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of 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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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란트 가문 사람들과 그의 저택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은 전부 한 달 전의 '그 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브란트 가의 저택에 큰 화재가 났던 일 말입니다.
다행히도 불이 크게 번지기 전 내린 폭우로 화재는 진화됐지만, 그로 인해 감춰지지 못한 끔찍한 살해 현장은 지금까지도 온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불에 타지 못한 시신들은 하나같이 급소를 공격당해 죽어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이안 브란트의 시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죠.
그렇게 이안 브란트, 그러니까 당신의 전 결혼상대가 모습을 감춘 지 한 달째, 그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낙인 찍혔습니다.
살아는 있는 건지 정말 그 끔찍한 일을 벌인 게 맞는지 묻고 싶어도 당사자가 증발해버렸으니 그럴 수 없었죠.
오늘도 그 끔찍했던 사건에 대해 멋대로 추측해 떠들어대는 기사들만 실린 신문을 보고 있자면 이젠 정말 지겨울 정도입니다. 그칠 줄 모르고 벌써 며칠째 창밖을 두드려대는 저 빗소리처럼요. 늦은 장마가 시작할 모양이라던가요?
한기가 서린 창문을 커튼으로 가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찰박, 찰박.
 :이어서 물을 머금은 발걸음 소리, 그리고 당신을 부르는…….
이안 브란트:티엔,
 :살인자의 목소리가.
눈 앞에 서있는 것은 틀림없이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 이안 브란트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 그가 걷는 걸음마다 만들어진 물길이 카펫을 적시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금 입을 엽니다.
이안 브란트:티엔, 도움이 필요해요. 부탁이에요.
첸 티엔:
심리학
기준치:60/30/12
굴림:8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그는 간절해 보입니다. 동시에 입가에는 미미한 미소가 띄워져 있군요. 오랜만에 당신을 봐 기쁘기라도 한 걸까요?
첸 티엔:……이안?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건이니, 용의자니, 기실 첸 티엔의 관심사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당신의 생존만을 바라지 않았던가.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직도….) 이게 대체…. (습관적으로 당신의 안색을 살핀다. 비에 젖어 창백해진 모습. 서둘러 손을 내밀어 당신을 안으로 이끌었다.) 일단, 몸부터 데워요. 갈아입을 옷이라도….
이안 브란트:(찬 날씨에 비를 맞고 온 탓에 핏기 없는 낯. 안도하는 듯하기도, 반대로 더욱이 긴장하는 듯하기도 하다. 손길이 내밀어지면 미미하게 동요하더니 한 걸음 물러선다. 이전이라면 붙잡았을까? 그러니까, 두 사람이 갈라서기 전이었다면……. 그는 주춤거리더니 자리에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고 입술을 달싹였다.) 바닥이 다 젖을 텐데….
첸 티엔:(뻗었던 손이 허공을 쥔다. 힘없이 내리는 손에는 머뭇거림이 담겨 있다. 고작 한 걸음 멀어졌을 뿐인데도 닿을 수 없다. 꼭 수평선 마냥. 서로를 비추며 나란히 하는 듯싶으나 경계선이 지워질 일 따위는 없는…. 허물어지려는 표정을 애써 다잡는다. 재차 당신을 보았으나, 그 시선만큼은 이전과는 다르다. 미미하게 아래를 바라보는 눈. 검은 눈을 담아내기는커녕 젖은 어깨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에요. 괜찮으니까…. 들어와 줘요.
이안 브란트:(이안 브란트 또한 당신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시선은 떨어진 당신의 손으로, 다시 형편없이 젖은 제 구두로 향하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망설였으나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럼… 실례할게요. (조그맣게 내뱉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곧장 물기가 떨어지는 겉옷을 벗어 양손으로 쥐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이곳까지 들어왔으니 저택 내부의 사람들도 제가 들어온 건 모를 거예요. (복도에 물기가 조금 남아있긴 하겠지만… 중얼댔다. 손끝에 힘을 주어 옷을 쥐곤 마저 이야기한다.) 죄송해요, 매번 당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첸 티엔:그런 말씀 마세요. (당신을 곤란케 하는 건 언제나 자신이었음을 알고 있다. 제멋대로 시작하고, 제멋대로 오해하고, 제멋대로 끝을 내고….) 이리 와서 앉으시고요. 벽난로에 불씨를 올릴 테니까…, 추위를 달랠 수는 있을 거예요. (사용인을 부를 수는 없으니 어색하게나마 손수 불을 올려 냈다. 방 안에 훈기가 도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는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천천히 말해 줄래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이안 브란트:(진심으로 안도하는 표정. 주춤거리며 의자에 앉았다가도 불을 붙히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만다.) 저어, 창문을 좀 열어도 될까요? (성큼 창가로 향한 그는 질문에도 불구 답이 떨어지기도 전 황급히 창문을 열어젖힌다. 당신이 알던 이안 브란트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답답해… 창문 앞에 선 이가 겨우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댔다. 그 자리에 서 셔츠를 만지작대기만 하더니 말을 잇는다.)
……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리자면… 저를 이 저택의 사용인 신분으로 두고 숨겨줄 수 있나요? 누명이 벗겨지고 진범이 잡힐 때까지만요.
그, 그게… 당신도 아시듯 제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었는데, 가족도 모두 잃어버린 마당에 생각나는 사람이 당신, 밖에 없어서……. (더듬거리며 눈치를 본다.)
첸 티엔:아……. (짧은 침음. 이어 사건을 떠올렸다. 그 장면이 뇌리에 각인되었다면 작은 불씨조차도 두려워할 것이 뻔하다. 첸 티엔은 흐린 낯으로 불을 꺼트렸다. 이번에도 당신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생각만이 감돈다. 이안 브란트의 사소한 돌발 하나에도 박동이 튀는 것이 느껴질 정도인데, 그간의 공백은 대체 어떻게 버텨낸 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저를 믿고 의지하란 말은 안 할게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믿으니까. 다른 걱정은 하지 말고 보중부터 해요. (이젠 당신이 아파도 곁에서 이마를 짚어줄 수 없으니까요, 덧붙인다.)
이안 브란트:(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던 이가 고개를 돌린다. 당신을 마주하는 새카만 눈에 어린 감정은 안도보다는 당혹에 가깝다.) 저를… 믿으시는 거예요? 사건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으면서…….
첸 티엔:제가 당신을 믿지 못해서…. 첸 이안이 이안 브란트가 되었는데. (속삭이듯 흐려지는 말. 명확한 음성이라기엔 바람 소리에 가까웠다.)
이런 거라도 믿어야지 않겠어요.
이안 브란트: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요. (쌕쌕대는 숨. 한동안 어떠한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아무쪼록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최대한… 당신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흠뻑 젖은 이안의 모습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창백한 피부와 파랗게 질린 입술은 둘째치고 비 오는 창문을 열어젖힌 탓에 온 바닥을 물웅덩이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씻고 마른 옷을 입히는 게 좋겠네요. 당신의 방에는 욕실도 있으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가 씻을 수 있을 겁니다.
첸 티엔:괜찮아요, 그깟 피해쯤은…. (이어 침묵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속내를 삼킨 뒤에야 말 잇는다.) 그럼…. 따뜻한 물로 몸 좀 녹이시겠어요? 갈아입을 옷도 준비해 드릴게요.
이안 브란트:아…. (늦게나마 젖어버린 바닥을 확인하고는 창문을 반쯤 닫는다. 모두 닫지는 않은 탓에 바람에 창틀이 흔들거렸다. 눈을 데록 굴리더니 욕실로 향하는 문을 곧장 찾아낸다. 이전에 당신의 방을 몇 번 들렀던 덕이겠지.) 그, 금방 씻고 나올게요. 옷만 준비해 주세요.
첸 티엔:늦게 나오셔도 돼요. 기다릴 테니까, 서두르지 마세요.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 반쯤 닫힌 창문을 마저 단속했다. 손수건을 찾아 바닥의 물기마저 훔쳐내고 있으니 꼭 자신이 사용인이 된 것만 같았다. 당신의 옷가지를 챙기고 있으니 더더욱. 입을 만한 옷 몇 개를 챙겨 욕실 문 앞에 내려둔다.) 옷은 앞에 둘게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욕실 문 가까이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이 준비해준 옷으로 갈아입던 그는 조심스레 말합니다.
이안 브란트:저어, 티엔…. 손수건 하나만 가져다 주실 수 있으세요?
첸 티엔:손수건? 그건 왜요?
이안 브란트:(잠잠하더니만) 감기 기운이 있어서… 목을 따뜻하게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첸 티엔:으음. 잠시만요…. (서랍을 여는 소리와 물건을 뒤적이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 온다. 이윽고 울리는 불규칙한 걸음 소리. 파티션을 사이에 둔 채 물었다.) 옷은 다 입으셨어요?
이안 브란트:대충은요. (사이로 손만 내밀었다.)
첸 티엔:(건네지 않는다.) 도와 드릴게요.
이안 브란트: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네? (초조한 음성.)
첸 티엔:믿는다고 했잖아요. 무어든 못 본 척할 테니까…. (말끝이 떨린다. 혹여나 몸이 성치 않을까 불안해진 탓이다.) 네? 제발요.
이안 브란트:(결국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민다. 셔츠를 끝까지 잠갔지만 미처 가려지지 않은 하얀 목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 붉은 상처들이 자리잡고 있다. 당신의 안색을 힐긋 살피고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별, 일은 아니에요. 제가 할 테니 주세요.
첸 티엔:(붉은 자국을 보면, 시선을 내리 까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답할 말을 찾지도 못한 채 손을 머무적거리고, 몇 차례 마른침을 삼켰다.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료는? 약이라도 바르고 가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이안 브란트:괜찮아요, 심한 상처도 아니고……. (습관처럼 손을 목덜미 근처로 가져갔다가 당신을 의식하고는 금방 내린다. 이어 조그맣게 말한다.) 내놓고 있으려니 걱정하실까 봐 달라고 한 거였는데.
첸 티엔:(황급히 손을 잡아 내린다. 당신이 의식하기도 전에 벌어진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게 어딜 봐서 심한 상처가 아니란 거예요…. (울 듯 찡그린 눈가. 그러나 애써 표정을 풀어낸다.)
이안 브란트:(내치듯 손을 뒤로 한다. 닿은 손은 여전히 차다. 그러고 보니 더운 물에 씻고 나온 사람 치고는 열기가 전혀 없는 모양새.) 죄… 죄송해요. (당황하여 눈치를 살피더니 눈꼬리가 아래로 기운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 달라고, 꼭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매.)
첸 티엔:손은 왜 또 그렇게 차갑고요. (내쳐져도 다시금 붙들어 온다. 오로지 당신의 체온에만 신경을 쏟는 눈치다. 온기를 나누어 주는 쪽은 언제나 당신이었는데,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대체….
이안 브란트:아, 아무 일도. (어색하게 손을 빼낸다.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상처라면… 걸고 있던 목걸이가 질 나쁜 물건이었던 건지 피부가 가려워져서 긁은 것뿐이에요. (한 걸음 물러나서는) 저, 이제 피곤해서 그만 자고 싶은데…….
첸 티엔:(긴 침묵이 이어진다. 하긴, 사정을 털어놓을 만한 사이는 아니지 않나. 힘없이 손을 거둔다. 고개를 떨군 것 같기도 했다.) …네, 그렇게 해요. 곤란하게 했다면 죄송하고요.
이안 브란트:아니에요. (작게 대꾸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파만 좀 빌릴게요.
첸 티엔:침대에서 주무세요. 소파는 추울 거예요.
이안 브란트:그, 그럼 당신은요? 그건 너무 민폐인 것 같은데…. (이미 충분히 민폐 끼치고 있긴 하지만….)
첸 티엔: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그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도 겨우 고개를 끄덕입니다. 기이한 밤입니다. 어쩐지 멀어 보이는 이안에게 거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빗소리는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집니다.
...
...
...
깊은 새벽,
귓가로 먹먹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시야를 가리는 어두운 그림자에 눈을 몇 번 깜빡이면,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표정을 한 이안의 얼굴입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할 수 없이 한참 동안 그 시린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작고 빠르게 반복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첸 티엔:
듣기
기준치:70/35/14
굴림:34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숨소리가 거슬려, 짜증나, 목이 말라요, 시끄러워……. 두서없는 말들을 반복하는 그의 목소리입니다.
마치 주문처럼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그의 목소리와 당신을 내려다보는 눈이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건 진짜 이안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꾸고 있는 꿈속의 이안인가요. 옅은 꿈과 현실이 미묘하게 교차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윽고 당신의 몸이 허공으로 부유하는 듯한 같은 감각과 함께 다시금 눈이 감기고 빠르게 쏟아지던 그의 목소리도 뚝 끊겨버립니다.
 :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눈을 뜨면 어둑한 실내와 여전히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 그리고 차가운 물비린내를 머금은 공기가 당신을 맞이합니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 창가를 살피면... 창문을 열고 잠들었던가요?
빗줄기가 들어와 창가의 바닥을 온통 적시고 있습니다. 방의 온도가 시린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열려있는 창문을 제외하면 어제와 같은 풍경의 우중충한 아침입니다. 눈을 비비고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일으키려 하고 있으면 방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집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방 안에 있을 이의 존재가 생각났지만 이미 집사장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걸음 한 이후였고 당신이 놀라 이안이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면... ...
어라? 아무도 없습니다. 어딘가에 숨은 걸까요? 아니면 결국 당신조차 믿지 못하고 밤사이에 이 저택을 떠난 걸까요? 어쩌면 어제의 일들이 전부 꿈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곁으로 다가온 집사장의 중후한 목소리가 당신을 부릅니다.
집사장: 도련님, 이른 아침부터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밤 사이에 누군가 저택의 모든 창문을 열어둔 것 같습니다. 새벽 일찍 저택의 모든 곳을 뒤져봤지만 수상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둑이 든 것이라기엔 사라진 물건 또한 없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경찰을 부르는 게 어떨까 싶군요.
첸 티엔:(창문? 문득 기시감을 느낀다.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으므로 고개를 저어 낸다.)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 일러두는 걸 깜박했네요…. 창문은 내가 열어두라고 지시한 거예요. 빗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집사장: 도련님의 지시라면…. (의아한 기색이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당신이 집사장을 적당히 설득해 돌려보내고 방문이 닫히면...
끼익, 욕실 문이 열리며 긴장한 듯한 표정의 이안이 얼굴을 내밉니다.
이안 브란트:발 소리가 들리길래 놀라서……. (닫긴 문을 확인하고야 방으로 나옵니다.)
첸 티엔:으응. 잘 넘겼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습관적으로 당신의 안색을 살핀다. 지난밤 보았던 건….) 잠은 좀 주무셨나요?
이안 브란트:네에, 덕분에… 잘 잤어요. (옅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이어 이안은 조심스럽게 어제 말했던 바를 다시금 요구합니다. 자신을 새로 고용한 사용인이라고 다른 사용인들에게 설명해 달라면서요.
첸 티엔:그렇게 할게요. 대신…. 하나만 답해줄래요?
이안 브란트:네? (눈을 깜박였다.)
첸 티엔:절 미워하시는 건…. (아니죠? 뒷말은 차마 이어내지 못했다. 확신 없는 시선이 바닥만을 담아낸다.)
이안 브란트: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가 당신을 왜 미워해요. 오히려……. (망설이더니 뒷말을 삼켰다.)
첸 티엔:오히려?
이안 브란트:(오히려 당신이 나를 미워하진 않을까? 오히려, 나는, 당신을…….) 가, 감사하다고요……. (머리를 헤집는 생각들이 있다. 어렵사리 단어를 고른 끝에 싱겁기 짝이 없는 대답을 내놓는다.)
첸 티엔:(입꼬리를 끌어당긴다. 당신의 앞에서 웃을 적이면 항상 무언갈 담아 내려 노력했지만, 이번만큼은 덜어내기 위함이었다. 각종 미련, 후회, 그리움….) 저는….
…당신을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어쩌면 사랑까지도.)
이안 브란트:그건…… 저도 그랬어요. 보고 싶었어요. (우물거리던 끝에 진심 담긴 말을 내놓는다. 어려운 꼴이 되고야 이렇게 찾아온 꼴이 퍽 초라하기도 하고, 목적 불순한 자가 보고 싶었다는 말을 내놓자니 애정을 빌미로 당신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감히 먼저 내놓지 못했던 것.)
(하지만, 당장 이런 형편에 어찌 사랑놀음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가늘게 떨리는 손을 등 뒤로 숨기고 고개를 들었다. 뒤이어 농처럼 말한다.) 가명, 지어주실래요? 다른 사람에게 이안이라고 소개할 수는 없으니까요.
첸 티엔:(마음 깊이 사랑했음에도 갈라서게 된 연유란 그리 장황하지 않다. 넘쳐흐른 감정을 담아낼 곳이 없었다. 그랬기에 파란 같은 애정에 밀려나길 반복했다. 두 사람 간의 틈은 깊고도 멀어졌다. 고작 한 걸음으로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가 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손…. 보여주세요.
(답지 않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등 뒤로 손을 뻗었다. 하필이면 당신의 왼손을 찾아 쥐고, 언젠가처럼 제 앞으로 끌어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지는 비어 있다. 주제 없이 기대하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방도가 없다. 불현듯 첸 티엔은 직감했다. 오늘 밤도 꿈을 꾸리라. 2년 전 그날을 반복하리라. 후회하면서도 내뱉은 말 주워 담지 못했던 자신을 보게 되리라.)
가명 말인데…. 아이라고 해요. (끌어온 손바닥 위로 스펠링을 적어 낸다. à, i.) 당신 이름을 뒤집고 덜어낸 것뿐이라 내세우긴 좀 그렇지만. (뻔한 거짓말. 표정을 가다듬는 것에는 특출난 이였으나, 이것만큼은 숨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愛을 거짓으로 품어낼 수 있으랴.)
이안 브란트:(얼음장처럼 찬 손을 내어놓기가 겸연쩍은지 고개를 가로저었음에도, 그 손길을 밀어내지는 못하였다. 닿아오는 온기에는 파들짝 놀라 인상을 찡그리기도 하였으나 당신이 싫은 기색은 아니었고, 외려 표정을 가다듬으려 노력하는 듯했다. 그는 손끝이 손바닥 위를 간질일 때마다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손가락의 움직임을 가만 지켜보기만 한다. 기다림의 순간이다. 다음 획이 이어지기를, 사랑, 그 단어가 완성되기를….)
(결혼 후 빈 시간이 있으면 당신의 모국어를 배웠었다. 언어에 있어선 배움이 굼뜬 탓, 민망하여 당신에게 미처 그 사실을 말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어려운 말들이야 알아듣지 못하였겠지만 간단한 단어쯤은 여전히 기억했다. 사랑愛, 특히 그것은… 가장 먼저 익힌 단어 아니었던가? 언젠가 당신에게 직접 들려주게 될지도 모른단, 막연한 생각에…….)
아이, (말로 내어 곱씹는다. 그러자니, 순간 이안 브란트는 아무 일도 없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2년의 공백을 잊고, 이 순간만큼은 밝은 얼굴을 보인다.) 마음에 들어요. 계속 그렇게 불러 주세요, 제가 여기에 있는 동안은.
첸 티엔:(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이어 눈을 두어 차례 깜박였다. 조명에 눈이 부셨던 탓이다.) 누명을 벗고 나면…. 떠나실 건가요?
영영…, 보지 못하게 되나요? (불안정한 호흡. 애써 내색하지 않는다.)
이안 브란트:떠나지 말까요? (시답잖은 말처럼 가벼운 투로 내뱉는 물음. 당신과의 관계를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이안 브란트는 무사히 끝을 맺을 수 있다는 가정이 어려웠다. 다시 말하자면 스스로가 떠나니 마니 하는 것을 정할 만한 위치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첸 티엔:이번에는…. (충동에 불과한 말임을 안다. 이미 늦어버린 마음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나 전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어째서 지금에야 전하게 되었는가, 하는 후회. 2년만 빨랐더라면, 우리는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당신은 여전히 첸이라는 성 아래 첸 가家 에서 지내왔을 테니, 그와 같은 사건 또한 겪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리석은 가정이다.) 아니, 이제는…. 보내고 싶지 않아요.
이안 브란트:가지 않을 수 있다면요. (이번에는, 속삭인다. 하고 싶은 말 많더라도 지금은 이르기만 하다. 그는 덧대는 말 없이 당신의 손끝을 한 번 움켜쥐었다가 불에 덴 듯 놓는다. 때를 놓친 애정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안은 손을 놓은 뒤, 지금 소개하지 않으면 타이밍이 늦을 것이라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두 사람은 사용인들의 눈을 피해 응접실로 향합니다.
응접실로 도착한 당신은 집사장과 메이드장을 불러를 이안은 아이로 소개합니다. 당신의 전속 사용인으로 쓸 테니 당분간 곁에 두고 직접 교육하겠다는 변명도 함께 말이지요. 집사장과 메이드장은 조금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도 납득한 듯 짧은 인사를 마치고 돌아갑니다.
곧 다시 찾아온 집사장은 이안이 입을 옷을 전달하고 이 저택에서 지켜야 할 간단한 규칙과 그가 지내게 될 방 따위를 설명해 주겠다며 옷을 갈아입고 1층 로비로 내려오라는 말을 남긴 뒤 사라집니다.
금방 사용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이안은 어색한지 옷 소매나 목 부근을 만지작거립니다.
이안 브란트:괜찮아 보여요? 이상하지는 않은지…….
첸 티엔:잠시만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기다랗게 접어 낸다. 접힌 손수건을 당신의 목 위로 꼼꼼히 두른 다음, 튀어나온 조각들을 셔츠 깃 아래로 밀어 넣는다.) …질 좋은 옷이 아니니까요. 상처에 닿으면 아플 거예요. 이러면 적어도 따끔거리지는 않겠죠.
이안 브란트:(좁은 거리감이 어색한지 슬며시 고개를 돌려낸 채,) 감사해요. (한 걸음 물러나서는 당신이 둘러준 손수건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잔잔한 미소를 띠고 말을 잇는다.) 첫날부터 지각하면 안 되니까… 다녀올게요.
첸 티엔:으응. 무리하지 말고요. 무슨 일 있으면 제 이름 대시고…. (미련 어린 눈으로 거리를 가늠한다. 한 걸음. 당신은 계속 멀어지기만 하는구나.)
 :마지막으로 짧은 눈인사를 하고는 1층으로 향합니다. 이안이 걱정되긴 하지만… 잘 넘어갈 거라고 믿는 수밖에요. 그가 간단한 교육을 받는 동안 당신은 자신의 일을 처리할 생각으로 서재로 향합니다.
 :그 뒤로 얼마나 일에 몰두해 있었을까요? 사용인이 가져다주었던 차는 어느새 차게 식어있습니다. 이안은 여전히 집사장에게 잡힌 모양인지 얼굴을 비추지 않습니다.
하긴 오늘 아침 온 저택의 창문이 열려있었다고 했죠. 이 넓은 저택의 창문이 전부 열려 있었다면 뒷수습을 하는 건 꽤나 골치 아픈 일일 겁니다. 온 저택의 사용인들이 들이닥친 빗물을 닦는데 정신이 없겠죠.
아마도 그 또한 지금쯤 난생 처음 걸레조각을 손에 들고 바닥이나 물이 튄 벽 조각상 같은 것들을 닦아내고 있을 겁니다.
그때,
"아아악-----------!!!"
귀를 찢을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무슨 일이죠? 1층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
첸 티엔:(무슨 소란이지?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간다.)
 :다들 저 비명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급히 걸음을 옮기는 발소리들도 들려옵니다. 당신 또한 서재를 나서 소란의 근원지로 보이는 1층으로 향하기 위해 계단 앞에 서는 순간...
계단의 끝 가장 아래에 널브러진 누군가의 몸뚱이가 보입니다. 머리에 붉게 퍼진 피웅덩이와 그 주변을 둘러싼 사용인들. 몇몇의 사용인들은 주저앉아 떨고 있으며 실신할 듯 우는 이도 보입니다. [SanC 1/1D3]
첸 티엔:
SAN Roll
기준치:75/37/15
굴림:37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당신이 계단을 내려오면 메이드장이 ‘시신’을 가리듯 당신의 곁으로 다가와 사선으로 서며 말해옵니다. 사용인 하나가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며 머리를 부딪힌 것 같다고요.
그러나 주변의 사용인들은 제각각 표정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리고 서거나 저들끼리 무어라 수근 거리기 바쁩니다.
첸 티엔:
듣기
기준치:70/35/14
굴림:2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사용인A: 정말 귀신이라도 있는 거 아냐?
사용인B: 계단은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저기에서 굴렀다고 죽는 게 말이 돼?
사용인A: 그러게 말이야. 어제 새벽에도 귀신이 창문을 전부 열어둔 거라며?
사용인B: 참. 그것도 저 죽은 애가 말한 거 아니었어? 잠옷을 입은 사람이 창문을 열고 돌아다녔닫던데... ...
첸 티엔:잠시만. 잠옷을 입은 사람이라뇨?
사용인B: 아, 도련님. (급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조심스레 답하기 시작합니다.) 저 죽은 애가 새벽에 빗소리가 너무 커서 복도로 나갔다가 유령을 봤다고 했거든요, 잠옷을 입은 사람이 유령처럼 느리게 걸으면서 저택의 창문을 전부 열고 돌아다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놀렸었는데 일어나 보니 정말 창문이 전부 열려있어서 사용인들이 다들 겁에 질려있었지 뭐예요.
첸 티엔:그 유령에 관해 더 들은 얘기는 없고요?
첸 티엔:흉흉한 소문이 돈다면 잠재워야죠. 어쩌면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니까… 자세히 들려주시겠어요?
설득
기준치:50/25/10
굴림:35
판정결과:보통 성공
사용인A: (옆에서 듣고 있던 이가 긴장한 낯으로 말문을 엽니다.) 그, 그러고 보니 그 애가 봤다던 유령이 자기가 전에 일하던 저택의 주인을 닮았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분명, 브란트 가였던 것 같은데... ... (목소리가 줄어든다.)
그것 말고는 저희들도 들은 게 없어서요.
첸 티엔: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9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그러고 보니 이 커다란 소란에 거의 모든 사용인들이 이곳에 모였죠. 그런데 이안, 한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첸 티엔:(시신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특별한 점이 있을까?)
첸 티엔:
관찰력
기준치:60/30/12
굴림:55
판정결과:보통 성공
 :계단을 구르며 머리를 크게 다친 모양일까요? 바닥이 사용인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크게 웅덩이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저렇게 피가 많이 흐른 거죠? 피가 흘러내린 곳을 살펴보면, 마치 무언가에 몇 번이고 머리를 세게 부딪혀 패인 듯한 상처가 보입니다. 계단에서 굴러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기엔... 너무 과한 상처 아닌가요?
어느새 옆에 다가온 집사장은 곧바로 이곳을 치울 테니 걱정 말고 올라가 계시라는 말을 건네옵니다.
첸 티엔:(안타까운 일이다. 속이 답답해져 한숨을 내쉬려다가도, 시신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으니 짤막이 묵념하는 것으로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린다. 이안은 어디에 있지?)
 :메이드장은 몰려든 사용인들 중 비위가 좋은 사람 몇을 추려 남기곤 다른 사용인들을 물립니다. 곧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침대 시트로 보이는 흰 천이 죽은 사용인의 몸을 덮자 머리 부분을 덮은 천은 곧 새빨갛게 물들어 갑니다.
당신도 자리를 피해주는 게 좋겠죠. 그렇게 당신은 시신을 뒤로하고 다시 2층으로 걸음을 옮기면... 서재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첸 티엔:……아이? (찾는 이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서재 안으로 발을 디뎠다.)
 :다시 서재로 돌아오면 보이는 것은... 창문을 열어놓고 허리를 굽힌 한 인영입니다. 당신이 찾던 이가 틀림없어요. 어딜 갔었나 했더니 이런 곳에서 쉬고 있었던 걸까요?
그는 여전히 파랗게 질린 얼굴로 창가에서 찬 바람을 쐬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바람이 어제보다는 덜 분다 하지만 종종 빗방울이 들이치는데도 창문을 닫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첸 티엔:…여기서 뭐 해요? 그러다간 감기에 걸릴 텐데. (다만 나서서 창문을 닫거나, 문을 닫으란 소리는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걸치고 있던 자켓을 벗어 당신의 어깨 위로 얹어두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혹시,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
이안 브란트:아, 티엔. (어깨 위로 옷이 얹어지고야 고개를 쳐든다. 파리한 얼굴, 찌푸린 미간. 시선이 마주하면 금세 돌려낸다.) 죄송해요, 멋대로 들어와서.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잠시 쉬고 싶어서... ...
첸 티엔:이 저택에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어요. 아시잖아요. (당신의 이마로 손을 가져다 댄다. 당신은 제 손길을 피하지 않을까? 확신할 수 있었던 것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창문은 왜 계속 열어두는 거예요? 그럴 거라면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어야죠.
이안 브란트:아뇨, 제가 뭐라고…. (지금의 이안 브란트는 단지… 초대받지 손님 아니던가? 손을 내치지 않았으나 한 걸음 물러난다.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댄다.) 더, 워요. 답답하고…….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내놓는 말이 영 논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의 말이 아주 틀리진 않은 것인지 셔츠 윗단추를 풀어내고, 당신이 둘러주었던 손수건조차 어디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목에 새겨진 상처 탓인 걸까? 셔츠 깃에는 옅은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첸 티엔:제 손님이잖아요. 내가 허락한, 내 손님이요. (정정하기라도 하듯 짧게 끊어지는 말들. 단호히 이르다가도, 고작 한 걸음 멀어진 거리를 가늠할 적이면 말끝이 흐려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손수건도 풀어버린 거예요? (당신이 내가 준 걸 아무렇게나 버린 건 또 처음이네요. 아스라이 덧붙였다.) 아니, 처음은 아닌가…. 반지도 없어졌으니까.
(손을 내려 셔츠 깃을 붙잡았다. 상처를 확인하고자 깃을 젖힌다.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목…. 긁지 마세요. 아프잖아요.
이안 브란트:그, 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신세 지고 있는 건 맞으니까… 예의를 지켜야죠…. (눈치를 보다가) 손수건…? (그는 아차 싶어 황급히 제 목, 이어 옷의 주머니를 더듬었으나 역시나 손수건이 있을 리 없다. 죄송해요, 그럴 생각은…. 위축된 목소리로 사과한다. 하나 이어지는 말에는 인상 찌푸린 채 묻는다.) 그런 걸 제가 어떻게 끼고 있겠나요, 이미 끝난 사이에. 이상하잖아요.
…… 그리고 버리지도 않았어요. 잃어버린 거지. (제 손끝을 만작거리며 변명했다. 목에는 새로이 새겨진 상처가 남아있었고,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첸 티엔: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데.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저어 낸다.) …저택에서 당신 소문이 돌더라고요. 간밤에 창문을 열어두셨죠? 제가 둘러대긴 했지만…, 사용인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니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안 브란트:저에 대한 소문이요? (움츠리고 있다가 퍼뜩 얼굴을 들었다. 어쩐지 당황이 어린 낯이다.) 서재의 창문은 제가 연 것이 맞지만, 제가 어디를 또, ……. (목소리가 점차 줄어든다.)
 :말을 이어가던 이안은 대뜸 괴로운 표정이 되더니 자신의 목을 손으로 감싸고 잔기침을 뱉습니다. 휘청이던 몸이 쓰러지진 않을까 싶더니, 벽을 짚고 겨우 선 그는 이제 손톱을 세워 목을 긁고 쥐어뜯습니다.
첸 티엔:이안…?! (삼켜야 할 이름이 튀어나왔다. 당황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탓이다. 급하게 당신의 두 손을 잡아 내리고, 벗어날 수 없게끔 단단히 끌어안았다. 숫제 울 듯한 목소리로 말 잇는다.) 왜, 왜 그러는 거예요? 숨 쉬는 게 어려워서 그래요? 그런 거라면…. (문득 고개를 치켜들더니, 대책 없이 입을 맞추었다. 몇 차례 숨을 넘겨주고서야 입을 뗀다.) 제 숨이라도 넘겨 드릴 테니까, 제발…. 그러지 마세요. 네?
 :(당신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무언가에 사로잡하기라도 한 듯 주변을 살폈다. 테이블 위의 꽃병, 책상 위의 찻잔, 그리고 창을 때리는 빗방울. 또... 당신에게로. 처음엔 몸을 틀어 품에서 벗어나려 하다가도, 당신의 입맞춤에는 저항 없이 응해온다. 다만, 숨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이안 브란트:(당신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무언가에 사로잡하기라도 한 듯 주변을 살폈다. 테이블 위의 꽃병, 책상 위의 찻잔, 그리고 창을 때리는 빗방울. 또... 당신에게로. 처음엔 몸을 틀어 품에서 벗어나려 하다가도, 당신의 입맞춤에는 저항 없이 응해온다. 다만, 숨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몸을 떨어뜨리더라도, 몽롱한 시선은 당신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고개를 틀어 먼저 숨을 맞추어 온다. 성급하게 입을 벌리고, 혀를 얽어내며, 간간이 참을 수 없다는 양 입술의 여린 살을 깨물기도 하였다. 그는 정신없이 당신의 입술을 머금으며 타액을 핥아 모두 삼켜낸다.)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중얼댄다. 숨결은 여전히 차다.) 더, 주세요, 부족해…….
(결국엔 당신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쥔 채 목 부근에 얼굴을 묻었다, 입을 벌린다. 당신의 피부를 잇새로 물어 기어이 상처를 내었고, 혈액을 핥아 삼켰다.)
첸 티엔:(언젠가는 당신과 숨을 나누고 싶었다. 정확히는, 사랑을 속삭이며 내뱉는 숨결마저도 애정 외의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입맞춤을 나누고 싶어 했다. 이토록 일말의 배려조차 찾아볼 수 없는 행위를 바란 적은 결단코 없었단 뜻이다. 다만, 테이블 위의 꽃병, 책상 위의 찻잔, 창을 때리는 빗방울…. 흐르는 시선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지 않나. 그러므로 첸 티엔은 이안 브란트를 밀어내지 않았다.)
가, 져 가세요. 전부…. 윽. (깨물릴 적에는 아픔을 토로했던가. 그마저도 빗소리에 가려지고야 만다.)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당신의 뒷머리를 끌어안았다. 감싸 안은 손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주면, 당신은 더욱이 제 살에 코를 묻게 될 것이다. 그까짓 피 조금 내어 주는 것으로 당신이 상처 입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이안 브란트:(몇 번이나 목울대가 넘어가고야 온몸에 들어가있던 긴장이 점차 풀어진다. 거칠게 움켜쥔 손에 힘을 풀고, 중심을 기울인 채 당신에게 한껏 기대어서 불규칙적인 숨을 내쉰다. 눈을 두어 번 깜빡, 다시 깜박이고 나면 흐리지 않은 본래의 색을 되찾는다. 어느덧 제정신이 든 듯 고개를 드는 시선은 멍하기만 하다.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선명하니 제가 저지른 것이 무엇인지 잊을 리 없고, 떨리는 몸 제대로 일으켜 물러난다.) 아, 아…….
… 티엔, 그게, 죄, 죄송해요. 그러려던 게 아니고, 저는, ……. 죄송해요. 실례했습니다. (완성되지 않은 단어들을 변명처럼 늘어놓으며 뒷걸음질 친다. 가다듬지 못한 표정, 종내 도망치듯 문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그렇게 말한 이안은 여전히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당신을 남겨두고서 서재를 떠납니다. 대체 그가 사라졌던 한 달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의문만이 남습니다.
 :그 뒤로도 이상했던 그의 모습에 일이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결국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채 저녁 시간이 되고 맙니다. 슬슬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러 올 때가 됐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역시나 서재의 문을 두드리는 정갈한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첸 티엔:(문을 바라보지도 않고 답한다.) 들어와요.
 :곧이어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아까의 일 이후로 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안입니다.
이안 브란트:(조심스러운 손길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시선 마주치지 못하고 말 내놓는다.)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도련님.
 :당신을 도련님이라 칭하는 것을 보아 서재 바깥에 사용인들이라도 지나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눈치를 보며 평생 불러본 적 없는 호칭을 입에 담는 모습이 퍽 어색하군요.
첸 티엔:아직 할 일이 좀 남아서요. 요깃거리를 올려보내 줄 수 있을까요? (그리 말하면서도 괜히 펼쳐 둔 책을 한데 모아 정리했다.) 그러기 어렵다면 내려가고요.
이안 브란트:(힐끔 눈치를 본다. 어쩌면 당신에게 남은 상처를 확인하였을지도 모르겠다. 틀림없는 걱정이었다.) 식사는 제때 하셔야죠…. 내려가요.
첸 티엔:(답지 않게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잠가 두었으니 당신의 눈에 상처가 보였을 리는 없을 것이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다.) 당신은요? 식사는 하셨어요? 몸 상태는 좀 어떻고요.
이안 브란트:(눈꼬리가 아래로 향한다. 여전히 문간에 선 채 당신이 나오길 기다린다.) 저는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첸 티엔: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부러 아랫입술을 주욱 내밀고는 툴툴거린다. 평소의 첸 티엔과 다름이 없다.) 굶은 건 아니죠? 내려가서 뭐라도 같이 들어요.
이안 브란트:네에. (조그맣게 대꾸했다. 긴장이 풀린 듯 작게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당신은 서재를 나와 이안과 함께 식당으로 향합니다.
식당에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준비된 음식들이 티엔을 반깁니다. 음식을 나르는 사용인 둘, 그리고 바로 옆에 선 이안이 당신의 저녁 시중을 드는 모양이군요.
그런데 어쩐지 메뉴가 평소와 다릅니다. 스튜엔 야채 덩어리들만이 둥둥 떠다니고 육류라 할만한 것은 소시지 같은 가공육뿐입니다. 보통 때라면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고기 요리가 올라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걸까요?
첸 티엔:(첸 가가 드디어 망하기라도 했나…. 수저로 스튜를 뒤적이더니, 한 술도 뜨지 않은 채 스푼을 내려두었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요…. (냅다 반찬 투정.)
사용인: (음식을 나르던 도중 화들짝! 놀랍니다.) 아, 죄송합니다. 오늘 배달 왔던 재료의 일부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려서 급하게 식사를 바꾸게 되었거든요…. 역시 밤 사이에 도둑이 든 게 맞는 것 같아요.
첸 티엔:재료가? (아예 몸을 틀어 다리를 꼬아 낸다. 식사를 이어 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자세히 말해보시겠어요?
사용인: 그게... 생고기들이 모두 사라졌지 뭔가요? 채소나 과일 같은 재료는 손도 대지 않았고요. 역시 경찰을 부르는 편이 좋을까요...?
첸 티엔:(검지로 테이블을 툭, 툭 두드리다가도 고개를 저었다.) 으음. 안 그래도 사고가 벌어진 마당에…. 이런 일로 저택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건 좀 그렇네요. 며칠 두고 보고 결정할게요.
사용인: 예, 알겠습니다. 다음부턴 감시를 철저히 해야겠어요. (음식을 모두 나르면 물러난다.)
 :사용인들이 모두 물러났으니 이안도 편히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럼에도 그는 당신 뒤에 서서 얌전히 기다리기만 합니다.
첸 티엔:서 있지만 말고 좀 앉으세요. 익숙지 못한 일을 계속하셨을 텐데, 힘들었을 거 아녜요.
이안 브란트:아, 네에…. (슬그머니 빈 자리에 앉는다.) 식사 안 하세요? 별로 안 드시는 것 같던데.
첸 티엔:멀건 스튜는 취향이 아니라서요…. 오늘은 굶을까 봐요.
이안 브란트:…!!! (어지간히 충격 받은 얼굴.) 굶으시면 안 돼요! 어디 아프신 건 아니시죠? 호, 호, 혹시 저 때문에……? (서재에서의 일을 떠올리기라도 한 듯 얼굴이 창백해진다.)
첸 티엔:식사 한 끼 거르는 게 그렇게까지 충격받을 일인가요? (당신과 대조되게도 태연한 낯이다. 제 몫의 물잔을 당신의 앞으로 옮겨 주었다.) 뭘 떠올리시든 전부 제가 허락한 거니까 자책하진 마시고요.
이안 브란트:… 네에. (입술을 꾹 물었다가 제게 내밀어진 물은 거부하지 않고 조금 마신다. 이어 조그맣게 말한다.) 전… 보다 살도 많이 빠지신 것 같고, 걱정돼서요….
첸 티엔:당신이 할 소린가요. 상처도 주렁주렁 달고 오시고, 비밀이란 비밀은 잔뜩 만들어 오셨으면서…. (픽 웃는다. 이런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캐물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그래도 몸 상태는 숨기지 마세요. 그래야 뭐라도 도와줄 수 있을 거 아녜요.
이안 브란트:네에, 저 괜찮아요. 정말로. (힘없이 대꾸하더니 문득 묻는다.) 궁금하지는 않으세요? 별로, 묻는 게 없으시길래….
첸 티엔:당연히 궁금하죠. 그런데…. 당신이 곤란해 할 것 같아서요. 아닌가요?
이안 브란트:그건 맞지만. (다시 얌전해진다.) 식사 더 안 하실 거면… 올라갈까요?
첸 티엔:더 안 드셔도 되나요?
이안 브란트:괜찮아요 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첸 티엔:그럼…. (따라 일어난다. 그대로 앞질러 걸었다.) 바로 방으로 돌아가시나요? (뒤돌아보지 않은 채 툭, 덧붙인다.) 갈증 때문에 버틸 수 없을 것 같으면, 차라리 절 찾아오시고요.
이안 브란트:(뒤에서 당신을 따라 천천히 걸었고, 잠시 우물쭈물거리더니 겨우 대답한다.) 배정 받은 일만 끝내고, 시간이 나면 자기 전 인사라도 드리러 갈게요.
첸 티엔:(눈 동그랗게 뜬 채 돌아본다. 아무래도 당신에게 일을 시키고 싶진 않은 모양.)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이안 브란트:아, 대단한 일은 아니고… 청소 같은 것들이요. 잘하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첸 티엔:그런 일까지 시키고 싶지는 않았는데. (짧은 정적.) 빼내어 드려도 부담스러워하실 거죠?
이안 브란트:정말 괜찮아요, 나름 할 만하니까…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실없이 웃었다. 당신의 방 앞까지 함께 걸어와서는 이따 보잔 말을 남기고 간다.)
 :방으로 돌아와 있으면 이제 취침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네요.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누군가 방문을 노크합니다. 저예요,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첸 티엔:들어오세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이안은 당신의 잠옷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하루 만에 집사장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모양일까요?
아니라면 그가 당신과 같은 귀족의 자리에 있을 때 사용인들이 제게 해주던 것을 따라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침대로 다가가 잠옷을 내려두고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이안 브란트:갈아입는 동안 나가 있을까요?
첸 티엔:뭘 그렇게까지. 그냥 돌아서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이안 브란트:네, 네에. (얌전히 뒤돌았다.)
첸 티엔:(첸 티엔이 사람을 좋아하는 작자라고는 하나, 예로부터 타인이 몸에 손을 대는 것만큼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탈의에 사용인의 손을 빌린 적은 없었으며, 덕분인지 이러한 상황에서도 금세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천과 천이 스치는 소리와 입었던 옷을 벗어 침대 위로 던져두는 소리만이 울린다.) 옷시중까지 들러 와 주실 줄은 몰랐는데. 집사가 시키기라도 한 거예요?
이안 브란트:(여전히 뒤돈 채로 대답한다.) 아, 시킨 건 아니고 다른 사용인이 옷을 가져다 주러 가길래… 제가 대신 간다고 해서 받아왔어요. 어차피 올 생각이었으니까….
첸 티엔:그래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갈아입는 것까지 도움받았을 텐데. (농.) 다른 사람 일까지 받아서 하진 마세요. 아, 다 입었으니 돌아보셔도 되고요.
이안 브란트:아. (뒤돌아서는 눈을 느리게 깜박댄다.) 내일은 도와드릴까요?
첸 티엔:어떻게 하는지는 아세요? 그런 시중 들어본 적은 없을 거 아녜요.
이안 브란트:(고개가 반쯤 기운다.) 그냥, 옷 단추 풀어드리고 벗겨 드리면 되지 않나요, 입는 것도 반대로만 하면……? (잘 생각하니 이상하게 들리는 것 입을 다물었다.)
첸 티엔:당신은 못 할걸요. (당연하단 투.) 수줍음이 많으시잖아요. 의식 안 할 수 있겠어요?
이안 브란트:아, 안 하려면 안 할 수 있어요. 아마도…. 일이니까……. (자신 없는 투.)
첸 티엔:으응, 됐어요. 무리하지 마세요. 저도 이런 일에 다른 사람 손 빌리고 싶진 않고요…. (벗어 둔 옷을 대충 개어 의자 위로 걸쳐 두고는) 피곤하진 않으세요? 들어가 보셔도 돼요.
이안 브란트:(가만 바라본다.) 더 시키실 건 없고요?
 :지금의 그에겐 무엇을 요구해도 되겠지요. 책을 읽어달라는 것, 잠들기 전 차를 한 잔 마실 테니 타오라는 것, 무어든요. 그는 지금 당신의 전속 사용인이니까요.
첸 티엔:더 해주고 싶으신 게 있으실까요?
이안 브란트:그, 냥……. 그런 건 아니고요. (잠잠.) 침대에 누우시면 불 꺼드릴게요.
첸 티엔:전……. 저녁 인사를 해 주신다기에, (짧은 간극.) 예전처럼…. 잘 자라는 말을 해 주실 줄 알았어요.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는데….
(입술을 달싹인다. 괜한 화풀이임을 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당신에겐 그저 모실 대상일 뿐인 거네요. 아주 당연하단 듯이 명령을 바라시는 걸 보면요.
……아녜요, 괜한 소리를 했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내일부턴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굳이 올라오지 않으셔도 된단 소리예요.
이안 브란트:(늘상 제 앞에서는 말갛게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결혼 생활 내도록 시선이 마주칠 때면 푸른 눈을 휘어 보였으며, 오래 떨어져 있긴 했지만, 어제 오늘만 해도 첸 티엔은 일절 나무람 없이 제 걱정을 해주기 바빴던 터라. 그래서…… 잠깐이지만 잊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을.)
(드물게 날이 선 음성을 듣고 나면 꼭 그때를 떠올리고 만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이안 브란트는 꼭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고, 그 모습에 처음으로 첸 티엔은 냉담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가? 일순 그때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나는 또 당신을 실망시키기만 하는 걸까? 호흡 가다듬은 끝에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 내놓는다.)
티엔, 제, 제가 잘못했어요. 앞, 으로 안 그럴 테니까……. (이번에는, 곁에 있게 해 주면 안 될까요? 그 말만은 할 수가 없었다. 눈가가 뜨거워져 서둘러 시선을 내린다.)
첸 티엔:왜……. 사과하시는 거예요? (당혹스러운 낯. 동시에 눈가를 일그러트리기도 했다. 얼핏 노여움으로도 비칠 법한 감정이나, 그 모든 게 화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앞뒤 재지 않고 잘못을 입에 담을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춘단 말인가? 어쩌면 첸 티엔이 이안 브란트를 그리 만든 것은 아닐까? 제 변덕에 쫓아오기 급급해 속내 하나쯤 말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참담하고도 아득한 심정이 되어 눈을 내리감았다. 이어 밭은 숨을 몇 차례 내쉰다. 다시금 뜬 눈에는 당신만이 담겨 있다.)
……더 시킬 게 있냐고 물으셨죠. 시킬 건 없어요. 부탁하고 싶은 건 있고요. (한 걸음. 꼭 당신이 멀어졌던 만큼 다가섰다. 그리고는 손의 반지를 빼내었다. 이전과는 달리 약지가 비어 있으니 그만큼의 시간은 번 셈이다. 텅 빈 손으로 당신의 눈가를 문질렀다. 호수가 비를 내리는 건 이상하지 않나. 그건 오롯이 하늘의 몫이었다.)
…들어주시겠어요?
이안 브란트:화, 나신 것 같아서, 아니, 제가 당신을 화나게 만든 것 같아서……. (어물대던 말을 곧장 정정한다. 목소리에 담긴 것은 형편없는 떨림이다. 당신의 냉랭한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것이 무서웠다. 붙잡지 못하여 후회하는 것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이전처럼, 모두 망쳐버릴 것 같은 자신이 가장 싫었다. 홀로 남겨지는 것은 지독하게 무서웠다. 시선 들지 못했으니 당신의 표정은 보지 못하였을 것, 내리뜬 시야에 당신의 신발이 닿을 즈음에야 고개를 쳐든다. 열 오른 눈가를 문지르는 손길이 퍽 차면서도 다정하여 그는 못내 안도한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몇 방울 당신의 손 위로 닿을 즈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첸 티엔:대화해요… 우리. (고개를 끄덕인 뒤에도 손을 거두진 않았을 것이다. 눈물이 멎을 때까지, 그리고 달아오른 눈가가 진정될 때까지는 멀어지지 않았을 것.)
숨기는 게 있다면, (아니, 숨겨야 할 게 있다면. 정정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공범이 되리.) 말씀해주세요.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게요. 이제는 멀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네?
이안 브란트:(재차 끄덕임이 이어진다. 짧은 망설임, 느린 호흡이 입술 새로 흩어진다.) 우습지만 저도,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해요. 다만 제 상태가 많이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고, 또……,
여기에 있어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해…. (우는 듯하면서도, 웃는 것만 같은 표정. 한 걸음 물러서서 제 눈가를 문질렀고, 무너진 표정을 가다듬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말씀해 드릴게요.
저어… 잘 자라는 말, 해드리고 싶어요. (그는 당신을 침대에 누이려는 듯 소매를 잡아끌었다.)
첸 티엔:(순순히 이끌리지 않고 다리에 힘을 준다.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섰으니 소맷단이 늘어지기만 할 뿐 당신이 원하는 대로 몸을 누이지는 못했을 터다.) …계속 멀어지기만 하세요. 저와 함께하고 싶으신 거라면…. 한 걸음만 다가와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 남은 거리는 제가 좁힐 테니까요.
이안 브란트:(멀어졌던 것도 잠시, 성큼 다가선다. 호흡이 닿을 듯한 좁은 거리.) 정말요?
첸 티엔:늘 그러고 싶었는걸요. (그제야 당신의 손을 찾아 쥔다. 머뭇거리며 말 이었다.) 오늘은…. 잘 자라는 말 대신 같이 잠들고 싶은데….
이안 브란트:(눈을 도륵 굴린다.)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배정 받은 방이 있으니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 의심을 살 거예요. 아쉽지만 굿나잇 인사로 만족해 주세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래도… 언젠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첸 티엔:(한껏 눈썹을 늘어트린다. 떼를 쓰기라도 하는 모양새.)
이안 브란트:오늘은 안 돼요. (단호하게 말하며 옷을 잡아당겼다. 얼굴 바라보지는 못 하는 중.)
첸 티엔:그럼…. 언제 되는데요? (여전히 울망…한 눈으로 이끌린다.)
이안 브란트:(잡아끄는 손길 서두르기 시작한다. 문득 뒤돈다.) 제가… 미쳐버리지 않으면요. (어쩐지 웃어버렸다. 제 꼴이 미친 사람이나 다름없음을 시인하자니 말도 안 되게 우스워진 탓이었다.)
첸 티엔:……왜 그런 소리를 하세요? (자신도 모르게 발을 멈춰 세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꾸며내지 않은 표정을 숨길 생각도 못 한 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안 브란트:(멈추어 서더라도 놓지 않는다. 뒤바뀐 표정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당신을 또 해치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요. (간극.) 제가… 수를 찾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첸 티엔:해치긴 언제 해쳤다고 그래요. (미약한 반항. 그러나 더 이상 말 붙여내지 않았다. 직전의 외면이 실망이었다면, 이번의 침묵은 신뢰에 가까웠다.) ……그럼, 잠들 때까지만 곁에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그런 것쯤은 해드릴 수 있지만, (눈을 가늘게 뜨곤 당신의 목 주변을 더듬었다.) 아프진 않아요?
첸 티엔:(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그마저도 아무것도 아니란 것마냥 금세 자세를 가다듬는다.) 네에, 전혀요.
이안 브란트:(하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 할 리 없으니,) 혹시… 다음에 제가 그렇게 하면 꼭 밀어내셔야 해요. 아시겠죠? (얼굴 위로는 걱정이 스민다. 그 걱정이 당신을 향하고 있음은 틀림없지만, 스스로에 대한 걱정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행여, 내가, 당신을……. 복잡한 감정을 뒤로 한 채 당신을 침대에 누인다.)
첸 티엔:(침대에 몸을 누인 채 당신을 올려다본다. 말간 낯이었다.) 밀어내기 싫으면요? 난 다 내어주고 싶었는걸요. 그 정도쯤은….
이안 브란트:그래도… 당신이 내어주고 싶은 만큼, 저도 제대로 기억하고 싶으니까요. (짤막하게 웃으며 곁에 앉았다.)
첸 티엔:으응…. 그런 거라면 당신 뜻대로 할게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어둠 속에서도 당신의 손을 찾아 쥐고자 허공을 더듬었다.) 하나만 더 부탁해도 돼요?
이안 브란트:어떤 건데요? (손을 가볍게 쥐었다.)
첸 티엔:자장가가 듣고 싶어요.
이안 브란트:저 그런 거 잘 모르는데. (정적.) 배워올까요?
첸 티엔:(옅은 웃음소리.) 이 시간에 어디서 배워 오시려고요?
이안 브란트:집사장 되시는 분이 뭐든 알려주시던데요…. (농.)
첸 티엔:이것만큼은 아닐 텐데. 이런 부탁을 들은 건 당신이 처음이니까요.
이안 브란트:제가 처음이에요? (신기한 양 묻는다.)
첸 티엔:아닐 것 같았어요?
이안 브란트:글쎄요…? (모호한 대답.)
첸 티엔:또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시려고 하죠.
이안 브란트:(눈썹 위로 까닥이더니 순순히 대답한다.) 네에, 아닐 것 같았어요……. 하여간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첸 티엔: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이안 브란트:그, 그냥. 당신은 뭐든 익숙한 이미지라서요…. (웅얼거린다.)
첸 티엔:키스는 저보다 당신이 더 능숙하시던걸요. (농.)
이안 브란트:제, 제, 제가요……. (얼굴 새빨개지더니) …… 얼른 주무세요.
첸 티엔:네에…. 당신도 잘 자요. (가물가물한 눈꺼풀을 내리누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만을 내쉬었다.)
 :잘 자요, 이안의 목소리에 무거운 눈이 감깁니다. 푹신한 이불과 베개가 당신의 몸을 감싸고 고른 숨을 내뱉으면 금세 몸이 나른해지며 잠이 쏟아져요. 그렇게 당신은 잠에 듭니다.
달칵,
창문 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해요.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은 조용한 오후입니다. 이안도 그새 사용인 행세에 적응한 모양인지 조용히 제 할 일을 하고 있고, 그다지 소란스럽지도 않은... 참, 밤 사이에 또 온 집안의 창문이 열려있어 복도가 물바다였다고 했던가요?
사용인들 사이에 귀신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도는 것 같지만, 티엔 당신만큼은 그럭저럭 평온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불청객이 찾아오기 전까지는요.
당신은 손님이 찾아왔다는 안내로 응접실로 향하면 처음 보는 사람이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온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목례합니다.
??: 처음 뵙겠습니다, 첸 티엔 씨.
엘런 카터: 저는 엘런 카터 형사라고 합니다. 어제 저택에서 사용인 하나가 죽었다지요?
사고사였다지만 신고가 들어오면 그래도 확인을 해야 하는 터라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협조 가능할까요?
첸 티엔:형사님이셨군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는 걸까요?
엘런 카터: (사람 좋은 얼굴로 웃어 보인다. 짧은 인사를 주고 받은 뒤 당신 뒤에 선 사용인을 흘끔 쳐다보더니) 둘이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사용인을 물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첸 티엔:(사용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러가도 좋다는 허락이었다.)
 :사용인이 떠나면 응접실엔 탐사자와 카터 형사 두 사람만이 남아 있습니다. 카터 형사는 사용인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까지 확인한 뒤, 은밀한 목소리로 본론을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엘런 카터: 사용인이 죽었다는 신고로 찾아왔다는 건 핑계였습니다. 이제 첸 티엔 씨께서도 제가 왜 찾아온 지 아실 것 같으니... 자, 이안 브란트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이틀 전, 이 주변에서 이안 브란트를 목격했다는 신고가 있었습니다. 저택 주변의 골목에서 한참이나 이 저택을 바라보고 있다가 날이 저물자 이곳으로 향했다더군요.
... 죽은 사용인은 확실히 사고로 죽은 게 맞습니까? 들어오면서 계단을 확인했지만 그곳에서 구른다고 사람이 죽을 정도는 아니던데요.
첸 티엔:(표정을 가다듬는다. 첸 가의 위상답게 숱한 사교 파티를 거쳐 왔으므로 겉으로 보이는 심경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안타깝다는 표정만을 지어 낸다.) 저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라서요. 소란을 듣고 내려가 보니 이미……. (짧은 침묵. 묵념을 닮았다.) 그런데, 그 사고와 이안 브란트가 무슨 관련이 있기에 그러시나요? 이렇게 전 배우자의 이름을 듣게 되는 건 썩 달갑지 않아서요.
엘런 카터: 예에,  배우자라고는 해도 친분이 있던 사이임을 확실하니, 신고가 들어온 김에 확인 차 여쭈어 보는 겁니다. (잠시 뜸을 들인다.) 사용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어제 새로운 사용인이 왔다던데 그 자를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첸 티엔:그 아이를요? (예상지도 못 했다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아이를 이안 브란트라고 의심하시는 건가요? (손깍지를 낀 채 상체를 소파에 묻는다. 거만한 자세로 다리를 꼬아 내기도 했다.) 형사님, 형사님의 말씀대로 제  배우자와 저는 꽤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죠.
또…. (주저한다. 눈을 깜박이는 속도가 잦다. 젖은 눈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게끔 손을 써 두었지만…, 저희의 끝이 그렇게까지 평화롭지는 않았거든요. 전 이제 이안 브란트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버거워요.
(또다시 침묵.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숨을 삼켜 낸다.) ……죄송해요. 이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당신의 태도에 카터 형사는 유감입니다, 실례하였군요, 따위의 형식적인 위로를 건네옵니다. 이안의 행방을 묻는 것을 포기한 듯 보이고요.
잠시 말이 없던 그는 코트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당신에게로 내밀어 옵니다.
핸드아웃 <푸른 열매>가 공개됩니다.
첸 티엔:이건…?
 :구겨진 눅눅한 종이에 그려져 있는 것은 자두를 닮은 형태의 열매입니다. 푸른 물감으로 칠해져있는 것이 꼭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모양새군요.
카터 형사는 말없이 그것을 내밀고 당신의 반응을 살피더니 이내 종이를 돌려 받으려는 듯 손을 내밀어 옵니다.
엘런 카터: 보아하니 이것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은 없는 것 같군요.
첸 티엔:네에. 처음 보는 그림이네요. (순순히 종이를 돌려주었다.) 과일… 인가요?
엘런 카터: 겉보기엔 그렇죠. (종이를 다시 접어 코트 주머니에 넣는다.) 이것, 그리고 이안 브란트에 대해 이야기 드릴 것이 있으니 내일 오후 2시까지 서로 와서 절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브란트 가의 참극을 이곳에서 되풀이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꼭 와주셔야 할 겁니다.
첸 티엔:(브란트 가의 참극. 입을 꾹 다문다.) …일단은, 알겠어요. 내일 뵙죠.
엘런 카터: 예, 그리고... 절대 그 누구에게도 저를 만난다는 것을 발설하지 마십시오. 그 누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눌러 말하는 힘이 실린 목소리를 끝으로 카터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서 짧은 목례 후 응접실의 입구로 향합니다. 닫히는 문과 멀어지는 발소리.
아, 문득 당신을 찾아왔던 이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어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어제 계단 아래에 쓰러져있던 처참한 시신. 옷깃의 작지만 선명했던 붉은 자국. 미친 사람처럼 목을 쥐어뜯던 이의 손, 그리고 올곧은 눈으로 제게 말하던 형사의 얼굴.
이 저택에 숨겨준 것은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이 맞을까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
이안 브란트:형사가 다녀갔던 모양이네요.
 :생각에 깊이 잠겨있다보면,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고개를 돌리면 조금 굳은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는 이안이 서 있습니다.
이안 브란트:그가 저에 대하여 묻던가요? (정적.) 곤란하게 해서 죄송해요.
첸 티엔:응? 괜찮아요. 제가 잘 쫓아냈어요.
눈물 연기 좀 하니까 바로 죄송하다면서 가시던데요.
이안 브란트:그런 것도 할 줄 알아요? (허리를 숙여, 앉아있는 당신과 눈을 마주한다.) 조금 붉어진 것 같기도 하고.
첸 티엔:잘하는 편이죠. 첸이라는 성을 달고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면 분명 극단에 들어갔을걸요. (제 눈가를 손으로 문지른다.) 좀…. 과했나? 어지러워요.
이안 브란트:(눈가를 조심히 문지른다.) 괜찮아요? 앉아서 좀 쉬고 있어요.
첸 티엔:으응. 그래야겠어요. (손길 위로 뺨을 부빈다.) 당신은요? 바쁜 와중에 찾아와 주신 거예요?
이안 브란트:손님이 찾아왔다며 분주해지길래 시간이 좀 났어요. 이제 슬슬 돌아가야….
 :그런데 이안이 이상합니다. 분명 바로 직전까지 당신을 바라보며 응시하던 눈은 초점이 흐려져 허공을 응시하고 당신에게로 쏟아지던 말들 또한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마치 실에 묶인 인형극의 마리오네트처럼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뒤를 돈 이안은 당신을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합니다.
첸 티엔:이안? 갑자기 왜 그래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뒤쫓았다.)
 :어떤 부름에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습니다. 그의 걸음을 따라 걸으면 도착한 곳은 주방. 그는 망설임 없이 고기를 저장해둔 곳으로 향하더니 곧 바닥으로 주저앉습니다.
질겅 질겅,
꿀꺽.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몇 분이나 그러고 있었을까요? 문득 움직임을 멈춘 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당신을 응시합니다. 온통 붉게 물든 입가와 잇새에는 날고기를 문 얼굴로... ...
...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것과 자신의 입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차례로 확인하곤 그것들을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생고기에서 묻어난 핏물이 흥건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하던 이안은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피하곤 주방 밖으로 도망치듯 달려나갑니다.
 :...
...
당신은 본 것들을 되새겨 봅니다. 핏물로 물든 입가와 날고기를 욱여넣은 입, 텅 빈 동공으로 당신을 돌아보던 그것이 사람의 형상이던가요. 지금 당신의 저택에 들어선 것은 당신이 알던 이안 브란트가 맞나요?
첸 티엔:(내가 당신을 모를까. 두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언가에 홀렸을지언정 그는 이안 브란트임이 확실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당신의 뒤를 쫓았다. 혼자 두고 싶진 않았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이안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황급히 화장실로 향합니다. 문을 닫는 소리, 다시 안에서는 기침소리, 또, 무언가 게워내는 소리가 들립니다.
첸 티엔:(초조한 낯으로 문 앞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몇 번의 노크.) ……이안, 괜찮아요? 들어가도 될까요?
이안 브란트:(한참 답이 없는 듯하더니 쥐어짜내는 목소리를 낸다. 내부에서 소리가 울렸다.) 죄, 송해요, 나중에 얘기해요. (명백한 거부였다.)
첸 티엔:기다리게 해 주세요. 응? 혼자 두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자책할 게 뻔하니까. 뒷말은 삼켜 낸다.)
이안 브란트:(안에서 물소리가 이어진다.) 지금은 싫어요, 제발…. (울먹이는 음성. 이렇게나 거북한, 사람 같지 않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따 제가 찾아갈 테니까, 잠시만 혼자 있게 해 주세요….
첸 티엔:…절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면 돌아갈게요. (문에 몸을 기대고 선다.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당신의 표정이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이상하게 볼까 봐 그러는 거라면…. 열어줄래요?
이안 브란트:(내지르듯 이어지는 물소리, 끊기지 않는다. 마치 그치지 않는 장마처럼. 허나 구두 소리는 문간으로 가까워지더니 이어 철컥, 문고리를 돌려낸다. 문 틈새로 보이는 꼴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턱끝으로 떨어지는 물기, 축축하게 젖어버린 옷, 몇 번이나 씻어냈으나 여전히 핏기가 떨어지는 소맷단.) 이, 이상하잖아요, 이런 건…….
첸 티엔:(몸을 돌려 당신을 마주한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턱 끝으로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내더니, 이어 제 옷자락을 길게 끌어 내려 당신의 소맷단의 물기를 짜낸다. 흰옷을 즐겨 입던 만큼 핏물은 속절없이 섞여들었을 것이다.) 이제 똑같아졌네. 이상해 보여요?
이안 브란트:(당신의 행동 하나 피하지 않고 그저 지켜만 보다가, 물음에는 훌쩍이며 고개 저었다.) 바보 같아요…. 사용인들이 물으면 뭐라고 하시, 려고, 이렇게……. (괜히 당신을 책하듯 대꾸하지만 그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저를 향한 기이한 맹목이…….)
첸 티엔:요리라도 했다고 하죠, 뭐. 고기는 다 태워서 버렸다고 하고요. 당신도 아시잖아요. 저 그쪽으로는 재능 없는 거. (옷자락에 핏물이 배어든 탓에 눈물을 훔쳐줄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대신 가벼운 농담을 입에 담았다.) 아무도 의심 못 할 거예요. 그러니까…. 다 괜찮아요. 괜찮아지게 만들 테니까…. 멀어지지 말고 곁에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이안 브란트:(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아무리 사용인들이 항시 곁에 있다곤 하나 차 한 잔 제대로 우리지 못하는 이를 장난삼아 놀린 적 있었으며, 무어라도 해보겠다고 함께 주방을 어지른 적도 있었고…. 불과 2여 년 전인데 아주 멀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당신과 이렇게나 엉망인 꼴로 있자니, 꼭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아 그는 가벼운 농담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웃는 모습이 퍽 어려도 보였다.) 멀어지지 않을게요, 이런 모습이라도 곁에 있을게요…. (물줄기 사이 속삭였다.)
첸 티엔:(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이유는 장황하지 않았지만, 첸 티엔이 이토록 사랑에 목을 매게 된 이유 또한 특출나지 않았다. 늘 가느다란 미소만 짓던 당신이 이처럼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을 본 후부터…) 이런 모습이라뇨. 제 눈엔 언제나 똑같았어요. (그저 사랑이었노라고. 속삭이며 눈가 아래로 입을 맞추었다.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입술에 닿으면, 그마저 웃음을 머금었을 터다.)
 :엉망이 된 옷을 갈아입고, 이후 이안은 어제와 같이 저녁 시중을 들고 취침 준비를 돕기 위해 당신의 방까지 동행합니다. 오늘도 손에는 당신의 잠옷을 든 채로요.
이안 브란트:(오늘도 옷가지를 침대에 내려놓는다.) 도와드릴까요? 오늘은.
첸 티엔:부끄러워서 눈도 못 마주치시는 거 아녜요?
이안 브란트:(옷깃 당겨서 셔츠 윗단추를 풀어냈다.)
첸 티엔:이아안, 못 본 새 대담해지셨어요.
이안 브란트:별론가요…?
첸 티엔:그런 것 같아 보이나요?
이안 브란트:그럼 좋나요?
첸 티엔:수줍어하시는 것도, 이렇게 적극적인 것도 다 좋네요. 그래도 옷은 혼자서 갈아입을 수 있으니 잠~시만 뒤를 돌아주시겠어요?
이안 브란트:아쉽지만, 알겠어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순순히 놓고 뒤돌았다.)
첸 티엔:(척척 옷을 갈아입고는 이불을 걷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자장가 말인데, 배워 오셨어요?
이안 브란트:아 맞다. (아무리 봐도 안 배워온 사람의 말.)
첸 티엔:너무해…… …….
까먹으신 거죠….
이안 브란트:그, 그런 일,(목소리가 줄어들었다.) 만 아니었으면 기억했을 거예요. (얌전.)
첸 티엔:그럼, 내일은 . 불러 주셔야 해요.
이안 브란트:강조하신 것 같은데.
아, 알겠어요.
첸 티엔:강조한 거 맞아요. (헤헤.)
이안 브란트:내일은 별 일 없으면 꼭 배워올 테니까 얼른 주무세요. (손 끝으로 당신의 머리카락을 훑는다.) 내일도 집에 있으시는 거죠?
첸 티엔:(손길이 닿으면, 금세 하품한다. 졸음으로 가득 찬 목소리.) 으응……. 별일 없으면요. 당신도 잘 자요.
 :그는 어제와 같이 당신의 취침 준비를 돕습니다. 침대 위로 몸을 뉜 당신에게로 이불을 정리해 덮어주고, 아, 멀어질 줄 알았던 얼음장같은 손이 당신의 뺨으로 와닿습니다.
잘 자요,
웃었나요? 웃은 건가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비웃음도 실소도 아닌, 마치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듯한….
하지만 이유를 묻기도 전에 잠이 쏟아져 옵니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감아내면 마지막으로 들려온 것은 또다시 그 소리……
달칵-
 :오늘은 엘런 카터 형사와 약속한 날입니다. 어떻게 할까?
첸 티엔:(그를 만나러 간다.)
이안 브란트:티엔, 어디 가요? (저택 내부 빈 방을 정리하던 도중, 나갈 채비를 하는 당신을 보면 다가와 묻는다.)
첸 티엔:(태연히 답한다.) 아, 악기상엘 들러 보려고요. 사고 싶은 게 생겨서요.
이안 브란트:비가 많이 오는데. 조심히 다녀오세요.
 :이안은 잠시 의아한 기색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별 물음 없이 당신을 배웅합니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은 채 온 도시를 적시며 쏟아지고 있습니다. 며칠째 폭우가 내린 탓에 날 또한 부쩍 추워졌군요. 하얗게 번지는 입김에 코트 깃을 여미고 우산 아래로 겨우 몸을 숨긴 채 서로 들어섭니다.
엘런 카터: 잘 오셨습니다.
 :당신을 반갑게 맞이한 카터 형사는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가 김이 피어오르는 차 한 잔을 가져와 앞으로 내밉니다. 그는 테이블 위로 엉망으로 늘어져있던 서류더미들을 한 쪽으로 밀어 놓더니 자리가 난 테이블 위로 흑백 사진 몇 장을 늘어놓습니다.
사진엔 하나같이 끔찍하고 기괴한 모습들이 담겨있습니다.
목과 가슴 등, 급소를 공격당해 사망한 듯 보이는 시신의 사진.
그 옆엔 불이라도 난 것인지 온통 재가 돼버린 새카만 땅.
이어서 보이는 것은 자두를 닮은 열매들이 맺혀있는 잎이 없는 밝은 색의 나무줄기. 나무의 줄기에는 마치 절규하는 듯한 사람의 얼굴을 닮은 형상.
그리고... 죄수복을 입은 남자의 어깨 위로 아까 본 나무줄기와 흡사한 것이 돋아나있고 그 끝엔 열매가 맺혀있는 모습. 이성판정 (0/1)
첸 티엔:
SAN Roll
기준치:74/37/14
굴림:97
판정결과:실패
 :이성 차감 -1.
당신이 사진을 모두 확인하면 카터 형사가 입을 엽니다.
엘런 카터: 첫 번째 사진은 브란트 가 저택에서 사망한 시신들의 사진입니다. 신문에 난 것과 같이 전부 급소를 공격당했죠.
그리고 두 번째 사진은 브란트 가에서 반 년 전 북부에 사들인 땅이죠. 주변 마을 사람의 말로는 과수원이 있었다던데, 어느 날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고 다시 가보니 저렇게 온통 불에 타있었다더군요.
세 번째 사진은 그 과수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열려있던 나무입니다. 과수원이 불타기 전 그곳을 보았던 사람들의 진술로 과수원에 심은 과일과 동일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그 과일을 먹은 사형수의 모습이죠.
 :마지막 말이 끝나자 카터 형사는 무언가를 테이블 위로 올려둡니다. 입구가 마개로 틀어막힌 비커에 들어있는 시리도록 푸른색을 머금은 과일 하나를.
첸 티엔:이건…. 지난번 보여주신 그림의….
엘런 카터: 예, 맞습니다. 과수원에서 키운 열매지요.
과수원을 조사하던 중 이상한 제보 하나를 받았습니다. 듣기로는 그 과수원에서 일을 하던 자라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곳에서 돌아온 이후로 집에 처박혀 나오질 않고 과일만 보면 비명을 지르며 발작을 일으킨다더군요.
그가 이야기하길 그 과수원의 열매를 먹은 자들은 전부 괴물이 되거나 저 열매를 맺는 나무로 변해버렸다는데…
물론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일은 어떤 과일이며, 브란트 가에서 어떤 목적으로 이것을 재배했는지는 알 수 없었기에 상부의 허가를 얻어 사형 집행이 예정돼있던 사형수들에게 열매를 섭취시켰습니다.
열매를 반 개 정도 섭취한 사형수 들은 목마름과 배고픔을 호소했으나 물과 음식을 줘도 계속해서 괴로워했습니다. 종종 자아를 잃은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체온이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덥다며 옷을 벗으려 들었죠.
강제로 체온을 덥힌 사형수는 곧 먹은 열매를 토해냈습니다. 분명 씹어 삼켜 곤죽이 됐을 열매가 크기만 작아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 사형수의 상태는 급속도로 좋아졌고요.
엘런 카터: 하지만 열매 하나를 전부 먹은 사형수는 삽시간에 폭력적으로 변했고 목마름을 호소하며 자신의 목을 쥐어뜯더니 결국 옆에서 경과를 지켜보던 의사의 팔을 물어뜯어 삼키더군요. 그리고 그의 어깨에서 저 나무가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미친 소리인 줄 알았던 게 전부 사실이더군요.
또, 저택에서 살인이 있던 날 브란트 가에서 저택으로 이 열매를 대량으로 들여왔음을 확인했습니다.
저택의 사람들이 이 열매를 먹었다면 그가 사용인들을 살해하고 저택과 과수원에 불을 지른 이유가 설명됩니다. 아마 이것들이 밖으로 퍼져나가는 걸 어떻게든 막고 싶었을 테죠.
이게 저희가 알아낸 전부입니다.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열매를 분석하는데도 시간은 걸릴 테니까요.
그러니 우린 그를 잡아들이려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하고 있죠. 그 저택에서의 살인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 도시는 저 열매와 시체들로 뒤덮여 있었을 테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티엔 이성판정(1/1D3)
첸 티엔:
SAN Roll
기준치:73/36/14
굴림:13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이성 차감 -1.
첸 티엔:(감사하고 있다? 저 말이 사실인지, 혹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인지 심리학 판정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굴려주세요.
첸 티엔:
심리학
기준치:60/30/12
굴림:20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여전히 미심쩍인 낌새지만 감사하고 있다, 그 말은 아주 거짓이 아닌 듯합니다. 도시를 보호한 셈이니까요.
그때, 카터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열린 문틈으로 그를 급히 찾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네요.
엘런 카터: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열매를 챙겨든 뒤 사무실을 나선다.)
 :홀로 남아 사무실을 둘러보면 당신이 앉은 소파와 테이블을 제외하고 책상과 작은 캐비닛 정도가 들어선 좁은 사무실임을 확인합니다.
카터의 사무실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첸 티엔:(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훑는다.)
 :메모지와 펜이 엉망으로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메모지 위엔 커피 잔을 놓았다 뗀 듯한 갈색 자국 또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책상 한쪽에 놓인 카터의 것으로 보이는 조금 젖은 코트입니다.
첸 티엔:(흠. 이상한 모양새가 되기는 하겠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청구는 첸 가로 달아두시길. 코트를 뒤적인다.)\
 :코트를 들추면 수갑과 장전된 리볼버 한 구가 보입니다. 카터가 한 이야기들이 문득 스쳐 지나갑니다. 어떻게 할까?
첸 티엔:(만일을 대비해 챙겨두는 것이 좋겠다. 버릇없고 제 생각만 하는 귀족 집안 도련님의 탈을 뒤집어쓴 채 수갑과 리볼버를 챙긴다. ……제가 상부에 잘 말해 둘게요. 다음엔 꼭 승진하실 수 있게끔….)
 :수갑과 리볼버를 챙깁니다.
첸 티엔:(이어 캐비닛을 살핀다.)
 :잡동사니와 수많은 서류들이 엉망으로 들어가 있습니다.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군요.
그중 가장 최근 것으로 보이는 제일 앞의 서류뭉치를 들어 펼쳐보면 이안 브란트의 인적 사항과 살인사건, 이후 그의 이동 경로를 추적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가장 마지막의 추측위치는 첸 가의 저택이고요. 밑줄, 그리고 별표.
카터 형사는 아직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돌아오면 당신을 다시 추궁하겠죠. 그는 당신의 저택에 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모양이니까요. 그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몰래 서를 빠져나갈 수도 있고, 혹은 이안을 그에게 넘길 수도 있겠지요. 협조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곤란해지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첸 티엔:(감사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이후에 어떻게 될 줄 알고? 확신할 수 없는 곳에 당신을 보낼 수는 없다. 그대로 서를 빠져나가 저택으로 돌아간다.)
 :밖으로 향하면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날이 어둑해져 가자 더 추워지는 것만 같아요. 뿌옇게 퍼지는 입김을 뒤로하고 당신은 저택으로 향합니다.
당신의 사용인 아이, 혹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안 브란트가 기다리고 있을 그 저택으로 .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이상하게 당신을 마중 오는 이들이 없습니다. 저택의 불은 전부 꺼져있는 듯 어둑하고 바깥과 다를 바 없는 찬 공기가 당신의 주변을 맴돕니다. 주변을 살피면, 또네요. 온 집안의 창문이 열려 그곳으로 들이친 빗줄기로 인해 바닥과 벽이 젖어있습니다.
한 걸음 들어설 때마다 물기에 젖은 바닥을 밟는 당신의 구둣발 소리와 더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만이 텅 빈듯한 집안을 울립니다.
첸 티엔:(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이안은 어디에 있지? 걸음을 서둘렀다.)
 :안으로 들어설수록 당신은 위화감을 느낍니다. 세차게 내리는 비냄새 말고도 당신의 코끝을 스치는 냄새가 있었으니까요. 비릿하게 풍기는 기분 나쁜 냄새,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하면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군데군데 수를 놓듯 붉게 칠해진 웅덩이들과 쓰러져있는 몇 명의 사용인들. 이성판정 (0/1)
첸 티엔:
SAN Roll
기준치:72/36/14
굴림:29
판정결과:어려운 성공
첸 티엔:
듣기
기준치:70/35/14
굴림:50
판정결과:보통 성공
 :저 복도의 끝 응접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옵니다. 아니, 확실하게 들려왔습니다. 무언가 억눌린듯한 아주 작은 신음소리가.
첸 티엔:(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음박질쳤다.)
 :소리를 따라 응접실로 향하면 보이는 것은 이안입니다. 빗물이 떨어져 젖어버린 벽난로 앞에서 제 손 등을 부지깽이로 찍어 바닥에 고정시킨 채 괴로움에 신음하는 이안이. 이성판정(0/1)
첸 티엔:
SAN Roll
기준치:72/36/14
굴림:72
판정결과:보통 성공
 :그는 중얼거립니다, 그때 끝내버렸어야 했는데, 아아, 이곳에 오지 않았어야 했는데. 당신이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자신의 손등을 관통해 그대로 나무 바닥에 박아버린 부지깽이만을 노려보고 있을 뿐입니다.
첸 티엔:……이안. (나직이 떨어지는 목소리. 부러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다가선다.)
 :그는 멍한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빗물에 젖은 꼴을 하고서 파랗게 질린 낯으로 당신를 응시하는 저 시선조차 시려오는 것 같습니다.
첸 티엔:어쩌다 그렇게 젖은 거예요. (찡그리며 웃는다.) 손은 왜 또 그렇게 다쳤고요.
이안 브란트:티엔. (멍한 눈빛으로 당신의 이름만을 읊조린다. 그러다 곧 환희하는 듯한 낯이 되었다가, 일순 일그러지고, 다시 울 듯한 눈이 된다.) 가, 까이 오지 마세요….
첸 티엔:(그럼에도 한 걸음 다가선다.) 밀어내지 않기로 약속하셨잖아요. 네?
이안 브란트:(겨우 소리내어 애원한다.) 싫어요, 지금은 안 돼, 당신마저 잘못되면 나는……. (당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열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둔 채 다시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읊조린다.) 당신에게 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때, 모든 걸 끝내버렸어야 했는데…….
첸 티엔:괜찮아요. 괜찮아지게 만들게요. 그러니까….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춘다. 곧장 당신을 끌어안았다.)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제발.
 :당신이 그를 끌어안으면, 이안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지는 듯싶더니 순간 당신의 목으로 격통이 느껴집니다. 그의 자유로운 한 손이 당신의 목을 움켜쥐었습니다.
한 손이기에 목을 조르기엔 부족한 악력이나 그의 손톱이 목의 살갗에 박히는 게 느껴집니다. 이건 살의가 담긴 행동입니다.
이안은 명백히 당신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건 정말 이안이 맞나요? 그의 뱃속에 들어있을 그 푸른 열매가 아니고?
첸 티엔:
지능
기준치:65/32/13
굴림:77
판정결과:실패
 :이런 상황에서 뭘 떠올릴 수 있겠나요? 그는 당신의 목을 옥죄어오고 있는데...
이안은 제 손이 엉망으로 망가지고 있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 모양인지 부지깽이로 바닥에 고정해둔 손을 움직이며 당신의 목을 조여옵니다.
남은 손마저 자유로워진다면 당신은 꼼짝없이 그의 양손에 목이 졸려 죽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무슨 수라도 쓰지 않으면...
첸 티엔:(밀어내지 않았다. 목이 졸리는 것쯤은 괜찮았다. 그저, 당신이 정신을 차린다면 또다시 슬퍼하게 될까 봐…. 그게 첸 티엔의 유일한 걱정이었다. 그러므로 눈을 굴린다. 검보랏빛 머리카락 뒤의 벽난로에 시선을 둔다. 불을 지필 만한 것이 있나?)
 :그의 옆에 구겨진 채 나뒹구는 것이 보입니다. 젖은 성냥 상자입니다. 이안은 벽난로에 불을 붙이려 했던 걸까요? 어쩌면 그도 자신을 미쳐버리게 만든 그 파란 열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벽난로는 저렇게 온통 빗물에 젖어버린 것을요. 장작 또한 흠뻑 젖어 불을 붙이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첸 티엔:(응접실 테이블 위에는 장식용 와인이 올려져 있었을 터다. 당신의 손에 붙들린 탓에 움직임이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허공을 더듬어 병의 목 부분을 찾아 쥘 수는 있었다. 생각을 거칠 것도 없다. 쨍그랑! 파열음이 응접실 안을 가득 채운다. 피를 닮은 술은 곳곳에 튀어 바닥을 적신다. 성냥이 젖어 있던 탓인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이제는 헛숨을 들이켜도 들어오는 숨이 넉넉지 않다. 눈앞이 흐릿해지다 선명해지길 반복한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불을 붙여 내면, 그대로 떨구어 낸다. 기실, 장작만큼은 넘칠 정도로 많았다. 어쩌면 자신마저도 장작이 되어 잿더미가 되리라.)
…이, 안. 이제…. 춥, 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괜찮아. 속삭임과 동시에 피를 따라 화마가 퍼진다. 이어 두 손을 뻗어 당신의 허리를 붙잡는다. 그리고는 그대로 당긴다. 온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세게 끌어안았다.)
(함께 살아남든, 혹은 이대로 함께 눈을 감게 되든, 무어든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비로소, 당신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이안 브란트:(주변은 일순 불로 휩싸여 공기가 달아오른다. 그제야 당신의 목을 움켜 쥐던 손에 힘을 풀고 어깨를 밀어내려든다. 얼음장보다 찬 손에는 그 온기마저 괴로워 흐느낌 같은 말들을 내놓는다.) 더워, 싫어요, 답답해…. 티엔, 저 싫어요……. 네? (그럼에도 당신의 온기는 그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필사적으로 밀어내던 손에 점차 기운이 빠지더니 당신에게 머리를 기댄다.)
 :그렇게 잠시 몸부림치는 이안을 붙잡고 있으면 며칠 내내 창백하기만 하던 얼굴에 혈색이 돌고 보랏빛을 띄던 입술이 본래의 색을 되찾습니다. 표정도 한결 편안해진 것 같고 와닿는 그의 숨 또한 더 이상 차갑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
이안 브란트:(느릿느릿 숨을 내쉬던 그때, 다시금 표정이 괴로움에 물든다. 토할 것 같아…, 힘을 주어 당신에게서 떨어진다.)
 :이안은 헐떡이는 숨소리를 내뱉길 몇 번, 이어지는 헛구역질과 토해내지는 푸른 것. 도저히 인간이 그대로 삼킬 수 있는 크기가 아닌 열매의 모양을 한 그것이 이안의 입안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마치 쥐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찢어지게 높은 소리가 그 열매로부터 들려옵니다. 이성판정(1/1d3)
첸 티엔:
SAN Roll
기준치:72/36/14
굴림:47
판정결과:보통 성공
 :이성 차감 -1.
이안은 숨을 몰아쉬며 제 손을 관통하던 부지깽이를 빼내어 바닥을 구르는 열매를 짓이깁니다. 열매의 비명이 멎고 하얗고 파랗게 터져버린 열매의 과육이 바닥으로 흩어집니다.
열어둔 창문 새로 비가 세차게 들이칩니다. 주변을 잡아삼킬 것처럼 태우던 불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당신은 문득 며칠 내내 지겹게도 들려오던 빗소리가 그쳤음을 깨닫습니다.
이안 브란트:(그 행동을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힘없이 기대었다가, 더욱 파고든다.) …… 추워요. 안아주세요.
첸 티엔:(말없이 끌어안는다. 다신 놓지 않을 것처럼.)
 :이안은 완전히 지쳐버린 듯 눈을 감습니다. 끔찍했던 악몽을 뒤로하고 실로 오랜만일 단잠에 빠진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입니다.
샛노란 햇빛이 물러가는 먹구름 틈 사이로 두 사람을 비춥니다.
아, 지겹던 장마가 끝난 모양입니다.
비로소.
이안 브란트 생존, 첸 티엔 생존.
 :에덴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진 이안은 카터 형사 측에 자발적으로 출두하여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전달합니다.
남아있는 에덴은 전부 불에 타 사라졌고, 살인 사건 혐의는 이미 이전에 죽은 사형수에게 덮어 씌워졌으며 세상엔 이안 브란트의 무죄가 공표됩니다.
그는 자유를 되찾고 다시 일상을 살아갑니다. 당신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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