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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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당신은 한 편지로 의뢰를 받았고, 현재 약도가 그려진 곳을 향해 이동 중이었습니다. 심지어 봉투 안에는 마부에게 지불할 몫으로 금전이 세 닢이나 들어있었습니다!
귀한 집안에서 어쩌다가 그림을 의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편지나 의뢰를 이해했을 것이며 그렇기에 지금 이 머나먼 길을 떠난 것이겠지요.
첸 티엔:(본디 첸 티엔은 이러한 의뢰를 수락하는 일이 없었다. 이렇다 할 인맥도 없거니와 대가에 합당한 작품을 그려내야 한다는 사실이 퍽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눈그늘 드리울 때까지 밤잠 설치며 붓을 들면서 속 쓰림에 시달리는 나날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의뢰를 받아들인 까닭은,)
…배, 배고파. (울적. 한 중얼거림. 차창에 고개를 폭 기댄다. 부스스한 흰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기차에서 내린다면 마차를 잡고 이동해야 합니다. 각종 미술도구나 개인 짐을 많이 들고 왔다면 이동하거나 짐을 싣는 과정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겠어요. 짐은 얼마나 챙겨왔나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괜찮은가요?
첸 티엔:(한 아름이다. 작업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문장을 읽었음에도 아주 사소한 도구마저 등에 이고 왔으니, 그 짐 덩이가 첸 티엔의 성정을 짐작게 했다. 타인의 도움 없이 알아서 꾸역꾸역 얹어내기는 한 모양.)

마차를 타면, 오래오래 달려 한 시골 마을 입구를 지나쳐 들어갑니다. 입구 표지판에는 ‘윙쿨룸’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고즈넉하고 한산한 마을은 길 양옆으로 밀밭이 펼쳐져 있고, 조용합니다. 마을에 진입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한 저택 앞에 멈춥니다.
첸 티엔:(앗…. 이제 도착한 건가? 눈치를 보다가도 슬그머니 마차에서 내린다. 짐 싣는 것도 도와주셨고, 오랜 시간 말을 몰아주시기도 하셨으니까…. 금전 세 닢을 모두 건네주었다. 헤헤 웃는 것은 덤이다.)

저택의 마당은 넓고 정원 중앙에 작은 분수가 보입니다. 고급스러운 장식용 조각상이 세 개 정도 있습니다. 이 컨트리 하우스는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 세기 이전에 지어진 것 같아요. 그래도 정원은 주기적으로 관리하는지 잔디가 깔끔하고 싱싱하고, 담쟁이덩굴이 건물 벽을 타고 멋들어지게 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중 나온 이는 아무도 없고, 어느새 마부까지 떠나 당신 혼자 남았습니다. 이 한산하고 조용한 땅에서 고저택과 마주 보고 있자니 기묘한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할까요?
첸 티엔:어엇…. (짐 덩어리를 끌어안은 채 주변을 둘러본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나요?)

첸 티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첸 티엔:(갸우뚱….) 저, 저기요…? 누, 누구 없나요?

첸 티엔:(짐 질질…. 끌고 가 문 콩콩 두드린다.) 저, 저기이….

사용인: 첸 티엔 님이시지요? 먼 길 오시며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주인어른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안으로 드시지요.
첸 티엔:앗…. 네, 네에. (대답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지금 첸 티엔은 낯을 가리고 있다.)


과한 대접을 받으며 응접실 안으로 들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커튼이 쳐진 창문들입니다. 햇볕이 이렇게 따뜻한데도 이질적으로 모든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의뢰인인 주인어른이 웃으며 당신을 반깁니다.
주인어른: 환영합니다, 첸 티엔 씨. 내 부탁을 들어주어 감사합니다.
마중 나가지 못한 것은 미안합니다. 우리 모두 사정이 있어서. 들어오며 마을 전경은 좀 구경했습니까? 어떤가요, 참 아름다운 마을이지요?
첸 티엔:헉…. 그으. 음…. (쭈뼛쭈뼛.) 아, 아니에요. 보, 보내주신 삯 덕분에 저, 정말 편하게, 왔고. 예, 예쁜 곳이네요. (커튼이 쳐진 창문을 흘끔 본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주인어른: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첸 티엔 씨는 목성을 본 적 있습니까?
첸 티엔:모, 목성이요? (자신이 아는 그 행성을 말하는 것이 맞나? 슬그머니 눈치를 본다.) 사, 사진으로는, 요.
주인어른: 실제 목성을 본다면, 사진 따위로 보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나는 별을 아주 좋아하는데, 몇 년 전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았을 때 우연히 본 목성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푹 빠졌지 무업니까.
별 뿐만 아니라 그림도 좋아하니, 나는 이 목성 그림 한 점을 꼭 갖고 싶습니다. 여러 화가들을 수소문하다보니 소식이 첸 티엔 씨, 당신에게도 닿았고요.
그러니 내가 의뢰할 것은 바로 목성을 그린 그림입니다. 서재에 관련된 자료들이 많으니, 편할 대로 참고해도 좋습니다.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저택의 모두가 별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림도 좋아하죠. 그러니 우리는 첸 티엔 씨가 여기서 머물며 그림을 그려주길 원해요. 보수는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줄 수 있으며, 머무는 기간 동안 숙식 제공은 물론이고, 최대한 대접해드릴 수 있고요. 어떻습니까?
첸 티엔:(초상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불과 몇 달 전, 굶주림에 지친 첸 티엔은 어쩌다 보니 초상화 의뢰를 받게 되었는데, 물 밀 듯 몰려오는 수정 요청에 현기증을 겪지 않았던가.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는 것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안심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린다.) 저어, 미,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노, 노력할게요.
주인어른: 아주 고맙습니다. (환하게 웃는다.) 부디 우리 저택에서 뜻깊은 시간 보내시길. 윙쿨룸은 예술가를 위한 곳이니까요.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요. 당신도 마음에 들어 할 겁니다.
다만, 저택에서 지내는 동안 이 네 가지만큼은 반드시 지켜주길 바랍니다.

첸 티엔:저어…. 커, 커튼은 왜…. 걷으면 안, 되는 건가요? 무, 무슨 이유라도….
주인어른: (응접실 내 벽에 걸린 액자들을 턱짓으로 가리킨다. 유화 그림이 여러 장 걸려있다.) 보다시피 우리 저택에는 책이나 그림이 아주 많거든요. 그것들이 햇빛이 닿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첸 티엔:아, 아하. (곧바로 수긍한다. 그렇지. 조심해야지.)

첸 티엔:(토끼 눈 뜬 채 주변 두리번거렸다.)

첸 티엔:저, 저분은…? (남 눈치 보며 살아왔으니, 금세 직감할 수 있었다. 아, 미움 사버렸구나.)
주인어른: (당신을 따라 시선 돌렸으나 이미 그 자는 가버렸을 것.) 누가 있었습니까? 사용인이 아니라면 제 아들일 겁니다.
짐은 모두 방으로 옮겨 두었으니, 사용인을 따라 이동하면 됩니다. 작업실 겸 쉴 수 있는 게스트룸으로 안내할 겁니다.

첸 티엔:(눈 이리저리 굴리며 재차 저택의 규칙을 되뇌어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러엄…. 시, 실례하겠습니다. (슬그머니 일어섰다.)


사용인: (놓아진 짐을 바라보며...) 기본적인? 도구는 이미 챙겨오셨을 테지만, 작업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요청해 주십시오.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언제든지 벽면의 벨을 울려 주시고요. 식사의 경우 원하신다면 방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첸 티엔:가, 감사합니다…. (눈 데굴데굴 굴린다. 배, 배고파. 그러나 밥값을 하기도 전에 식사를 축내는 짓을 할 수 없었기에…. 일단은 그림을 조금이라도 그려보기로 했다.)

첸 티엔:(화들짝!! 놀라 물통을 엎는다.)
이안 브란트:(팔짱을 끼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못마땅한 시선.) 잘~ 한다.
첸 티엔:죄, 죄송합니다…. (후다닥,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앞치마로 엎지른 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흘끔, 흘끔, 당신을 바라보았다.) 저어, 그…. 도, 도련님…. 이신 거죠?
이안 브란트:(당신이 앉아있던 자리에 자연스럽게 착석했다. 엎어진 물통을 발로 툭툭 차면서) 뭘 봐. (하...)
맞으면 어쩔 거고, 아니면 어쩌려고?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다리 꼬았다.) 난 너랑 친하게 지낼 생각 없고, 쫓아내러 온 거거든.
첸 티엔:(바닥 더듬더듬 짚어서 물통을 바로 세운다. 자신이 쏟은 것이었으므로 당신에게 유감을 갖진 않았다. 그저, 꼬르륵.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민망한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속절없이 얼굴을 붉힌다.)
이안 브란트:(당신이 바로 세운 물통을 다시 구두 끝으로 툭 쳤다. 힘없이 데구르르 굴러가는 물통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코웃음.) 너도 그냥 조건만 보고 온 거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첸 티엔:(눈가가 붉다. 무릎걸음으로 걸어가 물통을 줍고는, 그대로 품에 안은 채 무릎 꿇고 앉아있는다.) 위, 윙클룸…. 아닌가요? 여기….
이안 브란트:그-래, 소원을 들어주는 윙클룸이지…. (한껏 비꼬는 듯한 말투가 이어졌으며, 표정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이래서 외부인이 싫어.
그림 같은 거 그리지 말고 밥이나 먹어. 그러고 집에 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첸 티엔:저, 저기이…! (급하게 뱉느라 목소리가 제멋대로 튀어 나간다. 생각보다 큰 소리를 낸 탓에 지레 놀라 합, 입을 틀어막다가도, 슬그머니 묻는다.) 도, 도련님은…. 식, 사…. 하셨어요?
이안 브란트:(나가려던 찰나 돌아본다.) 그게 왜 궁금한데?
첸 티엔:(우물쭈물.) 거, 거르시면…. 건, 강에 나쁘니까. 가, 같이…. 드시는 건…. (줄어드는 목소리) 아, 안 되겠죠.
이안 브란트:허, (눈썹 들썩였다. 눈 가늘게 뜨고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잘 보이라고 말하던? 무슨 오지랖을…. 내가 너랑 밥이나 먹으려고 여기 온 줄 아는 것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낼 생각 전혀 없고! 쫓아내러 온 거라고.
첸 티엔:저, 그,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볼이 달아오른다. 한참을 입술 달싹이다, 겨우 말 잇는다.) 이, 이런 집안에서는…. 조, 좋은, 음식…. 머, 먹을 거 아녜요. 저, 저는 식사 예절 같은 것도, 모르고. 그, 그런 요리들…. 어떻게, 머, 먹는지도 몰라서. 보, 보고 배우고 싶었어요. (눈썹 추욱 늘어진다.) 도,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허, 참나, 헛참, 이런 류의 감탄사들을 몇 번이나 내놓았다. 당신을 위아래로 진득하게 훑는 시선이 이어지다가도 고개를 휙 돌린다.) 내가 아주 한가해 보이지? 나 바빠. 밥 정도는 혼자 좀 먹어. 네 방에 갖다 주라고 말해놓을 테니까. (흥.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사용인: 첸 티엔 님은 저희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시는 분이니, 충분히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무어든 부담스레 생각하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윙쿨룸의 저택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첸 티엔:(하고 싶은 것? 첸 티엔은 포부가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눈 동그랗게 뜨기만 했다. 제 앞에 놓인 식사를 보며 헤헤…. 웃기만 하는 걸 보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모양.) 가, 감사합니다…. 저어, 도, 도련님께도…. 챙겨주셔서 가, 감사하다고, 전, 해주시면…. 아, 안 될까요?
사용인: (눈 동그랗게 뜨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웃는다.) 다들 그렇게 놀라시고는 해요. 심지어 윙쿨룸은 소원을 들어주기까지 한다니까요?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을 자랑하듯 말하다가도 잠시 머뭇거린다.) 혹, 도련님께서 심하게 굴지는 않던가요?
첸 티엔:(그렇구낭. 큰 감흥이 없어 보인다. 다만 티 나지는 않았을 것. 소원이란 게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거라면, 자신이 배곯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 으음, 아, 아니요. 식사도…. 채, 챙겨주셨는걸요.
사용인: 아마 귀하신 손님이기에 도련님께서도 그리 심하게 굴지는 않으셨나 봅니다. 그래도... 감히 말씀 드리자면, 부디 너무 가까이 가시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이어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후다닥 도망치듯 사라진다.)

첸 티엔:(꼬르륵. 방 안에 혼자 남으면, 그제야 마음 놓고 식사에 집중했다. 슬그머니 손을 뻗어 빵을 집고, 덥석 문다.) 헉. 따, 따뜻해. (눈 동그래졌다. 수저나 식기는 분명 값나가는 물건일 터다. 첸 티엔은 상당히 긴장한 상태였으므로, 혹시나 접시를 깨트릴까 봐 조리된 요리에는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바깥 눈치를 흘끔 보더니, 빵 두어 개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더 늦기 전에 저택을 둘러봐야겠다.)

사용인 구획은 저택 내의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겠어요. 저택을 절대 나가지 말라는 규칙이 있었으니 정원 구경도 진작 접어야 했습니다.
2층에는 욕실이나 여러 객실, 주인어른의 방, 공부방 등이 보입니다. 대부분 문이 잠겨있거나 주인이 있는 방인지라 들어가기 난감한 곳뿐입니다. 아무래도 2층은 지금 당장 둘러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현관문 바로 맞은편에 보입니다. 큰 계단의 벽면 또한 그림이 액자에 걸려 있습니다. 연극이나 책의 한 장면을 그린 것들이 많습니다.
주인어른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건 빈말이 아닌 듯 합니다. 아마 당신의 그림도 아주 후한 값에 쳐주겠죠? 그러니 후한 대접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거예요!
1층 - 서재, 홀, 응접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첸 티엔:(빵 우물거리며 홀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이어 복도 반대편에서 훌쩍이며 들어오는 메이드가 보입니다. 다른 사용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메이드에게 다가가 달래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누가 괴롭혔어? 괜찮아요? 상냥한 말에 메이드는 결국 울음을 터트립니다.
또 도련님이니?
지난 번에는 제이슨이었죠?
그 사람은 미쳤다니까...
쉿, 들을라...

첸 티엔:(앗…. 혹시라도 빵가루가 떨어지면 안 되니 우물거리던 빵을 한입에 털어 삼켰다. 도련님이 두 분인 걸까? 슬그머니 귀를 기울인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66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안 도련님은 늘 짜증스럽고,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혼자 있잖아?
제, 제가 오늘은 날이 좋으니 정원에서 다과를 즐기시는 건 어떠신지 권하였더니 죽이려고 작정했냐는 둥 대뜸 화를 내기 시작하셨어요...
주인어른 뿐만 아니라 윙쿨룸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고 예술을 사랑하는데, 도련님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그림을 지독히도 싫어하시죠...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렇지? 우린 윙쿨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데! 최근에도 윙쿨룸은 소원을 들어줬는걸. 한 달 전 들어온 사용인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게 해 달라고 늘 빌었는데, 정말로 일주일 전 가족을 찾았다잖아.
사용인들은 이내 다시 일을 하러 자리를 뜹니다. 홀에는 덜렁 당신 혼자 남았네요. 더 이상 특별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첸 티엔:(도련님은 두 분이신 것 같고. 소원은 역시 우연이 아닐까? 그래도 이곳의 사람들이 어째서 윙클룸을 아끼는지는 알 것 같았다.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테이블 위에는 오늘자 신문이, 벽면의 수납장에는 정리된 지난 일자의 신문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첸 티엔:(오늘자 신문을 펼쳐본다.)

첸 티엔:(갸웃? 과학 1은 고개를 기울이기만 할 뿐이다. 신문을 내려놓고 수납장을 구경했다.)

눈에 띄는 신문이 하나 있네요.
첸 티엔:(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린다.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바깥 도시의 도서관도 부럽지 않을 방대한 양입니다. 그래도 대부분 장르 별로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찾는 책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문학 코너과 동화책 코너가 눈에 띕니다.
첸 티엔:(앗…. 어려운 책들이다. 슬그머니 동화책을 펼쳐보았다.)

자세히 보면, 문구가 적힌 왼쪽 페이지는 절반 쯤 찢겨나갔고, 오른쪽 페이지의 벽에 걸린 액자 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여인의 그림은 거의 날카로운 것으로 난도질 당한 듯이 너덜너덜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그런 것만 같습니다.
첸 티엔:누, 누가 이걸…. (혹여나 책이 더 손상될까 서둘러 표지를 덮는다. 천문학 코너로 총총총.)

책을 넘기다보면 여러가지 목성 그림이 보입니다. 목성의 눈, 혹은 폭풍이라고도 불리는 대적점의 그림도 있네요. 계속 보다보니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참고용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첸 티엔:(목성의 기록 책을 품에 안는다. 자료가 많으면 더 정확히 그릴 수 있을 테니까….)

당신과 마주친 사용인은 기다렸다는 듯 당신을 다이닝룸으로 데려 갑니다. 테이블에는 주인어른과 당신 뿐입니다.
주인어른: (사용인이 음식을 내려놓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택은 잘 둘러 보셨습니까?
첸 티엔:(꽁꽁 얼어있다. 체할 것 같다.) 네, 네에. 아, 서, 서재에서…. 채, 책을 하나 가져왔는데. 괘, 괜찮을까요?
주인어른: 물론입니다, 서재를 이용하는 사람은 저와 아들 하나 뿐이니까요. 그 애는 방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편이라 부득이하게 둘이 먹게 되었는데, 너무 불편해 마시지요. (하하핫.)
첸 티엔:(눈 동그랗게 뜬다.) 저, 저어…. 아, 아드님이…. 두 분이 아, 아니셨나요?
주인어른: 어찌 둘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웃는다.) 외동아들입니다. 이름은 이안이고, 아마 첸 씨와 나이도 비슷할 겁니다.
(팔꿈치를 식탁에 올리고 손깍지를 낀 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 애가 사용인들에게 밉보이고 있지는 않던가요? 원래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늦은 사춘기라도 온 건지, 몇 년 전부터 여기를 나가고 싶어하고, 사람들을 믿지도 않으며 혼자 있기만 하거든요.
그렇지만 이번에 첸 씨가 그린 그림을 보면 아마 감명 깊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최대한 좋은 작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첸 티엔:(부, 부담스러워. 스르륵 수저를 놓는다.) 네, 네에. 노, 노력할게요….
주인어른: 먼저 들어가 볼 테니 편하게 식사 하십시오. 내일 아침에 뵙지요. (먼저 일어난 뒤 사용인과 함께 자리를 뜬다.)
첸 티엔:(앗…. 혼자 남겨졌다. 슬그머니 수저를 든다. 이번엔 스프까지 잘 챙겨 먹었다. 빵 두어 개를 훔쳐? 주머니 속에 넣어두기도 했다.)

첸 티엔:(훔?친? 빵 입에 문 채 이젤 앞에 앉는다.)

첸 티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첸 티엔:(배가 부르니 기분도 좋다. 잠자리는 푹신하고, 서늘하지도 않으니 마음 놓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종일 커튼을 쳐 놓으니 이제 바깥의 시간이 잘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이지만, 밤이 깊었다는 건 잘 알겠어요. 피로가 쌓인 당신은, 이만 푹신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
...
첸 티엔: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푹신한 침대 시트 위에서 청한 잠이지만, 썩 기분 좋은 기상은 아닌 것 같아요. 잠기운을 떨치고 몸을 일으키면... 당신의 눈에는 황당한 풍경이 먼저 들어옵니다. 어젯밤 작업했던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가 찢어져 있습니다.
첸 티엔:(손등으로 눈 비비적... 비비적... 비비적...) 왜, 왜…? (울먹.)

날카로운 것으로 난도질한 것만 같습니다.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중간 부분이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많이도 그었네요.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직선으로 그은 구멍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찢어져 있다면 같은 캔버스로는 작업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첸 티엔:(우웃…. 한껏 우울한 기색으로 이젤 위에 올려둔 캔버스를 아래로 내린다.) 다, 다시 그리는 수밖에….

준비를 마치고 객실에서 나오면 사용인이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합니다.
사용인: 잠은 편히 주무셨습니까?
첸 티엔:저어, 죄, 죄송합니다…. (다짜고짜 사과를 입에 올렸다. 어깨를 추욱 늘어트린다.) 그, 캐, 캔버스가 망가져서요. 새, 새 캔버스를…. 받을 수, 있을까요….
사용인: (고개를 끄덕인다.) 식사가 끝나 방으로 돌아가실 때쯤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

주인어른: (당신을 반긴다.)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첸 티엔:(샌드위치 보고 눈 휘둥그레진다.) 앗. 그으, 네, 펴, 편하게 잤어요. 감사합니다…. (잠시 망설이더니,) 저어, 그, 그림은 어, 언제까지 완성해야…. 하나요?
주인어른: 최대한 빨리 완성할수록 좋지요. 그러나 명화란 단번에 탄생하기 힘든 만큼, 늦어져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노력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것은 왜 물으십니까?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으시는지요.
첸 티엔:(우물쭈물.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캐, 캔버스가 망가져서요. 처, 처음부터 다시…. 작업, 해야할 것 같아요.
주인어른: 튼튼한 것으로 놓았는데, 어쩌다가 그런 일이... (당신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다가,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첸 티엔:(자잿값이 더 드는 꼴이지 않은가. 죄스러운 표정이 된다.) 그, 그래서…. 새 캔버스를, 부, 부탁드려 두었어요.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주인어른: 좋은 그림이 나오기만 한다면 몇 번이고 새로 그려도 되니 죄송해하실 것 하나 없습니다. 첸 씨의 노력만은 저택 또한 잘 알았을 겁니다.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화제를 바꾸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나 해 드릴까요?
첸 티엔:재, 재미있는 이야기요...?

주인어른: (끄덕인다.) 하루 동안 저택에 대한 이야기는 좀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윙쿨룸의 저택은 적어도 한 세기동안의 역사를 안고 있지요. 놀랍게도, 이 저택은 소원을 이루어준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 것 기억하십니까? 윙쿨룸은 소망하는 자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윙쿨룸을 사랑하고, 윙쿨룸도 우리를 사랑하지요. 특히나 이곳에서 태어난 것, 만들어진 것은 각별히 아껴줍니다.
제 아들도 몸이 약하여 바깥으로 나가기 힘든 몸이지만, 저택 안에서는 건강하게 지낼 수 있지요.
우리는 윙쿨룸 덕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윙쿨룸을 사랑하지요.
첸 티엔:으, 으음. 마, 많이 들었어요. 다, 다들 윙, 쿨룸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짧은 간극.) 저어, 그, 그런데…. 도, 도련님은. 마, 많이 아프신 거예요?
주인어른: 하하,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바깥에 나가기엔 무리가 있지요. 저택에만 있는 것이라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주인어른: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사용인들에게 요청하십시오. (그리 말한 뒤 떠났다.)
첸 티엔:(눈치 흘끔 보더니, 슬그머니 사용인에게 다가간다. 얼굴 붉힌 채 우물거리다 말 잇는다.) 주, 주스 한 잔, 더…. 바, 받아 갈 수 있을까요?
사용인: 물론이지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잠시 후 주스가 든 잔을 하나 들고 왔다.)
첸 티엔:가, 감사합니다. (헤헤…. 양손으로 잔 꼬옥 쥔 채 이안의 방으로 향했다.)

첸 티엔:(어깨 추욱. 잔 쥔 손끝을 꼼질거린다. 도련님께 드리고 싶었는데. 터덜터덜 방으로 돌아갑니다.)

첸 티엔:(표정이 확 갠다. 부스스하게 내려온 앞머리나, 알이 두꺼운 안경 탓에 보이지는 않을 터다.) 도, 도련님…. 여, 여기 계셨네요.
이안 브란트:늦네. (당신이 들고 온 잔을 힐금 쳐다본다. 손에는 당신이 들고 왔을 붓 하나가 들려있고, 그것을 마치 제 것인 양 빙빙 돌리기도 했다.)

첸 티엔:(지난밤, 캔버스가 망가진 것이 도련님의 짓이라고는 의심조차 않는 모양이다. 양 뺨 발그레 물들이며 주춤주춤 다가서더니, 양손으로 쥔 잔을 내밀었다.) 도, 도련님 드리고 싶어서…. 받, 아 왔어요.
이안 브란트:왜? (받아들 생각 않고 멀뚱히 쳐다보기만 한다.)
첸 티엔:모, 몸이 약하시다고 들어서…. (슬그머니 눈치 본다.) 마, 많이 드시면…. 조, 좋을 것 같아서요.
이안 브란트:아버지가 그래? (인상 묘하게 일그러진다.) 주스는 저-어기 (턱짓으로 책상 가리켰다.) 놔뒀다가 네가 마셔. 난 안 마셔. (흥.)
첸 티엔:(눈썹 추욱.)
이안 브란트:뭐.
왜
뭐.
첸 티엔:(어깨도 추욱.)
이안 브란트:(하.) 짜증나 먹으면 될 거 아냐 진짜! 귀찮게.
(잔 뺏어들기라도 하듯 휙 낚아채더니 두 모금 정도 마셨다. 물론 마신 뒤에는 자연스럽게 당신에게 다시 들려줬다.)
첸 티엔:(헤헤…. 웃는다. 잔 받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이젤 앞에 앉는다.) 저어, 그런데…. 여, 여기는 무슨 일로…?
이안 브란트:내 집인데 돌아다니면 안 돼? (쏘아붙이듯 말해놓고는 고개 휙 돌린다.) 얼마나 잘 그리나 구경하러 왔어. 자. (옆에 내려놓았던 붓을 다시 당신 손에 쥐어준다.) 그려 봐.
첸 티엔:앗…. (머뭇.) 저, 저어…. 그. 초, 초상화는 잘…. 모, 못 그려요. (이상한 오해를 한 듯.)
이안 브란트:무슨 소리야? (다시 인상 찡그렸다….) 나 초상화 싫어해. 그딴 거 그릴 생각도 하지 마. (손에 팔레트까지 올려줬다.) 그려야 하는 거 그리라고.
첸 티엔:(안색 살피며 눈치 보기 시작했다. 당신의 뜻대로 붓 잡아들긴 했으나 부담 탓에 손이 벌벌 떨렸다. 붓에 물감을 묻히는 데에만 한세월이 걸린다.) 그…. 도, 도련님께서는…. 그림을 시, 싫어하시는 건가요?
이안 브란트:(무서워하나?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색깔은 저게 좋겠네. 저거랑, 저것도. (손가락질을 하며 이상한 색만 잔뜩 추천해줬다. 뚱한 표정을 짓더니,)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틀에 가두는 거나 다름 없잖아. 또, 가짜 같고. 넌 그림 그리는 게 좋아?
첸 티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순순히 가리키는 색을 팔레트에 던다. 몇 가지 색을 조합하니 그럴싸한 색이 나온다. 그것을 묻혀 캔버스를 가로지르면 멋들어진 획이 그어졌을 것이다.) 음…. 시, 실은, 그림보다는…. 으, 음악을 조금 더, 조,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발그레.)
이안 브란트:(어째 더욱 마음에 안 드는 듯한 표정이 되고 만다. 결국 획을 긋는 당신의 팔을 일부러 툭 쳤으니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주욱 붓자국이 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근데 왜 이러고 있어?
첸 티엔:(투욱…. 엇나간 획을 보며 울상이 된다.) 그게…. 으, 음악은…. 사,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하니까…. (입술 달싹인다.)
여, 역시 저보다는, 좀 더…. 시, 실력 좋으신 분이 오셨어야, 하는 거죠.
이안 브란트:겁쟁이네. 내가 고쳐 줄게. (손을 덥썩 겹쳐 잡더니 붓을 마음대로 그었다. 고친다는 핑계를 대었으나 당연하게도 그림을 망치려는 의도이니 캔버스는 더욱 엉망이 되었을 것. 뒤에서 당신에게 무게 실은 채 목을 팔로 감싸고, 당신의 머리 위로 턱을 척 얹으니 껴안은 꼴이 된다.) 그렇다고 하면 집에 갈 거야?
첸 티엔:(한껏 숨을 들이켠다. 몸을 감싼 온기가 낯설어 쉬이 떨쳐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허리를 뻣뻣이 세우기만 했다.) 도, 도련니임…. (붓 쥔 손에 힘 주지도 못한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울상지었다.) 그, 그럴 수는 없어요…. 이, 이미, 시, 식사도 얻어먹고…. 해, 해버렸는걸요.
이안 브란트:식사 두어 번이 대수라고. 내가 괴롭혀서 나간다고 하면 되잖아? 그런 거라면 아무도 뭐라고 못할걸. (겹쳤던 손을 놓고 슬금슬금 상체를 더듬기 시작하는데….)
첸 티엔:(안 그래도 타인의 접촉이 어색한 이였다. 남에게 몸 맡길 일 없으니 더욱 당황스러워했다. 어설프게 차려입은 셔츠와 앞치마, 그 사이 드러나는 살결이 모두 붉다. 목 끝까지 벌게진 채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저, 도, 도련님…. 왜, 왜, 이러시는.
이안 브란트:나는 네가 그림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뿐이야. 이 그림이 완성되어서 좋은 사람이라곤 저택의 사람들밖에 없으니까. (문득 고개를 옮겨 어깨 위로 제 머리를 얹는다. 다른 손으로는 붉어진 목을 훑었다.) 그림보다 더 재미있는 걸 알려줄까? 그럼 그만둘 건가?
첸 티엔:(살갗 위로 손끝 닿아올 적마다 몸을 움츠러트렸다. 내리 깐 붉은 눈이 분주히 좌우를 오간다. 첸 티엔은 평소에도 햇빛 보지 않았던 탓에 피부가 하얬고, 머리카락마저 희었으니 귀 끝 붉어진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터다.) 재, 재미있는 거라니…. 도, 도련님은…. 그, 그림이 완, 성되는 걸, 바라지 않으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당연하지. 완성시키는 순간 재미없을 줄 알아. (부드러운 손길이 귀끝을 건드리다가도, 기어이 옷 위로 어깨를 꽉! 물었다. 아주 짐승이 따로 없다. 아직은 진심 아닌 위협 단계이니 ―애초에 위협을 왜 그런 식으로?― 아프진 않았을 테지만. 이어 비밀스런 이야기라도 하듯 귓가에 소근대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얘기부터 해 줄까?
첸 티엔:흑…. (짤막한 신음을 흘린다. 온 곳 붉힌 채 눈물 글썽거리는 꼴이 썩 볼썽사납다. 귓가에 숨결 닿을 적에는 또다시 허리를 바짝 세우는 꼴을 보아 이 상황을 위협이나, 두려움으로 받아들인다기에는….) 무, 무슨…?
이안 브란트:안 잡아먹어. (그 정도 미친 놈은 아니라고 덧붙이며 허리 바로 세웠으나 이미 변명은 물건너간 듯싶다. 그의 손은 여전히 당신 어깨를 짚고, 무게를 잔뜩 실은 채. 잠시나마 뜸을 들인다.) 아버지가, 나더러 몸이 약해서 저택 바깥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지? 그게 나만 그럴 것 같아? 왜 그렇게나 귀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널 마중 나가지 않았겠어?
여기 사람들은 저택 밖으로 나가면 죽어. (이어 눈 마주친다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을 테니, 그의 말이 과연 진실일지 거짓일지는 분간 가지 않을 것이다.) 재미있지?
첸 티엔:(아리송한 낯이 된다. 눈가 발갛게 물들인 채 눈 깜빡이기만 했다.) 자, 잘 모르겠어요…. 그, 그게, 가능한…. 일, 인가요?
이안 브란트:나도 모르지.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럼 이번에는 질문.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우리가 병이 있고, 저택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이 안에서만 살 수 있다고 치자. 그럼 우리는 저택 덕분에 살고 있는 걸까, 저택 때문에 죽는 걸까?
첸 티엔:어엇…. (급기야 눈 핑글핑글 돌기 시작한다.) 그, 그러니까…. 휘, 휘둘리기, 싫으신 거죠? 도, 도련님은….
이안 브란트:(눈 앞에서 손 휘적휘적 저어봤다.) 그런 셈이지. 그러니 너는 나한테 협조해야겠어.
첸 티엔:(젓는 대로 시선이 따라붙는다.) 혀, 협조요…?
이안 브란트:(좌우로 흔들던 것을 위아래로 흔들어본다. 재미붙였다.) 그림을 그리지 마.
첸 티엔:(위아래로 흔들흔들. @////@.) 그, 그림에…. 무슨 의, 의미라도 있는 건가요?
이안 브란트:나도 아직 몰라. 자꾸 묻지 마. (
(으쓱. 결국 눈 앞에서 박수를 짝, 쳤다.)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게 너한테도 나을 거야. 최대한 빨리, 여길 나가는 게 가장 최선일 테고.
첸 티엔:(파들짝! 그제야 또렷해진 눈으로 당신을 본다.) 그, 그치만…. 도, 도련님은. (우물쭈물.) 모, 못 나가시는 거잖아요.
이안 브란트:나? (자신을 가리켰다. 나? 재차 물었다.) 날 왜 걱정하지?
첸 티엔:(입술 우물거린다. 한참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겨우 묻는다.) 그, 그러면…. 안 되나요?
이안 브란트:안 될 건 또 없지만, (갸우뚱.) 걱정할 이유가 없잖아?
첸 티엔:(눈 동그랗게 뜬다.) 이, 이유가 필요한, 거예요? 그, 그럼. (고민은 짧다. 한 번 입을 여니 이야기를 맺어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 첫날에…. 시, 식사도 챙겨주셨고. (도련님 아니었으면 굶었을 거예요, 수줍어 하며 덧붙인다.) 지금, 이렇게…. 조, 조언도 해주셨잖아요. 나, 가는 게 최선일 거라고요….
저, 이, 이렇게 대화… 를, 많이 해본 것도 처음이에요. 치, 친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소한다.) 그래서…. 도, 도련님이 벗어나고 싶, 으신 거라면…. 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이안 브란트:(터무니없는 말을 듣은 사람처럼, 눈 커다랗게 뜨더니 이어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가끔 의문을 제기하려는 듯 입술 달싹였으나 침묵 끝에 눈만 가늘어졌다.)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눈치 없는 척을 하는 거야? 내가 그림도 찢었잖아. 방금 그림도 다 망쳤는데? 그런 얘기는 왜 다 빼놓고 하지?
첸 티엔:그, 그림은…. 다시, 그릴 수 있잖아요. (헤헤 웃는다.) 저어, 시, 시간 많아요.
이안 브란트:(헛, 참나, 하.) 이렇게 순진해 빠져서 밖에서는 어떻게 먹고 살았어?
첸 티엔:(우웃.) 구, 굶었어요. 시, 실은…. 이, 이번 의뢰를 받은 것도. (배가 고파서…. 중얼거린다.)
이안 브란트:하……. (깊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래. (하, 다시 한숨 쉰다.) 많이 먹고 집에 가라….
첸 티엔:(한숨 쉬는 것 보며 다시 눈치 보기 시작했다.) 도, 도련님은…?
이안 브란트:(간극.) 어떻게든 되겠지, 몰라, 그만 물어. (제 머리 거칠게 헤집었다가, 제 품을 뒤적여 보석을 두어 개를 꺼내었다. 당신 손에 얹어주며) 챙겨 뒀다가 언제라도 집에 갈 생각이 들면 가지고 가.
첸 티엔:(영롱히 빛나는 보석 보며 숨 합 삼킨다.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쥐어내지도, 내려두지도 못한 채 손바닥을 쫙 펴고만 있는다.) 저어…. 주, 주인 어르신께서, 그, 그림 완성이 늦어져도…. 되, 된다고 하셨거든요. 제, 제가…. 처, 천천히 해 볼게요. 와, 완성될 것 같으면. 마, 망쳐서…. 시간, 벌 테니까….
(겨우 손을 굽힌다. 손아귀에 들어 온 보석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테이블 위로 내려두었다.) 우, 우리…. 가, 같이 나갈 방법, 찾아봐요.
이안 브란트:(그는 대화 내내 당신을 깔보듯 내려 보았으나 이번에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보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문득 보석을 얹어주었던 손을 다시금 끌어, 제 바지 주머니에 있던 물건을 재차 쥐여주었다. 당신의 손가락을 손수 접어주기도 하였다. 방금의 잘그락대던 가벼운 보석과는 상반되게도, 꽤 묵직하고 찬 감각일 것이다. 손을 펼쳐 본다면 겉면에 ‘회랑’이라고 적힌 열쇠.)
(상당히 차분해진 목소리.) 여길 다녀와서도 그럴 기분이 들면… 네 마음대로 하든가. 저녁 식사 후에 몰래 가 봐.
(다시 팔짱을 꼈다. 언제 얌전해졌다는 듯 입술 삐죽였다.) 나 이제 갈 테니까 그림 그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첸 티엔:(손에 쥔 것 흘리지 않도록 힘주어 붙잡는다.) 네, 네에. 꼭…. 다녀올게요. 오, 오늘 그림은…. 캐, 캔버스를 정돈하는 것만. 하, 할 테니까요. (눈앞의 이를 보며 조금은 수줍게 웃었던가.) 시, 식사…. 잘, 챙겨 드세요.
이안 브란트:10시 전에는 반드시 방으로 돌아와.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입술 또 삐쭉거리다가) …너도. 아버지랑 식사하지 말고. 오늘 저녁은 방으로 올려 달라고 말해둘게. (휙 방을 떠난다.)

첸 티엔:(헤헤 웃으며 배웅했다. 저녁 식사가 차려지면, 오늘만큼은 마음 편히 접시들을 비워냈을 것이다. 조금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회랑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역시나 모든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습니다. 긴 회랑의 벽면 가득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대체로 이런 곳에는 조상의 초상을 걸어두고는 하죠. 윙쿨룸의 저택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는지 가늠이 가기도 합니다.
벽을 가득 채운 초상화는 위엄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붉은 커튼벽들 사이로 몇 십 쌍의 눈이 이질적이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초상화만 기이할 정도로 가득 있어서 그럴까요?
당신은 이 회랑에 자신밖에 없는데도, 수십 명의 인기척을 느낍니다. 이성 판정 0/1
첸 티엔: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100 |
| 판정결과: | 대실패 |

들어온 문 바로 왼쪽에는 문만한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작품명은 「윙쿨룸의 초대 주인을 기리며」, 아무래도 이 그림 속 인물이 초대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월이 아주 오래 되었을텐데도, 그림은 몹시도 생생합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9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
이건 분명히 기우여야 할텐데, 이상하게, 회랑의 그림들을 바라보면 꼭 그림 속 인물들과 하나하나 시선이 맞닿는 기분이 듭니다. 수십 쌍의 눈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듭니다. 뒤를 돌면 아무도 없는데도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성판정 0/1
첸 티엔:
| 기준치: | 49/24/9 |
| 굴림: | 54 |
| 판정결과: | 실패 |

첸 티엔:(어깨 움츠린 채 주변을 둘러본다. 불안한 낯이다. 한 차례 숨을 들이쉬고, 열쇠를 꽂았다.)

첸 티엔:(계단을 내려가기 전, 귀를 기울인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3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첸 티엔:으, 으음….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간다.)

안으로 들어서면 윗층의 회랑보다 조금 작은 공간이 펼쳐져 있습니다만, 바닥에 깔린 양초들 때문에 비교적 밝은 편입니다. 이곳에도 수많은 초상화가 벽에 액자로 걸려 있습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87 |
| 판정결과: | 실패 |

첸 티엔:(바닥에 깔린 양초를 흘끔 본다. 넘어뜨리지 않게끔 조심해야겠다.)

첸 티엔:으, 으음…? (고개 기울이더니, 초상화로 시선을 돌린다.)

첸 티엔: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6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윗층은 모두 조상들의 초상화라고 해도, 왜 사용인들의 초상화까지 이곳에 보관하고 있는 걸까요? 문득, 당신은 반대편 벽에서 유독 상태가 좋지 않은 액자를 발견합니다.
첸 티엔:(사용인의 얼굴까지 초상화로 남겨두는 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의문 어린 낯. 액자를 살핀다.)

첸 티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93 |
| 판정결과: | 실패 |
(잠깐!!!!)

첸 티엔:(안경을 닦고... 재시도 할 수 있나요?)

첸 티엔:(뽀득뽀득.)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47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자, 완전히 망가진 그림 새로도 익숙함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안 브란트의 초상화입니다.
그의 그림을 망가뜨린 이는 누구일까요? 그런데, 도대체 왜?
무얼 생각할 새도 없이, 종이 울립니다. 의문감이 여전히 남지만, 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첸 티엔:(망가진 그림을 가만 바라보다가, 이윽고 방으로 돌아간다.)

첸 티엔:(문득 고개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문에 붙는다.) 누, 누구세요…?
이안 브란트:나. 열어.
첸 티엔:(벌컥.)
이안 브란트:(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간다.) 아직 안 자네. 그림은? (그림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첸 티엔:(여러 색이 뒤덮였던 캔버스는 온통 하얗게 변해 있다. 캔버스를 정리한다는 명목하에 그렸던 그림 위로 흰 물감칠을 한 것.) 도, 도련님도…. 주무시지 않고요.
이안 브란트:잠이 안 와서. (침대에 앉는다.) 내가 가보라고 한 곳은 다녀왔어? 어때?
첸 티엔:으, 으음…. (슬그머니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이곳에는 몇 쌍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그리했다.) 조, 조금…. 이, 이상했어요. 그림, 인데…. 누, 눈이 마주친 것 같았고.
이안 브란트:그야... 살아 있으니까? (눈 꿈벅.) 그림 안에서만 살아있는 거니까 '진짜' 살아있다고 하긴 어려운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첸 티엔:(눈 동그랗게 뜬다.) 네, 네에…? 그, 그림이, 어, 어떻게…?
이안 브란트:영원히 윙쿨룸에 남아있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으니까, 윙쿨룸이 소원을 들어준 거지. (슬금슬금 침대 안쪽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퍽 자연스럽다.) 그게 윙쿨룸의 저택에 오랜 시간 내려온 전통이자, 아주 깊은 저주야.
첸 티엔:(눈썹이 늘어진다. 그건…. 정말, 악질적인 저주가 아닌가? 누군가의 간절함이 절망이 되어 돌아오는 꼴이다. 쉽사리 대꾸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다, 침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는다.) 도, 도련님은…. 버, 벗어나고 싶으신 거죠? 시, 실은…. 도련님의, 초, 초상화를 봤어요. 마, 망가진 초상화를….
이안 브란트:으응… 그것도 내가 망가뜨린 건데. 봤어? 누울래? (옷소매 당기기도 했다. 따지자면 당신 몫의 침대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당장 떠날 수는 없어. 윙쿨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곳을 떠날 수 없게 되거든. (그러니까 너도 빨리 나가라고 한 거야, 옆구리 쿡 찌르기도 했을 것이다.)
첸 티엔:(볼 붉어진 채 고개 젓는다. 누, 누울 수는…. 웅얼거리기도 했다.) 그, 그래서…. 사, 사용인 분들의 초상화도, 거, 걸려 있던 거예요?
이안 브란트:왜 못 눕는데? (옆자리 두들겼다.)
(당신이 눕지 않자 몸 일으켜, 퍽 당신 가까이 당겨 앉았다.) 맞아, 그 사람들 전부 그림에 종속되어서 밤부터 아침까지는 그림 속에 들어가 있거든. 지금 저택에 멀쩡히 눈 뜨고 있는 사람이라곤… 우리 둘밖에, 없다는 뜻이지. (부러 강조하며 말하는 동시에 당신의 가슴팍을 쿡, 누르기도 했다.)
첸 티엔:(움칠, 몸 한껏 웅크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괜히 사위가 서늘해진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 이, 이상해요. 어, 어떻게 그런, 일이…. (당신을 향해 몸 기울인다. 직전 오간 이야기가 퍽 섬뜩했던 탓이다. 평범히 살아있는 이의 온기가 맞닿아야만 진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 도련님도... 그, 그렇게 되면, 어떡해요? 그, 그런 건 싫, 어요….
이안 브란트:저주는 원래 그런 거잖아. (제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끌어당겼으나, 영 만족스러운 낯은 아니었다. 이내 꾸물꾸물 몸 움직이더니 무릎 위에 올라타 당신을 껴안았다. 온기가 필요한 것은 이쪽도 매한가지였으니까.) 어떡하긴…. (이후 정적.) 그러고 보니까 내 이름 알아?
첸 티엔:(한껏 그 품에 안겨들면 뻣뻣이 굳어버리고 만다. 숨 들이내쉬는 것조차 저어하더니, 결국은 미약한 호흡만을 어깨 위로 내뱉을 뿐이다.) 주, 주인 어르신께…. 듣긴, 했는데. 그래도…. (속삭인다.) 지, 직접 듣고 싶어요.
이안 브란트:이안. 나중엔 이안이라고 불러. (당신의 성정 상 지금은 못 부를 것 같으니까… 속으로만 생각했다. 당신의 턱을 가볍게 쥐어 얼굴을 훑으니 안경 너머의 눈이 온전히 보인다.) 첸 티엔, 맞지?
첸 티엔:네, 네에. (순순히 손길 받아들인다. 밀어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저어…. 도, 도련님. 만약에…. 나,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충동에 가까운 말이 이어진다.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말들.) 저도, 떠, 떠나지 말까요? 이곳에…. 계속.
이안 브란트:(시선 떼어내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지기라도 했어? (이어지는 웃음은 덧없기만 하다.)
첸 티엔:외, 외로우실 것 같아서…. (짧은 침묵. 당신과는 대조되게도 시선을 내리깔았다.) 주, 주인 어르신도…. 사, 사용인 분들도…. 다, 도, 도련님의 편은. 아, 아닌 것 같아서요. (말소리가 점점 줄어든다. 끝의 끝에 이어지는 말들은 바람 소리와도 닮아 있다.) 저, 저는…. 도, 도련님의 편이, 되고, 싶어요.
이안 브란트:(턱을 매만지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진다. 당신의 시선은 아래로 미끄러트려졌으니 이안 브란트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였겠지. 사납기로 짝이 없던 눈매가 순간 무너졌다. 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는, 퍽 애처로운 낯이었을 것이다. 그 손은 당신의 목을 그리고 머리를 끌어안았다. 조용한 속삭임.) 너도 외로워?
첸 티엔:(쉬이 답 내어놓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첸 티엔은 단 한 번도 외롭다고 감각한 적이 없었던 탓이다. 다만, 빈 캔버스 가득한 단칸방에서 눈을 뜨는 것이 조금은 답답했고, 커튼 걷지 않아 빛 들어오지 않는 내부가 조금은 서늘했으며, 인파 오가는 사거리 속 붓이며 물감들을 한 아름 안은 채 서 있노라면 조금은 공허했기에, 어쩌면….)
외, 로웠던 것…. 같아요.
(그리하여 제게 쏟아지는 감정─그것이 어떤 결이든 간에─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 다른 무엇보다도 언뜻 내비친 친절을 좇게 되는 것, 닿아오는 온기에 고개를 기대게 되는 것, 불확실함 속에서도 미래를 속삭이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마음은 투명했을 것이다.)
이안 브란트:(당신의 첫인상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세상 물정 모르는 화가를 데려오는 게 좋겠다고 아버지는 말했었고, 당신은 그 조건에 꼭 맞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을 더듬고, 표정 숨길 줄 모르고, 기분 나쁠 정도로 투명한 사람.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허연 캔버스, 그 위에 찍힌 것은 고작 붉은 점 두 개.)
(―이안 브란트는 호의적인 감정을 올곧게 표출하는 법을 몰랐으니 처음 느껴보는 감정 모두 ‘기분 나쁜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니 당신을 좋아할 수도, 고운 언행이 나올 리 없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럼 그렇게 해. 유일한 나의 편이 되어줘. 함께 죽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죽지 않게 도와줘.
첸 티엔:(타인의 시선 하나 감당하지 못해 두꺼운 커튼 뒤로 몸 숨긴 주제에, 타인의 목숨에 관여하겠다니. 가당치도 않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것이다.) 그, 렇게 할게요. 제,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 뭐든….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든다. 시선은, 맞닿았을까?) 마, 만약….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같이. 시, 식사해주실 수 있나요?
이안 브란트:그럼, 그러지, 뭐….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그런 건 내일 죽더라도 해 줄 수 있는 건데. (시선은 분명하게 마주치며, 그의 표정은 한없이 태연하기만 하다.) 요리 잘해? (뜬금없는 질문이나 던졌다.)
첸 티엔:주, 죽는다는 말은…. (시선 마주하자마자 울상을 지어버리고 만다.) 음. 하, 한번…. 직접, 빠, 빵을 구워본 적이 있었는데요….
이안 브란트:있었는데?
첸 티엔:부, 불이 나서. 사, 살던 곳에서 바로 쫓겨났어요. (헤헤.)
이안 브란트:(눈 가늘어진다.) 저택에서 나갈 수 있게 되면 네 집에서 신세 좀 지려고 했는데, 그건 포기해야겠다.
첸 티엔:(순순히 긍정한다. 애초에 당신을 제 집에 들일 생각조차 없었던 듯하다. 곱게 자랐을 것이 뻔한 도련님을 허름한 잠자리에 밀어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으, 으음. 네에. 다, 당연히…. 더 좋, 은 곳으로 가셔야죠.
이안 브란트:좋은 곳이 뭔데? (눈만 깜박인다. 시야 좁은 도련님은 사람들이 모두 이런 곳에서 사는 줄 아니까….) 나는 이 저택만 빼면 다 좋은데.
첸 티엔:이런…. 곳? (황급히 덧붙인다.) 위, 윙쿨룸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으. 푸, 푹신한 침구가 있고, 외풍이 들지 않아서, 따뜻한 곳…. 이요.
저, 저희 집은…. 조, 조금 좁거든요. 캔, 버스가 많아서…. 추, 춥기도 하고.
이안 브란트:좁은 건 괜찮아. (별안간 당신 쪽으로 무게를 실어 침대 위로 넘어뜨린다. 그 위에 누운 채로 중얼중얼.) 이 정도 누울 정도는 될 거 아냐. 아, 추운 건 좀 싫을지도. 그래도 정 안 되면 좋은 데로 이사 가면 되니까…. (멋대로 같이 사는 상상을 하는 중….)
첸 티엔:(합, 숨을 들이켠다. 제 의지와는 달리 멋대로 붉어지곤 하는 얼굴이 또다시 발그스름해졌을 터다. 어디에도 손 올려두지 못하고 뻣뻣이 차렷을 한다.) 이, 이사 가시면…. 자, 자주 보긴, 어, 어렵겠죠…? (시무룩한 투. 이쪽은 멋대로 떨어져 사는 상상을 하고 있다.)
이안 브란트:얼굴 빨개졌어. (고개 들어 당신을 보더니 슬며시 뺨을 찔러봤다. 무얼 상상하는 거냐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시선 고정한 상태로 묻는다.) 왜 자주 못 봐? 너도 가야지.
첸 티엔:(한도 끝도 없이 붉어지기만 하다, 문득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저, 저도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이안 브란트:(같이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다.) 나 혼자 머리 못 말려.
첸 티엔:(자신이 마냥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금세 화색이 된다.) 저어…! 그, 그건, 자, 잘하는 것 같아요. 도, 도와드릴 수 있어요. (헤헤.)
이안 브란트:으응, 요리는 뭐… 모르겠고. 아무튼 나 혼자 못 사니까 같이 살아. (꽈아악 안는다.) 알겠지.
첸 티엔:조, 좋지만, 이, 이런 스킨십은…. (눈 질끈 감는다. 허연 캔버스, 그 위에 찍힌 붉은 점 두 개라고 했던가? 지금은 그저 붉은 캔버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지.)
이안 브란트:이런 거 싫어해? 아니면 나 싫어? (꼭 대답하기 곤란하게 묻는다.)
첸 티엔:(어느 쪽도 답하지 못하고 입술 달싹이기만 한다.)
이안 브란트:(당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린다.) 빨리 좋아한다고 말 안 하면 내 방으로 돌아갈래.
첸 티엔:(입술 위의 손끝에 더운 숨결이 닿았을 것이다.) 조, 조, 좋아해요….
이안 브란트:(만지작대던 손을 떼더니 제 손길 닿은 위로 입술도장을 꾸욱. 로맨틱한 분위기도 없고, 긴장감도 하나 없고. 천연스레 눈 마주한 채.) 이건 굿나잇 키스.
첸 티엔:(누운 채로 죽었다. 숨 쉬는 법도 잊은 것 같다.)
이안 브란트:책에서, 이런 거 해 주면 분명 좋아한다고 했는데. (멀뚱멀뚱 보다가 다시 뽀뽀해 봄….)
첸 티엔:(꽤 오랜 시간? 숨을 멈춘 것 같다?)
이안 브란트:아닌가 보다. (어깨에 얼굴 묻는다.)
첸 티엔:(한참 죽어? 있더니, 겨우 내뱉는다.) 이, 이, 이런 건, 사,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 하는 거예요. (울먹임에 가까운 말.)
이안 브란트:나를 사랑하면 되잖아. 이 이상한 저택에 남아주겠다고도 말했으면서, 뭐가 어렵다고…. (품에 얼굴 파묻은 채 대꾸하였다.)
첸 티엔:저, 저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도, 도련님은, 아, 아니시니까…. (숨 크게 들이쉰 탓에 가슴팍이 크게 오르내렸다. 줄곧 야트막하기만 했던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 그 이유는 본인조차 모를 것이다.)
이안 브란트:사랑하게 만들면 되잖아. 어려워? (당신의 손을 끌어 제 허리에 두르게끔 했다. 이어 중얼거린다.) 금방 넘어갈걸…….
첸 티엔:(어정쩡히 손 둘러 낸다. 이안 브란트가 끌어 올렸으니, 첸 티엔의 의지로 손 내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에 비해 표정은 어두워졌는데,) 저, 저를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던 탓이다. 짧은 침묵이 흐른다.) 아, 안 될 텐데. 저, 전…. 내,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어, 없는걸요….
이안 브란트:(뜸.) 나 너 싫어했는데, 벌써 좋아하게 만들었잖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지도 않아, 네가 날 사랑하기만 하면….
첸 티엔:저, 절…. 조, 좋아하세요?
이안 브란트:좋아하는데, 왜?
첸 티엔:(얼굴 달아오른다. 눈가가 발개지기도 했다. 금방이라도 눈물 고일 것처럼 두 눈 촉촉이 물들인 주제에, 그 낯 위로 애수라곤 한 점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 어째서요…?
이안 브란트:이렇게, (시선 마주하더니 눈가 문질렀다.) 감정 숨기는 법도 모르는 바보라서. (말을 더듬고, 표정 숨길 줄 모르고…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한 사람. 문득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 정성을 담아 그렸던 그림 위로 흰 물감칠을 해놓은 캔버스가 보인다. 고작 어느 도련님의 심술을 들어준다는 이유만으로 희게 물들인 캔버스를 보고 있자니, 당신이라면 한 사람마저 하얗게 덮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아,)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줬잖아. 나를 떠나가지 않을 거잖아. 내 말 틀렸어?
(당신 옆으로 내려가 누울 즈음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대기도 하였다.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것이 아니고, 실은 하얗게 칠해놓은 걸까? 하고,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첸 티엔:(고개를 젓는다. 당신이 바란다면 언제까지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며, 당신의 편이 될 것이고, 당신의 곁에 있을 테니까.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그, 그럼…. 절, 사, 랑해주셔야…. 하, 할 것 같은데. (감히 내뱉는다. 자신은 이미 당신을 사랑한다고.)
이안 브란트:날 사랑해? (부러 질문하며 조그맣게 웃었다. 대답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첸 티엔:(답하지 않을 리가 없다. 시선 내리깔고 주저하다가도,) 네, 네에…. 사, 사랑하게, 됐어요. (진심만은 전하려 들었다.)
이안 브란트: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마음 주면 안 돼, 알겠지. (타이르는 말투,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이는 다소 '교육'에 가까워 보이나, 그것이 이안 브란트가 '애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면, 나를 사랑한다면…
(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해 줘야지.
첸 티엔:(첸 티엔은 이러한 행동이나 말을 한 치의 의심 없는 '애정'으로 받아들였으므로, 두 사람의 사랑은 견고할 것이다.) 저…. 하, 한 번도, 해본, 적. 어, 없어서…. (서툴 텐데. 그러나 당신의 허락은 이미 떨어졌으니, 구태여 말 덧붙이지 않는다. 눈 질끈 감고 고개를 들이민다.)
이안 브란트:괜찮아…, 나도 잘 못해. (뭘?) (눈 꼭 감은 당신의 얼굴을 일부러 한참 쳐다보기만 하다가, 느릿느릿 입 맞추었다.)
첸 티엔:(입술 맞닿는 그 짧은 시간, 분명 숨을 멈추었을 것이다. 온기가 맞물리면 어느 순간 입술을 떼어내야 할지 몰라 망설였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꽤 긴 시간 숨을 나누는 꼴이 되고 만다. 몸 물릴 생각도 못 한 채로 그렇게 붙어 있었다.)
이안 브란트:(오래도록 입술을 맞물린 채 가만히 있었다. 입술을 살며시 물어보기도 하였으나 그저 장난인 양 먼저 떨어졌다. 그리고,) 더 하고 싶어? (진짜 뭘?)
첸 티엔:(둔하긴 하나 무지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당신의 말뜻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눈가 붉게 물들인 채 파득 몸 물리긴 하였으나, 이상하게도 부정의 말은 뱉지 않는다.)
이안 브란트:(헤죽 웃는다.) 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키스든, 키스 이상이든. (낮에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상체를 손 끝으로 슬그머니 더듬기도 하였다.)
첸 티엔:하, 하지만…. (드러난 살갗 중 허연 곳이 없을 지경이 된다. 손 밀어낼 생각조차 못 하고 몸 떨어대기만 한다.) 제, 제가…. 잘, 모, 못해버리면…. 어, 어떡하죠. 도, 도련님이…. 마, 만족하시지 못하면…. (애정 한 줌 떨어져 나가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꼴이다.)
이안 브란트:(새발개진 채 달달 떨기만 하는 이 초식동물을 어쩌면 좋은가? 손 떨어트리고 가만 지켜보기만 하다가 결국엔 빈틈없이 껴안았다. 바보.) 그런 게 중요해? 네가 하고 싶다는 게 중요한 거지. (어깨 왁 물었다.) 그런 건 맞춰가면 되잖아.
첸 티엔:(직전에 사랑을 고백했음에도 당신 등 그러안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다, 당연히…. 주, 중요하죠. 전…. 도, 도련님이 제일, 주, 중요하니까. (간극.) 그, 그런 것도…. 마, 맞춰갈 수 있나요? 어, 어떻게…?
이안 브란트:손, 여기. (손 위치 척척 지정해서 놓아줬다.) 내가 제일 중요해? 좀 감동이네. (감동이라는 사람치고는 감동 받은 얼굴이 아니긴 한데.) 사실 나도 잘은 모르는데, 하다 보면 맞춰진댔어. (대책없음!)
첸 티엔:(주춤거리면서도 손 올려둔다. 질 좋은 옷감이 손바닥 아래 깔리는 것이 못내 어색했다.) 으, 으음. 그, 그럼…. 마, 많이. 해야, 겠네요. (이런 발언이나.)
이안 브란트:(맞는 말이긴 한데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이것부터 익숙해지고 말하자. (뺨 위로 쪽 소리나게 입 맞춘 다음 품 안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이대로 잘래.
첸 티엔:(당신의 온기가 한껏 맞닿아 오면, 반사적으로 몸을 굳혀내고 만다. 아무래도 익숙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부, 불편하진…. 않, 으세요? 조, 좁다거나….
이안 브란트:난 안 불편해. 너 불편해? (또 대답하기 곤란하게 묻는다….)
첸 티엔:(눈 동그랗게 뜬 채 고개만 저어댄다. 열심히도 부정했다. 도리도리….)
이안 브란트:그럼 됐네. (Cool)
첸 티엔:으, 으음. (그런가? 금세 휘말리고 만다. 말려 내려간 이불을 끌어와 당신 위로 꼼꼼히 덮어주었다.) 주, 주무세요.
이안 브란트:(평소 습관 어디 가지 않는다고, 당신이 이불 덮어주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손길을 받기만 했다. 다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을 것이고.) 잘 자아.
첸 티엔:도, 도련님도요…. (헤헤.)

전날 거의 잠을 설친 당신은 악기 연주 소리에 눈을 뜹니다.
여전히 햇살 따위 드리우지 않는 갑갑한 객실 안입니다. 연주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니 2층 어딘가에서 누군가 연주하고 있는 듯 합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4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조반나(잔 다르크)가 성모상 앞에서 자신이 무기를 들고 나가 싸울 용기와 힘을 달라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언제나 당신은 자격 없는 저에게 당신의 자비로우신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언젠가 당신이 검 한 자루와 투구 하나를 제게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용인이 문을 두드리고, 테이블 위에 아침 식사를 놓아줍니다.
사용인: 안녕히 주무셨나요? (테이블 위에 식기 여러 개를 올려둔다.) 피아노 연주 소리가 참 좋지 않나요? 2층의 공부방에서 도련님께서 연주를 하고 계시거든요. 아마 오전 내내 연주를 하실 거예요.
첸 티엔:오, 오전 내내…요?

첸 티엔:(우선은 사용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방에 홀로 남겨지면, 식사 대신 이젤 앞에 앉았다. 주머니를 뒤적여 흰 손수건을 꺼내더니, 캔버스를 지지대 삼아 펼쳤다. 그리고는 붓을 들었다. 손수건의 귀퉁이에 붉은 장미가 새겨졌다. 그림은 싫어한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싫어하실까? 아니면, 기뻐해 주실까? 조금은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안의 방으로 향한다. 준비한 선물을 몰래 두고 나올 셈이다.)

첸 티엔:(손수건 둘 만한 곳을 찾아 방 안을 두리번거린다. 책이 있는 곳에 시선을 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것”은 사람을 닮았습니다. 팔다리가 길쭉길쭉한데, 유독 팔이 이상할 정도로 길어 어깨부터 발 끝까지 쭉 내려옵니다. 손바닥은 물갈퀴처럼 생겼습니다. 뒷통수가 비정상적으로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기묘한 것은 뭐죠? 이성판정 0/1
첸 티엔:
| 기준치: | 48/24/9 |
| 굴림: | 4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당신도 오컬트에 관심이 있는 걸까? 고개 살짝 기울이면서도 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서랍을 열어본다.)

첸 티엔:(앗…. 괜히 주변 한 번 두리번거린 뒤 책장을 넘겨본다.)

첸 티엔:(그것…? 목성…? 눈가 좁힌 채 반복되는 단어들을 되뇐다. 일기를 내려놓고 종이를 집어 들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저택. 저택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 목성을 사랑하는 사람들. 윙쿨룸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건 목성 따위가 아니라 주장하는 일기 속의 한 사람.
이곳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뎅, 하고 종이 울립니다. 정신 차리면 어느새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방으로 돌아가나요?
첸 티엔:(종이를 일기장 뒤에 끼워 넣고, 일기장을 서랍 안으로 돌려두었다. 그 위로 손수건을 내려둘까 하다, 결국은 제 주머니 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림이, 싫다고 하셨으니까. 기운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방으로 돌아간다.)

주인어른: (인자한 웃음.) 첸 티엔 씨, 그림은 어디까지 진행되었습니까?
첸 티엔:헉. 그. 그으.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죄, 죄송해요. 아, 아직…. 캔버스를, 다, 다듬고 있는 정도밖엔….
주인어른: 역시 최고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겠지요, 괜찮습니다. 다만, 내일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오기 때문에 오늘 남은 시간 동안은 작업에 할애해 주셨으면 합니다.
완성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과정이지요. 중요한 것은 ‘목성을 그리는 것’ 자체입니다.
하실 수 있으시지요?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것은 무어든 제공하겠습니다.
첸 티엔:그, 그럼…. 내, 내일까지. 그, 그림을, 어느 정도는…. 완성해야 한단…. 뜻인가요?
주인어른: 그렇게 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작업에 집중하여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겐 큰 의미가 될 것입니다.

첸 티엔:(우물쭈물, 눈치를 보다 결국은 방 안으로 들어간다.)

상황이 어떻든 당신은 결국 캔버스 앞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하얗게 칠해진 캔버스. 차라리 누가 찢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있거나, 그림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잔혹하게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첸 티엔:(붓을 든다. 다만 캔버스 위로 채워지는 것은 검은색 일색 공간 위의 행성이 아닌, 푸르고 보랏빛이 도는 바다 위로 너울이 이는 풍경이었다.)

오래 작업을 해서 그런지 눈이 뻐근합니다. 붓놀림이 느릿해질 즈음,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안 브란트:방에 잘 갇혀 있었어? (자연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첸 티엔:(그제야 붓을 내려두고, 건조한 눈을 비빈다.) 도, 도련님…. 오셨어요?
이안 브란트:무얼 그리고 있었어? (그림에 눈길을 주었다가, 침대맡에 앉은 채 당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첸 티엔:아, 음…. (한껏 주저한다. 양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주먹을 쥐니, 손 틈 사이로 앞치마가 말려들며 주름이 졌다.) 바, 바다…. 예요. 파, 랑이…. 이는 것. 보, 보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서…. (말 맺을 즈음에는 어깨마저 늘어트린다.) 죄, 죄송해요. 사실…. 도, 련님의 일기장…. 봐버렸어요.
(흘끔,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캔버스를 몸으로 가리며 들어올렸다.) 보, 보기 싫으시죠…. 치, 울게요.
이안 브란트:아. (탄성 뒤 잠시 침묵했다.) 그걸 봤어? 쪽팔리니까 기억에서 지워. 10초 줄게. (도련님이 이런 속된 언어 습관은 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 무표정하기만 하다. 당신이 캔버스를 들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더니 고개 가로저었다.) 괜찮으니까 내 쪽으로 돌려줘. 네 그림은 상관없어.
(짧은 간극.) 날 위해 그린 거니까…. 제대로 보고 싶어.
첸 티엔:(머뭇거리더니, 들어 올렸던 캔버스를 이젤 위로 내려두었다. 주춤거리는 발 뒤로 옮기면 직전까지 붓질하던 그림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안 브란트:(앉으라는 듯 제 옆자리를 두어 번 두드렸다.) 바다는 정말 이런 모습이야?
첸 티엔:(곧장 당신의 옆으로 향했다. 당신이 바라는 것이라면 뭐든 해줄 수 있고, 당신이 묻는 것이라면 뭐든 답할 수 있으나,) 서, 설명…. 안, 할래요. (이것만큼은. 고집스레 고개를 젓는다.) 같이…. 보, 보러 가요.
이안 브란트:그렇게 할까…. (시선은 여전히 그림 위로 고정된 채, 당신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조그만 속삭임.) 분명 아름다울 거야.
첸 티엔:(눈에 힘 하나 주지 않고, 입꼬리는 흐늘거린다. 바보 같은 표정이었다. 당신이 미래를 입에 올리는 것이 마냥 좋아서. 그렇게 웃기만 했다.) 으응, 이, 이런…. 그림보다도. 훠, 훨씬…. 아름다울 거예요. 하, 하늘도…. 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바, 다에 가면…. 전부, 볼 수 있어요.
이안 브란트:(그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도리없이 따라 웃고 만다.) 바보 같아…. (바다가 보고 싶다는 글 하나에 바다를 그리기 시작한 마음도, 기약 없는 말만으로도 환하게 웃어버리는 얼굴도, 그리고 네가 있으면 모두 괜찮아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 또한….)
…그으런데, 나가려면 품이 좀 들 것 같아. (머뭇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뜸을 들였다.) 괜찮겠어?
첸 티엔:(붉은 눈이 또렷이 당신을 응시한다.) 어, 얼마든지요. 뭐든…. 드, 드릴 수 있어요. 시간이든, 다, 다른 무엇이든….
이안 브란트:그럼…. 마음 좀 가다듬고 있어. (그 눈을 보면 머뭇거리던 기색은 금방 사라지고 만다. 뺨에 입을 맞춘 뒤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는 창문으로 걸어가고, 손을 두꺼운 커튼을 향해 뻗는다. 절대로 걷어서는 안 된다던 규칙을 깨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붉게 물드는 하늘, 요동치는 구름과 노을, 아니, 아니요. 마치 유화물감으로 덕지덕지 칠해놓은 듯한 풍경.
하늘을 가득 메꾼 꾸덕한 농담의 저택보다 큰 둥근 원, 요동치는 붉은 폭풍의 눈. 저택을 단숨에 집어삼킬 것만 같은 목성이, 목성의 눈이 우리를 꿰뚫어보듯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어떤 것처럼.
‘그들은 목성을 불러오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불러온건가요?
이성판정 1d3/1d6
첸 티엔:
| 기준치: | 48/24/9 |
| 굴림: | 62 |
| 판정결과: | 실패 |
1

이안 브란트:(커튼을 잡은 손에 힘이 죽 빠진다.) 10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회랑으로 가자.
첸 티엔:(멍하니 창밖의 것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존재에 압도되기라도 한 듯 숨을 멈추어내기도 했다. 두려움 탓인지, 호흡을 잊어 숨이 가빠올 무렵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낯익은 울림 하나만으로도 거세게 뛰던 심장은 안정이 된다. 겨우 숨을 내쉰다.) 브, 란트 씨는…. 이, 걸…. 매번, 보, 신 거예요?
이안 브란트:(어느새 당신의 등에 손을 얹었다. 당신의 심장소리가 손 위로 울리는 것만 같다.) 아냐, 얼마 되지 않았어. 가끔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아마 환각 정도일 거야, 불러낸 것이 아니라…. 아직은.
첸 티엔:(피치 못할 상황이 온다면 기꺼이 당신과 함께 이곳에 남아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에야 비로소 확실해지는 생각이 있다. 당신을 이런 곳에서 살아가게 두고 싶진 않아…. 느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직은…. 시간이, 있는 거죠. 조, 좋아요. 열 시에…. 같이, 가 봐요.
이안 브란트:으응, 네가 있으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아. (조그맣게 중얼댄다. 원래 성격 같았으면 팔 벌린 채 안아달라 말하였을 텐데, 말없이 당신을 포옥 그러안기만 하였다. 그 딴에는 일종의 감사 표현일까? 또, 애정 표현이고.)


어두운 복도를 앞서 걷는 이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보폭을 당신게 맞추고 있고요. 복도를 가로질러 회랑에 향한 이안이 문을 엽니다. 익숙하게 초대 주인의 초상화에 열쇠를 꽂아넣고, 문을 엽니다.
당신은 또다시 이 회랑에서 수십 명의 인기척을 느낍니다. 이안이 먼저 계단 아래로 내려갑니다. 앞서 걸던 이안이 드디어 운을 뗍니다.
이안 브란트:(회랑의 지하로 들어가며, 흘긋 돌아본다. 장난치듯 헤죽 웃으며….) 인기척이 느껴져? 다들 지금 저 안에서 너와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안쪽의 풍경은 이전에 본 그대로입니다. 윗층의 회랑보다 조금 작은 공간이 펼쳐져 있고, 이곳에도 수많은 초상화가 벽에 액자로 걸려 있습니다.

다만, 이안의 말대로 인기척이 느껴져, 두 사람 외에 누군가가 더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양초는 아직 타오르고 있고, 바닥에 있는 접시의 물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냅니다. 하루 정도가 지나면 모두 증발하겠어요.
첸 티엔:(움찔…. 몸 웅크리며 당신의 곁으로 붙어 선다. 허공에 고개를 꾸벅이기도 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 합니다…. 저, 저는…. 도, 도련님을. 내, 내보내 드리고 싶어요. (누구에게 건네는 건지도 모를 말들.)
이안 브란트:사과할 필요 없잖아, (바닥에 램프를 내려놓고 빈손으로 당신의 손을 짧게 쥐었다 놓는다.) 저 사람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했어. 그렇지만 진짜 미친 건 그림처럼 살겠다고 지껄이는 사람들이잖아. 그리고…
더 볼 일도 없고.

그 옆의 그림도, 그 옆의 그림도, 그 다음 그림도… 북, 북 원단이 찢겨져 나가는 소리가 마치 비명소리처럼 들립니다. 무던한 표정으로, 망설임 없이 모든 그림을 찢어버리겠다는 듯이 서슴치 않습니다.
첸 티엔:도, 도련님…! (답지 않게 큰 소리를 냈다. 가벼운 접촉조차 허락 기다리던 이가, 당신의 눈치 살피지도 않고 페이퍼 나이프를 쥔 손을 저지하듯 움켜쥐었다.)
소, 손…. 다쳐요. 제, 제가, 할게요. 네? 이리…. 주, 주세요.
이안 브란트:(창백하게 질린 낯, 당신의 손이 닿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입을 열면, 의외로 침착한 어조가 이어진다.) 내가 하게 둬. 안 다치게 조심할 테니까 손 더럽힐 필요 없어.
너는 이 저택에서 나가, 그 손으로 내게 그림을 그려주고, 악기를 연주해줘야 하니까….
첸 티엔:가, 같이…. 나가기로, 했잖아요. (나이프를 움켜쥔 손을 부드럽게 쥔다. 손가락 하나하나 떼어내며 손아귀의 힘을 풀게끔 했다.) 그리고…. 제, 손. 깨, 깨끗하지 않아요. 보, 보세요. (오늘은 온종일 그림을 그리지 않았나. 분명 이곳저곳이 물감으로 더럽혀져 있을 것이다.) 저, 를…. 써, 써주시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손끝이 허옇게 질릴 정도로 힘주어 쥐었던 것을 놓는다. 퍽 고분고분하게 구는 이유는 그저 당신의 애정을 읽어냈기 때문. 당신의 손은 온통 바다의 색이었으니까. 푸른빛, 다시 보랏빛으로 물든 손 위에 페이퍼 나이프를 얹으며 중얼거렸다.) 다치면 안 돼…. 나는 치료하는 방법 모르니까.
첸 티엔:네, 네에. 걱정…. 마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헤헤 웃는다. 이런 웃음을 지을 적이면 항시 마주 미소 지어주지 않았던가. 궁지에 몰린 것같이 허옇게 질린 낯은 보고 싶지 않았다. 당신만큼은 늘 행복했으면 했다.)
(페이퍼 나이퍼를 쥐면, 이제는 첸 티엔이 이안 브란트의 손이 되었을 것이다. 당신이 했던 것처럼 나이프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초상화를 찢었다.)
이안 브란트:(초상화가 모두 찢어지고 기어이 두 사람만이 남는다면, 당신을 뒤에서 껴안고선 등과 하얀 머리카락 위로 얼굴을 묻었다. 허리를 안은 손의 떨림이 차차 멎어든다.)
(저택의 사람들은 윙쿨룸을 사랑하였으며, 윙쿨룸은 저택의 사람들을 사랑하였다. 하나 이안 브란트는 윙쿨룸과 저택의 사람 중 무엇도 사랑한 적 없었다. 외려 경멸하기 바빴지. 제가 저택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윙쿨룸의 사람은 저택 밖으로 나가면 물감처럼 녹아내리니― 모두 사랑 탓이라 여겼으니 이안 브란트는 무엇도 사랑한 적 없었고,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랬던 이는 지금….) 사랑한다고 말해 줘….
첸 티엔:(망설임 없이 답한다.) 사, 랑해요. 도, 도련님을…. 마, 음 깊이요.
이안 브란트:나도… 널 사랑하는 것 같아. (당신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것도, 반드시 이 지긋지긋한 그림들을 제 손으로 찢어버리겠다던 굳은 결심이 무너진 것도… 모두 사랑 때문.)
첸 티엔:(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 희미한 미소만이 낯 위로 남는다.) 저어, 그러면…. 부, 부탁 하나만, 음. 아, 아니. 두 개만…. 드, 들어주실 수 있나요?
이안 브란트:두 개? 말해. (자기 품에 있던 금화 몇 개를 티엔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주며….)
첸 티엔:(눈 동그래진다. 왜… 주시는 거지? 슬그머니 주머니 속 금화를 빼내어 당신의 품 안으로 돌려놓는다.) 페, 페이퍼 나이프는…. 제가, 드, 들게 되었으니까. 하, 한 손이…. 비시잖아요. 그, 그러니까…. (우물쭈물.)
이안 브란트:갖고 있어. 무거워. (다시 준다….) 그러니까?
첸 티엔:(무겁다면 당연히 자신이 들어야지 않겠는가? 제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않는다.) 손…. 자, 잡아주시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손 답삭 잡는다.) 이게 첫 번째 부탁이야? 그 다음은?
첸 티엔:(맞잡은 손 꼼질거린다.) 포, 포기하지 말기…. 혼자, 남겠다는 생각도. 하, 하지 말기. 가, 같이 나가요….
이안 브란트:(꼼질거리지 못하게 힘 꾹 주었다가 놓았다.) 포기 안 할 거야, 바다도, 하늘도 전부… 보여준다고 했잖아.
하늘의 목성은 밤에만 나타나고, 아침이 되면 사라져. 의식이 거의 막바지에 닿은 것 같으니까, 시간은 내일 아침밖에 없을 거야. 내일 방법을 찾자.
아버지는 네가 목성을 그림으로써 ‘목성’을 가까이 불러내기 위함이었어, 그런데… 이 사람들이 불러온 건 목성 따위가 아니야.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지. 너도 보았잖아? 행성 따위가 아니라는 거.
나갈 때까지, 내 손 놓지 않을 거지? (물음은 벌써 확신을 담고 있다.)
첸 티엔:(결연한 표정으로 고개 끄덕인다.) 도, 련님께서…. 원하신다면요. 계속….
이안 브란트:(옅게 미소 짓더니, 앞장서 계단을 오르며 당신의 손을 이끌었다.) 오늘은 새벽에 돌아가지 않고 쭉 같이 잘 수 있겠다.
첸 티엔:(뒤따르는 이의 볼은 분명 달아올라 있었을 것이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조, 좋아요….
이안 브란트:굿나잇 키스 해줘야 해.
첸 티엔:(고개 푹 숙인다.)
이안 브란트:오늘은 죽으면 안 돼….
첸 티엔:(퍼뜩 고개 든다.) 네, 네에…? 저, 전…. 주, 죽은 적 없는데요. 사, 살아 있는데….
이안 브란트:어제 숨을 안 쉬었던 것 같단 말야.
첸 티엔:(갸우뚱.) 그, 그럴 리가요…?
이안 브란트:확인해볼래. (바로 입 맞춘다.)
첸 티엔:흡. (분명 입술 떨어지기 전까지는 숨을 쉬지 않았을 것이다.)
이안 브란트:잠깐 숨을 안 쉬었던 것 같은데. (흠? 손 마저 끌고 계단을 오른다.) 내 방에서 잘래, 네 방에서 잘래?
첸 티엔:(우뚝. 다리 멈추었으니 당신이 이끈 만큼 팔만이 들어 올려졌다. 얼굴 잔뜩 붉힌 채 말 더듬었다.) 도, 도, 도련님 방에서…. 자, 도. 되, 되나요?
이안 브란트:(팔만 덜렁 들어 올려지자 당신을 바라보며 덩달아 멈추었다.) 안 될 게 뭐 있어? 네 방도 따지자면 내 방이야, 이제. 이 저택 내 거니까. (맥락 외의 말이나.)
첸 티엔:(머뭇거린다.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해도 될지 고민하는 눈치. 표정 위로 고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안 브란트:할 말 있어? (빤...)
첸 티엔:(양 뺨 붉게 물들인다. 속삭이듯 말 늘어놓았다.) 도, 련님 방에선…. 도, 도련님의, 향이. 나, 나니까…. 더, 조, 좋아요.
이안 브란트:그런 이유야? (귀엽긴…. 붉어진 뺨을 콕콕 눌러보았으며, 회랑에서 나온 뒤에는 당신 옆에 나란히 서서 걷는다.) 향 금방 비슷해질걸, 같이 살다 보면…. (중얼대며 당신을 제 방으로 데려갔다.)
첸 티엔:(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듣지 못한 것인지. 이전에도 지금도 얼굴 붉어진 것에는 변함이 없다. 종종걸음으로 당신의 걸음을 따랐다.)

아침이면 문을 두드리던 사용인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나치게 조용한 이 저택의 어느 곳에도, 두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안 브란트:아버지의 방에 단서가 있을 거야... (침대에서 비척비척 일어난다.) 졸려.
첸 티엔:조, 조금 더 주무실래요? (창 너머로 들이치는 햇볕을 막아주고자 손바닥을 주욱 펴 당신의 눈 위에 댄다.) 피, 곤하시면…. 호, 혼자 다녀올게요.
이안 브란트:(그대로 얼굴을 당신의 손 위로 폭 기대었다. 잠시 바라보더니) 혼자 할 수 있어? (주인어른의 방 앞으로 향한다. 방문은 단단히 잠겨있다.) 열어봐.
첸 티엔:으, 음…. (주머니에 손 넣고 뒤적이니 실삔 두어 개가 나온다. 덤벙거리며 집 열쇠를 놓고 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던 탓.)
| 기준치: | 21/10/4 |
| 굴림: | 37 |
| 판정결과: | 실패 |
이안 브란트:(빤히...)
첸 티엔:이, 이렇게 하면 됐, 었는데... (눈치.)
(잘각잘각... 한 번 더 해봐도 되나요?)
이안 브란트:(빤히... ...) 해 봐.
첸 티엔:
| 기준치: | 21/10/4 |
| 굴림: | 58 |
| 판정결과: | 실패 |
이안 브란트:(빤히... ... ...)
첸 티엔:...네, 네에. 사실, 이, 이러다 집에 못 들어간 적 있었어요. (이실직고한다.)
이안 브란트:집? 누구 집...
첸 티엔:...제, 제가 지내는... 집?
이안 브란트:열쇠... 라는 게 없어?
첸 티엔:두, 두고 와서...
이안 브란트:(이렇게 순진해서 밖에서는 어떻게 먹고 살았어? 구, 굶었어요. 갑자기 이 대화가 다시 생각나는 건 왜일까?) 너 혼자 어떻게 살았어...
첸 티엔:어, 어떻게든…? (불안한 말.)
이안 브란트:...나가면 내가 데리고 살아줘야겠다, 진짜.
다른 방법은 없어? (툭툭.)
첸 티엔:(데리고 살아줘야겠다. 한 마디에 좋다고 헤헤 웃는다.) 히, 힘으로…?
이안 브란트:(못 미덥지만...) 해봐.
첸 티엔: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94 |
| 판정결과: | 실패 |
(낑낑... 털썩.)
이안 브란트:그러고 보니 아침을 안 먹였네..
첸 티엔:저, 저 할 수 있어요.
이안 브란트:다시 해 보게?
첸 티엔:네에.
이안 브란트:(빤... 바라봄.)
첸 티엔:
| 기준치: | 55/27/11 |
| 굴림: | 3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안 브란트:해 봐.
어...
어... 신기하다
첸 티엔:(본인도 놀란 눈치다. 칭찬을 바라는 눈빛.)
이안 브란트:생각보다 힘 좋네. (머리 복복 쓰다듬었다.) 밖에 나가면 고기 많이 먹여서 힘 더 키우긴 해야겠지만...
첸 티엔:(그저 수줍게 웃는다.) 그, 그래도…. 이젤, 이나. 캔버스 같은 걸 많이 드니까요…. (나름 힘 세다는 어필 중.)
이안 브란트:오냐. 나중에 내가 직접 확인해줄게. (뭘? ...대충 받아넘긴 뒤 손 꼭 잡고 안으로 진입.)

그러나 가장 신경 쓰이고 기괴한 것은, 모든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붙어 있는 목성 그림입니다. 유독 두드러지게 그려진 목성의 대적점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눈처럼 보입니다. 벽에 달린 수십 개의 붉은 폭풍의 눈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것만 같아 기분 나쁘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이안 브란트:책장은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다른 것 좀 확인해 주라. (어깨 툭툭.)
첸 티엔:앗. 네, 네에. (얌전히 책상쪽으로 다가선다.)

첸 티엔:(편지함을 뒤적인다.)

주고 받은 편지는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봉투 안에는 잘 접힌 또 다른 종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첸 티엔:(만약 자신이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렸더라면? 괜히 몸이 서늘해지는 것만 같다. 양팔을 손으로 쓸어내린 뒤 종이를 펼쳐보았다.)

뒷통수가 툭 튀어나와 있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합니다. 우뚝 서 있는데도 이것의 팔은 관절이 세 번이나 꺾여야 바닥에 닿을 정도입니다. 얼굴 중앙을 독차지한 커다란 눈알이 있는데, 이번에는 가로로 아주 길게 찢어진 입이 보입니다. 무채색의 몸통에 비해 그 눈알의 색채가 몹시도 강렬합니다.
아니, 잠깐만요. 이 눈은 마치, 묘하게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안 브란트:이상한 건 보지 말고. (종이 휙 가져간다.) 내가 발견한 거나 구경해. (서류봉투 건네준다.)
첸 티엔:엇…. (얼결에 서류봉투를 받아든다.)

첸 티엔:(메모를 읽어본다.)

첸 티엔:(저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럼, 저택이 사라진다면? 가정과 함께 땅문서를 펼쳤다.)

이안 브란트:나랑 결혼하면 거기에 이름 적힐 수 있어. (농...)
첸 티엔:(우뚝. 손 달달 떨린다.)
이안 브란트:농담이야. (서류봉투 뺏어감...)
첸 티엔:(웃….) 그, 그럼…. 겨, 결혼 얘기도. 노, 농담인 거예요…?
이안 브란트:농담 아니면 좋겠어?
첸 티엔:(고개 끄덕인다. 드러난 뒷덜미가 붉다.)
이안 브란트:(귀엽긴. 뒷덜미에 얹어진 손바닥은 제법 차다.) 첸 이안? 신분 세탁도 되고 좋네.
첸 티엔:(당신의 이름 앞에 제 성이 붙으니 더욱 결혼식을 상상하고야 만다. 얼굴 시뻘겋게 물들인 채 괜스레 서랍을 당긴다.)
이안 브란트:(다시 책장 앞으로 종종 걸어갔다.)

첸 티엔:하지만…. (저도 목성을 그려내지 않았죠. 중얼거리며 서랍을 밀어 넣는다. 망원경 쪽으로 향했다.)

이안 브란트:아버지가 이 망원경을 통해 매일 목성을 봤어. 가끔은 사용인들을 불러 직접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건 처음 발견한 순간부터 목성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이거. (책 한 권을 건네준다.)
(책갈피가 꽂힌 장을 펼쳐 보여준다.) 창문을… 액자라고 표현했어. (무얼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 어디 좀 다녀올 테니까 마저 구경하고 있어. 금방 올게. (방을 벗어난다. 이어 계단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을 것.)
첸 티엔:(불안한 양 당신이 사라진 곳을 흘끔거리더니, 보석함을 열어본다.)

\
첸 티엔:(음…. 특별한 건 없는 것 같군.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보석함의 뚜껑을 탁, 닫는다.)

주인어른은 그림을 매개체로 사용하려 했으나, 캔버스에 그린 그림은 실제 ‘목성’과는 거리가 있었으니 단순히 환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어제 저녁처럼요. 아마 매일 밤 그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겠죠.
첸 티엔: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4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목성’을 그리기 위해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자연스레 소망하고, 그림을 그려 저택 창문에서만 볼 수 있도록 ‘목성’을 부르고, 창문마다 나타난 그 거대한 ‘목성’이 ‘매개체 역할’을 했다면요?
‘중요한 것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다.’ 주인어른이 말했었죠.
애초에 이들에게 당신이 그림을 완성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이미 저 창밖에서 완성되었으니까요.
“우리는 윙쿨룸을 사랑하고, 윙쿨룸도 우리를 사랑하지요.”
“특히나 이곳에서 태어난 것, 만들어진 것은 각별히 아껴줍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것들을 사랑하는 저택.
사랑하는 것을 위해 환각이라도 보여주는….

이안 브란트:(어째 진한 알코올 향이 코를 찌른다.) 구경은 끝났어? 챙기고 싶은 건 없었고?
첸 티엔:으, 응. 그런데…. 무, 무슨 향이에요? (킁.)
이안 브란트:술. 안 마셔봤어? (그런 의미가 아닐 텐데.)
첸 티엔:그, 런 건 아니지만…. 드, 시고 온 거예요?
이안 브란트:아아니, 일단 와서 좀 도와줘. (손 잡아끈다. 축축하게 젖은 옷소매에서도 알코올 향이 진동한다.)
첸 티엔:(의아한 낯이나 더는 묻지 않고 따라갔다.)

첸 티엔:이, 이게 다... 뭐예요?
이안 브란트:어제 회랑 지하에 갔던 거 기억하지? 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그러니 당장 결판을 짓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결국 저택이 사라지면 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태우려고. (별다른 대책도 없고 단순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 별 의심이나 걱정은 담겨 있지 않는데, 당신이라면 기꺼이 동참해 줄 것만 같았기 때문에.)
첸 티엔:(금세 두 눈은 염려로 가득 찬다. 방화를 주저한다기보다는,) 이, 이대로는…. 위, 험해요. (젖은 옷소매를 가리킨다. 당신이 화상을 입기라도 할까 걱정한 탓이다. 종내엔 자신의 셔츠를 벗어 당신에게 내밀기까지 했다.) 저, 적어도. 아, 알코올이 묻지 않은 옷으로…. 가, 갈아입으셔야 해요.
이안 브란트:그런 걸 걱정하는 거야? 옷은 내 방에도 많은데…. (당신은 늘 의외의 것을 걱정하고는 했고, 그것은 늘 이안 브란트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눈 깜박이면서도 셔츠를 받아들었다가 다시 되돌려 준다. 눈이 가늘게 접힌다.) 이따 갈아입혀 줘, 혼자 잘 못해. 네 짐은… 챙겨갈 거 없어?
첸 티엔:으, 으음. (셔츠 받아든 채 눈을 굴리기만 한다. 짐이라면 많았다. 각종 붓이나 팔레트, 물감, 이젤이며 앞치마, 팔토시…. 그러나 급박한 상황에서 그것 모두를 챙길 수는 없지 않은가.) 어 ,없어요. 브, 브란트 씨는…?
이안 브란트:그래? 난… 대충 챙겼어. (밖에 나가도 좋은 거 먹여줄 수 있어, 빤히 바라보며 중얼대기도 했다.) 근데 술은 잘 마셔? (술병 하나를 소파 위로 들이부으며 묻는다. 혹시나 술 냄새만 맡고도 취하진 않을까, 그런 것이 걱정되어 건넨 물음이었다. 당신을 영 어린애로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첸 티엔:자, 잘은…. 못, 마셔요. (그러나 두 다리 똑바로 바닥에 딛고 선 것을 보아 냄새만으로 취할 정도로 약하진 않은 듯. 당신의 의도 파악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이안 브란트:그렇구나. (그래도 약하긴 약하다는 거구나. 밖에선 대체 어떻게 살다가 온 거야? 곱게 큰 도련님 주제에 당신을 신기해하는 중이다. 얼추 모든 술병이 비고, 1층이 모두 알코올 향으로 들어찰 즈음 손을 턴다.) 이제 옷만 갈아입고… …… 너 담배 펴? (성냥 같은 것이 있느냐 묻고 싶은 것뿐이다.)
첸 티엔:피, 피울까요? (이런 발언이나.)
이안 브란트:(응?) 피우라고 하면 펴…?
첸 티엔:도, 도련님이…. 바라신다면…?
이안 브란트:(흐린 눈.)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거야? (저벅저벅 2층으로 끌고 올라간다.)
첸 티엔:바, 바라신다면…. (짧은 정적.) 그, 그래도…. 더는. 하, 함께 할 수 없게 된다는 거니까…. 조, 조금은. 슬프겠어요.
이안 브란트:(잡은 손에 힘 준다.) 평생 나랑 살아. 어기면 죽어. (애정표현보다는 협박에 가까운 것 같다. 제 방 문을 열면, 언제 헤집은 것인지 엉망진창이 된 내부가 보인다. 상의 하나를 대충 집어들고) 입혀 줘. (눈 깜박깜박.)
첸 티엔:(볼 붉힌다. 그마저도 고백으로 들릴 정도니 단단히 홀린 게 아닐까 싶다.) 으, 으응. 팔…. 버, 벌려주세요.
이안 브란트:(당당하게 팔 벌리고 바라보기만 한다. 정말로 갈아입혀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을 것.)
첸 티엔:(겨우 옷 한 벌 갈아입히는 일임에도 집중한 티가 난다. 젖은 옷 벗겨내는 손길은 마냥 느리지 않다. 몸에 남은 물기마저 제 손수건─장미가 그려진─으로 닦아낸 뒤에야 새 옷을 집어 든다. 팔을 꿰고, 단추를 목 끝까지 잠가 낸다.) 다, 됐어요….
이안 브란트:(이안 브란트는 내심 당신의 손길이 끊이지 않길 바랐다. 실은, 사용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곱게 자란 도련님치고는 뭐든 혼자 하는 버릇이 들어 있고, 개중 옷 갈아입는 것쯤은 당연히 할 수 있음이 뻔한데도 일부러 거짓부렁을 하였다. 아무것도 못하는 도련님으로 남는다면, 당신이라면 밥도 하나하나 떠먹여 줄 것만 같아서. 당신이 저를 더욱 신경쓰고, 챙겨주었으면 해서. 목 끝까지 단추가 채워지면 칭찬하듯 뺨을 쓸었다.) 그런 것도 챙겨 다녀? (이어 손수건 보여달라는 듯 손바닥을 내밀었다.)
첸 티엔:앗…. (주춤하는 것도 잠시, 곧장 손수건을 펼쳐 당신의 손 위로 올려 둔다. 이안 브란트가 첸 티엔의 그림을 싫어할 리 없으니까. 확신이 하나둘 쌓여 간다.) 네, 네에. 혹시, 모르니까….
이안 브란트:그린 거야? (시선은 귀퉁이의 붉은 장미 위로 고정된다. 당신이 새긴 잎새 하나하나를 훑더니, 대답 들을 새도 없이 손수건을 꼭 움켜쥐었다.) 나 가질래. (가져갈 새라 즉각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도련님은 제 주머니에 유난히 값비싼 것들만 넣어뒀다. 윙쿨룸의 땅문서, 아버지가 먼 땅에서 공수해 왔다던 알이 크고 빛나는 보석들, 어느 유명한 작가가 남겼다는 하나 뿐인 유품, 마지막으로 첸 티엔의 손수건까지. 나갈 채비는 모두 끝이 났다.)
이제, 나갈까? (손을 내밀었다.)
첸 티엔:(이로써 첸 티엔은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소박한 벌이치고는 큰돈 들여 산 붓이며 물감, 팔레트며 캔버스, 그에 비해 조금은 허름한 옷가지와 생필품, 마지막으로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었던 손수건까지. 들고 온 모든 것을 윙쿨룸의 장작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빈털터리가 되었음에도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것, 감히 바라지도, 우러러보지도 못했던 것을 얻게 되지 않았는가. 사랑. 첸 티엔은 당신의 존재를 곧 사랑이라 명명했다. 망설임 없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네, 네에. 같이….
이안 브란트:(제 방을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그의 시선은 당신에게 꽂혀 있었다. 한 곳에서 나 스물 몇 해를 지냈다고 하여 고작 이런 곳에 미련 남겨두지는 않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액자 속에서 벗어나면 나는 당신과 바깥을 거닐고, 미래를 그리고…. 어느덧 손에는 성냥갑이 들려 있다.)


복도를 막 지나면 불이 붙은 기둥이 끊어지며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저 먼 곳에서부터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0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창문에 꽉 막힌 실내의 공기가 탁합니다. 눈이 따갑고, 불길로 인한 새까만 연기 탓에 호흡이 가빠집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안 브란트:(인상 찌푸린 채 손가락으로 먼 곳 가리킨다.) 저쪽인 것 같지, 출구.
첸 티엔:(고개 끄덕인다. 당신이 상체를 숙이게끔 붙잡은 손 아래로 잡아당기기도 했다.) 숨, 최, 최대한 참으세요. 호, 혹시 모르니까….
이안 브란트:(순순히 상체를 숙였으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녹아버리진 않겠지? (중얼거림.)
첸 티엔:(자신도 모르게 맞잡은 손에 힘을 준다. 화마 탓에 사위가 연기로 자욱하니, 그 표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럼…. 가, 같이. 녹을게요. 외, 로우시지 않게….
그러니까... (손을 이끈다. 뜻하는 것은 명백했다. 함께 잔디를 밟고,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바깥의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고….)
이안 브란트:(함께 죽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잖아, 그러니까…. 고개 겨우 끄덕인 뒤 당신과 걸음을 나란히 했다.)

저택을 빠져나옴과 동시에 등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리며 완전히 가라앉습니다. 이제 저택은 새까맣게 타올라 형체도 남지 않았습니다.
푸르르던 하늘에는 이제 매캐한 연기만 가득하고, 옆을 돌아 보면, 그는 정원을 밟고 서 있습니다. 물감처럼 녹아내리지도 않고, 온전하게, 평범하게.
저택을 불태우는 것, 없애는 것은 정답이었나 봅니다. 한참이나 저택의 불씨는 잦아들지 않았지만, 지난 밤 목성이 떠 있던 자리에는 손톱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영역이 타오르는 풍경을 그는 멍하게 서서 구경하기만 합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저택. 이곳에서 태어난 것들을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는 저택. 그러나 이제 이안의 소원대로 저택은 사라졌습니다.

이안 브란트:(얼떨떨한 표정이다. 제 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가, 다시 하늘 위로 솟는 연기를 보았다가… 그러나 시선의 마지막은 결국 당신일 것.) 진짜 나왔어. 너랑….
첸 티엔:(줄곧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만을 눈에 담아내고 있었으므로, 눈길 닿는 순간 시선이 마주친다.) 아, 아프진, 않나요? 정말…. 괘, 괜찮은 거예요?
이안 브란트:(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다. 그럼에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어. (부러 모호한 답을 하며 어깨에 머리 기댄다.) 그러니까 손 놓으면 안 돼. 나 넘어지면 혼자 못 일어나.
첸 티엔:(첸 티엔은 이상한 곳에서 둔한 구석이 있었다. 당신의 말뜻 눈치채지 못하고 사색이 되었다. 몸에 손 하나 대지 못해 쩔쩔매던 이는 어디에 갔냐는 것처럼, 잘게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양어깨를 붙든다.) 어, 어디…. 아, 파요? 아, 안 되는데. (급기야 눈물마저 고인다. 목소리가 떨려 온다.) 아, 안 놓을게요. 그러니까, 아, 프지 마세요….
이안 브란트:우, 울어? 울지 마, 나 괜찮으니까…. (당황한 기색 스치더니 금세 당신의 눈가를 문질러준다. 안심시키듯 떨리는 손 붙들어다가 양손으로 꼭 쥔다. 또렷하게 마주하던 눈은 어느새 부드러이 휜다.) 안 아파. 하나도. (그래도 놓으면 안 돼. 그럴 일 없다는 것 알면서도 꼭 덧붙였다.)
첸 티엔:(눈가에 온기 닿자마자 눈물 몇 방울 떨구어 낸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기, 그것이 제게 닿을 무렵이면 무어든 괜찮아질 것만 같아서...) 응, 펴, 평생…. 놓지, 않을게요. 그, 그러니까…. 저희, 가, 같이. 바다를, 보, 러…. 갈까요.
이안 브란트:앞으로 눈물 나게 하는 일 없을 거야. (그 눈물을 닦아주며 퍽 청혼처럼 들리는 말을 내놓았다. 정말 없을까? 같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감동적인 순간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망설임 한 점 없이 고개 끄덕였다.) 으응, 그림도 다시 그려줘야 해. 네가 그려주는 그림이라면, 무어든 좋을 것 같아. (지금 이안 브란트는 첸 티엔을 유일하게 사랑하지만, 후일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이라면 모두 사랑하게 될 테지.)
첸 티엔:(자연스럽게 미래를 약속하고 있노라면, 바라는 것이 늘어나고야 만다. 우선은 함께 바다를 보러 갈 것이다. 맨발로 모래사장을 밟고, 소라고둥을 주워 파도를 귀에 담고, 밤이 찾아오며 붉은빛으로, 보랏빛으로 물드는 하늘마저 눈에 담고, 별이 총총 빛나면 이마를 맞댄 채 사랑을 속삭이고….)
(혹자는 그림을 변치 않는 것이라고도 칭한다. 영원히 그 장면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하나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만큼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두 사람이 그려낼 지금만큼 선명치 않으니, 두 사람에게 그림이란 실재하는 것을 틀에 가두는 가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첸 티엔은 붓을 든다.)
(이안 브란트는 그림이 싫다 말했다. 그러나 첸 이안은 그림이 좋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족했다. 첸 티엔은 평생토록 붓을 놓지 않을 것이다.) 브, 란트 씨가…. 좋, 아해주신다면, 저는…. 펴, 평생, 물감을 묻힐게요. 손에, 팔에, 얼굴에…. 저, 전부.
이안 브란트:나는 첸 티엔의 음악도 좋아할 거고, 네가 손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도 좋아해. 아, 참. 굿나잇 키스도. (농처럼 덧붙이며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새카만 재가 되어버린 저택, 그 앞에서 당신의 손을 이끌며 잔디밭 위를.)
그리고… 이제 이안이라고 불리는 것도 좋아할 텐데, 모두 해 줄 수 있지? (도련님에서 브란트 씨…. 이제는 이안이라고 부를 차례이지 않나. 걸음은 점차 빨라진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면 돼? 나 마차도 안 타 봤어. 재미있겠다. 그런데 마차는 어디서 탈 수 있어? 모른다고? 그냥 걷지, 뭐. …응? 벌써 시들해진 것 같은데 착각이지? 아주 시시콜콜한 말들이 이어진다. 여태껏 보낸 나날보다 가장 바쁘고 활기찬 시간들이 이어질 것만 같다.)

우연한 만남, 운명 같은 나흘이 연기처럼 지나갑니다. 앞으로 만들어나갈 이야기는 길고 길겠지요. 그야, 두 사람은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이성치 1d5 회복
도련님이 훔쳐준 보상:: <재력>이 1d10 성장합니다.
첸 티엔:1
10
| 기준치: | 21/10/4 |
| 굴림: | 31, 48, 44 |
| +2: | 실패 |
| +1: | 실패 |
| 0: | 실패 |
| -1: | 실패 |
| -2: | 실패 |
(안경 뽀득뽀득.)
이안 브란트:(빤...)
첸 티엔:
| 기준치: | 21/10/4 |
| 굴림: | 89, 98, 86 |
| +2: | 실패 |
| +1: | 실패 |
| 0: | 실패 |
| -1: | 대실패 |
| -2: | 대실패 |
(뽀, 뽀드득...)
이안 브란트:(빤히 보며 발 탁탁 구름...)
첸 티엔:
| 기준치: | 21/10/4 |
| 굴림: | 51, 32, 94 |
| +2: | 실패 |
| +1: | 실패 |
| 0: | 실패 |
| -1: | 실패 |
| -2: | 실패 |
(눈치 힐끔...)
이안 브란트:너네 집 아닌 거 아냐?
첸 티엔:여, 여기 맞아요. (훌쩍...)
위, 윙쿨룸에... 열, 쇠를. 두, 두고 나와서...
이안 브란트:진짜 마지막으로 기회 줄게. (뭘?)
첸 티엔:(우웃...)
| 기준치: | 21/10/4 |
| 굴림: | 51, 3, 72 |
| +2: | 극단적 성공 |
| +1: | 극단적 성공 |
| 0: | 실패 |
| -1: | 실패 |
| -2: | 실패 |
(눈 반짝!!!)
이안 브란트:드디어.
(이거 칭찬... 해줘야 하나? 두 박자 늦게 머리 쓰다듬었을 거다.)
첸 티엔:(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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