 주무셔도 돼요. 나중에 깨워드릴게요.
이안 브란트:그럼, 그럴까……. (말끝이 늘어진다.) 눈만 감고 있을게요. 샌드위치 맛없어도 제가 만들었으니까 남기지 말고 드셔야 해요. 맛없을 수가 없지만…. (대단한 자신감은 아니고… 그냥 맛있을 만한 재료만 조합했다는 뜻이다.)
첸 티엔:(확인에 가까운 절차였으니 이제 와 행복에 겨워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의 사랑은 언제나 받고 있던 것이 아니던가.) 제가 언제 당신이 해준 걸 남긴 적이 있었나요. 걱정하지 말고 쉬세요.
이안 브란트:착하네…. (중얼거리다 말곤 금방 잠에 든 것인지 조용해진다.)
첸 티엔:(당신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눈을 뜰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기로 한다. 당신의 부탁이었으니, 샌드위치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안 브란트:(잠시나마 잠에 빠져들었다가 눈을 뜨면 당신의 손을 찾아쥐었다. 느릿느릿 하품하며….) 안 피곤해요? 샌드위치 다 먹었네. 밥 해주는 맛이 나는 것 같아요……. (다마고찌로 키워야지.)
첸 티엔:안 그래도 평생 아침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어요. (언제?)
이안 브란트:그러려고요. 살 찌워서 잡아먹어야지……. (농을 중얼거렸다.)
첸 티엔:은근히 그런 쪽 농담을 자주 하시는 것 같아요. (옆구리 콕.)
이안 브란트:이번엔 그런 농담 아녔는데~…. (맞다.)
첸 티엔:아하, 음흉한 건 저였다~ 그런 소리죠?
이안 브란트:네에 티엔 말이 다 맞아요.
첸 티엔:갑자기 긍정하시네요?
이안 브란트:저는 진짜 순수한 뜻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좀 말랐지 않나. (옆구리 쿡.)
첸 티엔:(엥?) 이아안… 절 너무 연약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아니진짜라니깐…….
첸 티엔:네에, 당신 말이 다 맞아요. (냉큼 따라한다.)
이안 브란트:제 말은 원래 다 맞아요…. (헤.) 일어날까요? 탑 구경 좀 하게.
첸 티엔:괜찮겠어요? 피곤하면 좀 더 쉬어도 되는데.
이안 브란트:괜찮아요, 쉬는 건 집 가서 더 쉬어야 당신도 편하죠. (기지개 쭈욱….)
첸 티엔:그래요, 그럼.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고 손을 내민다.) 얼른 둘러보고 돌아가는 걸로 해요. 그리고~ 오늘도 같이 자면 되겠다. 그쵸?
이안 브란트:(손을 잡고 일어난다.) 그렇게 해요. 오늘은 혼자 설레하지 않고? 잘? 잘게요?
첸 티엔:네에. 당신도 익숙해지셔야죠. 이젠 평생 같이 잘 거니까요.
이안 브란트:음. 그. 네. (우뚝 멈추어 서더니 자리를 정리하고 척척 먼저 걸어간다….)
첸 티엔:이안 브란트 씨~! 첸 티엔을 놓고 가셨는데요~?
이안 브란트:(얼굴 벌개진 채 돌아와서 손 꼭 잡고 걸어가요.)
 :두 사람은 탑의 내부로 향합니다. 곳곳에 먼지가 내려앉은 낡은 탑이에요.
첸 티엔:
관찰력
기준치:50/25/10
굴림:13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티엔은 탑 내부에서 묵은 먼지가 켜켜이 쌓인 상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첸 티엔:응? 웬 상자가…. (슬쩍 들춰 본다.)
 :상자는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암호 자물쇠를 통해 잠긴 상태입니다. 열쇠공의 어려운 성공 이상, 손놀림의 극단적 성공 이상, 행운의 대성공을 통해 풀 수 있습니다.
첸 티엔:이안…. 자물쇠는 못 부수죠? (이상한 걸 기대하는 눈치…)
이안 브란트:절 뭘로 보시는 거예요? (멀어진다.)
첸 티엔:왜 멀어지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직접 하세요. (멀리 서서 구경!)
첸 티엔:(흥.) 절 사랑하신다면 계~속 곁에 있어주셔야 하는 거 아녜요?
이안 브란트:사랑하면 지켜볼 줄도 알아야죠. 여기서 같이 봐드릴 테니까 어서 해 보세요. (독촉!)
첸 티엔:저… 외로워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딱 한 걸음 가까워졌다.)
첸 티엔:(잉.)
이안 브란트:왜 아기가 됐어여. (얌전히 옆에 붙어서 선다.)
첸 티엔:(엥?) 멀어지셔도 될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황당하네. (황당하네요.)
첸 티엔:이쪽이야말로요. 절 뭐로 보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겠단 얼굴로 보셨잖아여.
첸 티엔:이안…. 그렇게 안 봤는데 콩깍지가 심한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황당해요 저 진짜.
첸 티엔:이쪽도거든요.
이안 브란트:됐어 콩깍지 심한 사람은 멀리 갈 테니깐…….
첸 티엔:(흥. 얌전히 자물쇠를 만지작….)
열쇠공
기준치:1/0/0
굴림:63
판정결과:실패
(아~ 아쉽다~)
이안 브란트:(아~ 될 것 같았는데.)
첸 티엔:(계속 만지작,,,)
손놀림
기준치:10/5/2
굴림:51
판정결과:실패
(포기를 모르는 첸 티엔.)
기준치:40/20/8
굴림:80
판정결과:실패
이안 브란트:(뭔가 보여주나요)
첸 티엔:(이젠 안다.)
이안 브란트:(아니네.)
첸 티엔:사람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요. (냉큼 놓는다.)
이안 브란트:잘 살펴봐요.
첸 티엔:
관찰력
기준치:50/25/10
굴림:53
판정결과:실패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니까요?
이안 브란트:저 없으면 진짜 아무것도 못하시네요.
첸 티엔:그러니까 결혼으로 책임져주셔야죠.
이안 브란트:그래야겠네 나 없으면 안 되겠네…….
(옆으로 슬금 다가와 상자에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준다.) 잘 봐요.
 :상자 윗부분 중앙에 작은 철막대가 꽂혀있습니다. 주변에는 이상한 긁힌 자국 같은 것들도 보입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자세히 살펴보니 단어나 문장들을 의도적으로 새겨 놓은 것 같은데…….
철막대 주변에는 동그랗게 용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철막대 아랫부분에는 <흘러가야 하는 대로.> 라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자물쇠는 동그란 원반형이고, 케이크 조각을 자른 것처럼 방사형 구조를 띠는 6조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누르면 딸깍 소리를 내며 오목해지고, 한 번 더 누르면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올바른 모양을 나타내도록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면 열리는 방식인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
첸 티엔:(1시 방향의 조각부터 시계 방향으로 눌러 본다.)
 :마지막 버튼을 누른 순간 녹슨 상자 안에서 달칵 소리가 납니다.
상자의 안에는 주먹만 한 열쇠가 들었는데, 실생활에 쓰인다기보단 성의 경비 총책임자가 관리하는 대열쇠에 가까운 생김새입니다. 붉은 보석에 잔금이 가득 갔고, 요철마다 먼지와 녹이 잔뜩 껴 별로 만지고 싶은 모양새는 아닙니다. 이 열쇠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첸 티엔:이걸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거죠?
이안 브란트:(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다가 금방 웃으며) 역시 똑똑하시네요. 엔지니어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농.)
첸 티엔:(잠시간 말을 멈추어 낸다. 10초보다는 짧은 간극이었다.) 그러엄. 누굴 만나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요.
그런데…. 직접 찾아가서 전해드려야 하는 거예요? (흠.)
이안 브란트:(그는 눈을 맞춘 채 말없이 웃기만 했다.)
잘- 아시네요. 제가 성 경비대에게 언질을 넣어둘 테니까, 내일 함께 성으로 가봐요.
첸 티엔:네에, 그때는 절 두고 가시면 안 돼요….
이안 브란트:같이 갈게요. 물론 건네주는 역할은 당신이 하겠지만… 사회생활도 당신이 하겠지만…….
첸 티엔:뭐…. 상관없긴 한데요. 그래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이안 브란트: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이어지는 침묵, 신중히 말을 고른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여서 당신이 내게 돌아온 거잖아요? 그런데, 유일하게 이 시간대에선 우리가 제대로 된 접점을 만들지 못하였으니… 일종의 빈틈이 생긴 것 같아요. 당신의 존재에.
그 빈틈을 메우려면 누군가는 당신을 기억해야 하고요. 그러니… 아주 사소하게라도 역사와 기록을 변화시켜야 해요. 죽을 예정이었던 사람을 구해 준다거나, 거대한 족적을 남긴다거나…….
그러니까~ 제가 지켜보고만 있다고 해서 삐치지 말아요. (괜히 농담을 하며 머리카락을 넘겨준다.) 어디 안 갈게요.
우리가 걸어온 끝에 마주한 이 시간을… 어디 한 번 유용하게 보내보자고요. (슬며시 웃었다.) 궁금증이 좀 풀리셨어요?
첸 티엔:(또다시 미묘한 낯이 되고야 만다. 감정이 벅차오른 것 같기도 했고, 울음을 참는 듯 보이기도 했고, 재차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웃는다.) …네, 아주 완벽하게요. 이번에도 당신은 나를 찾아와 줬네요. 당신은 매번 내게 받기만 하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젠 제가 그 말을 해야겠어요. 당신에겐 매번 받기만 하는 것 같아.
이안 브란트:제가 말했죠? 배움이 빠르다고. 모두 당신에게 배운 거예요. (목을 안고 입을 맞추어, 짧은 호흡 뒤 떨어진다. 당신이 하였던 대로.) … 집에 갈까요?
첸 티엔:(호흡이 멀어지면, 나직이 웃는다.) 정말 배움이 빠르시네요…. 돌아가요, 같이.
 :두 사람은 도보 대신 호수 한쪽에 묶인 나룻배를 타고 오두막으로 향합니다. 하늘 위를… 우주를 비행하듯, 나룻배가 새파란 호수 위를 가로지릅니다.
 :책장에 잘 꽂아두었던 역사서가 다시 펼쳐져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
첸 티엔:(내용을 살핀다.)
 :핸드아웃 <식민지부터 공작령까지, ○○ 중세사>가 갱신됩니다.
확실합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행동에 따라 책에 기록된 내용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역시 전부 꿈이나 환상일까요?
어느 순간, 아찔한 감각과 함께 의식이 훅 꺼집니다
 :꿈에서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러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적어도 이것이 몽중몽은 아니리라는 확신이 듭니다.
흐르는 시간을 봅니다. 거대한 유사에 대면 보잘것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물푸레나무 요정처럼 가볍고 가난한 자신이 급류처럼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어떤 것을 환상이라고 자각하고 어떤 것은 자신의 기록이라고 생각할까요?
한 사람의 삶이 수 세기에 이르를 때, 그리하여 이토록 장엄하고 초라한 생을 어쩔 수 없이 역사의 단위로 세어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때 곁에서 누군가 걷기 시작합니다. 텅 빈 공간인 줄로만 알았던 이곳에도 바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둠도 빛도 아니었던 시야가 기묘한 별들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옆에서 걷는 사람은 이안입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당신은 그게 이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위대한 존재께서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셨을까요? 소리 내어 묻지도 않았는데 의문에 대답하듯 그가 말합니다.
네가 신이라고 여기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라.
 :그 음성만 들어도 무릎을 꿇어야 할 법한 위압이지만, 언젠가부터 더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기능하지 않았던 당신에겐 익숙한 울림입니다. 오랜 세월 모시던 신이 꿈으로 현현한 것입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고 그저 뜻 모를 말을 합니다.
나의 수종이여, 너는 지금 외우주의 틈새를 떠돌고 있다. 그가 너를 구하고자 함께 뛰어들었다…….
그러니 다시 너의 몫이다. 이제 선택에 익숙하지 않느냐? 산다는 것이 어째서 한 번의 완결로 끝을 맺겠느냐? 필멸자처럼 구는 대신 불사의 지혜를 보여라. 죽으려 한대도 우선은 살아나야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을 겪어라. 누군가의 기억에 기생해 숨 쉬는 형태는 벗어나야 네 삶이 비로소 삶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때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더니 사위가 흐려집니다. 마지막 말을 제대로 새겨듣기도 전,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을 떴는데…….
…이안의 얼굴이 왜 이렇게 가까이 있죠? 그러니까…… 지금 자는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게 맞나요? 어리둥절한 정신도 잠시, 퍼뜩 너무 익숙한 상황이라는 자각이 듭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빗소리 사이로 괴악한 으르렁거림이 들렸습니다. 바깥이 이토록 어두운 것은 날씨 탓일까요? 저 돌담 너머에, 하얀 다리 바깥에, 호수 저편에…….
너무나도 지난한 공포입니다. 이안은 말없이 당신을 껴안을 뿐입니다.
첸 티엔:(그대로 당신의 목에 팔을 두른다. 한참이고 호흡을 나누었다.)
이안 브란트:(얕은 호흡.) 이럴 의도 아니었는데, 깨워버렸네….
첸 티엔:당연히 깨웠어야죠. 당신 혼자 감내하지 마세요.
이안 브란트:(웃기만 한다.) 오늘 잠자리는 좀 괜찮았어요? 어제보단 안색이 괜찮아 보여서.
첸 티엔:왜 대답이 없어요? (볼 쿡 찔러 본다.) 그렇게 넘어갈 생각 마세요. 저도 대답 안 할 거니까.
이안 브란트:아, 알았어요…. 그렇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바람 빠지는 웃음.) 오늘은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아요. 비가 그치면 성으로 갈까요?
첸 티엔:(답을 듣고서야 당신을 끌어안는다.) 비가 그치기 전까지는 계속 이러고 있어도 되나요?
이안 브란트:네에, 꼭 껴안고 달래 주세요. (한 사람의 온기에 온전히 기댄다.) 내가 다시는 당신을 잃어버리지 못하게…….
첸 티엔:(그가 너를 구하고자 함께 뛰어들었다. 그렇다면, 기꺼이 끌어안고 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럼, 붙잡고 놓지 마세요. 저도 그렇게 할 테니까….
이안 브란트:약속할게. (사랑을 읊조렸다.)
 :얼마나 서로 그러안은 채 있었을까요, 적막한 떨림이 잦아들고 어느덧 비가 그칩니다.
첸 티엔:손, 잡아줄래요?
이안 브란트:(기꺼이 손을 붙잡았다.)
첸 티엔:(온기를 붙든 채 성으로 향했다.)
 :영주성은 본래 아무나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만, 어제 언급한 대로 경비대 중 아는 사람이 있는 듯한 이안이 성문 앞을 지키고 선 대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본래 평민이 영주에게 직소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 열쇠의 경우 현상금까지 걸렸던 적이 있는 데다 설리반 남작이 모든 제보를 직접 받겠다고 공언한 덕에 두 사람은 그를 알현할 기회를 얻습니다.
몇 차례의 수색과 심문 단계를 지나 기사 두 명과 함께 남작의 집무실로 들어섰습니다. 호방하고 친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두 사람을 반깁니다.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자가 바로 설리반이군요. 설리반에게 열쇠와 상자를 돌려줄 수 있습니다.
첸 티엔:남작님을 뵙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상자와 열쇠를 건넨다.) 우연히 이런 것들을 줍게 되었는데~… ,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물건인 듯하여 진상하고자 알현을 요청드렸습니다.
설리반: (상자를 열어본 남작은 열쇠가 진짜임을 확인하고 크게 놀란다.) 이 열쇠는 어디에서 찾았나?
첸 티엔:호수 근방의 탑에서 발견했습니다. 찾으시던 물건이 맞는지요?
설리반: 맞네, 맞아. (호탕하게 웃는다.) 호수 근처의 탑이라면…… 그 낡은 탑을 말하는 것이로군. 이런 귀한 것이 왜 그런 곳에? (의아해하나 캐묻는 투는 아니다.) 어쩌다 발견하게 되었나?
첸 티엔:여느 때처럼 밤하늘을 보기 위해 탑을 올랐는데, 어두운 탓에 발밑을 살피지 못하고 그만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지 뭡니까. (뻔뻔….) 살펴보니 웬 낡은 상자가 있었습니다. 정체는 보시는 바와 같고요.
설리반: 낭만적인 청년이구먼. (어쩐지 기뻐한다!) 자네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단연 보상도 부족함 없이 치르겠네.
첸 티엔:(준다는 건 또 거절하지 않는 인물이 여기에 있다.) 첸 티엔이라고 합니다. 찾으시던 물건이 맞다고 하시니 저 또한 기쁘네요.
 :그때 티엔과 몇 가지 질답을 주고받던 설리반의 집무실로 누군가 들어옵니다. 열 살이 조금 넘었을까 싶은 소녀입니다. 어… 낯설지 않은 얼굴인데요. 이틀 전 구해 주었던 그 소녀입니다. 소녀 역시 놀라 당신을 바라봅니다.
설리반은 소녀를 자신의 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날 복장이 심상치 않더라니 역시 영주의 딸이 맞았군요.
당황하는 딸을 보고 남작이 의아해하자, 함께 들어온 유모가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마을 광장에서 덮쳐 오는 마차로부터 그를 구해 준 것이 바로 티엔이라고요. 정황을 들은 설리반은 당신에게 큰 감사를 표합니다.
설리반: 딸의 목숨도 구해 주었고, 이 열쇠도 찾아 주었으니 자네 나의 은인이나 다름없네. (그 자리에서 금전적 보상을 챙겨주라 이릅니다.)
 :적당히 시간이 흐른 후, 뒤쪽에 서 있던 유모가 '아가씨, 약속하신 시간이 되셨습니다' 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틉니다. 잠시 딸과 놀아주던 설리반과 유모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설리반: 약속이라니? 오늘 일정이라도 있는가?
유모: (주변을 둘러보다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 오늘 광장에서 브란트 도련님과 만나 거리 구경을 하자고 약속하셨어요.
설리반: 브란트 군과? (너털웃음) 우리 딸이 이렇게 컸구먼. 그 녀석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 (농담삼아) 이거 외로워서 살겠나, 벌써부터장인어른 될 준비를 다 해야 하고.
 :익숙한 이름에 이안과 눈이 마주칩니다. 설마?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 설리반과의 대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집무실을 나오게 됩니다.
첸 티엔: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으세요? 이안 브란트 씨. (어쩐지 냉랭함….)
이안 브란트: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저 아이 나이를 보세요…….
첸 티엔: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이안 브란트 씨.
이안 브란트:(황당해.) 글쎄요, 뭐, 가능성을 얘기하자면 먼 친척이나 조상일 수도 있겠죠….
첸 티엔:이래 봬도 제가 독점욕이 좀 있는 편이라서 조심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뭘?)
이안 브란트:뭐… 뭐… 뭘요? (황당해진짜.) 그런데…… 그런 거 없어 보이시는데요. (물끄러미 바라본다.)
첸 티엔:네? 방금 건 빈말 아니었어요. (멀뚱.)
이안 브란트:집착하시는 편이에요?
첸 티엔:속으로는요. 겉으로는 티 안 내는 편이긴 하죠.
이안 브란트:음. 귀여운 것 같아요. 이대로 진행하세요.
첸 티엔:뭐…가요? 뭐……를요?
이안 브란트:응? (멀뚱.) 갑시다.
첸 티엔:더 갈 곳이 남았나요? (당연하게도 손을 내민다.)
이안 브란트:집으로 가야죠. (얼른 붙잡는다.)
첸 티엔:(헤헤.) 우리 집 말이죠?
이안 브란트:네에, 우리 집이요. 첸 티엔 씨와 제가 같이 사는……. (웃었다.)
 :다시 성을 나와 거리를 건너 오두막으로 향합니다. 함께 걷는 두 사람의 사이가 좁습니다.
비 개인 하늘에 흐린 무지개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젖은 땅을 밟으며 두 사람은 걷습니다.
오래 묵어 조각난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안 브란트:하여간… 이걸로 이 생의 모두가 아주 잠시라도 당신의 삶을 기억하겠네요.
첸 티엔:그렇겠죠? ……그걸로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산다는 건 뭘까요? 중얼거린다.)
이안 브란트:이걸로 됐어요. (후련한 듯 숨을 내쉬었다.) 티엔, 이 시간대엔 당신이 나를 찾아오지 않았었죠? 내가 우리에겐 접점이 없었다고 했잖아요.
첸 티엔:(대답이 늦다.) 으응…. 갑자기 그건 왜요?
이안 브란트:(비 개인 하늘을 바라보던 이가 고개를 틀어 당신을 마주하였다. 다시 하늘이다.) 실은… 이때의 나도 당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 알아요? 접점이 아예 없었다는 말은 거짓말. 전생의 내가 아주 짧게, 멀리서나마, 당신을 담았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서도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거예요. 신기하죠? (조금은 신난 마냥 덧붙였다. 이런 말 우스운 거 알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걸지도 모르지….)
첸 티엔:(또다시 말을 잃어버리고야 만다. 이만한 우연이 반복된다면, 그야말로 운명이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잔잔한 물결 소리가 귓전을 채운다. 우리는 꼭 사랑하게 될 운명이었다고, 꼭 그리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어떡하죠. 이젠 정말 당신을 놓을 수 없게 됐나 봐. (있잖아요, 속삭인다.) 지금 당장 입 맞춰 줄 수 있나요? (무언가를 피하기 위함이 아닌, 오롯이 사랑이 담긴 행위를.)
이안 브란트:기꺼이. (몸이 당신의 방향으로 기운다. 입가에, 다시 입술 위로 입을 맞춘다. 일련의 행위는 애정으로 가득하다. 이번에는 빈틈없이 쥔 손. 놓지 않기로 한 것.)
 :이안은, 전생의 자신이 마을 먼 외곽에 살던 한 사람을 어린 날의 사진처럼 종종 떠올려 추억했었다고 말합니다. 당신조차 몰랐던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그저 우연이라기엔 수없이 반복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안 브란트의 삶이 첸 티엔의 역사이며, 첸 티엔의 역사가 이안 브란트의 삶입니다. 두 사람은 합쳐져 온전하고 완벽하기에 절대로 잃어버린 무언가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과 어제와 내일에 대해 말합니다. 바뀌거나 바뀌지 않는 것들을 속삭입니다.
대화를 거듭하면서 점차로 붉게 달아올랐다 검어지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서쪽을 사르고 꺼진 태양이 어쩌면 지평선 아래에서 몸을 씻고 달로 다시 떠오르는지도 모릅니다.
첸 티엔:…돌아가면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은데, 어울려주실 거죠?
이안 브란트:이미 그러기로 한 거 아녔어요? (담백하게도 말한다.)
첸 티엔:입양을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아이 이름도 생각해뒀는데. 제가 바라는 대로 따라주실 거예요? (짓궂은 투.)
이안 브란트:그, 첸 티엔 씨. 결혼 전에 아이 이름 짓는 건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당혹이 여실히 드러나는 얼굴. 그럼에도,) … 기꺼이 따르겠죠 나는 당신을 많이 좋아하니까…….
첸 티엔:뭐 어때요? 결혼 안 할 것도 아니면서.
이안 브란트:(헛기침 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 이름은 뭘로 정해두셨는데요?
첸 티엔:위雨요. 지구에서도, 우주에서도 볼 수 있는 거잖아요. (빗물과 유성. 어느 쪽이든 낭만적인 명명이지 않나.) 우리가 어디에서든 만났던 것처럼, 어느 곳에서든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게끔…. 어때요?
이안 브란트:새삼스럽지만 당신 정말 낭만적이네. 물론… 그래서 좋다는 뜻이구요. (맞잡은 왼손의 손등, 다시 약지 위로 입을 맞추었다.) 제 대답. 충분한가요?
첸 티엔:(샐쭉 웃는다.) 네에, 무르시면 안 돼요.
이안 브란트:그럼 이제…… (뜸.) 말하자면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손 꼭 잡으셔야 해요.
 :오두막 부근에 다다랐을 때, 이안은 시선을 돌려 한 곳을 바라봅니다. 그곳에서는 검은 연기가 스멀거리며 가까워집니다. 그들의 추적이 시작됩니다.
이안은 짧게 입을 맞추어오나, 스멀거리는 연기는 지금까지의 패턴을 벗어난 것인지 발치에서 암약하며 당신을 삼키려 듭니다. 오두막을 벗어난 두 사람의 근처까지 접근한 연기가 끔찍하게 끓는 소리를 내며 다가옵니다.
첸 티엔:
민첩
기준치:50/25/10
굴림:70
판정결과:실패
 :빠른 걸음, 조급한 마음에 넘어지고 맙니다. HP-1. 이안이 서둘러 당신을 일으켜주었고, 마치 목적지가 있는 양 걸음을 재촉합니다.
이제 두 사람은 호숫가 바로 근처까지 내몰렸습니다. 아니, 내몰렸다기엔…….
이안 브란트:티엔, 저 믿죠? (온순하게 눈을 깜박였다.)
첸 티엔:당신을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요?
이안 브란트: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연기가 가끼이로 스미고, 이렇게 기적적인 풍광 아래서 겪을 경험으로는 온당치 않다고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사위입니다. 가을, 이토록 짙은 가을.
이것이 꿈도 현실도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깨어날 수 있을까요?
이안 브란트:(더할 나위 없는 애정에 미소 짓던 이는 당신의 손을 쥐고 속삭인다.) 티엔, 제가 잘 생각해봤거든요. 물 속에는 각이 있을까? 하고요.
실은 제대로 결론 내리진 못했는데, 이젠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서. (얕은 숨결.) 제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아시겠죠.
첸 티엔:또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옅게 웃는다.) 같이 뛰어들어 줄까요?
이안 브란트:이번에는 정말 그래주셔야겠는데. (간극.) 그때는 말만으로도 기쁘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젠 말만으론 안 될 것 같네. …… 당신 덕이야. 책임질 사람도 당신이구요.
(가만 당신의 손을 쥐다가) 사랑한다고 내가 말했던가?
첸 티엔:한 번 더 말해 주실래요?
이안 브란트: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줄게요. 가장 특별한 것이든, 변하지 않을 마음이든, 혹은 영원이든…….
당신을 사랑해요.
첸 티엔:저, 주는 걸 마다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전부 받아 갈게요.
그리고…. 이제는 어쩌면, 같은 말은 덧붙이지 않을 테니까요.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 어디로든 떠나요, 함께.
 :그는 대답 대신 당신에게 입을 맞추었고, 힘을 주어 안습니다.
굳게 안은 채 무게중심을 뒤로 넘깁니다. 세상이 기울어집니다.
나는 그냥 사실 매일 울고 싶었어,
네가 내 마음 한 귀퉁이를 사르고 장작처럼 사라진 때부터 그랬어.
 :공중으로 몸을 던져 본 경험이 있어?
달이 평소보다 가까울 거라던 여름이었어,
나는 삶에서 달만큼 너와 닮은꼴을 본 일이 없어,
그날만을 기다렸어,
죽으려고, 너에게 빠져 죽으려고…….
생명의 숨결을 품어 차가운 물 속에서, 당신을 단단히 안은 이안이 눈과 코와 입술에 전부 입을 맞춥니다.
 :가자, 우리의 마지막으로.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방사형 미래로 가자. 깨어나 죽을 것이라도, 이처럼 고독한 사람에게라도 선택권은 있으니까,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물결인데도 물이 아닌 것처럼, 코와 입으로 넘어가는 차가운 말들이 액체가 아니라 숨인 것처럼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심해를 유영합니다. 어느 순간에 서서히 의식이 잠기지만, 다시 깨어나 보면 어제 그랬듯 오늘 역시도 눈앞에는 이안이 있으리라는 확신을 쥘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계가 당신의 세월에 바치는 찬가입니다.
언젠가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은하와 은하가 멀어지고 항성과 위성이 제자리를 잃을 때, 이토록 광막한 검정을 항해하는 우리의 역사가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변이할 때에, 얼음 행성처럼 싸늘한 성운의 끝자락을 걷더라도…….
핸드아웃, <푸른 눈의 남자>가 갱신됩니다.
안녕,
우리의 서사를
사랑했어,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심장이 얼어붙은 용 이야기

러브호텔 609호

609번지 칵테일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