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사이드 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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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오늘 부장 결석이래요.”
“뭐? 지역 대회가 코앞인데 왜?”
“몸이 안 좋대요. 요즘 감기가 유행이잖아요.”
여름의 입구. 정신없던 중간고사도 어느새 끝이 났습니다. 학생들의 입에서는 온통 다가올 여름 축제나 부활동에 대한 얘기 뿐이라 이제 여름이라는 실감이 나죠. 막 짧아진 교복 소매가 한결 가볍습니다.
점심시간, 당신은 어떤 이유에서든 교실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점심시간 당신은 무얼 하나요?
첸 티엔:첸, 어디 가?
(걸음을 뗄 적마다 동급생들에게 붙들렸다. 물론, 과장 섞인 표현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허리 너머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높이 올려 묶기도 했다. 여름날만 되면 머리가 긴 것이 그렇게도 불편할 수가 없었다. 투덜대며 매점에 도착하면,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골라 값을 치렀다. 익숙하게도 아이스크림 껍질을 벗겨 쓰레기통에 밀어 넣고서는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여름 바람이 느껴지고 멀리서 함성이 오고갑니다. 곳곳에 도시락이나 매점에서 사온 빵 등을 펼쳐놓고 함께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당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덤이고요.
그런 것들을 뒤로 하고 구름다리로 향하는 길목을 걷습니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샛길입니다. 그 순간.
쨍그랑!
:어라? 곁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파편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그러고보니 어딘가의 복도 창문에 금이 가 위험하니 수리할 때까지 주의하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난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창 너머 사람과 눈이 마주칩니다. 같은 반 학생인 사와다입니다. 그 옆에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사와다의 여자친구였던 것 같은데, 꽤 진지한 얼굴입니다. 싸우는 걸까?
“넌 진짜 개자식이야…”
“아니, 내 말좀 들어보라니까.”
“웃기네.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간다.”
“야!”
:이거... 들어도 되는 이야긴가요? 곁의 그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자, 사와다는 황급히 그를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멈칫, 깨진 창문에 눈길을 돌리고, 당신을 한 번 쳐다보고, 깨진 창문을 한 번 더 보더니…
사와다: 첸, 미안!!
뒷일 좀 부탁해! 어쨌든 인생에서 한 번은 달려야 할 때가 있으니까!!!
:같은 소리를 하며 튀어나갑니다. 엥?
첸 티엔:응? 으응? 저기요, 사와다 씨~?! (황당! 어정쩡히 손 뻗은 채 그 자리 그대로 굳고 만다. 그래, 살다 보면 복도에서 뛰어야만 할 때가 존재하고…. 그건 바로 지금인 것 같아 보였으니까…. 한숨 포옥 쉬고는 뻗은 손을 물러 휘휘 흔들기나 했다. 잘 해결되면 한턱내세요~.)
:황당해져 잠시 자리에 서 있으면, 어느새 혼자가 된 당신에게 다른 방향에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옵니다.
"거기, 누구예요?" 하고 모습을 드러낸 건 하필… 운 나쁘게도 신임 교사인 이안 브란트*입니다.
그는 깨진 창문을 발견하면 화들짝 놀라 달려오고, 당신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면 작게 한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당신이 뭐라고 변명을 하기도 전에...
이안 브란트:으음…. 첸 군이 깬 거예요?
:하고 확신에 찬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무슨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첸 티엔:(사와다… 아이스크림 한 개로는 만족 못 할 줄 아세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표정은 올망졸망해진다. 애교 어린 투.) 아뇨오. 저는 그냥 지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깨졌어요오.
이안 브란트:갑자기 깨지는 게 어딨어요…. (여전히 의심스런 눈빛!) 그런 표정 해도 안 돼요. 첸 군…, 앞으로 일주일 동안 수영장 청소를 좀 해 주셔야겠는걸요. 수업 끝나면 교무실로 와요. (가볍게 머리를 톡톡, 쓰다듬는다.)
첸 티엔:(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이 된다. 히잉.) 거짓말 아녜요.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45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안 브란트:으음.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6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거짓말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흠.) 다른 사람이 깬 건 아니구요?
첸 티엔:(열과 성을 다해 눈썹을 늘어트린다.) 죄송해요,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요. 너무 놀라서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었거든요.
이안 브란트:진범이 없으면 선생님은 좀 곤란한데…. (턱 매만진다.) 나중에 유리창 깬 사람을 찾으면 대타로 세워도 되니까, 미안하지만 오늘은 청소하러 와 줘야 할 것 같아요. (토닥.) 놀랐다니 좀 쉬시구요. 이따 수업에서 봐요.
:당신의 필살기에도 그는 오해를 풀지 않고 그저 자리를 떠납니다….
첸 티엔:(사와다……. 아이스크림 열 개는 사주셔야겠는데요. 또다시 한숨 포옥 내쉬기나 한다. 어쩔 수 없지, 뭐.) 네에에, 나중에 뵙겠습니다아….
:오후에는 이안이 담당하는 사회 수업이 있습니다. 교편을 든 그를 보자 점심에 있었던 황당한 사건이 떠오릅니다. 1주일이나 방과 후 청소를 하라니...?
저 쪽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사와다와 눈이 마주치면 그는 뜨끔한듯 미안! 제스처를 취하곤 다시 고개를 숙입니다. 핸드폰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친구와 아직 화해를 못 했나?
다시 고개를 돌리면 옆 자리에서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옆 자리 학생이 잡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안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네요. 그러고보니 최근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던 것 같기도…?
첸 티엔:(귀 쫑긋.)
:듣기 판정
첸 티엔: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있잖아. 앞 반 과학 선생님. 이안쌤한테 관심 있다는 거 알아?”
“응? 진짜?”
“진짜진짜. 나 교무실 청소할때 걔가 교감한테 우리 학교 사내결혼 되냐고 물어보는 거 들었다.”
아하하. 벌써 거기까지 설레발을 쳐? 웃기네.”
다시, 듣기 판정!
첸 티엔: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8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진짜? 뭐 잘못 들은 거 아냐?”
“아니, 진짜. 진로상담할때 확실히 J대 나왔다고 했단 말야, 브란트 선생님. 그런데 우리 사촌 오빠가 그 선생님이랑 비슷한 나이에 같은 과 나왔는데, 그런 사람 없었다고 했는걸.”
“뭐 입학 년도가 다르거나 그런 거 아냐? 자기 학교 사람을 어떻게 다 기억해.”
“아니, 진짜로. 궁금해져서 쭉 알아봤단 말야. 그 대학 안 나온건 확실하다던데.”
“... 앗. 혹시 학력위조…"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갑자기 화제를 바꿔 ‘그러고보니 요새 묘하게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감기가 유행이라던데 그 탓인걸까?’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보면,
돌연 이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안 브란트:사와다 군…, 핸드폰 주세요.
:학생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터집니다. 사와다는 봐달라는 애절한 시선을 보내지만 선생님은 꽤 가차 없네요.
사와다: 선생님, 진짜 한번마아안…
이안 브란트:으음. 안 돼요. 누구랑 그렇게 메시지를 열심히 하는 거예요?
사와다: 어, 엄마요! 엄청 급한 일이었단 말이에요~!
:또 다시 학생들의 웃음소리. 그 때, 누군가가 짓궂게 묻습니다. “선생님, 애인 있으세요~?”
교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일변해 “애인 이야기 해 주세요!” “첫사랑 이야기라도요~” 같은 함성이 오고갑니다.
첸 티엔:(사와다 쪽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사랑을 하면… 다 저렇게 앞만 보게 되는 걸까? 검지 사이에 끼워 둔 샤프를 돌리는 것도 잠시, 금세 아이들의 화제에 편승해 목소릴 냈다.) 선생니임, 첫사랑 이야기 듣고 싶어요~!
:이안은 아랑곳 하지 않고 교탁을 한 번 탁! 두드립니다. 아니, 분명히 귓가는 타들어갈듯 붉어졌지만요.
이안 브란트:자아…, 수업 할게요.
:에이~ 가벼운 야유 소리. 사와다의 핸드폰을 압수한 채 그는 수업으로 돌아갑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93 |
| 판정결과: | 실패 |
:어쩐지 선생님은 읽기 어려운 표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부활동이 있는 학생들은 각각의 부실로,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귀가 준비에 한창입니다.
그리고 티엔은... 명령 받은 수영장 청소가 있었죠. 정말 해야 할까…? 어떻게 할까요?
첸 티엔:(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자. 썩 담담한 태도로 가방을 둘러메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나중에 다 끝나면 열심히 했으니 첫사랑 이야기 들려주시면 안 되느냐고 여쭤봐야지.)
:걸음을 옮기던 찰나, 복도에서는 또 한바탕 소동이 납니다. 사와다와 그 여자친구네요.
“왜 연락에 답을 안 해? 진짜 여기까지 하자 이거야?”
“아니 핸드폰을 뺏겨서…! 야! 잠깐만 좀!”
눈 앞에서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내곤 또 다시 그는 여자친구를 쫓아 달려갑니다.
첸 티엔:(사랑을 하면… 다 저렇게 되는 걸까… 또다시 고개 절레절레 젓는다.)
:수영장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복도 끝에서 앞 반 과학 선생님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이안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저 인사를 나눈 뒤, 당신을 보고는 종종 다가옵니다.
이안 브란트:청소하러 가는 길이실까. (손에는 수영장 열쇠가 들려 있다.)
첸 티엔:네에에. 안 도망쳤어요. 착한 학생이죠?
이안 브란트:네에, 착한 학생이네요. (실없이 웃는다.) 도망치면 찾으러 갈 생각이었는데, 일 덜어줘서 고마워요.
첸 티엔:저어, 그런데…. (우물쭈물. 쭈뼛쭈뼛. 둘러멘 가방끈을 어색하게 만지작거린다. 물론, 연출된 행동이었다.) 열심히 청소할 테니까…. 끝나고 맛있는 거 사주시면 안 되나요? (제 잘못도 아니었는걸요오. 투정하듯 말 늘인다. 물론, 이것 또한 연출된 행동이었다.)
이안 브란트:그럼~… 그렇게 할까요?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퍽 귀엽게 보는 눈치이다. 수영장 방향으로 함께 걸음을 옮긴다.)
첸 티엔:정말요~? 우와~! (계획대로…. 헤헤 웃는다.) 네, 요즘엔 매일 하나씩은 먹는 것 같아요. 여름이잖아요. 선생님은요? 아이스크림 좋아하세요?
이안 브란트:(슬그머니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불가항력적이었다.) 뭐어, 좋아하는 편이에요. 많이 달지만 않으면. 감기나 탈 나지 않게 조심하시구요.
:학교 수영장은 강당 건물의 옥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당은 3층 정도의 높이로, 안에서 계단을 타고 위로 향합니다. 반 년 넘게 사용되지 않아 먼지가 쌓인 자물쇠를 가볍게 털어내고 문을 엽니다. 철문이 움직이는 묵직한 소리. 탁 트인 하늘과 옥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영장은 적당히 넓은 크기입니다. 한 가운데에 풀, 안 쪽으로는 탈의실 건물과 작은 휴게실, 구석에는 비트판 무더기가 비닐 커버로 덮여 있습니다. 작년 이 곳에서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풀은 5개의 라인이 들어가는 25M 길이로, 지금은 물이 빠져있습니다.
얼룩덜룩한 빗자국이 남은 푸른 타일 위로 먼지와 쓰레기들이 굴러다닙니다. 텁텁한 냄새가 납니다.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네요.
이안 브란트:여기이, 풀장만 청소하면 돼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하나씩 당신에게 건넸다.) 오늘은 쓰레기 걷어내고, 내일이랑 모레는 물걸레질을 하면 될 것 같고요.
4일차엔 마을 축제가 있으니 쉬는 게 좋겠어요. 5일차엔 호스 연결해서 물청소를 하면 될 것 같은데에, 다른 것들이야 도와주겠지만 마지막 물청소 때는 못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친구 데려와도 괜찮구요. 어때요? 일주일 금방이죠?
첸 티엔:(빗자루와 쓰레받기 받아서 든 채 눈 깜박인다.) 마지막 날엔 바쁘신 거예요?
이안 브란트:(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무얼 고민하는지.) 네에, 뭐…. (어색한 대답이 튀어나온다.)
첸 티엔:(갸우뚱.) 데이트라도 가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데이트? (웃음을 터뜨린다.) 다들 궁금해 하시네. 누구랑 갈까 봐요?
첸 티엔:으음. 과학 선생님? (실례될 수 있는 질문이니 부러 순한 낯을 뒤집어쓴다.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 친구들이 그러던걸요. 과학 선생님께서 이안 선생님을 좋아하신다고요.
이안 브란트:과학 선생님이요? (좋아한다?라는 말을 난생 처음 듣는 사람의 표정…. 멋쩍은 듯 옆머리를 비비 꼰다.) 으음, 친하게 지낸 건 맞지만. 제가 새로 왔다고 해서 과학 선생님께서 챙겨주시는 것뿐이니까요. 다른 친구들한테도 오해라고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첸 티엔:아하~. 네에, 알겠어요. (이안 선생님, 연애 쪽으로는 정말 둔하시구나.) 그러엄, 애인은 있으세요?
이안 브란트:(고개를 살살 내젓는다.) 첸 군은요? 한참 관심 있을 나이잖아요. 인기도 많아 보이던데. (당신이 교사를 거닐 때마다 낯선 학생들과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던 모양.)
첸 티엔:전 연상 취향이라서요~. (이런 발언이나.)
이안 브란트:졸업하고 연애하시려고요? (웃는다.)
첸 티엔:졸업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도요~? (당신의 등에 답삭 붙는다. 붙임성 좋은 학생이 선생님에게 매달려있는 꼴.) 실으은,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연애만 했다 하면 주변 상황을 살피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봐 왔거든요. 사랑이 대체 뭐길래 그러는 걸까요? 선생님은 아시나요?
이안 브란트:점심 많이 드셔야겠어요. 아이스크림만 먹고 다니는 건 아니죠? (꽤나 태평하게 당신의 무게를 받아들였다.) 글쎄요…. 사랑이라. (뜸.) 아주 많-이 보고 싶어도 참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들 미디어에서 말하던데요. 실없게도 덧붙였다.) 언젠간 알게 될 거예요.
그나저나 첸 군, 지금 청소 제대로 안 하시는 것 같은데…. (곧바로 화제를 돌린다.) 아이스크림 없어지는 중인 것 같아요?
첸 티엔:(후닥닥 떨어져서 빗자루질을 했다.) 서, 선생니임. 티엔 열심히 청소하고 있어요.
이안 브란트:네에에, 청소 잘하면 매일 하나씩 제 비밀을 알려드릴 수도오. (떠보듯 힐끔.)
첸 티엔:(퍼뜩 고개를 든다.) 비밀이요~? 예를 들면요?
이안 브란트:예를 들어 주면 재미 없죠. (뭐가.)
첸 티엔:(이잉.) 하지마안, 그게 뭔지 알아야 의욕이 날 것 같단 말예요.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5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안 브란트: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2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어차피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단호!)
첸 티엔:(올망졸망.) 하지마아안, 제가 깨트린 것도 아닌데. 선생님이 곤란해지시는 건 싫어서 나온 거란 말예요.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53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안 브란트:그건 그렇지마안.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21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래서 아이스크림도 사 드리는걸요. 파이팅하세요. (청소도구 들고 저쪽 끝으로 떠났다….)
첸 티엔:(안 통하네.) 네에에에….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청소가 끝나면 저 멀리서 청소를 돕던 이안이 다가와 빗자루를 받아갑니다. 한참 쓸고 닦은 보람이 있어 굴러다니던 쓰레기는 거의 다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꽉 찬 쓰레기 봉투를 묶느라 몸을 숙이자, 그의 목걸이가 노을 빛에 반짝입니다.
첸 티엔:선생니임, 하고 계신 목걸이 말인데요, 풀어질 것 같아서요. 제가 다시 채워드릴까요?
이안 브란트:(눈을 꿈벅인다.) 쉽게 풀어지지 않게 해 두었긴 한데, 그래 줄래요? (목걸이를 가볍게 쥔다. 목걸이의 펜던트는, 잘 살펴 보면 회중시계의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리카락을 걷어 허연 뒷목을 드러낸다.)
첸 티엔:(저런 타입의 액세서리를 좋아하시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목걸이 고리를 찾아 쥔다. 과정 중 시린 손가락이 목덜미에 닿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고리를 연결하곤 손을 거둔다.) 다 됐어요. 선생니임, 그런 디자인을 좋아하셨구나아.
이안 브란트:(손 끝이 닿을 때마다 어깨 작게 움츠렸다.) 고마워요. 그런 건 아니고…. (언뜻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 비밀 하나.) 친구가 준 거예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습니다. 선생님이 아닌 이안 브란트 개인의 얼굴. 누군지 모를 사람을 향한 친애의 감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것 뿐만이 아닌 것도 같아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첸 티엔:(친구. 자신도 모르게 읊조린다.) 내일도 이렇게…. 비밀 한 가지, 알려주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네에, 도와 주시는 거니까. 아이스크림도 매일 사 드릴 수 있어요.
첸 티엔:(헤헤 웃으며 또다시 당신의 등에 답삭 매달렸다.) 좋아요~! 오늘치 아이스크림도 사주셔야 해요.
:흔쾌히 끄덕입니다. 두 사람은 수영장을 대강 정리하고 아래로 내려 옵니다. 교무실에 열쇠를 다시 걸어놓은 이안은 매점으로 향하는 대신 학교 주차장 방향으로 향합니다.
이안 브란트:(어느새 가방까지 들고 있으니 딱 보아도 퇴근하는 모양새. 따라오라는 듯 손짓.)
첸 티엔:(졸래졸래 따라간다.) 저희 어디 가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아이스크림…. (눈을 깜박깜박.) 근처 공원에 유명한 데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첸 티엔:저는 매점이나 편의점 아이스크림도 괜찮은데에.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냉큼 당신의 곁에 달라붙어 있으니, 의도 투명하다.)
이안 브란트:오늘은 첫날이기도 하고, 시간이 나니까요. 내일부턴 정말 매점 아이스크림으로 만족하셔야 할지도. (총총 걸음을 옮긴다. 주차장 한 구석에 세워진 차 문을 열었다.) 아무 데나 타요.
첸 티엔:(잘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앞으로 둘러메고는 조수석 문을 연다. 의자에 등 포옥 기댄 채 괜히 엄살을 부렸다. 이 또한 의도된 행동일 것이다.) 선생니임, 가방 때문에 손 뻗기가 힘들어요. 벨트 매주시면 안 되나요?
이안 브란트:(기꺼이 벨트를 매준다. 조수석 방향으로 몸 기울여 머리카락이 늘어지면 제비꽃 향이 났을지도 모르지. 고개를 들어 퍽 가까운 곳에서 시선이 맞닿으면,) 첸 군, 가족관계가? (별안간 이런 물음을.)
첸 티엔:(눈 동글동글 뜬다.) 다섯 명이에요. 부모님이랑, 삼남매요. 이건 왜 물으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애교가 많길래 막내인가 싶어서요. 분명히 첫째라고 들었는데.
첸 티엔:(헤헤.) 동생들이 수줍음 많고 무뚝뚝한 편이라서요. 그래서 일부러 더 살갑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유들유들한 사람 한 명이 끼어있으면 친하게 지내기 쉽잖아요.
이안 브란트:기특하네요. (머리 복작복작 만져준다. 귀여워하는 티 애써 숨기려 하고 있으나 완벽히 숨겨지진 않는다. 운전대를 붙잡은 와중에도 몇 마디 질문을 했다. 좋아하는 과목 있어요? 사회는 좋아해요? 동아리는? 따위의,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들을 법한 질문들이었지만. 공원 주차장에 주차한 뒤 내릴 때엔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으로요?
첸 티엔:(요즘엔 사회가 좋더라고요. 선생님 수업이 재밌어서 그런가 봐요. 사회생활 만 점짜리 대답을 내놓으며 시간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방긋방긋 웃으며 차에서 내려 당신의 뒤를 졸졸 따랐다.) 선생님은요? 무슨 맛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추천해 주세요.
이안 브란트:(귀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대답이군…. 인생 2회차 같긴 한데.) 선생님은 그냥 바닐라 맛이 좋네요. (심심한 대답이다.) 좀 더 단 걸 좋아하실 것 같으니까, 초코? (괜찮죠? BEST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주저없이 바닐라와 초코로 골랐다.)
첸 티엔:(그럼 저도 바닐라로 할래요. 말하려던 것을 꿀꺽 삼켜내었다. 메뉴가 다르단 이유를 빌미 삼아 당신의 아이스크림을 한입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 탓이다.) 네에에. 그렇지만 바닐라 맛도 궁금해요. 저희, 나눠 먹으면 안 되나요~?
이안 브란트:아기…. oO(네에 그래요.)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나눠 든 채 공원의 벤치 적당한 곳에 앉습니다. 해가 긴 덕에 바깥이 그리 어둡지 않은 덕이었습니다.
이안 브란트:(아이스크림을 거의 당신 방향으로 밀어둔 채 발만 까닥거렸다.)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 집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나중에 방향만 알려 주세요.
첸 티엔:(냉큼 당신 몫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문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어라, 이거… 간접키스 아냐?) 저, 건장한 고등학생인걸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선생님도 일찍 퇴근하고 싶으실 거 아녜요.
이안 브란트:건…장?
첸 티엔:(허리며 어깨 쭈욱 펴고 앉는다.) 건장하죠.
이안 브란트:음, 아직 부족한데. 더 드셔야 할 것 같아요. (팔 콕콕. 별 생각 없이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입.)
첸 티엔:지금도 잘 먹고 있는걸요. 아, 제 것도 드셔 보실래요? (몇 입 먹은 초코아이스크림 불쑥 내민다.)
이안 브란트:으응. (순순히 한 입 받아먹는다.) 어느 쪽이 더 취향이에요?
첸 티엔:(헤헤.) 둘 다 맛있어요. 하지마안, 선생님이랑 같이 오게 된다면 또 초콜릿 맛을 고를 것 같네요. 그래야 나눠 먹을 수 있잖아요.
이안 브란트:(귀엽긴.) 미래의 연인에게 사랑 많이 받겠어요. 애교가 이렇게 많아서야.
:두 사람의 눈 앞에는 분수 하나가 작동하며 시원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지나가던 커플이 안에 동전을 던지는 것을 보아 흔히 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인가 봐요. 원한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보아도 좋겠네요!
첸 티엔:그랬으면 좋겠네요. (문득 시선을 돌려 분수를 바라본다. 당신의 소맷자락을 죽죽 잡아당긴다.) 선생니임, 저희도 저거 하러 가요.
:분명 그럴 것 같아요. 그 사랑이라는 것만 알게 되면. (농조로 말하더니 지갑 뒤적여 동전 한 개를 꺼낸다.) 빌고 싶은 소원 있어요?
이안 브란트:분명 그럴 것 같아요. 그 사랑이라는 것만 알게 되면. (농조로 말하더니 지갑 뒤적여 동전 한 개를 꺼낸다.) 빌고 싶은 소원 있어요?
첸 티엔:으음. (고뇌하는 척 턱을 만지작거린다.) …운수대통~? 하하, 막상 떠올리려니 어려운 것 같아요. 선생님이 대신 빌어주시면 안 될까요? 제 소원 말이에요. 착한 학생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시는 것처럼요.
이안 브란트:(덩달아 웃음 터뜨렸다.) 뭐어, 빌어드릴 수 있는 거야 많지만. 소원은 입 밖으로 내놓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잖아요. 제가 무슨 소원 빌어드렸는지 모르고 지내도 괜찮아요?
첸 티엔:으응, 그럼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선생님 생각을 할 수 있겠네요. 선생님이 그때 이런 소원을 빌어주셨나보다, 하고요. (순진하게…… 웃는다.) 더 좋아졌어요. 빌어주세요, 네에?
이안 브란트:첸 군이 직접 이뤄낸 행운까지 제 덕으로 돌리는 건 좀 곤란하지만…. 말만은 기쁘네요. (멋쩍은 듯 신발코로 바닥을 차다가 분수 가까이로 다가갔다.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단순하고 막연하기 짝이 없는 소원을 하나 빌었다. 단지 당신의 행복을. 퐁당 소리와 함께 분수 중앙으로 동전을 빠뜨렸다.) 다행히 잘 들어갔네요.
첸 티엔:(눈을 감고, 제 행운을 빌어주는 이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았다. 동전 잘랑이는 소리 들릴 적이면 히히, 웃어버리기도 했다. 괜히 가슴께가 간지러운 느낌이라.) 선생니임, 첸 군이 아니라, 티엔 이에요.
이안 브란트:다른 학생들이 질투하겠는걸요. (나직이 웃는다. 구태여 이름을 부르지도 않았다.) 돌아갈까요? 선생님은 이미 퇴근을 했고, 건장한 고등학생이라도 제 학생이니 데려다 드리고 싶은데. 괜찮죠?
첸 티엔:설마요~. (자리 툭툭 털고 일어났다.) 정말 혼자 가도 괜찮은데요. 그치만, 뭐. 티엔 군이라고 불러주신다면 고집 안 부릴게요.
이안 브란트:(결국 당신에게 지고 만다. 싫지 않은 듯한 미소와 함께.) 네에, 티엔 군. 어린이는 집에 갈 시간이에요. (에스코트라도 하듯 차 문을 열어주고 다시금 벨트를 매 주었으며, 집 앞까지 가 내려주었을 테다. 창을 반쯤 내린 채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일 봐요.
첸 티엔:(열린 창문 사이로 시선이 마주치면, 그대로 눈꼬리를 휘어 웃는다.) 네에, 내일 뵐게요. 오늘 감사했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이상하네… 몸이 무거워.”
“너도 감기야? 요즘 다들 왜 이래?”
“... 오늘은 일찍 갈래. 가야겠어. 날 부르는 거 같아.”
다음 날. 평소보다 늦게까지 몸을 움직였던 탓인지 몸이 뻐근합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여름 감기가 유행이라던가? 피로나 졸음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아진 것도 같아요. 날이 갑자기 더워지고 있으니 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방과 후는 오고 청소 시간이 돌아옵니다.
방과후 시간입니다. 오늘도 당신은 청소를 하러 가나요?
첸 티엔:(가방을 대충 둘러멘 채 수영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성실하게 청소를 하러 갑니다! 이안 또한 늦지 않게 와 수영장의 문을 열어주네요.
이안 브란트:오늘도 왔네요. 올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어젠 잘 들어갔어요?
첸 티엔:네에, 덕분에 편하게 들어갔죠. (종종걸음으로 당신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선다. 눈높이는 비슷한 것 같은데. 나중엔 내가 더 크게 되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요? 피곤하진 않으세요? 요즘 여름 감기가 유행이라던 걸요.
이안 브란트:(눈을 깜박깜박. 쪼그매.―아닐 것이다―) 감기? 그래서 다들 그렇게 수업시간마다 조는 걸까요? (갸우뚱 고개를 기울인다. 이것 또한 아마 아닐 것이다….) 저는 괜찮지마안, 오늘은 교무실에서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내려가봐야 할 것 같아요. 돌아갈 때 열쇠 반납해 줄래요? (수영장 열쇠를 쥐여준다.)
첸 티엔:(얌전히 열쇠를 받아든다.) 오늘도 비밀 얘기해주실 거지요?
이안 브란트:별로 재미있는 얘긴 아닐 텐데, 궁금하시다면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오늘도 수고해 줘요.
첸 티엔:궁금한 만큼 열심히 해야겠네요. (헤헤 웃으며 손을 흔든다.) 다 끝나면 찾아뵐게요.
이안 브란트:네에, 이따 봐요. (같이 손을 흔들어 준 뒤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첸 티엔:(오늘은 물걸레질을 하면 된다고 하셨지. 청소도구함을 뒤적여 대걸레를 꺼낸다. 손이 더러워지는 건 싫으니 적당히 발로 물을 꾹꾹 짜낸 뒤 수영장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적당히? 요령껏? 청소를 마무리한다.)
:적당히? 요령껏? 청소를 마무리 한 오후. 처음 풀장에 들어섰을 때 나던 매캐한 악취는 어느새 많이 날아간 것 같습니다. 제법 뿌듯함이 느껴지네요!
돌아갈 때는 열쇠를 반납하고 가 달라고 했었죠. 아직 남아있을까? 교무실로 향하면, 교직원들은 대부분 이미 퇴근한 듯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안의 책상에 이것저것 놓여있긴 하나, 본인은 자리를 비운 상태네요.
첸 티엔:응? 어디 가셨나…? (슬그머니 이안의 책상에 다가서 본다.)
:이안의 책상 위는 유달리 깔끔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딱히 물건이 없네요. 그러니 깔끔해 보일 수밖에. 그의 책상 위에는 당신의 정보가 쓰인 학생기록부와 메모 하나가 있습니다.
첸 티엔:(스을그머니 학생기록부를 훔쳐본다.)
:당신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이 적힌 학생기록부입니다. 담임 선생님도 아닌데, 이런 건 왜 들고 있는 걸까요?
첸 티엔:(관심 받는 거 좋아. 시답잖게 생각하며 메모도 훔쳐본다.)
:글씨를 날려 쓴 데다가 다시 볼펜으로 덧칠해 지워 정확한 내용은 보이지 않습니다. 열심히 들여다 보면, 그 사이로 ‘수정', '검은' 등의 단어 몇 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첸 티엔:(갸웃? 멀뚱멀뚱 서 있는다.)
:메모를 확인하고 있으면, 안 쪽 교사 휴게 공간에서 그림자 하나가 움직입니다. "누구 있어요?" 익숙한 목소리네요. 이안입니다.
첸 티엔:선생니임~! (꼬리가 달려 있었다면 분명 붕붕 흔들렸을 것이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후다닥 걸음 옮긴다.) 청소 다 했어요. 칭찬해 주세요.
이안 브란트: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고생 많았어요. (교사 휴게 공간 내의 냉장고 윗칸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건넨다. 동시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열쇠를 달라는 뜻인 듯.)
첸 티엔:(양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내민다. 반지 하나 끼우지 않은 손은 유독 시허옇기만 하다. 아이스크림을 받은 뒤 열쇠를 돌려주었다.) 비밀도 얘기해주셔야 해요.
이안 브란트:반지는 청소한다고 뺀 거예요? 분명 수업시간에는 끼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이스크림은 레몬맛. 교무실 방향으로 향하여 벽에 열쇠를 걸어둔다.)
첸 티엔:(당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이스크림을 물었다.) 으응, 그런 건 아니고요.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뺐어요. 단정한 학생을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이안 브란트:(나직이 웃는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선생님이라서? 선생님은 티엔 군이 어떤 모습이든 좋아할 것 같은데.
첸 티엔:정말요? (냉큼 당신의 곁에 달라붙는다.) 하지마안, 선생님들께선 보통 모범생을 좋아하시잖아요. 용모단정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런 학생 말예요.
이안 브란트:정말요오. (부러 말 끝 늘였다.) 저 그렇게 고지식하지 않아요~? (고지식하다.)
첸 티엔:(헤헤.) 그러엄, 반지 껴도 돼요?
이안 브란트:네에, 그럼요. 아끼는 반지 저 때문에 빼뒀다가 잃어버리면 곤란하잖아요.
첸 티엔:선생님이 끼워주시면 안 되나요? 저어, 아이스크림 때문에 손이 안 남는걸요.
이안 브란트:어리광쟁이네. 그럼 저 주실래요? 반지.
첸 티엔:(오른손으로 막대를 쥐고 있었으니 남는 것은 왼손뿐이다. 왼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여 반지를 꺼낸 뒤 당신에게 내민다. 그리고는 당연하게도 왼손을 펼쳐보였다.) 여기이, 검지랑 약지에 끼워 주세요.
이안 브란트:(손바닥 감싼 채 검지에 반지 하나를 끼워주었다. 다만 약지만은 비워둔다. 다시 반지를 당신의 손바닥에 얹어 주먹을 말아준다.) 여긴…. 저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편이 좋겠네요. 의미 있는 데잖아요. (담담한 얼굴이다.)
첸 티엔:(말아쥔 손을 편다. 그리고는 다시 내민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반지가 유독 빛이 났다.) 괜찮아요. 끼워주실래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걸요.
이안 브란트:(별수 없이 반지를 다시 집어들었다. 그대로 소지에 끼워주었다. 화제 돌리듯 입술을 뗐다.) 두 번째 비밀. 물을 무서워해요. 수영장 청소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도 그 이유. (당신을 덩그러니 자리에 남겨둔 채 제 책상으로 걸어가 가방을 챙겨들었다.) 저희도 그만 돌아갈까요?
첸 티엔:그렇구나아. 그래서 물청소 때는 못 도와주시는 거예요? (졸래졸래 뒤따른다.)
이안 브란트:정답. (어렵지 않게 긍정한다.) 데려다 드릴까요?
첸 티엔:(물에 빠진 적이라도 있으신 걸까? 궁금한 것은 많으나 묻지 않는다.) 네에. 태워다 주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이유는 내일 말씀드릴게요.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 덧붙였다. 두 걸음쯤 앞서 걷다가, 걸음을 멈추어 나란히 선다.) 응. 그래도 괜찮죠?
첸 티엔:(우물거린다.) 궁금한 건 맞지만…. 말씀해주시기 어려운 일이라면 듣지 않아도 돼요. (앞선 이가 멈추었으니 거리는 좁혀지기 마련이다. 나란히 선 채 당신을 바라보았다. 역시 눈높이는 비슷하구나.) 오늘도 벨트 매주신다면요.
이안 브란트:어려울 거 없어요. 아주 옛날 일이고, 뻔한 이야기니까. (시선이 올곧게 마주한다. 어느덧 장난스레 눈을 휜다.) 다른 어른들에게도 이렇게 어리광 부리는 편이실까?
첸 티엔:(머뭇거리는 것도 잠시, 웃는 얼굴 마주한 뒤에야 긴장 풀린 듯 어깨를 추욱 늘어트린다.) 아뇨오, 선생님 앞에서만 이러는 건데요.
이안 브란트:(내가 편한가 보군….) 편하게 여겨줘서 고마워요. (이어지는 행동은 어제와 다를 바 없다. 나란히 걸어 주차장으로 향한다.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고, 운전석에 탄다. 몸을 기울여 벨트를 매준다. 시선이라도 마주친다면 시답잖은 질문을 던진다.)
첸 티엔:선생니임.
이안 브란트:네?
첸 티엔:첫사랑 얘기 듣고 싶어요. (헤헤.)
이안 브란트:그건…. 마지막 날의 비밀로 남겨 둘까요? (고개를 잠시 돌렸다가도 다시 앞을 쳐다본다.) 하여간 연상이었어요. (농인지 진심인지.)
첸 티엔:연상이 취향이신 거예요~?!
이안 브란트:어, 엇. 안 그래 보이나요? (당황….) 취향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그런 셈 아닐까요? (오묘.)
첸 티엔:왜요? (이런 발언이나.)
이안 브란트:왜, 왜? 뭐, 뭐가……?
첸 티엔:연하는 관심 없으세요?
이안 브란트:글쎄요? 연하…. 생각해 본 적 없긴 하네요. 이상형 질문 시간인가요 이거?
첸 티엔:네에. 이건 비밀은 아니니 말씀해주실 수 있잖아요.
연상보단 연하가 낫지 않나요? 귀엽고, 말도 잘 듣잖아요.
이안 브란트:귀엽고 말도 잘 들으시긴 하죠. (힐긋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연하는 너무… 어려 보이지 않나, 싶어서요? 이, 이런 말은 어린 친구들한테 실례인가? (하지만 티엔 군은 아이가 맞긴 하죠…. 덧붙이기나.)
첸 티엔:저…… 어려 보이나요?!
이안 브란트:어, 어, 어리잖아요……? (동공 지진났다.)
첸 티엔:곧 성인인데도요?
이안 브란트:(갸우뚱.) 몇 살이더라?
첸 티엔:열여덟이요.
이안 브란트:그렇긴 하네요…. 암만 그래도 성인이랑 곧 성인은 다르지만. (단호!)
첸 티엔:하지만 키도 큰걸요.
이안 브란트:저랑 비슷하긴 하죠…. (이런 부분이 어리다는 건데도! 이건 속으로만 생각했다.)
첸 티엔:선생님보다 더 클 거예요.
이안 브란트:으음, 그건 분명 그럴 것 같네요. 한창 성장할 나이죠. 부럽네요. 농구할 맛도 나겠네….
첸 티엔:(우.)
이안 브란트:왜 그런 표정이에요?
첸 티엔:어리게만 보시는 것 같아서요.
이안 브란트:별론가요? 그렇지만 저는 선생님이니까, 학생들은 다 어려 보일 수밖에 없는걸요.
첸 티엔:저 빨리 졸업할게요.
이안 브란트:왜… 왜요?
첸 티엔:빨리 졸업할게요.
이안 브란트:빨리 어떻게 졸업을 해요오.
첸 티엔:조기졸업 할게요.
이안 브란트:그럼 성인이 아니잖아요…~?
첸 티엔:학생들은 다 어려 보인다고 하셨잖아요? 일단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떼어버리면…….
이안 브란트:떼어버리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금방 차가 멈춰선다.) 자자, 도착했어요. 집에 가셔야죠.
첸 티엔:벨트 풀어주세요오.
이안 브란트:자꾸 귀엽게 어리광 부리면서 어려 보이긴 싫다는 거 모순이에요? (장난기 묻어나는 목소리. 손 뻗어 벨트를 풀어주었다.)
첸 티엔:이왕 어리게 보일 거라면 귀엽게라도 보여야죠. (어깨 으쓱! 느릿느릿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오늘도 태워다주셔서 감사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이안 브란트:그런 거 안 해도 귀여울 나이인걸. (어제처럼 창문 반 내린 상태로, 느리게 한 손 흔들었다.) 응, 내일 봐요.
첸 티엔:(덩달아 손 흔든다.) 네에에.
:다시 다음 날입니다. 드디어 청소 셋째 날이네요. 수영장 청소가 끝나기까지도 벌써 얼마 안 남았어요! 아무쪼록 힘내자구요. 오늘도 티엔은 수영장으로 향하나요?
첸 티엔:(참 이상하지.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든다. 오늘도 가방을 둘러멘 채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 도착하면, 먼저 온 이안이 마침 잘 왔다는 표정으로 당신을 맞이합니다.
이안 브란트:어제 청소 깨끗하게 잘 되어있던데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청소 대신, 잠깐 바깥에 나갔다 오지 않을래요?
오늘 낮에 학생들이 밀대를 쓰다 부러뜨리는 바람에 채워 넣어 달라는 말씀이 있으셨거든요. 마침 급하게 떨어진 다른 비품도 있으니 근처 마트에 다녀오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 청소 대신, 짐 좀 들어주는 걸로. (차키를 짤랑거리며 흔든다.)
첸 티엔:(냉큼 따라붙는다.) 저 힘도 세요. (어제의 연장?선? 같다.)
이안 브란트:으응. 힘도 세구나…. (아기군.)
첸 티엔:네에. 열심히 들게요.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근처 마트로 향합니다. 한적한 마트이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이안은 곧장 청소 도구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며, 당신에게 따라와 준 김에 간식 하나쯤 고르고 와도 괜찮다고 말하네요. 어떻게 할까?
첸 티엔:(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중에요. 선생님이랑 같이 고르러 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이안 브란트:으응, 안 될 건 없죠. (카트를 밀며 당신을 옆에 세운다. 발 조심하구요.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을 보아 아주 어린 취급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청소함에 채울 물품들은 가득 담은 뒤에야 간식 코너로 향한다.)
첸 티엔:제가 밀어도 되는데. (얌전히 뒤따른다. 간식 코너를 빙빙 돌더니 초콜릿 하나를 집어 카트 위로 올려둔다.) 전 이거면 돼요. 감사합니다.
이안 브란트:쪼그만데도?
첸 티엔:응? 그러엄… 하나 더? (독같은 초콜릿을 한 개 더 집어 올려둔다.)
이안 브란트:쪼끄만데도…….
(비슷한 간식을 하나 집어 들어 카트에 넣었다.) 욕심이 없네요.
첸 티엔:그런 말 처음 들어봐요. 식탐 많다는 소리는 자주 들어봤는데에.
이안 브란트:(갸웃?) 어릴 때는 많이 먹어야 해요. 그래야 키도 크죠.
첸 티엔:그쵸? 전 그냥 잘 먹는 편일 뿐이라고요. (헤헷. 웃으며 냉큼 당신의 옆에 달라붙는다.) 온 김에 장도 보고 가요. 선생님의 저녁 메뉴가 궁금하단 말이에요.
이안 브란트:저녁 메뉴? 그냥 적당히… 집에 있는 걸로 때울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열심히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네요….
첸 티엔:잘 챙겨 드셔야죠. 반찬거리 사러 가요. 네~?
이안 브란트:음……. (고민이 길다. 결국 당신 말을 따를 것은 뻔하지만. 카트를 밀어 냉장 코너로 향하였고, 기본적인 채소류를 카트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 축제인데, 다른 친구들이랑 약속은 좀 잡았어요?
첸 티엔:(이건 어때요? 이거는요? 아, 이런 건 싱싱하지 않은 거예요? 끊임없이 조잘대며 카트를 채워나갔을 것이다.) 으음, 아뇨오. 선생님이랑 같이 놀고 싶어요.
이안 브란트:(퍽 데이트 같은 분위기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녁까지 먹고 가지 않겠느냐 말하려다 입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그건, 좀…. 그렇잖아?) 아쉽게도 선생님은 그날 순찰 돌아야 해서요. 2인 1조라고 들었으니 아마 다른 선생님이랑 같이 있지 않을까요? 저보다는 친구랑 놀아야지.
첸 티엔:(우.) 그러엄…. 오늘 더 놀아주시면 안 되나요? 장도 같이 봤는데에. 저녁 얻어먹고 싶어요.
이안 브란트:저녁은 가족이랑 먹어야죠. (머리 톡 쳤다.)
첸 티엔: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단 말이에요. 시켜 먹을 생각이었는데에.
이안 브란트:(고개 잘게 흔들었다.) 그렇지만 집에 데려가는 건 좀 곤란해서. 바깥에서 사 드릴 순 있을 것도 같지만.
첸 티엔:(히잉.)
이안 브란트:귀엽게 굴어도 안 돼….
첸 티엔:저 귀여워요?
이안 브란트:귀… 엽죠?
첸 티엔:(헤헤.) 그럼 사 주세요. 혼자 먹는 건 외롭단 말이에요.
이안 브란트:으응, 메뉴는?
첸 티엔:샌드위치?
이안 브란트:좋아하는 메뉴 따로 없어요?
첸 티엔: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걸로 따라 먹을래요오.
이안 브란트:그으럼……. 샌드위치. 좋아요. (계산대로 향한다.)
:필요한 물건을 전부 구매하고 나면, 이안은 물건들의 포장을 위해 마트에 잠시 남고, 당신에게 먼저 차로 가 있으라고 말합니다. 당신을 위해 산 간식을 들려주고 말이에요.
차 옆에서 이안을 기다리고 있으면 마트 옆을 가로지르는 강이 눈에 들어옵니다. 멍! 저 옆에서 떠돌이 개가 강가를 향해 짖고 있습니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고 초목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흔들립니다.
그런데... ... ...
첸 티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근처의 갈대밭이나 잡초 등이 이상하게 웃자라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햇빛이 잘 드는 길목인데 이상하네요. 푸른 빛을 띤 식물들은 마치 시들어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문득, 당신의 발 옆으로 지네 한 마리가 기어갑니다. 아니… 자세히 보면 거미입니다. 그러나 몸이 이상하게 긴……. 어쩐지 숨이 막힙니다.
이성판정(0/1d4)
첸 티엔: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3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첸 티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3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헛것을 보기라도 한 걸까요? 다시 보니 평범한 곤충일 뿐인데…….
아지랑이 아래에서 가볍게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몸이 휘청이면, 뒤에서 이안이 나타나 당신의 등을 받칩니다. 걱정스런 표정입니다.
이안 브란트:왜 그래요? 괜찮아요? (어깨를 붙들어 세워준다.)
첸 티엔:선생니임…. (귀에 익은 목소리에 안도한다. 그대로 몸을 돌려 당신을 끌어안더니 어깨 위로 고개 묻으며 웅얼거린다.) 벌레……. 싫어요. (우.)
이안 브란트:벌레? 안 보이는데…. (벌써 사라진 걸까? 의아한 듯한 목소리였으나, 그런 것보단 당신이 걱정되는지 그저 마주 안아주었다. 등을 느리게 토닥이기 시작했다.) 더 어지럽진 않고요?
첸 티엔:네에, 감사해요…. (수긍하면서도 끌어안은 팔 풀어내진 않는다.) 놀랐나 봐요. 엄청 커다랬거든요. 진정이 안 되네요….
이안 브란트:(몇 번 등을 토닥인 뒤 조심스런 손길로 당신을 느릿느릿 떨어뜨려, 차량 뒷좌석에 당신을 앉혔다. 그 앞에 무릎을 굽혀 당신을 올려다 본다.) 뒷자리에 좀 누울래요? 더워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첸 티엔:(수심 어린 낯─물론 꾸며낸 것이다. 놀라기야 했으나, 겨우 벌레 정도로 이렇게 상처받는 여린 심성의 소유자는 아니다.─으로 고개를 젓는다.) 조수석에 앉아있고 싶어요. 누우면 바닥이 안 보이잖아요. 또 나타날 것만 같아서….
이안 브란트:많이 놀랐구나. 밥 먹으러 갈 수 있겠어요? 집에서 쉴래요? (그저 걱정 가득한 시선. 가볍게 무릎을 문질러 준다.) 그럼, 짐 정리할 때까지만 여기 앉아 있어요. 에어컨 틀어놓을 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금방 트렁크를 정리하고 돌아왔다. 친히 팔을 끌어 일으켜 준 뒤 조수석에 쏙 태웠다.)
첸 티엔:(쏙 태워졌다. 당신이 트렁크를 정리하는 동안 발 달랑이는 것을 보아 기분은 최고조에 이른 듯하다. 당신이 돌아오자마자 금세 시들─은 척─었지만.) 선생님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그럼 안심될 것 같은걸요.
이안 브란트:(시들시들한 아기…. 쓰러지는 거 아냐? 굉장히 연약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먼 발치를 바라본다. 웃자란 식물들을 눈에 담다가, 잠시 머뭇댄다.) 집에 아무도 없다고 했죠. 선생님 집에 가서 잠시 쉴래요? 밥 먹고 쉬다가 가족들 올 때쯤 집까지 태워 줄게요.
첸 티엔:(머뭇거린다. 물기 어린─개수작이다.─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되나요?
이안 브란트:네에. 괜찮아요, 혼자 보내는 게 더 신경 쓰일 것 같아서. (머리 한 번 쓰다듬은 뒤 벨트를 매 주었다. 운전석에 탑승한다.) 이렇게 된 거 저녁도 제가 차려 드리면 되니까, 바로 집으로 갈게요?
첸 티엔:으응…. 감사합니다. (시들시들… 답하며 좌석에 포옥 기댔다.)
이안 브란트:눈 좀 붙이고 있어요. (부드럽게 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이안의 집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것인지, 출발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뒤 도착합니다. 이안을 따라 들어간 원룸 형식으로 된 집안 내부는 굉장히 깔끔합니다. 아니, 사람 사는 집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휑할 지경입니다.
첸 티엔:(헤.) 깔끔하네요. 청소 좋아하시나 봐요.
이안 브란트:으응? 그런 건 아니고….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물건이 별로 없어요. (변명하듯 대꾸했다.) 침대에 좀 누워 있어요. 못 먹는 거 있어요? 볶음밥 할 건데.
첸 티엔:하지마안, 씻지도 않고 옷도 외출복 그대로인데 누울 수느은. (멀뚱멀뚱 서 있는다.) 저어, 가리는 건 없어요. 다 좋아해요.
이안 브란트:괜찮으니까아, 손만 씻고 와서 쉬어요. (마치 8살 어린아이 대하듯….)
첸 티엔:네에. (얌전히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바닥에 앉아 침대에 등을 기댄다.)
이안 브란트:진짜 누워도 되는데. 아, 교복 구겨질까 봐 그러는 거면 선생님 옷이라도 빌려줄까요? (출근한 옷차림 그대로 앞치마만 두른다. 장 본 것들을 분주하게 정리하는 듯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첸 티엔:그래도 되나요? (냉큼 받아들인다. 기실 교복이 구겨질까 이러는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부엌에서부터 들려오는 분주한 소리, 앞치마 두른 상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첸 티엔은 안정에서 사랑을 찾는 사람이었고, 지금 이 순간 그는 무엇보다도 안정을 느꼈다.)
이안 브란트:저어기, 왼쪽 서랍에 있는 옷들은 집에서 입으려고 둔 옷들이니까 아무 거나 꺼내서 입어요. (집에 데려오길 꺼려하던 사람이 맞긴 한 건지, 당신더러 서랍을 열고 아무 거나 꺼내 입으라는 둥 허락의 말을 쉽게도 내뱉는다. 정리가 끝난 것인지 주방이 잠시 잠잠해지더니, 싱크대의 물 소리가 이어졌다. 손이 젖어들면, 나직한 목소리를 흘린다.) 그거 알아요? 깊은 물에 잠기면, 주위가 칠흑 같이 어두워진다는 거. 마치…. (간극.) 우주처럼.
첸 티엔:네에. (밝은 목소리. 좋아하는 상대의 옷을 입어볼 기회는 흔치 않으니 잔뜩 즐겨둘 셈이었다. 서랍을 열어 편해 보이는 옷을 꺼낸다. 당신 몰래 곱게 개어진 옷의 향을 맡아 본다. 여기서도 라벤더 향이 날까. 못된 짓을 하는 아이마냥 어깨 떨어가며 숨죽여 웃더니, 뒤늦게 교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는다.) 선생니임, 방금 사회가 아니라 과학 선생님 같으셨어요. 갑자기 그건 왜요?
이안 브란트:(개수대를 향해 보고 있으니 등 돌린 상태. 당신이 옷에 밴 라벤더 향을 맡았단 사실도 일절 눈치채지 못했을 테다.) 세 번째 비밀.
오늘 말씀해 드리기로 했으니까요, 물을 무서워하는 이유 말예요. 뭐어, 어쩌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는데…. (잠긴 음성.) 어느 한 곳에 가라앉아서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 있잖아요? 그게 싫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물소리가 끊긴다. 문득 시선이 마주치면 옷, 잘 맞아서 다행이네요. 하며 당신에게 관심 기울였다. 도마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잇따른다.) 별 이유 아니죠?
첸 티엔:으음. (눈 데록데록 굴린다. 우주처럼 깊은 곳…. 속으로 되뇌다 답한다. 눈치 보기라도 하듯 조그만 목소리.) 많이 무서우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나오실 수 있었던 거예요? 선생니임, 수영도 잘하신다거나?
이안 브란트:그냥…, 누가 도와줘서요. (짤막한 대답.)
분위기 가라앉히려고 한 얘긴 아녔는데~…. 이리 와 봐요. (칼을 쥔 채 고개만 까딱인다.) 요리할 줄 알아요?
첸 티엔:어엇. (주춤대며 일어나 당신의 곁으로 향했다.) 저…. 가족들이 제발 칼은 잡지 말라고 하던데. 괜찮을까요?
이안 브란트:음. 역시 쌀만 씻어 주세요. (담아놓은 쌀 턱짓했다….)
첸 티엔:네에에에. (꽤? 무난하게? 쌀을 씻었다. 흠이 있다면 물을 한강처럼 채워두었다는 점일까.) 이렇게 안치면 될까요?
이안 브란트:(잠시 할 말을 잃고….) 그건 제가 할게요. 응. 역시 제가 할게요. 손님은 쉬어야지.
첸 티엔:(울망울망.) 저 도움 안 되죠.
이안 브란트:아뇨오. 도움 되는데? 제 얘기도 들어주시고, 밥도 같이 먹어주시잖아요. (요리에 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첸 티엔:(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풀린 듯. 금세 헤헤 웃어보인다.)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고, 얼마든지 같이 먹어드릴 수 있어요. 다음에도 또 놀러 오고 싶은데에.
이안 브란트:다음에…. 공부 열심히 하면요. (마주 웃는다. 유리잔에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따라주고 다시 침대로 돌려보냈다. 빠르게 주방을 티엔 금단의 구역화했다는 뜻…….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요리를 완성하면, 접시 두 개를 내어 식탁에 내려놓았다.) 얼른 먹어요. 그래야 집에 가지이.
첸 티엔:(우.) 내일이 주말이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이안 브란트:주말이면~ 왜요?
첸 티엔:자고 가고 싶어서요.
이안 브란트:주말이라도, 집에 침대도 이불도 하나라 그건 곤란하겠는걸요. 부모님도 걱정하실 거고….
첸 티엔:오늘 안 들어오세요. 여행 가셨거든요. (헤헤.) 잠은 같이 자면 되죠오.
이안 브란트:(도리도리. 이것만은 안 된다는 의미인 듯.) 얼른 먹고 집에 보내 드릴게요. 그런데 누구랑 같이 자는 거 안 불편해요?
첸 티엔:(순진한? 표정 꾸며 낸다.) 응? 왜 안 돼요? 불편한 것도 없죠. 그냥 같이 자는 것뿐인데에.
이안 브란트:(눈만 깜박.) 왜애, 누가 옆에 있으면 불편해서 못 자는 사람들 있잖아요. 의외로(?) 잠자리는 별로 안 가리는가 봐요?
첸 티엔:의외로~?
이안 브란트:아, 아니. 뭐. 그런 이미지라. (뭐가.)
첸 티엔:(에에엥.) 저, 이래 봬도 가리는 건 없다고요. 편식도 없는데에.
이안 브란트:그것도 사실 의외네요….
첸 티엔:절 뭐로 보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아기… …….
첸 티엔:허?
이안 브란트:응?
첸 티엔:저 열여덟살이에요.
이안 브란트:아기죠.
첸 티엔:아기는 아니죠.
이안 브란트:어린이?
첸 티엔:어린이도 아니에요.
이안 브란트:하하…. 곧 성인인가요?
첸 티엔:네에.
이안 브란트:귀엽긴. 그래도 잘 먹는다니 다행이네요.
첸 티엔:헤헤. (제 몫의 접시를 열심히 비웠다.) 이것도 정말 맛있어요. 선생님도 어서 드세요. 다 드셔야 저도 집에 가죠.
이안 브란트: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요…. (급기야 이런 말을.)
첸 티엔:저 오늘 자고 갈게요?
이안 브란트:왜, 왜요? 왜? (음식을 열심히 입에 집어넣었다.)
첸 티엔:그러다 체하세요. 천천히 드세요.
이안 브란트:(우물우물.) 내일은 축제니까, 집 가면 일찍 자구요.
첸 티엔:으응. 그러엄, 내일은 못 뵙는 거예요? 아쉬운데.
이안 브란트:그래도 수업은 있으니까, 얼굴은 볼 수 있을걸요? 분위기 어수선할 게 뻔하니까 영화나 틀어줄 생각이지만요…….
첸 티엔:이렇게 단 둘이 대화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안 브란트:아쉬워요?
첸 티엔:많이요.
이안 브란트:저 재미없는 사람인데도?
첸 티엔:같이 있으면 즐거운걸요.
이안 브란트:그렇게 말해주니까 기쁘네요. 실은 저도 그래요.
첸 티엔:(시선 똑바로 마주한다. 검은 눈과 푸른 눈. 합쳐 우주였다.) 제가 선생님의 학생이라서요?
이안 브란트:(턱을 괸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였다가 들었다.) 그런 이유도 있겠죠. 갈까요? 다 먹었는데. (주저 없이 일어난다.)
첸 티엔:(그런 이유. 그렇다면 되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 순순히 일어났다.) 네에, 데려다주세요.
이안 브란트:(당신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는 그릇을 정리하였다. 또한 미묘한 낯을 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까지 당신보다 두 걸음 앞섰으니 그 표정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난 뒤엔, 다시 차창을 사이에 두고, 아무렇지 않은 듯.) 내일 봐요.
첸 티엔:네에, 내일 뵐게요. (10초의 간극.) 저어, 선생니임.
이안 브란트:(창을 올리려던 찰나.) 네에.
첸 티엔:내일부터는 나란히 서서 걸어주시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어렵지 않은 부탁이네요.
첸 티엔:(헤헤.)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가벼운 미소를 보일 뿐입니다. 차량은 금방 시야 바깥으로 사라집니다.
:“선배! 들었어요?”
“어? 또 뭘?”
“부장 말이에요, 어제부터 집에 안 들어왔대요.”
수영장 청소에 어울리게 된 지 어느새 4일 째. 오늘은 마을에서 축제가 있는 날입니다. 오전 수업부터 점심시간, 오후까지 학교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누구와 함께 축제를 가네 마네 하는 이야기로 들썩입니다. 몇 명의 친구 또한 당신에게 같이 축제를 돌아다니지 않겠느냐 제안하고는 하네요. 어떻게 하나요?
첸 티엔:오늘은 선약이 있어서요. 다음에 같이 가요. (적당히 거절했다. 이번 축제는 홀로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다. 도중에 이안 선생님을 만나면 좋은 거고, 아, 물론 선생님께서 혼자 계신다면 더 좋고. 아무튼…. 아니면 아닌 거고.)
:친구들은 아쉽다는 듯 자리를 뜹니다. 마음 바뀌면 언제든 말하라고 덧붙이기도 하네요.
오늘의 마지막 수업은 이안이 담당하는 사회 수업입니다. 그는 아무도 오늘은 공부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오늘만이라며 수업 대신 영화를 틀어주었습니다.
몇 명의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고른 영화는….
1 1 공포영화 2 로맨스 3 SF물
공포영화입니다. 역시 여름에는 공포영화죠. 앞자리에 앉아있던 이안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학생들이 없는 뒷좌석 구석에 앉습니다.
영화는 이어집니다. 유명 놀이공원에서, 단 두 사람이 출입 금지된 귀신의 집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으스스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이거, 나름 로맨스 같기도 한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은 영화를 딱히 보는 것 같지 않지만요….
첸 티엔:(냉큼 뒷좌석의 친구와 자리를 뒤바꾼다. 그리고는 당당히 이안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손에는 공책과 볼펜을 든 채였다. 공책 귀퉁이에 글씨를 끼적여 당신에게로 넘겨준다.)
[선생님, 공포영화는 싫어하세요?]
이안 브란트:(옆자리에서 사람이 움직이자 움찔… 했다. 아닌 척하지만 분명히 움찔했다. 당신을 보고는 안도한 기색.)
[좋아하진 않네요. 좋아해요?]
첸 티엔:[네에, 좋아하죠. 저것도 이미 봤던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랑 놀아드리려고 왔는데. 왜 놀라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별로 안 놀랐어요. 공포영화 좋아하신다는 건 의외…]
(문장을 완성하기도 전 스피커로 영화 내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파들짝 놀라 당신의 팔을 덥썩! 붙잡았다. 소리가 잔잔해지자 스르륵… 놓는다.)
[조금 무서워해요. 네.]
(차분하게 인정했다.)
첸 티엔:[조금이 아니라 많이 무서워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 작품은 그래도 로맨스에 치중된 작품이라 보시기 어렵지는 않을 거예요. 결말에 주인공들이 이별하긴 하는데요.] (숨 쉬듯 스포일러를 한다.)
이안 브란트:[진짜 조금인데. 주인공이 커플이에요? 헤어져요?] (누가 봐도 영화 안 보고 있었던 사람….)
첸 티엔:(눈 감고 계셨나 보다.) [경찰 주인공이 괴도를 만나서 같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에요. 둘이 절절하게 사랑을 확인하고 키스까지 했는데, 결말에서 괴도가 도망쳤죠. 완전 별로예요. 남은 경찰이 얼마나 슬퍼했겠어요?]
이안 브란트:[왜 도망쳤는데요? 이유가 있으면 그럴 수도 있죠.] (안 볼 예정이니 스포일러에도 별 생각 없다!)
첸 티엔:[실은, 괴도가 쫓기는 신세거든요. 경찰에게 피해가 갈까 봐 다시는 만나지 말자며 통보하고 떠났어요. 그럴 거라면 애초부터 시작하질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안 브란트:[전 이해 가요. 사랑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지 않나요? 시작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거….] (당신을 보며 눈을 깜박댄다. 태연한 척하는 표정과는 달리, 소란스런 효과음에 다시 옷 덥썩 잡기는 했는데.)
첸 티엔:(붙잡힌 곳 가만 내려다보다, 볼펜을 움직인다.) [사랑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안 브란트:[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마지막 날 말해 줄 비밀로 미뤄뒀는걸요.]
첸 티엔:[(쭈글쭈글 그려 넣은 우는 얼굴.) 오늘치 비밀은요? 언제 말씀해주실 건데요?]
이안 브란트:[오늘은 청소 안 하잖아요~]
첸 티엔:[(우는 얼굴 옆에 또 하나의 우는 얼굴.) 제가 선생님 무섭지 않게 옆에서 막아드리고 있는데도요?]
이안 브란트:[티엔 군이 가도 저 견딜 수 있어요….]
첸 티엔:[(우는 얼굴 옆의 우는 얼굴 옆에 또 하나의 우는 얼굴….)]
이안 브란트:[진짜 말할 거 없는데도오….]
(우는 얼굴 따라 그렸다. 열심히.)
첸 티엔:[그러엄 애인 있으세요?]
이안 브란트:[어떨 것 같나요?]
첸 티엔:[없으셨으면 해요.]
이안 브란트:[없긴 하죠.]
첸 티엔:[(쪼르륵 이어진 우는 얼굴 옆에 웃는 얼굴 그린다.)]
이안 브란트:[오늘치 비밀은 이걸로 끝낼 수 있는 건가요?]
첸 티엔:[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어요.]
이안 브란트:(또 웃는 얼굴 따라 그렸다.)
[축제에서 같이 놀 친구는 구했고요?]
첸 티엔:[아뇨, 다 선약이 있으시다던걸요. 혼자 가야할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친구 많으면서.]
첸 티엔:[다 바쁘대요.]
이안 브란트:[티엔 군이 거절하신 건 아니구요?]
첸 티엔:[그럴 리가요? (눈과 입을 초롱초롱하게 뜬 얼굴 그림.) 제가 친구들이랑 노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이안 브란트:(얼굴 그림 옆에 반짝이 두 개 그려줬다.) [이상하다아. 축제 오긴 하는 거죠?]
첸 티엔:[그럼요. 타코야키 사 먹을 거예요. (문어 그림.) 우연히 선생님이랑 만나게 되면 더 좋구.]
이안 브란트:[순찰 빨리 끝나면 볼 수도? 맛있는 거 많이 사 먹어요. 그래야 선생님보다 크지.]
첸 티엔:[빨리 끝내주실 수 있어요?]
이안 브란트:[그건 제가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어지는 점이 많다.)]
첸 티엔:[(우는 얼굴.) 혹시라도 빨리 끝나면 연락해주셔야 해요.]
이안 브란트:[네. 곧 수업 끝나겠다. 재미있게 놀아요.]
첸 티엔:[(또다시 웃는 얼굴.)]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당신에게 눈인사를 건네고는 공책을 챙겨 제자리로 돌아간다.)
:영화의 끝보다도 앞서 수업시간의 끝이 다가오면, 펜을 내려놓은 이안은 교탁 앞으로 가 영화를 끕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리네요.
이안 브란트:축제라고 너무 사고치지는 말구요. 선생님들도 순찰하며 돌아다닐 테니까 문제 생기면 꼭 부르세요.
그리고… 3학년의 제이 군과 연락이 되는 사람 있으면 교무실로 오세요.
:그러면,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제이? 누구야?”
"“우리 부 부장이야. 어제부터 안 들어왔대.”
“가출인가…?”
“입시 스트레스일지도…”
곧 방과 후가 옵니다. 오늘의 수영장 청소는 휴식이었죠. 학교를 나서는 길목을 걷고 있으면 멀리서 “이안 선생님!” 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앞 반의 과학과를 담당하는 선생님입니다. 쭈뼛거리며 이안에게 말을 걸고 있네요.
과학 선생님: 오늘 순찰, 2인 1조로 돌아야 한다던데요. 괜찮으시다면 저랑….
이안 브란트:아, 그랬죠. 그렇다면.....
:그러고보니 저 선생님, 이안에게 관심이 있다고 요새 한창 소문이 돌고 있었죠. 잘 되어가는 걸까? 어쩐지 공기가 물을 먹은 듯 무겁습니다. 하늘은 뿌옇습니다. 비가 오진 않을까 걱정이네요.
축제 전까지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축제는 오후 6시 이후 시작되며, 티엔의 집 근처에서 열리고 있어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습니다.
첸 티엔:(우선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혹시나 이안 선생님과 마주치게 될 수도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지 않겠는가. 한껏 몸단장을 하고 전신거울 앞에 선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4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평소와 똑같이 아름답습니다.
이대로 축제로 나설까요?
첸 티엔:(이 정도면 됐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본 뒤에야 문을 열고 나선다.)
:너무 늦게 나서지 않았다면 해가 길어진 덕에 아직 날은 어둡지 않습니다. 여러 점포가 문을 열고 장사에 한창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음식 냄새가 느껴지고, 미니 바이킹이나 회전컵이 돕니다. 아이들을 위한 에어바운스도 설치되어 있네요. 풍선 사격과 뽑기, 물풍선 건지기 등의 게임도 보입니다.
본 적이 있는 듯한 같은 학교 학생들도 저마다 무리지어 축제 회장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간간이 당신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요.
곁으로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나 아까 딴 쌤들 순찰도는 거 봤어.” “으아, 안 마주치고 싶다~”
티엔은 무엇을 하나요?
첸 티엔:(우선은 축제 음식을 즐기기로 했다. 많이 사 먹어요. 그래야 선생님보다 크지. 당신이 수업 시간 때 적어주었던 글을 떠올린 탓이다. 야무지게 배를 채운 뒤에는 부러 구석진 곳을 찾아다녔다. 이런 곳일수록 순찰하는 선생님들이 방문해주실 테니까.)
:회장을 가로질러 구석진 곳으로 조금 더 걷다 보면 누군가가 “학생.” 하고 당신을 부릅니다. 낡은 테이블에 카드나 큰 수정구슬을 놓아두고 로브를 쓴 사람 한 명이 앉아있습니다.
??: 당신의 앞날에 구름이 껴 있군요….
:손짓해 당신에게 자리를 권합니다. 어떻게 할까?
첸 티엔:응…? (고개 한 번 기울이더니 로브 쓴 이에게로 다가가 앞자리에 앉는다. 원체 미신 같은 걸 좋아하기도 했고.)
로브를 쓴 사람: (당신이 앉자 말을 이어갑니다.) 학생 근처의 기운이 상당히 흐트러져 있어요. 좋지 않아요. 이대로는 당신까지 휘말려 표적이 되어버립니다.
이질적인 무언가가 당신의 선에 끼어들어 있지는 않나요? 어서 거리를 둬야 해요.
첸 티엔:(갸우뚱.) 이질적인 거요…? 그간 특별한 일은 없었는걸요.
로브를 쓴 사람: 아직 눈치채지 못하였을 뿐. (검은 개가 그려진 타로카드를 한 장 보여준다.) 검은 개를 조심해요.
첸 티엔:검은 개……? (여전히 아리송한 낯이다.) 으음…. 일단은 감사합니다. 다른 힌트는 없는 거지요?
로브를 쓴 사람: (고개를 끄덕인다.)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어요. 더 이상은 나 또한 관여할 수 없으니.
첸 티엔:(나중에 선생님께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드려야지. 이런 생각이나 한다. 한 마디로 긴장감이 없다.) 네, 그렇게 할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참. 혹시 다른 점도 볼 수 있나요?
로브를 쓴 사람: 무엇이 궁금한가요?
첸 티엔:연애운이요. (배시시 웃는다.)
로브를 쓴 사람: (테이블 위에 놓인 수정구슬을 매만진다. 짧은 뜸.) 그 사람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네요.
첸 티엔:(눈썹 추욱.)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요?
로브를 쓴 사람: 엄밀히 말하자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네요. 그만 가 보셔도 좋아요.
첸 티엔:(눅눅… 해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감사합니다.
:다시 축제 회장을 걷습니다.
멀리서 방송이 들려오네요.
<이후 30분부터 광장에서 공연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또한, 현재 회장 내에 소매치기범이 출몰한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므로 발견시 바로 신고해주세요. 장사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점포 또한 운영위원회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안전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직장인들의 퇴근시간 또한 겹쳐오는 듯 사람이 점점 늘어납니다. 저 앞에서 걸어오는 학생 무리를 피하기 위해 생과일 주스를 파는 부스 옆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려 하면… 툭.
옷자락이 상자 하나에 걸리고 안에 들어있던 오렌지가 우르르 쏟아집니다. 이런, 운도 없네요.
“꺄악!” “아니, 뭐 하는거야!” 바로 이런저런 소리가 날아듭니다. 고개를 숙여 과일들을 되돌려두면… 응? 옆에 검은 장지갑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자,
지갑 주인: 앗! 내 지갑! 겨우 찾았다… 너 뭐야?! 네가 그 소매치기야?!
:라며 사나운 노성이 꽂힙니다. 지갑의 주인인 것 같아요. 지갑을 주워든 당신을 소매치기범이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뭐야?”
“소매치기? 누가?”
“잠깐만, 여기 밀치지 마세요!!!”
순식간에 주변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첸 티엔:잠시만요,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1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대충 떨어진 과일 옆에서 지갑을 발견했다는 내용.)
:분노의 기세는 조금 누그러집니다만, 당신을 향한 의심은 여전히 거두지 않습니다. 상황에 피로감을 느낄 무렵.
이안 브란트: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죠?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듭니다. 이안입니다. 꽤 기가 막힌 타이밍이네요. 당신의 뒤에서 나타나 어깨를 슬며시 감쌉니다.
이안 브란트:제 학생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는 통행객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듣고 나면 일단 그를 진정시키고, 당신과 눈을 마주칩니다. 그 얼굴에서 의심의 빛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짧게 “그래요?" 하며 당신에게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첸 티엔:(울망울망울망.) 제가 훔친 거 아니에요……. 떨어져 있던 걸 줍자마자 오해를 샀어요.
이안 브란트:으응. (머리를 복복복복.) 오해가 있는가 본데...
:이안은 통행객에게 티엔의 무고를 주장하며, 의심스럽다면 거리의 CCTV를 확인해보겠냐고 묻습니다. 이 쯤 되면 주변의 분위기는 대개 통행객을 향해 가벼운 힐난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회장 내 방송이 다시 울립니다.
<방금 회장 내 소매치기범을 경찰에 인도하였습니다. 도난품으로 파란색 동전 지갑과 갈색 핸드백이 들어와 있으며, 도주 중 분실한 도난품도 있다고 하니 분실물이 발견되는 경우 운영 본부로 신고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물건을 도난당하신 분들은 본부에 찾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주변은 이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집니다. 통행객은 뒤늦게 사과의 말을 건넵니다. 소란이 사그라들고, 두 사람 또한 적당히 구석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첸 티엔:선생니임. (여전히 물기 젖은 얼굴─물론 개수작이었을 것이다. 놀라기는 했으나 이런 일로 눈물을 보일 만큼 여린 심성의 소유자는 아니다.─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어깨 위로 이마를 콩 부딪친 채 훌쩍이는 체를 하기도 했다.)
이안 브란트:마, 많이 놀랐죠. (어어어, 어쩔 줄 모르는 낯으로 당신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토닥이는 속도도 비슷하다.) 어디 앉아서 쉴까요?
첸 티엔:으응. (훌쩍.) 다른 선생님은요?
이안 브란트:으음, 함께 돌다가 인파에 휩쓸려 어느새 떨어졌지 뭐예요. 다 큰 성인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축제 회장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요?
첸 티엔:(헤.) 그러엄, 순찰은요? 다 끝나신 거예요?
이안 브란트:과학 선생님이랑 만나면 다시 돌긴 해야겠지만, 그 전까지는 티엔 군이랑 같이 돌아 다닐까요? 좀 쉬어도 괜찮고. 마실 거라도 사 줄까요? 놀랐잖아요.
첸 티엔:(고개 도리도리 젓는다.) 그냥 같이 있어 주세요. 저어기, 벤치가 있던데…. 앉아서 얘기 들어주시면 안 돼요?
이안 브란트:으응, 어디 안 갈 테니까. 그렇게 할까요? (구석의 벤치에 가 함께 앉는다. 나란히 앉아 당신의 등을 도닥이기까지.)
첸 티엔:(아기? 취급? 받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내친김에 고개까지 기울여 당신의 어깨에 포옥 기댄다.) 실은, 그 오해를 사기 전에도 이상한 일을 겪었어요. 군것질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점술가분께서 제 점을 봐주시지 뭐예요. 검은 개를 조심하라고….
이안 브란트:잘 챙겨 먹었나 보네요. (등을 토닥이던 손이 멈춘다.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퍽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을 안심시키기 위함일까?) 글쎄요…. 점이라는 건 원래 의미심장해 보이긴 하지만, 특별히 과학적인 근거는 없잖아요? 별 뜻 없지 않을까요? 너무 걱정할 필욘 없을 것 같은데.
첸 티엔:연애운도 안 좋게 나왔단 말이에요오. (우.)
이안 브란트:연애운도 봤어요?
첸 티엔:네에. 짝사랑할 운명이래요.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하시던걸요. (어째 오해를 사서 시무룩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눅눅한 것만 같다.)
이안 브란트:티엔 군도 이제 사랑이 뭔지 알게 되시려나. (나직한 소리로 웃는다.) 하하, 뭐…. 점이야 재미로 보는 거잖아요. 기운 차리구요.
첸 티엔:그렇긴 한데에. (한숨 포옥.) 선생님은 짝사랑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안 브란트:(고개 가로젓는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나요?
첸 티엔:네에. 아무래도 첫사랑인 것 같아요.
이안 브란트:사랑이 이루어지길 빌어드릴걸 그랬나?
첸 티엔:괜찮아요. 쟁취하면 되니까. 전 어린 만큼 시간이 많잖아요. (당신 어깨 위로 볼을 비비적거린다.)
이안 브란트:도전적인 편이구나…. 음. 뭐어.
잘 되길 빌게요? (오묘한 기분…. 지나가는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당신의 고개를 슬며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좋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티엔네 반 학생들 무리와 마주칩니다. 당신과 선생님을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온 학생들이 인사합니다.
학생: 아, 선생님! 첸도 있네. 선약 있다고 했지 않아?
이안 브란트:잘 놀고 있나 봐요. 별일은 없죠? (이어지는 말에는 갸우뚱. 선약?)
첸 티엔:(서둘러 입을 뻐끔거린다. 말 좀 맞춰줘요!) 차암. 선약이 있던 건 당신이죠. 선생님이 오해하셨잖아요.
:"아~ 참. 그랬지?" 친구는 쓱 입을 걸어잠그고, 옆에 있는 이안은 눈치 채지 못한 듯 눈만 깜박거립니다.
이안 브란트:아무튼 이렇게 만난 김에… 이제 티엔 군도 친구들이랑 놀아요. (슬그머니 당신의 등을 밀었다.)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저 멀리서 과학 선생님이 “이안 선생님!” 하고 뻘뻘거리며 달려옵니다. 양 손에 과일 주스를 들고 있네요.
오늘은 역시 타이밍이 좋지 않은 것 같죠? 이안은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눈인사를 한 번 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함께 남은 친구들만이 당신에게 의문을 표하고요.
첸 티엔:(흠. 주머니를 뒤적인다.)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31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배고프지 않아요? (최고의 입막음은…. ^ ^)
:친구들은 금세 넘?어가? 당신의 그 선약이라는 것엔 관심을 가지지 않네요. 이대로 친구들 사이에 끼여? 축제의 중앙으로 끌려갑니다.
친구들 사이에 끼인 채 축제가 끝날 무렵. 이안과 헤어진 후로 어쩐지 공기는 쭉 무겁고 불쾌합니다. 축축한 공기와 습한 기운. 미지근한 바람… 그리고, 예상을 빗나가지 않은 빗방울이 하늘에서 툭 떨어집니다.
툭, 툭, 툭, 쏴아… … …
빗방울은 점점 빠르게 떨어지더니 이내 거센 비가 됩니다. 축제 회장의 사람들은 빠르게 부스를 접고, 사람들은 인근 편의점에 들어가 우산을 사거나 집으로 귀가합니다.
티엔,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
첸 티엔:이러언…. (서둘러 편의점에 들어가 본다. 남은 우산이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남은 우산이 있습니다. 우산을 구매한 뒤 편의점에서 나와 몇 걸음을 걸으면...
시민 공원 근처를 지나는 동안 빗소리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저 사람 괜찮은거야? 쓰러질 거 같던데…”
“사람이라도 불러드릴 걸 그랬나…?”
소리를 듣고 자연스레 공원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사람 하나가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첸 티엔:(벤치에 앉은 사람에게 다가가 본다.) 저기요~…?
:어쩐지 익숙한 뒷모습. 이안입니다. 그는 멀리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불안한 기색으로 혼자 앉아 등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네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요?
첸 티엔:선생님? (뛰듯이 다가가 당신의 앞에 선다. 우산을 기울여 빗방울을 막아주고, 손등을 당신의 뺨에 가져다 댄다.) 괜찮으세요?
:그는 호흡이 힘든 듯 가쁘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몸이 물을 뒤집어 쓴 듯 비로 완전히 젖어있습니다. 상당히 불안해 보입니다.
이안 브란트:(시선이 당신에게 와 닿으면, 처진 속눈썹 끝으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찬 손등 위로 창백한 낯을 기대더니 당신의 몸에 머리를 기대었다. 정신없이 손가락을 얽었으니 우산마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티엔…. (입에 담은 것은 분명 당신의 이름일 터인데. 기이하게도 그 음성만은 낯설게 느껴진다. 평소보다 더 친밀하고, 애틋한…….)
첸 티엔:(식은 체온이, 얽혀드는 손가락이 모두 낯설기만 하다. 기이한 확신이 든다. 당신이 입에 담은 것은 제 이름이 맞으나, 결단코 자신을 부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맞잡은 손 내치지 않았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사랑을 하면, 다 이렇게 되나 봐….) 네, 선생님…. 저 여기에 있어요. 그래도 우산은 쓰셨으면 하는데. 이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이안 브란트:(당신의 목소리 들리지도 않는 것인지, 대답 한 마디 없이 더욱이 손을 옭아매고, 몸을 그러안을 뿐이다.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보고 싶다고. 기어이 당신의 몸까지 적셔버린 뒤에야 가쁘던 호흡이 잦아들었다. 느릿느릿 몸이 떨어진다.)
(눈을 몇 번 깜박였을까? 뒤늦게 놀란 듯 당신을 쳐다보았다. 젖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티엔? 얼결에 재차 내뱉을 뻔한 말을 삼켰다. 아냐, 그러니까….) 죄송해요. 그게……. 다른 사람인 줄 알고. (황급히 몸을 일으킨다.)
첸 티엔:그런 것치고는 제 이름을 부르시던걸요. (말간 낯이다. 대답을 요구하는 것 같지도, 당신을 탓하려 드는 것 같지도 않다. 원망하는 것 같지도 않으며 제 이름자 불린 것에 기뻐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실만을 말했다. 허리 숙여 바닥에 떨어진 우산을 주워 든다. 그리고는 다시금 당신의 쪽으로 기울인다. 제 어깨 젖어 드는 것 따윈 신경 쓰지도 않고 그리했다.)
이안 브란트:(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할 수 없었다. 우산을 붙든 당신의 손을 힘없이 겹쳐 잡았다.) 전 괜찮으니까…. (우산을 바로 세운다.) 학교에서 봐요. (급히 자리를 피한다.)
첸 티엔:(멀어지는 이의 손을 붙잡아 우산을 쥐여주었다. 제 시선 마주치는 것은 껄끄러워하는 듯하니 아무 말 얹지 않고 그저 눈 접어 씨익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았다. 정신없이 달렸으니 신발이며 바짓단이며 성한 곳이 없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을 터다. 첸 티엔은 원체 미신 같은 걸 좋아했으나, 그것을 곧잘 믿는 편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뒤바뀔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열여덟 소년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깨닫자마자 멀어진 사랑에서는 비 냄새가 났다.)
이안 브란트:(뒤돌아 마주한 웃음에 차마 고개 돌리지 못한다. 그저 마주하였으니 어룽거리던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흐른다. 누가 그를 어린애라고 하였나? 이래서는, 어른답지 못한 게 대체 누구인지…. 이안 브란트는 빗물에 젖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마른 눈가마저 몇 번이나 훔쳤다. 그런 습관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
:축제가 끝난 다음 날. 학교의 공기는 불온합니다. 오전 1교시가 되어도 선생님은 교실에 얼굴을 비추지 않고, 2교시가 되어서야 옆 반 담임선생님이 급하게 들어와 이번 수업은 자습이라 말하고 바쁘게 떠납니다.
학생들이 내내 소곤거리고 있습니다. 어제 축제가 끝난 뒤 사고가 있었다는 내용 같네요. 선생님 한 명이 크게 다쳤다고요.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담임 선생님이 반으로 들어섭니다. 교탁을 탁 치고 학생들이 전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면 다시 입을 엽니다.
담임 선생님: 오늘은 단축 수업이다. 얼마나 들었을진 모르겠지만, 앞 반 과학 선생님이 근처 강에서 빠진 채 발견되셨어.
아직 회복이 다 되진 않아서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계실 거야. 이곳저곳 괜히 들릴 생각 하지 말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도록. 이상.
:바로 수업이 종료됩니다. 평소보다 빠른 하교를 반가워하는 학생도, 불길한 소식에 무서워하는 학생도 보이네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은 부활동 또한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첸 티엔:(실연당했더라도 맡은 일은 끝맺는 것이 예의다. 이전과 다름없이 가방을 둘러멘 채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청소를 위해 걸어가는 길목, 정신없어 보이는 듯한 이안과 마주합니다. 다소 불안한 눈치입니다. 당신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다가옵니다.
이안 브란트:저어, 오늘 청소는 안 해도 괜찮아요. 전달 사항대로 바로 귀가하세요. 학교도 곧 문을 닫을 테니까, 다른 데 들리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가요. 알겠죠?
첸 티엔:네? (눈 깜박깜박.) 선생님 물 무서워하신다면서요. 제가 끝내두고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이안 브란트:아, 아뇨. 청소 같은 건 신경쓰지 말구요. 청소는 일이 마무리된 뒤에 하면 되니까요. (머뭇댄다.) 오늘 앞반 과학 선생님 얘기 들으셨죠? 그 일 때문에 다들 바빠서.
첸 티엔:음…. (느릿느릿 당신의 눈치를 살핀다.) 마지막 비밀 말인데요, 첫사랑 얘기 대신 다른 걸 들을 수 있을까요?
이안 브란트:다른 데 가지 말고, 집으로 가기로 약속하시면. 어떤 건데요?
첸 티엔: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이안 브란트:(머뭇거리다 한숨을 내쉰다.) 그때는 갑자기 비가 내려서 좀, 몸이 안 좋아졌을 뿐이에요. 우산은 집에 있을 텐데…. 나중에 돌려줄게요. 미안해요.
그리고……. 과학 선생님의 일이라면, 어제 학생들과 헤어지고 축제 회장을 돌아다니다가 제이 군을 만났거든요. 상담을 요청하기에 셋이서 이야기하고 있다가 인파에 휩쓸려 헤어졌고요. 그 무렵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과학 선생님이 제이 군을 직접 바래다 주겠다며 연락해 그러기로 했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 거리를 지나다니던 시민이 강가에서 떠내려 온 과학 선생님을 발견했던 거고요.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해요.
제이 군과는 이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는데, 저는 그게…. (목소리 낮춘다.) 제이 군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읊조린다.) 병원에서 잠시 의식을 회복한 과학 선생님이 말하기론, 강가에서 그에게 달려드는 큰 개를 막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가 그대로 다리 너머로 떨어졌다고 하지만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지금부터 교직원들이 강가 근처를 돌며 수색할 테지만, 저는 조금…. 티엔 군이 걱정이 되어서. (그러니 바로 집으로 가요, 재차 강조했다.)
첸 티엔:(큰 개…. 읊조린다. 이 모든 것을 우연이라 말할 수 있을까? 미심쩍은 기분이 들어 눈썹 늘어트린 채 당신을 바라보았다.) 선생님도 수색에 참여하시는 거예요?
이안 브란트:네에, 저도 참여해야 해서…. (뒷목 매만진다.) 조금 정신 없네요. 슬슬 교무실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첸 티엔:물도 무서워하시면서…. 안 가시면 안 되나요? 불안해요.
이안 브란트:(난 당신이 더 불안한데…. 눈매 늘어뜨린 채 속으로 생각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요. 가까이 가진 않을 테니까 괜찮을 거예요.
첸 티엔:……네에. 조심하셔야 해요. (떼를 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결국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대화가 일단락되고 나면 이안은 다시 바쁜 걸음으로 교무실로 돌아갑니다.
평소보다 이른 하교길은 낯선 느낌입니다. 가벼운 일탈을 하는 것 같은 기분. 착실히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대놓고 놀러가자며 떠드는 학생들 또한 보입니다.
티엔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첸 티엔:(얌전히 집으로 돌아간다. 물가로 나가 볼 생각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나, 교직원들이 수색에 참여한다고 했으니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해결되겠지.)
:간만에 혼자가 된 하교길입니다. 돌연 누군가가 눈 앞을 달려갑니다. 같은 반의 사와다입니다. 다급한 얼굴입니다.
그는 당신을 보면 다급하게 외칩니다.
사와다: 저기! 저 쪽으로 학생이 떠내려가는 걸 봤어!
가보자, 첸! 도와줘야 돼!
:그는 정말 필사적으로 외칩니다. 어떻게 할까요?
첸 티엔:학생이요? (문득 이안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과학 선생님과 제이 선배. 강가에 떠내려온 과학 선생님. 행방이 묘연한 제이 선배. 제이 군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요. 이어지는 당신의 말까지. 하지만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인간의 선의란 본디 그런 것이지 않나. 어떻게든 힘을 보태기 위해 달음질치게 되는 것.) 어서 가요, 따라갈 테니까!
:당신은 흐르는 물가를 계속 달립니다. 달리고, 달려서, 주택가에서 벗어나 물이 고이는 지점으로 옵니다. 다리에 올라 아래를 살펴보면…
정말 저 멀리 누군가가 둥둥 떠 있습니다. 교복을 입고 있는것도 같은데, 얼굴이 물 속에 잠겨있어 누구인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와다는 발을 동동거립니다.
사와다: 안 되겠어. 들어가서 꺼내 오자!
:하지만 이 강가는 정말 깊다고 들었는데…? 그는 정말 옷가지를 하나 강가에 던져버리고 발을 난간에 걸칩니다.
그는 도저히 멈출 기세가 아니며, 정신을 차려보면 오히려 당신을 붙잡고 있습니다.
“도와줘. 빨리.”
“들어가서 구해오자.”
“물에 들어와.”
코 끝에 기묘한 악취가 스칩니다. 그의 검은 눈이 번들거리며 빛납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65/32/13 |
| 굴림: | 2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는 당신의 손을 놓치고 그대로 강에 빠집니다. 풍덩… 사람이 강에 빠지는 것을 목격한 당신 이성 판정. (0/1)
첸 티엔: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그가 빠진 강가 주변으로 먹물이 퍼지듯 검은 무언가가 뻗어나갑니다. 수면이 검은 광택으로 일렁이고, 수많은 녹색 눈들이 생겨났다 사라집니다. 다시 이성 판정입니다. (1D2/1D6)
첸 티엔: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50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1
:“티엔!” 하고 다급히 외치는 이안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본 순간, 몸에서 힘이 빠집니다.
풍덩! 수면과 전신이 부딪히는 강렬한 충격. HP를 1점 감소합니다.
몸이 수면 아래로 빠져듭니다. 물 속은 기묘할 정도로 어둡습니다. 이안이 말했던 그 깊은 물 속이란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주변이 가스로 뒤덮인 것만 같아요. 하늘처럼 흘러가는 색채는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지만, 부유감도 자유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반투명한 물결이 당신의 다리를 붙잡고 점점 안개 한가운데로 끌어당깁니다.
첸 티엔: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60 |
| 판정결과: | 실패 |
:안개 같은 것이 당신을 붙듭니다. HP -4.
그것에게 끌어당겨져 몸이 어딘가에 닿습니다. 그 순간 당신의 시야에 빛나는 무언가가 보입니다. 수정입니다. 당신의 손 근처를 빙빙 돌고 있어요.
첸 티엔:(공기 방울을 몇 번이고 뱉어낸 뒤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가느다랗게 뜨인 푸른 눈이 겨우 수정을 응시한다. 애써 손을 움칠거려 그것을 낚아채었다. 이게, 뭐지?)
:그저 빛날 뿐인 보석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손에 쥔다면, 순식간에 수 많은 시선이 당신에게 꽂혀듭니다. 머리 깊숙한 곳을 찔러드는 시선.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누군가의 손이 당신의 눈을 가립니다. 그대로 당신을 끌어당겨 머리를 품에 안습니다. 익숙한 감각. 이안입니다.
순간 입술 위로 낯선 감촉이 닿았다 떨어집니다. 짧은 호흡을 나눕니다. 그는 당신을 부축하여 단숨에 수면으로 향합니다. 낮은 진동이 귓가에서 울립니다.
저 바닥에서부터 멀어지면, 악취와 검은 광택을 내는 진흙이 점점 더 크게 몸집을 불리며 안개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첨벙! 귓가에서 물소리가 들립니다. 두 사람은 무사히 근처의 뭍까지 헤엄쳐 나옵니다.
이안 브란트:괜찮아요? 어디 다친 덴……. (몸을 잘게 떨던 이가 당신을 황급히 살핀다. 그의 눈빛에는 원색적인 공포감보다 앞서는 애정이 있었다.)
첸 티엔:(갑작스레 삼킨 물을 전부 토해낸 뒤에야 답할 수 있었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말한다.) 저, 는…. 괜찮아요. 그런데, 사와다가…. (강가를 바라보고, 고개를 들어 당신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숨을 멈춘다. 폐부로 들이치는 강물보다도 버거운 것이 그 자리에 있었다. 쏟아지는 애정.) 선생님…?
이안 브란트:(당신의 등을 쓸어주었다.) 다행히 사와다가 아니었어요. 떠내려가던 것도 그렇고요. (젖은 뺨을 손 끝으로 더듬는다. 일그러진 낯이 환한 웃음을 표방하였다.) 알아요? 나는, 그때도…. 티엔을 찾으려다 물 속에 빠졌던 거예요…. (칠흑 같은 심해보다 당신을 잃은 세상이 더 무서웠나 봐. 그래서 나는 다시 강물 속의 당신에게 뛰어들어……. 차가운 몸을 껴안는다.)
첸 티엔:(밀어낼 수 없었다. 밀어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저 그 품에 고개를 묻는다.) 저, 이제는 알아요…. 선생님의 티엔은 제가 아닌 거죠?
이안 브란트:(겨우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이제 와 숨길 것도 없었다.) 나를…. 오래 찾아 헤맨 사람이 있어요. (당신과 똑닮은 사람. 이름도, 외향도, 사랑하는 사람까지 똑같은.)
첸 티엔:(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사랑을 빼앗긴 기분이란. 그래서 반지도 끼워주지 않으셨던 거구나. 내가 아닌 당신의 티엔에게 해주고 싶었을 테니까. 서글픈 마음에 괜히 팔을 뻗어 당신을 그러안는다.) 그런데, 왜 여기에 계시는 거예요? 그 사람을 만나러 가지 않고요.
이안 브란트:엇갈렸어요.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수평선에서…. (입술 우물댄다.)
(당신에게 기대어 있다가, 시선 돌려 당신의 손을 내려다 본다. 빛나는 수정을 쥔 손을. 머뭇거림 끝에 말문 연다.) 그거요, 쭉 찾던 건데. 저한테…. 주실래요?
첸 티엔:이것마저 가져가 버리시면…. 제겐 뭐가 남나요? (울적한 낯이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구어낼 것만 같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바꿔 주세요. 선생님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 하나랑….
이안 브란트:(당신은 어찌하여 사랑하고 마는가. 이래서는 각오했던 이별마저 그를 눈물 짓게 만들지 않나.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빼냈다. 망설임 없이 당신에게 걸어주었다.) 이거…, 특별한 기능이 있다고 했어요. 원하는 곳으로 보내준다고 했던가. 이제… 당신이 가져요.
첸 티엔:(목에 걸린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렸다. 한참을 고개 숙여 시계만을 바라보다, 느릿느릿 손에 쥔 것을 내민다.) 계시던 곳으로는…. 언제 돌아가시는데요?
이안 브란트:(안도한 얼굴로 그것을 가만 품에 안았다.) 늦지 않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더 헤매지 않도록.)
:그쯤, 저 멀리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립니다. 외치는 소리.
“이안 선생님! 제이 찾았어요! 지금 병원에… 어!?”
선생님과 경찰 몇이 달려와 두 사람의 상태를 살피고 부축합니다. 순식간에 당신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데려가집니다.
이안과 헤어지기 전, 그는 무언가 할 말이 남은 듯한 시선을 이 쪽에 보냅니다만,
이안 브란트:다음에 학교에서 말할게요. 많이 다쳤으니까, 푹 쉬어요.
:그리고 헤어지는 길 그는 마지막으로 속삭입니다.
이안 브란트:티엔…. (온전한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오늘 일은 잊어요.
:...
...
그리고 다음 날, 혹은 다음 등교일. 아침이 되어 눈을 뜹니다. 평소처럼 몸을 일으키려 하면… 어라?
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침대를 짚은 팔이 쭉 미끄러져 아래로 구릅니다. 온 몸에서 열이 오르고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찰은 받았을 텐데 회복이 다 안 된 걸까요? 어쨌든 이런 상태로 오늘 학교에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함께 사는 가족이 당신이 구르는 소리를 듣고 방에 들어와 깜짝 놀라며 당신을 부축해 침대에 눕힙니다. 오늘 학교는 쉬는 게 좋겠다며 서둘러 물수건을 가져오네요.
첸 티엔:괜, 찮은데…. (팔 하나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면서도 억지를 부린다.) 학교, 가고 싶어요. 가야 하는데….
:가족은 당신을 뜯어 말립니다. 불덩이 같은 이마에 물수건을 얹으며, 자고 일어나면 병원을 가는 게 좋겠다는 말과 함께.
결국 지친 몸은 물에 잠기듯 수마에 빠져듭니다.
...
직후, 티엔은 꿈을 꿉니다. 당신에게 병문안을 온 이안의 꿈입니다. 꿈에서도 당신은 여전히 아픈 탓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분명 한낮일텐데도 창밖은 어둡기만 합니다.
심해에 잠기면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고 하던가요? 그러나 검은 배경 위로 흰 먼지 같은 것들이 부유하는 것을 보아 이곳은 틀림없는 우주입니다. 우주선의 바깥으로 너른 우주가 펼쳐진 모습입니다.
“첸, 티엔.”
:당신이 잠든 침대 가에 꿇어앉은 이안은 속삭입니다.
“오늘은 꿈이 기네.”
부드러운 손길이 검은 머리카락을 넘겨 봅니다. 그리고 그 위로 입을 맞춥니다.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이. 당신이 눈을 뜨면 그가 입을 엽니다.
"이상하네, 내가 눈을 뜰 시간인데 당신이 눈을 뜨면 어떡해."
여전히 당신의 몸은 무겁고, 입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대화를 계속합니다. 봐아, 꿈이네….
문득 당신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며칠 전과는 상반되게도요. 이어 당신의 시야가 명멸하고, 새로운 장면이 시작됩니다.
:“어서 말해 주세요. 꿈이 아니라고. 내 앞에 있는 당신은 온전한 첸 티엔이라고, 직접, 말해 줘….”
“그래요, 그러니까…. 보아하니 날 찾으러 와 준 모양이네요. 그쵸?”
“응, 찾으러 왔어요. 당신이 많이 보고 싶었어….”
“네에, 저도 당신이 많이 보고 싶었어요. 어디 안 가고 잘 기다리고 있었는데…. 칭찬해 줄래요?”
이안 브란트는 첸 티엔과의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아이처럼 터뜨린 눈물을 당신이 빈 손으로 닦아주고, 서로를 끌어안고, 영원을 속삭이며….
제자리를 찾은 듯한 이안의 얼굴은 아주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보석처럼 맺혔다 흘러 떨어지는 위성들, 멀리 반짝이는 은하. 분명 공기조차 없을 우주 저편에서 불어오는 듯한 여름밤의 열기….
그 모든 것들이 엉기어 한 방향으로 난 길로, 두 사람은 나아갑니다.
당신의 시야 밖으로, 세계 밖으로.
:긴 꿈에서 깨면, 정말 오래도 잤는지 어느 새 아침입니다. 몸이 개운합니다. 체온을 재 보면 열은 전부 날아가 있습니다. 떨어진 체력을 전부 회복합니다.
이제 학교에 갈 준비를 합니다. 교복을 입고, 익숙한 가방을 듭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평소와 같은 여름 하늘이 보입니다.
꿈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른, 물감을 머금은 듯한 생생한 푸른 색. 퍽 아름다운 색입니다.
학교에 등교합니다. 뒤로는 언제나와 같은 무료한 수업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안의 수업이 시작되려 하면… …
아무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그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듯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수업중인데도 매점으로 향하는 학생 또한 보입니다.
첸 티엔:(본능적인 불안이 들이닥친다. 반을 나서려는 급우를 붙잡는다. 다소 거친 손길이었으나, 인지할 정신조차 없다. 얼빠진 낯으로 물었다.) 어디 가요? 지금…. 수업 시간이잖아요. 이안 선생님은 왜 안 오시는 건지….
:아, 첸은 못 들었겠구나? 당황한 듯한 급우는 이어 태연하게 말을 잇습니다.
그는 티엔이 결석한 날 학교를 퇴직했다고 전해줍니다. 고향에 큰 일이 생겨 바로 돌아가봐야 한다고요. 변변찮은 송별회조차 하지 못하고 그 날로 학생들과 인사를 마친 후 떠났다고 말합니다.
정말 떠나버린 걸까요? 분명 할 말이 있다고 했잖아요.
적어도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텐데. 당신이 받은 회중시계는, 고장났을 것이 뻔한 시계가 울리는 듯한 기분을 받습니다.
그러니까요, 어쩌면.
어쩌면. 아직 거기에 있지 않을까? 지금 뛰어나가면 잡을 수 있는게 아닐까?
:뛰어나가거나, 혹은 뛰어나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첸 티엔:(목에 걸린 회중시계를 움켜쥔다.) 내가, 원하는 곳은…. (눈가가 뜨겁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반의 뒷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달려야 할 때가 온다고 했었지. 내게는 그게 바로 지금인 듯해.) 선생님의 곁이에요. 어느 장소도 아닌, 이안 브란트의 곁이요.
:당신은 무작정 바깥으로 달립니다. 어쩌면, 당신이 향하는 그 어느 곳이든 그가 있을 겁니다.
마음을 먹는다면, 바로 발을 움직입니다. 땅을 박차고 뛰어나옵니다. 복도를 달립니다. 계단을 몇 개 가볍게 뛰어내리면...
첸 티엔: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83 |
| 판정결과: | 실패 |
:우당탕 넘어지며, 바로 곁, 바꾸기 위해 근처에 기대어 세워둔 새 유리창에 몸을 부딪힙니다.
쨍그랑!
:기시감이 느껴지는 경쾌한 파열음.
“으악!” 곁에서 지나가던 사와다가 놀라 당신과 유리를 번갈아봅니다. 이거 어쩔거냐는 표정을 짓고서요.
첸 티엔:사와다, 죄송해요!
뒷일 좀 부탁해도 될까요? 어쨌든 인생에서 한 번은 달려야 할 때가 있다고 했잖아요.
(파안한다.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이거든요!
:잠깐, 야... 너...! 노성이 이어져야 했을 타이밍이지만, 당신의 표정을 본 사와다는...
사와다: 달려!!!!
:“야! 사와다-!!! 너 이거 깼어!? 이리 와!” 지나가던 선생님이 높이는 목소리 또한 들립니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의 말대로, 어쨌건 한 번은 달려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지금인 거고요.
“부장! 돌아왔군요!”
“정말, 얼마나 걱정했지 알아? 대회가 곧인데.”
“아, 정말,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왜 그랬는지 어째 나도 잘 기억이 안 나…”
길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 푸른 하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몸은 가볍고 머리는 상쾌합니다. 가벼운 전능감이 온 몸으로 뻗어나갑니다.
:목적지는 이안 브란트의 곁. 자, 어디로 향할까요?
첸 티엔:(수평선으로.)
:만약 지금 그를 잡는다 해도 아마 그는 떠납니다.
내일이면 이 곳에서 더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래도.
달리고 달려 도착한 장소에는... 그곳에는, 이안 브란트가 있습니다.
그는 아직 당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곁에는 작은 짐 가방.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앉아있던 곳에 자신의 가방을 놓아두고, 아무것도 가져갈 것은 없다는 듯 하늘을 바라보며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니까, 결국 두 사람이 향하는 목적지는 같은 거잖아요? 어떻게 할까?
첸 티엔:(힘껏 달려 당신의 등에 몸을 부딪친다. 그대로 끌어안았다.)
이안 브란트:우앗, (당황한 음성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손을 겹쳐 잡는다.)
첸 티엔: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먼저 가버리는 게 어디 있어요? (등에 고개 묻은 채로 꿍얼거렸다.)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급하게 오느라 유리창도 깨버렸다고요.
이안 브란트:(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해요, 다치진 않았구요? 최대한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이곳에 있는 제 기억은 지워버릴 생각이라서어.
첸 티엔:(퍼뜩 놀라 몸을 떨어트린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제, 제 것도요?
이안 브란트:아, 아니. 당신 것은 남겨둘 생각이었는데. 그쪽을 좋아할 것 같아서. 그, 시, 시, 싫으면… …….
첸 티엔:(당신의 옷깃을 붙잡아 당긴다.) 남겨요! 절대로, 가져가면 안 돼요! 아셨죠?
이안 브란트:아, 알았어요. (짤막한 웃음소리.) 역시 욕심은 많은 편이 어울리는 것 같고.
계속 기억해 줄 거예요?
첸 티엔:네에. 그래야 이쪽의 이안 브란트를 만나게 되는 날 바로 낚아챌 수 있을 테니까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쪽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쪽의 당신도 나를 사랑할 것 같나요?
이안 브란트:낚아챈다뇨. 지금처럼요? (웃음 그칠 일이 없다. 뒤이어지는 말은 꽤 확신에 차 있다.) 분명히 그렇겠죠. 이쪽의 이안 브란트도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지 고민하기나 할 걸요….
첸 티엔:지금보다 더 세게요. (마주 웃었다. 붙잡았던 옷자락을 놓고 한 걸음 물러선다. 그 걸음은 미련스러울지언정 애수는 담겨 있지 않다.) 선생님 첫사랑 말인데요. 첸 티엔이죠? 보내 드릴게요. 제가 특별히 양보해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빌어주실래요? 제 행운이 하루빨리 저를 찾아올 수 있도록요. (열여덟 소년의 첫사랑은 끝이 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멀어진 것을 붙잡아 품어낸 사랑에서는 라벤더 향이 났다.)
이안 브란트:잘 알고 있네요? 눈치 빠른 것도 똑같고…. (하나 다른 건 나이뿐일까? 딱 한 걸음 다가가 당신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린다.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고마워요. 행운을 빌게요. (행복은 이미 빌어주었으니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무엇보다 먼저 라벤더 향이 희미해질 무렵.) 건강해야 해요.
그리고…. 진-짜 마지막 비밀.
:손이 떨어집니다. 그가 다시금 멀어집니다.
이안 브란트:유리창 깬 거 당신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어요. 미안해요. (그렇지만 그때는 당신이 깬 게 맞으니까. 이해해 줄 수 있죠?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이해하지 못할 것을 중얼거립니다. 장난기 어린 표정입니다.)
:그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선생님의 얼굴이 아닌 이안 브란트라는 한 사람 개인적인 얼굴. 시선 끝에는 당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바람이 강하게 불면,
입 모양으로 다음을 기약하였던가요? 혹은 마지막을 고하였던가요?
눈을 깜박이는 찰나 그는 사라집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당신이 마음 한 켠에서 예감했던 대로 이안 브란트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모두에게서 잊혀집니다. 이제 그 누구도 이 학교에서 수업을 가르쳤던 이안 브란트에 대해서 떠올려내지 못합니다.
그의 자리를 메꾸고 들어온 선생님은 완전히 낯선 다른 인물로, 학생 몇을 뽑아 마지막 남았던 수영장 물 청소를 부탁합니다.
:수영장 청소에 동원된 아이들은 저마다 야유를 보내거나 작은 소리로 불만을 내뱉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물청소만 하면 되는데 뭐가 불만이냐며 학생들의 머리에 가볍게 출석부를 가져다 댑니다.
그러고보면 지난 1주일, 앞서 수영장 청소를 했던 당신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되어있는 걸까요? 그 사실을 물어 확인하려다, 입을 다뭅니다.
“물 나온다!”
끼익, 수도를 돌리는 소리. 머지 않아 호스 끝에서 힘차게 물이 터져나옵니다. 호스를 쥔 아이들은 꺄악거리며 비어있는 풀장의 타일 위를 위험하게 달리거나 밀대를 밀기 시작합니다.
푸른 하늘로 깨끗한 물방울이 튀고, 작은 무지개가 그려집니다. 물을 보면 문득 강가에 낙하했던 그 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강 밑에서 목격했던 끔찍하고 기분나쁜 것들은 아직 남아있을까요? 그것들을 떠올리면 다시,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몰라요. 햇빛이 뜨겁습니다. 어딘가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티엔.”
바람과 함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던 그 날. 손을 뻗어 상대를 붙잡은 한 순간. 낯익은 얼굴, 목소리. 웃음소리.
밝은 함성이 오고갑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
...
...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릅니다. 그는 언제까지나 당신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며, 학교 생활은 다시 일상을 되찾습니다. 그가 사라진 것 이외엔 하나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이어나갑니다.
그리하여 다시 여름, 오늘은 담임 선생님의 부탁을 받아 체육관으로 향할 일이 있었지 않나요?
교사를 걸어 강당으로 향합니다. 작년 이 즈음에는 강당의 3층으로 향했던 것 같지만요. 오늘은 1층의 체육관의 문을 엽니다. 운동부의 연습 시간도 모두 끝난 것인지 체육관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당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하게 흩날리는 검보랏빛 머리칼, 빛을 받아 반짝이는 검은 눈.
당신의 기억보다 앳된 얼굴을 한 이가, 손을 내민 채 당신을 바라봅니다. 한결같이 당신을 아는 듯한 눈빛을 하고서.
:그 뒤엔 어떤 대화를 나누었던가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신의 곁을, 제자리를 찾은 이가,
이안 브란트:안녕하세요, 이안 브란트… 라고 합니다.
:시작을 고합니다.
시간은 물과 같아. 잡을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지. 서투르게 발을 떼면 순식간에 휩쓸려 흘러갈 뿐. 그러니 당신은 지면을 박차고, 자신의 길을 따라 달립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남은 인생이 모조리 바뀌는 그 순간. 마치 운명처럼.
그가 서 있습니다. 목적지는 언제나 당신이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당신이 기억하는, 당신을 기억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 시간여행자가 이름 없는 호숫가에 서 있습니다.
호수 정도씩이나 되는 지형에 명칭이 붙지 않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그 호수에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사람 걸음으로 옮겨갈 수 있는 근방 어디에도 그러한 규모의 물이 없었으므로 모두들 그저 ‘호수’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지칭하게 된 까닭입니다.
1425년 가을, 83번째 삶, 헤아리지 못할 세월을 살며 오직 한 번 다른 선택을 했던 날들. 첸 티엔이 그의 연인을 찾지 않았던 유일한 시간대.
그리고, 이안 브란트가 다시금 당신을 찾아온 순간.
:호수는 진즉 하늘과 맞닿아 있었으니 수평선을 보러 가잔 약속은 지킨 셈이고, 남은 건 당신의 존재를 지키는 일뿐이지? 이안 브란트는 먼 발치에서 바람결에 흩날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쳐다보더니, 발소리를 죽여 당신에게 다가갑니다.
너른 호수 위에 떠 있는 당신을 바라보며 강물 아래서의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물 속에는 각이 있을까? 그런 것을 말예요.
이안 브란트는 당신의 눈을 가리어 카약 아래로 끌어내리고, 다시 하늘과 마주합니다. 제자리를 찾은 이는 아무렇지 않게도 말간 낯을 짓습니다.
이안 브란트:혼자 뭘 보고 있었던 거예요? 티엔.
:이안 브란트라는 이름의,
다시 첸 티엔이 사랑이라 이름 붙인 그랜드 피날레를 위하여.
여기, 수천 년의 세월이 당신에게 바치는 헌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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